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마음으로 어느 기관의 직원 모집에 무려 4500여명이 응시했다. 마침 어느 고위층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사람을 위해 전화로 부탁을 해주었는데, 1차 서류 전형에서 겨우 2299등을 한 그 인턴이 무리한 성적 조작의 반칙을 통해 최종 합격자 36명에 포함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합격되었던 응시자 셋이 떨어졌다고 한다. 황당한 것은 이것을 수사한 검찰의 태도다. 전화로 ‘부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류 조작을 시킨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부탁한 사람은 빼고 성적을 조작한 사람들만 기소하는 모양이다. 그 까닭을 검찰은 그 고위층이 ‘그저 편한 마음으로 부탁한 것’이라고 둘러대어 주었다. 한쪽이 편한 마음으로 부탁했는데, 부탁받는 상대방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들어주어야 하는 사안으로 받아들였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소통이 아니다. 갑과 을의 균형이 극단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부탁’이라는 언어행위는 상대방에게 결정권이 있는 경우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혀 그러한 힘이 없는 약자이면서 강자에게 그러한 ‘부탁’을 받았다면 그것은 부탁조의 협박이거나 명령이다. 조폭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요즘 바쁜가봐!”라는 말 한마디에 얼른 “죄송합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디 정상적인 인사와 답례인가? 권력과 굴종의 대칭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상징 아닌가? 언어는 형식적 규정만 잘 맞는다고 제대로 된 말이 아니다. 열린 사회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소통을 위한 언어가 된다. 공정해야 할 공직사회에서 이렇게 ‘암흑가의 대화’ 같은 표현이 횡행하며 젊은이들의 취업 활동을 방해한 것은 분명히 권력 남용이자 공중의 이익을 거스른 짓이다. 그리고 검찰은 말의 뜻을 교묘하게 틀어버림으로써 더 중요한 자신의 의무를 포기했다. 법이 언어를 지키지 못하면 언어도 법을 지키지 못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5. 미룸 <미래에의 만족을 뒤쫓는다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지금 여기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한 게 없으니, 미루지 말라>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로 가는 길에 디오게네스를 먼났다. 한겨울의 아침 나절이었다. 바람이 찼다. 디오게네스는 강둑의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영혼은 세속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알렉산더는 그의 모습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경외스런 어투로 말을 건넸다. <선생...> 알렉산더는 난생 처음으로 "선생"이란 말을 쓴 것이었다. <선생, 난 당신한테 단번에 감동하였소이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뭔가 해드려야 겠소이다. 뭘 해드리면 좋겠소?> 디오게네스가 말하기를, <아 조금만 옆으로 비켜 서주셨으면 합니다. 햇빛을 가리고 계시니. 그뿐입니다>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신에게 청할 것이요. 이번엔 알렉산더가 아니라 디오게네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말하기를, <누가 감히 대왕의 길을 막겠습니까? 대왕께선 지금 어디로 가시지요? 여러 달 동안 군대가 이동하는 걸 보았습니다... 대왕께선 어디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십니까?>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세계를 정복하러 인도로 가는 길이오> 디오게네스가 묻기를, <그런 다음에 뭘 하시렵니까?>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그야 편히 쉬어야지요>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말하기를, <대왕께선 참 어리석소이다! 난 지금 쉬고 있질 않습니까. 난 세계를 정복하지도 않았고, 또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끼지만 지금 아주 편안히 쉬고 있소이다. 대왕께서 정말 편히 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왜 그리 못하십니까? 편히 쉬기 전에 먼저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누가 그럽디까? 대왕께 말해 두지만 지금 당장 편히 쉬지 못하신다면 끝내 그럴 수 없을 것이오. 대왕께선 결코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실 겁니다... 대왕께선 여행 중에 죽게 될 것이오. 그리고 딴 많은 사람들도>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그 충고를 마음 깊이 간직해 두겠다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길을 멈출 순 없었다. 그는 정말 여행 중에 목숨을 잃었다. 길에서 죽은 것이다. 그 후 이상한 얘기가 전해 내려 왔는데, 디오게네스도 알렉산더가 죽던 그날 똑같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신에게로 가는 길에 강을 건너다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등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몇 발짝 뒤에 디오게네스가 보였다. 아 아름다운 사람. 알렉산더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창피를 무릎쓰고 외쳤다. <이거 또 만나게 되었구려. 황제와 거지가 말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그렇군요. 한데 당신은 뭔가 오해하고 있소. 누가 거지고 누가 황제인지 모르는 것 같소. 나는 삶을 완전히 살고 누렸으므로 신을 만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은 신을 만나지 못할 것이오. 당신은 나조차도 볼 줄 모르지 않소. 당신은 내 눈조차 들여다 볼 줄 모르오. 당신으 삶은 완전히 헛된 것이었소>
Board 추천글 2021.09.06 風文 R 1531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적군까지도 '우리는 하나'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후레더릭스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후레더릭스벅은 작은 땅이었지만 남군과 북군 모두 중요한 전략적 위치로 양쪽 군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전투는 치열했고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후레더릭스벅은 총소리로 뒤덮였고 포탄 연기로 인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군, 북군 할 것 없이 사망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만 갔습니다. 부상자들의 신음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들은 모두 물을 달라고 외쳐댔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북군의 한 병사가 대위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대위님, 저들에게 물을 먹이게 해주십시오. 저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러나 대위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다 빗발치는 총알 속으로 뛰어들어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대위님,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저들은 모두 저의 친구들입니다. 총소리는 요란하지만 물을 달라는 소리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립니다." 그러면서 병사는 무릎을 꿇고 대위에게 매달렸습니다. 대위는 할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병사는 대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물 한동이를 떠서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디뎠습니다. 총알은 병사의 곁을 쌩쌩 스쳐 지나갔으나 병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달라는 병사들에게로 가서 물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적군이고 아군이고 가리지 않고 그는 물을 먹여 주었습니다. 죽어가던 병사들은 그 물을 받아 먹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병사를 향해 일제히 총을 쏘아대던 남군은 병사가 하는 일을 알아채자 곧 사격을 멈췄습니다. 병사가 죽어가는 이들에게 한 모금의 물을 먹여 주며 마지막 위로의 말을 속삭여 주는 두 시간여 동안 전쟁은 휴전된 것입니다.
Board 추천글 2021.09.06 風文 R 1231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두 손 아닌 두 발이 그린 그림 - 오순이 걸음을 배우고 앞뒤 없이 돌아 다닐 세 살 무렵 나는 집 앞 철길을 겁 없이 혼자 건너다 사고를 당해 그만 두 팔을 잃었다. 사고 후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가망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십시오."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나를 업고 뛰어다니다가 겨우 도립병원에 나를 눕힐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기적적으로 소생의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 생활 후에는 장장 3년이란 시간을 어머니 등의 땀 냄새를 맡으며 업혀 다녀야 했다. 내 치료비 때문에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녀야 할 정도였다. 병원을 다닌 지 2년이 되면서, 그러니까 다섯 살이 되면서 나는 손이 하던 모든 행동을 발가락으로 대신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위해 발가락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양팔이 없는 상태의 다섯 살짜리 아이의 걸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뒤뚱거리다가는 넘어지고 다시 넘어지고 해서 얼굴엔 피멍이 사라질 나이 없었다. 발에도 벌건 물집이 잡혀 식구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직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도 모르는 꼬마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던 해였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어 텅 빈 골목길을 바라보면서,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못 간 나는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는 호각 소리, 아이들의 구령 소리, 마냥 뛰어가고 싶기만 하여 답답하던 그때의 심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신 나는 집에서 언니들이 가르쳐 주는 수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때때로 교실 근처에 다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친구가 어느새 알아보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나도 친구 옆에 앉아 공부해 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던지, 어느 날은 큰언니가 학교로 찾아가 다음해에는 입학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갖고 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남보다 1년 늦게 나는 처음으로 학교 생활이란 걸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교 생활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눈초리가 의식되고, 내 발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일반일과 다르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몇 년 간 집에서 익힌 발의 행동이 글씨는 물론이고, 웬만한 소지품을 다룰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눈초리를 대할 때면 나는 어딘가로 숨고만 싶었다. 그때 선생님이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점차 내가 아픈 마음들을 털어 내던 4학년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내게 미술 공부를 권유하셨다. 미술 시간에 주위의 시골 풍경을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마음껏 그렸는데 선생님이 그 그림을 보신 것이다. 그때부터 내게 미술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림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 가기만 했고, 등교할 때부터 미술 도구가 첫 번째 준비물이 되었다. 동양화가 무엇이며, 사군자의 기법이 어떤 것인지도 배웠다. 그러나 처음 잡는 붓은 발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기 일쑤였고, 발놀림도 둔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맹목적인 것 같지만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집--동양화--학교만이 내 생활이 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림이 안될 때는 허전하고 슬펐지만, 그 반대일 때는 하교길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또한 처음으로 창조란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생활 끝에 눈물 바다와 환희의 초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너를 끝까지 지켜보겠다" 고 하시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했다. 그리고는 화실이 가깝던 시내 중학교와는 정반대인, 집에서 50분이나 걸리는 제일여중에 입학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또 따가운 시선들을 느껴야 했지만 급우들은 금방 내 손들이 되어 주었다. 나는 한결 성격도 밝아지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림 연습은 더 많이 했다. 전시회를 찾아 다니다 보니 나도 섬세한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의욕이 생겼다. 한편으론 체육 시간이 끝나고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친구들의 얼굴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여고 시절의 막바지에 와 있다. 주위의 도움으로 여러 번 상도 탔고, 대학 진학의 길도 열렸다. 새로운 대학 생활에 대한 불안이 없지 않으나 이 과정을 이겨 내면 나도 떳떳이 사회의 한 대열에 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마산 제일여고 3학년)
Board 삶 속 글 2021.09.06 風文 R 1257
치욕의 언어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내용으로는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지원 기금을 제공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최종 해결’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주장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이전하는 ‘조건’이 붙었다는 설왕설래가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인격적 배려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치 무슨 사건 브로커들끼리의 합의서 같다. 언어는 늘 일정한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말투와 표정, 그리고 적절한 수사법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도덕적인 책임을 표한다고 하면서, 10억엔으로 해결되었다는 둥,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이라는 둥 하는 것은 애당초 도덕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돈 몇 푼으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고 모욕을 하는 행위에 가깝다. 식민지 지배와 세계대전은 참혹한 상처를 역사에 남겼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인권에 대한 혹은 인도적 문제는 ‘인간의 가치’ 문제를 깊이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프랑스대혁명이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선언하고, 러시아혁명이 노동자들에게 자각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도덕적 계기를 만들어 냈어야 한다. 단순히 약하디약한 여성들의 개인적인 불행이나 고단한 숙명이 아니라 인간의 잔혹한 죄의 대가를 대신 짊어진 대속(代贖)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앞에서 돈 액수 혹은 재론을 금지한다거나 또 소녀상 이전 등과 같은 표현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그들이 이러한 역사적 대의를 담을 만한 그릇과 깜냥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이 합의는 치욕의 언어로 가득 찼다. 인간의 가치를 듬뿍 높이는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감동의 시기는 아직 멀었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딱 그 한마디 연말이 되면 경기가 좋든 나쁘든, 또 호주머니 사정이 어떻건, 촘촘한 송년회 일정으로 바쁘면서도 들뜬다. 오랜만에 탁자에 둘러앉아 잔을 나누게 되면 잔을 부딪치며 ‘한마디’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딱 그 한마디’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작정 ‘브라보’였는데, 언젠가 ‘위하여’가 대세를 이루다가 최근에는 그것도 좀 시시해진 모양이다. 건배사만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겐가 진정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짤막하게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축하한다고만 할까, 아니면 부럽다고 해야 할까, 우리의 말이 퍽 마땅찮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또 궂은일에 대해서 위로를 해야 할 때도 도대체 뭐라고 해야 인사도 되고, 격려가 될지 퍽 막막하다. 누구한테든지 공감되는 말을 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공적인 관계인지 사적인 관계인지에 따라 무언가 빛다른 표현을 하고 싶어도 대개 어중간한 말 몇 마디에 나머지는 표정으로 대충 메우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표준어를 결정할 때 어휘의 기준만 겨우 설정됐지, 적절한 사용법의 기준은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모임에 가서도 첫인사를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도로 대충 때우고 있다. 이 얼마나 껄렁한 언어문화인가? 이러한 ‘경우에 맞는 말’들은 대단한 지식인이 제안해서 표준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광범위한 시민사회 속에서 형성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유대’ 속에서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도 안 좋다고 하고, 당장 내년의 삶도 불안하지만 어려운 세상에 남들과 서로 공감 어린 말을 나눈다는 것도 중요한 삶의 에너지이다. 가까운 이들과 공감대를 두텁게 쌓아가는 진심이 깃든 ‘딱 그 한마디’를 찾아두는 소박한 지혜가 필요하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44. 욕망 <이제는 행복을 위하여 자기 바깥에서 차즈는 일일랑 그만 둘 때. 안을 볼 때> 한 왕이 아침에 산책하러 궁 밖으로 나왔다가 거지를 만났다. 왕이 거지에게 묻기를, <그대가 원하는 게 무었인가?> 거지가 낄낄거리며 말하기를, <내 원을 다 들어 줄 것처럼 말씀 하시네 그려> 왕이 정색을 하며 말하기를, <어허 다 들어 주고말고. 그게 뭐지? 말해 보게> 거지가 말하기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지 그러슈> 그 거지는 보통 거지가 아니었다. 그는 전생에 왕의 스승이었었다. 전생에 스승은 왕에게 말한 바 있었다. 내생에서 다시 만나 그대를 꼭 깨유쳐 주겠노라고. 이 생에선 실패했지만 내생에선 꼭 그러리라고. 그러나 생이 바뀌면서 왕은 그걸 새까맣게 잊은 것이었다. 기실 누가 과거의 생을 기억하겠는가? 왕이 재차 말하기를, <그대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지. 내가 바로 옹이란 말일세. 왕인 내가 그대의 원을 들어주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거지가 말하기를, <아주 간단한 겁니다. 이 동냥그룻이 보이시죠? 여기다 뭘 채워 주시렵니까?> 왕이 선뜻, <그야 어렵지 않지> 하면서 신하를 한 사람 불러 명하기를, <이 동냥그릇에 돈을 가득 담아줘라> 신하가 재빨리 약간의 돈을 가져와서 동냥그릇에 담았다. 그런데 그릇에 담기자마자 돈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신하는 다시 돈을 갖고와서 그릇에 담았고, 담기자마자 돈은 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돈을 갖다 부어도 거지의 동냥그릇은 즉각 비워졌다. 왕궁이 온통 난리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왕의 위신까지 흔들거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 재산을 모두 잃느다 해도 좋다. 난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나 저 거지에게만은 절대 승복할 수 없다> 급기야는 다이아몬드와 진주 등 갖가지 보석들이 날라졌고, 왕궁의 보물창고들이 바닥을 드러내기 사작하였다. 그런데도 거지의 동냥그릇은 여전히 텅비어 있는 것이었다. 동냥그릇에 들어 가기만 하면 모든 게 즉각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너무나 황망한둣 잠잠하였다. 왕이 조용히 나서더니 거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내가 졌소이다. 딱 한 가지만 묻겠소. 그대가 이겼소.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말해 주시오. 이 동냥그릇은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이오?> 거지가 껄껄거리며 말했다. <이건 사람의 마음으로 만든 거라오. 무슨 딴 비밀이 있는 게 아니오... 그냥 사람의 욕망으로 만든 거라오> 욕망을 살펴보라. 그 메카니즘이 어떤가? 우선 욕망에는 흥분이, 전율이, 모험이 도사리고 있다. 자극을 준다. 바야흐로 욕망이 채워지면 또다시 무의미해지고 공허해져서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욕망의 징검다리를 밟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끝끝내 거지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Board 추천글 2021.09.05 風文 R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