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게? 수케? 수게! 봄에는 암게의 살이 차고 가을에는 수게의 살이 차서 봄은 암게가 제철이고 가을은 수게가 제철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 수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수게’를 적을 때 ‘숫게’ 혹은 ‘수케’ 라고 적거나, 발음할 때에도 [수께] 혹은 [수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수게’의 정확한 표기와 발음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게’의 정확한 표기는 ‘수게’이고 발음 역시 표기대로 [수게]로 발음해야 한다. ‘수게’를 ‘수케’ 혹은 ‘숫게’로 잘못 적는 이유는 개의 수컷을 ‘수캐’로 적고 염소의 수컷을 ‘숫염소’라고 적는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중세국어에서 ㅎ이 덧붙는 ‘ㅎ 곡용어’의 잔재로 ‘살’에 ‘ㅎ’이 덧붙어 ‘살코기’가 된 것처럼 ‘수(암)’ 역시 ‘ㅎ’이 덧붙어 ‘수(암)캐’가 되었다. 이처럼 접두사 ‘수(암)’에 ‘ㅎ’이 덧붙는 표기가 허용된 단어는 ‘수(암)캉아지’ ‘수(암)캐’ ‘수(암)컷’ ‘수(암)키와’ ‘수(암)탉’ ‘수(암)탕나귀’ ‘수(암)톨쩌귀’ ‘수(암)퇘지’ ‘수(암)평아리’ 등 18개 단어다. 나머지는 모두 ‘수(암)게’ ‘수(암)개미’ ‘수(암)거미’처럼 ‘ㅎ’이 첨가되지 않은 형태로 써야 한다. 또한 염소의 수컷을 ‘수염소’가 아닌 ‘숫염소’로 적는 이유는 언중들이 이를 [순념소]로 발음해 사이시옷과 비슷한 소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숫’을 접두사로 사용하는 단어는 ‘숫양’ ‘숫염소’ ‘숫쥐’ 등 3개 단어뿐이다. 나머지는 접두사 ‘수’를 써서 ‘수소’ ‘수게’ ‘수놈’ ‘수나비’처럼 적어야 하고 발음도 표기대로 발음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9 風文 R 1147
한글의 우수성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을 잘 가꾸고 다듬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가끔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500여 년 전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것은 한글, 곧 우리말을 적기 위한 문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사회적 산물인 언어를 하루아침에 발명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세종께서 한글을 직접 지으신 이유도 중국과는 다른 우리말을 한자로는 적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한글이 뛰어난 ‘문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언어’라고 하면 잘못이다. 그런데 한글의 어떤 점이 훌륭하다는 걸까. 어떤 이들은 ‘새 소리, 바람 소리’ 등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적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것은 한글뿐 아니라 로마자나 키릴문자 등 표음문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그 ‘과학성’과 ‘체계성’에 있다. 글자를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글은 과학적이다. ‘ㅁ’은 입술의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 ‘ㅅ’은 이빨 모양에서 본뜨고,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한글이 체계적이라는 것은 자모를 따로따로 만들지 않고 기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는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기본자인 ㄱ에 획을 더해 ㅋ을 만드는 식이다. 모음의 경우도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한 ‘ㆍ, ㅡ, ㅣ’를 기본 글자로 하고, 나머지는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하거나 조합해서 만들었다. 한글은 이처럼 과학적 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에 하루 한글날만이라도 우리글의 장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9.18 風文 R 1311
나중에 뵈요?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면대면 의사 소통방식이 줄어들고 휴대전화의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서로 의사를 교환한다. 즉 말보다 글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맞춤법에 맞게 얼마나 정확하게 글을 쓰느냐가 그 사람의 교양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0%가 넘는 대학생이 맞춤법을 자주 틀리는 이성 상대에 대해 ‘호감도가 떨어진다’고 답했다. 국어의 맞춤법은 가장 기본적인 소양인데, 이런 맞춤법을 자주 틀린다는 것은 상대에게 소양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는 조사 결과다. 일반적으로 흔히 틀리는 맞춤법 실수를 하나 꼽으라면 “이거 먹어도 돼요?”라고 적어야 할 것을 “이거 먹어도 되요?”라고 적는 것이다. 그럼 왜 ‘돼요’를 ‘되요’라고 잘못 적는 것일까. 동사 ‘되다’의 의문형은 ‘되다’의 어간인 ‘되’에 종결어미 ‘어’와 존대의 보조사 ‘요’를 함께 붙인 ‘되어요’가 맞고 이를 줄여 ‘돼요’라고 적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되요’라고 적는 것은 종결어미 ‘어’를 생략하고 존대의 보조사 ‘요’만 적은 것으로 문법적으로 맞지 않다. “나중에 뵈요”도 역시 틀린 표현이다. 동사 ‘뵈다’의 청유형은 ‘뵈다’의 어간인 ‘뵈’에 종결어미 ‘어’와 존대의 보조사 ‘요’를 함께 붙인 ‘뵈어요’가 맞고 이를 줄여 ‘봬요’라고 적어야 한다. “집에서 명절을 쇠요” “함께 바람을 쐬요”라는 문장도 “집에서 명절을 쇄요” “함께 바람을 쐐요”로 고쳐 적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7 風文 R 1321
연월일 적기 홍보의 시대이다 보니 길거리에 나서면 온갖 현수막들이 보인다. 손 씻기를 강조하는 공익 광고부터 가게 홍보 등 그 내용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특정한 행사 개최를 알리는 내용이 상당히 많은데, 그런 현수막의 경우 보통 아래에 개최 일시를 적어 놓는다. 그런데 이 경우 반복되는 문제가 있는데, 다음 예에서 그 문제점을 찾아보자. 때: 2016. 9. 23(금) 14:00 여기에는 세 가지 문장 부호가 있는데, 우선 쌍점(:)은 위 예의 ‘때:’와 같이 표제 다음에 해당 항목을 들거나 설명을 붙일 때, ‘14:00’처럼 시와 분을 구별할 때 쓸 수 있다. 다음으로 소괄호(( ))는 위 예의 ‘(금)’처럼 보충적인 설명을 덧붙일 때 쓸 수 있다. 그러니 이 두 문장 부호 사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침표(.)는 여러 가지 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아라비아 숫자만으로 연월일을 표시할 때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3ㆍ1운동이 일어난 때는 ‘1919. 3. 1.’과 같이 적는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날짜 다음에도 마침표를 꼭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마침표는 ‘년, 월, 일’이라는 말을 대신하는 것이므로, 만일 날짜 다음에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1919년 3월 1’과 같이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앞에서 낸 문제의 답은 분명하다. 날짜 ‘23’ 다음에 마침표를 빠뜨린 것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듯이 이와 같이 연월일을 표시할 때 날짜 다음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오히려 제대로 찍은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할 정도이다. 마침표, 작은 점 하나지만 이제부터라도 잊지 말고 꼭 찍자.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17 風文 R 1230
장염, 간염, 폐렴 장의 점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장염(腸炎)’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염’의 바른 발음은 [장:염]이 아닌 [장:념]이다. 표준발음법 제29항을 보면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앞 단어나 접두사의 끝이 자음이고 뒤 단어나 접미사의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인 경우에는, ‘ㄴ’ 음을 첨가하여 [니, 냐, 녀, 뇨, 뉴]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다. ‘장염’은 ‘장’과 ‘염’의 합성어이며 ‘장’의 끝이 자음이고 ‘염’의 첫음절이 ‘여’이기 때문에 ‘ㄴ’ 음을 첨가해 [장:념]이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그럼 ‘간염(肝炎)’의 경우에도 [간:념]이라고 발음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간염’은 ‘장염’과 동일한 음운 환경이지만 글자 그대로 [가:념]으로 발음한다. 이는 어떤 단어들은 'ㄴ'을 첨가해 발음하지만, 어떤 단어들은 표기대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즉 음의 첨가는 모든 환경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ㄴ'이 첨가된 경우에는 사전에 그 발음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백분율(百分率)’의 발음은 [백분뉼]이지만 ‘환율(換率)’의 발음은 [화:뉼]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럼 ‘폐렴(肺炎)’은 왜 ‘폐염’이 아닌 ‘폐렴’으로 표기하는 것일까? ‘炎’의 원래 음은 ‘염’이지만, ‘폐렴’에서는 ‘렴’으로 음이 달라져 쓰이게 됐고, 이런 쓰임이 인정돼 ‘폐렴’과 같이 적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달라진 음을 ‘속음(俗音)’, 원래 음을 ‘본음(本音)’이라고 하는데, 한자어를 ‘본음’이 아닌 ‘속음’으로 표기하는 예에는 유월(六月), 시월(十月), 초파일(初八日), 대로(大怒), 모과(木果), 의논(議論), 의령(宜寧), 허락(許諾) 등이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6 風文 R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