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림프 ‘새우’를 뜻하는 영어 단어 shrimp의 한글 표기는 ‘슈림프’일까, ‘쉬림프’일까? 한동안 이 문제가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지난달 치러진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가 출제됐기 때문이다. 정답은 ‘슈림프’인데 ‘쉬림프’로 답을 잘못 적은 일부 수험생들이 여기저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답을 못 맞힌 이유가 유명 식품회사의 ‘쉬림프 피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항변이다. 대개 방송이나 신문, 또는 기업의 제품 이름 같은 데 쓰인 표기는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회사의 ‘슈림프 버거’를 즐겨 먹었다는 수험생은 해당 회사 사장님께 감사 드린다는 익살스러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영어에서 주로 sh로 표기되는 이 소리를 한글로는 ‘슈’ 또는 ‘시’로 적는다. ‘슈’보다는 ‘쉬’가 원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제로 어떤 표기가 더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어에서는 자음 소리인데, 우리말로는 ‘쉬’로 적든 ‘슈’로 적든 모음이 합쳐져서 원어 발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어떻게든지 일관성 있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 ‘슈림프’처럼 자음 앞에 이 소리가 올 때는 ‘슈’로 적는다. ‘아인슈타인, 슈만, 타슈켄트’ 등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음 앞이 아닐 때는 ‘시’로 적는다. 이에 따라 ‘잉글리쉬’는 ‘잉글리시’로, ‘대쉬’는 ‘대시’로 적어야 한다. 모음 앞에 올 때는 ‘시’가 뒤의 모음과 합쳐지므로 ‘샤, 셔, 셰, 쇼, 슈, 시’ 등으로 적는다. 이에 따라 ‘슈퍼, 패션, 쇼핑, 리더십’ 등의 표기가 가능하다. 요즘 전문 요리사를 뜻하는 ‘셰프’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이때도 ‘쉐프’가 아니라 ‘셰프’가 바른 표기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6 風文 R 1044
5월은 푸르구나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어린이날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로 시작하는 ‘어린이날 노래’의 가사를 보면 하늘도 푸르고 벌판도 푸르고 5월도 푸르다. 그렇다면 ‘푸르다’의 색은 구체적으로 어떤 색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푸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의 뜻으로 나와 있고 그 용례를 보면 ‘푸른 물결’, ‘푸른 가을 하늘’ 등으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즉 ‘푸르다’는 어떤 특정한 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밝고 선명한 느낌의 색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푸른색’은 바다의 색인 ‘파란색’을 지칭하기도 하고 맑은 하늘의 색인 ‘하늘색’, 풀의 색인 ‘초록색(草綠色)’, 완두콩의 색인 ‘연두색(軟豆色)’ 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쓸 수 있다. 이처럼 한 가지의 색 형용사가 여러 가지 색깔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쓰일 수 있는 것은 한국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특정 색에 대응하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어서 만약 ‘푸르다’를 영어로 옮기려면 문맥에 따라 ‘green’ 혹은 ‘blue’처럼 특정 색을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푸르다’라는 말을 통해 한국어는 색깔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세밀하게 발달되어 있는 언어라는 특징을 알 수 있는데, ‘푸르다’의 색깔만 하더라도 ‘푸르스름하다’, ‘푸르스레하다’, ‘푸르무레하다’, ‘푸르죽죽하다’, ‘푸릇하다’, ‘푸르께하다’, ‘푸르레하다’, ‘푸르데데하다’, ‘푸르뎅뎅하다’, ‘푸르퉁퉁하다’, ‘푸르디푸르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6 風文 R 1128
‘이하선염’과 ‘귀밑샘염’ 봄철을 맞아 예년처럼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성 이하선염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병은 전통적으로 ‘볼거리’라고 하는 것으로, 귀 밑의 침샘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그런데 ‘이하선’은 무슨 뜻일까? 이는 ‘耳下腺’ 즉 ‘귀 밑의 샘’이라는 말이다. ‘샘’은 우리 몸에서 물질을 분비ㆍ배출하는 조직이다. 한자로는 ‘腺(샘 선)’인데 ‘누선, 갑상선, 내분비선, 전립선’ 등에 붙어 쓰인다. 그런데 ‘누선’을 ‘눈물샘’이라고 하듯이 ‘이하선’을 쉬운 말로 바꾼 것이 ‘귀밑샘’이다. 아직까지 더 익숙한 말은 ‘이하선염’이지만 적잖은 신문에서 ‘귀밑샘염’을 괄호 안에 함께 쓰는 것을 보니 당분간 두 단어의 경쟁 관계가 이어질 것 같다. 한편 ‘이하선염’은 어떻게 발음할까? 일부 방송에서 [이하서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올바른 발음은 [이ː하선념]이다. ‘솜-이불, 내복-약, 늑막-염’ 등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고 뒷말의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인 경우에는 ‘ㄴ’ 음을 첨가하여 [니, 냐, 녀, 뇨, 뉴]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솜니불, 내봉냑, 능망념]으로 발음한다. ‘늑막염’처럼 ‘-염(炎)’이 결합한 병명은 거의 모두 이 원칙에 따라 ‘ㄴ’을 첨가하여 발음한다. 즉 ‘복막염, 결막염, 관절염, 방광염’ 등의 표준 발음도 [봉망념, 결망념, 관절렴(관절념→관절렴), 방광념]이다. 그런데 ‘늑막염’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능망념]보다 [능마겸]이라는 답이 더 많다. 그만큼 이 단어들을 ‘ㄴ’ 첨가 없이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표준 발음을 익혀 둘 필요가 있다. ‘귀밑샘염’도 [귀믿쌤념]으로 발음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1121
‘가없는’ 어머니 은혜 어버이날이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로 끝난다. ‘가이 없어라’는 요즘 잘 쓰는 말이 아니라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가엾어라’를 곡조에 맞게 늘여 부르느라 ‘가이 없어라’가 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 해석도 일리가 있는 것이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희생하는 어머니 모습이 딱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하니 가엾다는 말로도 뜻이 통한다. ‘가이 없다’는 옛말에 쓰이던 형태가 굳어진 것으로 현대 국어에서는 비표준어이다. 표준어로는 ‘가없다’인데, 이 말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노래 가사는 어머님의 희생과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가없다’의 ‘가’는 ‘바닷가, 강가, 우물가’ 등에 쓰인,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이다. 옛말에서 이 ‘가’는 ‘ㄱㆍㅅ’ 또는 ‘ㄱㆍㅿ’이었는데, 나중에 받침소리가 없어지면서 ‘ㄱㆍ’가 되었다가, 다시 오늘날의 ‘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옛 문헌에는 ‘끝이 없다’는 뜻으로 ‘가없다’와 ‘가이 없다’가 둘 다 나타난다. ‘가이 없다’의 ‘가이’는 ‘가’에 주격조사 ‘-이’가 붙은 말이다. 받침이 없는 말에는 주격조사 ‘-가’가 결합하므로 ‘가가 없다’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근대 국어 이전에는 주격조사에 ‘-이’만 있었고 ‘-가’는 없었다. 그래서 ‘가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인데 이것이 노랫말 같은 데 일부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1248
이따가 봬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들이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게 한다. 받아쓰기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국어의 맞춤법을 알려주기 위함인데,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뜻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각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꽃이’가 [꼬치]로 소리 나지만 이를 소리대로 ‘꼬치’로 적는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 형태소 모양대로 명사인 ‘꽃’과 조사인 ‘이’를 분리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대생들이 남자 친구에게 가장 실망했을 때가 맞춤법에 틀린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것처럼 맞춤법은 교양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맞춤법 실수가 난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감기 빨리 낳으세요” “진짜 어의가 없다” “이 정도면 문안하죠” “있다가 뵈요” 같은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기 빨리 나으세요” “진짜 어이가 없다” “이 정도면 무난하죠” “이따가 봬요”가 바른 표현이다. 특히 “있다가 뵈요”는 가장 흔한 맞춤법 실수인데, ‘있다가’는 ‘머물렀다가’의 의미이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이따가’로 고쳐야 하고 ‘뵈요’는 어간 ‘뵈-’ 뒤에 연결어미 ‘-어’가 빠졌기 때문에 ‘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봬요’로 적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실수로 “너무 오래 되서”, “명절 잘 쇠라”, “바람을 쑀어요” 등이 있는데, ‘되어서’, ‘쇠어라’, ‘쐬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돼서’, ‘쇄라’, ‘쐤어요’로 적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5 風文 R 1006
청춘하세요 요즘 모 제약회사 광고 중에 “대한민국 청춘하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청춘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청춘하세요’는 국어의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하다’가 단어를 만드는 힘은 매우 크지만 ‘청춘하다’라는 말까지 만들 수는 없다. ‘운동하다, 정리하다, 생각하다’에서 보듯이 ‘하다’는 동사성의 의미를 지닌 말과 결합하여 새 동사를 만든다. 하지만 ‘청춘’은 동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학생하다, 노년하다’라는 말이 없듯이 ‘청춘하다’라는 말도 만들어질 수 없다. 물론 ‘밥하다, 나무하다’처럼 동사성이 없는 말에 ‘하다’가 붙어 된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밥을 하다, 나무를 하다’와 같은 표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쓰이면서 단어가 된 경우이다. ‘청춘하다’는 ‘청춘을 하다’라는 말이 없으므로 이런 예도 아니다. 아마 이 말을 만든 사람도 ‘청춘하다’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러 어법에 어긋난 말을 씀으로써 대중의 눈길을 끄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또 유행처럼 일부 계층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보는 글이라는 점에서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다’를 억지스럽게 붙이는 말은 이전에도 일부 광고에서 쓰였다. 식품 광고의 ‘연두해요’, 전자제품 광고의 ‘쿠쿠하세요’, ‘액스캔버스하다’ 등은 제품명에 ‘하다’를 결합하여 동사로 쓴 경우이다. 모두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예들이다. 물론 이런 말들이 광고 전략 면에서는 성공 사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고도 공익을 생각한다면, 참신하면서도 우리말의 질서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4 風文 R 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