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 1/2 해설 하디는 영국 소설계에서 조지 메러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와 더불어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존재였다. 4편의 장편 소설과 4권의 단편집 8권의 시집(918편의 시 수록)과 2편의 서사극시를 남겼으며 하디 문학의 금자탑을 이룩한 "테스"로 이름을 떨쳤다. "테스"가 많은 애독자를 가지게 된 까닭은 인생의 비극적인 실상을 직시하는 하디의 페시미즘 사상이 불안과 동요의 도가니 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의 시류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기장 즐겨 읽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여기서 "테스"가 발표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잠깐 살펴보자 이 때는 치기와 위선의 시대였다. 민주적 경향과 과학 정신으로 조성된 물질 문명의 세례를 받은 속물주의와 체면주의가 판을 치던 속된 분위기였다. 이런 시대는 윤리관이나 도덕관이 지극히 편협해지기 마련이어서 인간성을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이 아니었다. 하디는 편협한 윤리 도덕관에 반기를 들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윤리 도덕 정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시도하였다. 하디는 "테스"에서 두 개의 순결성을 보여 준다. 나아가 육체의 순결성보다 정신의 순결성을 위에 두고 있다. 테스가 알렉에게 빼앗긴 육체의 정조는 한낱 외형의 순결성을 상실했기 따름이지 본연의 순결성은 여전히 테스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기본 골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결국은 알렉 살해의 책임은 테스를 둘러싼 환경의 편협함의 결과로 돌리는 것이다. 테스가 놓여 있는 환경이란 야수적인 알렉과 이기적이고 결벽증인 에인젤의 횡포에 의해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이 테스의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테스의 불행은 스스로의 성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디는 인생을 하나의 비극으로 인식한다. 우주에는 인간사에 무심한 맹목적 대의지가 있고, 지상의 인격들 제각기의 소의지가 있다. 인간의 소의지는 우주의 대의지에 휩쓸려 결국 자멸이란 비극을 치르게 마련이라는 것이 하디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테스"가 발표되었을 때 타임즈는 "테스"에 대하여 인습적 관념을 다루는 데 대담하고 애틋한 비애감을 서리게 하여 지극히 감동적인 비극감을 자아냈다고 평했다. 시인 윌리엄 윗슨 경(Sir William Wastson)은 테스는 인간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의 폭을 항상 넓혀 준다고 했으며 웨스트민스터의 평론가는 조지엘리가 별세한 뒤의 최고 역량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테스"는 출판된 지 3년 만에 각국어로 번역되었고 그 후 전문적인 연구 서적과 논문도 많이 발표되었다. 또한 영화와 연극으로 상연되었다. 작가 약전 하디는 1840년 6월2일 영국 남부 지방 웨섹스의 중심지 도셋의 하디북햄프턴이란 삼림 지대와 황무지 사이의 두메 초가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산된 순간 사산인 줄 알고 한구석에 내버렸던 것을 이웃의 거들던 아낙네가 의사에게 "죽다니요! 가만 계세요 꼭 숨을 쉴 테니!"하고 외치는 바람에 다행히 소생했다. 7, 8세 때에 친구들은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까 하며 신나게 이야기했지만 하디는 어른이 되고 싶지도, 무엇을 갖고 싶지도 않았으며, 지금 그 자리에 그냥 남아 있고 싶을 따름이었다. 야심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하디를 목사로 만들고자 했으나 하디가 원하지 않으므로 건축가로 출세시키려 했다. 18세 때에는 도체스터의 교회 건축가 조힉스의 제자가 되어 5년 동안 건축에 관한 경험을 쌓는 한편 친구의 지도를 받아 고전 중에서도 특히 희랍 비극과 영문학을 탐독하여 차츰 글을 쓰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일리아드를 읽고 낮에는 건축 일에 시달리고 일이 끝나면 바이올린을 들고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에 바빴다. 21세 때는 당대 굴지의 건축가인 부룸 후일드의 조수로 런던으로 오게 되어 10년간 과학적 사회적 문학적 사조를 접하였다. 1865년에 시를 쓰기 시작 이듬해 잡지상에 투고했으나 반환되는 바람에 시작의 붓을 꺾고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865년에 "내가 집을 지은 이야기"라는 단편을 발표했으며 1871년 "궁여지책", 1872년 "푸른 숲 그늘에서", 1873년 "푸른 눈동자"를 각각 발표했고 1874년 "광란의 무리를 떠나서"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874년 엠마 라비니아 깁후드 양과 결혼했다. 1878년 하디의 4대 걸작의 하나인 "귀향"을 발표 그 후 "케스터브리지 시장", "웨섹스 이야기", "귀부인들", "테스", "아내를 위하여" 등을 발표하였다. "테스"가 간행되자 에인젤과 같은 과거가 있는 아내를 가진 남편들로부터 그리고 테스와 같은 과거를 지닌 아내들로부터 하디에게 많은 서신이 쇄도하였다. 1928년 1월11일 88세로 세상을 떠날 떄까지 14편의 장편 소설과 4권의 단편집과 8권의 시집과 2편의 서사극시를 냈다. 생전에 이미 그의 문학적 공헌이 인정되어 애버딘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70세에는 국왕으로부터 유공 훈장을 받았다. 줄거리 5월 어느 날, 저녁 세스톤에서 블랙모어의 말로트 마을로 한 중년의 사나이가 길을 가고 있다. 사나이는 두 다리를 비척거리며 똑바로 걷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몰락한 귀족의 자제로 지금은 무식하고 가난하여 그 자신이 더버빌 가의 피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술에 취해 집으로 향했다. 그는 옆구리에 빈 달걀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 귀족의 피를 받았다는 것을 안다한들 달라질 것은 없으나 집으로 향하던 도중 그는 목사로부터 그가 몰락한 귀족의 자제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말로트 마을은 아름다운 분지의 동북쪽에 파도처럼 굽이친 산줄기 한복판에 자리한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진 고장이다. 런던은 네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나 아직도 유람객들이나 풍경화가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고장이었다. 이 지방은 지형상 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도 매우 흥미 깊은 곳이었다. 헨리 3세 시기의 기묘한 전설 때문에 이곳 분지는 일찌기 '휜 사슴의 숲'이라 불리웠다. 지금도 얼마간 옛 풍습이 남아 있는데 5월의 무도회 같은 것이 그 한 예였다. 이 무도회는 여자들의 친목 모임으로서 수백 년 전부터 해마다 같은 행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5월은 기쁨의 계절이라고 하여 회원들은 하나같이 흰 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저마다 껍질을 벗긴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한아름 흰 꽃을 들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춤을 추고 행진을 했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곧 춤놀이가 시작되는데 회원은 여자들 뿐이므로 여자들끼리 춤을 추었다. 그러나 하루의 일이 끝날 무렵이 되면 마을 사나이들이며 도보 여행자들이 모여들어 함께 춤을 추는 향연이 벌어졌다. 그 날도 역시 이 마을에서 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어깨에 작은 바랑을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상류 계층의 젊은이 셋이 여인들의 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형제지간이었다. 맏이는 흰 넥타이에다 목까지 닿는 조끼와 좁다란 차양이 달린 모자를 쓴 부목사의 정복 차림이었고 둘째,는 보통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셋째는 얼른 보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들 삼형제는 성령 강림절 휴가를 이용하여 도보 여행 중으로 동북쪽에 있는 세스톤 마을을 떠나 서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 형은 오래 지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나 셋째는 남자 상대자 없이 여자들끼리 춤을 추고 있는 광경에 흥미가 끌렸다. 그는 이윽고 바랑과 지팡이를 생울타리 위에다 걸어 놓고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두 형은 에인젤에게 곧 뒤따라오도록 당부를 하고는 먼저 떠났다. 여자들은 에인젤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하였고 에인젤에 뒤이어 마을 청년들도 일을 끝마치고 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들과 함께 춤추는 아가씨와 아낙네들은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그가 춤 한 곡을 끝내고 나올 때 수줍은 표정의 어여쁜 처녀가 눈에 띄었다. 테스 더버빌이었다. 처녀의 큼직한 눈동자는 자기를 택해 주지 않은 에인젤에게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이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곧 형들의 뒤를 따라야 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테스는 언덕 위로 사라져 가는 젊은이가 저녁 햇살 속에 모습을 감출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테스는 감정이 드러나기 쉬운 작약과 같이 어여쁜 입술과 순진한 매력이 넘쳐 흐르는 커다란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머리에는 리본을 달고 단 한 벌의 외출복인 린네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시골 학교를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청초한 처녀였다. 향연은 끝나고 다시 살기 힘든 생활이 반복되었다. 뒤늦게 밝혀진 몰락한 귀족 신분이 가난하기만 한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테스의 부모는 허황한 공상을 하였다. 테스는 많은 동생과 어머니가 좀더 편히 살 수 있도록 이것저것 돈 되는 일을 찾아 나섰다. 테스는 귀족의 혈통이므로 신사에게 시집을 가서 편히 잘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어머니의 공상을 무시하고 어려워져 가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얼마 후 집을 떠나 양계장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테스는 그 집의 관리인이요, 사료 조달인이요, 간호인이요, 외과 의사요, 친구가 되어야 했다. 아직 육십이 안 된 여주인인 알렉의 어머니와 하녀의 틈에서 테스는 모든 일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닭을 기르는 데는 휘파람도 잘 불어야 했다. 도착한 이튿날은 오랫동안 안 불었던 휘파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안뜰의 담장의 가지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장 꼭대기에서 한량꾼인 알렉 더버빌이 테스를 엿보다가 담장에서 뛰어 내렸다. 알렉은 그 전날 테스가 살고 있는 오두막의 문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자연 속에도 예술 속에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어 내 사촌 누이 테스!" 그리고 그는 휘파람 연습을 시켜 주겠다고 하며 계속 추근거렸다. 테스는 웬지 이 사람이 싫었다 "싫어요" "바보. 누가 저를 만지기라도 한데나?" 알렉은 이 집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자기에게 얘기하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이 트란트리지 일대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지루하며 단조로운 마을에서 힘겨운 일을 하는 그들의 유일한 휴식이었다. 여자들도 여기에 가담하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면 으레 2,3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볼품없는 장터 체이조바라로 나가서 술을 마시고 놀다 이튿날 새벽 한두 시 경에야 돌아왔다. 테스는 처음 매주마다. 한 번씩 있는 이 행차에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노동의 휴식을 위해 자기와 별로 나이 차이가 없는 동네 부인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일 주일 내내 갑갑한 양계장 일에서 나와 보니 자기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 후로도 테스는 종종 동행하게 되었고 원래 미인이고 매력이 있는 데다 나이 열 일곱의 한창인 아가씨였기 때문에 사나이들의 능글맞은 시선을 끌었다. 한두 달이 지나고 명절과 장날이 겹친 9월 어느 토요일 트란트리지에서 놀러 나온 패들은 다른 때보다 더 신이 났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트란트리지와 이곳은 워낙 떨어져 있는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홀로 돌아갈 수는 없었으므로 테스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이미 취기가 오른 알렉이 테스에게 손짓을 했다. "테스, 난 오늘 말을 타고 왔으니 주막으로 와요. 마차를 불러 데려다 줄 테니" 테스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가겠노라면서 이를 거절했다. 열한 시가 훨씬 넘은 후에야 몇 사람씩 떼를 지어 돌아가게 되고 테스도 그 안에 끼었다. 그날 밤 유난히 밝은 달빛이 밤길을 훤히 비치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남녀들은 비틀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떠들어댔다. 테스는 이런 경우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테스는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이 때 동행자 중에 카아라는 여자가 물건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있었는데 꿀이 쏟아져 머리카락에 붙어 마치 뱀처럼 꿈틀거렸다. 모두가 이 모양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을 때 테스도 아무 생각없이 같이 웃고 말았다. 카아는 화를 내면서 테스에게 달려들었다. "왜 날 비웃는 거야. 요 악마 같은 것" 카아는 알렉의 정부였다. 알렉이 요즘 테스에게 눈이 팔려 쫓아다닌다는 것을 시기한 카아는 공연히 테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가슴에 쌓였던 연적에 대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듯이 갖은 욕을 퍼부어가며 대들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말리려고 했으나 술에 취한 카아는 좀체로 진정하지 않고 점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때 말을 타고 달려오던 멋쟁이 알렉이 이 광경을 보고 테스 곁으로 가서 몸을 굽히며 말을 했다. "그런 것 하고 싸울 필요 없어. 자, 내 말에 같이 타요" 테스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카아의 욕설을 듣자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가벼운 심술이 발동했던 것이다. 평상시 알렉을 경계했던 테스는 보란 듯이 알렉의 말 위에 올라탔다. 테스는 말을 타고 밤길을 알렉과 함께 간다는 사실에 은근히 불안해졌다. 알렉은 유쾌하게 말을 몰면서 테스에게 말을 걸었다. "왜 테스는 내가 키스하려고 하면 싫어하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한다는 건 싫은 일이지요"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말 내가 싫어?" 테스는 아무 말 없이 알렉의 등을 꼭 붙들고 있었다. 테스는 이 젊은 주인이 추근거리는 것이 몹시 싫었다. 지금도 말 위에서 알렉은 말을 걸었다. 골짜기에서 자욱이 드리웠던 안개는 차츰 사방으로 퍼져 두 사람을 감싸 버렸다. 안개는 달빛을 가로막아 활짝 갰을 때보다도 한결 더 골고루 빛을 퍼지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몽롱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인지 혹은 졸리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큰 길에서 트란트리지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난 지가 꽤 오래 되었는 데도 사나이가 트란트리지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테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테스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한 주일 동안 아침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온종일 서서 지냈고 더구나 이 날 저녁에는 체이조바라까지 3마일이나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느라고 1마일의 길을 걸으면서 그 야단법석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기진 맥진했다 벌써 새벽 한 시가 가까웠다. 피곤한 나머지 정신없이 잠든 순간 테스는 사내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알렉은 말을 세우고 등자에서 발을 빼어 안장 위에 옆으로 돌아앉아 테스를 부축할 양으로 허리에다 두 팔을 감았다. 그 순간 테스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불현 듯 치미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알렉을 떠밀었다. 하마터면 사나이는 떨어질 뻔했다. "이런 욕을 당하다니 내 꼴이 뭐야? 근 석 달 동안이나 남의 감정을 희롱하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골탕 먹이기가 일쑤니 이젠 참을 수가 없어!" "전 내일 떠나겠어요" "안 되지, 그러지 말고 내 팔에 안겨 줘. 자 어서. 당신과 나와 단 두 사람 뿐 아무도 없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테스는 안장 위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알렉은 소원대로 테스를 두 팔로 껴안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죠?" "체이조 숲의 한 귀퉁이야. 잉글랜드에서도 제일 오래된 숲이지. 밤도 아름답고 하니 좀더 오래 말을 타요" "내려 주세요. 전 집까지 걸어가겠어요" "내가 당신을 이런 외딴 곳으로 데리고 왔으니 당신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난 당신을 집까지 무사히 보내 줄 책임이 있어 아무튼 여기가 어디쯤인가를 내가 보고 올 테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말 곁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한다면 여기다 내려 주지" 그는 말고삐를 나무에 매놓고 낙엽을 모아 자리를 만들었다. "자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그런데 이렇게 옷이 얇아서 춥겠군 그래" 알렉은 자기 코트를 벗어 테스의 어깨를 감싸고 단추를 끼워 준 다음 비탈로 올라갔다 달도 져서 푸른 빛마저 사라져 혼자 남아 낙엽 위에서 꿈길을 더듬는 테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테스는 힘없이 앉아서 쉬고 있는 동안 어느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알렉은 일부러 엉뚱한 길로 말을 몬 나머지 지금 그들이 접어든 곳이 체이조 숲의 어디쯤 되는지 분간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더듬더듬 산마루를 넘어 낯익은 신작로를 발견하고 위치를 짐작했다 그리고는 겨우 테스와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방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알렉은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테스를 살펴보았다. 여자의 입김이 느껴졌다. 테스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속눈썹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엷은 비단결처럼 감촉이 부드럽고 티없는 눈과도 같이 새하얀 테스의 살은 알렉에게 더 없는 유혹이었다. 알렉은 테스를 이렇게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색색거리는 나른한 숨소리와 어렴풋한 테스의 얼굴 살내음은 알렉의 자제력을 몽땅 앗아갔다. 시월 그믐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테스가 한밤중에 말을 타고 체이조 숲 속에서 난생 처음 무서운 경험을 겪은 지 몇 주일이 지난 뒤였다. 아직 이른 아침 테스는 무거운 짐을 들고 더버빌의 양계장을 나왔다. 등 뒤의 지평선을 노랗게 물들인 빛은 테스의 눈 앞에 보이는 산마루를 환히 비쳐 주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테스는 걱정하는 어머니의 목에 매달려 눈물을 흘리며 숲 속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가난에 시달린 더버빌 부인은 "그래, 그러고도 넌 그 사람더러 결혼하자구 말을 안했단 말이냐? 그대로 바보처럼 집으로 돌아오다니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이상 넌 버젓하게 그 사람에게 결혼 신청을 할 수 있지 뭐냐?" "어머니도 참, 결혼이라니요. 전 그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사랑하지 않는다구..." 어머니는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계속 책망을 했다. "여자란 건 그렇게 되고 나면, 어떠한 남자한테라도 따라가게 마련이란다. 더구나 알렉 같은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 남자 치고 그만하면 훌륭하고 게다가 부자가 아니냔 말이다" 알렉 같은 남자의 성질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테스는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는 어머니를 테스는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에겐 그 남자를 사랑할 마음이 도무지 없었어요. 저쪽에선 여러 가지로 말해 왔지만" "아내가 될 생각이 없었다면 좀더 정신을 차렸어야 할 게 아니냐?" 테스는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로웠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남자라는 건 정말 징그럽고 무서운 것이라고 왜 진작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테스의 아름다운 큰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러나 이미 도리가 없었다. 자기는 이제 처녀가 아니다. 비록 폭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속절없이 정조를 빼앗긴 여자였다. 테스에게 심신이 모두 괴로운 날이 계속되었다.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그리고 불행을 안은 채 숙명의 어린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테스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 운명을 중오했으나 일단 태어난 생명에 대해서는 애정을 느껴 아이를 안고 기도했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이시여! 이 가련한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에게는 어떠한 벌을 주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만은 부디 많은 복을 주시옵소서" 아이는 사생아였으므로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아이는 튼튼하지 못했다. 테스는 어느 날 밤 동생들을 불러 자신이 신부를 대신하여 아이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말했다. 테스의 얼굴은 맑고도 위엄에 가득 차 있었다. 테스는 이 가련한 아이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확고히 생각했다. 자신이 세례를 주어도 이 아이는 천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이었다. 테스는 어린아이를 안고 물이 담긴 그릇 곁에 서고 동생은 교회에서 하듯이 기도서를 펴들고 언니 앞에 섰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 테야?" 하고 동생이 물었다. 테스는 구약 성경의 소로우라는 이름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자기의 자식을 위한 신성한 생각으로 선언했다. "소로우, 아버지이신 주님과 주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을 받들어 나는 너에게 세례를 주노라" 테스는 아이의 머리에 물을 뿌렸다. "우리들은 이 아이를 받아 십자가의 표시를 너에게 하노라" 테스는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이 소로우라고 이름지은 갓난아이는 곧 죽고 말았다. 함부로 이 세상에 뛰어든 자 사회의 법도 모르는 염치 없는 자연이 준 사생아는 불과 며칠이라는 시간을 영원한 때로 알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테스는 변했다.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성숙해진 그녀의 눈은 깊었으며 차분해진 표정이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트란트리지에서 돌아온 지 2년 남짓한 5월 어느 날 아침 테스는 어느 목장에 취직하여 집을 떠났다. 모든 기억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연의 딸로서만 살아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전세 마차에 몸을 싣고 스타워카슬이란 조그만 읍내를 향했다. 이번 길은 첫 번째 집을 떠나던 때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스타워카슬에서 마차를 갈아 타고 웨터베리를 거쳐 아름다운 탈보나이조의 낙농장에 이르렀다. 한없이 뻗은 녹색의 초원 희고 검고 붉은 무늬가 아롱진 소의 무리가 장미빛처럼 빛나는 낙조 속에서 노닐고 있는 곳 젖 짜는 곳에서는 여러 남녀들이 명랑하게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고 있었다. 테스는 2년 동안 고민에 찬 세월을 고향에서 보낸 뒤 꿈을 꾸며 맑고 즐거운 생활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었다. 젖 짜는 여인으로서 테스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이 건강한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슬픈 추억으로 고통에 잠겼던 침울한 눈은 다시 이 맑은 태양 속에서 빛났으며 창백한 볼에도 처녀 시절의 아리따운 장미빛이 감돌았다. 이 목장에는 다른 일꾼들과 달리 기품이 있고 상당한 교육을 받은 청년 하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에민스터의 유명한 목사의 막내 아들인 에인젤로 학교를 나온 후 목장의 견습생으로 여기 와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이한 존재였으므로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청년이었으나 그는 여자들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목장 주인도 이 청년에게는 젊은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경의를 표했다. 테스는 이 청년을 보았을 때 전에 본 일이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테스가 아직 철모르는 소녀였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동네 처녀들과 같이 부인회의 무도회에 갔을 때 끝내 자기와는 춤을 춘 일이 없이 총총히 떠나가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테스는 에인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얀 능금꽃이 떨어지는 초여름의 황혼 아래 테스는 공기가 맑고 고요한 정원에 나와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았다. 모든 생각을 떠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보다 차라리 이렇게 홀로 조용히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더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 때 뒷집 지붕 밑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그 구슬픈 음조는 테스의 마음을 꿈 같은 세계로 끌어들였다. 잠시 후에 바이올린 소리는 그쳤으나 테스는 다시 들려오기를 기다리며 황혼에 비치는 흰 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던 사람은 에인젤이었다. 그는 악기를 치우고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 담 주위를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도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테스를 만났다. 사실 에인젤은 테스에게 끌렸으므로 간단한 음악을 연주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볼 생각이었다. 테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에인젤은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도망가다시피 하세요? 제가 두려우신가요?" "아녜요" 테스는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무서운 건 없어요. 별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비치는 걸요" "그럼 뭐가 두렵습니까? 아니 당신 눈에 눈물이 고였군요" 에인젤은 유심히 테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테스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별을 보고 있노라니까 인간의 행동이 흙탕물같이 더럽게 여겨져서 갑자기 쓸쓸해졌어요" "슬퍼한다는 것은 때로는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씻어 주니까요" 에인젤은 테스가 이 목장에 왔을 때부터 용모가 아름다운 그녀에게 끌렸다. 또한 지금은 그녀가 영리한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목장 한 모퉁이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에인젤의 마음에서는 테스의 얘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그들은 아침 일찍 젖 짜는 곳에서 자주 만났다. 젖을 짜기 위해서는 다들 이른 아침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에인젤과 테스가 제일 빨랐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얘기하며 명랑하게 웃기도 하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목장을 같이 산책하기도 했다. 아침 해의 장미빛에 비치는 테스의 모습은 에인젤에게는 자연의 여왕과도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무더운 여름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다음 날 테스는 오랜만에 이 마을에서 2, 3마일 떨어진 교회로 세 명의 처녀들과 함께 예배를 보러 갔다. 길은 질퍽했다. 한참 가다 보니 언제나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작은 냇물이 불어서 신을 벗고 건너가도 물이 무릎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네 명의 처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냇물을 건너지 않는다면 훨씬 먼 곳에 있는 큰 길로 돌아가야 했다. 에인젤은 일꾼들이 교회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들판을 거니는 습관이 있었다. 멀리 네 처녀가 소나기에 넘친 개울가에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본 에인젤은 그들을 못본 척하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중에 테스도 끼어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에인젤은 네 처녀가 몰래 사모하는 대상이었으므로 그가 점점 가까이 오자 아가씨들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청년은 가까이 와서 친절히 한 사람씩 안아서 냇물을 건네 주었다. 물 깊이는 그의 장화를 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테스를 마지막으로 남겨 두었다. 세 처녀는 마음을 조이며 에인젤이 테스를 데리러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젯밤에 에인젤과 같은 훌륭한 남자는 없으며 에인젤이라면 언제라도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에인젤은 테스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며 풀이 죽어 있었다. 테스는 괴로운 심정이었다. 자신도 에인젤을 사랑하고 있으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용없이 그분은 테스를 좋아하고 있는걸" 테스는 에인젤에게 안겨 건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동요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에인젤이 가까이 왔을 때 테스는 말했다. "전 저쪽 국도로 돌아가겠어요. 세 사람이나 건네 줘서 퍽 피곤하시잖아요 에인젤 씨" "아니 조금도 사실 당신을 건네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겁니다" 테스의 부드러운 몸은 에인젤의 가슴에 끌리듯 안겼다. 에인젤은 아름다운 꽃다발이라도 안은 듯이 여인을 안고 내를 건넜다. "무겁죠?" "무겁다뇨. 당신이 입고 있는 모슬린처럼 가볍습니다" 테스를 건네다 주자 에인젤은 물에 젖은 길을 저벅거리며 혼자 돌아갔다. 네 처녀들이 다시 교회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한 처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틀렸어, 우린 이제 기권이야" "그게 무슨 말이니?" 테스가 물었다. "그분은 널 제일 좋아해 그분이 널 안고 건널 때 우린 확실히 알았어 만일 네가 조금이라도 유혹만 했다면 그분은 네게 키스를 했을 거야" "얘가, 별말을 다 하네" 테스는 이렇게 부정하면서도 얼굴이 화끈 달았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정오 도시의 광장 시계탑이 그림자를 발밑으로 불러들이고 시계가 모든 바늘을 열 두시 정각에 합체시키면 바람이 숨을 죽인다. 고양이의 눈꺼풀이 가라앉는다. 정오다. 꽃들은 가장 눈부신 자태로 그 환희를 드러내고 숲들은 묵상에 잠겨 먼 강물 소리를 듣고 있다. 하루 한번씩 태양의 해탈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대부분 그 시각에 배를 채울 궁리나 하는 것이 고작이다. 시간 탄생과 소멸의 강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강에서 태어나고 그 강에서 죽는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의 강이 아니라 그 강에 빠져 있는 물질들이다. 모래 주로 해변에 많이 산재해 있는 최소 단위의 금빛 혹성 그림자 언제나 무심지경에 빠져 있는 실체들의 참 모습이다, 생노병사, 희노애락에 걸려들지 않는다. 빛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실체를 떠나지 않는다. 모든 형태와 동작을 실체가 갖추고 있는 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실체가 아무리 높은 신분을 가진 인격체라 하더라도 그림자는 그 계급장까지를 반영해 주지는 않는다. 명예박사 자신이 진짜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이나 학술단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 가난뱅이 빈곤을 재산으로 삼아 경제를 꾸려 가는 생활인. 어리석음이 밑천인 가난뱅이와 무소위가 밑천인 가난뱅이로 대별된다. 전자는 가난을 불행으로 생각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키우고 후자는 가난을 수행으로 생각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 그럼으로써 결국 가난에서 모두 탈피하게 된다. 그러나 진실로 성공한 가난뱅이는 가난에서 탈피하는 순간 신이 자신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 했던가를 명확히 알게 된 사람이다. 식인종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하는 종족 불만 불연소된 욕심의 찌꺼기다. 성냥개비 한 개만한 능력으로 대궐 만한 집을 지으려 드는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의 진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이다. 가열되면 증오로 변하거나 배반으로 변한다. 그러나 불만이 없으면 개선도 없다. 고성방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자신은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취중에 만인에게 발악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행위. 외로움과 소외감의 또 다른 표현. 비틀거리는 인생에 대한 절규. 소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불필요성을 타인에게 확실하게 알리는 행위. 총알택시 승객과 기사를 장약하여 죽음을 향해 발사되어진 지상용 교통 미사일.
Board 추천글 2024.10.21 風文 R 809
아저씨 뜻이 하나인 낱말도 자주 쓰이다 보면 이런저런 언어 환경의 영향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렇게 되면 확장된 의미와 원래의 의미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확장된 의미가 원래의 의미처럼 행세할 수도 있다. 그런 말 중 하나가 ‘아저씨’다. [큰사전](1957)에는 ‘아저씨’가 “부모와 한 항렬되는 사내”로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새우리말큰사전](1974)에 뜻 하나가 추가된다. “친척 관계가 없는 부모와 같은 또래의 ‘젊은 남자’에 대하여 주로 어린이들이 정답게 부르는 말”. ‘아저씨’의 의미가 친족 명칭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 이후 사전에선 ‘어린아이의 말’과 ‘젊은’이란 설명이 빠진다. 결국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어른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 ‘아저씨’의 첫 번째 뜻으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아저씨’가 나이든 남자를 예사로이 부르는 말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실질적으로 친족명에서 이탈한다. 아저씨를 ‘당숙’으로 부르다 보니 나이 차가 적은 아저씨를 부르는 말인 ‘아재’도 자리를 잃었다. 친족명에서 이탈한 ‘아저씨’의 추락은 가파르다. 이젠 남자 어른을 ‘아저씨’로 부르는 것조차 망설여지고, ‘아재’는 ‘아재 개그’나 ‘아재 취향’ 등의 말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나이 들고 뒤떨어지고 뻔뻔한 남자’의 의미에까지 근접하는 ‘아저씨’의 추락 속도는 그 대응어인 ‘아주머니’를 앞지른다. 이 상황에서 등장한 ‘개저씨’(몰지각한 아저씨). 그렇다면 이제 ‘아저씨’는 부정적 의미를 ‘개저씨’에게 넘길 수 있을까? 그러나 ‘개저씨’를 부름말로 쓸 수는 없으니 ‘아저씨’는 당분간 지금의 ‘아저씨’일 수밖에 없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21 風文 R 975
의존명사의 띄어쓰기 (2) 의존명사로도 쓰이고 어미로도(정확히는 어미의 일부로도) 쓰이는 말들이 있다. ‘지’와 ‘데’가 그런 말들인데, 의존명사라면 띄어 쓰고 어미라면 붙여 써야 한다. 두 경우를 구분하려면 어떤 말들과 잘 어울리는지, 또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지’가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 즉 ‘시간’과 관련된 뜻으로 쓰인 경우에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이때는 주로 ‘~한 지’와 같은 형식으로 쓰인다. (집을 떠나온 지가 3년이 흘렀다. /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어미를 잃은 강아지) ‘-지’가 막연한 의문과 관련된 뜻으로 쓰인 경우에는 어미의 일부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어미의 일부라는 말은 ‘-지’가 그 자체로 어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는지, -은지, -던지, -ㄴ지’ 등과 같은 어미의 부분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떠드는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 누구 말을 믿어야 옳은지 모르겠다. / 얼마나 춥던지 손이 곱았다. / 그는 얼마나 부지런한지 세 사람 몫의 일을 해낸다.) ‘데’가 ‘곳, 일, 경우’ 등의 뜻을 나타낼 때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대개 ‘~하는 데, ~할 데, ~하던 데’와 같은 형식으로 쓰인다. 조사와의 결합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아도 의존명사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가 본 데가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 손님을 대접하는 데만 쓰는 그릇.) 뒤에서 다룰 내용과 관련되는 상황을 말하는 경우에 쓰는 ‘-데’는 ‘-는데, -은데, -던데, -ㄴ데’와 같은 어미의 일부이므로 붙여 쓴다.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 가구는 많은데 방이 너무 좁다. / 요새 결석을 자주 하던데 무슨 일 있니? / 그곳은 내 고향인데 경치가 참 좋아.)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21 風文 R 1040
실낙원(Paradise Lost:1655-1667) 2/2 하느님은 그의 아들에게 사탄이 인류를 죄에 빠뜨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 유혹에 대항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처럼 자기의 악의에서가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 타락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정의가 충족된다면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하셨다. 인간은 신의자격을 얻으려는 교만이므로 하느님의 존엄을 더럽혔으므로 그 죄를 회개하고 그의벌을 대신 받을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의 자손과 더불어 죽음의 선고를 받게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자진하여 자신과 인간의 대속 제물이 되겠다고 하자 하느님은 이를 수락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이름을 초월하는 우월한 존재인 그에게 모든 천사들이 그를 예찬할 것을 명하셨다. 천사들은 노래로 성자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 때 사탄은 우주의 끝을 산책하다가지구의 최상부에 다달았다. 이곳은 당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광막한 들판이었으며 앞으로 땅 위의 모든 자들이 고통스런 미신과 맹목적인 열정의 결과에 대해 대가를 치를 곳이었다. 여기서 방황하던 사탄은 맞은편에서 흘러오는 한 줄기 빛 속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한 건축물을 발견하였다. 문은 황금과 금강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탄은 놀라움과 비애에 사로잡혔다. 사탄은 젊고 우아한 천사로 변장하고 대천사 우리엘을 만났다. 새로 창조된 세계와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겠다는 구실로 인간 세계의 주소를 물었다. 우리엘은 천지 창조를 보기 위해 홀로 나온 것을 칭찬하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사탄은 아시리아의 우아테스 산상에 도달하였다. 사탄은 악의 천사가 되어 하느님께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탄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속임을 당한 우리엘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탄의 본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탄은 에덴은 경계에 이르렀다. 많은 꽃과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었고 높은 산비탈이 낙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탄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에덴을 바라보며 신과 사람에 대한 음모를 시험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는 중천의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 태양이여! 나는 옛날에 너보다 빛나는 권위자였는데 오만과 야심 때문에 타락하였다. 아, 이 무슨 일인가!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복종을 멸시하고 스스로 반역하였다. 이것은 내 몸에서 생긴 독이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무한한 노여움 무한한 절망 어디로 가나 그것은 지옥이다. 내 자신이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단념하겠다. 회계할 여자는 없는가? 그것은 복종하는 것, 그러나 내가 가장 멸시하는 것 복종을 맹세한다 해도 마음 편할 리 없다.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희망이여 공포여 후회여 그럼 안녕! 일체의 선을 나는 잃었다. 악이여 너야말로 나의 신이다. 너에 의하여 나는 적어도 하늘의 반 이상을 지배할 것이다" 사탄은 향기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울창한 숲속에 문이 하나 있었다.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사탄은 일부러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가볍게 날려서 절벽을 한 발로 뛰어넘어 광명의 낙원에 숨어 들었다. 마치 늑대가 목자의 눈을 피하여 양 떼 가까이 가는 것처럼 도둑이 밤중에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최초의 큰 도둑 사탄의 침입으로 신의 전당에 음란한 사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사탄은 낙원의 중앙에 가장 높이 솟은 생명의 나무 아래에 탐욕의 새 고루모란도와 같이 악마의 날개를 쉬며 새로운 낙원을 의심의 눈을 반짝이며 돌아보았다. 에덴의 낙원 중앙에 과실 나무와 신비로운 나무 향기 좋고 맛 좋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생명의 나무였다. 보석과 같은 이 나무의 과실은 너무도 향기로워 잠을 모르는 신들이 한없는 환락의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는 낙원은 환락과 행복의 선경이었다. 사탄은 뜻하지 않은 광경에 마음이 타는 듯한 분노와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늠름한 아담의 모습과 청초한 이브의 질투심이 일어났다. 거기에는 권리와 지혜와 참다운 자유의 성결함이 빛나고 있었다. 싱싱한 과실 나무들의 생명을 부르는 그 아름다운 맛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명의 나무 옆에는 우리의 죽음인 지혜의 나무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자주색의 열매가 달린 포도 넝쿨 새들은 아름답게 합창했다. 자연의 신 춤의 신은 즐겁게 춤을 추었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 손을 잡고 벌거벗은 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악을 몰랐으며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다. 두사람은 녹음에서 또는 분수 옆에서 쉬었다. 유쾌한 동산에서의 상쾌한 서풍을 받으며 산책하다가 과실을 저녁으로 먹었고 먹은 과실 껍질로 맑은 물을 떠 마셨다. 앞에는 지상의 여러 동물들이 와서 장난을 하였다. 태양은 점점 기울어지고 돌아오는 별들은 저녁 하늘의 선구자처럼 반짝였다. 사탄은 점점 가까이 가서 두 사람의 즐거운 대화에 부러운 듯이 귀를 기울였다.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자였다 "이브여, 너는 나의 모든 기쁨이다. 신은 우리들을 흙으로 빚어 이 낙원에 살게 하셨다. 신은 자비롭고 영광된 분이시다. 우리들은 이 낙원의 모든 나무 가운데 생명의 나무 곁에 있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된다. 삶의 옆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리라 너도 저 나무의 과실을 맛볼 때 죽음이 우리들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그 외에 모든 것에 대해서는 무한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또 어떠한 환락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은 항상 신을 찬미하고 초목과 꽃을 기르는 일이다" 이브는 아담의 존귀함을 찬미하였다. 악마는 이것을 듣고 "그들에게 금지된 나무가 하나 있군. 선악의 지혜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 죄가 되는가? 그것이 죽음인가?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이 그들의 신에 대한 신앙과 복종의 증거인가? 나는 이제부터 그들의 마음을 유혹해야겠다. 그리하여 금단의 과실을 먹고 죽게 하리라" 라고 중얼거렸다. 사탄은 그들을 파멸에 빠트릴 방법을 찾아낸 것을 기뻐하였다. 조용한 낙원의 저녁 동물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나무에서 꿈을 꾸며 나이팅게일만이 밤의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이 구름의 베일을 걷고 나타났다. 아담과 이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의 잠자리는 자연 그대로의 과일 나무들과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로 덮여 있는 조용한 장소였다. 사탄은 마술로써 환각과 꿈과 공상을 갖게 하였다. 그녀의 순결한 머릿속에 불평 불만의 생각을 갖게 하고방종한 욕망과 교만이 생기는 환상을 갖게 하였다. 아침이었다. 동쪽 하늘의 태양이 붉은 진주를 땅 위에 뿌릴 때 아담이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깼으나 이브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담이 손을 잡고 흔들자 이브는 눈을 뜨고 어젯밤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타락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하여 늙은 천사 라파엘을 불러 두 사람을 보호하도록 명하셨다. 라파엘은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경계하도록 하였다. 아담이 천지 창조에 대하여 묻자 라파엘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가 사탄과 싸워 이긴 것을 칭찬하여 새로운 세계를 하나 창조하고 거기에 인류를 살게 하고 기쁨과 사랑의 왕국으로 만드셨다. 그 창조는 6일 간에 이루어졌는데 제1일에는 낮과 밤을 구분하셨다. 제2일에는 하늘과 물을 구분하셨다. 지구에 땅과 바다를 만들고 대지 위에 풀과 나무와 꽃이 나게 하신 것이 제3일이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든 것이 제4일이었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게 하고 육지에는 하늘 높이 새들을 날게 하시어 제5일은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다. 창조의 제6일은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어 생명의 입김으로 불어넣으시고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다. 신은 그것을 남성이라 하고 다시 여성을 만들어서 지상에 자손을 퍼트리게 하셨다. 제7일에는 창조된 세계를 흡족해하며 모든 일을 쉬셨다. 이러한 말을 하는 동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서 천사와 헤어지게 되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자고 있는 뱀을 만나 그 몸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에덴 동산에는 아침 기도를 끝낸 두 사람이 그날의 밭갈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브는 나무와 꽃들이 무성하므로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서로 웃고 이야기하고 쳐다보느라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까 따로 떨어져서 일을 하자고 말했다. 아담은 라파엘의 경고를 떠올리며 유혹이 위험하다면서 따로 일을 하는 것에 반대했으나 이브의 자신감 있는 얘기를 듣고 양보를 하여 이브의 말대로 하였다. 악령에게 끌린 뱀은 이브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며 장미꽃 그늘에서 일하고 있는 이브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브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니, 동물이 인간의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여왕님, 어느 날 내가 들을 배회할 때에 금색의 과실을 가진 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향기로운 냄새가 식욕을 돋구어 맛을 보았더니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 이렇게 이성과 언어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브는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의 있는 곳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금지된 지혜의 나무(선악과)였으므로 깜짝 놀라 물러서려 하였다. 뱀은 대담하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금하고 당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셨습니까? 여왕님 믿지 마십시오. 죽지는 않습니다. 그 과실은 지혜를 주는 것으로 나를 보십시오. 그것을 먹었어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높고 완전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동물인 나는 인간이 되었으니 인간인 당신은 틀림없이 신이 될 것입니다. 선악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어찌 죄악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잠시 선악과를 바라보고 있던 이브는 "저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과실, 뱀이 말한 것처럼 영험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금지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인간에게 허락치 않은 것을 동물에게 허용하실 리가 없을 텐데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고 말하며 이브는 과실을 따서 입에 넣었다. 죄를 범한 뱀은 풀 속으로 미끄러져 도망하고 이브는 과실의 아름다운 맛에 취하여 홀로 중얼거렸다. "아, 지혜의 길을 열어 준 과실 나의 이 변화를 그에게 알려서 같이 행복을 즐겨야지" 이브는 과실이 많이 달린 가지를 꺾었다. 이브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아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미 생긴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녀와 같이 벌을 받고 죽을 결심을 하였다. 아담도 그 과실을 먹었다. 효과가 나타나서 두 사람은 독한 포도주에 취한 것처럼 음욕에 불탔다. 두 사람이 눈을 떴을 때 마음을 덮고 있던 흥분은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놀라서 앉아 버렸다. 신앙도, 청정도, 결백도 모두 사라지고 악을 아는 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나체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의 잎을 엮어 허리에 감았다. 하느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그들의 유혹자가 지옥을 빠져 나올 때 알고 있던 것이 마침내 왔다. 인류는 타락하였다. 그들에게 줄 것은 이제 죽음의 선고이다. 그 심판으로 가리라"라고 성자께 말씀하셨다. 아담과 이브는 바람에 들려오는 신의 음성을 듣고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숲 속으로 숨었다. 성자는 불순한 그들의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하였다 "뱀, 너는 배로 기어다닐 것이며 평생 진흙만을 먹으라! 너와 여자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며 너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브 너는 비애에 젖어 살게 될 것이며 해산할 때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남편의 의지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너를 거느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담을 향하여 선고를 내렸다 "아담이여 이제부터는 흙을 갈고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갖게 되리라" 이브는 아담에게 용서를 빌며 자손에게 미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자살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아담은 "너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리리라고 하신 신의 말씀을 잊었는가? 자손들에게 희망을 가지라 너는 이제부터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당하고 나는 일을 하여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죄악은 슬픈 일이지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하자" 하고 위로하며 두 사람은 쓸쓸히 낙원을 떠났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엑스트라 대본의 등장인물란에 이름 대신 복수 접미사나 숫자로 표기되는 배역.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등장과 퇴장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살타 야구에서 공격자의 타구가 수비자의 손에 걸려 자기 팀의 뛰는 놈과 나는 놈을 모두 척살시켜 버리는 불상사를 말한다. 권투에서는 선수와 심판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는 경우를 말하며 세상살이에서는 사랑과 우정을 한꺼번에 놓쳐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겹치는 불행 뒤에는 언제나 겹치는 행운이 뒤따른다. 만약 불행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고 노력을 배가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 불행이 그만한 크기의 행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관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보트 인신매매 황금에 눈이 뒤집힌 파렴치한들이 몇 푼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악마에게 팔아 넘기는 행위. 또는 인간을 상품화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도모하는 모든 행위. 비천한 인간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저질적 표현. 과대망상증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인식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켜 인식하는 정신 병리학적 증세. 인류는 창세기 때부터 이 병을 앓아 왔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말로 아담과 이브에게 과대망상증을 전염 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만으로도 아직까지 그 병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심증을 굳힏기에 충분하다. 가짜 가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짜처럼 꾸며 놓은 가짜와 진자처럼 행세하는 가짜다. 꾸며 놓은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보다 행세하는 가짜에게 속았을 경우가 한결 비애감을 짙게 만든다. 전자는 물건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후자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걸레 인간들이 방이나 마루나 세간을 닦을 때 사용하는 헝겊으로 낡아서 못 쓰게 된 천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생활용품의 일종이다. 걸레는 다른 사물들에게 묻어있는 더러움을 닦아주기 위해서 자신의 살갗을 찢는다. 대개의 인간들이 걸레들 더러워 하지만 현자들은 걸레에게서 부처의 마음을 배운다. 육안으로 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오물이 산재해 있지만 심안으로 보면 그 자체로써 더 없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게 된다. 천재 수재를 능가하는 인재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사회를 수용할 수 있으나 사회가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재의 죽음은 자살보다 타살에 가깝다. 새 저 세상에서건 이 세상에서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새가 된다.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제일 먼저 새가 된다. 새가 되어 윤회의 길목에 날개를 접고 앉아 그리운 이가 오기를 기다린다. 같은 그리움을 가진 영혼들끼리 같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된다. 사람들은 엽총을 만들어 도처에서 새의 심장을 겨누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그을음 빛의 죽은 미립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멸의 그림자.
Board 추천글 2024.10.18 風文 R 831
정유년은 [달게] 해입니다. 올해는 정유년(丁酉年)이다. 정유(丁酉)에서 정(丁)은 십간(十干)의 넷째로 붉은 색을 상징하고, 유(酉)는 십이지(十二支)의 열째로 닭을 상징한다. 그래서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다. 밝고 뜨거운 기운을 나타내는 붉은 색의 상징과 부지런하게 새벽을 알리는 닭의 상징처럼 정유년에는 온 나라에 항상 밝은 기운이 넘치고 모두가 부지런히 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닭의 해’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닭의 해’를 흔히 [다긔해]나 [다게해]로 발음하기 쉬운데, 이는 틀린 발음이고 [달긔해]나 [달게해]가 바른 발음이다. 그 이유는 겹받침 ‘ㄺ’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하게 되면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으로’는 [다그로]가 아닌 [달그로]로 발음하고 ‘닭을’은 [다글]이 아닌 [달글]로 발음하며 ‘닭이’는 [다기]가 아닌 [달기]로, ‘통닭을’은 [통다글]이 아닌 [통달글]로 발음한다. 그러나 겹받침 ‘ㄺ’ 뒤에 조사가 아닌 명사나 동사 등의 실질형태소가 올 경우에는 비록 모음으로 시작하더라도 받침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하지 않고 ‘ㄺ’의 대표음인 ‘ㄱ’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래서 ‘닭 앞에’는 [달가페]가 아닌 [다가페]로 발음하고 ‘닭 위에’는 [달귀에]가 아닌 [다귀에]로 발음하며 ‘닭 우는’은 [달구는]이 아닌 [다구는]으로 발음한다. 또한 ‘닭’이 단독으로 쓰이거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 쓰일 때에도 [닥]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닭’은 [닥]으로 발음하고 ‘닭도’는 [닥또]로 발음하며 ‘닭만’은 [닥만→당만]으로, ‘닭한테’는 [닥한테→다칸테]로 발음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18 風文 R 895
‘개이득’과 ‘개 좋아’ 국어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접두사 ‘개-’의 뜻은 ‘야생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쓸데없는, 정도가 심한’이다. 그러니 ‘개-’가 붙은 낱말을 좋은 뜻으로 쓰기는 어렵다. ‘개살구’나 ‘개떡’처럼 사물을 가리키는 말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언짢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더 흔히 쓰이는 게 현실이다. ‘개이득’이라는 생소한 낱말을 접했을 때, 나는 이 말이 ‘개꿈’처럼 ‘헛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개이득’이 ‘큰 이득’임을 알고는 혼란스러웠지만, 이 말이 ‘개고생’처럼 ‘정도가 심한’을 뜻하는 ‘개-’가 붙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개이득’과 ‘개고생’의 ‘개-’는 ‘일상의 정도가 넘어선’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물론 부정적으로 쓰이던 ‘개-’가 긍정적인 뜻까지 포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접두사 ‘왕(王)-’은 ‘매우 큰’의 뜻으로 ‘왕소금’, ‘왕만두’ 등에 쓰이는 한편, ‘매우 심한’의 뜻으로 ‘왕고집’, ‘왕짜증’ 등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그러나 명사에 붙을 접두사가 ‘개 좋다, 개 급하다, 개 맛있다’ 등처럼 쓰인 표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개고생’이 ‘개고생하다’로 쓰이는 현상과 대비하면, ‘개 힘들다’가 만들어진 정황은 짐작할 수 있다. ‘정도가 심한/매우 큰’이란 뜻의 접두사 ‘개-’가 서술어와 호응하면서 ‘매우, 무척’이란 뜻의 부사로 변한 것이다. ‘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말의 파괴일까? 언어 변화 이론에서는 낱말이 접사로 바뀌는 변화를 문법화로, 접사가 낱말로 바뀌는 변화는 어휘화로 설명한다. 파괴보다는 변화로 보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18 風文 R 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