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형어미 ‘동명사’란 동사와 명사의 기능을 겸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에서는 동사에 ‘-ing’를 붙여 만든다. 국어에서 이와 비슷한 것이 ‘-기’와 ‘-ㅁ/-음’이다. 이들을 ‘명사형어미’라고 한다. “우리는 네가 성공하기를 원한다.”에서 ‘성공하기’는 ‘네가 성공하기’라는 안긴문장의 서술어이면서, 조사 ‘를’이 붙어서 안은문장(전체 문장)의 목적어가 된다. 서술어가 되는 것은 동사의 속성이 있어서, 조사가 붙는 것은 명사의 속성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나는 네가 집에 있음을 알고 있다.”에서도 ‘있음’은 안긴문장의 서술어이자 안은문장의 목적어가 된다. 이런 점에서 ‘-기’와 ‘-ㅁ/-음’은 ‘-ing’와 닮았다. 그런데 ‘-ㅁ/-음’을 적을 때에는 언제 ‘-음’을 쓰고, 언제 ‘-ㅁ’을 쓰는지를 잘 알아두어야 한다. “다름, 돌봄, 설렘, 만듦, 베풂”처럼 모음이나 ‘ㄹ’ 받침 뒤에는 ‘-ㅁ’을 쓴다. 그런데 ‘만듦, 베풂’을 ‘만듬, 베품’으로 잘못 적는 경우가 많다. 소리는 [-듬, -품]으로 나지만 적을 때는 ‘ㄹ’을 살려서 겹받침으로 적어야 한다. ‘살다, 알다’의 명사형을 ‘삶, 앎’으로 적는 이치와 같다. “적음, 좋음, 했음, 있음, 없음”처럼 ‘ㄹ’을 제외한 받침 뒤에는 ‘-음’을 쓴다. 그런데 ‘있음, 없음’을 ‘있슴, 없슴’으로 잘못 적는 경우도 잦다. ‘-읍니다, -습니다’를 구분해서 쓰던 것을 1988년에 표준어규정을 개정하면서 ‘-습니다’로 통일하기로 함에 따라 ‘있습니다/있읍니다’도 ‘있습니다’로만 적게 되었는데, ‘있음’도 ‘있슴’으로 바뀐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혼란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애당초 ‘-슴’이라는 어미는 없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혼란이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21 風文 R 1268
한글 창제의 원리 어제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지 570돌이 되는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은 2013년부터 법정 공휴일로 다시 지정돼 한글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기리고 있는데, 한글의 우수성은 과학적인 창제 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실제 백성들이 사용하는 말을 분석해 소리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글자를 찾아내 자음을 창제했다. 먼저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보고 만들었는데, 여기서 소리가 거세짐에 따라 획을 더해 ‘ㅋ’을 만들고, 소리가 세짐에 따라 ‘ㄱ’을 겹쳐 ‘ㄲ’을 만들었다. ‘ㄴ’은 혀끝이 윗니 뒤쪽에 붙는 모양을 보고 만들었는데, 여기서 획을 더해 ‘ㄷ’을 만들고, 소리가 거세짐에 따라 ‘ㅌ’을, 소리가 세짐에 따라 ‘ㄸ’을 만들었으며, ‘ㄷ’에서 혀가 더 구부러지는 모양을 본떠 ‘ㄹ’을 만들었다. 또한 ‘ㅁ’은 소리를 낼 때 마주 붙는 두 입술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여기에 획을 위로 더해 ‘ㅂ’을, 소리가 거세짐에 따라 ‘ㅍ’을, 소리가 세짐에 따라 ‘ㅃ’을 만들었다. ‘ㅅ’은 아랫니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여기서 획을 더해 ‘ㅈ’을 만들고, 소리가 거세짐에 따라 ‘ㅊ’을, 소리가 세짐에 따라 ‘ㅆ’과 ‘ㅉ’을 만들었다.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여기에 소리가 마찰함에 따라 획을 더해 ‘ㅎ’을 만들었다. 이처럼 세종대왕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분석해 글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이 실제 말하는 것에 가장 가깝게 한글을 창제해 후손들에게 남겼고 한글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후손들은 정체불명의 은어, 줄임말, 외국어 등으로 한글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자성이 필요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20 風文 R 1293
‘한글’이라는 이름 이틀 뒤면 한글날이다. 1443년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1926년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가 ‘가갸날’을 선포한 데서 시작되었는데,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글날이 근대에 시작되었듯이 ‘한글’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지도 오래지 않다. 한글 창제 당시 문자의 이름은 ‘훈민정음’이었는데, 그것이 ‘한글’로 불린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든 이가 누구인지는 주시경, 이종일(독립 운동가이자 국문학자로서 3ㆍ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일인), 최남선 선생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는데, 대체로 학계에서는 최남선 선생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광문회의 회의 석상에서 최남선 선생이 ‘한글’ 명칭을 제안하였고, 이를 주시경 선생이 수용함으로써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최남선 선생도 “조선 상식 문답”이라는 책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한글’의 ‘한’은 크다(大)는 의미와 한나라(韓)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10년이면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조선문, 조선 문자와 같은 명칭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해이다. 그래서 국어학자인 임홍빈 선생은 ‘한글’이 대한제국의 멸망을 수용한 이름으로서, 민족의 아픔과 더불어 운명 극복의 의지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한글의 원래 이름 ‘훈민정음’에도 백성을 사랑하는 뜻이 담겨 있다. 문자가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절, 세종은 백성이 글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어엿비’(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새 문자를 만드셨다. 단순한 이름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한글’에 담긴 민족정신, ‘훈민정음’에 담긴 인간 존중의 정신이야말로 한글의 또 다른 가치일 것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20 風文 R 1288
‘바’의 띄어쓰기 “평소에 느낀 바를 말해라”에서 ‘바’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위 사람은 품행이 방정한바 이에 상장을 수여함.”에서 ‘-바’는 어미 ‘-ㄴ바’의 일부이므로 붙여 쓴다. 둘을 어떻게 구분할까? 먼저 의존명사, 즉 띄어 쓰는 ‘바’를 알아보자. 의존명사는 앞에 꾸미는 말이 있어야 하며 뒤에 조사가 붙을 수 있다. “우리가 나아갈 바를 밝혀 주십시오”에서 ‘바’의 앞에는 수식어 ‘나아갈’이 있으며 뒤에는 조사 ‘를’이 쓰였다. 따라서 여기서 ‘바’는 의존명사로서 띄어 써야 한다. 그리고 이때의 ‘바’는 ‘것, 줄, 경우’ 등과 같은 다른 의존명사들과 의미가 비슷하다. “예절을 모른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것이) 있겠느냐?”, “나는 어찌할 바를(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그렇게 억지를 부릴 바에는(경우에는) 다 그만두자.” 이번에는 어미의 일부, 즉 붙여 쓰는 ‘-바’를 알아보자. 어미는 앞에 오는 어간과 한몸이 되어 한 단어를 이루며 원칙적으로 뒤에 조사가 붙을 수 없다. “네 죄가 큰바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에서 ‘-ㄴ바’는 어간 ‘크-’와 결합하여 한 단어가 되고 뒤에 조사를 붙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ㄴ바’는 어미로서 붙여 써야 한다. 그리고 어미 ‘-ㄴ바’는 앞에 오는 어간의 종류나 시점에 따라 ‘-는바, -은바, -던바’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으며, ‘-(으)므로, -(으)니까, -(었)는데’ 등과 같은 다른 어미들로 대체할 수 있다. “진상을 들은바(들으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인부들을 휘몰아 공사 기간 단축을 강요했던바(강요했으므로) 자연히 인부들이 불만을 가지게 됐다.” “서류를 검토해 본바(검토해 봤는데) 몇 가지 미비한 사항이 발견됐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9 風文 R 1986
숫게? 수케? 수게! 봄에는 암게의 살이 차고 가을에는 수게의 살이 차서 봄은 암게가 제철이고 가을은 수게가 제철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 수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수게’를 적을 때 ‘숫게’ 혹은 ‘수케’ 라고 적거나, 발음할 때에도 [수께] 혹은 [수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수게’의 정확한 표기와 발음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게’의 정확한 표기는 ‘수게’이고 발음 역시 표기대로 [수게]로 발음해야 한다. ‘수게’를 ‘수케’ 혹은 ‘숫게’로 잘못 적는 이유는 개의 수컷을 ‘수캐’로 적고 염소의 수컷을 ‘숫염소’라고 적는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중세국어에서 ㅎ이 덧붙는 ‘ㅎ 곡용어’의 잔재로 ‘살’에 ‘ㅎ’이 덧붙어 ‘살코기’가 된 것처럼 ‘수(암)’ 역시 ‘ㅎ’이 덧붙어 ‘수(암)캐’가 되었다. 이처럼 접두사 ‘수(암)’에 ‘ㅎ’이 덧붙는 표기가 허용된 단어는 ‘수(암)캉아지’ ‘수(암)캐’ ‘수(암)컷’ ‘수(암)키와’ ‘수(암)탉’ ‘수(암)탕나귀’ ‘수(암)톨쩌귀’ ‘수(암)퇘지’ ‘수(암)평아리’ 등 18개 단어다. 나머지는 모두 ‘수(암)게’ ‘수(암)개미’ ‘수(암)거미’처럼 ‘ㅎ’이 첨가되지 않은 형태로 써야 한다. 또한 염소의 수컷을 ‘수염소’가 아닌 ‘숫염소’로 적는 이유는 언중들이 이를 [순념소]로 발음해 사이시옷과 비슷한 소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숫’을 접두사로 사용하는 단어는 ‘숫양’ ‘숫염소’ ‘숫쥐’ 등 3개 단어뿐이다. 나머지는 접두사 ‘수’를 써서 ‘수소’ ‘수게’ ‘수놈’ ‘수나비’처럼 적어야 하고 발음도 표기대로 발음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19 風文 R 1137
한글의 우수성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을 잘 가꾸고 다듬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가끔 ‘한글’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500여 년 전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것은 한글, 곧 우리말을 적기 위한 문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사회적 산물인 언어를 하루아침에 발명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세종께서 한글을 직접 지으신 이유도 중국과는 다른 우리말을 한자로는 적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한글이 뛰어난 ‘문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언어’라고 하면 잘못이다. 그런데 한글의 어떤 점이 훌륭하다는 걸까. 어떤 이들은 ‘새 소리, 바람 소리’ 등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적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것은 한글뿐 아니라 로마자나 키릴문자 등 표음문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그 ‘과학성’과 ‘체계성’에 있다. 글자를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글은 과학적이다. ‘ㅁ’은 입술의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 ‘ㅅ’은 이빨 모양에서 본뜨고,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한글이 체계적이라는 것은 자모를 따로따로 만들지 않고 기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는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기본자인 ㄱ에 획을 더해 ㅋ을 만드는 식이다. 모음의 경우도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한 ‘ㆍ, ㅡ, ㅣ’를 기본 글자로 하고, 나머지는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하거나 조합해서 만들었다. 한글은 이처럼 과학적 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에 하루 한글날만이라도 우리글의 장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겠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9.18 風文 R 1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