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길이 미국의 비타민 제품의 광고 카피에 “Just eat it(그냥 드세요).”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eat’은 [i:t]으로 길게 발음해야 하고 ‘it’은 [it]으로 짧게 발음해야 한다. 또한 좌석을 뜻하는 ‘seat’은 [si:t]로 길게 발음하지만 ‘앉다’를 뜻하는 ‘sit’은 [sit]로 짧게 발음한다. 이처럼 영어에는 단어를 발음할 때 소리의 길이를 짧거나 길게, 서로 달리 발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말에도 같은 형태의 단어지만 소리의 길이를 달리 발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눈’을 짧게 발음하면 ‘인체의 시각 기관’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가 된다. ‘밤’을 짧게 발음하면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 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밤나무의 열매’가 된다. ‘말’을 짧게 발음하면 ‘말과의 포유류’지만 길게 발음하면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가 된다. ‘광주’를 짧게 발음하면 ‘광주(光州)광역시’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경기도에 있는 광주(廣州)시’가 된다. ‘영동’을 짧게 발음하면 ‘강원도에서 대관령 동쪽에 있는 지역[嶺東]’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충청북도 영동(永同)군’이 된다. ‘여권’을 짧게 발음하면 ‘여성의 권리[女權]’나 ‘패스포트[旅券]’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여당과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 안에 드는 사람이나 단체[與圈]’가 된다. ‘경사’를 짧게 발음하면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나 정도[傾斜]’지만 길게 발음하면 ‘축하할 만한 기쁜 일[慶事]’이 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31 風文 R 1323
고양이 발톱을 깎이다 얼마 전 한 독자 분의 문의가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부의 대화에서 ‘고양이 발톱을 깎이다’가 올바른 표현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 산책하러 갈까요? 아내: 네, 고양이 발톱 좀 깎이고요. 이 경우 일반적인 표현은 ‘고양이 발톱을 깎다/깎아 주다’이다. 그런데 요즘 위 대화처럼 ‘깎이다’라는 표현이 새로 쓰이고 있다. 독자 분의 질문은 이것이 ‘맞는’ 표현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우선 표준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국어사전에 ‘깎이다’가 올라 있지만, 이는 “엄마가 딸에게 고양이 발톱을 깎였다”처럼 누군가에게 그 일을 시키는 경우에만 쓰는 말이다. 자신이 직접 고양이 발톱을 깎아 주는 경우 ‘깎이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다만 이 ‘깎이다’가 어법적으로 엉뚱한 말은 아니다. 우리말에는 유사한 상황에 대해서 ‘(아이의) 머리를 감기다, 발을 씻기다’와 같은 표현이 흔히 존재하고, ‘깎이다’는 이러한 예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감기다, 씻기다’처럼 ‘깎이다’도 얼마든지 가능한 말이다. 물론 ‘감기다, 씻기다’의 경우 ‘머리를 감다/감아 주다, 발을 씻다/씻어 주다’라고 할 수 없는 반면, ‘깎이다’의 경우 ‘발톱을 깎다/깎아 주다’라고 할 수 있는 차이점은 있다. 그러나 ‘깎다/깎아 주다’가 있다고 해서, ‘깎이다’라는 새로운 표현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법칙은 없다. 더욱이 ‘깎이다’는 ‘깎다/깎아 주다’와 달리 고양이, 아이처럼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부족한 대상에만 쓰이는 고유한 용법이 있기도 하다. ‘깎이다’는 아직 생소한 말이고, 표준어도 아니다. 이 말이 앞으로 널리 쓰이게 될지, 그래서 표준어가 될 수도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31 風文 R 1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