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점과 마침표 지난 2014년에 문장부호 규정이 개정되면서 몇몇 문장부호들의 이름에 변화가 생겼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와 ‘,’의 이름이다. ‘.’는 가장 자주 쓰이는 문장부호지만 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이것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개정 전까지는 ‘.’를 ‘마침표’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었다. ‘온점’으로만 불러야 했다. 본래 마침표는 ‘.’뿐만 아니라 ‘?, !’까지 아우르는 말이었다. 모두 문장 끝에 쓰여 문장이 끝났음을 나타낸다. ‘온점, 물음표, 느낌표’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마침표’ 또는 ‘종지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 언어 현실에서는 마침표라고 하면 곧 ‘.’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오랫동안 규정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있는 채로 시간이 흘러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2014년에 규정을 개정하면서 언어 현실을 수용하여 ‘마침표’는 ‘.’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변경하였다. ‘.’는 ‘마침표’와 ‘온점’ 두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대신 ‘?, !, .’의 통칭으로서 마침표는 없어지게 되었다. ‘,’도 개정 이전까지는 교과서에서 ‘반점’으로만 가르쳐 왔다. ‘마침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쉼표’도 본래 ‘반점(,), 가운뎃점(ㆍ), 쌍점(:), 빗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다. 모두 문장 중간에 쓰여 앞뒤를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개정된 규정에서는 ‘쉼표’를 ‘,’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변경하였다. ‘,’는 ‘쉼표’ 또는 ‘반점’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통칭으로서 쉼표는 없어지게 되었다. ‘< >’와 ‘《 》’도 새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둘을 아울러서는 ‘화살괄호’, 따로 부를 때는 전자는 ‘홑화살괄호’, 후자는 ‘겹화살괄호’라 하면 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5 風文 R 1259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 왔다. ‘추석(秋夕)’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가을밤인 추석에 1년 중 가장 밝은 달빛을 볼 수 있어 상고시대부터 농경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부르는데, 가을의 계절인 음력 7, 8, 9월 중 음력 8월이 가을의 중간이고 또한 15일이 8월의 중간이기 때문에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명절’이란 뜻에서 추석을 중추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추석을 우리 고유의 표현으로는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그럼 ‘한가위’의 어원은 무엇일까. 먼저 ‘가위’는 ‘음력 8월 또는 가을의 한가운데’를 의미하며 ‘한’은 어떤 낱말 앞에 붙어서 ‘크다’는 뜻을 더해 주는 우리 고유의 말이다. 그래서 ‘한가위’는 ‘음력 8월 또는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날’이라고 의미를 풀이할 수 있다. ‘한’이 붙어서 ‘크다’의 의미가 더해진 단어로는 ‘한가위’ 외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인 ‘한길’, ‘우리의 큰 글’이란 뜻의 ‘한글’ 등이 있다. ‘한가위’란 명절에 이처럼 ‘크다’는 뜻의 접두사를 붙이는 것은 추석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인 까닭도 있겠고 또한 이 시기가 오곡백과가 탐스럽게 익는 계절이라 일 년 중 가장 먹을 것이 풍족한 계절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석 명절에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을 서로에게 주고받는다. 올해 추석을 맞이하여 독자들의 가정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와 같은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가득하기를 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5 風文 R 1160
‘맥베스’와 ‘맥아더’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사드’ 배치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사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필자는 당연히 ‘S’로 시작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원어는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였다. 영어 ‘th’ 발음은 우리말에 없는 것이어서, 때로는 ‘ㅅ, ㅆ’, 때로는 ‘ㄷ, ㄸ’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ㅅ’으로 표기하도록 정해져 있다. 이 표기 규정에 따라 종전의 익숙한 표기가 바뀐 것이 일부 있는데, 세대에 따라서는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 왕’이다. 이는 그 동안 ‘아더 왕’으로 쓰던 것으로서, 지금도 ‘아더 왕의 전설’, ‘킹 아더’와 같은 영화 제목이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서 왕’의 표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셰익스피어 희곡 작품의 주인공 ‘오셀로’로 마찬가지다. 필자에게도 익숙한 이름은 ‘오델로’이지만, 지금은 ‘오셀로’라는 새 이름에 적응해야 한다. ‘맥베드’ 역시 잘못된 표기이며 ‘맥베스’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맥아더’는 어떨까. 한국전쟁 참전 장군인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 정도로 익숙한 인물이다. 표기 원칙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머카서’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장군의 이름만큼은 관용에 따라 ‘맥아더’로 쓰도록 하고 있다. ‘사드’ 소식을 자주 접하다가 그 발음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분단국으로서의 아픔이 느껴지는 요즘, ‘맥아더’ 장군을 떠올리면서 ‘사드’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14 風文 R 1294
‘아니오’와 ‘아니요’ ‘가다, 보니, 많아, 좋은’에서 ‘-다, -니, -아, -은’ 따위를 ‘어미’라고 한다. 어미는 어말어미와 선어말어미로 나뉘고, 어말어미는 다시 종결어미와 연결어미로 나뉜다. 종결어미는 문장의 끝에 쓰여 그 문장을 마무리하는 어미이고, 연결어미는 앞말과 뒷말을 이어주는 어미이다. ‘비가 오면 좋겠다.’에서 ‘-면’은 ‘비가 오다’와 ‘좋겠다’를 이어주는 연결어미이고, ‘-다’는 그것으로써 문장이 끝나므로 종결어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그것은 정답이 아니오/아니요.’에서 맞는 표기는 뭘까? 답은 ‘아니오’이다. 문장을 끝맺는 자리이므로 종결어미인 ‘-오’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요’는 연결어미이다. ‘어서 오십시오.’가 맞고 ‘어서 오십시요.’가 틀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식당 같은 곳에서 듣곤 하는 ‘어서 옵쇼.’는 ‘어서 오십시오.’가 줄어든 말이다. ‘우리는 형제가 아니오/아니요 친구랍니다.’에서는 ‘아니요’가 맞다. 이때는 뒤에 ‘친구랍니다’가 이어지므로 연결어미인 ‘-요’를 써야 한다. ‘-요’는 ‘이다’나 ‘아니다’하고만 결합하는 연결어미로서 뜻은 ‘-고’와 비슷하다. “여관에 행장을 풀고 밖에 나서니 앞도 산이요, 뒤도 산이요, 산허리에는 구름과 안개뿐이요, 들리는 것은 물소리뿐이다.”‘정비석,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네가 유리를 깨뜨렸니? 아니오/아니요, 형이 깨뜨렸어요.”에서도 ‘아니요’가 맞다. 단, 이때의 ‘요’는 연결어미가 아니다. 여기서 쓰인 ‘아니요’는 윗사람이 묻는 말에 부정하여 대답할 때 쓰는 감탄사로서, ‘아니’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조사 ‘요’가 결합한 것이다. ‘아니, 형이 깨뜨렸어.’와 비교해 보면, ‘요’를 붙임으로써 높임의 뜻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4 風文 R 1307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침에 직장에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아침’은 영어의 아침 인사말인 ‘Good Morning’을 우리말로 그대로 직역한 것으로, 우리식 인사말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안녕’이라고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굳이 영어식 표현을 번역해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말은 어떨까.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문장의 주어를 설정해 보면 ‘(당신이) 좋은 하루 되세요’가 되는데, 이는 ‘사람이 좋은 하루가 되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은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 문장을 주어와 서술어의 의미 호응이 적절하도록 고쳐 보면 ‘(당신이)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가 되는데, 그래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우리 어법에 맞는 자연스러운 인사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즐거운 주말 되세요’라는 인사말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라고 고쳐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말의 동사와 형용사는 모두 문장 내에서 서술어의 기능을 하는 용언(用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사는 ‘동작’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낸다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형용사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령형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건강하다’라는 형용사를 가지고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라고 명령형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우리 어법에 맞지 않다. 이 경우에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혹은 ‘건강을 빕니다’ ‘행복을 빕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우리말의 어법에 맞는 인사말이 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2 風文 R 1436
야경이 맛있다 김해국제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오다 보면 “야경이 맛있다”라는 광고 문구가 손님을 맞는다. 지역 도시 홍보 문안인데, 그 특이한 단어조합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또는 한국어를 착실히 배운 외국인이라면 “어, ‘멋있다’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국어사전을 보면 ‘맛있다’에는 ‘음식의 맛이 좋다’는 한 가지 뜻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난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인생, 맛있는 여행, 맛있는 대한민국, 맛있는 음악회’ 등은 인생이나 음악회가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은유적인 표현들이다. 다만 이런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제목들은 맛 기행처럼 먹는 것과 관련된 내용들이어서 쉽게 그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는 예들이다. 그러나 ‘야경이 맛있다’는 음식과 무관한 것이어서 더 확장된 용법을 보여 준다. ‘맛있다’가 ‘다채롭다, 즐겁다’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러한 쓰임은 ‘맛있는 공부’ ‘맛있는 논술’ ‘맛있는 중국어’ 등과 같은 예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야경이 맛있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참신한 표현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이는 성공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야경’과 ‘맛있다’의 조합이 아무래도 어색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사전적으로 ‘맛있다’는 음식과 관련된 뜻만 지니고, 그래서 이 문구는 오류로 여겨질 가능성조차 크다. 그 표현의 창의성은 공감되지만, 적어도 공공의 목적이라면 보다 정제되고 명확한 표현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12 風文 R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