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마술을 부리는 목소리 1921 년, 전세계의 음악팬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 이상 아름다운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인 엔리코 카루소가 48세의 한창 나이에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가수로서 인기 절정에 있을 때 과로의 연속으로 6개월간 죽음과 맞서 용감히 싸우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는 듯한 그 아름다운 목소리도 처음에는 약하고 가느다랗다 하여 음악교사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너는 노래는 안 되겠어. 전혀 소리가 나지 않으니... 마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군." 그는 15세 때 어머니와 사별했는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21 명의 자녀를 낳아 그 중 18 명은 죽고 겨우 셋만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지만 엔리코만은 천재의 후광을 이어받았다고 믿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가수로 만들기 위해서 신발도 사 신지 않고 맨발로 지내셨죠." 눈물을 흘리며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카루소는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노래 공부를 했습니다. 그 무렵에 그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얻어 먹고 사람들에게 불려가서 연인의 집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불러 주기도 했는데, 음치의 사나이가 달빛 아래서 '사랑의 괴로움'을 연기해 보이면 카루소가 문 안에 숨어 들어 아름다운 목소리를 뽑아 감미로운 멜로디로 여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주역인 테너 가수가 갑자기 병이나 카루소가 그 역을 맡아야 했는데 불행히도 그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사람을 보내 뒤져 보니 어떤 술집에서 그는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헐레벌떡 극장으로 달려갔지만 술에 취해 눈이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카루소가 무대에 나서자 관중들은 화가 났고 극장 안에는 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윽고 막이 내리고 그는 실직됐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한 채 마지막 남은 1리라로 술 한 병을 사 가지고 집으로 가서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극장의 심부름꾼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어이, 카루소! 빨리 와. 지금 극장에선 카루소를 내놓으라고 야단이란 말이야!" 카루소가 죽었을 때, 그 재산은 백만장자 몇 사람 몫에 해당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어렸을 때의 가난을 생각하면서 죽는 날까지 금전 지출을 수첩에 기재했다고 합니다.
Board 추천글 2020.07.19 風文 R 2180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잊혀지지 않는 사연 - 임국희 <여름입니다. 라디오에서 곳곳의 홍수 소식을 들으며 나는 지난 여름의 내 아픈 기억에 잠깁니다. 중매로 만난 우리 부부는 꿈 같은 신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마을에 홍수가 닥친 것입니다. 사정없이 덤벼드는 수마에 인간은 무력했고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탁류에 어떤 아이가 떠내려가는 것을 발견한 그이가 불룩한 내 배를 흘긋 쳐다보는가 했더니, 이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아이는 구했으나 남편은 그 이튿날 나뭇가지에 걸린 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울고 지낼 수만은 없었습니다. 일어서야 했습니다. 남편이 구해 놓고 간 그 아이 성훈이는 홍수에 부모를 잃었습니다. 나는 성훈이를 데리고 친정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지금 나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그이가 남기고 간 아이와 나를 친엄마처럼 따르는 성훈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불행인 다른 사람에게는 없기를 기도합니다. 봉투 색깔이 예쁘죠? 우리 성훈이가 색칠해 준 거예요.> 이 편지는 지난 여름 장마철에 내게 온 편지 가운데 하나다. 나는 하루에 1천 5백 통에서 2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모든 행복과 불행의 사연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 것이다. (MBC 아나운서)
Board 삶 속 글 2020.07.19 風文 R 2040
결초보은(結草報恩) /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出典》'春秋左氏傳' 춘추시대 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 젊은 첩이 있었는데 위무자가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네 서모를 내가 죽거들랑 개가(改嫁)시키도록 하여라."하였으나, 위무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들 과(顆)에게 다시 분부하기를 "내가 죽거들랑 네 서모는 반드시 순사(殉死)케 해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위무자가 죽자 아들 과(顆)는 "사람이 병이 위중하면 정신이 혼란해지기 마련이니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일 때 하신 말씀대로 따르리라."하고는 아버지의 처음 유언을 따라 서모를 개가(改嫁)시켜 드렸다. 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晉나라를 침략하여 군대를 보씨(輔氏)에 주둔시켰다.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魏顆)는 晉의 장수로 있었기 때문에 秦의 大力士 두회(杜回)라는 장수와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위과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의 풀을 엮어(結草) 그가 넘어지게 하여 위과(魏顆)가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게 하였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 서모의 애비되는 사람으로 그대가 아버지의 유언을 옳은 방향으로 따랐기 때문에 내 딸이 목숨을 유지하고 개가(改嫁)하여 잘 살고 있소. 나는 당신의 그 은혜에 보답(報恩)하고자 한 것이오." 秋七月 秦桓公伐晉 次于輔氏 壬午 晉候治兵于稷 以略秋士 立黎侯而還 及洛魏顆敗 秦師 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初魏武子有擘妾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 殉及卒 顆嫁之曰 疾病則亂 吾從其治也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 以亢杜回 杜回足質而顚 故獲之 夜夢之曰 余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 余是以報.
Board 고사성어 2020.07.19 風文 R 1527
사라진 아빠들 남성과 여성은 서로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대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지만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그 뜻을 구현해내지 못한 그늘진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동안 여성의 경제활동은 상대적으로 큰 진전을 이루어 직업 세계에서의 성적인 분업은 많이 극복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출산과 육아 영역에서는 여성들 혼자서 짊어진 짐의 크기가 태산 같기만 하다.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미혼모’라는 단어가 있다. 1960년대의 국어사전에는 없던 말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전에 올랐다. 신문에는 1970년대 초에 등장했다. ‘미혼모’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아기 엄마’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 모두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 즉 엄마와 아기가 모두 정당성이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인 임신과 출산을 불러온 공동책임자인 아빠를 가리키는 단어는 국어사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사전에 그러한 단어가 없다는 것은 사전 편찬자들의 실수가 아니다. 사전 편찬자는 아무도 쓰지 않는 단어는 사전에 절대로 싣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런 단어를 만들어내지도 않았던 것은 남성의 신원을 철저하게 감추어 주는 일에 사실상 동참했기 때문이다. 곧 ‘미혼모’라는 단어가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우리 모두 사라진 아빠들을 전혀 ‘호출’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법률과 어긋난 관계’의 책임은 오로지 미혼모들에게 돌아갔다. 혼자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사무치게 서러웠을까? 게다가 태어난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이 삶의 첫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기 쉬웠을 것이다. 이젠 공동책임자인 아빠를 찾아야 한다. 그들을 찾으려면 호출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 단어로 법조문을 만들고, 구체적인 아빠로서의 공동책임을 묻고,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게 해야 한다. ……………………………………………………………………………………………………………… 피빛 선동 ‘피’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참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의학적으로는 ‘순환계를 도는 붉은 액체’를 뜻하지만, ‘나의 핏줄’이라고 하면 혈연관계를 나타내며, “피를 토하다”, “피눈물을 흘리다”와 같은 구절이나 ‘피비린내, 피투성이’ 같은 말들은 고통이나 처참함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한자말로도 ‘혈관, 혈압’ 등의 의학 용어가 있고, ‘혈육, 혈통’ 같은 친족 용어도 있다. 또 ‘혈투, 유혈낭자’ 같은 호전적 표현, 그리고 ‘혈기, 혈색’과 같이 기운이나 활기를 보여주는 말도 있다. 의학 용어를 제외하면 무척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러한 의미 기능이 바람직하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혈세’라는 말은 조어법으로는 마치 ‘피에 붙이는 세금’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 같은 돈’을 세금으로 냈으니 ‘피처럼 아까운 세금’이라는 뜻이다. 맥락 속에서 아껴 쓰고 조심해야 할 돈이라는 윤리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냥 세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결국 혈세라는 말은 세금이라는 말을 감성화시킨다. 그래서 주로 상대 정파의 예산 집행을 공격하는 흥분제로 쓰인다. 그러나 세금은 감성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매우 냉정하고 실리적으로 논의해야 할 대상이다. 혈세라는 말은 냉정한 계산을 해야 할 쟁점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자칫 간단한 선동에도 넘어가기 쉽다. 비슷한 경우에 ‘혈맹’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맹세를 하면서 피를 찍어 바르는 것을 뜻했지만 지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굳은 동맹’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수사법이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개의 동맹은 깨어졌다. 마치 동맹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만 하다. 그러한 동맹에 핏빛을 물들여 가며 감성적인 선동의 단어를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보통 동맹이라고 말하며 서로의 이익이 언제까지 유효한지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다르게 끈질기게 파고들어라 - 시추 경영 아이디어도 끈기다 기술개발에 있어서도 포도밭의 철학은 유효하다. 무조건 돈만 쏟아 붓는다고 기술축적이 착착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터져주어야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아주 순간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아이디어들을 민첩하게 포착해서 실용적인 기술개발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란 신의계시처럼 순간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대학시절 종교철학과에 적을 두었던 나는 사실 학교공부에 젬병이었고 관심도 없었다. 졸업하기도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5급 공무원이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절 어떤 철학책에서 읽었던 철학 이론 하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양질전화의 원리'란 것이다. 예컨대, 물을 가열하면 점차로 뜨거워지지만 물이 끓는 것은 정확히 100도씨가 되어야 한다. 양적인 것들이 충분히 쌓여야 어느 한 순간의 질적인 변화도 생긴다는 논리다. 아이디어란 그런 것이다. 천재는 99프로의 노력과 1프로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특히 기술개발로 먹고사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들은 크나큰 위로가 된다. 힘든 연구일수록 점차 지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이게 뭣하는 짓인가'하는 회의가 자꾸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낙관이다. '1프로의 영감이 터질 때가 다 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다시 분발하는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이란, 집중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내부로부터 차츰 성장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떡두꺼비처럼 '응애'하면서 튀어나오는 신생아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담들은 극적으로 미화되게 마련이어서 언제나 그 반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사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자주 들으면서도 재미없는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그러나 "바라는 바를 항상 머릿속에 간절히 그리고 깊이 믿고, 열의를 다해 행동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폴 마이어의 성공철학은 분명한 진리다. "아이디어도 끈기라고. 조금만 더 고생해." 내가 연구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들을 만날 때마다 등 두드리며 하는 말이다. 나는 군대시절 육군본부 통계과에서 근무했다. 마침 경제기획원 통계국에서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에 필요한 교육을 받으러 잠시 도안 경제기획원에 파견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다. 전자식이라기보다는 기계식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은 매우 거대하고 시끄러운 컴퓨터였다. 원체 호기심이 강한 나로서는 컴퓨터가 그리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일 수 없었다. 우리는 수집한 각종 자료들을 그 컴퓨터를 이용해 집계하고 분류했다. 하나의 레코드는 하나의 종이카드에 펀칭함로써 기록되고, 컴퓨터는 검색조건에 따라 정밀한 갈고리를 이용해서 카드를 걸러낸다. 각각 한 사람의 인구정보를 담고 있는 수많은 종이카드들이 줄을 맞춰 지나가면 컴퓨터는 해당조건에 맞게 갈고리들을 세팅해서 거기에 걸리는 카드 수를 집계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순차적인 동작과 움직이는 방식은 같다. 매순간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정보와 착상들은 차마 집계하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갈고리를 준비하는 일이다. 우둔한 끈기와 정확한 방향으로 세팅되어 있는 긴장, 그리고 그 긴장상태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힘. 하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수백, 수천 시간의 우직함이다. 아이디어도 끈기인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이란, 집중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내부로부터 차츰 성장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떡두꺼비처럼 '응애'하면서 튀어나오는 신생아 같은 것이다. 우둔한 끈기가 정확한 방향으로 세팅되어 있는 긴장. 그리고 그 긴장상태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힘. 하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수백, 수천 시간의 우직함이다. 아이디어도 끈기인 것이다.
Board 말글 2020.07.19 風文 R 3353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39. 창조성 <자신한테든 남한테든 미친 짓, 부정적인 짓, 파괴적인 짓을 그만 두라. 그런 짓들은 밥먹듯 쉬운 일이었으니, 조그만 어린애도 할 수 있는 것. 이제는 전혀 다른 속 안의 것을 찾으라. 용기를 갖고 힘을 내라. 그리하여 속 안의 창조력을 일으켜라> 미치광이 살인자가 있었다. 그는 딱 천 명만 죽이기로 맹세한 텨였다. 세상이, 미쳐버린 자신을 전혀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래서 딱 천 명만 죽여버리기로 했던 것이었다. 미치광이 살인자는 한 사람 한 사람 죽일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 꿰어서 목에 둘렀다. 염주처럼. 그 염주는 천 개의 손가락으로 만들어질 것이었다. 이쯤되자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 염주를 두른 사나이"라 불렀다. 이제 미치광이 살인자는 구백구십구 명을 죽인 터였다. 한 사람만 더 죽이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미치광이 살인자가 어디에 나타났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담박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여져서 근처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않았으므로 살인자는 마지막 한 사람을 좀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즈음 붓다가 마침 어느 숲 쪽으로 지나려는데 사람들이 앞을 가로 막으며 말하기를, <붓다시여, 그쪽으로 가지 마십시오. 미치광이 살인자가 숨어 있습니다. "손가락 염주를 두른 사나이가!" 놈은 전혀 생각이 없는 단순한 살인자예요. 당신이 붓다라고는 상상도 못할 놈이예요. 그쪽으로 가시지 말고 딴 길로 가세요> 그러자 붓다가 말하기를, <내가 가지 아니하면 딴 사람이 갈 게 아니겠는가. 그도 사람이고, 날 필요로 하고 있다. 한번 해봐야겠다. 그 자가 날 죽일지, 내가 그를 죽일지> 붓다는 발걸음을 옮겼다. 끝까지 그의 뒤를 따르겠노라 맹세했던 가까운 제자들조차도 그의 뒤에서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뒤쳐져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붓다가 미치광이 살인자가 있는 언덕 쪽으로 오를 즈음에는 한 사람도 뒤따르는 자가 없이 혼자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이라곤 꽁무니도 보이질 않았다. 한편 언덕 위에서 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미치광이 살인자는 도리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애들처럼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다있나 하면서 차라리 아름다움을 느꼈고, 동정심이 일었다. 미치광이 살인자는 생각하였다. "이 사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안다면 이쪽으로 올 리가 없지" 그는 또 생각하였다. "그래. 이런 사람을 죽이는 건 옳지 못해. 그냥 보내줘야겠어. 딴 사람을 찾자" 해서 미치광이 살인자는 외쳤다. <어이, 돌아가라! 거기서 그만 돌아가란 말이다! 한 발짝도 더 오지 마라. 난 미치광이 살인자, "손가락 염주를 두른 사나이다" 자 보라. 구백구십구 개의 손가락으로 엮은 염주를. 이젠 딱 한 개의 손가락만 더 있으면 되. 내 어머니라도 여기에 오면 난 아마 죽일 게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선. 더 가까이 오지 마라. 난 대단히 위험하니까. 난 종교 따위도 안 믿는다... 넌 아마 훌륭한 수도승일 것 같은데 난 그딴 거 모른다. 네 손가락도 물론 좋겠지. 거기서 한 발짝도 더 오지 마라. 죽여버릴 테니까> 그러나 붓다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미치광이 살인자가 다시 생각하기를, 이 자가 귀머거리인가 미쳤는가 하였다. 해서 그가 다시 외쳤다. <정지! 움직이지 마라!> 붓다가 말을 했다. <난 이미 오래 전에 정지했네. 난 지금 움직이고 있지 않아. "손가락염주를 두른 사나이" 그대가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내겐 아무 목적도 없다네... 아무 동기도 없는데 무슨 움직일 일이 있는가? 그대가 움직이고 있지. 그러므로 그대여 정지하라!> 미치광이 살인자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넌 참 머저리 아니면 미친 놈이구나, 그딴 건 난 모른다!> 붓다가 바싹 다가갔다. <그대한테 이제 딱 한 개의 손가락이 필요하다는 걸 내 안다. 네. 자, 내 것을 가져라. 그리하여 그대의 뜻을 이루라. 기꺼이 내주리. 자, 내 손가락을 자르고, 내 목을 쳐라. 그리하면 나도 내 뜻을 이루리. 이거야말로 내 몸이 참으로 쓰여질 마지막 기회인즉> 미치광이 살인자가 말했다. <세상에서 미친 사람은 나밖에 없다. 잔꾀 부리지 마라.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일 수도 있으니깐> 붓다가 말을 했다. <날 죽이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죽을 사람의 원이네. 이 나무의 가지를 하나 잘라 보라> 미치광이 살인자는 칼을 빼들고 커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내리쳤다. 그러자 붓다가 말을 했다. <한 가지 더 있네. 그 나뭇가지를 나무에 도로 붙이게> 미치광이 살인자가 말하기를, <넌 완전히 미쳤구나. 이걸 자를 순 있어도 어떻게 도로 붙일 수 있겠어> 붓다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댄 파괴할 줄만 알지, 만들 줄은 모르는군... 파괴란 애들도 할 수 있는 것, 거기엔 용기가 필요 없지. 이 나뭇가지 쯤이야 어린 꼬마라도 자를 수 있지. 그러나 이걸 도로 붙이려면 스승이 있어야 한다네. 나뭇가지 하나 도로 붙이지 못하면서 사람의 머리 정신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 뭘?> 순간, 미치광이 살인자는 눈을 꽉 감고 외쳤다. <부디 절 이끌어 주시오!> 미치는 에너지나 깨닫는 에너지나 똑같은 것이다.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만이 다를 뿐, 똑같은 에너지이다. 창조적 에너지나 파괴적 에너지나 똑같은 것이다. 에너지의 쓰임이 다를 뿐, 똑같은 에너지이다.
Board 추천글 2020.07.18 風文 R 2662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배려의 미덕 서울의 잠실구장에서는 롯데와 빙그레간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배팅볼 투수로써 연봉 600 만 원을 받고 있는 롯데의 무명투수 윤형배 선수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되었고 이 날도 3 회까지 무안타로 잘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 회말 빙그레의 공격이 시작되자 이정훈에게 첫 안타를 내주고 결국 무사 만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내 최대의 거포 장종훈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주자, 롯데 강병철 감독은 투수 코치 이충순에게 박동희 투수의 컨디션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동희 투수의 컨디션 OK의 사인을 받고 이충순 코치는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윤형배를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바꾸러 올라왔다." "공 놓는 포인트가 좋습니다. 5 회까지만 기회를 주십시오. 승리투수만 되면 MVP인데 아깝지 않습니까? 1실점이지만 이제 겨우 1안타입니다." 포수 김선일이 달려와 이충순 코치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습니다. 이충순 코치는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윤형배를 차마 바꿀 수 없어 마운드를 힘없이 내려왔습니다. "왜 안 바꿔!" 강병철 감독의 고함이 터져나오자 이충순 코치는 덕아웃으로 가서 그의 팔을 잡으며 조금만 두고 보자고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그의 짧은 웃음은 절대절명의 위기와 감독의 지시, 그리고 윤형배에 대한 인간적 배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인간의 순수한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타자를 땅볼 처리하고 2사 1, 2루가 되자 다시 이충순 코치는 마운드로 올라갔습니다. "미안하다." 공을 건네 주고 윤형배는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코칭 스태프, 동료들이 그를 위로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끝났습니다. 롯데가 이기고 8 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한 기자가 윤형배 투수에게 물었습니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그때는 매우 서운했습니다. 그러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기분 좋을 뿐입니다." 아무리 비정한 승부세계, 아무리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도 인간적인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롯데의 진정한 우승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Board 추천글 2020.07.18 風文 R 2667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가난을 이기고 난 선수들 - 서영무 시합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1971년도 제26회 청룡기 야구 대회에서 그 당시 내가 맡고 있던 경북고가 난적 경남고를 물리치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 순간이다. 기쁨에 울먹이며 나를 헹가래치는 선수들. 나도 기쁨에 마냥 들떠 있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들려 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가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발아, 발아, 니는 와 딴 사람보다 땀을 그리 많이 흘리노?" 우리 팀의 4번이고 우승의 공로자인 정현발 선수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현발이가 야구부에 모습을 처음 나타냈을 때 나는 녀석을 어느 부잣집 아들로 알았다. 그만큼 녀석의 복장이나 태도가 당당했으며 귀공자 티가 났다. 훗날 녀석이, 대구 방적 공장에서 흩어진 실을 고르고 청소를 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녀석의 그 당당한 모습이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대견스러웠다. "현발아, 저녁 먹으러 가자. 내 오늘 한턱낼게." 현발이의 어려운 처지를 아는 선배들이 녀석을 가끔 저녁에 초대했다. 그러면 녀석은 꼭 묻곤 했다. "내 혼잡니꺼? 아니몬 우리 야구 부원 모두 다 갑니꺼?" "니 혼자 가자." "그라몬 내 안 갈랍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곤 했다. '아하, 녀석은 됐다. 뜻이 있는 놈이다.' 청룡기 야구 대회 결승 경기가 있던 날, 녀석의 어머니는 동료 어머니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 서울 운동장 스탠드에 앉게 되었다.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머니는 운집한 3만의 관중, 휘황한 야간 조명등, 그 아래에서 뛰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현발이가 삼진 아웃을 당해도 "우리 발이 잘한다"며 박수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차츰 어머니는 마음속 한 구석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선수들 모두 땀에 흠뻑 젖었는데 어머니 눈에는 현발이가 잘 먹지 못해서 남들보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줄곧 그런 안타까움에 젖어 있었다. 이런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현발이는 단 한마디 대답으로 풀어 버렸다. "이거예, 이건 땀이 아니라예. 아까 쉬는 참에 더워서 물을 끼얹은 거라예." 이런 현발이와 함께 최근에 내가 지도한 어떤 선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녀석도 무척이나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흔 살 고령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도로 공사장에서 자갈 붓는 인부셨다. 내가 서울고에 처음 부임하던 날 생계를 돕기 위해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찾아온 녀석에게 나는 말했다. "야구에 흥미가 없으면 그만둬도 좋다. 그러나 생계 때문이라면 네가 좋아하고 소질 있는 것에 더욱더 열심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당장 손 안에 무엇이 잡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일단 결심이 선 뒤 녀석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새벽 한두 시, 말뚝에 박아 놓은 타이어 치는 소리에 잠을 깬 동네 사람들이 마구 항의를 할 정도였다. 지금도 녀석의 손바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온통 흠집이 생기고 못이 박혀서, 여자들이 보면 무섭다고 도망갈 정도였다. 작년에 졸업하고 지금은 한양대 3루수로 활약하는 이승희 군, 그의 노력이 열매 맺을 날을 기대해 본다. (서울고 야구 감독)
Board 삶 속 글 2020.07.18 風文 R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