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如干)과 심상(尋常) 우리말 중에는 부정을 나타내는 ‘아니다, 없다, 못하다’ 등의 표현과 함께 쓰이는 말들이 많이 있다. 먼저 ‘여간(如干)’은 그 상태가 보통으로 보아 넘길 만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통으로’ ‘어지간하게’의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잘하다’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여간 잘한다.’가 아니라 ‘여간 잘하지 않는다.’로 써야 한다. ‘여간 잘하지 않는다.’는 보통으로 잘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이상으로 매우 잘한다는 뜻이다. ‘여간’처럼 항상 부정어와 어울리는 부사로는 ‘별로’ ‘절대로’ ‘도저히’ 등이 있다. 그래서 “겨울을 별로 싫어해요”는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로 고쳐 말해야 한다. 부사뿐만 아니라 형용사 중에서도 부정어와 어울리는 말들이 있는데, ‘심상하다’ ‘대수롭다’ ‘칠칠하다’ 등이 그것이다. ‘심상하다’에서 ‘심상(尋常)’은 고대 중국에서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던 말인데, 심(尋)은 ‘여덟 자’를 상(常)은 ‘열여섯 자’를 뜻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심상하다’는 ‘중요하지 않고 예사롭다’는 뜻의 형용사인데, 주로 ‘심상치 않다’의 형태로 쓰여 ‘예사롭지 않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대수롭다’는 ‘대단한 것’을 말하는 명사 ‘대수’에 접미사 ‘-롭다’가 결합해 ‘중요하게 여길 만하다’를 뜻하는데, 주로 ‘대수롭지 않다’의 형태로 쓰인다. ‘칠칠하다’는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뜻인데, 역시 부정어와 어울려 ‘칠칠하지 못하다’ ‘칠칠치 못하다’의 형태로 사용된다. 이외에 ‘안절부절못하다’ ‘주책없다’ 등의 표현도 부정어와 결합해 사용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2 風文 R 1310
표준어와 교양 얼마 전 학생들이 표준어를 주제로 발표 수업을 하였다. 학생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사정 원칙을 소개하면서,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교양이 없는 사람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학생들이 조사한 바로는 그 정의는 ‘표준어를 못 쓰면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표준어 규정의 해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추론에 도달하게 된다. 표준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설명은 창원 지역 학생들에게는 꽤 불만스러운 것이다. 학생들은 표준어를 잘 알기는 하지만 자신이 표준어 화자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더욱이 부모, 친척 등 주위 사람들은 강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말한다. 그러니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표준어 사정의 기준일 뿐이다. 서울말이라고 해도 나이, 성별, 학력 수준, 거주 기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어떤 서울말로 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정했든, 표준어의 본질은 온 국민이 공통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기로 정한 공용어다. 즉 ‘공통적인 말’이지, ‘교양 있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 공통적인 말을 정하기 위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을 골랐을 뿐이다. 물론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방언을 쓰면 교양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 방언을 쓰더라도 필요한 경우에 표준어를 쓸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래야만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지역 방언을 쓰는 사람들로서는 오해할 만한 여지가 크다. 다른 식으로 표준어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는 없을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2 風文 R 1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