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엑스트라 대본의 등장인물란에 이름 대신 복수 접미사나 숫자로 표기되는 배역.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등장과 퇴장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살타 야구에서 공격자의 타구가 수비자의 손에 걸려 자기 팀의 뛰는 놈과 나는 놈을 모두 척살시켜 버리는 불상사를 말한다. 권투에서는 선수와 심판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는 경우를 말하며 세상살이에서는 사랑과 우정을 한꺼번에 놓쳐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겹치는 불행 뒤에는 언제나 겹치는 행운이 뒤따른다. 만약 불행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고 노력을 배가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 불행이 그만한 크기의 행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관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보트 인신매매 황금에 눈이 뒤집힌 파렴치한들이 몇 푼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악마에게 팔아 넘기는 행위. 또는 인간을 상품화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도모하는 모든 행위. 비천한 인간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저질적 표현. 과대망상증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인식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켜 인식하는 정신 병리학적 증세. 인류는 창세기 때부터 이 병을 앓아 왔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말로 아담과 이브에게 과대망상증을 전염 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그 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심증을 굳힏기에 충분하다. 가짜 가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짜처럼 꾸며 놓은 가짜와 진자처럼 행세하는 가짜다. 꾸며 놓은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보다 행세하는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가 한결 비애감을 짙게 만든다. 전자는 물건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후자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걸레 인간들이 방이나 마루나 세간을 닦을 때 사용하는 헝겊으로 낡아서 못 쓰게 된 천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생활용품의 일종이다. 걸레는 다른 사물들에게 묻어있는 더러움을 닦아주기 위해서 자신의 살갗을 찢는다. 대개의 인간들이 걸레들 더러워 하지만 현자들은 걸레에게서 부처의 마음을 배운다. 육안으로 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오물이 산재해 있지만 심안으로 보면 그 자체로써 더 없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게 된다. 천재 수재를 능가하는 인재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사회를 수용할 수 있으나 사회가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재의 죽음은 자살보다 타살에 가깝다. 새 저 세상에서건 이 세상에서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새가 된다.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제일 먼저 새가 된다. 새가 되어 윤회의 길목에 날개를 접고 앉아 그리운 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같은 그리움을 가진 영혼들끼리 같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된다. 사람들은 엽총을 만들어 도처에서 새의 심장을 겨누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그을음 빛의 죽은 미립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멸의 그림자.
Board 추천글 2024.10.18 風文 R 988
정유년은 [달게] 해입니다. 올해는 정유년(丁酉年)이다. 정유(丁酉)에서 정(丁)은 십간(十干)의 넷째로 붉은 색을 상징하고, 유(酉)는 십이지(十二支)의 열째로 닭을 상징한다. 그래서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다. 밝고 뜨거운 기운을 나타내는 붉은 색의 상징과 부지런하게 새벽을 알리는 닭의 상징처럼 정유년에는 온 나라에 항상 밝은 기운이 넘치고 모두가 부지런히 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닭의 해’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닭의 해’를 흔히 [다긔해]나 [다게해]로 발음하기 쉬운데, 이는 틀린 발음이고 [달긔해]나 [달게해]가 바른 발음이다. 그 이유는 겹받침 ‘ㄺ’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하게 되면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으로’는 [다그로]가 아닌 [달그로]로 발음하고 ‘닭을’은 [다글]이 아닌 [달글]로 발음하며 ‘닭이’는 [다기]가 아닌 [달기]로, ‘통닭을’은 [통다글]이 아닌 [통달글]로 발음한다. 그러나 겹받침 ‘ㄺ’ 뒤에 조사가 아닌 명사나 동사 등의 실질형태소가 올 경우에는 비록 모음으로 시작하더라도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지 않고 ‘ㄺ’의 대표음인 ‘ㄱ’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래서 ‘닭 앞에’는 [달가페]가 아닌 [다가페]로 발음하고 ‘닭 위에’는 [달귀에]가 아닌 [다귀에]로 발음하며 ‘닭 우는’은 [달구는]이 아닌 [다구는]으로 발음한다. 또한 ‘닭’이 단독으로 쓰이거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 쓰일 때에도 [닥]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닭’은 [닥]으로 발음하고 ‘닭도’는 [닥또]로 발음하며 ‘닭만’은 [닥만→당만]으로, ‘닭한테’는 [닥한테→다칸테]로 발음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18 風文 R 953
‘개이득’과 ‘개 좋아’ 국어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접두사 ‘개-’의 뜻은 ‘야생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쓸데없는, 정도가 심한’이다. 그러니 ‘개-’가 붙은 낱말을 좋은 뜻으로 쓰기는 어렵다. ‘개살구’나 ‘개떡’처럼 사물을 가리키는 말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언짢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더 흔히 쓰이는 게 현실이다. ‘개이득’이라는 생소한 낱말을 접했을 때, 나는 이 말이 ‘개꿈’처럼 ‘헛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개이득’이 ‘큰 이득’임을 알고는 혼란스러웠지만, 이 말이 ‘개고생’처럼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개이득’과 ‘개고생’의 ‘개-’는 ‘일상의 정도가 넘어선’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물론 부정적으로 쓰이던 ‘개-’가 긍정적인 뜻까지 포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접두사 ‘왕(王)-’은 ‘매우 큰’의 뜻으로 ‘왕소금’, ‘왕만두’ 등에 쓰이는 한편, ‘매우 심한’의 뜻으로 ‘왕고집’, ‘왕짜증’ 등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그러나 명사에 붙을 접두사가 ‘개 좋다, 개 급하다, 개 맛있다’ 등처럼 쓰인 표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개고생’이 ‘개고생하다’로 쓰이는 현상과 대비하면, ‘개 힘들다’가 만들어진 정황은 짐작할 수 있다. ‘정도가 심한/매우 큰’이란 뜻의 접두사 ‘개-’가 서술어와 호응하면서 ‘매우, 무척’이란 뜻의 부사로 변한 것이다. ‘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말의 파괴일까? 언어 변화 이론에서는 낱말이 접사로 바뀌는 변화를 문법화로, 접사가 낱말로 바뀌는 변화는 어휘화로 설명한다. 파괴보다는 변화로 보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18 風文 R 1006
실낙원(Paradise Lost:1655-1667) 1/2 해설 밀턴이 59세에 발표한 서사시 "실낙원"은 영국 문학 사상 최대의 대작일 뿐 아니라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기독교 문학의 두 기둥을 이루는 중요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열 권이었으나 후에 열 두 권으로 개편되어 1667년에 출판되었다. 밀턴은 일찍부터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같은 대작을 쓰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밀턴은 이 "실낙원"에서 구약의 창세기에 기술된 인류 창조를 바탕으로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중심사건으로 서술하면서 신과 인간과의 기본 관계를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통찰하였다. 장님이 된 밀턴이 구술로써 이 서사시를 완성한 것은 1655-1665년 경이라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 학문에 대하여 "조용한 시절에 너를 다시 만나겠다. 이 시끄러운 때가 아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낙원"은 배경이 지상의 어느 한 지점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지옥에 이르는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취급하였다. 실낙원 의 주제는 높은 시상과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제재의 하나이며 오늘날까지 영원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빛과 어둠과의 싸움'과 '선과 악의 투쟁'이다. 그러나 곤란한 점은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흥미를 일으킬 두 인물이 순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햄릿" 등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극적인 정열과 갈등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천진 난만함을 파괴시킨 사탄의 타락은 이 시에서 일관되고 있는 작품의 취지의 하나이다. 밀턴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자비롭고 전능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무질서의 씨가 어떻게 하여 침투해 들어왔는가 하는 것이다. "실낙원"은 그 광대한 구상과 높고도 먼 이상에 경탄할 정도이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그것을 예술적으로 처리한 그의 기교이다. 일찍이 아놀드(M. Arnold)는 그의 저서에서 "밀턴의 완전한 문체는 셰익스피어보다도 뛰어난 것이다. 밀턴은 그 사조와 운율에 있어서 영국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작가 약전 밀턴은 1608년 런던에서 출생했으며 6형제 중 3남이었다. 르네상스 최후를 장식한 휴머니스트인 밀턴의 문학적 생애는 18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수려한 용모와 섬세하고 고상한 취미 단정한 생활로 '학급의 귀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재학 시절부터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1629년 22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최초의 걸작 "그리스도의 탄생의 아침"을 썼다. 1632년에 허튼에 이주하여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정독하고 수학과 음악을 즐기면서6년을 보냈다. 시작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쾌활한 사람", "사색에 잠긴 사람"과"아케이즈"는 1633년에 집필되고 초기의 최고 걸작인 가면극 "코모스"가 1634년에 상연되는 등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638년에는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에 가게 되어 과학자 갈릴레이와 사귀었다. 나폴리에서 조국의 내란의 비보를 듣고 귀국을 결심했다. 그 때 그는 "동포가 고국에서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있을 때 마음 편히 유람을 다니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밀턴은 1652년(46세)에 실명하였으나 1655년부터 "실락원"을 쓰기 시작하여 1665년 말에 완성했으며 1667년에 출판했다. 줄거리 태고 시대 해와 달이 아직 형성되기 이전의 일이다. 신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 두 세계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무수한 혼돈이 있을 뿐 지구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때였다. 우주의 대법칙에 따라 만물을 다스리는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성자(예수)를 후계자로 정하여 모든 신의 위에 있도록 하셨다. 천사들의 환희가 넘치는 하늘에서 재주와 용맹이 빛나는 사탄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 왔으며 천사장으로서 하느님의 다음가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한 반역을 일으켜 다른 재앙을 가져오는 신들을 모아 싸움을 일으켰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의 교만과 불경을 벌하여 바닥 없는 지옥으로 던지셨다. 그 때부터 천국에서는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옥은 어두운 곳이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타락한 사탄은 휴식도 평화도 없는 불꽃의 바다에서 아홉 날 동안 고통을 받으며 혼수 속에 빠져 있다가 겨우 뜨고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일찍이 천국에서 하늘의 영광을 받으며 무상의 광휘에 싸여 찬란한 별들을 무색케 했던 내가 이렇게 파멸과 비참 속에 던져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비록 그 무시무시한 힘에 패하였지만 굳은 결심과 자존심 모멸감은 변치 않았다. 저주와 복수심으로 우리의 대적에게 영원한 싸움을 걸 작정이다" 그리고 바알세불에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불구대천의 성부 앞에 굴복하여 자비를 비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무슨 일에나 선을 쫓아내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악을 행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선이라는 탈을 쓰고 악의 수단을 부리는 것이 우리들의 비운을 만회하는 길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합해야 한다"고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거대한 체구를 일으켜 두 손으로 불길을 헤치며 큰 날개를 펴서 육지에 올랐다. "이게 나의 영토인가? 천국의 광명에 비하면 어둡기만 하구나!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자유다. 천국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지옥에서 지배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동료들을 망각의 불바다에서 헤매게 해서야 될 말인가?" 악마의 대왕 사탄은 악의 천사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 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전에는 천국의 아름다운 천사였던 너희들의 지금의 그 추태는 무엇인가? 깨어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한다" 이 부르짖음에 수많은 악의 천사들은 궐기하였다. 마치 애급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올 때에 메뚜기 떼가 일어나 나일 강 유역을 어둡게 한 것처럼 악의 천사들은 화염을 어둡게 하며 지옥의 허공을 날고 있었다. 사탄은 그들을 총지휘하였다. 그들은 후세의 여러 민족에 의하여 숭배를 받은 악마들로 '몰록', '그모스','아스타롯토', '아스토레드', '림몬' 등이었다. 타락한 천사들이 모두 모였다. 천만의 기치를 휘날리며 무수한 갑옷과 방패 숲과 같은 칼 종소리 북소리에 섞인 마군의 함성은 지옥의 밑바닥을 잡아 찢는 듯하였다. 사탄은 정연한 군대를 검열한 후 오만에 차 있다가 자신 때문에 자신을 따르던 수백만의 추종자들도 곤경을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만군 앞에서 세 번의 울음 소리를 내며 탄식하였다. "너희들 천국의 영체를 이런 지옥에 떨어뜨렸으니 이제 평화는 없다. 누가 굴욕을 당하고 있겠느냐? 앞으로 전쟁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수도에 모여 대회의를 열기로 하였다. 전부터 건축의 신 맘몬이 인솔하는 군대가 지옥의 언덕에서 금속을 파내어 건축에 착수하니 금빛 찬란한 악마들의 전당이 대지 가운데에 교향악과 함께 솟았다. 운집한 악마들은 대회의의 개회를 선언하였다. 그들이 하늘의 천사로 있었던 시절의 권리와 영광을 공공연한 전쟁으로 얻을 것인지 비밀의 간계로써 얻을 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홀을 쥔 왕 몰록은 거센소리로 단연 전쟁을 주장하였다. 여신과 같은 벨리알은 승산이 없으니 이 지옥을 천국과 같이 금은 보화로 꾸며 행복이 깃든 보금자리로 개척하자고 황금 만능설을 내세웠다. 모두가 당당한 웅변이었다. 모든 악마들을 꾸짖으며 사탄의 계획을 지지하였다. 위험한 원정으로 하늘을 침범해도 전능자를 이길 수 없으므로 보다 쉬운 계책을 찾자는 것이다. 그 계책을 세울 한 곳이 있는데 하늘에서의 오랜 예언대로라면 지금쯤 인간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존재들이 창조되었을 것이니 신의 은총을 받은 그들을 악의 자식들로 만들어 창조주 스스로가 그들을 멸망시키도록 하자는 의견이었다. 사탄은 자기가 최고라고 자처하면서 악마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하여 몸소 탐험자가 될 것을 자청하였다.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는 사탄의 희생적인 정신을 찬양하는 소리는 뇌성이 울리는 것 같았다. 사탄의 지옥의 큰 문으로 향하였다. 문은 3중의 철 문 3중의 금강석 문 등 아홉겹으로 굳게 닫혀 있었으며 불꽃에 둘러싸여 있었다. 문 앞에는 두 마리의 괴물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허리까지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하반신은 뱀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체를 구별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시커먼 것이 지옥처럼 무섭게 서서 사탄이 가는 길을 막았으므로 사탄과 일대 격투가 벌어졌다. 지옥이 흔들리 만큼 요란하였다. 뱀의 모습을 한 여인은 "여보 당신이..." 하고 부르며 둘의 사이를 뚫고 들어가 싸움을 말리며 부자지간에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즉 이 마녀는 일찍이 사탄이 말리며 음모를 꾀할 때 등장했던 '죄'라고 부르는 미인이었으며 사탄과 불미스러운 사랑을 맺은 후 임신을 했는데 사탄이 하늘의 대전쟁에 패배하자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죄'의 배에서 나온 것이 무서운 창을 휘두르며 사탄과 싸우고 있는 '죽음'이며 모자는 함께 지옥의 문지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옥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던 '죄'는 남편인 사탄의 모험적 계획을 듣고 나서 그 계획이 성공하면 자기도 축복의 신세계에 들어가 죄의 환락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인류에게는 모든 비극의 씨가 된 그 열쇠로 다시는 닫을 길이 없는 지옥의 큰 문을 당겨 열었다. 지옥은 이 때 열려진 이래로 영원히 인간을 불러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 전개된 암담한 혼돈의 심연은 밑도 끝도 없었고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으며 암흑과 혼돈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냉, 열, 습, 건의 4용사가 혼돈의 심판에 의하여 서로 권위를 다투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도 육지도 불도 아닌 일체를 포함한 대자연의 묘지로서 심연이며 지옥이었다. 사탄은 지옥의 가장자리에서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았다. 광막한 진공에 부딪혀 떨어지면서 방향도 모르고 헤매 다녔다. 사탄은 겨우 혼돈의 왕 카오스와 암흑의 왕 나이트의 원조를 얻어 희망의 피안에 이르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다. 사탄이 개척한 그 발자취는 인간이 타락하기 쉬운 길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이 지옥과 인간계와의 사이에 하나의 큰 다리를 놓은 것이다(이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다)지옥의 마귀들은 낮이나 밤이나 다리 위를 방황하며 인간계의 선한 사람을 유혹하고 악을 조장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구원을 받은 선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의 죄를 지은 인간이 가게 되는 지옥의 길이 이 때에 열린 것이다. 사탄은 하늘의 문 가까이 갔다. 문에는 황금의 쇠사슬이 달려 있었으며 별처럼 빛나는 신세계의 공이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이 때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지구에게 인간의 시조 아담과 이브의 두 사람이 행복에 넘쳐서 환락과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불노 불사의 열매만을 먹고 지내는 것을 보고 계셨다. 다른 한 편에는 이제 갓 창조된 세계를 향하여 사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의존명사의 띄어쓰기 (1) ‘것이 많다.’라고 하면 ‘것’이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먹을 것이 많다.’처럼 앞에 꾸며 주는 말과 함께 쓰면 비로소 ‘것’의 의미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반드시 꾸며 주는 말과 함께 쓰여야만 오롯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명사를 가리켜 ‘의존명사’라 한다. 의존명사는 말 그대로 의존적인 데다가 대개 한두 글자로 되어 있어 조사나 어미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결국 띄어쓰기에서도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게 된다. 조사나 어미는 붙여 써야 하지만 의존명사는 띄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 나위, 노릇, 등(等), 등등(等等), 따름, 따위, 때문, 무렵, 즈음, 터’ 등은 조사처럼 여겨서 붙여 쓰는 경우가 많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수식어가 있어야 하고, ‘으로, 과, 에’와 같은 조사가 붙을 수 있다. 모두 의존명사인 것이다. 따라서 꼭 띄어 써야 한다. (형은 형 나름으로 동생을 도와주려 했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잡이 노릇을 하다/ 울산, 구미, 창원 등과 같은 공업 도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상추, 호박, 고추 따위를 심다/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다섯 시 무렵부터 내리는 비/ 시장할 텐데(터인데) 어서 먹어’) ‘뿐, 대로, 만큼’ 등은 조사로도 쓰이고 의존명사로도 쓰이므로, 그 쓰이는 환경에 따라 띄어쓰기를 달리해야 한다. 명사 뒤에 쓰일 때는 조사로 보아 붙여 쓰고, 동사나 형용사 뒤에 쓰일 때는 의존명사로 보아 띄어 쓰면 대개 틀리지 않는다. (‘내 사랑은 너뿐이야/ 나는 너만 사랑할 뿐이야’, ‘법대로 해라/법에 정해진 대로 해라’, ‘하늘만큼 높은 사랑/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사랑’)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17 風文 R 1309
얼레리꼴레리 어린아이들이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혹은 ‘누구는 오줌싸개래요’라고 또래 아이를 놀릴 때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얼레리꼴레리’는 무슨 뜻이고,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얼레리꼴레리’는 ‘알나리깔나리’의 변이형(變異形)으로 쓰이는 말인데, ‘얼레리꼴레리’ 대신 ‘알나리깔나리’가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알나리깔나리’는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한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던 말인 ‘알나리’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깔나리’를 덧붙여 만든 말이다. ‘알나리’는 접두사 ‘알-’과 명사 ‘나리’가 결합된 말인데, 접두사 ‘알-’은 ‘작은’의 뜻을 더한다. 그래서 ‘작은 바가지’를 ‘알바가지’라고 하고,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알요강’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알나리깔나리’와 같이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후렴처럼 다른 말을 덧붙여 쓰는 말들이 많이 있다. 미주알고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고주알’을 덧붙인 말이고 ‘휘뚜루마뚜루’는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이라는 뜻의 ‘휘뚜루’에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마뚜루’를 덧붙인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어중이’에 ‘떠중이’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이고, ‘주저리주저리’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주저리’를 겹쳐 쓴 말이다. ‘주저리’는 볏짚을 엮어서 김칫독에 씌울 때 쓰는 물건인데, 볏짚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모습에서 유래해 ‘주저리주저리’가 ‘너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17 風文 R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