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누구? 며칠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그런데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름이 언론사마다 달랐다. 어떤 보도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하고 어떤 보도에서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맞다. 이미 1998년에 정부ㆍ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는 미국의 영화배우 Leonardo W. DiCaprio의 외래어 표기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정하였다. 이탈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으로 이름이 불리는 데 따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정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어머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감상하던 중 태동을 느끼고는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결국 같은 이름 Leonardo이지만 언어 환경에 따라 ‘레오나르도’(다빈치)와 ‘리어나도’(디캐프리오)로 달리 적는 것이다. 다만 표기법이 정해진 이후에도 근 20년 가까이 규범에 맞지 않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중에게 훨씬 익숙하게 쓰여 왔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그렇게 표기되었고, 이번에 상을 받은 작품 ‘레버넌트’의 홍보 포스터에 적힌 이름도 여전히 ‘레오나르도 디카프오’이다. 일단 규범으로 정해진 이상 그 표기를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고 써야 한다. 다만 대중이 흔히 쓰는 표기를 계속 외면하기도 어렵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맥아더’처럼 원어 발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이 흔히 쓰는 데 따라 표기를 정한 예도 있다. 앞으로 이 배우의 이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06 風文 R 962
꽤나 깨나 한동안 요리 프로가 인기를 끌더니 요새는 인테리어 방송이 눈에 많이 띈다. 페인트칠만으로 새 집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책장을 침대로 개조하는 일도 뚝딱 해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진다. 한 번은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목공일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힘 꽤나 쓰는 두 사람’이란 자막이 나왔다. ‘힘깨나 쓰는’이라고 해야 할 것을 잘못 쓴 것이다. ‘꽤나’와 ‘깨나’는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혼동한다기보다는 ‘깨나’를 몰라서 ‘깨나’를 써야 할 자리에 ‘꽤나’를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꽤나’는 보통을 조금 넘는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 ‘꽤’에 보조사 ‘나’가 합해진 말이다. ‘꽤’는 ‘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다’ ‘어젯밤엔 술을 꽤 마셨다’ ‘학교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처럼 문장 안에서 동사나 형용사, 또는 다른 부사를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꽤나’를 쓰면 ‘꽤’를 쓸 때보다 그 수량이나 정도가 많거나 높음이 강조되는데 살짝 놀라는 뜻이 덧붙기도 한다. 위에 예로 든 표현들을 ‘꽤나 가까운 사이’ ‘술을 꽤나 마셨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로 바꿔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깨나’는 명사 등 체언에 직접 붙는 보조사로, 앞 말에 그것이 상당한 정도라는 의미를 더해 준다. ‘그는 돈깨나 있는 사람이다’ ‘심술깨나 부린다’ ‘그게 나이깨나 든 사람이 할 소리냐?’처럼 쓰는데, 빈정거리거나 가벼운 불만의 뜻이 덧붙여진다. 위의 자막은 ‘힘’이라고 하는 명사에 직접 붙을 뿐 아니라, 힘을 ‘꽤나’ 많이 쓰는 상황을 담담히 나타내기보다는 대단치도 않은 일에 두 사람이나 나서서 끙끙대는 모습을 살짝 비꼬고 있으므로 ‘힘깨나 쓰는 두 사람’으로 해야 맞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06 風文 R 904
‘이쪽으로 앉으실게요’ 몇 년 전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하고 가실게요’라는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이 ‘∼하고 가실게요’는 잘못된 표현이고 ‘∼할게요’, 혹은 ‘∼하겠습니다’가 바른 표현이라는 자막을 내보낸 적이 있다. 당시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바른 말을 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개그 프로그램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개그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잘못된 표현은 집어내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요즈음에도 병원과 백화점, 상점 등에서 ‘∼하실게요’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실게요’는 상대방을 높이는 선어말 어미 ‘-시-’와 말하는 사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의 종결어미인 ‘-ㄹ게요’를 함께 썼기 때문에 호응이 잘못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종업원이 손님에게 “이쪽으로 앉으실게요”라고 말하면 손님보고 이쪽으로 앉으라는 말인지, 아니면 종업원 자신이 이쪽으로 앉겠다는 말인지 혼동을 주게 된다. ‘앉으시다’라고 존대하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손님을 보고 하는 말 같지만 말하는 사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의 종결어미 ‘-ㄹ게요’를 동시에 사용했기 때문에 종업원 자신이 이쪽으로 앉겠다는 의미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이쪽으로 앉으세요”라고 말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영수증 받으실게요”는 “영수증 받으세요”로, “물리치료 하실게요”는 “물리치료를 해드릴게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실게요”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로 고쳐 말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06 風文 R 933
호접지몽(胡蝶之夢) 胡:오랑캐, 어찌 호. 蝶:나비 접. 之:갈 지(…의). 夢:꿈 몽. [유사어] 장주지몽(莊周之夢) [출전] ≪莊子≫ 〈齊物篇〉 나비가 된 꿈이란 뜻. 곧 ①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물아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심경.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④ 꿈. 전국 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이름은 주(周), B.C. 365~290]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진위(眞僞), 미추(美醜), 빈부(貧富), 귀천(貴賤)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사람이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그 나비인 자기가 꿈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장자(莊子)》의 이런 우화(寓話)는 독자를 유현(幽玄)의 세계로 끌어들여 생각게 한다. [주]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요즈음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음. 유현 : 사물(事物)의 이치(理致) 또는 아취(雅趣)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음.
Board 고사성어 2024.07.05 風文 R 333
‘형편이 폐다’ 지난주에는 ‘(빗방울이) 듣다’처럼 점점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낱말 두어 개를 보았다. 이번 주에는 그 연장으로 준말 두어 개를 보고자 한다. ‘쌔고 쌨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 흔한 경우를 가리켜 자주 쓰는 말이다. 이 ‘쌔다’의 정체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말은 ‘쌓이다’의 준말이다. 그런데 ‘쌓이다’에 비하여 ‘쌔다’는 거의 쓰임이 없는 말로서 ‘쌔고 쌔다’와 같은 관용적인 형식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눈이 ‘쌓여 있다’라고 하지 ‘쌔어 있다’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쌔다’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것도 그만큼 이 말의 활동 영역이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폐다’는 사정이 더 심각한 예이다. 이 말은 ‘펴다’의 피동형인 ‘펴이다’의 준말이다. 대표적으로 ‘형편이 폤다’와 같은 용례를 들 수 있다. 구김살이 펴지듯이 형편이 순조롭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 준말 ‘폐다’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 경우 흔히 쓰는 말은 ‘피다’이다. 즉 ‘형편이 폈다’와 같이 말한다. 꽃이 피어나듯이 살림살이도 피어나는 것이다. ‘형편이 [펟따]’와 같이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폤다’가 아니라 ‘폈다’가 ‘며느리>메느리’처럼 모음이 단순화한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형편이 폐다’라는 표현은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놓이다’의 준말 ‘뇌다’, ‘까이다’의 준말 ‘깨다’, ‘더럽히다’의 준말 ‘더레다’ 등도 비슷한 처지의 말들이다. 우리말에는 생명력을 거의 잃고 국어사전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이런 준말들이 적잖이 있다. 이 말들이 새로 힘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소중한 우리말이기에 되새겨 보았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05 風文 R 1235
향년 방년 지난 주말에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이없는 자막 오류가 있었다. 한 여가수가 생년월일을 적는 장면에 그만 ‘향년 19세’라는 자막을 내보낸 것이다. 여러 시청자들이 잘못을 지적하자 담당자는 ‘방년’을 쓰려다 실수를 했다며 사과하였다. 자주 쓰지 않는 한자어들은 정확한 뜻을 몰라 혼동하기 쉽다. ‘누릴 향(享)’ 자를 쓰는 ‘향년(享年)’은 국어사전에 ‘한 평생 살아 누린 나이’로 풀이되어 있는데,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선생은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처럼 쓴다. ‘꽃다울 방(芳) 자를 쓰는 ‘방년’은 꽃이 화사하게 피는 좋은 때라는 뜻으로 한창 젊은 나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보통은 스무 살을 전후한 나이를 가리킨다. ‘방년 18세 아가씨’처럼 여성에게 주로 쓰지만, 남성에게 쓸 수 없는 말은 아니다. 북한 사전을 포함한 여러 국어사전들에서 여성에게만 쓰는 말이라는 제약이 없으며, 많지는 않으나 실제로 남성에게도 사용된 예들이 있다. ‘김00 군은 방년 20세의 소년이나...’, ‘방년 28세의 배우 부부 이00 씨와 한00 여사’ 등의 용례를 과거 신문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묘령(妙齡)은 ‘방년’과 비슷하지만 스물 안팎의 젊은 여성의 나이만 가리킨다. 남성이나 나이가 많은 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묘령의 여인’이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묘령의 노인’이니 ‘묘령의 40대 여성’이니 하는 말은 잘못이다. 그런데도 이런 표현이 심심찮게 쓰이는 것은 ‘묘령’을 ‘묘하다’는 말에 끌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 나이 스무 살을 이르는 말은 ‘약관(弱冠)’이다. ‘예기’에 나온 말로 스무 살이 갓을 쓰는, 곧 관례를 올리는 나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05 風文 R 1012
심각한 외국어 남용 최근 국민들의 언어 사용 실태를 보면 외국어를 마치 국어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다음은 국내의 모 자동차 광고 문구인데, 거의 모두 영어를 차용해 쓰고 있다. ‘고져스한 쉐입을 이룬 서클 속 알루미늄의 샤이니함이 살아있는 17인치 블랙 럭셔리 알로이 휠, 잇걸의 엣지와 시크를 지닌 페미닌하면서도 트렌디한 레드 스페셜 패키지 인테리어, 모던함과 럭셔리함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엘레강스한 에어커튼홀’. 여기서 ‘고져스’는 ‘멋진’을 뜻하는 ‘gorgeous’, ‘쉐입’은 ‘형태’를 뜻하는 ‘shape’, ‘샤이니함’은 ‘빛나는’을 뜻하는 ‘shiny’, ‘럭셔리’는 ‘호화로운’을 뜻하는 ‘luxury’, ‘잇걸’은 ‘매력적인 젊은 여자’를 뜻하는 ‘it girl’, ‘시크’는 ‘세련되고 멋있다’는 뜻의 ‘chic’, ‘페미닌하다’는 ‘여성스러운’을 뜻하는 ‘feminine’, ‘트렌디’는 ‘최신 유행의’를 뜻하는 ‘trendy’, ‘모던함’은 ‘현대적인’을 뜻하는 ‘modern’, ‘엘레강스’는 ‘우아, 고상’을 뜻하는 ‘elegance’를 차용한 말이다. 이처럼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말을 쓰지 않고 영어를 차용해 쓰는 이유는 ‘럭셔리하다’, ‘엘레강스하다’와 같은 영어를 사용하면 우리말을 사용할 때보다 더 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인데, 문제는 이렇게 외국어를 남용하다 보면 광고 문구처럼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 이외에는 모두 사라지고 외국어만 남게 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외국어를 사용하면 왠지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 뿐이니 앞으로 외국어를 남용하지 말고 우리말을 사용하자.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05 風文 R 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