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좋아 영어 단어 중에는 접두사와 어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들이 많아 접두사의 뜻만 알고 있어도 단어의 뜻을 쉽게 유추해 영어의 어휘 창고를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on-(com-)’이 강조의 뜻을 지닌 접두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conㆍcise(=cut)’가 ‘간결한’의 뜻이고 ‘comㆍpact(=fasten)’가 ‘꽉 짜인’의 뜻임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말에도 강조의 뜻을 지닌 접두사들이 많은데, ‘강-’ ‘들-’ ‘새-’ ‘초-’ ‘한-’ 등이 그것이다. 먼저 ‘강-’은 ‘매우 센’의 뜻을 더해 ‘강타자’, ‘강추위’ 등으로 사용된다. 또한 ‘강-’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의 뜻을 더하기도 하는데, ‘강술’이 대표적인 예이다. ‘강술’은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이라는 뜻으로, 흔히 ‘깡술’로 쓰기 쉽지만 ‘강술’이 표준어이다. ‘들-’은 ‘몹시’의 뜻을 지녀 ‘들끓다’, ‘들볶다’ 등으로 사용되고, ‘새-’는 ‘매우 짙고 선명하게’의 뜻을 더해 ‘새까맣다’, ‘새빨갛다’ 등으로 사용된다. ‘초-’는 ‘어떤 범위를 넘어선’의 뜻을 지녀 ‘초강대국’, ‘초음속’ 등으로 사용되고, ‘한-’은 ‘큰’의 뜻을 더해 ‘한길’, ‘한시름’ 등으로 쓰인다. 또한 ‘한-’은 ‘정확한’ 또는 ‘한창인’의 뜻을 지녀 ‘한가운데’, ‘한겨울’ 등으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개좋아’처럼 ‘좋아’를 강조한 말로 형용사 앞에 ‘개-’를 붙여 사용하는데, ‘개-’는 접두사로서 명사 앞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개고생’은 ‘정도가 심한 고생’을 말하고, ‘개죽음’은 ‘헛된 죽음’을 말하며, ‘개살구’는 ‘야생의 살구’를 말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12 風文 R 1324
숫눈 지난주 대관령 산자락에 사는 막내 누님이 눈이 하얗게 쌓인 마을 사진을 보내왔다. 산간 지역이라 눈이 오면 불편한 점이 적지 않을 텐데도 우선은 그 소담스러운 모습에 마음을 뺏기고 마는 것이다.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으니, 눈은 고마운 존재였다. 동요 ‘눈’에서도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라고 하였듯이, 눈은 따뜻한 솜이불이자 배고픔을 달래주는 양식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얀 쌀알처럼 생긴 ‘싸라기눈’의 옛말은 아예 ‘쌀눈’(ㅄㆍㄹ눈 또는 ㅄㆍ눈)이었다. 북한어에서는 겨울에 많이 내리는 눈은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복눈’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눈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초겨울에 조금 내린 눈은 ‘풋눈’,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은 ‘자국눈’이다. 이와 달리 한 길이 될 만큼 많이 내린 눈은 ‘길눈’, 또는 한 자나 된다고 하여 ‘잣눈’이라고 한다. 그리고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을 가리켜 ‘숫눈’이라고 한다. ‘숫-’은 깨끗하다는 뜻의 접두사이다. ‘숫백성’이라고 하면 거짓을 모르는 순박한 백성을 뜻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숫눈처럼 깨끗한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어린이의 눈으로 시조를 쓰셨던 시조시인 서벌(徐伐)의 ‘섣달 그믐밤의 눈’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새하얀 가운 입은 하늘의 약사님이 / 아픈 우리나라 건강 빨리 찾으라고 / 조제한 귀한 약봉지 얼른 풀어 내리신다. // 앓는 산, 우는 강물 그런 들판, 그런 마음 / 다 함께 받고 있는 조선백자 빛깔 가루 / 새해가 내일이니까 건강 금세 찾을 거야.”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12 風文 R 1194
자장면과 짜장면 한동안 ‘짜장면’은 ‘자장면’으로만 적어야 했다.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외래어표기법 제1장 제4항)라는 규정을 따랐기 때문이다. 흔히 /께임, 뻐쓰, 쎈터, 쨈/으로 발음하지만 ‘게임, 버스, 센터, 잼’으로 적는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적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보통의 외국어는 ‘울림소리-안울림소리’의 대립을 이루는데, 한국어는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의 대립을 이룬다. 이런 불일치 때문에 울림소리를 예사소리 또는 된소리로 발음한다든지(boat-/보트/~/뽀트/), 안울림소리를 거센소리 또는 된소리로 발음한다든지(Paris-/파리/~/빠리/) 하는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줄이려고 외래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울림소리는 예사소리로, 안울림소리는 거센소리에 대응시키고 된소리는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에 따라 ‘뻐쓰’와 마찬가지로 ‘짜장면’도 틀린 표기가 되었던 것이다. ‘짜장면’은 2011년에 열린 국어심의회에서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으로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외래어 표기법 제1장 제5항)라는 규정을 이 말에 적용하기로 하면서 바른 표기가 되었다. 관용 표기의 대표적인 예로는 ‘껌(gum)’, ‘카메라(camera)’ 등이 있는데, 이렇게 범위와 용례를 따로 정하는 까닭은 관용 표기가 많아지면 표기법 전체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2004년에 제정된 타이어와 베트남어에 대한 한글 표기 세칙에서는 예외적으로 된소리 표기를 인정한다. 이에 따라 ‘Phuket’은 ‘푸켓’이 아닌 ‘푸껫’으로, ‘Ho Chi Minh’은 ‘호치민’이 아닌 ‘호찌민’으로 적어야 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10 風文 R 1156
겹받침 발음, 어떻게 할 것인가 겹받침의 발음은 발음 전문가인 아나운서들도 어려워할 만큼 쉽지 않지만 발음의 원리를 이해하면 실수 없이 발음할 수 있다. ‘하늘이 맑다’에서 ‘맑다’는 [막따]로 발음하는데, ‘하늘이 맑게 갰다’에서 ‘맑게’는 [말께]로 발음한다. ‘맑다’를 [막따]로 발음하는 이유는 표준발음법 제11항의 “겹받침 ‘ㄺ, ㄻ, ㄿ’은 각각 [ㄱ, ㅁ, ㅂ]으로 발음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고, ‘맑게’를 [말께]로 발음하는 이유는 ‘ㄺ’은 ‘ㄱ’ 앞에서 [ㄹ]로 발음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처럼 “겹받침 ‘ㄺ, ㄻ, ㄿ’은 뒤 자음을 대표음으로 발음해 ‘닭’은 [닥]으로 발음하고, ‘삶’은 [삼ː]으로 발음하며, ‘읊다’는 [읍따]로 발음한다. 그런데 겹받침 중에는 앞 자음을 대표음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은데, ‘넓다’를 [넙따]가 아닌 [널따]로 발음하는 경우 등이다. 이처럼 겹받침 ‘ㄳ’, ‘ㄵ’, ‘ㄼ, ㄽ, ㄾ’, ‘ㅄ’은 앞 자음을 대표음으로 발음해 ‘넋’은 [넉]으로, ‘앉다’는 [안따]로, ‘여덟’는 [여덜]로 ‘외곬’은 [외골]로, ‘핥다’는 [할따]로, ‘없다’는 [업ː다]로 발음한다. 다만 ‘밟다’는 ‘ㄼ’ 받침이지만 예외적으로 뒤 자음을 대표음으로 발음해 [밥ː따]로 발음하고, ‘넓 둥글다’도 ‘넓다’와 ‘둥글다’의 합성어 형태이기 때문에 대표음 [ㅂ]으로 발음해 [넙뚱글다]로 발음한다. 끝으로 겹받침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 등이 오게 되면 겹받침의 앞 자음은 남겨 두고 뒤 자음을 뒤 음절의 첫소리로 옮겨 발음하는데, ‘닭이’를 [달기]로, ‘여덟을’을 [여덜블]로, ‘젊어’를 [절머]로 발음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10 風文 R 1217
강추위에 손이 시려요 부쩍 날이 추워졌다. 겨울철의 심한 추위를 흔히 ‘강추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고유어 접두사 ‘강-’이 결합한 ‘강추위’가 있는데,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를 가리킨다. 이 접두사 ‘강-’는 ‘마른’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강기침(마른기침), 강모(마른논에 억지로 심는 모), 강서리(늦가을의 된서리)’ 등의 말에서 볼 수 있다. ‘강더위’는 비는 오지 않고 볕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 ‘강추위’의 반대말이 된다. 두 번째로 한자어 접두사 ‘강(强)-’이 결합한 ‘강추위’가 있다. 이는 눈이 오고 매운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폭설이 내리는 강추위’라고 한다면 이 두 번째 ‘강추위’가 된다. 얼핏 한 낱말로 보이는 ‘강추위’지만 실은 두 가지 다른 말인 것이다. 추위와 관련하여 흔히 잘못 쓰는 말로 ‘시려워’가 있다. 동요 ‘겨울바람’에서도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과 같이 ‘시려워’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의외로 이는 표준어가 아니다. 표준어는 그냥 ‘시려’이다. ‘시려워’는 ‘시렵다’가 ‘두렵다->두려워, 어렵다->어려워’처럼 활용한 것인데, 이 ‘시렵다’가 표준어가 아닌 것이다. 표준어는 ‘시리다’이고, 이것이 활용하면 ‘시려’가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언론 기사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려워, 시려워요’ 등은 ‘시려, 시려요’로 쓰는 것이 옳다. “추워진 날씨에 손이 시려워” -> 시려 “코가 시려워요” -> 시려요 올 겨울은 “강추위에 손이 시려요.”와 같은 표현을 쓸 날이 많지 않았으면 한다. 날씨는 춥더라도 마음만은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소망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10.09 風文 R 1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