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키 150센티미터, 몸무게 37킬로그램 - 이수림
의사들은 내가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다시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믿었고,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 윌마 루돌프(육상 세계 기록 보유자)
"뇌성마비이지만 아이가 자라면 조금씩 좋아질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사의 이 한 마디는 엄마인 최권순 씨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는 점쟁이도 찾아가고, 용한 한의사에게 침을 맞히려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런 것이 부모 마음에 위안은 될지언정 아이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한이는 저보다 세 살 어린 동생과 쌍둥이처럼 자랐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상태가 제 또래 아이들보다 서너 살은 늦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이 되었다. 취학 통지서를 받고 찾아간 초등학교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은 영한이 모자를 따로 만났다.
"혜성학교(특수학교)에 가보세요. 그곳에서는 영한이 같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아이들에게 놀림당하지도 않을 겁니다."
혜성학교의 입학 허가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만 영한이는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노는 시간,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가 텅 빈 교실에는 눈물 짓는 엄마와 말없는 아들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내 아들도 저 애들처럼 뛰고 달리고 소리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한이가 수업내용을 알아듣고 무척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었다. 아들의 입학 수속을 밟기 위해 혜성학교를 찾던 날, 취권순 씨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내 자식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최씨는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수많은 장애아들을 보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슴이 저며 왔다. 더구나 중증의 장애아들을 보면서 그나마 내 아이는 다행이라는 위안도 받았다.
한 달 뒤, 최씨는 영한이를 위해 혜성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었다.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해서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한 뒤로는, 엄마 대신 다섯 살 난 동생이 영한이의 보호자로 나섰다. 제 키만한 형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어린 보호자는 길에서 강아지만 봐도 울고 동에 아이들이 형을 놀려도 울었다. 결국 엄마가 가게 문을 닫고 아들을 따라다녀야 했다. 몇 달 뒤, 영한이는 더듬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 혼자 갈테니 엄마 오지마."
초등학교 1학년, 강영한의 키는 1미터에서 1센티미터가 모자라는 99센티미터였다. 비 오는 날이면 등교길에 아이는 보이지 않고 우산만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작은 아이, 비록 몸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다. 혜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영한이를 담임 선생님은 일반학교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최씨 부부에게 제안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좋지요. 그런데 학교에서 받아 줄까요?"
부모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혜성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영한이는 덕천중학교와 낙동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혜성학교와는 달리 건강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심리적 부담이 컸다. 다행히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영한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 주셨다.
중고등학교에서 영한이는 어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특히 영어와 국어성적이 좋았다. 그러다 중3때 아버지가 맘먹고 컴퓨터를 한 대 사주자 영한이는 시간만 나면 컴퓨터를 배웠다. 물론 고등학교 3년 동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녀야 했던 먼 거리의 통학길은 영한이의 연약한 심신을 지치게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자습을 한다는 것도 큰 무리였다. 성적보다 건강을 우선시 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영한이의 대학진학만은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러나 영한이는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었다. 특히 그동안 취미를 붙여 온 컴퓨터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다. 오히려 영한이는 자신의 건강보다 목수로 청소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 가시는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을 대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영한이의 뜻을 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날부터 영한이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제대 전산학과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 종일 길거리를 누벼야 하는 어머니 최권순 씨는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잠들 때까지는 눈을 붙이지 않았다. 간혹 코피를 흘리는 영한이의 모습에 아버지도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처럼 온 가족이 영한이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다.
드디어 시험. 언어 장애 학생은 받아 본 적이 없다는 학교측의 반응이 잠시 영한이의 가족을 절망속으로 몰아넣었지만, 하늘은 이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영한이는 합격했다. 만 18세, 키150센티미터, 몸무게 37킬로그램의 강영한은 내신 성적 8등급, 수능시험 137.3점으로 인제대 전산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날 영한이는 목수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홀로 서기의 첫걸음을 내딛는 영한이. 부모가 짊어진 가난으로 인해 자신에게 씌워진 신체 장애의 멍에를 극복한 영한이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컴퓨터 전문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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