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말입니다’ 요즘 군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한 편이 화제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쓰는 말투 ‘-지 말입니다’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말투는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어가 되었다. 최고의 제품이지 말입니다. 역시 봄에는 꽃구경이지 말입니다. 오늘 일찍 퇴근하지 말입니다. 이 ‘-지 말입니다’는 군대의 화법에서 왔다. 군대에서 해요체를 못 쓰게 하기 때문에 ‘-지요’와 같은 말 대신 ‘-지 말입니다’가 쓰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지금은 그 쓰임이 줄었다고 해도 한동안 군대에서 이 말투가 상당 기간 사용되었다. 이 군대식 화법이 드라마를 통해 일반 사회에 전파되어 일시에 유행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화법의 확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말의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다만 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어일 뿐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또 유행어는 지루한 언어생활에 양념 구실도 하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지 말입니다’의 유행이 잘못된 병영 언어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도 같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국방부는 병영 언어문화 개선 지침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른바 ‘다나까’ 말투만 너무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해요’체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개선 지침이 나온 때가 화제의 드라마 첫 방영일과 같은 날이다. 병을 앓고 나면 건강한 면역력이 생긴다. 그렇듯이 어법에 어긋난 말투 ‘-지 말입니다’의 유행이 뜻하지 않게도 군대의 경직된 언어문화를 치료하는 좋은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1 風文 R 860
첫 단추를 ‘꿰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달 열린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 레바논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 신문은 “이로써 한국은 조별 예선 7경기를 모두 무실점 승리로 마치면서 새해 첫 단추를 만족스럽게 꿰었다.”고 전했다. 한편 그날 결승골을 넣은 이정협 선수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첫 단추를 잘 꿰서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첫 단추를 꿰다’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보통은 ‘단추를 꿴다’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단추를 낀다’ 또는 ‘끼운다’라고 말하는데 유독 ‘첫 단추’와 어울려 쓰일 때는 ‘꿰다’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첫 단추를 끼우다’라고 하거나 ‘끼우다’의 준말인 ‘끼다’를 써서 ‘첫 단추를 끼다’라고 해야 한다. ‘꿰다’는 ‘끈이나 실 따위를 구멍이나 틈의 한쪽에 넣어 다른 쪽으로 나가게 하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나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떤 물건을 끈 같은 데 엮어서 연결할 때 쓰는 말이다. ‘끼우다’는 ‘벌어진 틈 사이로 빠지지 않게 밀어 넣다’란 뜻이므로 ‘수첩 사이에 볼펜을 끼우다’, ‘문틈에 편지를 끼워 넣다’처럼 쓴다. 만약 단추의 구멍에 줄이나 실을 통과시켜 목걸이처럼 만드는 것이라면 ‘단추를 실에 꿰었다’라고 ‘꿰다’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옷에 있는 단춧구멍에 맞춰 단추를 잠그는 경우에는 ‘단추를 끼웠다’라고 해야 한다. 물론 ‘끼우다’ 대신 ‘채우다’를 쓸 수도 있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옷매무새가 어그러지지 않는다. 이에 어떤 일의 시작이나 첫 출발을 비유하는 말로 ‘첫 단추’라는 말을 곧잘 쓰는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해야지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고 하면 안 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1 風文 R 955
젠트리피케이션보다 ‘둥지 내몰림 요즘 KBS 월화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배우 박신양씨의 혼신의 연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극중에서 조들호(박신양 분)는 노숙자 방화 살인 사건의 피고인 변지식(김기천 분)의 변호사로서 변지식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변지식은 과거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이 손님들로 넘쳐나자 집주인이 식당을 비우라며 자신을 쫓아낸 것에 격분해 식당에 불을 지른 일이 있었고 담당 검사인 신지욱(류수영 분)은 이 부분을 부각시켜 변지식이 방화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조들호와 맞서는 내용이다. 그런데 변지식이 집주인에게 쫓겨나는 장면을 보면서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말이 떠올랐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을 고급으로 품위 있게 바꾸다’는 뜻의 영어 ‘gentrify’의 명사형으로 본래는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서울의 서촌이나 홍익대 주변처럼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에 문을 연 상점들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임대료가 치솟게 된 결과, 소규모 가게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원래의 동네를 떠나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어일뿐더러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더더욱 언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지난달 ‘말다듬기 위원회’회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둥지 내몰림’으로 다듬어 언중들에게 공포했다. 앞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둥지 내몰림’으로 순화해 사용하자.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1 風文 R 900
배트 플립 미국의 메이저리그 개막을 앞두고 우리나라 출신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내 언론의 경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등장하는 야구 용어로 ‘배트 플립(bat flip)’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타자가 홈런을 치고 나서 배트를 내던지는 행위를 가리킨다. 배트를 들고 뛸 수는 없으므로 손에서 놓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집어던지는 식으로 하기에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를 상대 투수를 조롱하는 비신사적 행위라 하여 금기시한다고 한다. 이 낯선 야구 문화에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적응할지 관심사가 되었고, 그 덕에 ‘배트 플립’이라는 용어도 덩달아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국내 야구팬들은 이를 ‘빠던’으로 부른다고 한다. ‘빠따 던지기’의 준말로서 ‘배트’의 일본식 외래어 ‘빠따’와 ‘던지기’의 첫 음절을 따서 만든 말이다.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이 용어는 2014년에 등장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이 홈런을 친 직후 배트를 던지는 행위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를 다시 국내 언론에서 뉴스거리로 다루면서 ‘빠던’을 비롯해 ‘배트 플립’, ‘배트 던지기’ 등의 용어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배트 플립’이든 ‘빠던’이든 정식 용어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배트 플립’은 낯선 외국어여서 어렵게 느껴지고, ‘빠던’은 속된 느낌이 강하다. 이 말들보다는 ‘배트 던지기’가 훨씬 쉽고 품격이 있다. ‘빠던’은 정식 용어로 잘 쓰이지 않으므로 차치하더라도, ‘배트 플립’과 ‘배트 던지기’는 언론 보도에 비슷하게 나타난다. 언론사에서 이왕이면 더 쉽고 바람직한 표현인 ‘배트 던지기’로 통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0 風文 R 946
마뜩잖다, 마땅찮다 “… 이름을 줄줄이 거론하며 시간을 늘이는 배우들의 수상 소감이 마뜩한 것은 우리만의 일이 아닌 듯하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한 신문 기사 중 일부다. 신세진 사람들을 일일이 거명하는 수상 소감을 금지키로 한, 주최 측의 지침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이 중에 ‘마뜩한’은 잘못 쓰였다. ‘마뜩하다’는 ‘상당히 흡족하다’는 말이므로 여기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마뜩하지 않은’이라고 하거나 준말인 ‘마뜩잖은’으로 써야 한다. ‘마뜩하지 않다’의 준말을 ‘마뜩잖다’로 쓴다고 하면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뜩하지 않다’와 뜻이 비슷한 ‘마땅하지 않다’를 줄여서 ‘마땅찮다’로 쓰는 것처럼 ‘마뜩찮다’로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마뜩잖다’와 ‘마땅찮다’로 각각 구분해 써야 한다. 이는 ‘하지 않다’가 줄어들 때 ‘잖다’와 ‘찮다’ 두 가지로 발음되는 현상을 표기에 반영한 결과다. ‘-하다’로 끝나는 용언의 어간이 어미 ‘-지 않다’와 결합해 줄어들 때는 그 앞소리가 울림소리인지 여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우선 울림소리(유성음: 모음과 ㄴ, ㄹ, ㅁ, ㅇ) 뒤의 ‘하’는 모음 ‘ㅏ’만 떨어지고 ‘ㅎ’은 남아, 뒤에 있는 ‘지’와 결합하여 ‘치’ 소리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울림소리인 ‘ㅇ’ 받침으로 끝나는 ‘마땅’에 ‘하’가 결합한 ‘마땅하지 않다’는 ‘마땅ㅎ+지 않다’로 줄어서 ‘마땅치 않다’가 된다. 이것을 더 줄여 ‘마땅찮다’로 적는 것이다. 반면에 안울림소리(무성음: 유성음을 제외한 모든 소리) 뒤에서는 ‘하’ 소리가 통째로 탈락한다. 곧 ‘마뜩하지 않다’는 ‘마뜩+지 않다’로 줄어들어 ‘마뜩지 않다’가 되고 다시 ‘마뜩잖다’로 줄여서 적는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0 風文 R 999
찬란한 슬픔의 봄 봄은 겨우내 얼어붙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그러나 T.S.엘리엇은 봄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했다. 그는 ‘황무지’에서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며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봄을 잔인한 계절로 묘사한 것이다. 김영랑 시인도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봄을 ‘찬란하지만 슬픈 계절’로 묘사했다. 그런데 ‘찬란’과 ‘슬픔’은 서로 모순되는 말이다. ‘찬란함’은 ‘아름다움’과 ‘빛남’을 표현하는 말이어서 ‘슬픔’과는 호응할 수 없는데도 김영랑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다고 했다. 김영랑은 슬프지만 절망적인 슬픔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아름답고 화려한 슬픔이라는 의미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말을 사용해 의미를 강조하는 역설법은 문학작품에서 많이 사용된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조지훈 ‘승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유치환 ‘깃발’)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상생활에서도 역설적인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때 아닌 호황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창조적인 파괴를 통해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등은 서로 모순되는 말을 사용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들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봄은 ‘잔인한 계절’이 되고 있다. 경기침체와 극단적인 남북 대치상황, 4ㆍ13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뒤숭숭한 분위기까지 겹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꽃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인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10 風文 R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