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Prestuplenie i nakazanie:1866)-도스토예프스키 2/2 "내게는 이게 쾌락입죠! 고통은 아닙니다. 쾌락입니다. 서... 선생님" 그는 머리채를 끌리면서 땅바닥에다 이마를 박으며 외쳤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아무말 없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꺼내어 살그머니 창가에 놔두고 나왔다. 그 돈은 그의 굷주림을 채우기 위하여 전당포의 노파에게 꾸어온 돈 중에서 술값을 치른 나머지였다.라스콜리니코프는 마르메라도프의 비참한 가족의 실상을 보고 가난이 가져 오는 타락의 이면에는 더욱 무서운 정신의 타락이 놓여 있어서 순진하고 티없는 사람들의 성질을 파괴하고 부식시킨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이튿날 아침 라스콜리니코프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깨었다. 하숙집 주인은 그가 몇 달 치의 하숙비를 치루지 않았기 때문에 밥을 안 준 지 벌써 보름이 되었고 이제는 그를 경찰에다 고소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그가 나가고 없는 동안 편지가 와 있었다. 하녀가 갖다 주는 편지를 보자 그의 안색은 갑자기 달라졌고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고향의 그리운 어머니에게서 온 긴 편지였다. 편지 속에 녹아 있는 어머니의 따뜻한 애정은 읽는 동안 사뭇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그러나 누이동생 두냐의 결혼에 대한 소식은 그의 마음을 몹시 어둡게 하였다. 상대자는 나이가 45세나 되고 사업도 하는 돈 많은 변호사인 루딘인데 이 사나이는 외모는 점잖게 보이나 전형적인 속물이었다. 누이동생이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소식은 그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였다. '결혼하는 것을 무슨 큰 은혜나 베풀어 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이기적인 놈의 아내가 되다니! 그건 안 될 말이다' 그 동안 두냐는 어려운 일을 겪었다. 오빠의 학비를 보조하기 위해 지방 귀족의 집에서 가정 교사를 했다. 그 집의 소유자인 마르파는 두냐를 신뢰하고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마르파의 남편은 스비드리가일로프인데 그는 선악의 경계도 모르고 오로지 악마적 본능의 충동에 의하여 어떠한 장애도 짓밟고 넘어가는 사나이였다. 이러한 그에게도 뜻밖에 한줄기 선량한 일면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두냐에게 반해서 여러 번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유혹한 방탕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갖은 간계를 다하여 두냐를 밀실에 유인하여 처녀를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넣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스스로 문 열쇠를 두냐에게 내어 주어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돌려 보낸 일도 있었다. 오빠의 학비를 보조하기 위해서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서 빌린 돈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 일을 해 주기 위해서 마지못해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두냐는 한때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그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것을 안주인 마르파에게 들켜 마르파의 오해로 말미암아 갖은 욕을 다 보고 그 집에서 쫓겨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두냐의 결백을 알게 된 마르파는 그녀에게 사과를 했고 또한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두냐의 깨끗함과 자기 남편의 잘못을 알리고 다녔으므로 두냐는 마을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루딘과의 혼담이 나왔던 것인데 두냐는 오빠와 집안 살림을 위하여 루딘의 구혼을 승락한 것이다. 이러한 결혼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누이동생은 몸을 팔아서 불필요한 사치품을 얻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필요에 몰려 자기의 몸을 판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근본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나는 그 애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이번에 그 결혼 때문에 어머니와 누이가 이곳에 올라온다고 하는데 그 여비를 마련하는 데도 아버지의 몇 푼 안 되는 연금을 또 저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지위를 얻는다면 나는 어머니나 누이를 위하여 내 일생을 바쳐도 좋다. 그러나 대학 졸업이란 꿈 같은 일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입술을 비틀며 떨었다. "그렇다. 그 일을 실행하자 만사는 돈이다. 신이 있다고 말하는 놈의 주둥아리는 내가 찢어 놓을 테다!" 그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전당포의 그 노파를 죽이는 일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다! 그 노파를 죽여 돈을 빼앗자 그 돈을 전인류 공동의 복리를 위하여 공헌케 하자. 하나의 값없는 벌레의 죽음과 백의 귀중한 사람의 목숨과 바꾸자. 그 단 하나의 조그마한 범죄는 훌륭한 공공 사업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사상 입법자나 개혁자라고 하는 라이칼가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 비범한 사람도 사실은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수많은 피를 흘리게 한 도살자이다. 그러나 그들의 처사를 세상 사람들은 죄인으로 취급하여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영웅이니 위인이니 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선악을 초월한 어떤 특수 지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비범한 사람은 파괴하고 살인을 하더라도 그 천재성과 권력 때문에 기존 법률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행동이 인류 전체의 행동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에는 일부분의 희생은 필요악이며 이러한 범죄는 마땅히 시인되어야 한다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생각했다. 이러한 판단에서 자신도 선택된 비범한 사람에 속한다고 믿는 라스콜리니코프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유용하게 살아가는가를 기준으로 사고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 해독만을 끼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인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할 결심을 굳힌 것이다. 초인이란 선악의 개념을 초월하여 행동하는 비범한 사람의 이름이다. 이와 같이 신에 대한 신앙을 잃고 초인의 사상을 전개해 버린 라스콜리니코프는 누이 두냐와 마르메라도프 가의 불쌍한 가족과 순진한 처녀 소냐를 도와 주기 위해서 이를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비범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지만 이러한 벌레 같은 추잡한 노파를 죽인다는 것이 너무 저열한 일이 아닐까? 위인은 과연 이런 지저분한 일을 했을 것인가... 마음 한 구석에는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의 숙명적으로 이 계획에 유혹되어 갔다. 여섯 시에 노파가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은 그의 누이 리자베타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느덧 가까운 교회당의 시계가 여섯 시를 알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행위가 옳고 그른 것보다 시간이 늦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는 노파를 죽이는 데 사용할 흉기를 훔쳐 내는 데 성공했다. 미리 보아 두었던 도끼를 몰래 훔쳐 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을 웃옷 안에 숨겼을 때 이제 자신의 계획이 시작됐다는 안심을 했다. 갈 곳은 건물의 4층에 있는 노파의 방이다. 초인종을 누르니 심술궂게 생긴 그 노파가 눈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문을 반쯤 열더니 반갑지 않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몸으로 밀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지?" "전당 잡히러 왔지요. 저번에 말하던 은으로 만든 담배갑을 가져 왔어요" "아무래도 이건 은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노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밝은 창 쪽으로 몸을 돌려 라스콜리니코프가 일부러 단단히 묶어 두었던 끈을 풀려 하였다. 그 때 그는 도끼를 힘있게 쥐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졌다. "원 참 이렇게 단단히 묶은 걸 가지고 오다니..." 노파는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쪽으로 돌아섰다. 그 때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노파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쳤다. 피투성이가 된 노파는 그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그는 곧 노파의 호주머니에서 돈주머니와 열쇠걸이 귀고리 등 일일이 살필 사이도 없이 닥치는 대로 호주머니에 긁어 넣었다. 이 때 노파가 쓰러져 있는 방으로부터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죽은 듯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가 그쪽으로 뛰어갔다. 방 한 가운데에 리자베타가 언니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도끼를 쳐들어 소리도 못지르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리자베타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그녀는 애걸하는 시늉으로 손을 주저주저 내밀었으나 머리가 두 조각으로 깨져 거꾸러졌다. 뜻하지 않은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자 라스콜리니프는 자신의 행동에 격심한 공포와 혐오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 그는 자신을 꾸짖으면서 피묻은 손과 도끼를 씻은 다음 방을 나왔다. 뒤이어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와 이 집을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문이 안 열린다고 떠들어 대는 틈에 들키지 않고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하숙집에 돌아온 라스콜리니프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완전히 실신 상태에 빠져 열에 뜬 하룻밤을 지냈다. 모든 것이 이미 경찰에 알려져 버린 것 같은 무서운 망상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의 신경은 완전히 착란 상태에 빠져 나흘 동안이나 혼수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의 친구 라즈미힌이 찾아와서 그를 충실히 간호하여 주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정직하고 다정한 이 친구도 멀리하고 홀로 무섭게 번민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이상할 만큼 비겁했다. 하숙집 주인이 하숙비를 안 낸다고 고소를 했는데 경찰에 불려가서 자신의 범행이 발각된 것으로 착각하여 기절하기도 하였다. 무슨 소리만 들려도 모두 자기를 탐색하려는 것으로 망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 나가 거리를 무작정 헤맸다. 훔쳐온 물건은 어떤 공사장의 토굴 속에 내던져 둔 채 한 푼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조금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초조한 심정으로 불안하고 의아한 행동을 했다. 그를 의심하고 있는 경찰 서기장인 포르피리를 만나 보기도 하고 밤늦게 무의식적으로 죽은 노파의 집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마르메라도프를 만났다. 마르메라도프는 술에 취하여 마차에 깔려서 기절해 있었다. 그는 몹시 흥분했다. 마치 친아들처럼 또는 경관처럼 마르메라도프를 그의 집까지 데리고 가서 곧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하였으나 이미 절망적이었다. 가난하고 불쌍한 그의 집안은 비참한 기도 소리로 가득하였다. 가련한 매춘부 소냐도 달려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호주머니를 더듬어 그날 아침에 어머니가 식비를 내라고 보내 준 돈 전부를 내놓고 그대로 마르메라도프의 집을 나왔다. 그런데 소냐가 보낸 어린 계집 아이가 그의 뒤를 몰래 따라와서 그의 주소를 알고 돌아갔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불안과 공포에 빠져서 병자가 다되어 있을 때 어머니와 누이동생 두냐가 약속대로 그를 찾아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앞에 두고 그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어머니는 편하게 느껴졌지만 예전과 같지 않았다. 어딘지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그의 자존심은 어머니와 두냐에게 달라진 모습으로 보였다. 다정하고 침착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므로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는 가슴이 아팠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견딜 수 없는 고뇌 속에서 어느 날 자살을 결심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살하기 전에 소냐를 찾아왔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냐는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소냐는 비록 매춘부였으나 마음은 천사와 같이 맑고 슬기로운 처녀였으며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불타는 종교심을 지니고 있었다. 소냐는 그에게 성경을 읽어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휘어진 촛대의 불빛은 처량하게 살인자와 매춘부를 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소냐에게 다가갔다. 소냐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동자를 날카롭게 번뜩거리며 말하였다 "지금 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이별하고 왔소. 마지막으로 이곳을 들러야겠기에... 나는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왔을까?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지... 리자베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소?" 소냐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맑은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분은 무엇 때문인지 괴로워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고귀한 분을 괴롭게 하는 것일까?'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라스콜리니코프가 입을 열었다. "그는 우연히 리자베타를 죽였던 거요. 그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겠소?" "네" 하고 소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를 보시오" 얼마 후에 소냐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지고 눈은 놀라움에 더욱 커보였다. 소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신이 무엇을 하셨단 말씀이에요?" 소냐는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에 팔을 감아 힘 있게 자기의 가슴에 끌어안았다. "당신은 지금 네 거리로 나가서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절을 하고 나서 '나는 사람을 죽였소' 하고 큰 소리로 외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선 반드시 당신을 구원하여 주실 거에요" 라스콜리니코프는 신의 구원과 은혜를 믿지 않는 젊은 사상가였다. 그는 소냐에게 자신이 행한 일을 고백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소냐의 순결함 앞에서 그냥 말해 버리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자수하라고? 내가 왜?'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지니고 있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직접 노파를 살해하고 또한 순진무구한 리자베타까지 죽이고 나서 끝없이 갈등하고 번뇌하였다. 그는 그의 번뇌로 인해 어머니와 두냐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었다. 어머니와 두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의로운 친구 라주미힌이 성심껏 돕고 있었다. 라주미힌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유일한 친구로서 예전에도 그의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등 퍽 호의를 보여 주던 사람이였다. 라주미힌은 두냐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라주미힌에게 그의 누이와 어머니를 부탁했다. 두냐도 그를 신뢰하는 것 같았다. 달라진 라스콜리니코프를 보면서 두냐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고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자매를 살인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수를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고집 세게 반박했다. "모든 사람이 피를 흘렸다. 피는 강물처럼 땅 위를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언제나 흐른다. 술처럼 흐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피를 흘려서 영예의 관을 쓰고 인류의 선각자라고 불리는 거야. 나는 다만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다. 이 하나의 잘못을 저지르는 대신에 더 많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거야. 아니야. 잘못도 아니지. 단 한 번의 더러운 짓에 불과한 거야" 그의 무의지는 단 한 사람의 순결한 영혼을 지닌 소냐에 의해 이끌렸다. 소냐의 뜻에 따라 그는 자수를 결심했다. 그는 만사를 라주미힌에게 맡겼다. 여러 가지로 걱정한 나머지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이별을 하러 찾아갔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맞았다. 아들의 신변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너는 이제 곧 떠나야 하니?" "네. 곧 출발하겠습니다" "또다시 돌아오겠느냐?" "네... 돌아오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꼭 한 마디만 내게 들려다오. 네가 가는 곳은 퍽 먼 곳이냐?" "네. 대단히 먼 곳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 가는 것이 너의 임무니? 아니면 무슨 출세할 길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것이냐?" "어머니 그런 일은 저 자신도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기도를 올려 주시겠지요" 나가려는 아들을 꽉 붙들고 그의 눈을 뚫어지게 살펴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설마... 이제 두 번 다시 못 보게 되는 일은 없겠지 넌 내일이라도 나를 만나러 오겠지, 응?" "네. 오겠어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라스콜리니코프는 하숙으로 돌아왔다. 두냐는 혼자서 수심에 잠겨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가 고민에 견디지 못하여 강물에 몸을 던지지나 않았나 염려하여 간밤을 소냐와 울면서 지새웠다는 것이다. 두 남매는 여러 말은 안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는 말없는 이해와 슬픔과 동정이 교류하였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벌떡 일어섰다. "나는 가서 자수하겠다. 그러나 왜 자수하는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두냐의 뺨에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두냐, 너는 울고 있구나 너는 변함없이 나를 대해 주겠지 내 손목을 쥐어 주겠니?" "오빤 무슨 그런 말씀을" 두냐는 오빠를 힘껏 안았다. "이만큼 괴로워하셨으면 오빠의 죄는 벌써 반은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죄라고? 무슨 죄란 말이냐? 저 욕심꾸러기..."하고 항변하려 했으나 자기 때문에 누이동생을 비롯하여 불행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니 풀이 꺾이었다. "두냐, 용서해다오. 그럼 이제 이별이다. 내가 가 버리면 어머님은 돌아가시거나 미치거나 하실거다. 아무튼 너는 어머님의 곁에 있어라 라주미힌이 반드시 뒤를 보아 줄 것이다" 경건하고 신앙심 깊은 소냐의 사랑에 용기를 얻은 그는 대지에 입을 맞추고 경찰서를 향하여 걸어갔다. 소냐는 그의 뒤를 눈에 띄지 않게 따라 갔다. 거리를 두고 몸을 숨기며 그의 뒤를 따랐다. ...시베리아로 가는 죄수들 속에 라스콜리니코프도 섞여 있었다. 법률상으로 그의 죄는 중벌을 받아야 할 것이었으나 솔직한 자백과 그의 갸륵한 인격에 우러난 과거의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행동과 그리고 병적 상태에서 한 것이라는 많은 친구들의 증언 등을 참작하여 8년 징역이라는 가벼운 형이 언도되었다. 두냐는 라주미힌과 결혼하였다. 어머니는 이 두 사람의 극진한 간호의 보람도 없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 두냐와 라주미힌은 몇 년 내에 라스콜리니코프가 갇혀 있는 시베리아로 이주하여 라스콜리니코프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가게를 개업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죄수가 호송되어 갈 때 라스콜리니코프의 뒤를 멀리서 따라가는 한 여인이 있었다. 소냐였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라스콜리니코프를 면회하면서 그곳 죄수들의 편리를 함께 돌보아 주었다. 그 곳 죄수들 사이에서 그녀는 천사로 통했다. 순결하고 투명한 그녀의 사랑은 죄수들의 마음에 빛으로 스며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처음 얼마간은 소냐가 찾아오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막상 소냐가 몸이 아파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때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한 외로움을 느끼며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내부에 그녀에 대한 순결한 사랑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얼음 같은 마음에 부드러운 빛이 피어 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소냐는 행복했다. 그녀는 라스콜리니코프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여러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감옥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신앙 깊은 소냐의 따뜻한 사랑에 싸여 그는 자신의 허무주의적인 초인 사상을 버리고 신의 품에 안기는 새로운 기쁨과 평안을 맛보았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군대 전쟁에 대비해서 조직된 무장단체. 자국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그치는 군대와 타국의 인명과 재산을 탈취하는 데까지 주력하는 군대로 대별된다. 전자는 약소국의 군대이고 후자는 강대국의 군대다. 진눈깨비 저물어 가는 겨울 풍경 속으로 쏟아지는 비창이다. 세월의 통곡이다. 목메이는 그리움이다. 쓰라린 아픔이다. 부질없는 사랑이다. 회한의 눈물이다. 시린 뼈의 신음이다. 고스톱 금세기에 이르러 방방곡곡 가가호호마다 유행하기 시작한 개인 금융사업의 일종이다. 화투를 무기로 소규모의 생존경쟁에 뛰어들어 적들의 호주머니를 약탈함으로써 자신의 정신건강을 양호케 하고 경제생활을 윤택케 만든다. 화투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그려져 있으며 그 향기에 도취되면 패가망신을 당해도 화투를 버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양쪽 팔이 부러지면 발가락으로라도 화투를 쳐야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고 만다. 항간에는 마음을 비우면 끗발이 좋아진다는 설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진정으로 마음을 비운 자라면 호주머니까지 비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지 부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베개로 삼아 무소유의 철학을 모소 실천해 보여주는 청빈도인. 신분증이 없는 세금 징수원. 전 국민을 납세 대상자로 삼고 있으며 납세 방법은 최대한 자율화되어 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지에게서 또다른 예수의 모습을 본다. 독도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 허리를 내맡긴 채 무념무상에 잠겨있는 동해고불. 봄 동안거가 끝나면 봄이 온다. 봄은 겨울을 가장 쓰라리게 보낸 사람들에게는 가장 뒤늦게 찾아오는 해빙의 계절이다. 비로서 강물이 풀리고 세월이 흐른다. 절망의 뿌리들이 소생해서 소망의 가지들을 자라게 하고 소망의 가지들이 소생해서 희망의 꽃눈들을 틔우게 한다. 눈부신 슬픔을 알게 만들고 눈부신 사랑을 알게 만든다. 초라한 서민들의 늘어진 어깨 위에도 좁쌀가루 같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죽은 행려병자의 남루한 누더기에 위에도 생금가루 같은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세상에 아무리 햇빛이 가득해도 마음 안에 햇빛이 가득하지 않으면 아직도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겨울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허영 열등의식과 욕구불만을 원료로 배합하고 허욕이라는 향료와 허세라는 색소를 첨가해서 만들어낸 마약의 일종이다. 중독 되면 정신이 황폐해지고 영혼이 척박해진다. 자신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필요이상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특질을 보인다. 선천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독 될 위험이 높다. 중독 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허영의 둥지에서는 동경의 알이 부화되고 동경의 알속에서는 향락의 새가 태어난다. 그 새는 사치의 날개를 활짝 펼쳐 중독자를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안내한다. 허영에 중독된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아직 지구상에 설치되지 않았다. 백약이 무효하고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사실만 상식화되어 있다. 절망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희망.
Board 추천글 2024.10.28 風文 R 814
모음조화 옛말에서는 ‘모음조화’(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가 넓은 범위에서 규칙적으로 실현되었다. 예를 들면, 명사가 어떤 모음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을’(ㅳㅡ들←ㅳㅡㄷ+을)이 붙기도 하고 ‘ㅇㆍㄹ’(소ㄴㆍㄹ←손+ㅇㆍㄹ)이 붙기도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나모(나무), 하ㄴㆍㄹ(하늘)’처럼 어휘 내부적으로도 모음조화가 적용된 사례도 많다. 그런데 현대로 올수록 모음조화가 흐트러지게 되는데, ‘ㆍ’(아래아)가 소실되면서 양성과 음성의 대립 체계가 무너지게 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다만, 흉내말에서는 여전히 모음조화가 잘 유지되고 있다. ‘알록달록-얼룩덜룩’, ‘잘까닥-절꺼덕’, ‘졸졸-줄줄’처럼 모음조화를 활용해서 말맛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어미 ‘-어/-아’의 표기도 모음조화와 관련이 깊다. ‘겪어, 베어, 쉬어, 저어, 쥐어’처럼 어간 끝음절의 모음이 음성일 때와 ‘피어, 그어, 희어’처럼 중성일 때에는 ‘-어’가 선택된다. 어간 끝음절의 모음이 양성인 경우에는 조금 복잡하다. ‘잡아, 보아, 얇아’처럼 어간 끝음절의 모음이 ‘ㅏ, ㅑ, ㅗ’일 때는 ‘-아’가 선택된다. 반면에 어간 끝음절의 모음이 ‘ㅐ, ㅚ’일 때는 ‘개어, 되어’처럼 ‘-어’가 선택된다. ‘ㅐ’와 ‘ㅚ’가 옛날에는 중성모음 계열에 속하는 소리였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본말 ‘빼앗다’는 ‘빼앗았다, 빼앗아라’로 활용되고, 준말 ‘뺏다’는 ‘뺏었다, 뺏어라’로 활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애, 바래’가 아니라 ‘같아, 바라’로 적어야 하며, ‘(배낭을) 메다’건 ‘(끈을) 매다’건 모두 ‘메어, 매어’와 같이 적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28 風文 R 887
관용구와 속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따로 보기’ 기능이 있다. 이는 ‘관용구’ ‘속담’ 등만을 따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인데, 예를 들어 ‘관용구’로 들어가 ‘발’을 검색하면 ‘발’과 관련된 관용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실제로 ‘관용구’에서 ‘발’을 검색해 보면 ‘발’로 시작하는 관용구는 74개, ‘발’을 포함하는 관용구는 134개가 있는데, 예를 들어 ‘발이 넓다’는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말발이 서다’는 ‘말하는 대로 시행이 잘 되다’는 뜻으로 등재되어 있다. 다음으로 ‘속담’에서 ‘발’을 검색해 보면 ‘발’로 시작하는 속담은 22개, ‘발’을 포함하는 속담은 218개가 있는데, 예를 들어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은 비록 발이 없지만 천 리 밖까지도 순식간에 퍼진다’는 뜻으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믿고 있던 사람이 배반하여 오히려 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렇다면 ‘관용구’와 ‘속담’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관용구’는 ‘단어들의 의미만으로는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인데 비해, ‘속담’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격언이나 잠언’으로 사전에 뜻풀이가 되어 있다. 즉 ‘관용구’가 단순히 비유의 기능을 가지는 어구인데 비해, ‘속담’은 풍유나 해학적인 요소가 들어가 교훈이나 풍자를 담은 어구로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관용구나 속담을 평소에 많이 알고 있고, 실제 말과 글을 통해 구사할 수 있다면 우리말 실력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따로 보기’ 기능을 이용해 관용구와 속담을 익히도록 하자.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28 風文 R 949
죄와 벌 (Prestuplenie i nakazanie:1866)-도스토예프스키 1/2 해설 "죄와 벌"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로 작가가 45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지식인 청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해부하여 그 당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합리주의 공리주의 허무주의에 날카로운 비판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불후의 명작이며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865년으로 언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쪼들리는 생활을 했으며 이 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에 아내와 형이 죽었고 그 때까지 형과 함께 경영하던 잡지사가 형의 죽음으로 실패하자 사업을 하면서 지게 된 모든 빚을 그가 짊어지게 되었다. 또한 형의 유가족의 생활까지 도맡게 되었다.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고심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발표된 당시 진보적 청년들에게 조국의 급진적인 개혁 운동을 조소하고 앞에 나선 젊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모독하고 헐뜯은 작품이라고 하여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것은 작품의 인물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유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을 풍자했으며 라즈미힌이란 인물의 입을 빌어 사회주의의 기계주의적인 합리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추상적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간성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허무주의 또는 초인간주의와 하느님의 진리와의 투쟁에 대한 해답으로 "죄와 벌"을 내놓은 것이다. 대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학자금이 떨어지고 거의 기아 지경에 빠졌다. 그는 작은 하숙 집의 지저분한 구석 방에 처박혀 있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두뇌는 공상적인 이론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다가 마침내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기존의 도덕 및 법률에 복종할 의무를 가졌으나 선택된 비범한 사람은 법률을 무시해도 되는 권리를 가졌고 창조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파괴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없이 새로운 인류의 도덕은 수립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이론으로 자기 자신을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는 무가치한 전당포 노파의 돈을 훔쳐 가치 있는 자신이 쓰는 것이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노파를 살해한 순간부터 그의 내부에서는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과 정의라는 양심이 의지와 대항하여 그의 내면 세계에서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그를 정신 착란 상태에 던지고 그의 마음을 고독하게 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불안과 공포에 찬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으나 끈질기게 의심하는 경찰에게는 대담하고 교만한 태도로 대하는 등 극단적인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순결한 영혼을 가진 매춘부 소냐의 영향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을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의 범행을 고백하여 자신을 법의 손에 넘기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영혼이 가장 깊은 곳까지 정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형지의 죄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덕이 어떠한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범의 심리와 인간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치밀한 심리 분석과 연극의 대사를 읽는 듯한 대화의 맛은 물론 싱싱하게 살아 있는 등장 인물의 완성된 성격 묘사 그러한 것을 에워싼 작가의 위대한 정서는 천재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치밀한 심리 분석과 묘사의 긴장감은 이 작품의 생명이다. 이 작품이 심리학계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던 것도 당연하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의 한 사람이며 깊은 사상성과 문학의 현대화의 의미에서 으뜸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빈민 병원의 관사에서 태어났다. 원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성은 나라에 공을 세운 것에 의해 '도스토예프스키'영지와 더불어 성을 수여 받은 러시아의 귀족의 성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말경부터 가세가 기울어져 도스토예프스키가 출생하였을 당시에는 형편없이 몰락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귀족이라기보다 오히려 잡계급의 처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출생부터 빈민의 비참한 생활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었다. 1848년(27세)에 무미 건조한 군대 생활에 진력이 나 사표를 제출하고 극도의 빈곤과 싸우면서 처녀작 발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듬해 봄에 동창 그레고로비치의 소개로 시인 네클라소프가 편찬하는 문집에 첫 작품을 게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평계의 권위자인 벨린스키를 경탄시킨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발표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는 누추한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편집자인 시인이 읽어 줄지는 몹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깊이 잠들고 있는 새벽 네 시경, 네클라소프와 그리고로비치가 찾아와서 방문을 두들겼다. 두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은 진리를 계시하였소. 당신은 예술가로서 그 진리를 부여받은 것이오. 그 재능을 소중히 다루어 언제까지나 진리에 대해서 충실히 한다면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오" 두 사람은 그 날 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되어 밤을 새워가며 다 읽었다. 그들은 서로 울고 있었다. 흥분을 참지 못한 이 유명한 시인 네클라소프는 작가를 만나서 그 감상을 전하기 위해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무명의 천재를 방문했던 것이다. 네클라소프는 '새로운 고골리가 나타났다'라고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추천한 대 비평가 벨린스키는 처음에는 '요즘에는 우후죽순 같이 새로운 고골리들이 튀어나온다니까' 하고 말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작품을 읽은 다음 격찬하며 "그 사람을 데리고 오시오!"라고 외쳤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널리 소개하였다. 그의 처녀작은 압도적인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다투어 그를 자신들의 모임에끌어갔다. 무명의 청년은 일약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서 첫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급속한 성공은 얼마 못가 그에게 압도적인 찬사를 뿌린 사람의 배반으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벨린스키 일파와 그는 전혀 융합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벨린스키는 그에게 실망을 표시하였다. 그 후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다. 1848년 당시 파리에 일어난 1월 혁명 이래 공상적 사회주의가 유럽 전체에 풍미할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연구 단체가 여러 개 조직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트라셰프스키 학회'였다. 이것은 페트라셰프스키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저서를 연구하고 러시아의 사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푸리에주의의 정치 사상 연구 단체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도 가입하고 있었다. 당시의 니콜라이 1세의 전제 정치는 이것을 사상적인 음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 결사로 간주하고 벨린스키 주위에 가까이 있던 30여 명 의 젊은 자유 사상가들을 체포하였는데 그도 그의 형제와 함께 붙들려 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귀족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8개월 간 감옥에 갇혀 있다. 공개 심문을 받은 후 수 명의 청년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49년 12월 공공 광장의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공포와 싸우면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눈에 문득 멀리 바라보이는 교회당의 금빛 십자가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어쩐지 거룩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군중이 떠들썩하더니 황제의 특사에 의하여 사형을 사면한다는 사면장을 휴대한 전언자가 달려왔다. 사형은 취소되고 대신 4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 받게 되었다. 사형 집행의 경험은 후에 "백치"의 주인공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 후 3일 후 쇠사슬에 묶여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로글리스크의 노역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4년이라는 긴 세월을 흉폭한 살인수의 넋과 사귀며 괴로운 노역에 종사하며 무서운 고독감과 절망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 겨우 허용된 한 권의 성경을 벗삼아 지냈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고관의 도움을 받아 군인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186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지 7년만에 "죄와 벌"을 발표하였고 명성을 다시 되찾았으며 이듬해에는 안나 그리고예브나와 재혼하여 다시 외국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교활한 출판업자와 계약하여 기한까지 신작 소설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의 저작권 전부를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되었는데 이 기간 안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용한 속기사였다. 그는 4년의 세월을 독일 이탈리아 등의 객지에서 이 성실한 위안자의 따뜻한 사랑 속에 행복한 생활을 보내면서 불후의 명작 "백치" 및 "악령"과 "영원한 반려"를 발표하였다. 그는 1875년에 "미성년"을 그리고 1879-80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발표하였다. "미성년"은 영혼과 육체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해 파멸한 벨시로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영원한 여성인 소피아를 대립시켜 인간성의 근원적인 문제 즉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과의 대립 상극을 원숙기에 도달한 그의 예술적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이며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예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이 천재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인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해답을 준 걸작이었는데 제2부를 구상만으로 그치고 인류의 고뇌를 예술화한 그는 사망하였다. 1880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의 동상 제막식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연설은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 축전은 오히려 그 자신의 천재 찬미를 위하여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명한 연설은 그가 행한 최후의 연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애와 신에 대한 반항과 문제 제기였으며 인간성의 해부와 서술은 고금을 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그는 슬라브주의에 속하는데 그의 작품은 주로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서구의 문명을 존중한 작가인데 반하여 그는 러시아 사람의 민족성을 깊이 사랑했으며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슬라브의 혼 그대로를 보여 준 작가였다. 그는 종교의 힘이 엄격하였던 중세기를 거쳐 근대 문명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복잡해진 러시아의 혼을 그대로 새겨 놓은 슬라브를 그려 냈다. 끝없이 깊은 넋으로 끝없이 깊은 민족 전체의 마음을 그려낸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호 톨스토이와 아주 대비되는 작가이다. 톨스토이가 외적 현실이나 생활의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실을 확증한데 반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생활과 현실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암흑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형상화했다. 크로포토킨, 로맹 롤랑 등이 톨스토이를 옹호하는 데 반하여 니체, 앙드레지드 등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단연 톨스토이를 능가하는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신을 잃은 인류의 실존적 혼돈의 문제에 절실한 빛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인 작가라는 것만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줄거리 7월 초의 무섭게 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젊은 사나이가 C골목의 어느 셋방에서 나와 방향없이 K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운좋게 계단에서 하숙집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을 모면했다. 그의 방은 높은 5층의 다락방인데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벽장 같았다. 주인 여자는 그의 아래층에 살고 있었으므로 거리에 나갈 때는 항상 계단 쪽으로 열려 있는 주인집의 부엌 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젊은 사나이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으레 병적인 불안을 느꼈으며 그런 기분에 휘말리는 것이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되어 상을 찌푸리곤 하였다. 하숙비가 상당히 밀려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은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인데 얼마 전부터 그는 우울증에 잠겨 불안스러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 안에 틀어박혀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하고 만나는 것을 피해 왔던 것이다. 그는 가난해서 꼼짝 못할 지경에 처해 있었으나 그것도 요즘에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꼭 해야만 할 일감도 그는 내던져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하숙집주인 여자 따위가 자기에 대하여 어떠한 일을 생각해 낼지라도 겁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단 위에서 붙잡혀 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저분한 헛소리나 귀찮은 독촉이나 넋두리를 대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고양이처럼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와 몰래 슬쩍 달아나는 편이 나왔던 것이다. 거리에 나와 보니 자신이 빚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였다는 데 어이가 없었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생각했다. '어떠한 일이든 실행하려고 생각하면서 이런 하찮은 일에 겁을 먹다니! 흥 그렇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는데도 그저 겁 많은 탓으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건 확실한 논리이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새로운 독자적인 말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좀 말이 많다. 말만 떠벌리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이건 내가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저 방 속을 뒹굴면서...꿈같은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 떠버리 노릇을 배워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무얼하려고 걷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진심에서 나온 생각일까? 천만에 천만에 진심에서라니! 그저 공상으로 혼자 좋아하고 있는 것뿐이다. 장난이다! 진짜 장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이라스콜리니코프는 무엇하러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그가 중얼거리던 '그 짓'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달 전쯤에 그는 고리 대금업과 전당포를 하는 한 노파를 알게 되었다. 노파 아료나 이바노브나는 어떤 대학 교수의 미망인으로 백치인 누이 동생 리자베타를 부리면서 심술 사나운 욕심으로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짓을 공상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 공상은 몸서리치도록 잔인한 것이었으나 퍽 유혹적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그 짓을 해도 괜찮다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오히려 조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그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실행함에 있어서 전혀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그 계획의 장소인 노파의 집을 탐색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가지고 나왔다. "무엇하러 왔지?" "저당잡힐 걸 가져 왔어요" "하지만 지난 번 것이 벌써 기한을 넘겼어 어제로 꼭 한 달이야" "그럼 한 달 동안 이자를 드리지요. 조금만 더 참아 주세요" "하지만 기다리건 팔아치우건 내 마음대로야" "아무튼 이 은시계로 좀 많이 쳐 주십시오"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것만 들고 온담 요전에도 당신에게 반지에 두 장이나 내줬지 그것도 보석상에 가면 새 것을 한 장 반이면 살 수 있단 말이야" "한 4루블쯤 빌려 주세요. 꼭 찾아가겠어요. 아버지의 유품이거든요. 곧 집에서 돈을 부칠 것이라니까요" "1루블 반이야. 이자는 미리 제하고" "1루블 반이라구요! 어림도 없어요" "좋을 대로 하시지" 노파는 시계를 도로 내밀었다. 그는 약이 올라서 그대로 돌아서려 하였으나 다른 데라곤 갈 데도 없고 여기 온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마음을 돌렸다. 무뚝뚝하게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노파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으며 커튼 쪽으로 가서 장롱을 열고 돈을 꺼냈다. 그는 온 신경을 귀로 집중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노파가 돌아왔다. 지난 달의 이자와 요번의 이자를 미리 제하여 그가 받은 돈을 겨우 1루블 15카레치카에 불과했다. 그는 돈을 받은 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주저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료나 이바노브나, 곧 다른 물건을 가져 오려는데... 은으로 만든...훌륭한... 담배갑인데요..." "그건 그 때 얘기하지" "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 참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든지 혼자 계시는 것 같군요. 누이 동생은 어디 나갔나요?" "내 동생에게 볼 일이 있나?" "아니오. 별로... 그저 한 번 물어 본 것 뿐입니다. 그걸 할머닌 그렇게 말씀하시긴...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료나 이바노브나!" 라스콜리니코프는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아아 참! 더러운 생각이다! 정말 나는... 그것은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할까! 무엇보다도... 이 추잡하고 더러운 생각이 아아 싫다! 정말 싫다! 나는 온통 한 달 동안이나..."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맥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하였다. 이 술집은 지저분했고 손님들도 후즐근하게 보였다. 그들 속에서 50세쯤 보이는 늙고 초라한 관리인 듯한 사나이가 미친 듯이 그러나 빛나는 눈초리로 머리칼을 쥐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나이는 라스콜리니프를 보자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마르메라도프라는 사람으로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던 관리였으나 술 때문에 몇 차례나 지위를 잃었음에 또 다시 술에 빠져 버리고 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 우습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한 말투로 라스콜리니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침대에 꼬꾸라져 있었습죠. 지독하게 곤드레가 되어서 말이지요...그 때 문득 딸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소냐는 순진하고 얌전한 애에요. 목소리도 퍽이나 부드럽죠... 머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좀 파리하지만 품위가 있지요... 그 애가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겠소. '어머니 내가 꼭 그런 일을 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라고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다알리아 프란츠오브나라는 악독한 포주 노파가 내 처를 통해 벌써 서너 번이나 유혹해 왔기 때문이죠. 그러자 '그게 어떻단 말이냐' 하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코웃음 치며 대답하지 않겠소. '무엇이 그리 소중히 모셔 둘 물건이냐? 무슨 큰 보배도 아니겠고'라고요. 하지만 아내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병은 나빠지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울고불고하니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기분이 되어 마구 쏘아붙인 말이지요. 화풀이로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지요... 원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성질이 그래서 아이들이 비록 배가 고파서 울어도 곧 때려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날 다섯 시가 넘자 소네치카(소냐의 애정)는 일어나서 목도리를 감고 모자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가더니 여덟 시 넘어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 그대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곁으로 가서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아무말 없이 1루블 짜리 은화를 서른 개 올려 놓지 않겠소? 그리고 말 한 마디 않고 집 안의 커다란 초록빛 목도리를 들고 그것은 식구들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목도리지요. 그것으로 머리를 푹 뒤집어 쓰고 벽쪽을 향해 몸을 돌려 침대에 쓰러져 버리지 않겠소. 가냘픈 어깨하고 조그마한 몸이 언제까지나 떨고 있을 뿐...그런데 나는 그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누워 있었지요... 술에 취해 있어도 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젊은 선생님 얼마 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마찬가지로 말 한 마디 없이 소냐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밤새 그 아이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그 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좀처럼 일어서려고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두 사람은 그대로 같이 잠이 들어버렸지요. 껴안은 채 말이지요... 둘이서... 둘이서... 그래요... 그런데도 나는 곤드레가 되어 누워 있었다오" 그의 부인인 카테리나는 귀족의 자녀가 다니는 여학교를 나왔으며 지체 있는 집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병으로 병약해져 언제나 기침을 콜록이며 신경질적이며 남편을 증오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여인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마르메라도프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미칠 듯한 마음으로 한 푼이라도 가져오기를 기대하며 마르메라도프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양말을 팔다 못해 딸이 매춘을 해서 번 돈으로 값싼 술을 마시면서 그날그날을 술 없이는 못 사는 것이었다. 소냐는 전처가 낳은 딸인데 순진하고 온순한 처녀였다. 그러나 이제는 황색 감찰을 가진 매춘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는 괴로워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묵묵히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이 가엾은 주정뱅이를 위로하며 친히 부축하여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르메라도프가 사는 집은 페테르부르크 지저분한 뒷골목에 있었다. 커다란 건물의 내부는 어둠침침했고 4층 구석에 통로로 되어 있는 형편 없는 방이었다. 카테리나는 문턱에 무릎을 꿇은 남편의 모양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아아! 돌아왔군! 짐승! 짐승! 돈은 어디 있어요! 호주머니를 뒤집어 봐요. 어머나 옷도 달라졌어! 그 옷은 어떻게 했어요? 돈은 어디 있어요? 어서 말해요! 돈은 어디다 두었을까? 아아 또 들이마셨나 봐! 상자 속에 은화가 열둘이나 남아 있었는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분에 못 이겨 남편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방 안으로 끌어 넣었다. 마르메라도프는 온순하게 아내가 끄는 대로 제 무릎 걸음을 걸어 아내의 힘을 덜 들이게 했다.
이외수의 감성사전 말단사원 하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도 받는 대우는 가장 적은 고용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제일 먼저 참혹한 겨울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은 따스함에도 쉽게 언 가슴이 녹고 작은 감동에도 쉽사리 눈시울이 젖는다. 아직 기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공처가 마누라에게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편들을 일컬어 공처가라고 한다. 공처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경처가가 되는데 마누라 옷자락만 스쳐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편들을 말한다. 모두 마누라를 상전처럼 떠받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공처가나 경처가로 만드는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포기한 여자다. 사랑 받기를 포기하고 존경받기를 갈망하는 여자다. 남편의 가슴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머리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여자다. 비록 평지풍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애처가보다 행복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구파 학점구걸파의 준말. 개밥그릇 개의 먹이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모든 그릇. 고드름 겨울의 수염. 동장군의 이빨. 북풍의 발톱. 편지 자신이 생각이나 마음을 문자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통신수단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자의 발생연대와 편지의 발생연대는 동일하다. 포괄적 개념으로 정리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이 편지나 다름없다. 오늘날은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이용된다.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인생을 바꾸게 만들고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영혼을 구원케 만든다. 봄날의 햇빛 속에 흩날리는 꽃잎도 겨울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눈보라도 소식의 천사 가브리엘이 배달하는 하나님의 편지다. 그 속에 온 우주가 아름답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벽 일반적으로 어느 지역이나 지점을 수직의 면으로 가로막아 공간을 한정시키는 설치물을 벽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점을 벽이라고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들은 마음 안에도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어떤 군주들은 악법으로 써 나라의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온 백성을 가둔다. 벽은 가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벽이 없는 인간은 마음밖에도 벽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자유인이다.
Board 추천글 2024.10.25 風文 R 377
고급지다 우리는 규범을 근거로 언어 사용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받으며 사용되던 말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 말을 근거로 규범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고급진 옷차림을 한 남자”나 “실내 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졌다.”는 요즘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규범에는 맞지 않는다. 규범대로라면 ‘고급지다’는 ‘고급스럽다’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규범의 제약에도 ‘고급지다’는 더 널리 쓰이면서 도리어 규범을 바꿀 기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고급지다’가 ‘고급스럽다’를 대체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접미사 ‘-지다’와 ‘-스럽다’의 의미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접미사가 ‘그런 성질이 있음’이란 의미를 공유하더라도 그 쓰임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 값지다 × 값스럽다 ○ 멋지다 ○ 멋스럽다 × 사랑지다 ○ 사랑스럽다 ? 고급지다 ○ 고급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용법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지다’가 널리 쓰이게 되니 규칙의 호위를 받지 못하는 규범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고급지다’의 확장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지다’가 확장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다’와 ‘-스럽다’의 쓰임에 ‘고급지다’를 유추할 수 있는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멋지다’와 ‘멋스럽다’는 모두 가능한데, ‘멋스럽다’에서 ‘고급스럽다’를 연상하는 일이 잦아지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엔 “멋지다 : 멋스럽다 = X : 고급스럽다”의 틀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 틀의 X가 ‘고급지다’로 채워질 것이다. 게다가 ‘고급지다’에서 ‘값지다’를 연상하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연결 고리에서 ‘고급지다’가 자리 잡게 되면 ‘값스럽다’가 널리 쓰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25 風文 R 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