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Prestuplenie i nakazanie:1866)-도스토예프스키 1/2 해설 "죄와 벌"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로 작가가 45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지식인 청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해부하여 그 당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합리주의 공리주의 허무주의에 날카로운 비판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불후의 명작이며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865년으로 언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쪼들리는 생활을 했으며 이 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에 아내와 형이 죽었고 그 때까지 형과 함께 경영하던 잡지사가 형의 죽음으로 실패하자 사업을 하면서 지게 된 모든 빚을 그가 짊어지게 되었다. 또한 형의 유가족의 생활까지 도맡게 되었다.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고심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발표된 당시 진보적 청년들에게 조국의 급진적인 개혁 운동을 조소하고 앞에 나선 젊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모독하고 헐뜯은 작품이라고 하여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것은 작품의 인물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유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을 풍자했으며 라즈미힌이란 인물의 입을 빌어 사회주의의 기계주의적인 합리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추상적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간성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허무주의 또는 초인간주의와 하느님의 진리와의 투쟁에 대한 해답으로 "죄와 벌"을 내놓은 것이다. 대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학자금이 떨어지고 거의 기아 지경에 빠졌다. 그는 작은 하숙 집의 지저분한 구석 방에 처박혀 있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두뇌는 공상적인 이론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다가 마침내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기존의 도덕 및 법률에 복종할 의무를 가졌으나 선택된 비범한 사람은 법률을 무시해도 되는 권리를 가졌고 창조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파괴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없이 새로운 인류의 도덕은 수립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이론으로 자기 자신을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는 무가치한 전당포 노파의 돈을 훔쳐 가치 있는 자신이 쓰는 것이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노파를 살해한 순간부터 그의 내부에서는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과 정의라는 양심이 의지와 대항하여 그의 내면 세계에서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그를 정신 착란 상태에 던지고 그의 마음을 고독하게 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불안과 공포에 찬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으나 끈질기게 의심하는 경찰에게는 대담하고 교만한 태도로 대하는 등 극단적인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순결한 영혼을 가진 매춘부 소냐의 영향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을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의 범행을 고백하여 자신을 법의 손에 넘기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영혼이 가장 깊은 곳까지 정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형지의 죄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덕이 어떠한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범의 심리와 인간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치밀한 심리 분석과 연극의 대사를 읽는 듯한 대화의 맛은 물론 싱싱하게 살아 있는 등장 인물의 완성된 성격 묘사 그러한 것을 에워싼 작가의 위대한 정서는 천재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치밀한 심리 분석과 묘사의 긴장감은 이 작품의 생명이다. 이 작품이 심리학계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던 것도 당연하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의 한 사람이며 깊은 사상성과 문학의 현대화의 의미에서 으뜸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빈민 병원의 관사에서 태어났다. 원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성은 나라에 공을 세운 것에 의해 '도스토예프스키'영지와 더불어 성을 수여 받은 러시아의 귀족의 성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말경부터 가세가 기울어져 도스토예프스키가 출생하였을 당시에는 형편없이 몰락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귀족이라기보다 오히려 잡계급의 처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출생부터 빈민의 비참한 생활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었다. 1848년(27세)에 무미 건조한 군대 생활에 진력이 나 사표를 제출하고 극도의 빈곤과 싸우면서 처녀작 발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듬해 봄에 동창 그레고로비치의 소개로 시인 네클라소프가 편찬하는 문집에 첫 작품을 게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평계의 권위자인 벨린스키를 경탄시킨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발표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는 누추한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편집자인 시인이 읽어 줄지는 몹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깊이 잠들고 있는 새벽 네 시경, 네클라소프와 그리고로비치가 찾아와서 방문을 두들겼다. 두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은 진리를 계시하였소. 당신은 예술가로서 그 진리를 부여받은 것이오. 그 재능을 소중히 다루어 언제까지나 진리에 대해서 충실히 한다면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오" 두 사람은 그 날 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되어 밤을 새워가며 다 읽었다. 그들은 서로 울고 있었다. 흥분을 참지 못한 이 유명한 시인 네클라소프는 작가를 만나서 그 감상을 전하기 위해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무명의 천재를 방문했던 것이다. 네클라소프는 '새로운 고골리가 나타났다'라고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추천한 대 비평가 벨린스키는 처음에는 '요즘에는 우후죽순 같이 새로운 고골리들이 튀어나온다니까' 하고 말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작품을 읽은 다음 격찬하며 "그 사람을 데리고 오시오!"라고 외쳤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널리 소개하였다. 그의 처녀작은 압도적인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다투어 그를 자신들의 모임에끌어갔다. 무명의 청년은 일약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서 첫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급속한 성공은 얼마 못가 그에게 압도적인 찬사를 뿌린 사람의 배반으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벨린스키 일파와 그는 전혀 융합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벨린스키는 그에게 실망을 표시하였다. 그 후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다. 1848년 당시 파리에 일어난 1월 혁명 이래 공상적 사회주의가 유럽 전체에 풍미할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연구 단체가 여러 개 조직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트라셰프스키 학회'였다. 이것은 페트라셰프스키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저서를 연구하고 러시아의 사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푸리에주의의 정치 사상 연구 단체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도 가입하고 있었다. 당시의 니콜라이 1세의 전제 정치는 이것을 사상적인 음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 결사로 간주하고 벨린스키 주위에 가까이 있던 30여 명 의 젊은 자유 사상가들을 체포하였는데 그도 그의 형제와 함께 붙들려 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귀족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8개월 간 감옥에 갇혀 있다. 공개 심문을 받은 후 수 명의 청년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49년 12월 공공 광장의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공포와 싸우면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눈에 문득 멀리 바라보이는 교회당의 금빛 십자가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어쩐지 거룩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군중이 떠들썩하더니 황제의 특사에 의하여 사형을 사면한다는 사면장을 휴대한 전언자가 달려왔다. 사형은 취소되고 대신 4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 받게 되었다. 사형 집행의 경험은 후에 "백치"의 주인공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 후 3일 후 쇠사슬에 묶여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로글리스크의 노역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4년이라는 긴 세월을 흉폭한 살인수의 넋과 사귀며 괴로운 노역에 종사하며 무서운 고독감과 절망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 겨우 허용된 한 권의 성경을 벗삼아 지냈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고관의 도움을 받아 군인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186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지 7년만에 "죄와 벌"을 발표하였고 명성을 다시 되찾았으며 이듬해에는 안나 그리고예브나와 재혼하여 다시 외국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교활한 출판업자와 계약하여 기한까지 신작 소설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의 저작권 전부를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되었는데 이 기간 안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용한 속기사였다. 그는 4년의 세월을 독일 이탈리아 등의 객지에서 이 성실한 위안자의 따뜻한 사랑 속에 행복한 생활을 보내면서 불후의 명작 "백치" 및 "악령"과 "영원한 반려"를 발표하였다. 그는 1875년에 "미성년"을 그리고 1879-80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발표하였다. "미성년"은 영혼과 육체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해 파멸한 벨시로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영원한 여성인 소피아를 대립시켜 인간성의 근원적인 문제 즉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과의 대립 상극을 원숙기에 도달한 그의 예술적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이며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예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이 천재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인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해답을 준 걸작이었는데 제2부를 구상만으로 그치고 인류의 고뇌를 예술화한 그는 사망하였다. 1880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의 동상 제막식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연설은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 축전은 오히려 그 자신의 천재 찬미를 위하여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명한 연설은 그가 행한 최후의 연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애와 신에 대한 반항과 문제 제기였으며 인간성의 해부와 서술은 고금을 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그는 슬라브주의에 속하는데 그의 작품은 주로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서구의 문명을 존중한 작가인데 반하여 그는 러시아 사람의 민족성을 깊이 사랑했으며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슬라브의 혼 그대로를 보여 준 작가였다. 그는 종교의 힘이 엄격하였던 중세기를 거쳐 근대 문명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복잡해진 러시아의 혼을 그대로 새겨 놓은 슬라브를 그려 냈다. 끝없이 깊은 넋으로 끝없이 깊은 민족 전체의 마음을 그려낸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호 톨스토이와 아주 대비되는 작가이다. 톨스토이가 외적 현실이나 생활의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실을 확증한데 반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생활과 현실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암흑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형상화했다. 크로포토킨, 로맹 롤랑 등이 톨스토이를 옹호하는 데 반하여 니체, 앙드레지드 등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단연 톨스토이를 능가하는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신을 잃은 인류의 실존적 혼돈의 문제에 절실한 빛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인 작가라는 것만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줄거리 7월 초의 무섭게 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젊은 사나이가 C골목의 어느 셋방에서 나와 방향없이 K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운좋게 계단에서 하숙집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을 모면했다. 그의 방은 높은 5층의 다락방인데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벽장 같았다. 주인 여자는 그의 아래층에 살고 있었으므로 거리에 나갈 때는 항상 계단 쪽으로 열려 있는 주인집의 부엌 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젊은 사나이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으레 병적인 불안을 느꼈으며 그런 기분에 휘말리는 것이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되어 상을 찌푸리곤 하였다. 하숙비가 상당히 밀려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은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인데 얼마 전부터 그는 우울증에 잠겨 불안스러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 안에 틀어박혀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하고 만나는 것을 피해 왔던 것이다. 그는 가난해서 꼼짝 못할 지경에 처해 있었으나 그것도 요즘에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꼭 해야만 할 일감도 그는 내던져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하숙집주인 여자 따위가 자기에 대하여 어떠한 일을 생각해 낼지라도 겁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단 위에서 붙잡혀 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저분한 헛소리나 귀찮은 독촉이나 넋두리를 대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고양이처럼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와 몰래 슬쩍 달아나는 편이 나왔던 것이다. 거리에 나와 보니 자신이 빚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였다는 데 어이가 없었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생각했다. '어떠한 일이든 실행하려고 생각하면서 이런 하찮은 일에 겁을 먹다니! 흥 그렇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는데도 그저 겁 많은 탓으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건 확실한 논리이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새로운 독자적인 말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좀 말이 많다. 말만 떠벌리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이건 내가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저 방 속을 뒹굴면서...꿈같은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 떠버리 노릇을 배워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무얼하려고 걷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진심에서 나온 생각일까? 천만에 천만에 진심에서라니! 그저 공상으로 혼자 좋아하고 있는 것뿐이다. 장난이다! 진짜 장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이라스콜리니코프는 무엇하러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그가 중얼거리던 '그 짓'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달 전쯤에 그는 고리 대금업과 전당포를 하는 한 노파를 알게 되었다. 노파 아료나 이바노브나는 어떤 대학 교수의 미망인으로 백치인 누이 동생 리자베타를 부리면서 심술 사나운 욕심으로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짓을 공상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 공상은 몸서리치도록 잔인한 것이었으나 퍽 유혹적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그 짓을 해도 괜찮다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오히려 조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그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실행함에 있어서 전혀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그 계획의 장소인 노파의 집을 탐색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가지고 나왔다. "무엇하러 왔지?" "저당잡힐 걸 가져 왔어요" "하지만 지난 번 것이 벌써 기한을 넘겼어 어제로 꼭 한 달이야" "그럼 한 달 동안 이자를 드리지요. 조금만 더 참아 주세요" "하지만 기다리건 팔아치우건 내 마음대로야" "아무튼 이 은시계로 좀 많이 쳐 주십시오"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것만 들고 온담 요전에도 당신에게 반지에 두 장이나 내줬지 그것도 보석상에 가면 새 것을 한 장 반이면 살 수 있단 말이야" "한 4루블쯤 빌려 주세요. 꼭 찾아가겠어요. 아버지의 유품이거든요. 곧 집에서 돈을 부칠 것이라니까요" "1루블 반이야. 이자는 미리 제하고" "1루블 반이라구요! 어림도 없어요" "좋을 대로 하시지" 노파는 시계를 도로 내밀었다. 그는 약이 올라서 그대로 돌아서려 하였으나 다른 데라곤 갈 데도 없고 여기 온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마음을 돌렸다. 무뚝뚝하게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노파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으며 커튼 쪽으로 가서 장롱을 열고 돈을 꺼냈다. 그는 온 신경을 귀로 집중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노파가 돌아왔다. 지난 달의 이자와 요번의 이자를 미리 제하여 그가 받은 돈을 겨우 1루블 15카레치카에 불과했다. 그는 돈을 받은 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주저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료나 이바노브나, 곧 다른 물건을 가져 오려는데... 은으로 만든...훌륭한... 담배갑인데요..." "그건 그 때 얘기하지" "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 참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든지 혼자 계시는 것 같군요. 누이 동생은 어디 나갔나요?" "내 동생에게 볼 일이 있나?" "아니오. 별로... 그저 한 번 물어 본 것 뿐입니다. 그걸 할머닌 그렇게 말씀하시긴...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료나 이바노브나!" 라스콜리니코프는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아아 참! 더러운 생각이다! 정말 나는... 그것은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할까! 무엇보다도... 이 추잡하고 더러운 생각이 아아 싫다! 정말 싫다! 나는 온통 한 달 동안이나..."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맥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하였다. 이 술집은 지저분했고 손님들도 후즐근하게 보였다. 그들 속에서 50세쯤 보이는 늙고 초라한 관리인 듯한 사나이가 미친 듯이 그러나 빛나는 눈초리로 머리칼을 쥐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나이는 라스콜리니프를 보자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마르메라도프라는 사람으로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던 관리였으나 술 때문에 몇 차례나 지위를 잃었음에 또 다시 술에 빠져 버리고 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 우습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한 말투로 라스콜리니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침대에 꼬꾸라져 있었습죠. 지독하게 곤드레가 되어서 말이지요...그 때 문득 딸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소냐는 순진하고 얌전한 애에요. 목소리도 퍽이나 부드럽죠... 머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좀 파리하지만 품위가 있지요... 그 애가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겠소. '어머니 내가 꼭 그런 일을 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라고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다알리아 프란츠오브나라는 악독한 포주 노파가 내 처를 통해 벌써 서너 번이나 유혹해 왔기 때문이죠. 그러자 '그게 어떻단 말이냐' 하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코웃음 치며 대답하지 않겠소. '무엇이 그리 소중히 모셔 둘 물건이냐? 무슨 큰 보배도 아니겠고'라고요. 하지만 아내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병은 나빠지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울고불고하니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기분이 되어 마구 쏘아붙인 말이지요. 화풀이로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지요... 원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성질이 그래서 아이들이 비록 배가 고파서 울어도 곧 때려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날 다섯 시가 넘자 소네치카(소냐의 애정)는 일어나서 목도리를 감고 모자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가더니 여덟 시 넘어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 그대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곁으로 가서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아무말 없이 1루블 짜리 은화를 서른 개 올려 놓지 않겠소? 그리고 말 한 마디 않고 집 안의 커다란 초록빛 목도리를 들고 그것은 식구들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목도리지요. 그것으로 머리를 푹 뒤집어 쓰고 벽쪽을 향해 몸을 돌려 침대에 쓰러져 버리지 않겠소. 가냘픈 어깨하고 조그마한 몸이 언제까지나 떨고 있을 뿐...그런데 나는 그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누워 있었지요... 술에 취해 있어도 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젊은 선생님 얼마 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마찬가지로 말 한 마디 없이 소냐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밤새 그 아이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그 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좀처럼 일어서려고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두 사람은 그대로 같이 잠이 들어버렸지요. 껴안은 채 말이지요... 둘이서... 둘이서... 그래요... 그런데도 나는 곤드레가 되어 누워 있었다오" 그의 부인인 카테리나는 귀족의 자녀가 다니는 여학교를 나왔으며 지체 있는 집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병으로 병약해져 언제나 기침을 콜록이며 신경질적이며 남편을 증오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여인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마르메라도프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미칠 듯한 마음으로 한 푼이라도 가져오기를 기대하며 마르메라도프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양말을 팔다 못해 딸이 매춘을 해서 번 돈으로 값싼 술을 마시면서 그날그날을 술 없이는 못 사는 것이었다. 소냐는 전처가 낳은 딸인데 순진하고 온순한 처녀였다. 그러나 이제는 황색 감찰을 가진 매춘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는 괴로워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묵묵히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이 가엾은 주정뱅이를 위로하며 친히 부축하여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르메라도프가 사는 집은 페테르부르크 지저분한 뒷골목에 있었다. 커다란 건물의 내부는 어둠침침했고 4층 구석에 통로로 되어 있는 형편 없는 방이었다. 카테리나는 문턱에 무릎을 꿇은 남편의 모양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아아! 돌아왔군! 짐승! 짐승! 돈은 어디 있어요! 호주머니를 뒤집어 봐요. 어머나 옷도 달라졌어! 그 옷은 어떻게 했어요? 돈은 어디 있어요? 어서 말해요! 돈은 어디다 두었을까? 아아 또 들이마셨나 봐! 상자 속에 은화가 열둘이나 남아 있었는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분에 못 이겨 남편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방 안으로 끌어 넣었다. 마르메라도프는 온순하게 아내가 끄는 대로 제 무릎 걸음을 걸어 아내의 힘을 덜 들이게 했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말단사원 하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도 받는 대우는 가장 적은 고용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제일 먼저 참혹한 겨울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은 따스함에도 쉽게 언 가슴이 녹고 작은 감동에도 쉽사리 눈시울이 젖는다. 아직 기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공처가 마누라에게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편들을 일컬어 공처가라고 한다. 공처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경처가가 되는데 마누라 옷자락만 스쳐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편들을 말한다. 모두 마누라를 상전처럼 떠받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공처가나 경처가로 만드는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포기한 여자다. 사랑 받기를 포기하고 존경받기를 갈망하는 여자다. 남편의 가슴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머리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여자다. 비록 평지풍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애처가보다 행복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구파 학점구걸파의 준말. 개밥그릇 개의 먹이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모든 그릇. 고드름 겨울의 수염. 동장군의 이빨. 북풍의 발톱. 편지 자신이 생각이나 마음을 문자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통신수단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자의 발생연대와 편지의 발생연대는 동일하다. 포괄적 개념으로 정리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이 편지나 다름없다. 오늘날은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이용된다.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인생을 바꾸게 만들고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영혼을 구원케 만든다. 봄날의 햇빛 속에 흩날리는 꽃잎도 겨울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눈보라도 소식의 천사 가브리엘이 배달하는 하나님의 편지다. 그 속에 온 우주가 아름답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벽 일반적으로 어느 지역이나 지점을 수직의 면으로 가로막아 공간을 한정시키는 설치물을 벽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점을 벽이라고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들은 마음 안에도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어떤 군주들은 악법으로 써 나라의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온 백성을 가둔다. 벽은 가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벽이 없는 인간은 마음밖에도 벽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자유인이다.
Board 추천글 2024.10.25 風文 R 484
고급지다 우리는 규범을 근거로 언어 사용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받으며 사용되던 말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 말을 근거로 규범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고급진 옷차림을 한 남자”나 “실내 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졌다.”는 요즘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규범에는 맞지 않는다. 규범대로라면 ‘고급지다’는 ‘고급스럽다’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규범의 제약에도 ‘고급지다’는 더 널리 쓰이면서 도리어 규범을 바꿀 기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고급지다’가 ‘고급스럽다’를 대체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접미사 ‘-지다’와 ‘-스럽다’의 의미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접미사가 ‘그런 성질이 있음’이란 의미를 공유하더라도 그 쓰임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 값지다 × 값스럽다 ○ 멋지다 ○ 멋스럽다 × 사랑지다 ○ 사랑스럽다 ? 고급지다 ○ 고급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용법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지다’가 널리 쓰이게 되니 규칙의 호위를 받지 못하는 규범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고급지다’의 확장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지다’가 확장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다’와 ‘-스럽다’의 쓰임에 ‘고급지다’를 유추할 수 있는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멋지다’와 ‘멋스럽다’는 모두 가능한데, ‘멋스럽다’에서 ‘고급스럽다’를 연상하는 일이 잦아지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엔 “멋지다 : 멋스럽다 = X : 고급스럽다”의 틀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 틀의 X가 ‘고급지다’로 채워질 것이다. 게다가 ‘고급지다’에서 ‘값지다’를 연상하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연결 고리에서 ‘고급지다’가 자리 잡게 되면 ‘값스럽다’가 널리 쓰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25 風文 R 979
고유명사의 띄어쓰기 문장에서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두 단어 이상으로 된 고유명사는 ‘한국 대학교’처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고유명사는 전체가 하나의 단어처럼 기능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다른 요소가 개입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글맞춤법에서는 두 단어 이상으로 이루어진 고유명사는 ‘한국대학교’처럼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단,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단위 별로만 묶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 사범 대학’은 ‘대학교 단위’와 ‘대학 단위’로 나뉜다. 따라서 ‘한국대학교 사범대학’과 같이 붙여 쓰는 것은 허용되지만, ‘*한국대학교사범대학’처럼 서로 다른 단위를 묶어서 전체를 붙여 쓰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홍 사장’, ‘길동아!’처럼 성과 이름은 제각각 독립적인 단어로 쓰일 수 있다. 따라서 성과 이름도 띄어쓰기의 기본 원칙을 따르면 ‘홍 길동’과 같이 띄어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성과 이름을 붙여 쓰는 것이 통례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보통 붙여 써 왔다. 더구나 우리나라 성씨는 대개 한 글자로 되어 있어 독립적인 단어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붙여 쓰더라도 성과 이름을 구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한글맞춤법에서는 성과 이름을 반드시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이름과 비슷한 호나 자도 ‘이율곡, 이태백’처럼 성과 붙여 쓴다. 그런데 ‘남궁, 황보’처럼 성씨가 두 글자일 때는 성과 이름이 혼동될 수가 있다. ‘황보영’으로 쓰면 ‘황씨 성에 이름이 보영’일 수도 있고, ‘황보씨 성에 이름이 영’일 수도 있다. 이렇게 성과 이름이 혼동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는 ‘황보 영’과 같이 띄어 쓰는 것이 허용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25 風文 R 1009
율리시스(Ulysses:1922) - 조이스 2/2 6장 하데스. 더블린 거리와 공동묘지 오전 한 시 블룸 사이먼 디덜러스 칸닝험 잭파우어 네 사람이 디그남의 장례 마차를 타고 묘지를 향해 출발한다. 이들은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이라든지 그 밖에 여러가지 일들에 대하여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특이한 것은 블룸은 언제나 모두에게서 경시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지날 때 통행인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곧 묘지의 교회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때 블룸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 소년의 뒤에 선 채 소년의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칼과 새하얀 칼라 속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목덜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불쌍한 소년! 아버지가 죽었을 때 곁에 있었을까? 둘 다 아무런 의식도 없었을 테지. 드디어 인부들이 관을 교회 안으로 옮겨 왔다. 뒤이어 하얀 옷을 걸친 신부가 나타났다. 그는 책을 펴 들고 봉독하고 나서 라틴어로 기도를 했다. 간단한 절차가 끝나자 인부들이 들어와 관을 손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묘지로 향하였다. 얼마 뒤 관 위에는 흙더미가 덮이기 시작하였다. 블룸은 얼굴을 외면했다. '아직 녀석이 살았다면 어떡하지? 흥 천만에! 그런 일이 있다면 큰일 날 노릇이지. 녀석은 죽은 걸. 암 그렇고말고. 월요일에 죽었으니까. 심장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든가, 아니면 전기 벨이나 전화를 장치하든가 하는 법이 있음직도 하지 않는가. 조난 신호 시체는 사흘 동안 그대로 놓아 두라. 여름에는 기간이 좀 오랜 셈이지 하긴 죽은 것만 분명히 판명되면 곧 치워 버리는 게 상책이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흙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7장 아이올로스. 신문사 블룸은 프리먼 신문사에 나타났다. 키즈의 광고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신문사는 한창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그는 먼저 교정 부장에게 가서 광고의 게재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다음에 편집장에게 가서 프리먼 신문사의 관리를 받고 있는 텔레그라프 신문의 토요일 붉은색 판에 키즈의 광고를 크게 내 주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신문사에는 사이먼 디덜러스 램버트 논설 위원 맥휴 교수 그리고 클라우포드도 함께 참석하고 있다. 모두들 신문에 보도된 단 도우슨의 아름답게 꾸민 말로 쓰여진 연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때 사이몬과 램버트가 한잔하러 밖으로 나간다. 뒤이어 스티븐이 디지 교장에게 부탁받은 원고를 가지고 신문사를 방문하였다. 원고를 받아 본 편집장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아구창이라? 허어 자넨 언제 직업은 바꿨나?" "아닙니다. 그건 제 원고가 아니라 디지 씨에게 부탁을 받아 쓴 겁니다" 스티븐이 대답하자 편집장은 더블린의 생활에 대해서 글을 쓰라고 권했다. "무언가 강하게 어필해 오는 것을 써 주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이야" 8장 레스트리고니언즈. 더블린 시 한복판 오후 한 시. 블룸은 신문사에서 나왔다. 그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거리를 거닐고 있다. 이제 그는 국립 도서관에 가서 킬케니피플을 조사하는 것이다. 걷고 있는 그에게 미국의 전도사가 포교하기 위한 전단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엘리야가 왔다!' 시몬의 교회 부흥 운동을 벌리고 있는 '존 알렉산더 다위'가 왔다는 선전이었다. '흥, 한몫 볼 셈이군' 구름이 햇빛을 가렸다. 동시에 그의 가슴에도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디그넘이 죽었다. 출산의 고통 일 초마다 어디선가 한 사람씩 태어난다. 또한 일 초마다 한 사람씩 죽어간다. 내가 오분 전에 물오리에게 먹이를 던져 주고 난 뒤에도 벌써 삼백 명이 죽었을 것이다. 브라스트 사무소의 시간표가 그로 하여금 시차에 대한 의문을 종일 품게 했다. 힐리점의 샌드위치 맨 광고를 보자 그는 자신이 그곳에 근무하던 때를 상기했다. 거리를 오락가락하는 순경들의 무리가 재학 당시 보어 전쟁에 대한 반대 데모를 떠오르게 했다. 블룸은 데비번 식당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보일란의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러나 블룸은 아내의 부정한 소행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되도록 화제를 돌려가며 치즈 샌드위치 등으로 주렸던 창자를 채웠다. 포도주도 마셨다. 그는 다소 거나한 기분으로 자유 분방한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서른 가지의 식사라. 호사스런 타후크 연회, 상류 계급의 야회복 반나체의 귀부인, 아내 마리언과 함께 즐기던 지난 날의 바닷가, 아름다운 여신들 신들의 회식 광경, 그 요리와 우리들이 6펜스짜리 점심. 식당의 유리창에는 파리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블룸은 식당에서 나왔다. 그는 여신의 해부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블룸이 박물관 근처에 이르렀을 때 보일란이 눈에 띄어 박물관으로 황급히 뛰어들어갔다. 9장 스킬라와 카립디스. 국립 도서관 오후 두 시 더블린 국립 도서관에는 스티븐과 당대의 젊은 문학가들이 모여 셰익스피어에 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의 역사적 진실성의 연관 및 햄릿의 성격 예를 들면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고향에 두고 온 그의 아내와 그의 동생과의 부정한 관계를 소재를 했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기질에는 이아고나 샤일록과 같은 기질이 있어 "오셀로"나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 자신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서는 회고주의를 추구하는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의 참가자들과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 스티븐과의 의견 대립을 다루고 있다. 스티븐은 그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털어 놓는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인생이 그의 인식의 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시인의 내면에서 더 나갈 수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통일과 형태를 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타난 예술은 깊어 가는 그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술은 예술이다. 인생은 인생이다'라는 식으로 고집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노릇이죠" 그는 또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아버지란 존재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악입니다. 자연 속에서 부자를 결합시키는 것은 한 순간의 맹목적인 욕정의 발로인 것입니다. 부권이란 법률상의 가정인 지도 모릅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받거나 또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엉뚱한 의문을 끄집어내기도 하였다. 그것은 기존의 관념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10장 배회하는 바위들. 거리 거리의 풍경. 세 시와 네 시 사이의 더블린 거리의 장면이다. 스티븐이 재학했던 클론고즈 우드 칼리지의 교장 콘미 신부가 거리를 걷는다. 디덜러스의 집에서는 스티븐의 여동생들이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는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장난조로 마구 지껄이고 있다. 블룸은 자기 아내가 즐겨 읽는 묘한 책을 사기 위해 책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때 "죄의 감미로움"이 눈에 띄었다. 이게 아내에게 맞겠군! 그는 책을 펼쳐 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받은 돌비라를 잘라 멋드러진 가운과 비싼 옷깃에 모두 써 버렸다. 그이를 위해서였다. 라울을 위하여! '라울을 위하여...' 블룸에게는 보일란이 바로 그 라울처럼 느껴졌다. 같은 시각에 스티븐은 책방 앞에서 "여자에게 매혹되는 비결"이라는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그것을 여동생 딜리에게 들키자 당황한다. 다음 순간 그는 딜리가 갖고 있는 프랑스 어 기초 독본을 보면서 요즈음 집안 형편을 들었다. 그가 집에 남기고 온 책들이 전당포에 가 있다는 얘기며 살림이 몹시 옹색하다는 얘기를 듣고 심한 가책을 느꼈다. 오후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였다. 11장 세이렌. 주점 오후 네 시 오먼드 바의 음악 감상실 오먼드 바의 웨이트리스인 흑갈색 머리의 도즈와 금발의 케네디는 그 앞을 지나는 마차 행렬을 창 밖으로 내다보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스티븐의 아버지가 들어섰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시면서 도즈에게 은근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뒤에 보일란이 마차를 몰고 왔다. 그는 블룸 부인과 만날 시간을 조금 앞두고 오먼드 바에 들른 것이다. 보일란이 들어서자 도즈와 케네디는 그를 둘러싸고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보일란은 오먼드 바에서 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덜컹덜컹...' 한편 블룸은 애인 마사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편지 쓸 종이와 봉투를 사들고 "죄의 쾌락"을 옆에 낀 채 오먼드 바로 향하였다. 걸어가는 블룸의 머리에는 아내가 보일란과 밀회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이 떠올랐다. 오후 네 시경이었다. 블룸은 오먼드 바 근처에서 우연히 친구 슬딩을 만나 함께 오먼드바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블룸은 마침 마사에게 편지를 쓰려던 참이라 마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 앞에 그려 보았다. 동시에 젊은 날의 마리언 모습도 떠올랐다. 블룸은 마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벤 달라스가 굵은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딱딱. 맹인의 지팡이 더듬는 소리. 딱딱딱. 맹인이 좀더 가까이 다가왔다. 딱딱딱딱딱. 이 소리는 마리언과 보일란의 밀회가 다가옴에 따라 블룸의 심장 박동 소리와 혼동이 되었다 12장 키클롭스. 바니커넌 주점 오후 다섯 시. 바니커넌 주점 정체 모를 한 사람의 술꾼이 화자로 등장한다. 주점에 들어선 블룸은 시민과 한데 어울려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그는 사형 제도며, 아구창에 대한 대책 문제며, 위생 운동 등 여러가지 문제에 걸쳐 자기 주장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블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오히려 유태인계 블룸을 앞에 놓고 유태인들을 마구 헐뜯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그 말에 상대하지 않고 있었던 블룸도 차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드디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타면서 그들을 향하여 크게 소리질렀다. "이봐 멘델스존도 마르크스도 스피노자도 너희들의 하느님 예수도 다유태인이었어..." 이 때 별안간 큰 지진이 일어났다 13장 나우시카. 샌디마운트의 해변 오후 여섯 시 블룸은 오늘 아침 스티븐이 명상에 잠겨 거닐던 샌디마운트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가까운 바윗돌 위에 세 처녀가 나와 바닷바람을 쏘이며 불꽃 구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시쉬 카프리, 에디보드맨, 가티 맥도웰이었다. 가티는 첫눈에 마음이 끌리는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들 중에 하나가 뿔을 찼다. 이 때 블룸은 바위 틈으로 굴러가는 그 뿔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티의 스커트 밑으로 굴러가도록 겨냥해 던졌다. 그 때문에 뿔을 주으려던 가티의 스커트가 젖혀지면서 속이 들여다 보였다. 서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소녀는 블룸의 눈에 고요히 감돌고 있는 정열이 온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블룸은 가티가 불꽃을 보려고 되돌아서거나 그네를 타거나 얕은 개울을 건널 때 스커트 밑으로 드러나곤 하는 하얀 허벅다리를 훔쳐보며 자위 행위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것을 뉘우치면서 생각했다. 그녀의 눈망울 속에는 면죄시킬 수 있는 말이 담겨져 있다고 블룸은 혼자 남아서 아내와 딸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모든 여성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내에게 사 주기로 한 화장수도 생각하였다 아홉 시가 가까워왔다 블룸의 뇌리에 오늘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분수처럼 흘러가는 것이었다. 14장 태양신의 황소들 산부인과 산부인과 장면 입원 중인 퓨포이 부인에게 문병을 갔다. 밤 열 시경이었다. 거기엔 이미 블룸이 아는 의학생과 스티븐 등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블룸도 그들 틈에 끼었다. 그들과 함께 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산인 경우에 산모를 살려야 하는가, 아이를 살려야 하는가 등 모두들 술에 취해 음담을 섞어가며 외설스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층 병실에서 퓨포이 부인이 사내 아이를 낳았다는 기별이 왔다. 바로 그 때 번개가 번쩍이며 폭우가 쏟아진다. 온 좌석이 신바람이 나서 농담을 지껄이고 있는 사이에도 블룸은 마냥 생각에만 잠겨 있었다. "자 바크의 술집으로 가세!" 갑자기 스티븐이 소리칠 때에야 블룸은 비로소 공상에서 깨어났다. 퓨포이 씨를 위해서 축배를 들자는 것이었다. 모두 환성을 지르며 몰려나갔다. 블룸도 따라 나섰다. 그들은 술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밤거리로 향했다. 15장 키르케. 밤거리 블룸은 술이 취한 채 마보트 가를 헤매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 뒤라 짙은 안개가 뒤덮여 있었다. 블룸은 술 취한 스티븐을 보살피기 위해 스티븐을 뒤따라 가다 짙은 안개 속에서 그를 놓친다. 밤의 마보트 거리는 난폭한 군인들 술꾼들 비틀거리는 노동자들이 우글댄다. 블룸은 안개 속을 헤매다 베라 코헨의 집에서 스티븐을 만났다. 스티븐은 그곳에서 피아노 곡을 연구하며 매음녀와 즐기고 있다. 스티븐의 환희가 절정에 달한다. 거기서 블룸은 베라와 마주 앉아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부채와 더불어 얘기를 주고받았다. 부채(펄럭펄럭 재빠르게 움직이다가 잠잠해진다) "마누라가 있는가 보군요" 블룸 "글쎄 중도에 망친 셈이지 딴은 내 잘못이기도하지만..." 부채(반쯤 폈다가 다시 접히면서) "그러니 마누라가 판치겠군" 블룸(무안한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숙인다) "하기야 그런 셈이지" 부채(아주 접힌 채 귀고리 곁에 머물렀다) "당신 날 잊었수?" 블룸 "원 천만에 그럴 리가..." 부채(접힌 채 그녀의 옆구리에 가로놓였다) "제가 당신이 최초로 꿈꾸던 여잘까요? 아니면 우리가 사귀고 나서부터 당신이 늘상 꿈꾸던 여잘까요? 지금도 우린 옛날 그대로일까요?" 블룸은 이렇게 베라의 부채와 더불어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스티븐과 함께 매춘부와 어울려 자동 피아노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 때 블룸에게는 부모님의 유령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그가 신앙을 저버린 것을 꾸짖었다. 이어서 아내의 얼굴도 나타났다. 또 다른 얼굴들도 연달아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기가 이런 데 있게 된 것을 애써 변명하곤 하였다. 환상은 잇달아 일어났다. 매춘부와 춤을 추던 스티븐이 그만 졸도해 버렸다. 블룸이 그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마침 그 곁을 지나던 장의사인 코니와 함께 그를 간호해 주었다. 이 때 반쯤 의식을 잃은 스티븐은 에이츠의 시를 입 속으로 읊고 있었다. 이러한 스티븐을 지켜보는 블룸에게는 스티븐이 마치 열한 살에 죽은 루디의 귀여운 모습으로 보였다. 그 순간 그는 스티븐이 자기 아들이었으며 하고 은근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리하여 블룸과 스티븐은 정신적인 부자로 서로 가까이 마주서게 되었다. 오후 열두 시경이었다. 16장 시우마이오스. 역마차의 오두막 블룸은 스티븐의 옷매무새를 고쳐 주고 곁에서 부축해 가면서 돌아오고 있었다. 마차를 찾았으니 보이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자칭 귀족이라고 떠벌이는 코리를 만났다. 그들은 코리와 헤어지고 나서 어느 주막에 들렀다. 거기엔 낯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블룸과 스티븐도 그들 틈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어느 뱃사공과 같이 열심히 얘기를 주고받았다. 매춘부의 얘기며, 여행에 대한 얘기며, 그 밖에도 더블린의 장래 도시에 관한 노동자 아일랜드의 천연 자원 마리언 그녀의 공적 유태인 아일랜드의 자치 운동 죽은 파넬과 그의 귀국 디그넘의 주점 등 닥치는 대로 화제를 벌여 놓았다. 주막에서 나온 블룸은 스티븐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자기 집에 데려가려고 하였다. 코코아를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은 오두막을 나와 서로 팔짱을 끼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클레즈 가 7번지로 향한다 새벽 한 시경이었다 17장 이타카. 이클레스 가 7번지. 블룸의 집 새벽 두 시 블룸의 집 블룸과 스티븐은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걸으면서 그들은 교리 문답식으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들은 고대 히브리 어와 아일랜드 어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화제는 마냥 번져 갔다. 세 시경 블룸이 스티븐에게 묵고 가라고 권했으나 스티븐은 굳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블룸과 악수를 나누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스티븐을 배웅하던 블룸은 문턱에 머리를 부딪쳤다. 실내의 구조가 잘못된 탓이다. 그는 옷을 벗으면서 하루의 출납표를 자세히 작성하였다. 뒤이어 상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18장 페넬로페. 침실. 마리언의 독백 침실에서의 마리언의 독백으로 구두점도 전혀 없고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비몽사몽 간에 흘러가는 그녀의 의식의 흐름이 42페이지나 전개되어 간다. 그녀가 젊었을 때부터 관계해 온 많은 연인들의 그림자가 오간다. 성적 갈망이 일관되어 가는 여기에는 수치심도 도덕심도 없다. 자연으로서의 여체 도리어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황홀한 도취감에 가득한 잠재 의식의 세계가 폭로되어 있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대학입시 대학생을 선발한다는 명목으로 재수생을 배출해 내는 시험제도. 고문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인간이 살고 있는 나라라면 제일 먼저 공연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할 악마의 조작극이다.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로서 무고한 양민을 폐인으로 만들기 쉬운 인간이하의 월권행위이다. 비록 손상된 육신은 회복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처받은 영혼은 치유되지 않는다. 고문을 묵과하는 처사는 살인을 묵과하는 처사보다 몇 배나 더 비열하고 잔인하다. 비상구 이 세상의 모든 통로 또는 위급할 때의 모든 하나님. 술 마약이다 절제하면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과용하면 불행을 초래한다. 마실 때는 찬양하게 만들고 끊을 때는 저주하게 만든다. 유사 이래로 물에 빠져 죽은 사라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는 설도 있다. 뼈저린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쾌락을 담보로 영구적인 불행을 대부해 주는 악마의 독액이다. 그러나 술은 때로 사랑을 불붙게 만드는 묘약이 되기도 하며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감로주가 되기도 한다. 이태백과 같은 시선은 술 속에서 달빛과 시를 건져내기도 했으며 오마르하이얌과 같은 주성은 술 속에서 루비이야트라는 언어의 보석을 건져내기도 했다. 음주운전 자동차가 운전수 대신 술에 취한 승객을 탑승시킨 채 교통사고를 일으킬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행위. 또는 교통수단을 이용한 취중 살인 예비음모. 불행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 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 신이 매사를 완벽하게 선처해 놓았는데도 이에 불만을 품은 인간들이 처우개선을 구두로 상소하는 행위. 주정뱅이 술이 인간을 마셔버리고 동물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려고 발악적으로 애쓰는 사람 엄숙 권위주의가 형식주의와 결합해서 만들어낸 비만형의 부랑아. 타인에 대한 존엄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용상표. 자신을 사실이상의 인격체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착용하는 무형의 가면. 행사장이나 회의실 같은 장소에 의례적으로 동참하는 고위층의 들러리. 무언으로 강요되는 도덕의 중량.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
Board 추천글 2024.10.24 風文 R 865
단위명사 한국어에는 물건을 세는 단위명사가 유난히 많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해 드릴 단위명사는 ‘매, 손, 죽, 제, 축, 쾌, 두름, 쌈, 접’ 등인데, 나열한 순서는 적은 개수에서부터 점점 많은 개수의 물건을 세는 단위명사의 순이다. 먼저 ‘매’는 젓가락 한 쌍을 세는 단위로서, ‘젓가락 한 매’는 ‘젓가락 두 짝’을 말한다. 또한 한자어 단위명사인 ‘매(枚)’는 ‘원고지 백 매’처럼 종이나 널빤지 따위를 세는 단위로 쓰이는데, 이 경우에는 ‘장(張)’으로 순화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손’은 한 손에 잡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로서, 조기, 고등어 등의 생선을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두 마리 분량을 말한다. ‘죽’은 옷이나 그릇 따위의 열 벌을 묶어 세는 단위인데, 여기에서 ‘죽이 맞다’는 속담이 나왔다. ‘죽이 맞다’는 ‘서로 뜻이 맞다’는 의미인데, 그릇이 열 개면 한 죽이 되는 것처럼 서로 뜻이 맞거나 행동이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제’는 한약의 분량을 나타내는 단위로서, ‘한 제’는 탕약 스무 첩의 분량을 말한다. ‘제(劑)’는 한자로 ‘약제 제’이므로 발음이 비슷한 ‘재’로 잘못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축’과 ‘쾌’, ‘두름’은 모두 20마리를 묶은 단위인데, ‘축’은 오징어 스무 마리를 묶어 세는 단위이고, ‘쾌’는 북어 스무 마리를 묶어 세는 단위이며, ‘두름’은 조기 따위의 물고기를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어 세는 단위이다. 끝으로 ‘쌈’은 바늘을 묶어 세는 단위로서, ‘한 쌈’은 바늘 스물네 개를 이르고, ‘접’은 채소나 과일 따위를 묶어 세는 단위로서, ‘한 접’은 채소나 과일 백 개를 이른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24 風文 R 1555
혼밥과 혼술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일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혹은 집단 문화가 퇴색하면서 이런 일이 점점 느는 게 현실이다. ‘혼밥’과 ‘혼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새말이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말’은 ‘혼잣말’이라 하고, ‘혼자서만 일을 하거나 살림을 꾸려가는 처지’는 ‘혼잣손’이라고 한다. 또한 ‘혼자’의 의미로 쓰일 수 있는 접두사로 ‘홀-’이 있다.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홀몸’이란 말이 있고,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홀아비’와 ‘홀어미’란 말도 있다. 이런 예를 보면 ‘혼밥’이나 ‘혼술’은 ‘혼잣밥’이나 ‘혼잣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혼잣밥’과 ‘혼잣술’ 대신 굳이 ‘혼밥’과 ‘혼술’을 만들어 쓰게 되었을까? 또 ‘홀밥’과 ‘홀술’이란 말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혼잣술’이나 ‘혼잣밥’이 이전에 쓰인 말이라면, 이 말에는 혼자 술과 밥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서 오는 외로움과 슬픔이 오롯이 담겼을 것이다. 그런데 ‘혼밥’과 ‘혼술’은 혼자 밥과 술을 먹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세태를 반영하여 만든 새말이다. 낱말의 형태를 바꿔 ‘혼잣밥’과 ‘혼잣술’에 배어 있는 외로움과 슬픔을 걷어낸 것이다. 그러면 ‘홀밥’과 ‘홀술’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홀아비, 홀어미, 홀씨 …’에 답이 있다. ‘홀-’에는 ‘짝을 갖추지 못한’이란 뜻이 있으니 밥과 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혼밥’과 ‘혼술’이 정착했으니 혼자 하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새말은 늘어날 것이다. ‘혼자 하는 놀이’인 ‘혼놀’도 그런 예다. 그런데 ‘혼놀이’가 아닌 ‘혼놀’이다. 글자 수를 맞추려는 뜻도 읽힌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24 風文 R 1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