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3. 마음 <슬픔과 기쁨, 부정과 긍정, 천국과 지옥이 있고 없음은 오직 자신의 책임이다. 이 책임을 알고 받아들일 때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하니,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네> 웬 여행자가 우연찮게 낙원으로 들어갔다. 이 낙원에는 소원성취 나무들이 있어서 나무 밑에 앉아 뭘 원하기만 하면 즉각 성취되었다. 그러니까 여긴선 뭐든지 원하기만 하면 성취할 수 있었다. 여행자는 매우 지친 터라 한 나무 밑에서 금새 잠들어 버렸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나자 무척 배고 고픈 것을 알았고, 그래서 중얼거렸다. "배가 아주 고픈데. 어디 뭐 좀 먹을 게 없을까" 그러자 머리 위에서 뭐가 뚝 떨어졌는데, 보니까 글쎄 기막힌 먹을거리엿다. 무척 배를 골았던 그는 그게 어디서 어떻게 생긴 건지엔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배가 고프면 철학도 못한다. 얼른 집어서 실컷 배불리 먹은 후에야 그는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아 배가 불렀다. 그러자 다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뭘 좀 마셔야겠는데..." 낙원에서는 금지하는 게 없었다. 그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아주 고급의 술병이 어디선가 뚝 떨어졌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서 살랑이는 바람을 받으며 유유자적 술병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뭘까? 내가 지금 꿈꾸는 건가 아니면 도깨비 장난에 놀아나는 건가?" 그러자 도깨비들이 나타났는데, 소름 끼치도록 험상궂은 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질겁을 하며 생각하기를, <아이쿠 이젠 죽었구나...>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대의 마음이 바로 소원성취 나무이다. 뭘 원하면 조만간 이루어지는데, 종종 자신이 원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근원과 통할 수 없을 때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자신의 생각 하나하나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삶을 형성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생각 하나하나가 지옥을, 천국을 낳고, 슬픔을, 기쁨을 낳고, 부정을, 긍정을 낳는다. 여기선 누구나 다 마술사. 그들은 그물을 짜서 자기 주변에 마술으 세계를 꾸며 놓는다. 그리고 거기에 갇힌다. 거미처럼. 거기서 몸부림치는 것은 바로 그대 자신. 그러나 이를 일단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게 변화하기 시작하니, 오로지 그대한테 달린 일이다. 그럴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느니, 이젠 도무지 뭘 만들 필요가 없다. 휴식. 마음의 휴식. 명상.
Board 추천글 2021.09.04 風文 R 1068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발끝으로 서기까지 20세기 초 한 젊은 여류 무용가는 발레의 기존 형식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충격과 모험이었습니다. 검은 눈의 미녀로 우아함을 지녔던 그녀의 이름은 이사도라 던컨입니다. 뻣뻣한 발레용의 짧은 스커트나 몸을 죄는 발레 의상을 몹시도 싫어한 그녀는 옛날 그리스인이 입었던 느슨한 튜닉을 걸치고 맨발로 춤을 추었습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닌 그녀는 1878 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천부적으로 무용에 재질이 있었던 그녀는 19세에 뉴욕 단독 데뷔 공연에서 팔과 다리를 노출시키고 춤을 추어 점잔을 빼던 사교계 부인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그 소동으로 더욱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굳혀 나갔습니다. 1899 년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는 런던, 파리, 부다페스트, 베를린에서 잇따른 성공을 거둡니다. 야유를 하기 위해 오는 관중, 격려를 위해 오는 관중, 각양각색이었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이사도라의 우아한 몸놀림과 강렬한 정서적 표현에 사람들은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결혼이 진정한 천재를 말살하는 것이라 선언하고 오직 수많은 연인들과의 사랑놀이만으로 일관했습니다. 또한 이사도라는 전통적 발레교습은 일종의 횡포일 뿐이라며 새로운 무용이론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악명과 낭비, 사업가로서의 자질 부족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모스크바에서 무용학교 설립을 요청받은 그녀는 러시아 출신 17세 연하의 시인 에세닌과 결혼을 한 후 미국 공연을 떠났지만 '품행이 단정치 못한 소련의 동조자'란 비난을 받으며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모든 곳에서 공연을 취소당하고 결국 미국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이사도라는 모스크바로 돌아가 1927 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생애만큼이나 애절했습니다. 9월 14일 저녁, 붉은색 부가더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스카프가 늘어져 바퀴살에 끼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사도라 던컨.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누구보다도 불운했던 그녀가 없었던들 현대무용이란 장르는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무용을 인위적인 인습이라는 굴레에서 타파시키고 '영혼의 거울'로 만든 선구자였습니다.
Board 추천글 2021.09.04 風文 R 1388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행복한 여인 - 김영숙 "행복해야 해." 이 말밖에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친구는 대기실에서 울고 있었다. 지나 온 설움에 북받쳐서인지 앞날의 축복에 격려해서인지 친구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를 대신한 이모부의 손에 이끌려 그녀는 식장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아는 많은 사원들과 친척들의 한없는 축복이 그들의 눈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웨딩 마치에 맞춰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나비처럼 보였다. 촛불은 소리 없이 타올랐다. 가여운 친구, 난 그만 주례사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입춘이 훨씬 지났어도 콧등이 시큰거리도록 쌀쌀했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그들을 헤치며 울렁이는 마음을 안고 그냥 걸었다. 그녀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녀를 안 지는 함께 근무하던 3년 전부터였다. 우리는 같은 또래라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고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와도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거기다 하나 있는 오빠도 몇 년째 소식이 없다. 그래서 의지할 이모를 따라 직장도 옮기게 된 사실을 알고 나서는 늘 그녀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오랜 남자 친구가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다 화상을 입었다. 머리의 절반이 화상을 입었고 두 눈이 멀었는데 생명만은 겨우 구했단다. 그래도 그것은 이미 자신의 일생에 짜여진 피할 수 없는 슬픔이라며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극구 주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사코 말렸다. 결혼은 동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녀를 달랬지만 뜻을 굽힐 그녀가 아니었다. 슬픔을 결코 피하려고 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려는 친구, 아픈 나날을 밟고 왔기에 아픔을 채 느끼지도 못하는 가여운 친구. 신작로를 한참이나 걸었다. 갑자기 경적이 울렸다. 돌아보니 신혼길에 오른 그녀가 탄 차였다. 그녀는 환희 웃었다. 그녀의 눈엔 터질 듯한 기쁨이 어려 있었다. 머뭇 손을 들며 나도 따라 웃었다.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엔 그녀에 대한 불안보다 믿음이 생겼다. '너는 행복할 거야.' (주부)
Board 삶 속 글 2021.09.04 風文 R 573
옹알이 아기들이 태어나서 처음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보통 엄마나 아빠라는 말이 아니냐고들 하지만 사실 아기들의 말 배우기는 훨씬 일찍 시작된다. 아마도 첫 번 언어는 울음일 것이다. 울음은 모든 욕망을 표현하는 일차적 수단이다. 울음에 대응하여 엄마들은 언어를 사용한다. 울음과 말이라는 소통의 비대칭은 아기들이 스스로 언어를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오면서 해소가 된다. 그 첫걸음이 옹알이라고 할 수 있다. 옹알이는 아기들의 언어이다. 아니 아직 언어라고 할 수는 없다. 언어가 꽃이라면 옹알이는 꽃눈이자 떡잎이다. 아기들은 옹알이로 언어에 다가들어선다. 갓 태어났을 때는 옹알이인지 아니면 우연히 새어나온 소리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후 약 여섯 달이 되면 억양 같은 가락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직 전혀 문장 구성이나 어휘 형성이 되어있지 않으나 얼핏 들으면 마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 어조와 억양을 구현한다. 흥미롭게도 아기들은 흥분 상태에서는 옹알이를 하지 않고 평안한 상태에서 옹알이를 한다고 한다. 부모가 아기들을 평안하게 보호해 줄수록 언어의 기초를 더 충분히 닦을 수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엄마들은 전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옹알이를 향해 맞장구를 친다. 아기들은 또 그 맞장구에 응답하는 옹알이를 한다. 이러한 엄마와 아기의 ‘가상적 대화’는 이후 평생을 사용하게 되는 언어의 가장 단단한 밑바탕을 만들어 간다. 자음과 모음도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어를 배워서 평생 사용하게 되었다. 어조와 억양은 개별 언어의 가장 큰 특색이다. 또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된다. 또 어휘는 쉽게 잊어도 이때 옹알이와 함께 익힌 말의 가락은 여간해서는 잊지 않는다. 태어나서 맨 처음 부모와 함께 만든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잡담의 가치 사람들이 모이면 처음에는 좀 조용하다가 이내 웅성거리고 수군거리게 된다. 자연히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게 되고 시끄러워진다. 이렇다 할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잡스럽다 하여 잡담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들이 웅성거리는 것은 대개 기초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하는 과정이다. 상황이 어찌 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손해 보지 않는지 등을 캐내려고 더듬이로 확인하는 중이다.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 금방 노닥거린다. 화제도 자유롭다. 주제의 일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 쉽게 저런 이야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혀 부담스러워하거나 짜증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것도 잡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도 그리 무의미하지는 않다. 서로의 감성을 공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일수록 잡담을 많이 한다. 이렇다 할 결론도 없고, 뚜렷한 주제도 없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노닥거리고 나서는 매우 흡족해한다. 나중에 또 보자고 하게 되고 또 만나면 역시 그저 그런 잡담을 하게 된다. 그만큼 잡담을 통한 감성의 교류는 사람들을 무척 만족스럽게 만든다. 그 까닭은 잡담이 참여자들에게 ‘유대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잡담을 하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은 사실 재확인된 유대감이 남긴 마음의 흔적이다. 그러나 잡담은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공유하는 감성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잡담은 자꾸만 잦아지고, 시간 낭비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면서도 잡담은 사람들 사이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무가치한 언어 활동 같으면서도 공동체의 유대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는 더없이 유용한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 언어가 형성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잡담으로 그 기초 공사를 한 셈이다. 잡담은 모든 언어의 주춧돌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2. 근심, 불안 <분열하여 사사로운 목적을 갖게 되면 조악한 긴장이 생겨나서 의식이 좁아지고 닫힌다. 그저 내주어라. 내 맡기라> 한 할머니가 버스를 탔는데 내내 불안에 떨며 운전사에게 이번엔 차가 어디서 서느냐고 줄기차게 묻는 것이었다. 이를 보다못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이 말을 했다. <할머니, 맘 놓으세요. 염려하지 마시라니까요. 차장이 정거장 마다 안내를해주잖아요. 정 걱정되신다면 차장을 불러 얘길 해 놓지요 뭐. 어디서 내리실 거라고 얘길 해두면 차장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요. 맘 놓으세요> 옆자리 승객이 차장을 부르자 할머니가 말을 했다. <꼭 좀 잊지 마시우. 게서 꼭 내려야 되니께. 아주 화급한 일로 가는 길이란 말이우> 차장이 대답했다. <예예,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께서 말씀 안 하셔도 제가 직접 와서 말씀드릴테니 걱정 마세요. 암요. 근데 어디서 내리 실거죠?> 할머니는 진땀을 다 흘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말하기를, <오오 고맙기도 해라. 꼭 좀 그렇게 해주. 난 버스 종점에서 꼭 내려야 되니께> 긴장하면 그대의 의식은 점점 더 쭈그러든다. 그리하여 닫혀 버리고 만다. 그러한 긴장과 불안 속에서는 점점 더 기억하기가 어려워진다. 에고는 긴장을 낳고, 불안의 길을 덜덜거리며 걷는다. 긴장하지 말라. 불안해 하지 말라. 휴식하고 긴장을 푸는 순간 그대는 안다. 목적지를 향해 자신이 벌써 달려가고 있고, 다가가고 있음을. 여기에 바로 깨침의 비밀이 있다. 그건 깊은 휴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
Board 추천글 2021.09.03 風文 R 1406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오, 라듐 오, 퀴리 라듐을 발견하므로 원자력 시대를 연 퀴리부인은 폴란드 태생으로 본명은 마리아 스클로드프스카입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그녀는 놀랍게도 그동안 학계에서 발견됐던 원소와는 전혀 다른 새 원소, 즉 끊임없이 에너지를 방사하고 있는 원소를 발견하여 그것을 라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녀는 1891 년 파리 소르본 대학 이학부에 입학함으로써 과학의 길에 일생을 바치게 됐습니다. 그녀의 파리 생활은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웬만한 추위에는 난방도 없이 석탄 두 부대로 한겨울을 지내곤 했습니다. 먹을 거리를 살 수 없어 몇 주일 동안 빵과 물로만 끼니를 때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영양실조로 대학 강의실에서 졸도를 하면서까지 그녀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파리에 온 지 3 년 후, 그녀는 남편 퀴리를 만나 같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수백 가지의 화학 물질을 조사하고 무엇이 방사선을 내는가를 조사, 연구하여 마침내 우라늄보다 방사능 강도가 2백만 배나 높은 금속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원소의 이름을 그들 부부는 라듐이라 명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라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물질의 존재를 증명시켜 주기 위해 5 년 동안 0.1g의 라듐 결정을 추출해 냈습니다. 퀴리 부인은 이 공로로 35세에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으며 몇 년 후에는 노벨 화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이 무렵 라듐이 암의 치료에 이용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면 수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과학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생각으로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방사선 치료반을 조직하여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원자력 연구기금 마련을 위한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퀴리부인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편 대신 파리대학 물리학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934 년 7월, 67세의 나이로 퀴리부인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악성빈혈과 오랜 세월 방사능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은 만사의 기본이니 노동하는 자는 문명과 진보와의 구조이며, 화려한 둥근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R. G. 잉게숄)
Board 추천글 2021.09.02 風文 R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