‘-에 대하여’를 어찌할까요 우리말에서 ‘-에 대하여’란 표현이 많이 쓰이는데, 그중 적잖은 예들이 ‘-을’이나 ‘-에, -에게’ 등으로 고쳐 쓸 만한 것들이다. 법령문에서 특히 이러한 표현을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직원에 대하여 협박하거나”는 “직원을 협박하거나”로, “관계인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다”는 “관계인에게 질문할 수 있다”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동안 법제처는 이처럼 남용되는 ‘-에 대하여’를 바로잡아 왔는데, 최근 교육부도 앞으로 이 ‘-에 대하여’를 교과서에서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를테면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를 “삶의 자세를 생각해 봅시다.”로 고쳐 쓰는 식이다. 이렇게 교육 현장에서 국어를 갈고 닦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에 대하여’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렵거나 어색해서가 아니라 일본어투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의 기원을 장담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자칫 이러한 태도는 우리말 표현을 옥죄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올바른 운동법에 대하여 토론해 봅시다’를 ‘올바른 운동법을 토론해 봅시다’라고 할 수는 없지는 않겠는가. 물론 ‘올바른 운동법이 무엇인지 토론해 봅시다’처럼 쓸 수는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표현의 갈래를 제약하는 자체가 국어의 힘을 떨어뜨리게 된다. 더 쉽고 고운 말로 교과서 문장을 가다듬는 것은 백번 찬성할 일이다. 방침에서도 제시하듯이 가능하면 ‘이유, 의미’보다는 ‘까닭, 뜻’처럼 쉬운 말을 살려 쓰는 것이 좋고, ‘소감’보다는 ‘느낀 점’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이유, 의미’ ‘-에 대하여’가 자연스러울 때가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가려 쓰는 지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24 風文 R 1156
끼우다, 끼이다, 끼다 ‘끼우다, 끼이다, 끼다’는 뜻과 용법이 조금 복잡하다. 찬찬히 살펴보자. ‘끼우다’는 타동사, 즉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이다. ‘무엇을 비교적 좁은 틈에 넣거나 꽂거나 하여 빠지지 않게 하다’ 또는 ‘누구를 한 무리에 섞거나 덧붙여 들게 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끼우다’는 ‘끼우어(끼워), 끼우니, 끼운’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술추렴에 나를 끼워 주었고, 따뜻한 아랫목을 기꺼이 내게 양보했다.”(이문열, 그해 겨울) ‘끼이다’는 자동사, 즉 목적어가 필요 없는 동사이다. ‘무엇이 비교적 좁은 틈에 넣어지거나 꽂혀서 빠지지 않게 되다’ 또는 ‘누가 한 무리에 섞여 들거나 어떤 일에 관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끼이다’는 ‘끼이어(끼여), 끼이니, 끼인’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그의 튼튼한 누런 이빨 사이에 끼인 고춧가루가 눈에 띄었다.”(김원일, 어둠의 축제) ‘끼우다’와 ‘끼이다’는 모두 ‘끼다’로 줄여 쓸 수 있다. 이때의 ‘끼다’는 ‘끼어(껴), 끼니, 낀’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형님이 나를 어떤 단위조합에라도 끼어 넣어 주십시오.”(이병주, 지리산) 이 문장에 쓰인 ‘끼어’는 ‘끼우어(끼워)’로 바꿔 쓸 수 있다. 반면에, “두령들도 변복한 뒤에 금구에서 일단 모이기로 약속한 후 군사들 틈에 끼어 뿔뿔이 흩어졌다.”(유현종, 들불) 이 문장에 쓰인 ‘끼어’는 ‘끼이어(끼여)’로 바꿔 쓸 수 있다. ‘끼다’에는 ‘끼우다’나 ‘끼이다’의 준말이 아닌 것도 있다. ‘팔짱을 끼고 걷다’ ‘학교 건물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다’ ‘구름이 낀 하늘’ ‘창문에 먼지가 잔뜩 끼어 있다’ 등과 같은 용례에서는 ‘끼다’를 ‘끼이다’나 ‘끼우다’로 바꿔 쓸 수 없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24 風文 R 1086
‘온라인’, ‘원룸’의 발음 우리말에는 표기대로 발음하기 곤란한 단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협력’을 표기대로 [협력]으로 발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받침 ‘ㅂ’ 뒤에 오는 ‘ㄹ’은 [ㄴ]으로 발음해 [협녁]으로 발음하는데, 여기서 또 ‘ㄴ’의 영향으로 그 앞의 받침 ‘ㅂ’이 ‘ㄴ’과 같은 비음 계열인 ‘ㅁ’으로 바뀌어 결국 [혐녁]으로 발음하게 된다. ‘막론’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막론→막논→망논’의 과정을 거쳐 [망논]으로 발음한다. ‘신라’ 역시 이를 표기대로 [신라]로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받침 ‘ㄴ’을 뒤에 오는 ‘ㄹ’과 동화시켜 [실라]로 발음한다. ‘인류’를 [일류]로, ‘삼천리’를 [삼철리]로 발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온라인’과 ‘원룸’도 소리를 동화시켜 [올라인], [월룸]으로 발음하는 것일까? 아니면 ‘on’과 ‘one’의 뜻을 살려 [온나인], [원눔]으로 발음하는 것일까? ‘온라인(on-line)’, ‘원룸(one-room)’은 모두 외래어이기 때문에 표준 발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소리의 동화는 우리 고유의 말에만 적용되는 발음 원칙이기 때문에 이를 ‘온라인’과 ‘원룸’처럼 영어에서 온 말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대신 ‘on’과 ‘one’의 뜻을 살려 [온나인], [원눔]으로 발음하는 것이 단어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9ㆍ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 중에서 ‘빈 라덴’을 [빌라덴]으로 발음하지 않고 [빈나덴]으로 발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23 風文 R 1176
먼지떨이와 신발털이 밖에서 들어오면 신발에 흙이 묻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신발의 흙을 ‘떨고’ 들어가야 할까, ‘털고’ 들어가야 할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떨다’가 맞다. 그런데 우리말은 참 미묘해서, 흙을 떼어 내려면 신발을 치거나 흔들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신발을 털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까 신발을 ‘털어서’ 흙을 ‘떠는’ 것이다. 이와 같이 ‘떨다’와 ‘털다’는 무엇이 대상인지에 따라서 구별해서 써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떨다’는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내는 것이고, ‘털다’는 붙어 있는 것이 떨어지게 흔들거나 치는 행위이다. 즉 옷에 묻은 먼지, 눈, 재 따위를 ‘떨다’라고 하고, 먼지, 눈, 재 따위가 묻은 옷을 ‘털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먼지떨이’와 ‘신발털이’는 구별된다. ‘먼지떨이’는 벽이나 창틀의 먼지를 ‘떨어’내는 물건이고, 신발털이는 신발을 ‘털어’ 주는 물건이다. 흔히 ‘재떨이’인지, ‘재털이’인지 혼란스러워 하지만, 이제 ‘재떨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떨다’ ‘털다’가 그리 엄격하게 구분되어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흔히 “머리의 눈 좀 털어라” “바지의 먼지 좀 털어라”처럼 ‘떨다’라고 할 것을 ‘털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서는 두 단어의 쓰임을 달리 설명하기도 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견해로는 ‘털다’는 흩어져 날리는 대상에 쓴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옷에 붙은 먼지, 눈, 재 따위는 ‘터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설명은 위 국어사전의 뜻풀이와는 꽤 다르다. 물론 ‘떨다’와 ‘털다’는 사전적 의미에 따라 정확히 구별해서 써야 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그러한 구별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화자들의 실제 쓰임에 따라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재검토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23 風文 R 1364
공부하다, 공부 하다, 공부를 하다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아이’에서 ‘공부하고’는 붙여 써야 한다. ‘어려운 공부 하느라 낑낑대는 아이’에서 ‘공부 하느라’는 띄어 써야 한다. 같은 ‘공부-하다’인데 왜 띄어쓰기가 달라질까. ‘힘들게’는 부사어이고 ‘어려운’은 관형어이기 때문이다. 부사어는 용언(동사, 형용사)을 수식하는 문장성분이다. 따라서 ‘신나게 놀다, 밖으로 나가다, 매우 많다’에서 보듯이 부사어 뒤에는 용언이 나와야 한다. 반면에 관형어는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을 수식하는 문장성분이다. 따라서 ‘신나는 놀이, 우리의 소원, 새 책’에서 보듯이 관형어 뒤에는 체언이 나와야 한다. 이제 ‘어려운 공부 하다’와 같이 띄어 써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공부’는 체언이지만 ‘공부하다’는 용언이다. 따라서 ‘공부하다’를 붙여 쓰면 관형어 뒤에는 체언이 나와야 한다는 문법 규칙에 어긋나게 된다. ‘공부 하다’와 같이 띄어 씀으로써 ‘어려운’이 ‘공부’만 수식할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럼, ‘어려운’이 관형어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용언의 어간에 붙어 문장에서 관형어 구실을 하게 만드는 어미를 ‘관형사형어미’라고 한다. ‘어려운’은 ‘어렵-+-은’으로 분석되는데, 여기서 ‘-은’이 바로 관형사형어미다. 관형어로 만들어 주는 관형사형어미는 시점에 따라서 ‘-ㄴ/-은’(지나간 날/갓잡은 생선), ‘-던’(즐거웠던 시절), ‘-는’(도망치는 사람), ‘-ㄹ/-을’(다가올 통일/먹을 음식) 등이 있다. 사실 ‘공부를 하다’와 같이 쓰면 앞에 무슨 말이 오든 띄어쓰기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힘들게 공부를 하다’에서 ‘힘들게’는 용언 ‘하다’를 수식하고, ‘어려운 공부를 하다’에서 ‘어려운’은 체언 ‘공부’를 수식하기 때문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22 風文 R 1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