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이봐, 턱을 높이 들라구
옛날 소련의 한 작은 마을에 카톨릭을 몰래 전파하는 신부가 있었습니다. 종교가 금지되어 있던 당시 신부는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경찰에 들키게 되어 신부는 정치범만 수용되는 시베리아로 보내졌습니다. 신부에겐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발사인 그는 신부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결국 친구가 너무나 걱정이 된 그는 시베리아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발사는 믿었던 것입니다. 이발사의 일은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감시가 심했기 때문에 이발사는 죄수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몇 주가 흘렀습니다. 여느 때처럼 죄수들의 머리를 깎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온 이발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신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눈빛만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신부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 이발사의 손은 가늘게 떨렸습니다. 신부에게 이발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머리카락을 고르게 자르기 위하여 고개를 들라는 주문뿐이었습니다.
"이봐, 턱을 들어."
이발사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습니다. 러시아 말로 '힘 내!'라는 관용적 뜻이 숨어 있는 이 말을 듣고 신부는 새로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네 친구, 턱을 빳빳이 들고 이 무서운 곳에서 꼭 살아 남겠네.' 이발사는 신부가 풀려나기 전 3 년 반 동안 수용소에서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비록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루어진 만남이었으나 그때마다 이발사는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이봐, 턱을 더 들어!"
그러면 신부는 턱을 들면서 이발사의 눈빛을 슬쩍 바라보았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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