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선염’과 ‘귀밑샘염’ 봄철을 맞아 예년처럼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성 이하선염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병은 전통적으로 ‘볼거리’라고 하는 것으로, 귀 밑의 침샘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그런데 ‘이하선’은 무슨 뜻일까? 이는 ‘耳下腺’ 즉 ‘귀 밑의 샘’이라는 말이다. ‘샘’은 우리 몸에서 물질을 분비ㆍ배출하는 조직이다. 한자로는 ‘腺(샘 선)’인데 ‘누선, 갑상선, 내분비선, 전립선’ 등에 붙어 쓰인다. 그런데 ‘누선’을 ‘눈물샘’이라고 하듯이 ‘이하선’을 쉬운 말로 바꾼 것이 ‘귀밑샘’이다. 아직까지 더 익숙한 말은 ‘이하선염’이지만 적잖은 신문에서 ‘귀밑샘염’을 괄호 안에 함께 쓰는 것을 보니 당분간 두 단어의 경쟁 관계가 이어질 것 같다. 한편 ‘이하선염’은 어떻게 발음할까? 일부 방송에서 [이하서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올바른 발음은 [이ː하선념]이다. ‘솜-이불, 내복-약, 늑막-염’ 등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고 뒷말의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인 경우에는 ‘ㄴ’ 음을 첨가하여 [니, 냐, 녀, 뇨, 뉴]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솜니불, 내봉냑, 능망념]으로 발음한다. ‘늑막염’처럼 ‘-염(炎)’이 결합한 병명은 거의 모두 이 원칙에 따라 ‘ㄴ’을 첨가하여 발음한다. 즉 ‘복막염, 결막염, 관절염, 방광염’ 등의 표준 발음도 [봉망념, 결망념, 관절렴(관절념→관절렴), 방광념]이다. 그런데 ‘늑막염’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능망념]보다 [능마겸]이라는 답이 더 많다. 그만큼 이 단어들을 ‘ㄴ’ 첨가 없이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표준 발음을 익혀 둘 필요가 있다. ‘귀밑샘염’도 [귀믿쌤념]으로 발음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1032
‘가없는’ 어머니 은혜 어버이날이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로 끝난다. ‘가이 없어라’는 요즘 잘 쓰는 말이 아니라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가엾어라’를 곡조에 맞게 늘여 부르느라 ‘가이 없어라’가 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 해석도 일리가 있는 것이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희생하는 어머니 모습이 딱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하니 가엾다는 말로도 뜻이 통한다. ‘가이 없다’는 옛말에 쓰이던 형태가 굳어진 것으로 현대 국어에서는 비표준어이다. 표준어로는 ‘가없다’인데, 이 말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노래 가사는 어머님의 희생과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가없다’의 ‘가’는 ‘바닷가, 강가, 우물가’ 등에 쓰인,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이다. 옛말에서 이 ‘가’는 ‘ㄱㆍㅅ’ 또는 ‘ㄱㆍㅿ’이었는데, 나중에 받침소리가 없어지면서 ‘ㄱㆍ’가 되었다가, 다시 오늘날의 ‘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옛 문헌에는 ‘끝이 없다’는 뜻으로 ‘가없다’와 ‘가이 없다’가 둘 다 나타난다. ‘가이 없다’의 ‘가이’는 ‘가’에 주격조사 ‘-이’가 붙은 말이다. 받침이 없는 말에는 주격조사 ‘-가’가 결합하므로 ‘가가 없다’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근대 국어 이전에는 주격조사에 ‘-이’만 있었고 ‘-가’는 없었다. 그래서 ‘가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인데 이것이 노랫말 같은 데 일부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1135
이따가 봬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들이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게 한다. 받아쓰기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국어의 맞춤법을 알려주기 위함인데,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뜻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각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꽃이’가 [꼬치]로 소리 나지만 이를 소리대로 ‘꼬치’로 적는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 형태소 모양대로 명사인 ‘꽃’과 조사인 ‘이’를 분리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대생들이 남자 친구에게 가장 실망했을 때가 맞춤법에 틀린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것처럼 맞춤법은 교양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맞춤법 실수가 난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감기 빨리 낳으세요” “진짜 어의가 없다” “이 정도면 문안하죠” “있다가 뵈요” 같은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기 빨리 나으세요” “진짜 어이가 없다” “이 정도면 무난하죠” “이따가 봬요”가 바른 표현이다. 특히 “있다가 뵈요”는 가장 흔한 맞춤법 실수인데, ‘있다가’는 ‘머물렀다가’의 의미이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이따가’로 고쳐야 하고 ‘뵈요’는 어간 ‘뵈-’ 뒤에 연결어미 ‘-어’가 빠졌기 때문에 ‘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봬요’로 적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실수로 “너무 오래 되서”, “명절 잘 쇠라”, “바람을 쑀어요” 등이 있는데, ‘되어서’, ‘쇠어라’, ‘쐬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돼서’, ‘쇄라’, ‘쐤어요’로 적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936
청춘하세요 요즘 모 제약회사 광고 중에 “대한민국 청춘하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청춘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청춘하세요’는 국어의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하다’가 단어를 만드는 힘은 매우 크지만 ‘청춘하다’라는 말까지 만들 수는 없다. ‘운동하다, 정리하다, 생각하다’에서 보듯이 ‘하다’는 동사성의 의미를 지닌 말과 결합하여 새 동사를 만든다. 하지만 ‘청춘’은 동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학생하다, 노년하다’라는 말이 없듯이 ‘청춘하다’라는 말도 만들어질 수 없다. 물론 ‘밥하다, 나무하다’처럼 동사성이 없는 말에 ‘하다’가 붙어 된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밥을 하다, 나무를 하다’와 같은 표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쓰이면서 단어가 된 경우이다. ‘청춘하다’는 ‘청춘을 하다’라는 말이 없으므로 이런 예도 아니다. 아마 이 말을 만든 사람도 ‘청춘하다’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러 어법에 어긋난 말을 씀으로써 대중의 눈길을 끄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또 유행처럼 일부 계층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보는 글이라는 점에서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다’를 억지스럽게 붙이는 말은 이전에도 일부 광고에서 쓰였다. 식품 광고의 ‘연두해요’, 전자제품 광고의 ‘쿠쿠하세요’, ‘액스캔버스하다’ 등은 제품명에 ‘하다’를 결합하여 동사로 쓴 경우이다. 모두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예들이다. 물론 이런 말들이 광고 전략 면에서는 성공 사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고도 공익을 생각한다면, 참신하면서도 우리말의 질서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4 風文 R 967
‘미쉐린’에서 발간하는 ‘미슐랭’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안내서이다. 파리, 뉴욕, 도쿄 등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도시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서울편도 발간된다고 한다. 이 책은 본래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에서 무료로 나눠 주던 것이었다. 자동차 여행자들에게 주유소의 위치나 근처의 식당, 숙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책자가 지금의 맛집 안내서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왜 ‘미쉐린’사에서 만든 책 이름이 ‘미슐랭’ 가이드일까. 이것은 프랑스어 이름인 Michelin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의 혼란에서 비롯됐다. Michelin은 이 회사 창업자의 성으로,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 ‘미슐랭’으로 적는다. 그러면 ‘미쉐린’은 이 이름의 영어식 표기일까? 그렇지 않다. 영어 발음에 따른 외래어 표기는 ‘미셸린’이라고 써야 한다. ‘미쉐린’은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 법인을 설립할 때 등록한 한글 이름이다. 고유명사이기에 표기법에 맞지 않지만 공식 표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1980년대에 ‘미슐랭’이라는 책 이름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이후 1990년대 초에 타이어 회사가 ‘미쉐린’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두 이름이 너무 달라 서로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10여 년 전 신문에는 ‘미쉐린의 총수인 프랑수아 미슐랭’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기도 하다. 사실 알고 보면 ‘미슐랭’이라는 사람 이름을 따서 만든 ‘미쉐린’사에서 ‘미슐랭’이란 책을 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미슐랭’으로 통일해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한 외국어 이름에 대응하는 두 가지 다른 한글 표기, ‘미슐랭’과 ‘미쉐린’은 그 말이 우리 사회에 소개될 당시의 맥락과 역사성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4 風文 R 1398
다르다와 틀리다 20세기 현대사상의 거두라고 불리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질성의 포용’이라는 책에서 상대의 이질성(異質性)을 상대방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상대방과의 친화를 도모하는 것을 ‘이질성의 포용(inclusion)’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21세기 철학의 화두로 삼았다. 이처럼 상대방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이질성의 포용’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 간,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상황을 치유하는 치료약이 될 수 있다. 이질성의 포용은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필요한데, 예를 들어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 잘못 사용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남녀의 목소리가 서로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를 써야 하는 상황에 ‘틀리다’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데, ‘다르다’와 ‘틀리다’는 품사부터가 서로 다르다. ‘다르다’는 품사가 형용사로서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이고 ‘틀리다’는 품사가 동사로서 ‘사실 따위가 그릇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단어를 혼동해 많은 언중들이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틀리다’를 쓰고 있는 것은 자기와 같은 생각, 이념, 모습은 옳고, 자기와 다른 생각, 이념, 모습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다. 이는 마치 색연필의 살구색 이름을 ‘살색’이라고 표현해 우리와 같은 피부색인 살구색만 살색이고 우리와 다른 피부색인 검은 색은 살색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학생들에게 심어준 것과 같은 경우인데, ‘이질성의 포용’을 위해 ‘다르다’와 ‘틀리다’를 서로 구별해 사용해야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4 風文 R 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