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다’와 ‘가엽다’ ‘마음이 아플 만큼 딱하고 불쌍하다’를 뜻하는 말은 ‘가엾다’일까, ‘가엽다’일까? 둘 다 맞다. 즉, ‘가엾은 아이’도 가능하고 ‘가여운 아이’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가엾다’는 ‘가엾고, 가엾은, 가엾어’ 등으로 활용하고, ‘가엽다’는 비읍불규칙용언이므로 ‘가엽고, 가여운, 가여워’ 등으로 활용한다. ‘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거나 인사를 드리다’를 뜻하는 ‘여쭈다’와 ‘여쭙다’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여쭈다’는 ‘여쭈고, 여쭌, 여쭈어(여쭤)’로, ‘여쭙다’는 ‘여쭙고, 여쭈운, 여쭈워’로 활용한다. “선생님께 여쭈어/여쭈워 보아라.”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라는 뜻의 ‘뵈다’와 ‘뵙다’도 둘 다 표준어이다. ‘찾아뵈다’와 ‘찾아뵙다’도 그러하다. 단, ‘뵙다’가 ‘뵈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뵈다’는 ‘뵈고, 뵌, 뵈어(봬)’로 활용하고, ‘뵙다’는 ‘뵙고, 뵙는’으로 활용한다. ‘뵙다’는 ‘-어’나 ‘-은’처럼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들과는 함께 쓰이지 못한다. “할아버지를 봬야 해요.” “할아버지를 뵙고 가겠다.” ‘잡수다’와 ‘잡숫다’는 둘 다 ‘먹다’의 높임말이다. ‘잡숫다’는 ‘잡수시다’의 준말인데, ‘잡수다’보다 조금 더 높이는 뜻이 있다. ‘잡수다’는 ‘잡수고, 잡순, 잡수어(잡숴)’로 활용하고, ‘잡숫다’는 ‘잡숫고, 잡숫는’으로 활용한다. ‘뵙다’와 마찬가지로 ‘잡숫다’도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와는 함께 쓰이지 못한다. “진지 잡수고/잡숫고 가세요.” 참고로 ‘마음이 안타깝거나 쓰라리다’를 뜻하는 말로 곧잘 쓰이는 ‘애닯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애달프다’만 표준어이므로 ‘애달프고, 애달픈, 애달파’ 등과 같은 활용형만 가능하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1 風文 R 1250
밤공기가 차네요 한국어는 표기와 발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원칙과 발음하는 원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말이고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이다. 말의 사용은 입과 귀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지각 행위인 반면 글의 사용은 손과 눈의 사용으로 이루어지는 지각행위이기 때문에 감각기관이 서로 다르게 작동된다. 예를 들어 ‘눈빛으로 말한다.’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이라는 어문 규정을 지각하고 눈과 손의 감각기관을 작동시켜 글을 쓰는데 비해 이것을 [눈삐츠로말:한다]라고 읽고 말하기 위해서는 ‘표준발음법’이라는 어문 규정을 지각하고 입과 귀의 감각기관을 작동시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어의 표기와 발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데도 표기대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밤공기가 차다’라는 문장을 발음할 때 ‘밤공기’를 표기대로 [밤공기]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밤꽁기]라고 된소리 발음을 해야 한다. ‘인기척’과 ‘안간힘’ 역시 표기대로 [인기척], [안간힘]으로 발음하면 안 되고 [인끼척], [안깐힘]으로 발음해야 한다. 또한 ‘눈시울’, ‘몰상식’, ‘종소리’도 [눈씨울], [몰쌍식], [종쏘리]로 발음을 해야 한다. 이처럼 표기대로 발음하지 않고 된소리로 발음해야 하는 이유는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을 된소리로 발음한다는 표준발음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한국어는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발음을 해야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1 風文 R 1632
○○○님이 좋아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리소통망(SNS)을 통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 대화의 한 방식으로 누군가가 글을 올리면 읽는 이들은 호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누른다. 그런데 ‘좋아요’를 누르면, 그 다음부터 해당 글에 “○○○님이 좋아했습니다.”라는 글귀가 달린다. ‘좋아했습니다’는 과거에 좋아했다는 뜻일 뿐이니, 이 표현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누군가 ‘좋아요’라고 했다면 지금도 좋아하는 것이고, 그러니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일 아닌가. 이를테면 누군가로부터 “널 좋아해”라는 고백을 들었다고 하자. 그런 상대방의 마음을 두고 “그가 나를 좋아한다”라고 하지, “그가 나를 좋아했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고백한 일 자체를 가리켜서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가 나를 좋아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좋아요’를 누른 일은 “널 좋아해”라고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가 나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듯이 “○○○님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라고 해야 하며, 아니면 “○○○님이 ‘좋아요’라고 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님이 좋아했습니다”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이 이상한 표현은 영어의 ‘liked’를 직역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긴다면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정도일 텐데, 어법을 무시하고 ‘좋아했습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누리소통망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하루 빨리 운영자가 “○○○님이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님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또는 “○○○님이 이 글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처럼 우리말 어법에 맞는 표현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10 風文 R 1122
‘지그시’와 ‘지긋이’ ‘지그시’와 ‘지긋이’는 소리가 같아서 적을 때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대로 적는 ‘지그시’는 ‘슬며시 힘을 주는 모양’ 또는 ‘느낌이나 감정을 억누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지그시 눈을 감은 환수 씨의 기억 속에 오랜 옛일이 떠올랐다.”(최일남, 거룩한 응달) ‘지그시’ 대신 ‘자그시’나 ‘재그시’를 쓰기도 한다. 이 말들은 ‘지그시’보다는 정도나 세기가 덜함을 나타낸다. “봉실이는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자그시 누르며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았다.”(정기수, 아버지의 고뇌) ‘지긋이’는 ‘지긋하다’의 ‘지긋’과 접미사 ‘-이’가 결합한 말이어서 소리대로 적지 않고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다. ‘지긋이’는 ‘나이가 비교적 많아 듬직하게’ 또는 ‘느긋하고 참을성 있게’라는 뜻을 나타낸다. “엉뚱한 생각 말고, 이 사설로 한가락 읊을 테니 지긋이 앉아 듣게.”(송기숙, 녹두장군) ‘반드시’와 ‘반듯이’도 함께 알아 두면 좋다. “다음엔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와 같이 ‘틀림없이, 꼭’의 뜻으로 쓸 때는 ‘반드시’를 쓰고, “벽에 기대지 말고 반듯이 서 있어라.”와 같이 ‘기울거나 굽지 않고 똑바르게’, 즉 ‘반듯하게’의 뜻으로 쓸 때는 ‘반듯이’를 쓴다. ‘반듯이’보다 큰 느낌으로 말하고 싶을 때는 ‘번듯이’를 쓰면 된다. “이쁜이는 … 풀밭에 번듯이 드러누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김유정, 봄봄) ‘번듯이’는 ‘버젓하고 당당하게’라는 뜻으로도 쓸 수 있다. “어머니께 옷 한 벌 번듯이 해 드리지 못했다.” ‘어연번듯이’라는 말도 있다. ‘세상에 드러내 보이기에 아주 떳떳하고 번듯하게’라는 뜻이다. “늙으신 아버지와 이 어미를 보더라도 어연번듯이 그 사람과 부부가 되어 다오.”(현진건, 무영탑)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0 風文 R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