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최근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여부를 둘러싸고 한바탕 큰 논란이 있었다. 아무튼 민주주의를 기리는 행사이니 언제가 되더라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 이듬해인 1981년 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감옥에서 쓴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전남대 학생 김종률이 곡을 붙여 만든 것이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 원래 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지금 거의 공식적으로 쓰는 제목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다른 것이다. 표준적인 용법으로 ‘님’는 의존명사이다. 그러니 앞에 아무런 말도 없이 쓰이기는 곤란하다. 이와 달리 ‘님’이 변한 말 ‘임’은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자립적인 명사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뽕도 따고 임도 보고’라고 한다. 이를 ‘님도 보고’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어 사용 면에서 표준적인 표현으로 수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한동안 금지곡으로서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보니 제목뿐만 아니라 노랫말에도 약간씩 변형이 생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원곡에서는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이었던 것이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으로 바뀌었고,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는 명령형의 표현은 ‘말자’라는 다짐하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노래를 부르는 민중이 스스로의 감성과 의지에 맞게 다듬은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이 노래는 민중이 완성한 일종의 구전 가요인 셈인데, 많은 이들이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느껴가며 다듬은 이 노랫말에서 우리말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7 風文 R 921
직장 내 압존법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근로 시간은 하루 9시간 26분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고 한다. 그만큼 직장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자연히 직장 언어 예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며칠 전 한 직장인이 문의를 해 왔다. 평사원이 부장님께 과장님에 대한 말을 전할 때 ‘-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람마다 판단이 달라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은 두 사람 다 상급자이므로 예를 갖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과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는데, 부장님이 언짢아하셨다고 한다. 우리말의 높임법에 ‘압존법’이라는 것이 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 그 사람보다 낮은 윗사람은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아직 안 오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어법은 주로 가족이나 사제 간처럼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적용된다. 직장 같은 공적인 관계에서는 압존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는 부장님 앞이라고 해서 과장님을 존대하지 않는 것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부장님이나 사장님처럼 과장님의 상급자는 물론이고, 회사 외부 사람 앞에서도 자신보다 상급자인 과장님에 대해서는 높여 말하는 게 원칙이다. 사실상 오늘날에는 가정에서도 압존법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조부모 앞에서도 부모를 높여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일반적이다. 표준 언어예절에서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가정에서의 압존법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부모를 가족 외의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낮춰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것은 우리 전통 언어예절에 어긋난다. 따라서 선생님께 부모에 대해 말할 때에는 ‘저희 어머니(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처럼 높임 표현을 쓰도록 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7 風文 R 876
안절부절못하다, 엉터리없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긍정적인 의미의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잘못 생각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칠칠하다’이다. ‘칠칠하다’는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의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주로 ‘못하다’, ‘않다’와 같은 부정적인 용언과 함께 쓰이기 때문에 흔히 ‘칠칠하다’를 부정적인 의미로 잘못 이해해 “무슨 애가 그렇게 칠칠맞니?”처럼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칠칠치 못하니?’ 혹은 ‘칠칠맞지 못하니?’로 고쳐 말해야 한다. ‘주책’의 경우는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일정한 줏대가 없이 몹시 실없는 사람을 나타낼 때는 “그 사람 참 주책이야.”가 아니라 “그 사람 참 주책없어.”로 말해야 한다.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로 ‘안절부절못하다’가 있다. ‘안절부절’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인데, 이를 동사로 표현할 때에는 ‘안절부절하다’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하다’로 해야 한다. ‘안절부절’이 ‘초조하거나 불안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못하다’가 ‘안절부절’의 상태를 강조하는 말로 쓰여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는 뜻이 된 것이다. ‘엉터리없다’도 부정적인 의미의 말들이 합쳐져서 뜻을 강조하는 말이 된 경우이다. ‘엉터리’는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데, 여기에 ‘없다’라는 부정어가 그 뜻을 강조하는 말로 쓰여 ‘엉터리없다’는 ‘정도나 내용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 된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7 風文 R 971
‘매조지다’와 ‘매조지하다’ 스포츠 경기는 승부를 다투는 것이다 보니 승리를 결정짓는 선수의 활약은 늘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활약을 언급할 때 주로 등장하는 용어로 ‘매조지다’라는 말이 있다. “11회 말에는 박민석이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매조졌다.” “승부를 매조진 덩크슛” ‘매조지다’는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그리고 ‘매조지’는 그러한 일을 가리키는 명사이다. 이 ‘매조지다’는 ‘매다’와 ‘조지다’(일이나 말이 허술하게 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다)가 결합한 말로 보인다. ‘신→신다, 빗→빗다’처럼 명사 ‘매조지’에서 만들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맥이 끊겨 가던 말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반갑다. 그런데 언론 기사를 보면 ‘매조지하다’라는 말도 적잖이 쓰인다. “9회 말에는 김광수가 등판해 깔끔하게 경기를 매조지했다.” “기업 구조 조정, 내년 대선 전 매조지해야” 하지만 ‘매조지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아직 표준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매조지다’로 고쳐 쓰는 것이 옳다. 다만, ‘매조지(명사)+하다’는 어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처럼 어법에도 맞고 널리 쓰이는 말을 계속 비표준어로 두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비슷한 예로서 ‘삼가다’에 밀려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삼가하다’가 있다. 이 말도 매우 널리 쓰이는 데다가, 역사적으로 이와 같은 관계의 말로서 ‘고소다, 고소하다’, ‘비롯다, 비롯하다’가 병존하다가 오늘날 ‘고소하다, 비롯하다’만 살아남아 표준어가 된 예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매조지다, 삼가다’와 더불어 ‘매조지하다, 삼가하다’도 표준어로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6 風文 R 1334
슈림프 ‘새우’를 뜻하는 영어 단어 shrimp의 한글 표기는 ‘슈림프’일까, ‘쉬림프’일까? 한동안 이 문제가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지난달 치러진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가 출제됐기 때문이다. 정답은 ‘슈림프’인데 ‘쉬림프’로 답을 잘못 적은 일부 수험생들이 여기저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답을 못 맞힌 이유가 유명 식품회사의 ‘쉬림프 피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항변이다. 대개 방송이나 신문, 또는 기업의 제품 이름 같은 데 쓰인 표기는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회사의 ‘슈림프 버거’를 즐겨 먹었다는 수험생은 해당 회사 사장님께 감사 드린다는 익살스러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영어에서 주로 sh로 표기되는 이 소리를 한글로는 ‘슈’ 또는 ‘시’로 적는다. ‘슈’보다는 ‘쉬’가 원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제로 어떤 표기가 더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어에서는 자음 소리인데, 우리말로는 ‘쉬’로 적든 ‘슈’로 적든 모음이 합쳐져서 원어 발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어떻게든지 일관성 있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 ‘슈림프’처럼 자음 앞에 이 소리가 올 때는 ‘슈’로 적는다. ‘아인슈타인, 슈만, 타슈켄트’ 등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음 앞이 아닐 때는 ‘시’로 적는다. 이에 따라 ‘잉글리쉬’는 ‘잉글리시’로, ‘대쉬’는 ‘대시’로 적어야 한다. 모음 앞에 올 때는 ‘시’가 뒤의 모음과 합쳐지므로 ‘샤, 셔, 셰, 쇼, 슈, 시’ 등으로 적는다. 이에 따라 ‘슈퍼, 패션, 쇼핑, 리더십’ 등의 표기가 가능하다. 요즘 전문 요리사를 뜻하는 ‘셰프’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이때도 ‘쉐프’가 아니라 ‘셰프’가 바른 표기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6 風文 R 968
5월은 푸르구나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어린이날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로 시작하는 ‘어린이날 노래’의 가사를 보면 하늘도 푸르고 벌판도 푸르고 5월도 푸르다. 그렇다면 ‘푸르다’의 색은 구체적으로 어떤 색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푸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의 뜻으로 나와 있고 그 용례를 보면 ‘푸른 물결’, ‘푸른 가을 하늘’ 등으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즉 ‘푸르다’는 어떤 특정한 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밝고 선명한 느낌의 색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푸른색’은 바다의 색인 ‘파란색’을 지칭하기도 하고 맑은 하늘의 색인 ‘하늘색’, 풀의 색인 ‘초록색(草綠色)’, 완두콩의 색인 ‘연두색(軟豆色)’ 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쓸 수 있다. 이처럼 한 가지의 색 형용사가 여러 가지 색깔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쓰일 수 있는 것은 한국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특정 색에 대응하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어서 만약 ‘푸르다’를 영어로 옮기려면 문맥에 따라 ‘green’ 혹은 ‘blue’처럼 특정 색을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푸르다’라는 말을 통해 한국어는 색깔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세밀하게 발달되어 있는 언어라는 특징을 알 수 있는데, ‘푸르다’의 색깔만 하더라도 ‘푸르스름하다’, ‘푸르스레하다’, ‘푸르무레하다’, ‘푸르죽죽하다’, ‘푸릇하다’, ‘푸르께하다’, ‘푸르레하다’, ‘푸르데데하다’, ‘푸르뎅뎅하다’, ‘푸르퉁퉁하다’, ‘푸르디푸르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6 風文 R 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