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요즘 ‘브렉시트(Brexit)’라는 말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Britain’과 ‘Exit’의 일부를 따서 만든 것으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국내에서는 서울의 지하철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와 관련하여 ‘메피아’라는 말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메트로’와 ‘마피아’의 일부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이 ‘브렉시트’ ‘메피아’와 같이 단어의 일부를 따서 만든 말을 혼성어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스모그(smoke+fog) 레포츠(leisure+sports) 브런치(breakfast+lunch)’ 등처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말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단어는 ‘메피아’ 외에도 ‘모티켓(모바일+에티켓) 줌마렐라(아줌마+신데렐라) 맛캉스(맛+바캉스)’ 등처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또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주로 외래어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반쪽이라도 외래어인 경우가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예로는 ‘라볶이, 차계부, 쌈추’ 등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우리말에서 단어의 일부를 따서 새말을 만드는 주된 방식은 ‘노조(노동조합), 몰카(몰래 카메라)’ 등처럼 첫 음절을 따서 만드는 것이다. 서구어에서 ‘EU(European Union)’처럼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드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는 혼성어와 구별하여 두자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혼성어는 우리말의 주력적인 조어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외래어를 중심으로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 가고 있는데, 이러한 조어법이 얼마나 보편화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언젠가 ‘라이거’를 ‘사랑이(사자+호랑이)’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1032
선생님이 너 오시래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높임말 때문에 한국어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높임법을 어려워하는 것은 외국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높임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시래.” 학창 시절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말인데, 흔하게 저지르는 높임법 실수 중 하나다. 동사나 형용사에 ‘-시’를 붙이는 것은 높임말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동생이 왔다.’는 문장의 주어를 어머니로 바꾸면 ‘어머니가 오셨다.’라고 ‘-시’를 넣어서 말해야 한다. 이때 ‘-시’는 서술어의 주체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선생님이 너 오시래.”가 어색한 이유는 ‘오는’ 동작의 주체, 즉 오는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높여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여기서 ‘-시’는 잘못 쓰였다. 그러면 불필요한 ‘-시’를 빼고 “선생님이 너 오래.”라고 말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선생님을 높이는 장치가 없어서 공손하지 못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오다’의 주체인 친구를 높일 필요는 없지만 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높여야 한다. 여기서 ‘오래’는 ‘오라고 해’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선생님을 높이려면 ‘하다’를 높여서 ‘선생님이 너 오라고 하셔’, 또는 줄여서 ‘오라셔’라고 해야 한다. 어떤 행사에서 사회자가 ‘호명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호명하다’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므로, 호명하는 사람은 사회자 자신인데, ‘-시’를 넣어서 존대를 하고 있다. ‘제가 호명하는 분은’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호명되시는 분은’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내가 아시는 분’이라는 표현도 많이들 쓰는데, 이 말도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높이고 있으므로 옳지 않다. ‘내가 아는 분’이라고 해야 맞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949
‘랍스터’와 ‘로브스터’ 영어나 프랑스어 등 외국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를 외래어(外來語)라고 하는데, 국어를 ‘한글맞춤법’에 맞게 표기해야 하는 것처럼 외래어를 표기할 때에도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표기해야 한다. 일례로 ‘바닷가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lobster’를 대중들은 ‘랍스터’라고 사용해왔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었고 ‘로브스터’가 바른 외래어 표현이었다. 외래어표기법의 영어 표기 세칙에 따르면 어말과 모든 자음 앞에 오는 유성 파열음([b], [d], [g])은 ‘으’를 붙여 적도록 되어 있는데, ‘lobster[l?bst?]’의 ‘b’가 유성 파열음이기 때문에 ‘으’를 붙여 적어 ‘로브스터’라고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팀 이름인 ‘시카고 커브스(Chicago Cubs)’에서 ‘새끼 곰들’을 뜻하는 ‘Cubs’의 ‘b’가 유성 파열음이기 때문에 ‘으’를 붙여 적어 ‘커브스’라고 적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만약 이 팀의 이름을 ‘시카고 컵스’로 적게 되면 팀의 상징물인 ‘새끼 곰(cub)’을 물을 마실 때 사용하는 ‘컵(cup)’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시카고 커브스’로 적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바닷가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lobster’도 ‘로브스터’로 적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다수 언중들은 ‘로브스터’ 대신에 더 익숙한 말인 ‘랍스터’를 사용해왔다. 이는 ‘lobster’의 영국식 영어 발음인 ‘로브스터’보다 미국식 영어 발음인 ‘랍스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어도 생명체와 같아서 표준어가 아니지만 ‘짜장면’처럼 대다수 언중들이 압도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결국 사전에 등재할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원은 올해 1분기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는 표제어를 일부 수정했는데, ‘랍스터’도 ‘로브스터’의 복수 표기로 인정했다. 즉 ‘바닷가재’를 뜻하는 외래어 표기로 ‘로브스터’와 ‘랍스터’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장면’과 ‘짜장면’처럼 ‘로브스터’와 ‘랍스터’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돼 이제는 둘 중에 어느 것을 사용해도 되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1046
‘다운로드’의 발음 우리말의 ‘ㄹ’은 꽤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소리이다. 이 소리는 그 앞에 ‘ㄹ’이 아닌 다른 자음이 오지 못한다. 그래서 ‘신라’는 앞의 ‘ㄴ’ 소리가 ‘ㄹ’로 바뀌어 [실라]로 발음된다. 앞의 자음을 바꿀 수 없으면 자기가 변해 버린다. 예를 들어 ‘종로’는 ‘ㅇ’을 바꾸는 대신 ‘ㄹ’ 자신이 ‘ㄴ’으로 바뀌어 [종노]로 발음된다. 그나마 ‘ㄹ’ 뒤에는 ‘불고기, 놀다, 꿀밤’처럼 다른 자음이 자유롭게 올 수 있는데, ‘ㄴ’ 만큼은 ‘ㄹ’ 뒤에도 올 수 없다. 즉 ‘ㄹ’과 ‘ㄴ’은 특히 어울리지 못하는 짝이다. 그래서 ‘신라, 천리, 난로’ 등에서 [ㄴㄹ]은 [ㄹㄹ] 소리로 바뀌고, ‘칼날, 달나라’ 등에서 [ㄹㄴ]도 [ㄹㄹ]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말의 발음 규칙이 외래어에서 흔들리고 있다. 예들 들어 ‘다운로드’는 우리말 발음 규칙에 따르면 [다울로드]이거나 [다운노드]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운로드]로 발음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ㄴㄹ] 발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도 과거에는 [올라인] 아니면 [온나인]이었으나, 지금은 [온라인]의 발음이 매우 많아졌다. 연예인 ‘헨리’도 방송에서 흔히 [헨리]로 발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는 [ㄹㄴ] 발음도 늘어나 ‘엘니뇨’도 [엘리뇨]가 아닌 [엘니뇨]로 발음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이는 영어의 영향이다. 영어 원음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 복잡해져 버린 이들 발음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는데, 아직 외래어의 표준 발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서둘러서 [다울로드]인지, [다운노드]인지, 아니면 [다운로드]인지 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68
장님 코끼리 만지듯 대신 ‘주먹구구식’으로 최근 어느 미용사가 뇌병변 장애를 앓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요금을 내게 한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 대우로 상처를 준 데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꼭 그런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표현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뜻이 담긴 말들이 있다. 이런 말을 쓰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요새는 ‘병신’이나 ‘불구자’ ‘절름발이’ 같이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정착된 듯하다. 굳이 장애인을 가리켜야 할 때에도 ‘장님’이나 ‘벙어리’ 대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법정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비유적 표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데서도 ‘벙어리 냉가슴’이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니 하는 표현들을 흔히 쓴다. 어딘가 구색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나타낼 때에는 ‘절름발이 위원회’ 같은 비유를 곧잘 한다. 그러나 이런 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쁜 의도는 전혀 없으며 예전부터 사용하던 속담이나 관용 표현을 쓴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표현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피하는 것이 옳다. 굳이 장애에 빗댄 표현을 쓰려고 하지 말고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든가 ‘주먹구구식’ 등 다른 표현을 찾아보려 애쓸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들을 계속 사용하기보다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표현들을 궁리해 봐야 하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39
단오(端午)의 유래 올해 6월 9일은 단오떡을 해먹고 부녀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널뛰기를 하며 남자는 씨름을 하는 명절인 단오이다. 단오(端午)는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사자성어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지은 이로 알려진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나라가 망하자 이를 한탄하며 자결한 것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되었는데, 매년 음력 5월 5일 초나라 지역이었던 중국 남동부에서 굴원을 기리며 경주를 하고 만두 등의 음식을 해먹는 행사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단오가 되었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처음’, ‘시초’의 의미이고 오(午)는 오(五), 곧 ‘다섯’의 의미이기 때문에 단오는 ‘초닷새’로 음력 5월 5일을 뜻하는 말이다. 음양 사상에서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고 해서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는데, 단오는 양의 수인 5가 겹치는 날로서, 대표적인 길일(吉日)로 알려져 있다. 단오처럼 홀수의 월일이 겹치는 날은 예로부터 길일로 여겨져 왔는데, 음력 1월 1일인 설날,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 음력 7월 7일인 칠석(七夕),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이 모두 홀수의 월일이 겹쳐 예로부터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없는 길일이라고 여겨왔다.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에 제비가 강남으로 갔다가 삼짇날인 음력 3월 3일에 강남에서 돌아온다고 하며 칠석에는 은하의 서쪽에 있는 직녀와 동쪽에 있는 견우가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은하수에 놓은 다리인 오작교(烏鵲橋)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전해진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