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눈보라가 몰아치고 강추위가 덮치자 가마니틀 두 대를 아예 윗방으로 옮겨놓고 가마니를 쳤다.”(윤흥길, 소라단 가는 길) 이 문장에 나오는 ‘강추위’의 ‘강(强)-’은 ‘강한, 호된, 심한’의 뜻을 더해 주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강추위(强--)’는 ‘눈이나 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추위’로 풀이되어 있다. “겨울에도 강추위만 헐벗은 사람들을 못 견디게 했을 따름, 싸락눈 한 알 날리지 않았다.”(안수길, 북간도). 이 문장에 나오는 ‘강추위’의 ‘강-’은 한자어가 아니다. 고유어 ‘강-’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또는 ‘물기가 없는’의 뜻을 더해 주는 말이다. ‘강굴, 강기침, 강된장, 강모, 강서리, 강술, 강울음, 강주정, 강풀’ 등의 예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강추위’는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로 풀이해 놓았다. 우리말에는 두 가지 ‘강추위’가 있는 것이다. 그럼, ‘강더위’라는 말도 있을까. ‘오랫동안 가물고 별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를 가리켜 ‘강더위’라 한다. “오늘도 강더위가 시작되려는지 밤새 내린 이슬들이 곡식 이파리에 붙었다가 이내 말라버렸고 … 해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김송죽, 번개치는 아침) 하지만 ‘强더위’는 없다.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나타내고 싶을 때는 ‘무더위’라 하면 된다. ‘강추위(强--)’는 이전 사전에는 없었다가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처음 실린 새말이다. 본래 우리말에서는 고유어 ‘강추위’가 ‘강더위’와 짝을 이루어 널리 쓰였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저 ‘강추위(强--)’만 떠올릴 뿐이다. ‘강추위’는 우리 말글살이의 바깥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쓰리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10.01 風文 R 1276
‘성적 차별’의 발음 ‘성적 차별’이라는 말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표기대로 [성적차별]이라고 읽으면 학교에서 성적에 따라 학생들이 차별을 받는 것을 말하고 [성:쩍차별]이라고 읽으면 남성 혹은 여성의 성 차이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을 말한다. 후자는 ‘성적(性的) 차별’인데, 이처럼 어근 뒤에 접미사 ‘-적(的)’이 왔을 때 표기대로 [적]이라고 발음하면 ‘성적(性的) 차별’이 성적에 따라 차별을 받는 ‘성적(成籍) 차별’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적(的)’을 [쩍]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적(的)’이 항상 [쩍]으로 발음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과 같이 모음으로 끝나는 어근 뒤에서는 [적]으로 발음한다. 또한 ‘ㄴ’ ‘ㅁ’ ‘ㅇ’과 같은 비음(鼻音)으로 끝나는 어근 뒤에서도 [적]으로 발음한다. ‘낙관적’ ‘경험적’ ‘감동적’ 등이 그 예다. 비음은 입 안의 통로를 막고 코로 공기를 내보내면서 내는 소리인데, 모음과 마찬가지로 비음으로 끝나는 어근 뒤에서는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고 표기대로 [적]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음 이외의 ‘ㄱ’ ‘ㄹ’ ‘ㅂ’으로 끝나는 어근 뒤에서는 [쩍]으로 발음한다. ‘공격적’ ‘노골적’ ‘직업적’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1음절로 된 어근 뒤에서는 모음이나 비음, ‘ㄱ’ ‘ㄹ’ ‘ㅂ’으로 끝나는 어근 등 모든 환경에서 [쩍]으로 발음한다. ‘내적(內的)’ ‘전적(全的)’ ‘심적(心的)’ ‘성적(性的)’ ‘극적(劇的)’ ‘질적(質的)’ ‘법적(法的)’ 등이 그 예다. 이처럼 접미사 ‘-적(的)’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10.01 風文 R 1365
‘한글’이라는 이름, 두 번째 지난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최남선 작명설을 소개해 드렸는데, 편중된 느낌이 있어 주시경 작명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침 올해는 주시경 선생(1876~1914)이 나신 지 14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글’ 이름을 1910년 조선광문회에서 최남선 선생이 지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당대인은 박승빈 선생이다. 그 내용은 앞서 소개해 드렸다. 그런데 조선어학회의 이윤재 선생은 주시경 선생이 ‘한글배곧’(조선어강습소)이란 것을 세웠고, 이로부터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 하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상반된 이야기인데, 박승빈의 증언은 현장에 없었던 분의 말이어서 정확성이 문제될 수도 있다. 국어학자 고영근 선생은 이윤재의 증언 및 그 밖의 자료들을 중시하여 ‘한글’을 작명한 분은 주시경 선생이라고 한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주시경 선생은 1912년 경의 ‘소리갈’이라는 책, 그리고 1913년 창립한 ‘한글모’라는 연구회 명칭에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선생은 그 이전인 1910년에 ‘한나라말, 한나라글’이라는 이름, 1911년에는 ‘한말익힘곳’이라 하여 ‘한말’이라는 이름을 썼다. ‘한말’이 있었다면 ‘한글’도 있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나라말’, 그리고 당시 외국인이 우리말을 ‘韓語(한어)’라고 부른 점으로 볼 때, 주시경이 쓴 ‘한말’의 ‘한’은 대한제국의 ‘韓’이다. 그렇다면 ‘한글’도 주시경이 지었다면 ‘韓글’일 수밖에 없는데, 그 제자인 권덕규 선생은 ‘한글’이 ‘韓文(한문)’을 우리말로 그냥 읽은 것이라고 증언하여 이 점을 뒷받침한다. 이상은 주시경 작명설의 내용이다. ‘한글’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당대인들의 언급이 엇갈리고 있어 어려움이 있지만, 이러한 연구들 덕분에 우리는 많은 사실에 접하게 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26 風文 R 1276
호랑이와 호랭이 ‘호랑이’는 표준어이고, ‘호랭이’는 비표준어이다. 후자에서 일어나는 음운현상을 ‘ㅣ모음 역행동화’라 한다. 음운론에서, ‘역행’은 뒤에 나오는 소리가 앞에 나오는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 쓰는 용어이고, ‘동화’는 앞뒤의 두 소리가 같아지거나 비슷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니까 ‘ㅣ모음 역행동화’는 앞 음절의 모음이 뒤 음절에 있는 ‘ㅣ’의 영향을 받아 ‘ㅣ’와 비슷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풀 수 있다. ‘ㅣ’와 비슷해진다는 말은 같은 전설모음인 ‘ㅔ, ㅐ, ㅚ, ㅟ’ 등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호랑이→호랭이’는 뒤 음절 모음 ‘ㅣ’의 영향으로 앞 음절 모음 ‘ㅏ’가 ‘ㅐ’로 바뀐 것이다. ‘손잽이(손잡이), 차돌배기(차돌박이), 챙피하다(창피하다), 멕이다(먹이다), 괴기(고기), 쥑이다(죽이다)’ 등등도 ‘ㅣ모음 역행동화’로 설명할 수 있다. 표준어규정에서는 원칙적으로 ‘ㅣ모음 역행동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봄날 햇빛이 강하게 쬘 때 공기가 공중에서 아른아른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킬 때는 ‘아지랑이’라고 해야지 ‘아지랭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아비, 어미, 아기’에 대해서도 ‘애비, 에미, 애기’는 모두 비표준어이다. 예외적으로 ‘ㅣ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난 형태를 표준어로 인정하기도 한다. ‘-내기’가 대표적이다. ‘-내기’는 본래 ‘-나기’에서 온 말이지만, 지금은 ‘-내기’로 굳어졌다고 보아 ‘서울내기, 시골내기, 신출내기, 여간내기, 풋내기’ 등과 같이 ‘-내기’로 끝나는 말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냄비, (내)동댕이치다, 올챙이, 굼벵이’도 각각 ‘남비, (내)동당이치다, 올창이, 굼벙이’에서 ‘ㅣ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난 형태지만 표준어로 인정되는 예들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25 風文 R 1190
나으리? 나리! 사극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나으리, 부르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나으리’는 ‘나리’의 잘못으로, 불필요하게 모음 ‘으’를 덧붙인 것이다. 이때는 “나리, 부르셨습니까”와 같이 말해야 한다. 부사로 쓰이는 ‘그제야’ 혹은 ‘이제야’의 경우도 불필요하게 조사를 첨가해 ‘그제서야’ 혹은 ‘이제서야’로 사용하기 쉽다. ‘그제’와 ‘이제’는 모두 시간을 나타내는 명사인데, 여기에 장소를 나타내는 처소격 조사 ‘-(에)서’를 불필요하게 붙여 사용하면 안 되고 ‘그제야’ 혹은 ‘이제야’로 말해야 한다. 동사에도 불필요하게 음운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개다’, ‘땀이 배다’, ‘마음이 설레다’, ‘목이 메다’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여기에 불필요하게 피동접미사 ‘이’를 덧붙여 ‘날씨가 개이다’, ‘땀이 배이다’, ‘마음이 설레이다’, ‘목이 메이다’라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이다. ‘개다’, ‘배다’, ‘설레다’, ‘메다’ 등의 동사는 모두 자동사이기 때문에 피동접미사 ‘이’를 붙여서는 안 된다. 또한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잘못 쓰는 것도 불필요하게 ‘하’를 덧붙인 경우이다. ‘-하다’는 명사 뒤에 붙어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로서 ‘공부하다’, ‘생각하다’ 등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삼가다’는 그 자체가 이미 별개의 동사이기 때문에 ‘-하다’라는 접미사를 결합해 쓸 수 없다. 따라서 “흡연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가 아니라 “흡연을 삼가시기 바랍니다.”로 말해야 한다. 뱀에게 있지도 않은 발을 덧붙여 그려 도리어 그림을 잘못되게 한 것처럼 군더더기 말은 말을 잘못되게 만드는 사족(蛇足)과도 같은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25 風文 R 1269
‘-에 대하여’를 어찌할까요 우리말에서 ‘-에 대하여’란 표현이 많이 쓰이는데, 그중 적잖은 예들이 ‘-을’이나 ‘-에, -에게’ 등으로 고쳐 쓸 만한 것들이다. 법령문에서 특히 이러한 표현을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직원에 대하여 협박하거나”는 “직원을 협박하거나”로, “관계인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다”는 “관계인에게 질문할 수 있다”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동안 법제처는 이처럼 남용되는 ‘-에 대하여’를 바로잡아 왔는데, 최근 교육부도 앞으로 이 ‘-에 대하여’를 교과서에서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를테면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를 “삶의 자세를 생각해 봅시다.”로 고쳐 쓰는 식이다. 이렇게 교육 현장에서 국어를 갈고 닦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에 대하여’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렵거나 어색해서가 아니라 일본어투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의 기원을 장담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자칫 이러한 태도는 우리말 표현을 옥죄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올바른 운동법에 대하여 토론해 봅시다’를 ‘올바른 운동법을 토론해 봅시다’라고 할 수는 없지는 않겠는가. 물론 ‘올바른 운동법이 무엇인지 토론해 봅시다’처럼 쓸 수는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표현의 갈래를 제약하는 자체가 국어의 힘을 떨어뜨리게 된다. 더 쉽고 고운 말로 교과서 문장을 가다듬는 것은 백번 찬성할 일이다. 방침에서도 제시하듯이 가능하면 ‘이유, 의미’보다는 ‘까닭, 뜻’처럼 쉬운 말을 살려 쓰는 것이 좋고, ‘소감’보다는 ‘느낀 점’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이유, 의미’ ‘-에 대하여’가 자연스러울 때가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가려 쓰는 지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24 風文 R 1151
끼우다, 끼이다, 끼다 ‘끼우다, 끼이다, 끼다’는 뜻과 용법이 조금 복잡하다. 찬찬히 살펴보자. ‘끼우다’는 타동사, 즉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이다. ‘무엇을 비교적 좁은 틈에 넣거나 꽂거나 하여 빠지지 않게 하다’ 또는 ‘누구를 한 무리에 섞거나 덧붙여 들게 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끼우다’는 ‘끼우어(끼워), 끼우니, 끼운’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술추렴에 나를 끼워 주었고, 따뜻한 아랫목을 기꺼이 내게 양보했다.”(이문열, 그해 겨울) ‘끼이다’는 자동사, 즉 목적어가 필요 없는 동사이다. ‘무엇이 비교적 좁은 틈에 넣어지거나 꽂혀서 빠지지 않게 되다’ 또는 ‘누가 한 무리에 섞여 들거나 어떤 일에 관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끼이다’는 ‘끼이어(끼여), 끼이니, 끼인’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그의 튼튼한 누런 이빨 사이에 끼인 고춧가루가 눈에 띄었다.”(김원일, 어둠의 축제) ‘끼우다’와 ‘끼이다’는 모두 ‘끼다’로 줄여 쓸 수 있다. 이때의 ‘끼다’는 ‘끼어(껴), 끼니, 낀’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을 한다. “형님이 나를 어떤 단위조합에라도 끼어 넣어 주십시오.”(이병주, 지리산) 이 문장에 쓰인 ‘끼어’는 ‘끼우어(끼워)’로 바꿔 쓸 수 있다. 반면에, “두령들도 변복한 뒤에 금구에서 일단 모이기로 약속한 후 군사들 틈에 끼어 뿔뿔이 흩어졌다.”(유현종, 들불) 이 문장에 쓰인 ‘끼어’는 ‘끼이어(끼여)’로 바꿔 쓸 수 있다. ‘끼다’에는 ‘끼우다’나 ‘끼이다’의 준말이 아닌 것도 있다. ‘팔짱을 끼고 걷다’ ‘학교 건물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다’ ‘구름이 낀 하늘’ ‘창문에 먼지가 잔뜩 끼어 있다’ 등과 같은 용례에서는 ‘끼다’를 ‘끼이다’나 ‘끼우다’로 바꿔 쓸 수 없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24 風文 R 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