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고독과 더불어 사는 문학 고독한 천재 전혜린(1934-1956)은 평남 순천에서 8 남매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등 문관 시험인 사법, 행정 양과에 합격한 수재였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명석함을 이어받은 전혜린은 아버지의 열성적인 가르침도 있었지만 서너 살 때 벌써 국어책과 일어책을 전부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총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는 전혜린의 강렬한 자아를 묶어 놓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이리저리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를 '고향이 없는 아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어린 시절의 각별한 정서가 깃든 곳은 신의주였습니다. ......먼 데로의 그리움, 어디론지 미지의 곳으로 가고 싶은 충동은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싹튼 것 같다. 그때부터 내 눈은 실향민의 눈, 슬픈 눈으로 된 것 같다...... 전혜린은 경기여고를 거쳐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모범생 코스를 순탄하게 밟았습니다. 그녀는 3 학년 때 아버지의 예속을 끊고 좀더 '자유로운 인식'을 위하여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습니다. 뮌헨에서의 5년 세월은 31년이라는 그녀의 생으로 볼 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전공을 법철학에서 문학으로 바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딸도 않았습니다. 뮌헨에서 그녀는 카톨릭에 귀의했고 고독과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만끽했습니다. ...... 내가 독일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가을도 깊은 시월이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고 무겁고 축축했다....... 이러한 절실한 고독은 철저한 자기 인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뮌헨은 전혜린에게 자유, 청춘, 예술, 사랑을 자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 어디선지 모르게 그림이 그려지고, 조각을 쪼고 있고, 시가 쓰여지고 있는 곳,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이 젊었을 때 누구나 가질 청춘과 모험과 천재의 꿈을 일상사로 생활하고 있는 곳, 환상이 우선하는 곳...... 뮌헨에서 전혜린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장녀로서 숙명 때문에 받아야 했던 아버지의 기대와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기 위한 고독과 불면이 뒤범벅된 불안정한 생활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작품으로서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욕구가 치열하면 할수록 승화된 작품의 잉태가 어려웠습니다. 결혼도 전혜린의 고독감을 메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전혜린의 이러한 자신의 괴로움을 동생인 채린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나타냈습니다. ...... 넓은 우주 속, 풀포기와 같이 수가 많고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한 동생을 가졌고 사랑했고 존경했다. 너는 얼마나 나를 내포하며 나는 또 얼마나 너를 내포하는지...... 중략...... 아무에게도 뺏길 수 없는 나의 단 하나의 소유가 있다면 그것은 너다. 아니 너에 대한 나의 애정이다...... (동생 채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자아전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혜린은 1965 년 1월 10일, 서른 하나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이혼 상태였던 그 무렵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설도 있고 수면제 과잉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좌절에 의한 죽음이나 수면제 과용에 의한 죽음도 아닌 듯합니다. 다만 그 즈음에 보여진 어휘들에서 죽음, 권태, 우울, 불안이 여기저기 느껴지는데 극단적인 성격을 가졌던 전혜린에게는 세상을 일상성으로 파악하기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관념의 벽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불행의 원인은 늘 나 자신에게 있다.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구부러진다. 어찌 그림자 구부러진 것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은 없다. 불행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내 마음뿐이다. (파스칼)
Board 삶 속 글 2021.10.14 風文 R 583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15년이나 참아 왔어요 - 곽성민 1984년,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 기념 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처음으로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그 무렵이었다. 그해 가을 학교 축제 기간중에 종교부에서 특별한 사람을 초대했다. 그분은 20대의 맹인 여자였다. 어렸을 때는 정상아였는데 약을 잘 못 쓰는 바람에 시력에 이상이 오더니 급기야는 완전히 실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곁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기도하거라. 그러면 들어주실 것이다." 이날부터 어린 소녀는 앞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 간절히 빌었다. 그러다가 어른의 나이까지도 끝도 없는 나날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도를 해온 것이다. 그 무렵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상당한 기금을 할애하여 전국적으로 맹인들에게 무료 개안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그 엄청난 희망의 초대장이 그녀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녀는 자기의 기도가 허락된 것을 기뻐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수술을 받고, 마취가 풀려 정신이 든 다음이었다. 의사가 테스트를 했다. "이게 보입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그만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며 통곡을 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이렇게 대들었다고 했다. "하느님, 저는 15년을 참았어요. 앞으로도 더 참으라고 하면 저는 참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녀의 절박한 처지를 안 의사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다시 한 번 수술을 해보자고, 그녀는 두 번째로 수술을 받았다. 가슴을 조이는 운명적인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물었다. "이게 보입니까?" 아, 뭔가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 순간의 벅찬 감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명동성당 옆에 성모병원이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성당으로 갔다. 마침 저녁 미사가 있어서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손에 받아들었다. 자기 눈으로 하얀 밀떡을 보면서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녀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약속을 했다. "예수님, 이제 이후부터의 제 인생은 당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그토록 절실히 깨달은 그녀를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서울 서초동성당 주임신부)
Board 삶 속 글 2021.10.14 風文 R 613
Board 고사성어 2021.10.14 風文 R 1023
언어의 혁신 언어에는 착하고 아름다운 말도 있지만, 반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회복 불가능한 낙인을 찍는 말도 있다. 말은 사회를 지키는 유용한 수단인 동시에 그것을 무너뜨리는 흉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증오를 퍼뜨려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독일의 나치스는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퍼뜨려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사회적 통합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미국의 일부 보수 세력도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아직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지역 차별, 장애인 차별에다가 근간에는 외국인 차별까지, 심할 경우에는 특정 종교에 대한 부당한 표현까지 언어적 자유가 오용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반쪽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까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노출되면서 범죄와의 연관을 거론하게 된다. 이젠 이러한 혐오 표현이 난무하게 된 사회 구조와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현상의 밑바닥에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깔려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사회적 소통망에서 주변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혁신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모든 의회 심급, 각종 공공위원회, 총회, 평의회 종류에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몫을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의회적, 대의적 기구는 ‘현실에 자신의 몫을 차지한 사람들’만이 중심이 되었다. 여기에서 제외되거나 주변화된 소수자와 약자들의 ‘의석’을 보장해야 언어 사용 방식을 혁신할 수 있다. 의회 제도와 의사결정 집단 구성원 내부의 변화를 불러와야 한다는 말이다. 근대 사회가 언어의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근대의 완성 역시 새로운 언어적 제도의 혁신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재판받는 한글 한글이 재판을 받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한글을 우리의 고유한 글자로 정의한 ‘국어기본법’의 조항이 위헌 소송을 당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우리가 사용해온 한자도 우리의 글자로 인정해야 하며 이를 제약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근거한 소송이다. 한자도 우리의 문자라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있다. 한자의 ‘규범’을 우리가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논쟁적인 한자음을 토론할 때에는 주로 중국 청나라 때의 ‘강희자전’ 같은 문헌에서 논거를 찾아 왔다. 우리가 한자의 한 점, 한 획을 우리에게 편리하게 고치지 못해 왔다. 한번도 우리 글자라고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은 한글을 쓰든 한자를 쓰든 모든 개인의 사사로운 문자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공기관의 공문서’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문자 사용을 규제하고 제약을 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널리 편하게 사용하는 문자를 쓰도록 함으로써 보편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필요에 따라’ 괄호 속에 한자나 그 밖의 문자까지 넣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이것이 왜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제약하는 조항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률 가운데 국민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조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문맹만 벗어나면 대한민국의 모든 공문서에 접근하고 누릴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랜 세월 한자를 사용해온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우리의 언어는 한자와 몹시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다. 그래서 한글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를 활성화시켜 교육과 문화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것이 국어기본법의 목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상식에 근거해서 국민의 행복한 소통의 권리를 늘 든든하게 지켜주었으면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53. 집중 <전체적으로 행함이 곧 완전히 자유로운 행위이다. 전체적이면 자유로울 것이다.> 탄트라의 창시자 사라하. 그는 뿌나 근처의 비다르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하팔라 왕실에서 학식 높은 한 브라만의 아들이었다. 왕은 자기 딸을 사라하에게 주려 했지만, 사라하는 입산하여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불승 스리 키르티의 제자가 되었다. 스리 키르티는 먼저 사라하에게 모든 학식을 다 버리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사라하는 상당한 명상가가 되었다. 그런 어느날 명상 중에 사라하는 어떤 비젼을 보게 되었다. 장터에 한 여자가 보였는데 자신의 진짜 스승이 되리라는 거였다. 스리키르티는 자신을 길로 인도하였으나, 진짜 가르침은 그녀에게서 받는다는 것이었다. 사라하는 스리 키르티에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제 과거 인연을 깨끗이 닦아 주셨습니다. 이제 나머지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키르티는 사라하를 축복하였다. 사라하는 길을 떠나 비젼 속의 장터를 찾았다. 그리고 그 여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 여인은 화살을 만드는 여인이었다. 낮은 계급의 여인이었다. 왕실의 학식 높은 브라만이었던 사라하가 천한 신분의 화살 만드는 여인을 찾아간다! 여기엔 큰 상징이 들어 있다. 그녀는 젊고 생생하였고 빛났다. 화살을 다듬는 일에 온통 몰입해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사라하는 비상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사라하는 그녀를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이윽고 화살이 다되자 여인은 화살을 들어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여인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사라하에게 뭔가 일어났다. 그건 영적 메시지였다. 보이지 않는 과녁을 겨냥하는 그녀의 행위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 있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 가운뎃길. 그것에 대해 수많은 얘기를 듣고, 읽고, 숙고하고, 논의를 했어지만 처음으로 사라하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이었다. 여인은 "행위"에 완전히, 전체적으로 몰입해 있었다. 그건 메시지였다. "전체적으로 행함이 곧 완전히 자유로운 행위이다. 전체적이면 자유로울 것이다" 그 여인의 아름다움, 광휘는 전체적인 몰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라하는 처음으로 명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고, 맛볼 수 있었다. 사라하는 그 화살 만드는 여인의 인도 아래 탄트리카가 되었다. 스승과 제자. 그것은 영적 사랑의 관계이다. 사라하는 마침내 영혼의 동반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사라하와 그녀는 크고 깊은 사랑을 맺었다. 사라하는 그제야 처음으로 모든 경전과 지식을 내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명상조차도 내던질 수 있었다. 노래가, 춤이 그냥 그에게 명상이 되었다. 그의 삶은 이제 축복 그 자체가 되었다. 사라하와 여인은 화장터로 가서 함께 살았다. 찬양하면서. 오직 죽음만이 있는 곳에서 찬양하면서. 찬양이란 무조건적이다.
Board 추천글 2021.10.13 風文 R 1585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이봐, 턱을 높이 들라구 옛날 소련의 한 작은 마을에 카톨릭을 몰래 전파하는 신부가 있었습니다. 종교가 금지되어 있던 당시 신부는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경찰에 들키게 되어 신부는 정치범만 수용되는 시베리아로 보내졌습니다. 신부에겐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발사인 그는 신부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결국 친구가 너무나 걱정이 된 그는 시베리아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발사는 믿었던 것입니다. 이발사의 일은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감시가 심했기 때문에 이발사는 죄수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몇 주가 흘렀습니다. 여느 때처럼 죄수들의 머리를 깎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온 이발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신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눈빛만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신부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 이발사의 손은 가늘게 떨렸습니다. 신부에게 이발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머리카락을 고르게 자르기 위하여 고개를 들라는 주문뿐이었습니다. "이봐, 턱을 들어." 이발사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습니다. 러시아 말로 '힘 내!'라는 관용적 뜻이 숨어 있는 이 말을 듣고 신부는 새로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네 친구, 턱을 빳빳이 들고 이 무서운 곳에서 꼭 살아 남겠네.' 이발사는 신부가 풀려나기 전 3 년 반 동안 수용소에서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비록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루어진 만남이었으나 그때마다 이발사는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이봐, 턱을 더 들어!" 그러면 신부는 턱을 들면서 이발사의 눈빛을 슬쩍 바라보았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Board 삶 속 글 2021.10.13 風文 R 560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공기의 울림, 북이 떨리는 모양 - 남정호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가 에블린 글렌(30세)을 만나 보곤 오랫동안 잊고 살던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신예 음악가 중 한 명인 그녀는 타악기 독주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주인공이다. 오케스트라나 밴드의 보조 악기로 여겨지던 팀파니, 드럼, 트라이앵글 등 타악기만으로 독창적인 독주회를 열어 세계 도처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동안 그녀가 받은 세계적인 상만도 대영제국 훈장(O.B.E), 그래미상 등 십여 개에다 명예박사 학위가 다섯 개다. 물론 이게 전부라면 여느 신예 음악가의 평범한 얘기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그녀가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지난 9월 초 캠브리지 근교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정확히 약속 시간이 되자 산뜻한 흰색 티셔츠에 검은 가죽 조끼를 입은 전형적인 영국 미인이 밝은 미소를 머금고 나타났다. 굴게 웨이브 져서 어깨까지 치렁치렁한 갈색 머리, 커다란 갈색 눈동자, 아담하고 오똑한 콧날, 영락없이 영화 <프리티 우먼>의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를 빼닮았다. 입술 움직임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독순술을 익혀 의사 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대로 그녀는 정확하고 세련된 어조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담담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성장사는 이러했다. 그녀가 침묵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 대는 만 여덟 살 때부터였다.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귀 신경 마비 증세가 나타나 서서히 청각을 잃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음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열여섯 살 무렵에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귀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그 무렵 오케스트라에서 실로폰을 연주하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타악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청각을 잃었다 해서 음악에 대한 사랑마저 포기할 순 없었다. 청각 장애로 인해 그녀의 연습 과정은 엄청난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귀 대신 몸으로 소리를 느끼는 독특한 훈련을 쌓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발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맨발을 바닥에 대고 북을 치면 그 미세한 진동이 발바닥으로 전해 와 리듬과 소리의 강약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공기의 울림, 북이 떨리는 모양 등도 그녀가 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녀는 결국 영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기로 소문난 왕립 음악학교에 응시, 사상 첫 청각 장애인 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음악 학교 진학 후에도 에블린의 피나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아침 일곱 시 반부터 밤 열 시까지 매일 같이 연습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가서도 악보만을 생각했을 정도니 그때는 삶 전체가 음악뿐이었던 것 같다." 남다른 노력으로 졸업 때에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 여왕상을 탔다. 졸업 후 눈부신 활동으로 그녀는 단숨에 음악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으며, 게오르그 솔티, 로얄 심포니와 같은 세계적인 연주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자연히 세계 도처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 그녀는 최근 수년 간 무척이나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중앙일보 런던 특파원)
Board 삶 속 글 2021.10.13 風文 R 475
欲蓋彌彰(욕개미창) 欲(하고자 할 욕) 蓋(덮을 개) 彌(널리 미) 彰(밝힐 창) 춘추좌전 소공(昭公) 31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노(魯)나라 소공 31년 겨울, 주나라 대부 흑굉(黑肱)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노나라에 투항하자, 그가 다스렸던 남(濫)땅은 노나라에 편입되었다. 흑굉은 본시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굳이 그의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공자는 흑굉으로 인하여 국토의 변동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 춘추에 이 사건을 분명히 기록하고,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름이 나타나 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일이 있다. 토지를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은, 그의 지위가 비록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 이름을 써서 밝히고 그 사람을 말했는데, 그것은 결국 불의(不義)가 되고, 그 불의는 없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움직이게 되면 예의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행하면 의리를 생각하며, 이익을 위해서 비뚤어지지 않고, 의리를 위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다. 혹은 이름나기를 원하나 이름나지 못하게 되고, 혹은 이름을 감추려 하나 이름이 나타나게되는 것은 불의를 징벌하려는 것이다(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欲蓋彌彰 은 진상을 감추려 하나 모두 드러나게 됨 을 뜻한다. ………………………………………………………………………………………………………………
Board 고사성어 2021.10.13 風文 R 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