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듯 대신 ‘주먹구구식’으로 최근 어느 미용사가 뇌병변 장애를 앓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요금을 내게 한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 대우로 상처를 준 데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꼭 그런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표현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뜻이 담긴 말들이 있다. 이런 말을 쓰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요새는 ‘병신’이나 ‘불구자’ ‘절름발이’ 같이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정착된 듯하다. 굳이 장애인을 가리켜야 할 때에도 ‘장님’이나 ‘벙어리’ 대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법정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비유적 표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데서도 ‘벙어리 냉가슴’이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니 하는 표현들을 흔히 쓴다. 어딘가 구색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나타낼 때에는 ‘절름발이 위원회’ 같은 비유를 곧잘 한다. 그러나 이런 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쁜 의도는 전혀 없으며 예전부터 사용하던 속담이나 관용 표현을 쓴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표현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피하는 것이 옳다. 굳이 장애에 빗댄 표현을 쓰려고 하지 말고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든가 ‘주먹구구식’ 등 다른 표현을 찾아보려 애쓸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들을 계속 사용하기보다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표현들을 궁리해 봐야 하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46
단오(端午)의 유래 올해 6월 9일은 단오떡을 해먹고 부녀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널뛰기를 하며 남자는 씨름을 하는 명절인 단오이다. 단오(端午)는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사자성어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지은 이로 알려진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나라가 망하자 이를 한탄하며 자결한 것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되었는데, 매년 음력 5월 5일 초나라 지역이었던 중국 남동부에서 굴원을 기리며 경주를 하고 만두 등의 음식을 해먹는 행사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단오가 되었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처음’, ‘시초’의 의미이고 오(午)는 오(五), 곧 ‘다섯’의 의미이기 때문에 단오는 ‘초닷새’로 음력 5월 5일을 뜻하는 말이다. 음양 사상에서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고 해서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는데, 단오는 양의 수인 5가 겹치는 날로서, 대표적인 길일(吉日)로 알려져 있다. 단오처럼 홀수의 월일이 겹치는 날은 예로부터 길일로 여겨져 왔는데, 음력 1월 1일인 설날,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 음력 7월 7일인 칠석(七夕),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이 모두 홀수의 월일이 겹쳐 예로부터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없는 길일이라고 여겨왔다.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에 제비가 강남으로 갔다가 삼짇날인 음력 3월 3일에 강남에서 돌아온다고 하며 칠석에는 은하의 서쪽에 있는 직녀와 동쪽에 있는 견우가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은하수에 놓은 다리인 오작교(烏鵲橋)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전해진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960
‘그, 느, 드’라는 글자 이름 필자의 학생 한 명은 (3ㄱ)과 같은 예를 ‘삼 기역’이 아니라 ‘삼 그’라고 읽는다. 물론 (6ㄴ)은 ‘육 느’, (12ㄷ)은 ‘십이 드’와 같이 읽는다. 그는 중국 흑룡강성 출신 조선족 유학생이다. 가족 모두 조선어를 사용하는데다가, 고등학교까지 조선족 학교를 다녔으니 한국어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한국어에 서툴러서 ‘삼 그’라고 읽는 것은 아니다. 이 학생이 나고 자란 흑룡강성은 일찍부터 북한 어문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북한의 한글 자음자 이름은 남한과 다르다. 우리는 ‘ㄱ 기역, ㄴ 니은, ㄷ 디귿,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옷, ···’으로 부르지만, 북한은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이라고 한다. 둘 모두 ‘이으’를 기본으로 하여 해당 자음자를 초성과 종성에 붙이는 방식인데, 우리의 경우 ‘기역, 디귿, 시옷’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한글 맞춤법 개정 당시 ‘기윽, 디읃, 시읏’처럼 규칙적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이와 달리 북한은 처음부터 ‘기윽, 디읃, 시읏’으로 하여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이마저도 어렵다 하여 ‘그, 느, 드, 르, 므, 브, 스, ···’와 같은 또 하나의 이름을 정하였다. 즉 북한의 한글 자음자 이름은 두 가지인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한글 자모 이름은 중국의 동포 사회에 그대로 이어졌다. 앞의 학생은 학창 시절 내내 ‘기윽, 니은, 디읃’, 또는 ‘그, 느, 드’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이름이 이제 한국의 남쪽 대학의 한 강의실에 등장한 것인데, 글자 이름 하나에서 새삼 분단의 역사가 느껴진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78
뒤처리, 뒷정리 일의 마무리를 뜻하는 말에 ‘뒷정리’와 ‘뒤처리’가 있다. 단어의 구성과 뜻이 비슷한데 ‘뒷’과 ‘뒤’로 구분해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끔 ‘뒷처리’로 잘못 쓴 표기가 눈에 띄는 걸 보면 이들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뒷정리’는 ‘뒤’와 ‘정리’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이때 중간에 들어간 ㅅ받침은 ‘사이시옷’으로 부른다. 사이시옷은 두 개의 명사가 합쳐져 새로운 말이 만들어질 때, 뒤에 결합하는 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되거나 ‘ㄴ’ 소리가 덧나는 등의 사잇소리 현상이 있을 때 쓴다. ‘나룻배’나 ‘나뭇잎’같은 예가 전형적이다. ‘나룻배’는 ‘나루’와 ‘배’가 합쳐진 말인데, 발음이 ‘나루배’가 아니라 ‘나루빼’ 또는 ‘나룯빼’로 난다. ‘배’의 첫소리인 ‘ㅂ’이 된소리화되어 ‘ㅃ’소리로 나는 것이다. ‘나뭇잎’도 ‘나무입’이 아니라 ‘나문닙’으로 발음된다. 중간에 없던 ‘ㄴ’소리가 첨가되었다. 이처럼 사이시옷은 합성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발음의 변화를 표기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뒷정리’로 돌아와 보면, 이것도 ‘뒤쩡리/뒫쩡리’처럼 발음되므로 사이시옷을 넣어 ‘뒷’으로 적는다. ‘뒷일’을 예로 들어 보면 ‘뒨닐’로 ‘ㄴ’ 소리가 덧나므로 사이시옷을 넣는다. 그런데 ‘뒤처리’에는 그런 발음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이시옷을 받쳐 적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뒤처리’처럼 합성명사를 구성하는 뒤의 요소가 이미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ㅋ, ㅌ, ㅍ, ㅊ)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발음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뒤풀이, 뒤뜰, 뒤탈’ 등 모두 마찬가지다. 요새 ‘뒷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사람’의 뜻으로 ‘뒤태 미인’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때도 ‘뒷태’가 아니라 ‘뒤태’로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58
쉽상이다? 십상이다! 흔히 틀리기 쉬운 맞춤법 실수 중에 ‘~하기 쉽상이다’라는 것이 있다. “돈을 손에 들고 다니다가는 도둑에게 빼앗기기 쉽상이다.” “돈뭉치를 그대로 꺼냈다가는 의심받기가 쉽상이다.”가 잘못된 맞춤법의 예이다. 여기서 ‘쉽상’은 ‘십상의 잘못이기 때문에 ‘~하기 십상이다’로 고쳐 써야 한다. ‘십상(十常)’은 한자어로서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을 의미하는 ‘십상팔구(十常八九)’에서 온 말이다. 십상팔구는 ‘십중팔구(十中八九)’와 같은 의미를 지녀 “전화를 해도 그가 자리에 없을 것이 십상팔구이다.” “늦게 일어났으니 지각은 십상팔구이다.” 등으로 쓰이는데, 보통 줄여서 ‘십상’으로 사용한다. ‘십상’을 ‘쉽상’으로 잘못 쓰는 이유는 ‘~하기 쉽다’의 형태에 익숙하다 보니 ‘~하기 십상이다’를 ‘~하기 쉽상이다’로 잘못 유추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맞춤법을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벌써 실증이 난다.” “진실은 언젠가는 들어난다.” “무리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등이 대표적인 맞춤법 오용 사례들이다. 이 경우에는 “벌써 싫증이 난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로 고쳐 써야 한다. 맞춤법은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의’가 비록 [무리]로 발음되지만 본래의 의미인 ‘어떤 사람의 처사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를 나타내려면 어법에 맞게 ‘물의(物議)’라고 써야 한다. ‘싫증’ 역시 [실쯩]으로 발음되지만 본래의 의미인 ‘싫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싫증(-症)’이라고 써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0 風文 R 1045
‘펑더화이’는 누구? 올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언론에는 이를 조명하는 다양한 기사들이 보이는데, 그 중에 등장하는 인물로 펑더화이가 있다. 기사에서 그는 모택동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에게 타살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펑더화이’는 누구일까? 바로 한국전쟁의 참전 장군으로 잘 알려진 ‘팽덕회(彭德懷)’이다. 장년층 이상은 ‘아, 그 사람’ 하고 바로 알 만한 이름이다. 이 ‘펑더화이’처럼 오늘날 중국인 인명은 원지음에 따라 적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고 ‘공자, 이태백, 조조’까지 모두 그렇게 적기는 어려워서 일정한 기준이 필요한데, 그 기준은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현대인은 원지음에 따라 표기하는 것이다. 신해혁명(1911) 이전에 사망한 이는 과거인, 그 외는 현대인이다. 펑더화이는 현대인이므로 당연히 원지음에 따라 적는다. 그런데 현대인이라고 해도 ‘마오쩌둥(毛澤東), 류사오치(劉少奇), 덩샤오핑(鄧小平), 루쉰(魯迅),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는 우리 한자음 이름이 워낙 익숙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택동, 등소평, 유소기, 노신, 손문, 장개석, 장경국’으로 적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나머지 인물들은 ‘펑더화이’처럼 원지음에 따라서만 적어야 한다. 즉 ‘성룡, 주윤발, 공리’ 등은 더 이상 표준적인 표기가 아니며 ‘청룽, 저우룬파, 궁리’가 올바른 표기이다. 이것이 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므로 복수안을 넓히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이후의 인물인 ‘장쯔이, 시진핑’ 등은 원지음에 따른 인명만 통용되는 것을 보면 새로운 표기 방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는 느낌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18 風文 R 865
괴발개발, 개발새발 요즘엔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편지 보내기까지 이메일로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펜이나 연필보다는 자판을 더 편안해 한다. 특히 젊은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악필’인 사람들이 많다. 삐뚤빼뚤, 되는 대로 글씨를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 표현은 무엇일까? ‘개발새발’ 아니면 ‘괴발개발’? 우리말 관련 퀴즈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제되던 이 문제의 답은 예전에는 ‘괴발개발’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둘 다 정답이다. 본래는 ‘괴발개발’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개발새발’도 최근에 표준어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이다. ‘괴’는 고양이의 옛말로 지금은 ‘괴 밥 먹듯 하다’나 ‘괴 목에 방울 달고 뛰듯’ 같은 몇몇 속담들에만 남아 있다. ‘괴발개발’이란 말은 형편없이 써 놓은 글씨가 마치 고양이와 개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발자국을 찍어 놓은 모양 같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괴’가 고양이를 뜻하는 말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뜻 모를 ‘괴발개발’ 대신 뜻도 분명하고 발음도 쉬운 ‘개발새발’을 더 많이 쓰게 되어 결국 두 낱말이 복수 표준어가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쓰는 ‘쇠털’이 있다. 주로 ‘쇠털 같이 많은 날’처럼 쓰이는데, 이때 ‘쇠털’을 ‘새털’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새털’도 많기는 하지만 ‘쇠털’(소의 털)에 비할 바는 아니고 아직은 ‘쇠털’과 ‘새털’이 분명히 구분되어 쓰이므로 ‘새털 같이 많은 날’처럼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새털’은 대신 ‘새털 같은 발걸음’처럼 아주 가벼운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18 風文 R 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