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235’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북한이 실험했다는 수소폭탄 관련 뉴스에 등장하는 ‘우라늄 235’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235’를 문자처럼 [이:삼오]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숫자처럼 [이:백삼십오]로 읽어야 할지 혼동이 된다. 언중들이 ‘보잉 747’ 기종을 ‘보잉 칠백사십칠’이 아닌 ‘보잉 칠사칠’이라고 읽는 것은 ‘747’에 숫자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유번호로서 기호처럼 사용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우라늄 235’의 ‘235’도 기호처럼 [이:삼오]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라늄 235’는 92개의 양성자와 143개의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방사성 동위 원소이기 때문에 ‘235’는 ‘92’와 ‘143’의 합인 숫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라늄 235’의 ‘235’는 [이:삼오]가 아닌 [이:백삼십오]로 읽어야 한다. 이외에도 숫자를 한자어로 읽어야 할지, 고유어로 읽어야 할지 혼동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1학년 2반 3번’ ‘3동 204호’처럼 순서나 차례, 번호를 나타낼 때나 ‘6세’ ‘6개국’‘10여 개’처럼 한자어 단위가 붙을 때에는 [일학년 이:반 삼번] [삼동 이:백사호] [육세] [육개국] [십여개]처럼 한자어로 읽는다. 반면에 ‘6개’ ‘12명’ ‘8쪽’ ‘7번째’ ‘3번’처럼 개수나 횟수를 나타낼 때나 ‘6살’ ‘10곳’처럼 고유어 단위가 붙을 때에는 [여섯개] [열두명] [여덟쪽] [일곱번째] [세:번] [여섯살] [열곳]처럼 고유어로 읽는다. 이 때 ‘8쪽’과 ‘3번’이 개수나 횟수가 아닌 번호를 나타낼 때에는 [팔쪽] [삼번]처럼 한자어로 읽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6.29 風文 R 1481
○○○ 의원입니다 얼마 전 어떤 시민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국회의원이 “안녕하십니까? ○○○ 의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 사례처럼 자신의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소개할 경우에는 직함을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올바른 화법이다. 그래서 사병이 장교 앞에서 자신의 관등성명을 댈 때 ‘일병 ○○○’라고 하지 ‘○○○ 일병’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등이나 직함을 먼저 대고 이름을 말하는 것에는 자신을 높이는 뜻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는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다. 그래서 기업체 사장이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주식회사 사장 ○○○ 드림’과 같이 직함을 이름 앞에 쓰는 것이다. 직함을 이름 뒤에 붙이면 그 사람을 대우해 주는 뜻이 있다. 장교가 부하 사병을 ‘김 일병’과 같이 계급을 뒤에 붙여 부르는 것이나, 회사 사장이 부하 직원을 ‘김 부장(님), 이 과장(님)’처럼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대우해 주는 말하기이다. ‘김 군, 이 양, 최 여사, 박 선생, 정 반장’ 등도 모두 상대방에게 적절한 존중의 뜻을 표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가리켜 말할 때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일 수 없다. 이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므로 언어 예절에 맞지 않다. 자칫 이러한 말 한마디에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으므로 자기를 소개할 때는 ‘의원 ○○○입니다, 사장 ○○○입니다’와 같이 직함을 앞에 두어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스스로 낮추어 말함으로써 오히려 인격은 높일 수 있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6.29 風文 R 1292
‘구설’과 ‘구설수’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 등으로 신년 운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운세를 풀이한 글에는 ‘구설수, 손재수, 요행수’같이 ‘수’로 끝나는 낱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때 ‘수(數)’는 ‘운수’라는 뜻이다. ‘구설수’는 남에게 헐뜯는 말을 들을 운수, ‘손재수’는 재물을 잃을 운수, ‘요행수’는 뜻밖에 얻게 되는 좋은 운수를 뜻한다. 따라서 ‘이달에는 구설수가 있으니 행동을 조심하라’처럼 이 말들은 ‘있다, 없다, 들다’ 같은 말과 잘 어울려 쓰인다.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서 공연히 흉보는 말을 듣게 될 때 ‘구설수에 올랐다’거나 ‘구설수를 들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때는 ‘시비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뜻하는 ‘구설’을 사용해서 ‘구설에 올랐다’ ‘구설을 들었다’라고 해야 한다. 지난 연말 방송 시상식에서 무례한 행동으로 화제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여러 매체가 ‘구설수에 올랐다’는 표현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역시 ‘구설에 올랐다’로 해야 맞다. 바꾸어 쓸 수 있는 말로는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입길에 오르다’ ‘말밥에 오르다’ 등이 있다. 이 중 ‘입방아’의 대상은 꼭 나쁜 일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좋고 나쁨을 떠나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뒷얘기를 하는 경우에 두루 쓰인다. ‘입길’은 ‘남의 흉을 보는 입놀림’, ‘말밥’은 ‘좋지 못한 화제의 대상’을 뜻하는 말이므로, ‘구설에 오르다’처럼 나쁜 일로 남의 말거리가 될 때 쓴다. 한자 사용을 꺼리는 북한에서는 ‘구설’ 대신 ‘말밥에 오르다’를 주로 쓴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말밥’이 북한어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남쪽의 문헌에서도 여러 쓰임이 발견되므로 북한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6.29 風文 R 1538
토사구팽(兎死狗烹) 兎:토끼 토. 死:죽을 사. 狗:개 구. 烹:삶을 팽. [원말] 교토사 양구팽(狡兎死良狗烹) [동의어] 야수진 엽구팽(野獸盡獵狗烹) [유사어] 고(비)조진 양궁장[高(飛)鳥盡良弓藏]. [출전]《史記》〈淮陰侯列傳〉,《十八史略》,《韓非子》〈內儲說篇〉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 곧 쓸모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 초패왕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의 한 사람인 한신(韓信:?~B.C.196)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B.C.200).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지난날 그에게 고전한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고조에게 ‘한신은 반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제후는 초(楚) 땅의 진(陳:하남성 내)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雲夢湖)로 유행(遊幸)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 한신을 진에서 포박하든가 나오지 않으면 제후(諸侯)의 군사로 주살(誅殺)할 계획이었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를 들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일 없을 것’으로 믿고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가신(家臣)이 한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 종리매가 자결하자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포박당하자 그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져)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高鳥盡良弓藏(고조진양궁장)],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敵國破謀臣亡(적국파모신망)]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내가, 이번에는 고종에게 죽게 되었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했다. [주]《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고조(高鳥)가 비조(飛鳥)로, 양구(良狗)가 주구(走狗)로 나와 있으나 뜻은 같음.
Board 고사성어 2024.06.28 風文 R 442
'……’ ‘…’ 어느 게 맞나 문장부호는 글에서 문장의 구조를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부호를 말한다. 한국어의 문장부호에는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를 비롯해 총 21개가 있다. 그런데 문장부호도 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기호이기 때문에 글자처럼 맞춤법에 따라 써야 한다. 한글의 경우 ‘한글맞춤법’의 부록에 21개 문장부호의 이름과 사용법이 명시돼 있다. 예를 들어 제목에는 마침표나 물음표를 붙이지 않고, 쌍점(:)의 앞은 붙여 쓰고 뒤는 띄어 쓴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문장부호를 사용하다 보면 불편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할 말을 줄이거나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 쓰는 줄임표는 가운뎃점 6개(……)를 찍어 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운뎃점은 컴퓨터 자판에서 바로 입력할 수 없고 문자표에서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월 1일에 문장부호 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글맞춤법 일부 개정안’을 고시해, 줄임표의 점을 가운데에 찍는 대신에 아래쪽에 6개(......)를 찍을 수도 있고 6개가 아닌 3개(…)만 찍을 수도 있도록 했다. 또한 공통 성분을 줄여서 하나의 어구로 묶을 때에도 가운뎃점 대신 쉼표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해 ‘금ㆍ은ㆍ동메달’ 대신 ‘금,은,동메달’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낫표(「」,『』)처럼 입력하기 불편한 부호들은 컴퓨터 자판에서 바로 입력이 가능한 따옴표(‘’,“”)로 대체해 「국어 기본법」을 ‘국어 기본법’으로, 『독립신문』을 “독립신문”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이런 것을 알고 나면 문장부호 쓰기가 조금 수월해질 듯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6.28 風文 R 975
소낙눈 꼭 1년 전 일이다. 새해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우리 가족은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전남 보성. 해가 저물어 출발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길이 걱정이 되어 큰애더러 일기예보 좀 검색해 보라고 했더니, 자정에 폭설이 있단다. 숙소에 도착하는 일도 문제지만 다음날 움직일 일도 걱정이 된다. 폭설이라니 아무래도 하루쯤 발이 묶이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다음 일정을 바꾸느니 마느니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사이 여기저기 뉴스를 찾아보던 딸애가 말한다. “소낙눈이라는데.” 소낙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그 뜻은 온전히 머릿속으로 환하게 들어온다. 잠깐 내리는 눈이구나.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왜 하필 ‘자정’에 눈이 내린다고 했는지 의문점이 깨끗이 해소된다. 소낙눈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눈이다. 그래서 폭설과 소낙눈은 의미가 같지 않다. 폭설은 며칠간도 이어질 수 있지만 소낙눈은 짧은 시간 동안만 내리는 눈이다. 나중에 보니 소낙눈은 의외로 일기예보에서 자주 쓰는 말이었다. 이 말은 50년대에 완간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에는 오르지 않았고 70년대 중반 신문 기사에서 한두 개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그 무렵 생긴 말일 텐데 이후에도 드물게 보이다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점점 활발하게 쓰여 오고 있다. 누군가 ‘소낙비’를 본떠 만들었을 이 고마운 낱말 하나가 살아남아 오늘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소낙눈은 잠깐 내리는 눈이니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세상은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새해에는 그 눈만큼 아름다운 이런 말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6.28 風文 R 1019
발레파킹? 대리주차! 주차 공간이 충분치 않은 번화가 식당에서는 주차를 대신해 주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를 ‘발레파킹’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통 ‘발레’라고 하면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무용수들이 우아한 몸짓을 하는 무용극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무용과 주차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주차 대행 서비스를 ‘발레파킹’이라고 부르는 걸까? 둘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용극을 뜻하는 ‘발레(ballet)’와 ‘발레파킹’의 ‘발레(valet)’는 별개의 단어이다. b와 v를 한글로는 똑같이 ‘ㅂ’으로 적게 됨에 따라 우리말에서 우연히 같은 철자가 되었을 뿐이다. valet는 시종이나 하인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이 말이 영어에 들어가서 하인의 뜻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호텔 종업원이나 주차요원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최근에는 영어에서도 valet parking 등 주차 대행 서비스와 관련한 문맥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말이 해당 서비스와 함께 우리 문화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레파킹’이란 말도 함께 들어왔다. 때때로 ‘발렛파킹’이라는 표기도 눈에 띈다. 이것은 valet의 프랑스어 발음을 모르고 쓴 것이다. 프랑스어에서는 어말의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다. buffet, bouquet 등을 ‘뷔페’ ‘부케’라고 읽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프랑스어 발음을 따라 ‘발레’로 하기도 하고 어말 t를 소리 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발렛’이 아니라 ‘밸릿’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발렛파킹’은 잘못된 표기다. 그러나 이 말에 얽힌 이런 복잡한 사정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굳이 뜻을 알기 어려운 ‘발레파킹’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리주차’나 ‘주차 대행’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6.28 風文 R 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