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50. 자비 <자비는 동정으로 가득차, 조이고 짜내는 가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건 아주 깊고 넓은 사랑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기꺼운 것이다> 예수가 어느 날 채찍을 들고 예루살렘의 큰 사원으로 갔다. 예수의 손에 채찍이 들렸다는 사실. 이는 바로 붓다의 이 말씀과 통한다. "열린 손은 독약도 다룰 수 있다" 그렇다. 예수는 기꺼이 채찍도 다룰 수 있다. 채찍 따위가 예수를 압도할 순 없다.그는 언제나 깨어 있으므로. 예루살렘의 큰 사원은 도둑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교활한 도둑질과 약탈이자행되고 있었다. 사원 안에는 환전상들이 판을 치며 온 나라를 좀먹고 있었다. 예수는 사원 안으로 들어가 환전상들이 벌려 놓은 판을 죄다 뒤집어 엎어 버렸다. 돈들이 쏟아지며 흩어지고 난리가 일어나자 환전상들은 사원 밖으로 피해 달아났다. 그들은 수가 많았고 예수는 혼자였지만, 맹렬히 타오르는 예수의 불길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에너지일까? 평화와 영광의 상징인 예수한테서 대체 이게 뭔가? 크리스챤들한테는 참 곤란한 에너지이지만, 이는 붓다의 말씀과 통한다. 열린 손은 독약도 다룰 수 있다. 순진무구한 사람은 전혀 해되지 않는다. 이건 예수의 자비이고 사랑이다. 그의 채찍은 자비의, 사랑의 채찍이다.
Board 추천글 2021.09.15 風文 R 1123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따끈따끈한 인정 전국을 구름처럼 떠도는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자 하룻밤 묵어 가기 위해 한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마침 흉년이 들었던 때라 마을은 썰렁하고 무척 곤궁해 보였습니다. 나그네는 지친 발걸음을 쉬어 가기 위해 일부러 마을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리 오너라." 곧이어 하인인 듯한 사람이 나왔고 나그네는 곧 사랑채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는 널찍한 방에 앉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깨끗한 의복을 입은 한 선비가 나타나 미소를 띠우며 인사를 청했습니다. 나그네는 하룻밤 잠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터에 저녁까지 봐주려는 주인의 마음씨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밥상은 주인과 겸상이었지만 아무 반찬도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뚜껑이 덮인 놋주발 두 개만이 상 위에 놓여 나온 것입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뜨거울 때 조금이라도 드십시오." 주인은 나그네에게 저녁 들기를 권유하며 수저를 들고 밥주발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나그네도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주인이 하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뚜껑을 연 나그네는 순간 두 눈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놋그릇 속에는 뜨겁게 끓인 백비탕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때가 흉년인지라 나그네에게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가난한 주인이 손님을 위해 맹물이나마 정성껏 끓여온 것입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뜨거운 백비탕 한 그릇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배불리 먹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1.09.15 風文 R 549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키 150센티미터, 몸무게 37킬로그램 - 이수림 의사들은 내가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다시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믿었고,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 윌마 루돌프(육상 세계 기록 보유자) "뇌성마비이지만 아이가 자라면 조금씩 좋아질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사의 이 한 마디는 엄마인 최권순 씨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는 점쟁이도 찾아가고, 용한 한의사에게 침을 맞히려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런 것이 부모 마음에 위안은 될지언정 아이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한이는 저보다 세 살 어린 동생과 쌍둥이처럼 자랐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상태가 제 또래 아이들보다 서너 살은 늦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이 되었다. 취학 통지서를 받고 찾아간 초등학교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은 영한이 모자를 따로 만났다. "혜성학교(특수학교)에 가보세요. 그곳에서는 영한이 같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아이들에게 놀림당하지도 않을 겁니다." 혜성학교의 입학 허가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만 영한이는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노는 시간,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가 텅 빈 교실에는 눈물 짓는 엄마와 말없는 아들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내 아들도 저 애들처럼 뛰고 달리고 소리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한이가 수업내용을 알아듣고 무척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었다. 아들의 입학 수속을 밟기 위해 혜성학교를 찾던 날, 취권순 씨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내 자식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최씨는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수많은 장애아들을 보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슴이 저며 왔다. 더구나 중증의 장애아들을 보면서 그나마 내 아이는 다행이라는 위안도 받았다. 한 달 뒤, 최씨는 영한이를 위해 혜성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었다.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해서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한 뒤로는, 엄마 대신 다섯 살 난 동생이 영한이의 보호자로 나섰다. 제 키만한 형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어린 보호자는 길에서 강아지만 봐도 울고 동에 아이들이 형을 놀려도 울었다. 결국 엄마가 가게 문을 닫고 아들을 따라다녀야 했다. 몇 달 뒤, 영한이는 더듬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 혼자 갈테니 엄마 오지마." 초등학교 1학년, 강영한의 키는 1미터에서 1센티미터가 모자라는 99센티미터였다. 비 오는 날이면 등교길에 아이는 보이지 않고 우산만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작은 아이, 비록 몸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다. 혜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영한이를 담임 선생님은 일반학교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최씨 부부에게 제안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좋지요. 그런데 학교에서 받아 줄까요?" 부모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혜성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영한이는 덕천중학교와 낙동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혜성학교와는 달리 건강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심리적 부담이 컸다. 다행히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영한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 주셨다. 중고등학교에서 영한이는 어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특히 영어와 국어성적이 좋았다. 그러다 중3때 아버지가 맘먹고 컴퓨터를 한 대 사주자 영한이는 시간만 나면 컴퓨터를 배웠다. 물론 고등학교 3년 동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녀야 했던 먼 거리의 통학길은 영한이의 연약한 심신을 지치게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자습을 한다는 것도 큰 무리였다. 성적보다 건강을 우선시 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영한이의 대학진학만은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러나 영한이는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었다. 특히 그동안 취미를 붙여 온 컴퓨터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다. 오히려 영한이는 자신의 건강보다 목수로 청소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 가시는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을 대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영한이의 뜻을 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날부터 영한이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제대 전산학과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 종일 길거리를 누벼야 하는 어머니 최권순 씨는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잠들 때까지는 눈을 붙이지 않았다. 간혹 코피를 흘리는 영한이의 모습에 아버지도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처럼 온 가족이 영한이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다. 드디어 시험. 언어 장애 학생은 받아 본 적이 없다는 학교측의 반응이 잠시 영한이의 가족을 절망속으로 몰아넣었지만, 하늘은 이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영한이는 합격했다. 만 18세, 키150센티미터, 몸무게 37킬로그램의 강영한은 내신 성적 8등급, 수능시험 137.3점으로 인제대 전산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날 영한이는 목수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홀로 서기의 첫걸음을 내딛는 영한이. 부모가 짊어진 가난으로 인해 자신에게 씌워진 신체 장애의 멍에를 극복한 영한이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컴퓨터 전문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자유기고가)
Board 삶 속 글 2021.09.15 風文 R 739
Board 고사성어 2021.09.15 風文 R 1315
편견의 어휘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 윤리’만큼은 우리의 문화권이 가장 반듯한 편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최근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그런 믿음에 의구심이 생긴다. 더구나 남의 자식도 아니고 자기 자녀를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포악하게 해친 것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단순히 볼 일이 아니다. 일종의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 보고 신중히 진단해서 치유해야 할 문제다. 이런 병리 현상에 대한 조사와 분석은 수사관과 정신의학자들의 몫이겠지만, 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실제 출산을 통해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재혼을 통해 맺어진 사이에서는 ‘의붓-’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로, 혹은 ‘계부’ ‘계모’로 그 양친을 일컫는다. ‘혈연’을 귀중하게 여기다 보니 그 핏줄에 무언가의 ‘굴절’이 생긴 것을 그대로 눈감고 지나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와 관계된 옛날이야기나 속담들을 보면 늘 고약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좋지 않은 선입관을 주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다 요즘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에 일부 이러한 관계의 부모가 연관되어 버렸으니 사람들의 선입관이 더욱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린이들이 어른들한테서 피해를 당하는 것은 모든 어른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이지, 재혼한 사람들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크게 곡해하는 일이다. 또 많은 사람들의 인격에 불신을 심어주는 위험한 언어폭력이기도 하다. 옛날과 달리 이제는 이혼과 재혼이 무척 자유스럽다. 따라서 이 문제를 우물우물 지나칠 것이 아니다. 언론 매체가 이러한 어휘를 미리 걸러내야 한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든지 겪을 수도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보자는 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비판과 막말 언제부턴지 우리 정치판에서 ‘막말’이라는, 개념이 불투명한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저급한 표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시퍼렇게 날이 선 비판적인 표현에도 똑같은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냉정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활동이기도 하면서 사회집단의 의견과 마음을 ‘대변’하는 기능도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피해를 본 억울한 집단을 대변하려 한다면 그 어찌 곱고 단정한 어휘로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국가기관을 비판하거나 책임자를 추궁하는 일에 어찌 무미건조한 어휘로 그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려면 풍자, 비유, 조소 등에 매우 능해야 하고, 강자에 대한 도전 의식과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필수적이다. 또 비판적인 언어는 주어진 판세 자체를 흔드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얌전한 말만 골라 쓰자고 강요한다면 기존 판세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들이 또 덕을 보게 된다. 새로운 판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매우 강하게, 맵게, 매몰차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누군가의 편을 드는 셈이다. 더구나 개념이 불분명하면 정치적 약자 아무한테나 뒤집어씌우기도 딱 좋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책임은 언론 매체에 있다. 따라서 목청을 높여 누가 막말을 했다고 요란을 떨기보다는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예리하고 차분하게 보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이 그 ‘맥락’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다음의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보도 매체가 스스로 정치하려고 나서니까 불분명한 개념으로 우리의 정치가, 정치인들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9. 사랑 <사랑을 그냥 묻어 두거나 계산하지 말라. 아까워하지 말라. 그러면 모두 잃을것이니. 사랑을 꽃피워 함께 나누라.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 한 왕이 세 아들을 두었는데, 셋 중에서 후계자를 선택해야만 되었다. 한데 참곤란한 것이 세 아들 다 아주 영리하고 용맹스러워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세 쌍동이였기 때문에 서로 닮았고 나이도 똑같았으니 뽀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위대한 현자를 찾아가 물었다. 성자는 한 가지 묘안을 내놓았다. 돌아온 왕은 세 아들을 불렀다. 왕은 세 아들에게 각각 꽃씨를 한 줌씩 주며 말하기를, 자신은 이제 곧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라 하였다. <몇 해 걸리리라. 한 두 해나 어쩌면 몇 해 더. 이건 너희들을 시험하는 것이니까 잘 알아 둬라. 내가 돌아오거든 이 꽃씨들을 내게 도로 내놓아야 한다. 가장 잘 보관했다가 내놓는 사람이 후계자가 될 것이다> 왕은 길을 떠났다. 첫 번째 아들이 생각하기를, <이 꽃씨들을 어떻게 할까?> 그는 단단한 금고 속에다 꽃씨를 숨겨 놓았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그대로 되돌려 주기 위해서. 두 번째 아들이 생각하기를, <첫째처럼 금고 속에 숨겨 놓으면 꽃씨들이 죽을 테지. 죽은 꽃씨는 꽃씨가 아니야> 그래서 그는 장터로 나가 꽃씨를 팔아 돈을 마련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다시 장터로 가서 이 돈으로 새 꽃씨를 사다 드려야지. 더 좋은 것으로> 세 번째 아들은 뜰로 나가 빈틈 없이 꽃씨를 뿌려 놓았다. 삼 년 후 아버지가 돌아왔다. 첫 번째 아들이 금고에서 꽃씨를 꺼내왔다. 꽃씨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이게 뭐냐! 내가 너에게 준 꽃씨가 이거더냐? 그 꽃씨들은 꽃을 피워 좋은 향기를 뿜을 수가 있었다. 근데 이것들은 죽어서 고약한 냄새만 풍기지 않으냐. 이건 내 꽃씨가 아니다!> 아들은 분명 아버지께서 주신 그 꽃씨라고 주장하였다. 왕이 외쳤다. <넌 유물론자구나!> 두 번째 아들은 재빨리 장터로 달려가 새 꽃씨들을 사가지고 와서 아버지 앞에서 내밀었다. 왕이 말하기를, <근데 이건 다르지 않느냐. 네 생각이 첫째보단 좀 낫다만 아직 얼었다. 넌 심리학적이구나!> 왕은 세 번째 아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두려움과 함께. <그래 넌 어찌했느냐!> 세 번째 아들은 아버지를 뜰로 모시고 나갔다. 뜰에는 온통 수많은 꽃들로 흐드러져 있었다. 아들이 입을 열기를, <아버지께서 주신 꽃씨들이 바로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꽃들이 다 한껏 피어나면 씨앗을 모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저 간직하고 축재하는 자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 타산적인 마음은 진짜 삶을 놓친다. 창조하는 마음만이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꽃은 아름답다. 꽃의 아름다움은 간직되어지는 게 아니다. 그건 신을 표현한다. 신은 간직되어질 수 없다. 그건 사랑을 나타낸다. 사랑은 간직되어지는 게 아니다. 사랑은 꽃과 같다. 사랑이 꽃피면 너도 나도 그 향기를 맡는다. 함께 나눈다. 그건 주는 것. 그대가 줄수록 사랑은 더 커진다. 더욱 커져서 사랑의 무한한 원천이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2차대전 중에 열대 밀림 한복판에 있던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는 늘 짙은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전기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지독한 무더위와 살인적인 배고픔 때문에 포로들의 얼굴에는 이미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량이 거의 공급되지 않았던 수용소에서 쥐를 잡아먹었다면 큰 행운이라고 부러움을 받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수용소 안에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인으로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절친한 단 한 명의 포로에게 그 양초가 가장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라면서 이같은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친구에게도 꼭 나눠주리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은 포로는 그 뒤부터 혹 친구가 양초를 혼자 다 먹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밤마다 가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서글픈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군. 내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 그러나 배고픔에 지친 포로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밤, 양초가 든 가방을 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그 포로는 친구가 부시시 일어나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서 양초를 꺼내들자 친구가 자기 혼자만 양초를 먹으려는 줄 알고 놀라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양초를 꺼내 판자 위에 올려 놓고 숨겨 놓았던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두막 안이 환해졌습니다. 포로들은 작고 약한 불빛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난 뒤 하나둘 촛불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촛불은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은 없습니다." 촛불은 활활 타올라 점점 커져서 포로들의 마음까지 비추는 듯했습니다.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는 반드시 집에서 보내자구." 누군가 또 이렇게 말하자 포로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 뒤,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습니다. 그 날 그렇게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던 포로들은 아무도 배가 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갖지만, 희망은 언제나 실망과 맞붙어 있는 것이어서 실망하게 되면 풀이 죽고 만다. 희망을 질러 나아가고, 잃지 않게 하는 것은 굳센 용기뿐이다. (양계초)
Board 추천글 2021.09.14 風文 R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