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정신의 지문 소설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 끝마디에 각자 서로 다른 무늬인 지문을 가지고 있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그 사람의 생각과 정신을 반영해 지문처럼 그 사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말이다. 언어에 대한 최명희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라서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자신을 ‘모국어라는 말의 씨를 이야기 속에 뿌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신과 혼이 담긴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혼불’ 등의 소설들을 집필했다. 최명희가 남긴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그와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우리의 정신과 혼이 찍히는 지문과도 같을진대 어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욕설과 비속어를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 포악한 언어들이 그의 정신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 것이고, 습관적으로 외국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우리의 정서와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외국어가 그의 정신에서 우리 고유의 정감과 정서를 점점 배제시키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사람들과 정감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5 風文 R 1159
‘촛불’의 사이시옷 촛불 시국이다. 수백만 개의 촛불이 이 땅의 밤을 밝히고 있다. 촛불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연약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촛불 아래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간절한 염원과 경건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촛불’은 ‘초+ㅅ+불’로 이루어진 말이다. 사이시옷은 ‘고유어+고유어, 고유어+한자어, 한자어+고유어’로 된 합성어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있는 경우 앞말에 받쳐 적는다. ‘촛불’은 고유어+고유어로 이루어진 말로서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예이다. ‘초’는 원래 한자어 ‘燭(촉)’에서 온 말로, 옛말에서는 ‘쵸’라고 하였고, 이후 소리가 변하여 ‘초’가 되었다. 오늘날 이 말은 고유어로 분류된다. 따라서 ‘촛농(-膿), 촛대(-臺)’도 ‘고유어+한자어’로 보아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만일 ‘초’를 그 기원에 따라 한자어라고 한다면 ‘초농, 초대’로 적어야 하겠지만, 오늘날에는 고유어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이시옷 표기를 하는 것이다. ‘찻잔, 찻상, 찻장’ 등의 표기도 같은 예이다. ‘차’ 역시 한자어 ‘茶(차, 다)’에서 왔지만 오늘날 고유어로 인식되는 말이다. 따라서 ‘찻잔’ 등도 ‘고유어+한자어’로 보아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요즘 촛불과 함께 횃불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횃불’은 ‘홰+ㅅ+불’로 이루어진 말이다. ‘홰’는 불을 붙이는 데 쓰기 위해 싸리 등 나뭇가지 따위를 묶어 만든 물건이다. 촛불보다 더 큰 불이이서 격동적인 느낌을 준다. ‘촛불, 횃불’ 모두 사이시옷 표기를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사이시옷은 ‘사람 인(人)’ 자를 닮았다. 온 국민이 마음을 담아 받쳐 든 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그 간절한 바람을 담은 빛이 나라의 미래를 환히 밝혀 주기를 소망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5 風文 R 1286
로마자 표기법(2) 로마자 표기법에서 자음을 표기할 때 주의할 점을 살펴보자. 자음 중에서 ‘ㄱ ㄷ ㅂ’은 모음 앞에 나올 때는 각각 ‘g d b’로 적는다. Gimpo(김포) Daegu(대구) Hobeop(호법).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 나올 때는 ‘k t p’로 적는다. Okcheon(옥천) Wolgot(월곶[월곧]) Hapdeok(합덕). ‘k t p’는 ‘ㅋ ㅌ ㅍ’를 적을 때도 쓴다. kong(콩) Taereung(태릉) Pyeongchang(평창). ‘k t p’는 쓰이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모음 앞에서는 ‘ㅋ ㅌ ㅍ’로 읽고,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ㄱ ㄷ ㅂ’로 읽으면 된다. 된소리는 같은 글자를 두 번 적는다. beotkkot(벚꽃) hotteok(호떡) Ssangrim-myeon(쌍림면). 'ㄹ’은 모음 앞에서는 ‘Guri(구리)’와 같이 ‘r’로 적고,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Chilgok(칠곡)’이나 ‘Imsil(임실)’과 같이 ‘l’로 적는다. 단 ‘ㄹ’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에는 ‘Ulleung(울릉)’과 같이 ‘ll’로 적어야 한다. 두 번째 ‘ㄹ’이 모음 앞에 나온다고 해서 ‘*Ulreung’과 같이 적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 ‘설악’과 ‘대관령’은 각각 어떻게 적어야 할까? ‘설악’을 ‘Seolak’으로 적는 것은 한글 표기에 이끌려 잘못 적은 것이다. [서락], 즉 ‘ㄹ’이 모음 앞에서 실현되므로 ‘Seorak’으로 적어야 한다. ‘대관령’을 ‘Daegwanryeong’으로 적는 것도 한글 표기에 이끌린 오류이다. [대괄령], 즉 ‘ㄹ’이 연이어 실현되므로 ‘Daegwallyeong’으로 적어야 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4 風文 R 1118
국수가 불면 맛이 없다? 우리말은 기능과 형태, 의미에 따라 9개의 품사로 나눌 수 있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조사, 감탄사 등이 그것인데, 명사와 대명사, 수사는 문장에서 주어나 보어와 같은 몸체 역할을 한다고 해서 체언이라고 하고, 동사와 형용사는 체언의 동작이나 상태 등을 서술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용언이라고 부른다. 관형사와 부사는 각각 체언과 용언을 수식하는 역할을 해서 수식언이라고 하고, 조사는 다른 말과의 문법적인 관계를 나타낸다고 해서 관계언이라고 한다. 끝으로 감탄사는 문장에서 독립적으로 쓰여 독립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품사들은 형태가 변하지 않지만 동사와 형용사 등 용언은 어간에 여러 가지 어미들이 붙어 형태가 바뀌는데, 이를 활용(活用)이라고 한다. ‘먹다’라는 동사의 기본형이 실제로 문장에서는 ‘먹으니’ ‘먹으면’ 등의 형태로 바뀌어 사용되는 것이 그 예이다. ‘먹다’가 ‘먹-’이라는 어간에 ‘-으니’ ‘으면’ 등의 어미가 붙는 것처럼 어간과 어미가 일정한 모습을 보이는 동사를 규칙동사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어간과 어미의 기본 형태가 달라지는 동사를 불규칙동사라고 한다. 예를 들어 ‘듣다’ ‘붇다’ 등의 동사는 어간의 받침 ‘ㄷ’이 어미 앞에서 ‘ㄹ’로 변해 ‘들으니’ ‘들으면’ ‘불으니’ ‘불으면’ 등으로 활용을 한다. 흔히 ‘국수가 불면, 체중이 불면’과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수가 불으면, 체중이 불으면’과 같이 말해야 한다. 또한 ‘국수가 불기 전에 드세요’라는 말도 ‘국수가 붇기 전에 드세요’로 말해야 하는데, 이는 기본형이 ‘불다’가 아니라 ‘붇다’이기 때문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4 風文 R 1165
로마자 표기법(1) 지역명을 알려주는 표지판, 지하철 노선도의 역명에는 한글과 로마자를 병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명함 뒷면에는 자신의 이름과 소속 기관명, 주소 등을 로마자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우리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외국인과 맞닥뜨리는 일이 부쩍 많아지면서, 로마자 표기법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로마자 표기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볼까 한다. 로마자 표기법은 발음을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글 표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는 소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종로’를 한글 표기에 이끌려 ‘Jongro’로 적을 것이 아니라, 실제 실현되는 소리인 [종노]를 따라 ‘Jongno’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모음 표기에서 주의할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ㅓ’는 ‘eo’로 적어야 한다. ‘정동’은 ‘Jeongdong’이 된다. ‘정’을 ‘jung’으로 적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적으면 ‘중’으로 잘못 읽힐 수 있다. ‘영등포’는 ‘Yeongdeungpo’로 적어야 한다. 영어 ‘young’에 이끌려서 ‘영’을 그와 같이 적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이처럼 영어식 표기나 발음에 이끌려서 ‘위’를 ‘we’로 적는다든지, ‘비’를 ‘bee’로 적는다든지, ‘우’를 ‘woo’로 적는다든지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모두 로마자 표기법에는 어긋난다. ‘위’는 ‘wi’로, ‘비’는 ‘bi’로, ‘우’는 ‘u’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ㅢ’를 로마자로 적을 때는 발음을 따르지 않고 예외적으로 표기를 따른다. ‘희’는 [히]로 소리가 나지만 ‘hi’로 적지 않고, 표기를 따라서 ‘hui’로 적는다는 뜻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3 風文 R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