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기본법, 문제없다 지난 11월 24일 국어 기본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2012년에 한 단체에서 낸 국어 기본법 위헌 소송에 대한 결론이 난 것이다. 쟁점의 핵심은 공문서를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제14조의 내용이다. 위헌 측의 주장은 공문서에 한자를 배제하고 한글을 전용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는데,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공문서에서 공적 생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므로 국민 대부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한 것이다. 당연한 결론이다. 쉬운 문자를 쓰는 것은 국민의 편의에도 도움이 되지만, 국가의 발전과도 직결된다. 새로운 외국 문명에 맞닥뜨려 황망하던 시절인 근대기에 고종 황제는 공문식을 모두 한글을 기본으로 하여 쓰도록 명하였고(1894년, 칙령 제1호 제14조),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한글로만 기사를 썼다. 이는 모두 쉬운 문자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1883년)에서 한문만 쓰다가, 이후의 한성주보(1886년)에서 한문 전용, 국한문 혼용, 한글 전용의 기사를 나누어 싣게 된 것도 쉬운 문자가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특히 현대처럼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사회에서 문자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한글은 가볍게 달릴 수 있는 트랙과 같은 것이다. 물론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 지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명한 교육 제도를 통해서 이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국민에게는 쉽고 편리하고, 국가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를 쓰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6 風文 R 1144
로마자 표기법(3) 로마자 표기법은 표준 발음을 따라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으므로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자음 사이에서 동화(소리 닮기)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소리대로 적는다. ‘백마’의 발음은 [뱅마]이므로 ‘Baekma’가 아닌 ‘Baengma’로 적는다. 신문로[신문노]-Sinminno, 왕십리[왕심니]-Wangsimni, 별내[별래]-Byeollae, 신라[실라]-Silla. ‘ㄴ’이나 ‘ㄹ’이 덧나거나 구개음화가 되는 경우에도 소리대로 적는다. 학여울[항녀울]-Hangnyeoul, 알약[알략]-allyak, 해돋이[해도지]-haedoji. 격음화(거센소리되기)도 소리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좋고[조코]-joko, 놓다[노타]-nota. 단 체언에서 ‘ㄱ, ㄷ, ㅂ’ 뒤에 ‘ㅎ’이 따를 때는 ‘ㅎ(h)’을 밝혀 적어야 한다. 묵호[무코]-Mukho, 집현전[지편전]-jiphyeinjeon. 경음화(된소리되기)는 로마자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팔당’은 [팔땅]으로 소리 나지만 ‘Palttang’으로 적지 않고 ‘Paldang’으로 적는다는 뜻이다. 경음화를 반영하면 ‘pkk, ltt, kss’와 같이 좀처럼 이어 나기 힘든 자음 셋이 나란히 적히게 되어 도리어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합정[합쩡]-Hapjeong, 울산[울싼]-Ulsan. ‘jungang’은 어디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준강’이 될 수도 있고 ‘중앙’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쓰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읽힐 수 있는 경우에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쓰는 것을 허용한다. ‘준강’이라면 ‘jun-gang’과 같이 써서 ‘중앙’으로 읽히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붙임표를 쓰지 않아도 틀리는 것은 아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6 風文 R 1292
언어는 정신의 지문 소설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 끝마디에 각자 서로 다른 무늬인 지문을 가지고 있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그 사람의 생각과 정신을 반영해 지문처럼 그 사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말이다. 언어에 대한 최명희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라서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자신을 ‘모국어라는 말의 씨를 이야기 속에 뿌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신과 혼이 담긴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혼불’ 등의 소설들을 집필했다. 최명희가 남긴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그와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우리의 정신과 혼이 찍히는 지문과도 같을진대 어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욕설과 비속어를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 포악한 언어들이 그의 정신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 것이고, 습관적으로 외국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우리의 정서와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외국어가 그의 정신에서 우리 고유의 정감과 정서를 점점 배제시키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사람들과 정감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5 風文 R 1161
‘촛불’의 사이시옷 촛불 시국이다. 수백만 개의 촛불이 이 땅의 밤을 밝히고 있다. 촛불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연약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촛불 아래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간절한 염원과 경건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촛불’은 ‘초+ㅅ+불’로 이루어진 말이다. 사이시옷은 ‘고유어+고유어, 고유어+한자어, 한자어+고유어’로 된 합성어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있는 경우 앞말에 받쳐 적는다. ‘촛불’은 고유어+고유어로 이루어진 말로서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예이다. ‘초’는 원래 한자어 ‘燭(촉)’에서 온 말로, 옛말에서는 ‘쵸’라고 하였고, 이후 소리가 변하여 ‘초’가 되었다. 오늘날 이 말은 고유어로 분류된다. 따라서 ‘촛농(-膿), 촛대(-臺)’도 ‘고유어+한자어’로 보아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만일 ‘초’를 그 기원에 따라 한자어라고 한다면 ‘초농, 초대’로 적어야 하겠지만, 오늘날에는 고유어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이시옷 표기를 하는 것이다. ‘찻잔, 찻상, 찻장’ 등의 표기도 같은 예이다. ‘차’ 역시 한자어 ‘茶(차, 다)’에서 왔지만 오늘날 고유어로 인식되는 말이다. 따라서 ‘찻잔’ 등도 ‘고유어+한자어’로 보아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요즘 촛불과 함께 횃불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횃불’은 ‘홰+ㅅ+불’로 이루어진 말이다. ‘홰’는 불을 붙이는 데 쓰기 위해 싸리 등 나뭇가지 따위를 묶어 만든 물건이다. 촛불보다 더 큰 불이이서 격동적인 느낌을 준다. ‘촛불, 횃불’ 모두 사이시옷 표기를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사이시옷은 ‘사람 인(人)’ 자를 닮았다. 온 국민이 마음을 담아 받쳐 든 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그 간절한 바람을 담은 빛이 나라의 미래를 환히 밝혀 주기를 소망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5 風文 R 1288
로마자 표기법(2) 로마자 표기법에서 자음을 표기할 때 주의할 점을 살펴보자. 자음 중에서 ‘ㄱ ㄷ ㅂ’은 모음 앞에 나올 때는 각각 ‘g d b’로 적는다. Gimpo(김포) Daegu(대구) Hobeop(호법).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 나올 때는 ‘k t p’로 적는다. Okcheon(옥천) Wolgot(월곶[월곧]) Hapdeok(합덕). ‘k t p’는 ‘ㅋ ㅌ ㅍ’를 적을 때도 쓴다. kong(콩) Taereung(태릉) Pyeongchang(평창). ‘k t p’는 쓰이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모음 앞에서는 ‘ㅋ ㅌ ㅍ’로 읽고,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ㄱ ㄷ ㅂ’로 읽으면 된다. 된소리는 같은 글자를 두 번 적는다. beotkkot(벚꽃) hotteok(호떡) Ssangrim-myeon(쌍림면). 'ㄹ’은 모음 앞에서는 ‘Guri(구리)’와 같이 ‘r’로 적고,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Chilgok(칠곡)’이나 ‘Imsil(임실)’과 같이 ‘l’로 적는다. 단 ‘ㄹ’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에는 ‘Ulleung(울릉)’과 같이 ‘ll’로 적어야 한다. 두 번째 ‘ㄹ’이 모음 앞에 나온다고 해서 ‘*Ulreung’과 같이 적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 ‘설악’과 ‘대관령’은 각각 어떻게 적어야 할까? ‘설악’을 ‘Seolak’으로 적는 것은 한글 표기에 이끌려 잘못 적은 것이다. [서락], 즉 ‘ㄹ’이 모음 앞에서 실현되므로 ‘Seorak’으로 적어야 한다. ‘대관령’을 ‘Daegwanryeong’으로 적는 것도 한글 표기에 이끌린 오류이다. [대괄령], 즉 ‘ㄹ’이 연이어 실현되므로 ‘Daegwallyeong’으로 적어야 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4 風文 R 1134
국수가 불면 맛이 없다? 우리말은 기능과 형태, 의미에 따라 9개의 품사로 나눌 수 있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조사, 감탄사 등이 그것인데, 명사와 대명사, 수사는 문장에서 주어나 보어와 같은 몸체 역할을 한다고 해서 체언이라고 하고, 동사와 형용사는 체언의 동작이나 상태 등을 서술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용언이라고 부른다. 관형사와 부사는 각각 체언과 용언을 수식하는 역할을 해서 수식언이라고 하고, 조사는 다른 말과의 문법적인 관계를 나타낸다고 해서 관계언이라고 한다. 끝으로 감탄사는 문장에서 독립적으로 쓰여 독립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품사들은 형태가 변하지 않지만 동사와 형용사 등 용언은 어간에 여러 가지 어미들이 붙어 형태가 바뀌는데, 이를 활용(活用)이라고 한다. ‘먹다’라는 동사의 기본형이 실제로 문장에서는 ‘먹으니’ ‘먹으면’ 등의 형태로 바뀌어 사용되는 것이 그 예이다. ‘먹다’가 ‘먹-’이라는 어간에 ‘-으니’ ‘으면’ 등의 어미가 붙는 것처럼 어간과 어미가 일정한 모습을 보이는 동사를 규칙동사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어간과 어미의 기본 형태가 달라지는 동사를 불규칙동사라고 한다. 예를 들어 ‘듣다’ ‘붇다’ 등의 동사는 어간의 받침 ‘ㄷ’이 어미 앞에서 ‘ㄹ’로 변해 ‘들으니’ ‘들으면’ ‘불으니’ ‘불으면’ 등으로 활용을 한다. 흔히 ‘국수가 불면, 체중이 불면’과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수가 불으면, 체중이 불으면’과 같이 말해야 한다. 또한 ‘국수가 불기 전에 드세요’라는 말도 ‘국수가 붇기 전에 드세요’로 말해야 하는데, 이는 기본형이 ‘불다’가 아니라 ‘붇다’이기 때문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4 風文 R 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