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어른 얼마 전 ‘또 오해영’이라는 연속극이 인기리에 종방되었다. 그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 끌려 필자도 내내 재미있게 시청하였다. 그런데 극 중에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장차 사위 될 남자 주인공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남자 주인공의 남동생이 ‘사돈어른’의 음식 솜씨가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 예처럼 시동생이 형수의 어머니를 가리켜 ‘사돈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른’은 높임말이니 얼핏 가능할 듯도 싶다. 그러나 ‘사돈’은 기본적으로 같은 항렬의 사람끼리 부르거나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혼인한 두 집안의 부모들끼리 “사돈, 안녕하셨어요?” “사돈이 떡을 보내셨네”와 같이 말한다. 이 경우 ‘사돈어른’은 주로 바깥사돈에게 쓰는 말이다. 상대방 집안의 위 항렬의 사람에 대해서는 ‘사장(査丈)어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위나 며느리의 조부모는 위 항렬의 사람이므로 “사장어른, 손주가 결혼해서 좋으시죠?” “사돈, 사장어른도 건강하시죠?”와 같이 부르거나 가리키는 것이다. 동기 배우자(즉 형수, 제수, 매형, 매부, 올케, 형부, 제부)의 부모도 나에게는 위 항렬의 사람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사장어른’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머니, 사장어른 오셨어요.”와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앞서 연속극의 등장인물은 ‘사돈어른’이 아니라 ‘사장어른’의 음식 솜씨가 좋다고 말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진 집안에서 같은 항렬의 부모끼리는 ‘사돈’ 위 항렬의 사람에 대해서는 ‘사장’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우리말은 이처럼 호칭어·지칭어까지 경어법에 따라 세분화되는 특징이 있으므로 잘 익혀 쓸 필요가 있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4 風文 R 1264
‘붙이다’와 ‘부치다’ ‘붙이다’와 ‘부치다’는 소리만 같은 것이 아니라 어원도 같다. 둘 다 옛말 ‘븥다(붙다)’에서 비롯한 말이다. 그런데 왜 어떤 것은 ‘붙이다’로 적고, 어떤 것은 ‘부치다’로 적을까? ‘부착, 접촉, 덧보탬, 사귐’ 등이 ‘붙다’가 지닌 뜻인데, 이런 뜻이 살아 있는 경우에는 그 형태를 드러내어 ‘붙이다’로 적는다. 이렇게 적으면 ‘붙다’와 관련된 말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붙다’의 뜻이 남아 있지 않다면 어원을 밝혀 적더라도 어차피 뜻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소리대로 ‘부치다’로 적는 것이다. ‘붙이다’는 사동의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말로, ‘붙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이다. ‘메모지를 벽에 붙이다, 연탄에 불을 붙이다, 계약에 조건을 붙이다, 공부에 흥미를 붙이다, 친구에게 말을 붙이다, 상품에 번호를 붙이다, 흥정을 붙이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모두 ‘붙다’의 본래 의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언뜻 봐서는 ‘붙다’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사실을 알기가 어려운 경우, 즉 ‘옮김, 넘김, 의탁’ 등과 같은 뜻일 때는 ‘부치다’로 적는다. ‘짐을 외국으로 부치다, 임명 동의안을 표결에 부치다, 회의 내용을 극비에 부치다, 삼촌 집에 숙식을 부치다, 한글날에 부치는 글’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친구에게 편지를 ‘부쳤다’.”라고 적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부치다’가 몇 가지 더 있는데 함께 알아 두면 좋을 듯하다. ‘힘에 부치다(미치지 못하다)’ ‘남의 땅을 부치다(농사를 짓다)’ ‘빈대떡을 부치다(기름을 둘러 음식을 익히다)’ ‘부채를 부치다(바람을 일으키다)’ 등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7.24 風文 R 1176
띄어쓰기의 원칙 띄어쓰기만 보아도 그 사람의 국어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띄어쓰기는 국어의 맞춤법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문이다. 국어의 달인을 뽑는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서 우리말 달인을 검증하는 마지막 문제가 띄어쓰기 문제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띄어쓰기는 어떤 원칙으로 하는 것일까? 한글맞춤법의 제1장 ‘총칙’의 제2항에 보면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는 말의 단위인데, 문장 내에서 단어를 단위로 해서 띄어 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인 것이다. 국어에서 단어는 기능과 형태, 의미에 따라 9가지의 품사, 즉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품사로 분류되는 단어들은 모두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9개의 품사 중에 ‘조사’는 다른 말에 의존하여 쓰이는 형태소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그 앞의 단어에 붙여 쓴다. 예를 들어 ‘3년 만이다’에서 ‘만’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지만 ‘웃기만 하다’에서 ‘만’은 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또한 ‘부모와 자식 간’에서 ‘간’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지만 ‘한 달간’에서 ‘간’은 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그렇다면 ‘집을나선지십분만에주먹만한빗방울이떨어졌다’는 어떻게 띄어쓰기를 해야 할까? ‘나선 지’와 ‘십 분 만’에서 ‘지’와 ‘만’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고 ‘주먹만 한’에서 ‘만’은 (보)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따라서 ‘집을 나선 지 십 분 만에 주먹만 한 빗방울이 떨어졌다’가 바른 띄어쓰기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4 風文 R 1085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문제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상황에서 자막에 ‘정답을 빗겨간’이라고 나왔다. 이 ‘빗겨가다’는 현대국어에 없는 말이다. 옛말에서는 ‘빗기다’라고 하였지만 현대국어에서는 ‘비끼다’이다. 창을 비스듬히 들면 ‘비껴들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면 ‘비껴쓰다’,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면 ‘비껴가다’이다. 그런데 이 ‘비껴가다’와 흔히 혼동하는 말로서 ‘비켜 가다’가 있다. 어떤 대상을 피해서 간다는 뜻으로 ‘진흙탕을 비켜 가다, 세월을 비켜 가다’처럼 흔히 쓰이는데, 아직 한 단어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위 프로그램의 자막에는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중 어느 것을 써야 할까? 출연자가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피해 간다는 것이니 ‘비켜 가다’가 적합한 말이다. 즉 자막을 정확하게 넣는다면 ‘정답을 비켜 간’이라고 해야 한다. ‘비껴가다’는 두 가지 뜻으로 쓴다. 첫째는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 둘째는 ‘어떤 감정, 표정, 모습 따위가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가다’는 뜻이다. 앞의 의미로는 ‘공이 골대를 비껴가다’, 뒤의 경우로는 ‘서운한 빛이 얼굴을 비껴가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와 같이 ‘비켜 가다’와 ‘비껴가다’는 구별되는 말이다. 위 자막의 ‘빗겨간’처럼 엉뚱하게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도 ‘운명을 비껴간, 세월을 비껴간’처럼 ‘비켜 가다’로 쓸 것을 ‘비껴가다’로 쓰는 잘못을 종종 볼 수 있다.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켜 가다’의 경우 띄어 쓰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비켜나다, 비켜서다’처럼 한 단어로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151
데, 대 ‘찌개’가 맞는지, ‘찌게’가 맞는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재’와 ‘결제’도 마찬가지다. 부장님께 보고서를 승인받을 때는 ‘결재(決裁)’를 써야 하고, 대금을 지급할 때는 ‘요금을 카드로 결제했다’처럼 ‘결제(決濟)’를 써야 하는데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우리말에서 모음 ‘에’와 ‘애’ 소리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 할 때는 구분되지 않는 소리를 구분해서 적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이 말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말인지를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발음상 구분되지 않아 혼동하는 예로 종결 어미 ‘-데’와 ‘-대’를 들 수 있다. 소리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른 뜻을 나타내므로, 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잘 구별해 써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데’와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대’라는 문장을 비교해 보자. 뜻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겠는지. 두 문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말하는 사람이 직접 그 식당에 가 봤는지 여부이다. ‘-데’가 쓰인 첫 번째 문장은 말하는 이가 경험해서 알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 결과를 현재 시점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더라.’처럼 ‘-더라’로 바꿔 쓸 수 있다. 이 ‘-데’나 ‘-더라’로 끝나는 문장에는 가벼운 감탄이나 놀람의 뜻도 담겨 있다. ‘-대’로 끝난 두 번째 문장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들은 말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즉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다고 해.’라는 뜻이다. ‘좋다고 해.’가 줄어서 ‘좋대’가 되었다. ‘-데’에는 ‘더’가 들어있고 ‘-대’에는 ‘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078
민주주의의 의의 국어의 모음은 10개의 단모음과 11개는 이중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모음은 소리를 내는 도중에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는 모음이고 이중모음은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가 달라지는 모음인데, 이중모음의 예로는 ‘ㅘ’, ‘ㅝ’, ‘ㅢ’ 등이 있다. 이중모음은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발음하기가 어려운데, 특히 이중모음 ‘ㅢ’를 주의 깊게 발음하지 않으면 단모음 ‘ㅡ’로 발음하기 십상이다. 이중모음 ‘ㅢ’를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는 ‘ㅡ’를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에서 ‘ㅣ’를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ㅡ’는 중설모음(中舌母音)으로서 혀의 정점이 입 안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반면에 ‘ㅣ’는 전설모음(前舌母音)으로서 혀의 정점이 입 안의 앞쪽에 위치해 발음되는 모음이다. 따라서 ‘ㅢ’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혀를 입 안의 가운데 지점에서 앞쪽으로 밀어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도중에 혀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 어려움을 고려해 표준발음법에서는 단어의 첫 음절 이외의 ‘의’는 [ㅣ]로, 조사 ‘의’는 [ㅔ]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주의’는 [주이]로 발음할 수 있고 ‘강의의’는 [강:이에]로 발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의의’는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좋을까? ‘민주주의’에서 ‘의’가 단어의 첫 음절 이외의 위치에 왔기 때문에 [민주주이]로 발음할 수 있고 조사 ‘의’는 [ㅔ]로 발음할 수 있으며 ‘의의’의 경우 둘째 음절 ‘의’가 첫 음절 이외의 위치에 왔기 때문에 [의:이]로 발음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의의’는 [민주주이에의:이]로 발음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리한 발음법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