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의 원칙 띄어쓰기만 보아도 그 사람의 국어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띄어쓰기는 국어의 맞춤법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문이다. 국어의 달인을 뽑는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서 우리말 달인을 검증하는 마지막 문제가 띄어쓰기 문제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띄어쓰기는 어떤 원칙으로 하는 것일까? 한글맞춤법의 제1장 ‘총칙’의 제2항에 보면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는 말의 단위인데, 문장 내에서 단어를 단위로 해서 띄어 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인 것이다. 국어에서 단어는 기능과 형태, 의미에 따라 9가지의 품사, 즉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품사로 분류되는 단어들은 모두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9개의 품사 중에 ‘조사’는 다른 말에 의존하여 쓰이는 형태소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그 앞의 단어에 붙여 쓴다. 예를 들어 ‘3년 만이다’에서 ‘만’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지만 ‘웃기만 하다’에서 ‘만’은 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또한 ‘부모와 자식 간’에서 ‘간’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지만 ‘한 달간’에서 ‘간’은 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그렇다면 ‘집을나선지십분만에주먹만한빗방울이떨어졌다’는 어떻게 띄어쓰기를 해야 할까? ‘나선 지’와 ‘십 분 만’에서 ‘지’와 ‘만’은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쓰고 ‘주먹만 한’에서 ‘만’은 (보)조사이기 때문에 앞말에 붙여 쓴다. 따라서 ‘집을 나선 지 십 분 만에 주먹만 한 빗방울이 떨어졌다’가 바른 띄어쓰기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4 風文 R 1015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문제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상황에서 자막에 ‘정답을 빗겨간’이라고 나왔다. 이 ‘빗겨가다’는 현대국어에 없는 말이다. 옛말에서는 ‘빗기다’라고 하였지만 현대국어에서는 ‘비끼다’이다. 창을 비스듬히 들면 ‘비껴들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면 ‘비껴쓰다’,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면 ‘비껴가다’이다. 그런데 이 ‘비껴가다’와 흔히 혼동하는 말로서 ‘비켜 가다’가 있다. 어떤 대상을 피해서 간다는 뜻으로 ‘진흙탕을 비켜 가다, 세월을 비켜 가다’처럼 흔히 쓰이는데, 아직 한 단어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위 프로그램의 자막에는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중 어느 것을 써야 할까? 출연자가 정답을 맞히지 못하고 피해 간다는 것이니 ‘비켜 가다’가 적합한 말이다. 즉 자막을 정확하게 넣는다면 ‘정답을 비켜 간’이라고 해야 한다. ‘비껴가다’는 두 가지 뜻으로 쓴다. 첫째는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 둘째는 ‘어떤 감정, 표정, 모습 따위가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가다’는 뜻이다. 앞의 의미로는 ‘공이 골대를 비껴가다’, 뒤의 경우로는 ‘서운한 빛이 얼굴을 비껴가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와 같이 ‘비켜 가다’와 ‘비껴가다’는 구별되는 말이다. 위 자막의 ‘빗겨간’처럼 엉뚱하게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도 ‘운명을 비껴간, 세월을 비껴간’처럼 ‘비켜 가다’로 쓸 것을 ‘비껴가다’로 쓰는 잘못을 종종 볼 수 있다. 둘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켜 가다’의 경우 띄어 쓰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비켜나다, 비켜서다’처럼 한 단어로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021
데, 대 ‘찌개’가 맞는지, ‘찌게’가 맞는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재’와 ‘결제’도 마찬가지다. 부장님께 보고서를 승인받을 때는 ‘결재(決裁)’를 써야 하고, 대금을 지급할 때는 ‘요금을 카드로 결제했다’처럼 ‘결제(決濟)’를 써야 하는데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우리말에서 모음 ‘에’와 ‘애’ 소리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 할 때는 구분되지 않는 소리를 구분해서 적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이 말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말인지를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발음상 구분되지 않아 혼동하는 예로 종결 어미 ‘-데’와 ‘-대’를 들 수 있다. 소리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른 뜻을 나타내므로, 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잘 구별해 써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데’와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대’라는 문장을 비교해 보자. 뜻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겠는지. 두 문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말하는 사람이 직접 그 식당에 가 봤는지 여부이다. ‘-데’가 쓰인 첫 번째 문장은 말하는 이가 경험해서 알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 결과를 현재 시점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더라.’처럼 ‘-더라’로 바꿔 쓸 수 있다. 이 ‘-데’나 ‘-더라’로 끝나는 문장에는 가벼운 감탄이나 놀람의 뜻도 담겨 있다. ‘-대’로 끝난 두 번째 문장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들은 말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즉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그 식당이 음식 맛이 좋다고 해.’라는 뜻이다. ‘좋다고 해.’가 줄어서 ‘좋대’가 되었다. ‘-데’에는 ‘더’가 들어있고 ‘-대’에는 ‘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016
민주주의의 의의 국어의 모음은 10개의 단모음과 11개는 이중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모음은 소리를 내는 도중에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는 모음이고 이중모음은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가 달라지는 모음인데, 이중모음의 예로는 ‘ㅘ’, ‘ㅝ’, ‘ㅢ’ 등이 있다. 이중모음은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발음하기가 어려운데, 특히 이중모음 ‘ㅢ’를 주의 깊게 발음하지 않으면 단모음 ‘ㅡ’로 발음하기 십상이다. 이중모음 ‘ㅢ’를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서는 ‘ㅡ’를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에서 ‘ㅣ’를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ㅡ’는 중설모음(中舌母音)으로서 혀의 정점이 입 안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반면에 ‘ㅣ’는 전설모음(前舌母音)으로서 혀의 정점이 입 안의 앞쪽에 위치해 발음되는 모음이다. 따라서 ‘ㅢ’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혀를 입 안의 가운데 지점에서 앞쪽으로 밀어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도중에 혀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 어려움을 고려해 표준발음법에서는 단어의 첫 음절 이외의 ‘의’는 [ㅣ]로, 조사 ‘의’는 [ㅔ]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주의’는 [주이]로 발음할 수 있고 ‘강의의’는 [강:이에]로 발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의의’는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좋을까? ‘민주주의’에서 ‘의’가 단어의 첫 음절 이외의 위치에 왔기 때문에 [민주주이]로 발음할 수 있고 조사 ‘의’는 [ㅔ]로 발음할 수 있으며 ‘의의’의 경우 둘째 음절 ‘의’가 첫 음절 이외의 위치에 왔기 때문에 [의:이]로 발음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의의’는 [민주주이에의:이]로 발음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리한 발음법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3 風文 R 1137
남산 위에 저 소나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의 잘못이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 있었다. 조사 ‘의’는 흔히 [에]로 발음하는데, 그 발음에 이끌려 표기까지 ‘에’로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발음은 그렇게 하더라도 표기는 당연히 ‘의’로 해야 한다. 그런데 ‘남산 위에’는 발음에 이끌려 ‘에’로 잘못 적은 경우라는 게 제언자의 주장이다. 이분의 주장처럼 애국가 가사의 맞춤법이 틀렸다면 큰일이다. 윤치호 선생의 1907년 자필 가사도 ‘남산 우헤’ 즉 현대어로 ‘남산 위에’이니, 유구한 역사 동안 어법에도 안 맞는 애국가를 불러 온 셈 아닌가. 그러나 애국가 가사는 일종의 시요, 따라서 문제의 ‘남산 위에’는 시적 표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적 간결함을 추구하여 ‘남산 위에 있는 저 소나무’와 같은 표현에서 ‘있는’을 생략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동요작가 권오순이 지은 ‘구슬비’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대롱대롱 거미줄에 옥구슬”로 시작하는데, 이는 ‘싸리잎의, 거미줄의’의 잘못이 아니라 역시 서술어가 생략된 시적 표현일 수밖에 없다. 시로서의 애국가의 특성은 곳곳에 보인다. 이어지는 구절 ‘바람서리 불변함은’도 ‘바람서리에 불변함은’에서 조사 ‘에’를 생략한 것이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역시 일반적인 서술 구조가 아니라 시적 축약이요 변형이다. 따라서 ‘남산 위에’를 굳이 ‘의’의 잘못으로 보기보다는 아름다운 시적 표현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시로써 노래로써 표현할 때 더 간절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 아닐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1053
케이크 요새는 미역국과 함께 생일상에 빠지지 않는 게 케이크인 것 같다. 그런데 케이크를 사러 가면 ‘케잌’이라는 표기가 많이 눈에 띈다. ‘케이크’와 ‘케잌’ 중에 맞는 표기는 무엇일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받침에 쓸 수 있는 글자를 제한해 두고 있다.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일곱 글자만 받침으로 쓴다. 그 밖에 ‘ㅋ, ㅌ, ㅍ, ㅊ’ 등이나 겹받침은 쓰지 못한다. 따라서 ‘케잌’이나 ‘라켙’, ‘커피숖’은 모두 틀린 표기다. ‘케이크, 라켓, 커피숍’ 등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받침에 대한 이러한 제약은 외래어에만 해당한다. 외래어가 아닌, 순우리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엌, 밭, 무릎, 꽃’ 같은 표기가 모두 가능하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외래어에는 쓰지 않는 받침을 고유어에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받침소리가 모두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은 그냥 ‘꼳’으로 소리 나지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만나면 ‘꼬치, 꼬츨’처럼 ‘ㅊ’ 소리가 발음이 된다. 따라서 ‘꼿’이나 ‘꼳’으로 적지 않고 ‘꽃’으로 적는 것이다. 그러나 외래어 단어는 그렇지 않다. ‘커피숍’을 예로 들어보면 ‘커피쇼비, 커피쇼베서’처럼 발음하지, 아무도 ‘커피쇼피, 커피쇼페서’로 발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숖’이 아니라 ‘커피숍’으로 적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익’ 대신 ‘케이크’로 적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래어 표기에서는 이중모음 뒤에 k, t, p 소리가 나오면 받침으로 적지 않고, ‘크, 트, 프’로 적도록 하고 있다. 즉 ‘케이크’에서 마지막 음절 앞의 모음이 ‘에이’라고 하는 이중모음이기에 ‘케익’이 아니라 ‘케이크’로 적는다. 이것은 ‘브레이크, 마이크, 스테이크’ 등을 ‘브레익, 마익, 스테익’으로 적지 않는 것과 같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938
디엠지, 디엠제트 DMZ(demilitarized zone)는 교전국 쌍방이 협정에 따라 군사 시설이나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비무장지대’로서 한반도의 경우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해 휴전선으로부터 남ㆍ북으로 각각 2km의 지대에 DMZ가 조성되었다. 이후 DMZ는 남과 북의 화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긴장의 땅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사향노루와 반달곰 등 각종 멸종 위기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DMZ를 한글로 표기할 때 ‘디엠지’로 적어야 하는지, 아니면 ‘디엠제트’로 적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DMZ를 ‘디엠지’라고 부르고 적었지만 그동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디엠제트’가 바른 외래어 표기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는 ‘Z’의 알파벳 자모 이름이 ‘지’가 아닌 ‘제트’이기 때문이다. 만약 ‘Z’를 ‘제트’로 적지 않고 ‘지’로 적는다면 또 다른 알파벳 자모인 ‘G(지)’와 혼동될 수 있어 ‘Z’의 알파벳 자모 이름은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제트’로 나와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Z’의 영국식 영어 발음인 [zed]보다 미국식 영어 발음인 [zi:]로 발음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비록 1970년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영화 ‘마징가 Z’를 사람들은 아직도 ‘마징가 제트’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올해 1분기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를 수정하면서 ‘디엠제트’와 함께 ‘디엠지’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 표제어로 등재했다. 이는 ‘디엠지’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대중의 언어생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는 비무장지대 DMZ를 ‘디엠제트’와 ‘디엠지’, 어떤 것으로 불러도 되겠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7.22 風文 R 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