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신앙으로 다시 서는 사람들 "무척이나 배가 고팠고, 몸 상태도 아주 나빴으며, 완전히 기운이 빠져 있어 앞날에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했어요. 아이들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차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지요. 나는 잠시 동안 우리 모두가 죽는 순서를 생각했습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도 알아두었습니다. 아이들은 비실거리며 겁먹은 얼굴로 나에게 꼭 달라붙었습니다. 이윽고 기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로는 바로 곁에 있었죠. 나는 아이들을 끌어당겨 꼭 껴안았습니다. '자아, 기차가 오면 단번에 뛰어든다' 하고 자세를 갖춘 순간, 막내가 내 가슴으로 파고들며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엄마, 무서워. 엄마, 추우니까 어서 집으로 가!' 그 한마디에 나는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도망치듯 추운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굶주림과 슬픔과 절망에 시달리면서도 어디까지나 노래의 길, 그 한길로만 정진하여 마침내는 성악가로서 당대 회고의 위치를 차지했던 슈만하잉크 여사가 자살을 하려다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슈만하잉크 여사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장교였습니다. 가족은 많은데 봉급은 적어 늘 배가 고팠던 그녀는 학교를 도망쳐 나와서는 변두리의 작은 동물원으로 가 원숭이 우리를 청소해 준 다음 샌드위치를 조금 얻어 먹곤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 후에도 고통은 계속되어 남편은 빚만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남편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당시 법률에 의해 관리들은 의자 하나와 침대 하나만을 남기고 가재도구를 전부 들어 냈습니다. 그런 와중에게 세 번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산후조리도 못하고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노래를 했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추위와 굶주림에서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깊은 절망 속에서 반 미치광이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자살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가슴에 파고들어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신비스러운 목소리는 바로 수많은 고뇌를 헤쳐온 힘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자신의 비극을 통해 얻은 동정과 친절의 목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은 인간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신앙으로부터 배우며 날마다 성경을 읽고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미국에 귀화한 그녀는 당대 제일의 오페라 가수가 되어 만년에는 영화에도 출연하게 됐습니다.
Board 추천글 2021.09.05 風文 R 1239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창 밖에 사슴이 - 백명희 봄 학기 첫 강의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가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똑딱똑딱' 하는 소리가 신경에 걸렸다. 하던 말을 그치면 그 똑딱거리는 소리도 멈췄다. 아주 기분 나쁜 강의 시간이었다. 다음 주 또 그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 들어가 막 수업을 시작했는데 교실 앞문으로 뒤늦게 들어오던 한 학생이 마침 비스듬히 놓인 책상 모서리에 부딪쳐 넘어지려는 순간, 둘째 줄에 앉은 학생의 재빠른 도움으로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강의실 가득히 앉았던 학생들 중 누구 하나 웃지 않는 게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뒤늦게 들어온, 넘어질 뻔했던 그 학생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학생 쪽에서 똑딱거리던 그 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학생이 점자를 찍어 노트 필기를 하는 소리였다. 그 학생은 어릴 때 약을 잘못 써서 실명하게 되었고, 대학에서는 수학과를 지원하였지만 교수들의 권유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학생은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것도 자기처럼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뭔가를 이뤄 보려는 학생을 가르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 교직 과목을 줄곧 신청하게 되어 나는 그 학생과 각별히 친해졌다. 그 학생은 과제물도 꼭꼭 제때에 제출했다. 비록 어떤 글자는 종이 밖으로 밀려 나가고 글씨도 고르지 못했지만,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게 부탁해 읽으라는 참고 도서를 모두 읽고 리포트를 작성하곤 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겨 온 후 학생들을 인솔하고 학교 참관을 다닐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은 맹인학교에 참관을 가게 되었다. 학생들과 조용히 수업 참관을 마치고 나오던 나는 "선생님!"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무심코 돌아섰다. 바로 그 학생이 맹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조용히 말하는 내 말소리로 나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역시 의젓하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자신감을 갖고, 또한 보람을 느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중진의 교사였다. 오랜 꿈을 이룬 것이었다. 얼마나 값진 삶인가!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Board 삶 속 글 2021.09.05 風文 R 484
曲突徙薪(곡돌사신) 曲(굽을 곡) 突(굴뚝 돌) 徙(옮길 사) 薪(땔나무 신) 한서(漢書) 곽광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하였답니다. 曲突徙薪 이란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을 뜻한다.
Board 고사성어 2021.09.05 風文 R 883
선교와 압박 종교는 선교 활동을 통해 종교적 확신을 확산시킨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라든지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처럼 통치자의 개종이 백성의 신앙을 규정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왕실의 개종이 선행했던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선교 방식은 개개인에 대한 설득이다. 곧 대화를 통하는 방식이다. 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대화라는 것이 무척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엄중한 규칙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서로의 상호행위를 기초로 하며 모든 발화 단위가 일정한 맥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말 순서를 지키고 발언권을 분배하기 위한 규칙도 분석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강압이나 언어적 공격이나 다름없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명령과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긍 같은 것은 당연히 대화로 인정하기 어렵다. 대화 가운데 또 중요한 것은 화제를 선정하는 권리다. 상대방이 선정한 화제에 관심이 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무관심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냐고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민 문화가 아니다. 자신이 그러한 화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도 의당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종교를 열성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의 신앙심은 충분히 믿어 의심치 않으나 많은 경우에 이들의 공세적인 대화 방식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대화라는 것은 화제의 선택부터 발언권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잘 지켜야 하는 ‘질서 잡힌 행동 체계’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다듬어져 있는 까다로운 문화적 기제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신성한 교리나 신앙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런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요하는 대화는 부작용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또 다른 이름 사람에겐 매우 다양한 이름이 있다. 본명, 별명, 아호, 필명, 예명 그리고 인터넷망의 아이디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산다. 이런 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본명과 별명이다. 나머지는 사람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공적인 이름으로도 사용되는 본명은 명명자인 부모의 꿈이 담겨 있어서 어느 정도 과장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이의 이름에 현명할 현(賢)자가, 천하의 겁쟁이 이름에 용감할 용(勇)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반면에 별명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본인의 특징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의 별명을 보면 그의 됨됨이를 눈치챌 수 있다. 종종 ‘구두쇠’나 ‘대쪽’, ‘책버러지’ 같은 별명은 해석하기에 따라 칭찬 못지않은 별명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들 가운데 초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별명이 별로 없다. 초등학생은 선생님을 어려워하기 때문이요, 대학생들은 교수들한테 별로 인간적인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춘기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개 짓궂은 별명을 얻는다. 사제관계가 가장 끈끈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선생님은 그 엄격함 때문에, 다정한 선생님은 그 다정함 때문에 별명이 생긴다. 별명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브랜드 네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다. 상표명하고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누가 이름을 짓든지 남들이 기꺼이 호응해 주어야 하는 관계에서 성취되는 명명이다. 그래서 그 이름의 음성과 의미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가치가 살아난다. 혼자 지은 멋 부리는 이름은 자칫 허황되게 들리기 쉽다. 자신의 바람과 꿈도 있어야겠지만, 자신과 끈끈한 관계의 남들의 현실 인식도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이름이어야 한다. 책임자가 갈릴 때마다 바꿀 이름이라면 그런 이름 짓느라 고생하며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