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이’와 ‘팥을’의 발음 인접한 두 소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닮아 그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밥물’이 [밤물]로, ‘신라’가 [실라]로, ‘종로’가 [종노]로 발음되는 것이 그 예이다. ‘입천장소리되기(구개음화)’도 이런 축에 끼는 음운현상이다. 맏이 → [마지] 굳이 → [구지] 갇히다 → [가치다] 밭이 → [바치]. 이 예들에서, 첫 음절의 받침으로 쓰인 ‘ㄷ’과 ‘ㅌ’은 잇몸소리(혀끝이 윗잇몸에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인데 이것이 입천장소리(혓바닥이 입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인 ‘ㅈ’이나 ‘ㅊ’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입천장소리되기(구개음화)’라고 한다. 물론 ‘ㄷ ㅌ’이 아무 때나 ‘ㅈ ㅊ’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ㄷ ㅌ’ 뒤에 ‘-이’ 또는 ‘-히’가 나올 때만 바뀔 수 있다. 모음 [ㅣ]가 입천장소리와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를 닮아서 입천장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이런 규칙을 잘 지켜서 발음한다. 그런데 때로 ‘입천장소리되기’를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쟁기로 밭을 갈다, 팥으로 죽을 쑤다, 솥에 밥을 안치다 이 예들에서 ‘밭을’ ‘팥으로’ ‘솥에’는 각각 [바틀] [파트로] [소테]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츨] [파츠로] [소체]로 소리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입천장소리되기’는 ‘ㄷ’이나 ‘ㅌ’이 모음 /ㅣ/를 만날 때에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른 모음을 만날 때에는 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 소리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이들을 [바슬] [파스로] [소세]와 같이 소리 내는 경우도 많다. ‘ㅌ’이 ‘ㅅ’으로 변한 셈인데, 이 또한 표준 발음이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8.28 風文 R 1322
간지 난다?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돼 독립을 이루었다. 민족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1987년 독립기념관을 개관했고 1995년에는 일제 지배를 상징하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35년 동안의 일제 지배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정작 우리의 얼을 담고 있는 말에서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에서 일본어 표현들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맨 겉에 입는 웃옷을 흔히 ‘마이’라고 표현하는데 ‘마이’는 ‘단추가 한 줄로 달린 겉옷’을 뜻하는 일본어 ‘가타마에(かたまえ, 片前)’에서 온 말이다. 또한 소매가 없는 윗옷인 민소매 옷을 ‘나시’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소매 없는 옷을 뜻하는 일본어 ‘소데나시(そでなし, 袖無し)’에서 온 말이다. 의상에 주로 사용하는 물방울무늬를 ‘땡땡이무늬’라고 하는데 여기서 ‘땡땡이’는 ‘몇 개의 점’을 뜻하는 ‘텐텐(てんてん, 点点)’에 ‘이’가 붙은 것이다. 또한 줄무늬 티셔츠를 ‘단가라 티’라고 하는데, ‘단가라’는 ‘계단 무늬’를 뜻하는 ‘段柄’의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어깨가 넓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가다가 좋다’라는 말에서 ‘어깨’를 뜻하는 일본어 ‘가타(かた, 肩)’가 사용되었고 ‘멋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간지 난다’라는 표현에서는 ‘느낌’을 뜻하는 일본어 ‘칸지(かんじ, 感じ)’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간지 난다’는 말의 어원을 알게 됐다면 앞으로 ‘멋있다’의 의미로 ‘간지 난다’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8.28 風文 R 1364
‘리우’ 올림픽? ‘히우’ 올림픽? 간혹 언론에서 이번 대회를 ‘리우’ 올림픽이 아니라 ‘히우’ 올림픽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히우(리우)’와 같이 병기하기도 한다. 둘 가운데 올바른 명칭은 ‘리우’이다. Rio de Janeiro의 외래어 표기는 ‘리우데자네이루’이고, ‘리우’는 그 준말이다. 그런데 왜 일부 언론은 ‘히우’로 적는 것일까? 포르투갈어의 ‘r’는 소리의 위치에 따라 ‘ㅎ’과 ‘ㄹ’로 구별하여 적는데, 어두에서는 ‘ㅎ’으로 적는다. 따라서 원칙에 따르면 Rio는 ‘히우’로 표기하는 것이 맞고, 그 정식 명칭은 ‘히우지자네이루’가 된다. 실제로 브라질의 또 다른 항구 도시 Rio Grande는 ‘히우그란지’로 적는다. 그런데도 문제의 도시 이름을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은 관용을 존중해서이다. 포르투갈어의 표기법은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어두의 ‘r’도 ‘ㄹ’로 적었다. 따라서 해당 도시도 ‘리오데자네이로’ ‘리우데자네이루’로 불렸는데, 이 익숙한 이름을 갑자기 ‘히우지자네이루’로 바꾸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관용에 따라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이다. 다만, 관용에 따른다면 세대에 따라서는 영어식의 ‘리오데자네이로’가 더 친숙할지 모른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이 이름이 쓰였다. 이를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은 1986년 교과서 등 편수 자료를 비롯한 여러 공식 자료에서 ‘리우데자네이루’가 주로 쓰이는 데 따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잡한 사연을 지닌 이름이지만, 한번 정한 대로 죽 이어서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리우’ 올림픽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8.26 風文 R 1235
연음법칙과 받침의 발음 ‘밤이’ ‘밥을’은 각각 [바미] [바블]로 발음된다. ‘연음법칙’ 때문이다. 연음법칙이란 앞 음절의 받침이 뒤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되는 현상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가 연결될 때는 연음법칙이 적용된다. ‘무릎이 아프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 ‘꽃이 예쁘다’ ‘팥으로 죽을 쑤다’. 이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첫 어절들을 [무르비] [부어게서] [꼬시] [파스로]로 읽었다면 모두 틀리게 읽은 것이다. 앞 음절의 받침이 나타내는 소리를 살려서 [무르피] [부어케서] [꼬치] [파트로]로 읽어야 한다. ‘무릅, 부억, 꼿, 팟’으로 적지 않고 ‘무릎, 부엌, 꽃, 팥’으로 적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값이 매우 싸다’ ‘여덟에 둘을 더하면 열이 된다’ ‘닭이 모이를 쪼고 있다’ ‘품삯이 너무 적다’. 이들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이번에도 첫 어절들을 [가비] [여더레] [다기] [품싸기]로 읽었다면 잘못 읽은 것이다. [갑씨(←갑시)] [여덜베] [달기] [품싹씨(←품삭시)]와 같이 겹받침 중에서 뒤에 나오는 받침을 뒤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디귿, 지읒, 치읓, 키읔, 피읖, 티읕, 히흫’ 등 일부 자음 글자의 이름에서는 예외적으로 연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읒이’는 연음법칙에 따라 [지으지]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표준 발음은 [지으시]이다. ‘키으키’도 [키으키]가 아닌 [키으기]가 표준 발음이다. ‘디귿을’은 [디그슬], ‘치읓에’는 [치으세], ‘티읕이’는 [티으시], ‘피읖에’는 [피으베], ‘히읗이’는 [히으시]로 발음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발음을 관용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8.26 風文 R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