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이 끝내줘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발음할 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중 하나가 표기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면발’과 ‘보름달’은 경음화시켜 [면빨]과 [보름딸]로 발음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은 이를 표기대로 [면발]과 [보름달]이라고 잘못 발음하기 쉽다. 실제로 귀화 외국인 로버트 할리는 라면 광고에 출연해 “[면발]이 끝내줘요”라고 발음하기도 했다. ‘면발’을 [면빨]로 발음하는 이유는 ‘표준발음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표준발음법’ 제6장에 보면 ‘면-발’과 ‘보름-달’과 같이 ‘합성어 중에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경우에는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수[국쑤]’ ‘돋보기[돋뽀기]’ ‘곱절[곱쩔]’처럼 ‘ㄱ ㄷ ㅂ’ 계열의 받침 뒤에 연결되는 자음은 된소리로 발음하며, ‘갈등[갈뜽]’ ‘발전[발쩐]’과 같이 ‘ㄹ’ 받침의 한자어들은 비록 ‘ㄱ ㄷ ㅂ’ 계열의 받침이 아니어도 된소리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자어 중에는 모음이나 ‘ㄴ ㅁ ㅇ’ 받침 뒤에서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과(內科)[내ː꽈]’ ‘국제법(國際法)[국제뻡]’ ‘난치병(難治病)[난ː치뼝]’ ‘인간성(人間性)[인간썽]’ ‘불감증(不感症)[불감쯩]’ ‘성층권(成層圈)[성층꿘]’의 예들이 그것이다. 이상의 예들처럼 한자어 ‘과(科) 법(法) 병(病)’ 등과 한자어계 접미사 ‘-성(性) -증(症) -권(圈)’ 등이 결합할 때에는 표기대로 발음하지 않고 경음화시켜 발음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8 風文 R 1246
‘손님’인가, ‘손님분’인가 얼마 전 독자 한 분께서 질문을 보내주셨다. 요즘 “팬분께서 주셨어요.” “학생분들은 이리 오세요.” “어머님분들 들어오세요.” “손님분은 가셨어요.” 등과 같이 ‘분’을 많이 쓰는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근래 “커피 나오셨어요.”와 같은 표현이 문제되고는 하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 우리 사회에 경어 표현이 늘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분’의 쓰임이 확대되어 가는 것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일 것이다. ‘분’은 ‘친구분, 동생분, 남편분, 독자분’ 등과 같이 그 사람을 높이는 접미사이다. 이 접미사로써 해당하는 사람을 적절히 대우해 줄 수 있으니 매우 유용한 말이다. 물론 ‘친구이신 분, 동생 되시는 분’ 등과 같이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접미사 ‘분’을 이용하여 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독자분의 의견대로 요즘 ‘분’을 과도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손님분, 어머님분’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손님, 어머님’은 ‘님’이 결합된 말로서 그 자체가 존칭어이므로 ‘분’까지 덧붙이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손님, 어머님’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팬분, 학생분’처럼 존칭어가 아닌 말에 ‘분’을 붙이는 것도 항상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외국 공무원분들이 홍보관을 방문하셨어요.” 등이 예의를 담은 표현인 것은 맞지만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군인들께, 공무원들이’라고 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간결하고 자연스럽다. ‘팬분께서, 학생분들은’도 ‘팬께서, 학생들은’이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분’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쓰는 언어문화를 기대해 본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8 風文 R 1311
로마자 표기법(4) 로마자 표기법에서 성명, 지명 따위의 고유명사 적는 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성명은 성과 이름의 순서로 띄어 쓰고, 이름은 전부 붙여 쓴다. 서양 사람 이름 적듯이 이름을 먼저 쓰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은 한글로 쓸 때나 로마자로 쓸 때나 항상 성을 먼저 쓰는 것이 원칙이다. Min Yongha(민용하), Song Nari(송나리). 이름을 구성하는 각각의 음절은 붙여 써야 한다. ‘Min Yong Ha’와 같이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만약 각 음절을 구분해서 적고 싶다면 ‘Min Yong-ha’와 같이 음절 경계에 붙임표를 둘 수는 있다. 이름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이름 ‘석민’이 [성민]으로 소리 나더라도 ‘*Seongmin’으로 적지 않고 각 음절의 한글 표기를 따라서 ‘Seokmin’으로 적어야 한다는 뜻이다. ‘석민’이 ‘성민’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Han Seokmin(한석민), Han Seongmin(한성민). Gyeonggi-do Suwon-si Paldal-gu(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같이 ‘도, 시, 군, 구’와 같은 행정 지명의 단위는 붙임표로 구분하여 적는다. 반면에 자연 지물명, 문화재명, 인공 축조물명 등은 붙임표 없이 붙여 쓴다. ‘남산, 한강, 불국사’를 로마자로 적을 때는 붙임표를 넣지 말고 그냥 ‘Namsan, Hangang, Bulguksa’와 같이 적으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름에 쓰인 ‘산, 강’ 따위를 구태여 ‘*Nam Mountain’이나 ‘*Han River’와 같이 영어로 번역해서 쓰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은 ‘한’이 아니라 ‘한강’이기 때문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7 風文 R 1210
백살공주? 아이들은 어려서 부모로부터 우리말과 글을 배우게 된다. 부모가 하는 말을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배우게 되고, 좀 더 성장해 글을 적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맞춤법에 맞게 글을 적도록 부모의 지도를 받는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똑바로 쓰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고,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는 사실도 알려 준다. 일례로 ‘백설공주’라고 적어야 할 것을 ‘백살공주’라고 적게 되면 주인공인 백설공주가 오히려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네주는 할머니 왕비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맞춤법에 맞게 한글을 적을 수 있을까. 국어의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즉 국어의 맞춤법은 표준어를 어법에 맞도록 적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평소에 우리 아이들이 일상 대화에서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표준어 대신에 비표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가르마’를 ‘가리마(×)’로, ‘단출하다’를 ‘단촐하다(×)’로, ‘바람’을 ‘바램(×)’으로, ‘투미하다’를 ‘티미하다(×)’로, ‘애먼’을 ‘엄한(×)’으로, ‘천생’을 ‘천상(×)’으로, ‘해코지’를 ‘해꼬지(×)’로, ‘설렘’을 ‘설레임(×)’으로, ‘스라소니’를 ‘시라소니(×)’ 등으로 잘못 사용하다 보면 아이들이 이를 글자로 표기할 때에도 표준어 대신 비표준어의 형태로 잘못 표기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이 일상 대화에서부터 표준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7 風文 R 1209
국어 기본법, 문제없다 지난 11월 24일 국어 기본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2012년에 한 단체에서 낸 국어 기본법 위헌 소송에 대한 결론이 난 것이다. 쟁점의 핵심은 공문서를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제14조의 내용이다. 위헌 측의 주장은 공문서에 한자를 배제하고 한글을 전용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는데,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공문서에서 공적 생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므로 국민 대부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한 것이다. 당연한 결론이다. 쉬운 문자를 쓰는 것은 국민의 편의에도 도움이 되지만, 국가의 발전과도 직결된다. 새로운 외국 문명에 맞닥뜨려 황망하던 시절인 근대기에 고종 황제는 공문식을 모두 한글을 기본으로 하여 쓰도록 명하였고(1894년, 칙령 제1호 제14조),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한글로만 기사를 썼다. 이는 모두 쉬운 문자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1883년)에서 한문만 쓰다가, 이후의 한성주보(1886년)에서 한문 전용, 국한문 혼용, 한글 전용의 기사를 나누어 싣게 된 것도 쉬운 문자가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특히 현대처럼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사회에서 문자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한글은 가볍게 달릴 수 있는 트랙과 같은 것이다. 물론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 지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명한 교육 제도를 통해서 이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국민에게는 쉽고 편리하고, 국가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를 쓰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6 風文 R 1139
로마자 표기법(3) 로마자 표기법은 표준 발음을 따라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으므로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자음 사이에서 동화(소리 닮기)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소리대로 적는다. ‘백마’의 발음은 [뱅마]이므로 ‘Baekma’가 아닌 ‘Baengma’로 적는다. 신문로[신문노]-Sinminno, 왕십리[왕심니]-Wangsimni, 별내[별래]-Byeollae, 신라[실라]-Silla. ‘ㄴ’이나 ‘ㄹ’이 덧나거나 구개음화가 되는 경우에도 소리대로 적는다. 학여울[항녀울]-Hangnyeoul, 알약[알략]-allyak, 해돋이[해도지]-haedoji. 격음화(거센소리되기)도 소리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좋고[조코]-joko, 놓다[노타]-nota. 단 체언에서 ‘ㄱ, ㄷ, ㅂ’ 뒤에 ‘ㅎ’이 따를 때는 ‘ㅎ(h)’을 밝혀 적어야 한다. 묵호[무코]-Mukho, 집현전[지편전]-jiphyeinjeon. 경음화(된소리되기)는 로마자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팔당’은 [팔땅]으로 소리 나지만 ‘Palttang’으로 적지 않고 ‘Paldang’으로 적는다는 뜻이다. 경음화를 반영하면 ‘pkk, ltt, kss’와 같이 좀처럼 이어 나기 힘든 자음 셋이 나란히 적히게 되어 도리어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합정[합쩡]-Hapjeong, 울산[울싼]-Ulsan. ‘jungang’은 어디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준강’이 될 수도 있고 ‘중앙’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쓰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읽힐 수 있는 경우에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쓰는 것을 허용한다. ‘준강’이라면 ‘jun-gang’과 같이 써서 ‘중앙’으로 읽히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붙임표를 쓰지 않아도 틀리는 것은 아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6 風文 R 1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