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위에 저 소나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의 잘못이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 있었다. 조사 ‘의’는 흔히 [에]로 발음하는데, 그 발음에 이끌려 표기까지 ‘에’로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발음은 그렇게 하더라도 표기는 당연히 ‘의’로 해야 한다. 그런데 ‘남산 위에’는 발음에 이끌려 ‘에’로 잘못 적은 경우라는 게 제언자의 주장이다. 이분의 주장처럼 애국가 가사의 맞춤법이 틀렸다면 큰일이다. 윤치호 선생의 1907년 자필 가사도 ‘남산 우헤’ 즉 현대어로 ‘남산 위에’이니, 유구한 역사 동안 어법에도 안 맞는 애국가를 불러 온 셈 아닌가. 그러나 애국가 가사는 일종의 시요, 따라서 문제의 ‘남산 위에’는 시적 표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적 간결함을 추구하여 ‘남산 위에 있는 저 소나무’와 같은 표현에서 ‘있는’을 생략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동요작가 권오순이 지은 ‘구슬비’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대롱대롱 거미줄에 옥구슬”로 시작하는데, 이는 ‘싸리잎의, 거미줄의’의 잘못이 아니라 역시 서술어가 생략된 시적 표현일 수밖에 없다. 시로서의 애국가의 특성은 곳곳에 보인다. 이어지는 구절 ‘바람서리 불변함은’도 ‘바람서리에 불변함은’에서 조사 ‘에’를 생략한 것이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역시 일반적인 서술 구조가 아니라 시적 축약이요 변형이다. 따라서 ‘남산 위에’를 굳이 ‘의’의 잘못으로 보기보다는 아름다운 시적 표현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시로써 노래로써 표현할 때 더 간절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 아닐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1140
케이크 요새는 미역국과 함께 생일상에 빠지지 않는 게 케이크인 것 같다. 그런데 케이크를 사러 가면 ‘케잌’이라는 표기가 많이 눈에 띈다. ‘케이크’와 ‘케잌’ 중에 맞는 표기는 무엇일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받침에 쓸 수 있는 글자를 제한해 두고 있다.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일곱 글자만 받침으로 쓴다. 그 밖에 ‘ㅋ, ㅌ, ㅍ, ㅊ’ 등이나 겹받침은 쓰지 못한다. 따라서 ‘케잌’이나 ‘라켙’, ‘커피숖’은 모두 틀린 표기다. ‘케이크, 라켓, 커피숍’ 등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받침에 대한 이러한 제약은 외래어에만 해당한다. 외래어가 아닌, 순우리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엌, 밭, 무릎, 꽃’ 같은 표기가 모두 가능하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외래어에는 쓰지 않는 받침을 고유어에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받침소리가 모두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은 그냥 ‘꼳’으로 소리 나지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만나면 ‘꼬치, 꼬츨’처럼 ‘ㅊ’ 소리가 발음이 된다. 따라서 ‘꼿’이나 ‘꼳’으로 적지 않고 ‘꽃’으로 적는 것이다. 그러나 외래어 단어는 그렇지 않다. ‘커피숍’을 예로 들어보면 ‘커피쇼비, 커피쇼베서’처럼 발음하지, 아무도 ‘커피쇼피, 커피쇼페서’로 발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숖’이 아니라 ‘커피숍’으로 적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익’ 대신 ‘케이크’로 적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래어 표기에서는 이중모음 뒤에 k, t, p 소리가 나오면 받침으로 적지 않고, ‘크, 트, 프’로 적도록 하고 있다. 즉 ‘케이크’에서 마지막 음절 앞의 모음이 ‘에이’라고 하는 이중모음이기에 ‘케익’이 아니라 ‘케이크’로 적는다. 이것은 ‘브레이크, 마이크, 스테이크’ 등을 ‘브레익, 마익, 스테익’으로 적지 않는 것과 같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1138
디엠지, 디엠제트 DMZ(demilitarized zone)는 교전국 쌍방이 협정에 따라 군사 시설이나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비무장지대’로서 한반도의 경우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해 휴전선으로부터 남ㆍ북으로 각각 2km의 지대에 DMZ가 조성되었다. 이후 DMZ는 남과 북의 화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긴장의 땅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사향노루와 반달곰 등 각종 멸종 위기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DMZ를 한글로 표기할 때 ‘디엠지’로 적어야 하는지, 아니면 ‘디엠제트’로 적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DMZ를 ‘디엠지’라고 부르고 적었지만 그동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디엠제트’가 바른 외래어 표기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는 ‘Z’의 알파벳 자모 이름이 ‘지’가 아닌 ‘제트’이기 때문이다. 만약 ‘Z’를 ‘제트’로 적지 않고 ‘지’로 적는다면 또 다른 알파벳 자모인 ‘G(지)’와 혼동될 수 있어 ‘Z’의 알파벳 자모 이름은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제트’로 나와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Z’의 영국식 영어 발음인 [zed]보다 미국식 영어 발음인 [zi:]로 발음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비록 1970년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영화 ‘마징가 Z’를 사람들은 아직도 ‘마징가 제트’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올해 1분기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를 수정하면서 ‘디엠제트’와 함께 ‘디엠지’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 표제어로 등재했다. 이는 ‘디엠지’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대중의 언어생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는 비무장지대 DMZ를 ‘디엠제트’와 ‘디엠지’, 어떤 것으로 불러도 되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1064
브렉시트 요즘 ‘브렉시트(Brexit)’라는 말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Britain’과 ‘Exit’의 일부를 따서 만든 것으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국내에서는 서울의 지하철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와 관련하여 ‘메피아’라는 말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메트로’와 ‘마피아’의 일부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이 ‘브렉시트’ ‘메피아’와 같이 단어의 일부를 따서 만든 말을 혼성어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스모그(smoke+fog) 레포츠(leisure+sports) 브런치(breakfast+lunch)’ 등처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말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단어는 ‘메피아’ 외에도 ‘모티켓(모바일+에티켓) 줌마렐라(아줌마+신데렐라) 맛캉스(맛+바캉스)’ 등처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또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주로 외래어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반쪽이라도 외래어인 경우가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예로는 ‘라볶이, 차계부, 쌈추’ 등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우리말에서 단어의 일부를 따서 새말을 만드는 주된 방식은 ‘노조(노동조합), 몰카(몰래 카메라)’ 등처럼 첫 음절을 따서 만드는 것이다. 서구어에서 ‘EU(European Union)’처럼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드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단어는 혼성어와 구별하여 두자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혼성어는 우리말의 주력적인 조어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외래어를 중심으로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 가고 있는데, 이러한 조어법이 얼마나 보편화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언젠가 ‘라이거’를 ‘사랑이(사자+호랑이)’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1125
선생님이 너 오시래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높임말 때문에 한국어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높임법을 어려워하는 것은 외국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높임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시래.” 학창 시절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말인데, 흔하게 저지르는 높임법 실수 중 하나다. 동사나 형용사에 ‘-시’를 붙이는 것은 높임말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동생이 왔다.’는 문장의 주어를 어머니로 바꾸면 ‘어머니가 오셨다.’라고 ‘-시’를 넣어서 말해야 한다. 이때 ‘-시’는 서술어의 주체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선생님이 너 오시래.”가 어색한 이유는 ‘오는’ 동작의 주체, 즉 오는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높여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여기서 ‘-시’는 잘못 쓰였다. 그러면 불필요한 ‘-시’를 빼고 “선생님이 너 오래.”라고 말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선생님을 높이는 장치가 없어서 공손하지 못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오다’의 주체인 친구를 높일 필요는 없지만 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높여야 한다. 여기서 ‘오래’는 ‘오라고 해’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선생님을 높이려면 ‘하다’를 높여서 ‘선생님이 너 오라고 하셔’, 또는 줄여서 ‘오라셔’라고 해야 한다. 어떤 행사에서 사회자가 ‘호명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호명하다’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므로, 호명하는 사람은 사회자 자신인데, ‘-시’를 넣어서 존대를 하고 있다. ‘제가 호명하는 분은’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호명되시는 분은’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내가 아시는 분’이라는 표현도 많이들 쓰는데, 이 말도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높이고 있으므로 옳지 않다. ‘내가 아는 분’이라고 해야 맞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1115
‘랍스터’와 ‘로브스터’ 영어나 프랑스어 등 외국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를 외래어(外來語)라고 하는데, 국어를 ‘한글맞춤법’에 맞게 표기해야 하는 것처럼 외래어를 표기할 때에도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표기해야 한다. 일례로 ‘바닷가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lobster’를 대중들은 ‘랍스터’라고 사용해왔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었고 ‘로브스터’가 바른 외래어 표현이었다. 외래어표기법의 영어 표기 세칙에 따르면 어말과 모든 자음 앞에 오는 유성 파열음([b], [d], [g])은 ‘으’를 붙여 적도록 되어 있는데, ‘lobster[l?bst?]’의 ‘b’가 유성 파열음이기 때문에 ‘으’를 붙여 적어 ‘로브스터’라고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팀 이름인 ‘시카고 커브스(Chicago Cubs)’에서 ‘새끼 곰들’을 뜻하는 ‘Cubs’의 ‘b’가 유성 파열음이기 때문에 ‘으’를 붙여 적어 ‘커브스’라고 적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만약 이 팀의 이름을 ‘시카고 컵스’로 적게 되면 팀의 상징물인 ‘새끼 곰(cub)’을 물을 마실 때 사용하는 ‘컵(cup)’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시카고 커브스’로 적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바닷가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lobster’도 ‘로브스터’로 적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다수 언중들은 ‘로브스터’ 대신에 더 익숙한 말인 ‘랍스터’를 사용해왔다. 이는 ‘lobster’의 영국식 영어 발음인 ‘로브스터’보다 미국식 영어 발음인 ‘랍스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어도 생명체와 같아서 표준어가 아니지만 ‘짜장면’처럼 대다수 언중들이 압도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결국 사전에 등재할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원은 올해 1분기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는 표제어를 일부 수정했는데, ‘랍스터’도 ‘로브스터’의 복수 표기로 인정했다. 즉 ‘바닷가재’를 뜻하는 외래어 표기로 ‘로브스터’와 ‘랍스터’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장면’과 ‘짜장면’처럼 ‘로브스터’와 ‘랍스터’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돼 이제는 둘 중에 어느 것을 사용해도 되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1 風文 R 1123
‘다운로드’의 발음 우리말의 ‘ㄹ’은 꽤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소리이다. 이 소리는 그 앞에 ‘ㄹ’이 아닌 다른 자음이 오지 못한다. 그래서 ‘신라’는 앞의 ‘ㄴ’ 소리가 ‘ㄹ’로 바뀌어 [실라]로 발음된다. 앞의 자음을 바꿀 수 없으면 자기가 변해 버린다. 예를 들어 ‘종로’는 ‘ㅇ’을 바꾸는 대신 ‘ㄹ’ 자신이 ‘ㄴ’으로 바뀌어 [종노]로 발음된다. 그나마 ‘ㄹ’ 뒤에는 ‘불고기, 놀다, 꿀밤’처럼 다른 자음이 자유롭게 올 수 있는데, ‘ㄴ’ 만큼은 ‘ㄹ’ 뒤에도 올 수 없다. 즉 ‘ㄹ’과 ‘ㄴ’은 특히 어울리지 못하는 짝이다. 그래서 ‘신라, 천리, 난로’ 등에서 [ㄴㄹ]은 [ㄹㄹ] 소리로 바뀌고, ‘칼날, 달나라’ 등에서 [ㄹㄴ]도 [ㄹㄹ]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말의 발음 규칙이 외래어에서 흔들리고 있다. 예들 들어 ‘다운로드’는 우리말 발음 규칙에 따르면 [다울로드]이거나 [다운노드]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운로드]로 발음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ㄴㄹ] 발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도 과거에는 [올라인] 아니면 [온나인]이었으나, 지금은 [온라인]의 발음이 매우 많아졌다. 연예인 ‘헨리’도 방송에서 흔히 [헨리]로 발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는 [ㄹㄴ] 발음도 늘어나 ‘엘니뇨’도 [엘리뇨]가 아닌 [엘니뇨]로 발음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이는 영어의 영향이다. 영어 원음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 복잡해져 버린 이들 발음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는데, 아직 외래어의 표준 발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서둘러서 [다울로드]인지, [다운노드]인지, 아니면 [다운로드]인지 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