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 ‘히우’ 올림픽? 간혹 언론에서 이번 대회를 ‘리우’ 올림픽이 아니라 ‘히우’ 올림픽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히우(리우)’와 같이 병기하기도 한다. 둘 가운데 올바른 명칭은 ‘리우’이다. Rio de Janeiro의 외래어 표기는 ‘리우데자네이루’이고, ‘리우’는 그 준말이다. 그런데 왜 일부 언론은 ‘히우’로 적는 것일까? 포르투갈어의 ‘r’는 소리의 위치에 따라 ‘ㅎ’과 ‘ㄹ’로 구별하여 적는데, 어두에서는 ‘ㅎ’으로 적는다. 따라서 원칙에 따르면 Rio는 ‘히우’로 표기하는 것이 맞고, 그 정식 명칭은 ‘히우지자네이루’가 된다. 실제로 브라질의 또 다른 항구 도시 Rio Grande는 ‘히우그란지’로 적는다. 그런데도 문제의 도시 이름을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은 관용을 존중해서이다. 포르투갈어의 표기법은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어두의 ‘r’도 ‘ㄹ’로 적었다. 따라서 해당 도시도 ‘리오데자네이로’ ‘리우데자네이루’로 불렸는데, 이 익숙한 이름을 갑자기 ‘히우지자네이루’로 바꾸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관용에 따라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이다. 다만, 관용에 따른다면 세대에 따라서는 영어식의 ‘리오데자네이로’가 더 친숙할지 모른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이 이름이 쓰였다. 이를 ‘리우데자네이루’로 정한 것은 1986년 교과서 등 편수 자료를 비롯한 여러 공식 자료에서 ‘리우데자네이루’가 주로 쓰이는 데 따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잡한 사연을 지닌 이름이지만, 한번 정한 대로 죽 이어서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리우’ 올림픽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8.26 風文 R 1238
연음법칙과 받침의 발음 ‘밤이’ ‘밥을’은 각각 [바미] [바블]로 발음된다. ‘연음법칙’ 때문이다. 연음법칙이란 앞 음절의 받침이 뒤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되는 현상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가 연결될 때는 연음법칙이 적용된다. ‘무릎이 아프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 ‘꽃이 예쁘다’ ‘팥으로 죽을 쑤다’. 이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첫 어절들을 [무르비] [부어게서] [꼬시] [파스로]로 읽었다면 모두 틀리게 읽은 것이다. 앞 음절의 받침이 나타내는 소리를 살려서 [무르피] [부어케서] [꼬치] [파트로]로 읽어야 한다. ‘무릅, 부억, 꼿, 팟’으로 적지 않고 ‘무릎, 부엌, 꽃, 팥’으로 적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값이 매우 싸다’ ‘여덟에 둘을 더하면 열이 된다’ ‘닭이 모이를 쪼고 있다’ ‘품삯이 너무 적다’. 이들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이번에도 첫 어절들을 [가비] [여더레] [다기] [품싸기]로 읽었다면 잘못 읽은 것이다. [갑씨(←갑시)] [여덜베] [달기] [품싹씨(←품삭시)]와 같이 겹받침 중에서 뒤에 나오는 받침을 뒤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디귿, 지읒, 치읓, 키읔, 피읖, 티읕, 히흫’ 등 일부 자음 글자의 이름에서는 예외적으로 연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읒이’는 연음법칙에 따라 [지으지]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표준 발음은 [지으시]이다. ‘키으키’도 [키으키]가 아닌 [키으기]가 표준 발음이다. ‘디귿을’은 [디그슬], ‘치읓에’는 [치으세], ‘티읕이’는 [티으시], ‘피읖에’는 [피으베], ‘히읗이’는 [히으시]로 발음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발음을 관용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8.26 風文 R 1366
소리의 길이 미국의 비타민 제품의 광고 카피에 “Just eat it(그냥 드세요).”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eat’은 [i:t]으로 길게 발음해야 하고 ‘it’은 [it]으로 짧게 발음해야 한다. 또한 좌석을 뜻하는 ‘seat’은 [si:t]로 길게 발음하지만 ‘앉다’를 뜻하는 ‘sit’은 [sit]로 짧게 발음한다. 이처럼 영어에는 단어를 발음할 때 소리의 길이를 짧거나 길게, 서로 달리 발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말에도 같은 형태의 단어지만 소리의 길이를 달리 발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눈’을 짧게 발음하면 ‘인체의 시각 기관’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가 된다. ‘밤’을 짧게 발음하면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 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밤나무의 열매’가 된다. ‘말’을 짧게 발음하면 ‘말과의 포유류’지만 길게 발음하면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가 된다. ‘광주’를 짧게 발음하면 ‘광주(光州)광역시’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경기도에 있는 광주(廣州)시’가 된다. ‘영동’을 짧게 발음하면 ‘강원도에서 대관령 동쪽에 있는 지역[嶺東]’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충청북도 영동(永同)군’이 된다. ‘여권’을 짧게 발음하면 ‘여성의 권리[女權]’나 ‘패스포트[旅券]’이지만 길게 발음하면 ‘여당과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 안에 드는 사람이나 단체[與圈]’가 된다. ‘경사’를 짧게 발음하면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나 정도[傾斜]’지만 길게 발음하면 ‘축하할 만한 기쁜 일[慶事]’이 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31 風文 R 1348
고양이 발톱을 깎이다 얼마 전 한 독자 분의 문의가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부의 대화에서 ‘고양이 발톱을 깎이다’가 올바른 표현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 산책하러 갈까요? 아내: 네, 고양이 발톱 좀 깎이고요. 이 경우 일반적인 표현은 ‘고양이 발톱을 깎다/깎아 주다’이다. 그런데 요즘 위 대화처럼 ‘깎이다’라는 표현이 새로 쓰이고 있다. 독자 분의 질문은 이것이 ‘맞는’ 표현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우선 표준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국어사전에 ‘깎이다’가 올라 있지만, 이는 “엄마가 딸에게 고양이 발톱을 깎였다”처럼 누군가에게 그 일을 시키는 경우에만 쓰는 말이다. 자신이 직접 고양이 발톱을 깎아 주는 경우 ‘깎이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다만 이 ‘깎이다’가 어법적으로 엉뚱한 말은 아니다. 우리말에는 유사한 상황에 대해서 ‘(아이의) 머리를 감기다, 발을 씻기다’와 같은 표현이 흔히 존재하고, ‘깎이다’는 이러한 예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감기다, 씻기다’처럼 ‘깎이다’도 얼마든지 가능한 말이다. 물론 ‘감기다, 씻기다’의 경우 ‘머리를 감다/감아 주다, 발을 씻다/씻어 주다’라고 할 수 없는 반면, ‘깎이다’의 경우 ‘발톱을 깎다/깎아 주다’라고 할 수 있는 차이점은 있다. 그러나 ‘깎다/깎아 주다’가 있다고 해서, ‘깎이다’라는 새로운 표현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법칙은 없다. 더욱이 ‘깎이다’는 ‘깎다/깎아 주다’와 달리 고양이, 아이처럼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부족한 대상에만 쓰이는 고유한 용법이 있기도 하다. ‘깎이다’는 아직 생소한 말이고, 표준어도 아니다. 이 말이 앞으로 널리 쓰이게 될지, 그래서 표준어가 될 수도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31 風文 R 1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