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5교시 숨통을 틔워 주는 편지글 - 기사문, 일기문, 편지글엔 진실이 담겨야 한다. 3. 과거를 아름답게 하는 기록 사진첩 - 일기문 모 월 모 일 아침밥 먹고 책가방 짊어지고 버스 타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원 가서 공부하고, 학원 차를 타고 집에 와서 저녁밥 먹고 숙제하고 잤다. 모 월 모 일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음 친구들 중에는 이처럼 날마다 거듭되는 일상의 일들을 일기에다 적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일기라면 굳이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일기는 하루중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이나 사색을 통해 깨달은 것, 또 어떤 일에 대한 감상이나 오랬동안 기억하고 싶은 일들, 그 날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 등 자신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 쓰는 글이며, 자기 인생길을 운전해 가는 나침반으로 사용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러므로 애써 잘못을 감추거나 꾸며 쓸 필요가 없다. 만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읽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므로 거짓으로 가득 찬 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거짓 일기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슬픈 버릇을 들이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의 누적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날 그날이 의미 있고 가치 있어야, 그 사람의 인생이 알차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굳건히 뻗어 나갈 수 있다. 말하자면 일기는 그러한 성장,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글이다. 일기를 쓰다 보면 먼저 인격이 수양된다.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문장력이 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사고력과 관찰력까지 깊어지고 날카로와진다. 결국 일기느 과거를 아름답게 기록하느 사진첩이며, 미래를 튼실하게 약속해 주는 훌륭한 보약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일기에도 쓰는 목적과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적는 독서 일기, 작품을 써 나가면서 적는 창작 일기, 심신을 가다듬기 위해 적는 수양일기,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기 위해 쓰는 학과 일기, 보이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는 편지 일기, 어떤 문제애 대하여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를 적는 관찰일기 등. 14일(신미) 맑음 새벽 2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위를 가다가 말이 헛디디어, 내(개울) 가운데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는데, 아들 면이 엎디어 나를 안는 것 같은 형상을 보고 꺠었다.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합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란해 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열(이순신의 둘째아들)의 글씨를 보니, 거죽에 '통곡' 두 자가 쓰여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한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떄문에 양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은드르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 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밤 9시께 비가 내렸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중에서 4. 삶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숨통 - 편지글 초등학교 시절, 나는 숫기가 없어서 누구에게든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일어나서 책을 읽으라고 하시면 괜스레 눈물만 줄줄 흘렸다. 그럴때면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후, 다른 아이에게 책 읽기를 시키곤 하셨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연필깎는 칼을 빌려달라는 말도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종이 쪽지에 그 말을 써서 건네주곤 했다. 아버지께 용돈을 탈때도 그랬다. 어떤 친구에게 사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말로 하지 못하고 편지를 써서 건네 준 뒤 도망쳐 버렸다. 누님이 먼곳으로 시집을 갔을 때도, 밤새워 기나긴 편지를 써서 부치곤 했다. 우리들 하나하나를 점지해 준 삼신 할머니는 우리에게 말을 하는 혀와 글을 쓰는 붓을 한꺼번에 주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대개의 경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는 사람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내가 하는 말들을 믿지 못했다. 웬일인지 내가 뱉은 말은 자꾸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기 때문이다. 그 오해를 씻기 위해서 더 자세하게 지껄인 말은 더 큰 오해를 불러오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뱉아낸 말들은 나를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몰고 가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밤새도록 편지를 써서 그 오해를 풀어 보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쓰는 편지는 늘 길었다. 친구, 어머니, 아버지, 형, 누님, 선생님, 같은 반 친구, 여자친구...... 그 어느 누구에게 편지를 쓰든지 공책 한두 장으로는 사연을 다 쓸 수가 없었다. 공책을 여덟 장 아홉 장 열 장쯤 뜯어서 씨알같은 글씨로 빽빽이 쓰곤 했다. 이렇듯 내 혀를 놀려 지껄인 말들을 불신하고, 밤에 불을 밝힌 채 꼼꼼이 쓴 글들을 신뢰했더니 나의 버릇이, 결국은 나를 이렇게 소설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이때껏 내가 써 온 소설들도 '형식이 다른 편지글'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은 나의 생각과 입장과 처지와 나 나름대로의 깨들음을 세상에 드러내 주는 한 편 한 편의 편지글이다. 만약 내가 어릴때부터 편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가슴을 채우는 답답증 떄문에 진작에 빼빼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편지 쓰기를 권한다.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같은반 친구, 멀리 떠나간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보라. 아마도 속이 확 풀릴 것이다. 편지를 통해 사상과 사색과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사귐과 믿음을 더욱 튼실이 하고, 미래의 건실한 성장과 발전을 약속하는 것이다. 편지는 기쁨이나 슬픔, 울분 복수 등의 감정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정화제 이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가 자기의 삶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일이라면, 편지쓰기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생활, 답답증이 나서 질식할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심호흡을 하며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5. 편지글은 어떻게 써야 하나 그렇다면 편지는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일까? 편지는 편지를 쓰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 일정한 격식을 지닌다. 그렇다고 형식에 얽매어 딱딱하게 쓰라는 말은 아니다. 말로 전할 것을 글로 대신 써 보내는 것이니 만큼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좋다. 편지에는 뭐니뭐니 해도 쓰는 사람의 정성과 진실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진실하고 솔직하게 써야 하지만, 받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지는 서두, 본문, 결말, 세 단계로 나누어 쓰는 것이 좋다. (1) 서두 1) 호칭 : '어머니께'라든가 '에게' 등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호칭을 먼저 부른다. 2) 계절인사 :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6월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군요' 등의 계절인사를 쓴다. 이 계절 인사는 격식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옛날식 편지에서는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겼지만, 자주 만나는 사람이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략해도 좋다. 3) 문안 : '댁내 두루 평안하십니까?' '그동안 잘 있었니?' 따위의 안부를 묻는다. 4) 자기안부 : 상대편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는 '저는 염려해 주시는 덕분에 무사히 잘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따위의 자기 안부를 전한다. (2) 본문 1) 사연 : 편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편지를 쓰게 된 사연을 밝힌다. (3) 결말 1) 끝인사 :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잘 지내렴' 등의 끝인사를 한다. 2) 날짜 : 편지를 쓴 연월일을 밝힌다. 3) 서명 : 자기 이름을 쓴다. 이름 다음에는 받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올림, 드림, 씀' 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4) 추신 : 편지를 다 쓰고 난 후 빠뜨린 말이 있을 경우, '추신'이라 쓰고 용건을 이야기하면 된다. 이제 편지를 쓸 때 갖추어야 할 격식을 어느 정도는 알았으리라 믿는다. 자,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시인 김영랑이 자신의 아들 애노에게 띄운 편지 한 대목을 감상해 보자. 애노, 읽어라. 그 동안 객지에 고생이 어떠하냐? 몸이 성하냐? 어제, 네 편지를 읽고, 멀쩡한 일에 네가 어린 마음을 공연히 죄고 있는 것을 알았다. 기숙사 밥이 먹기 사납다고 어느 학부형이 편지질을 했더란 말이냐? 엄마 아빠는 절대로 그런 편지를 아니할 사람이니 걱정 말아라. 사(기숙사)밥이 설령 나쁘다더라도 참고 맛있게 먹을 도리를 해 보아라. 그것이 첫째 큰 수양이 되는 것이다. 요새 비가 너무 아니 와서 농촌에서는 큰 야단들이다. 집에 아이들도 잘 있다. 외숙 댁에나 일 주일에 한 번쯤 가 뵈어라. 이번 네 편지를 보고 엄마 아빠는 웃었다. '본제입납'의 납자를 잘못 썼더라. 이담부터는 고쳐 써라. 외삼촌은 외숙부님이라고 써 버릇해라. 하식이 삼촌은 숙부시고, 익환이 삼촌은 외숙이시다. 글을 조심해서 써라. 안쓰는 것과 잘못 쓰는 것과는 문제가 처음부터 다르다. 아버지가 요새 좀 바빠서 너한테 못간다. 그러나 너무 집생각만 하여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공부, 공부가 제일 아니냐! 그리고 병후의 몸이니 특히 몸조심 하여라. (......) 오늘은 이만 줄인다. 모월 모일 아비 씀 - 김영랑의 서간문 중에서 이번에는 선생님과의 추억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독자의 편지 한 편을 읽어 보자. 선생님.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지도 벌써 4년이나 흘렀군요. 선생님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까요? 아마도 옛날 모습 그대로 훌륭한 스승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시겠지요. 비록 4년전의 일이지만 저는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다정하셨던 선생님의 눈빛을요. 거리를 가다가 자전거를 보면 언제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조그만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남들보다 먼저 집까지 혼자 걸어 다녔던 저를, 하루는 선생님 께서 자전거로 집까지 바래다 주셨어요. 선생님의 허리를 꼭 붙들고 흔들리는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워 우리들은 손이 시려 필기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께선 그 쾌활한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교실을 아주 따뜻하게 해 주셨죠,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서, 저는 어린 나이였지만 존경과 사랑을 느꼈습니다. 새 학년이 되기 전 선생님께서 전근 가시던 날, 저희들에게 하셨던 그 말씀, 제 마음에 아로 새겨져 항상 기억이 되는 그 아름다웠던 말씀 기억하고 계시나요?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필요할 때면 용기와 그리움을 주는 사람 말이다." 그 말씀 한 마디, 어쩌면 선생님께서나 친구들 모두가 잊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항상 선생님께서 해 주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선생님께서 제게 주셨던 아름다운 모습을 닮아 가기 위해서죠. 만약 선생님을 다시 뵙는다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훌륭한 스승이셨고, 무엇보다도 제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라구요. -제자 김레이 올림 생각해 봅시다. 1. 기사문은 신속성과 정확성이 생명이다. 독자가 기사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기사문은 어떠한 구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말해 보자. 2. 편지는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가장 좋지만, 편지를 쓰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 일정한 격실을 지니게 된다. 대개 편지글은 대개, 서두, 본문, 결말, 세 단계로 나누어 지는데, 각각의 항목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좋을지 간략하게 써 보자.
표준말의 기강 우리의 표준말 어휘 목록은 1936년에야 정비가 됐다. 이후 여러번의 개선, 보완, 수정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표준말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도 표준말 사정을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표준말을 하루속히 제정하려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때 나온 ‘표준말 모음’은 우리 토착 어휘 6천여개를 목록화하여 비표준형과 함께 나란히 제시하고 어느 것이 표준형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김치’를 굵은 활자로 보여주고 그 곁에 작은 활자로 ‘짐치, 짐채’라는 비표준형을 나란히 실은 것이다. 이렇게 표준말이 확립된 덕분에 우리 한국어는 현대적인 체제를 갖추고 교육과 문학, 그리고 출판의 발전도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가지 아쉬움도 외면할 수가 없다. 당시의 표준말 정비는 우리 토착어의 공식적인 형태를 확정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그 수많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거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그 결과 토착 어휘는 사용될 때마다 표준형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지만 한자어와 외래어는 표준형 여부를 묻지 않는다. 그냥 한자로 쓸 수 있으면 자동적으로 표준어가 되었고 외래어는 괄호 속에 알파벳만 기입하면 잘못된 말도 그냥 표준어처럼 쓰인다. 마치 토착어는 지나다닐 때마다 검문과 검색을 일일이 받아야 하고 한자어나 외래어는 무비자로 입국한 관광객처럼 자유롭게 통행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자어도 틀린 것, 너무 낡은 것, 뜻이 모호한 것, 전통 한자어와 통속 중국어 어휘 등 ‘표준형의 자격’을 잘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서양 외래어 같은 경우는 모호한 뜻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더 멋들어진 말로 대접을 받기도 한다. 표준어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한자어와 외래어의 입국심사가 좀 더 엄격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 의미와 신뢰 얼핏 보면 사람은 모두 돈이나 권력만을 믿고 사는 것 같으나 사실 마음속 깊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좀 더 지고지선한 그 무엇, 그 이상의 무언가를 뜻하는 단어를 품고 의지하려 한다. 옛날부터 ‘하늘의 뜻’이라거나 ‘충’과 ‘효’ 같은 말로 깊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대명천지에서는 그러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와 소망이 존중을 받는다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믿음과 의지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아닐까 한다. 이 단어들은 특이하게도 여느 단어처럼 형태와 의미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반드시 ‘신뢰’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아무리 신앙이나 평화주의를 부르짖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온갖 불이익을 불사하고 내세우는 그들의 ‘신념’이 겨우 병역기피자의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들이 말하는 ‘양심’이란 말에 비위 상해, 군대 간 사람이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하는 반문은 사리에 맞지도 않는다. 진짜 비양심적인 사람은 허위진단서를 내서 ‘공식적으로’ 병역을 기피하고도 감옥에 안 간 사람들이다. 많은 손실을 감수하고 내세우는 ‘양심’과 ‘신념’을 일단 경청할 필요는 있다. 그들에게 교도소에서 더 오래 근무하라는 둥, 양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말을 빼라는 둥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익이나 욕망 외에는 아무런 ‘가치’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슬픈 증거일 뿐이다. 차라리 그들이 주장하는 양심과 신념을 이 사회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을 만들어줄 여지는 없을까? 이 두 단어는 소시민들 마음에 남아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신뢰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글나눔 → 읽어둘문학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5교시 숨통을 틔워 주는 편지글 - 기사문, 일기문, 편지글엔 진실이 담겨야 한다. 1.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것과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것.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중의 하나가 바로 신문사나 방송국의 기자라고 한다. 그래서 입사 시험철이 되면 출세의 길이라도 열린 것 처럼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언론 고시'하는 말까지 생겨났다. 오래 전에 내 친구 한 명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어느 신문사 기자 시험에 응시했었다. 그때도 신문 기자는 대단한 인기 직종이었다. 독자가 많기로 소눔난 그 신문사 기자 시험에는 지망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 신문사에서는 일차적으로 서류 심사를 하여 50명 정도를 가려 뽑은 다음, 합격자에 한하여 필기 시험과 면접을 치렀다. 시험장은 어느 중학교의 교실이었다. 그 날 일찍 시험장에 나온 응시자들은 수험 번호에 따라 지정된 좌석에 차례로 앉았다. 첫째 시간에는 영어, 둘째 시간에는 상식, 셋째 시간에는 기사문 작성이었다. 그 셋째 시간에 일어난 해괴한 사건을 이야기 하겠다. 셋째 시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시험관 두 사람이 교실로 들어와서. 한 시험관은 응시자 들의 뒤쪽에 가서 감독할 채비를 하였다. 시험 문제는 "기사문의 작성 여섯가지 요소를 서술한 뒤, 어떠한 것이 기삿거리가 될수 있는지에 대해 논술하라"라는 것이였다. 응시자들은 반듯반듯한 글씨로 답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시험 문제가 너무나 쉽다고 코방귀를 뀌면서 한달음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라고 썼다. 그리고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것은 기삿거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것은 기삿거리가 된다고 줄줄이 늘여 썼다. 바로 그 때 누군가 교실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그러자 교탁 앞에 서 있던 시험관이 문을 열었다. 시험관은 깜짝 놀라며 "웬일이십니까?"하고 물었다. 그와 동시에 한복을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문 안으로들어서더니 다짜고짜 시험관의 멱살을 움쳐 잡았다. "네놈이 피하면 대관절 어디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내 술값 떼어먹은 놈이 가는 데라면, 저승까지라도 쫒아가서 모조리 받아내는 사람이다." "아이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에 다 갚으려던 참인데......" 멱살을 잡힌 시험관은 당황하여 어절 줄 몰라 하며 여인을 복도로 끌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응시자들은 뜻밖의 사태에 한결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삼 년 묵은 술값이다 이놈아." "그 동안 제 집사람이 아파서 입원비를 대느라 그리 되었으니 양해하시고......" 시험관이 통사정을 하면서 자기의 멱살을 잡은 여인의 손을 떼어내려 애썼다.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지려나 했더니, 곧 수위 두 사람이 달려와 여인을 복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여인은 수위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연신 악다구니를 써 댔다. "저런 것들이 신문사 간부라고?" 이윽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온 시험관은 비뚤어진 넥타이와 와이셔츠 칼라를 바르게 고친 뒤, 응시자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를 했다. "제가 워낙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 응시자 여러분들의 정서를 불안하게 해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방금 이곳에서 일어나 난 사건에 대하여 5분안에 기사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응시자들은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 사건은 일부러 그렇게 연출된 것들이었으며, 그에 관한 기사문 작성이 이번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을 뒤늦게 깨달은 내 친구는 몹시 당황했다. 그래서 5분이 다 지나가도록 겨우 이렇게 밖에 쓰지 못했다. 4일 무슨무슨 신문사 기자 채용시험장에 한복 차림의 중년 여인 한 명이 나타나, 시험관의 멱살을 잡고 외상값을 3년째 갚지 않는다며 소란을 피웠다. 시험관은 시험장 밖 복도로 끌려나가 여인에게 이 날 저녁에 가서 모두 갚겠노라고 통 사정을 하였지만, 여인은 막무가내였으므로 수위 두사람이 달려와 그 여인을 끌어냈다. 2. 기사문은 어떻게 써야 하나 결국 내 친구는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친구는 자신이 '기사문 작성 요령'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다는 6가지 원칙(육하 원칙)이 모두 들어가 있다 해도, 기사문의 작성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면 좋은 기사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첫째, 간결하고 정확하게 써야 한다. 기사문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리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장황한 설명이나 수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판단이 들어가게 되면, 기사의 생명인 공정성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독자의 편견을 자아낼 수 있다. 셋째, 기사거리가 되는 대상에게는 냉정하되, 독자에게는 친절해야 한다. 기사거리를 이성적인 눈으로 포착한 뒤에는,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평범한 낱말과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독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로 표현해 버린다면, 기사문이 가지는 사실 전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육하원칙 중에서 어떤 원칙에 치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가령 호랑이 한 마리가 졸로 한복판에서 잡혔다면, 그것이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인지, 백두산의 야생 호랑이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잡은 사람이 열 다섯 살 짜리 소년이라면, 그 소년이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만일 잡힌 곳이 어느 음식점의 부엌이었다면, 이 경우엔 그 장소에 치중해야 한다. 다섯째, 기사는 표제 및 부제.전문(줄거리 또는 요약).본문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표제나 부제를 통해서 그 기사가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게 한 뒤, 바쁜 사람은 본문까지 읽어 더 자세한 내막이나 그 전모를 속속들이 알게 하자는 것이다. 표제는 기사문 맨 위의 큰 글씨를 가리킨다. 기사의 내용을 압축, 요약하여 몇 구절로 표현한다. 표제만으로도 독자가 기사의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생략적이어야 한다. 기사가 길거나 중요한 내용일 경우에는 아래에 부제를 다는 것이 좋다. 전문은 표제 다음에 한 문단 정도로 쓰여진 부분을 말한다. 이 부분은 기사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표제를 좀 더 자세하게 밝혀 보인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표제는 완결된 문장이 아니어도 되지만, 전문은 아무리 요약이라 해도 완전한 문장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순의 육하 원칙을 따라 쓰는 게 좋다. 본문은 기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므로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것을 자세하게 쓴다. 여섯째, 신속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다른데서 이미 내보낸 후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사문에는, 신속성과 정확성이 그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보도 기사, 어떤 문제에 대하여 그 신문사의 견해를 밝히는 사설이나 외부인사의 논설문을 일컫는 논설 기사, 사건이 워낙 중대하여 보도 기사만으로 부족할 경우에 쓰는 해설 기사, 기자가 뉴스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낀 바를 적는 탐방기사, 특정 인물이 보도의 대상이거나 혹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어떤 사실을 알아내려고 할 때 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내용을 담은 대담기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음은 기사문 작성의 한 예다. 강남 8학군 2개로 쪼갠다. 서울 교육청 25년만에 개편 서울 시내 고교 학군이 99학년도부터 현행 9개에서 11개로 조정된다. 서울시 교육청은 27일 2~5개 구가 1개 학군으로 묶여있는 현행 9개 학군 체제를 지역 교육청 관할 지역에 따라 2~3개 구로 조정, 11개 학군으로 개편키로 했다고 밝혔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2학군에 포함된 동대문 중량구가 1학군으로, 노원구는 도봉구와 함께 4학군으로 바뀐다. 현행 8학군은 2학군으로 분리돼 강동.송파구는 6학군으로, 강남.서초구는 8학군으로 개편된다. 영등포, 구로, 금천, 양천, 강서구 등 5개 지역이 혼재돼 있는 현행 7학군은 강서.양천구만 8학군이 되고, 나머지 3개구는 3학군이 된다. 신설되는 10학군에는 성동 광진국가 11학군에는 강북, 성북구가 포함된다. 시 교육청은 고교 평준화(74년) 이후 유지해 온 고교 학군을 25년만에 개편키로 한 것은 학생들의 통학 불편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학교 운영에 적극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군간 최고 8배까지 벌어졌던 인문계 고 신입생 정원 불균형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시 교육청은 이 같은 고교 학군 개편안을 다음달 시 교육 위원회에서 최종 의결, 현재 중3학생들이 치르는 99학년도 고입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시 교육청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96학년도부터 33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선 복수 지원, 후 추첨 제 방식의 공동 학군제는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1998년 4월 28일 <중앙일보>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면이 모두 적에게 포위된 경우와 고립된 경우를 이르는 말. 《出典》'史記' 項羽本紀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 : 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 : 섬서성(陝西省)]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陣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 : 안휘성(安徽省)]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한 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四面楚歌]'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작전이 주효(主效)했던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서 외치듯 말했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酒宴))을 베풀고는 사랑하는 虞美人이 '四面楚歌'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자, 비분강개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건만 때는 불리하고 추도 나아가지 않누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우(虞)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동의어】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Board 고사성어 2022.06.29 風文 R 979
주시경 국어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주시경은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의 후손으로 1876년 12월22일에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다. 며칠 있으면 그의 생일이다. 그는 배재학당에 다니며 <독립신문>에서 교정을 맡아 일하면서 우리 국어의 현실을 마주하며 세상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남대문 근처에 있는 상동교회의 야학 교실을 비롯하여 중앙, 이화, 휘문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학회 활동을 하며 훗날 국어학 연구와 언어 운동의 대들보 노릇을 한 후계자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하늘이 무심하였는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여 그 열매를 직접 거두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서 직접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후계자들의 이름은 이후 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되었다. 그들은 ‘조선어학회’를 조직하여 식민지 시대의 국어 운동을 지켜 나갔다. ‘맞춤법 통일안’을 제안했고 ‘표준어’를 정비했으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많은 학자와 활동가들이 옥고를 치렀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유명을 달리했다. 광복 이후 국토만 분단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후계자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품었던 신념에 따라 북을 선택했다. 그의 후계자들도 분단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남북으로 나뉜 후계자들은 갈라진 반쪽 땅에서도 묵묵히 언어를 갈고 다듬는 일에 종사했다. 그러다가 서로의 정치적 상황에 훈풍이 불면 스스럼없이 함께 모여 학술 토론회도 했다. 남과 북에서 보기 드물게 함께 존경을 받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주시경을 그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한동안 진척을 못 보다가 이번에 국회의 뒷받침으로 다시 일을 추진하게 된 ‘겨레말큰사전’ 편찬도 돌이켜보면 이때 주시경이 착수했던 ‘말모이’라는 사전의 계승 작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 대칭적 소통 텔레비전을 볼 때 화면 구석에 수화통역사가 나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로 통역을 해주는 것이 이젠 그리 낯설지가 않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영상 편집에서는 화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따르기도 한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에는 이렇게 사회적 투자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집단과 비장애인 집단 사이의 소통이 정말 별일 없이 순탄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되돌아보면 더욱더 중요한 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수화로 통역을 하거나 점자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비장애인들의 말’을 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장애인들의 말을 비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통역과 번역의 창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장애인들이 수화로 표현을 하고 그것을 비장애인들에게 통역해주는 방송은 매우 짧은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비장애인들에게 그렇게도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무언가 할 말은 많은데 표현을 억압받고 있지는 않은가? 점자로 글을 번역하는 것을 점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점역은 비장애인들의 글을 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점자로 적고 그것을 비장애인들에게 번역해주는 것을 아직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소통이라는 것은 양측의 의견이나 감성을 서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늘 한쪽은 무언가 말하고 다른 쪽은 듣기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을 더욱더 이해하고 공감하라고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우리 비장애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겠는가? 하루속히 이러한 비대칭적인 소통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이것 역시 대담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4교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실 혹은 꿈의 세계 - 동화와 동시 쓰는 요령을 익혀라 1. 동화 쓰기 여섯 살 먹은 아이의 거짓말 여섯 살 난 동생이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사이에 내가 애지중지하는 나의 앙증스러운 낫을 들고 꼴을 베러 나갔다. 아버지가 며칠전에 대장간에서 만들어다가 준 낫이엇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와 꼴을 베고 있는 동생은 들길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한데 동생의 손데 들려있는 낫 끝이 5센티미터쯤 끊어져 버리고 없었다. "아니 너 이것 어찌된 거야?" 하고 내가 낫을 빼앗아 들면서 묻자 동생은 대뜸 "저쪽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이 낫 끄트러미를 덥썩 잘라먹고 날아가 버렸어"하고 대답했다. "뭣이 어쩌고 어째? 이 자식 거짓말 하는 것좀 보게? 파랑새가 어떻게 낫 끄트머리를 잘라먹는단 말이냐?" 나는 기막혀 하면서 소리쳐 말했다. "참말이여" 동생은 까만 눈을 깜박거리며 진정으로 우겨댔다. 또 한 아이의 거짓말 초등학교 일학년인 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기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 우리학교 변소 속에 아기가 하나 빠져서 응아응아 하고 울고 있어." 어머니는 그 아이를 앞세우고 학교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사려 깊었으므로 덮어놓고 선생님께로 달려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앞장세우고 아기 빠져 울고 있다는 변소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두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변소간 속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아기는 없었다. "정말로 아기가 울고 있었어?" "그래요" "어디에서?" "여기서요." 아이는 까만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현실과 동화적인 현실 이런 경우 여섯 살 동생의 말은 진실인가. 정말로 파랑새가 낫 끄트머리를 잘라먹은 것인가. 형의 꾸중을 모면하기 위해 꾸며 댄 말인가. 어린아이의 머리로 어떻게 파랑새가 쇠로 낫 끊어 먹는 행위를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또 한 아이는 어떻게 변소간 속에서 아기가 빠져 울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일까. 그 거짓말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에는 '동화기'가 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현실과 꿈 속의 현실을 분별하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현실속에서 본 것을 분별하지 않고 그냥 '어디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것을 어른들은 거짓말이라고 무시하거나 추궁을 한다. 그들의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규정지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는 사람은 동화나 동시를 쓸 자격이 없다. 동화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현실과 동화적인 현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또 그 두 현실을 분별하지 않고 한데 버물러 현실화 시킬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의 동화 한편을 읽어 보자. 아기별 공주는 참으로 기이한 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섬의 한 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있고 거기에는 초가 한 채만 있었습니다. 마당은 겨우 다섯 걸음쯤의 넓이였고 담이나 울타리도 없었습니다. 마당 밖으로는 검은 갯바위들만 있고, 거기에는 굴과 해초들과 게와 새우와 어린 물고기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기별 공주는 마당 끝에 선 채 그 초가를 살폈습니다. 초가의 툇마루 위에 이상스러운 한 젊은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머리칼과 수염들이 어깨와 가슴을 덮을 만큼 길었고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아기별 공주는 섬찟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뒷걸음질 쳤습니다. 바다에 산다는 도깨비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곧 그 젊은이를 보고 놀란 스스로를 꾸짖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아하, 그 엄마 꿀벌이 이 젊은이한테도 콧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나 보다.' 자세히 보니 그 젊은이는 서서 걸어다닐 수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 초가 모퉁이에는 짚더미가 쌓여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검불을 깨끗하게 추려 낸 샛노란 속짚으로 새끼를 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새끼를 열심히 꼬았는지, 젊은이의 손바닥은 부르텄고 손가락들은 빨갛게 닳아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때껏 꼬은 새끼줄들을 국수의 사리처럼 사려 묶어서 다른 모퉁이와 뒤란에 쌓아 놓았습니다 그 새끼줄의 사리 더미는 처마보다 더 높았습니다. 젊은이의 수염과 머리칼들 속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두 눈이었습니다. 하늘 나라에 살고 있는 한 동무별의 해맑은 등불을 생각나게 하는 눈 "아저씨는 무얼 하려고 이렇게 새끼를 꼬는 거에요?" 아기별 공주는 그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새끼꼬는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아기별 공주는 호기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고기를 잡으려고 그래요?" "네가 보시다시피 나는 걸을 수가 없는 사람이지 않니? 그런데 어떻게 고기를 잡을 수 있겠니?" 젊은이는 고개를 더 세차게 저었습니다. "그럼 새끼줄을 다른 어부한테 팔려고 그래요?" 젊은이는 다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새끼를 계속해서 꼬고 계시는지?" 젊은이는 한동안 새끼를 꼬기만 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보름달을 우리 집 앞에 묶어 놓으려고 그런다." "네?" "앞으로 두고 보아라, 우리집 앞에는 밤이면 밤마다 보름달이 떠 잇을 것이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여요" 아기별 공주는 그에게, 그것이 하늘의 법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임을 설명해 주려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아기별 공주가 그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기 전에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떤일을 참으로 열렬히 소망하고, 정성을 다하면 되지 않은 일이 없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다. 나는 내가 오래전에 한번 소망한 대로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조개를 잡으러 갔다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기별 공주는 아들에게 허황된 소망을 가지도록 거짓마을 한 어머니에게 따지고 싶었습니다. "할머니의 가엾은 아들은 평생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양식의 가책도 없으십니까? 보름달을 묶어 놓는일 그것이 할머니의 가엾은 아들의 소망대로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단다, 정말로 보름달을 묶어 놓겠다고 소망하면...... 실제 하늘의 보름달은 아닐지라도 그 아이의 마음속의 보름달은 항상 환히 떠 있지 않겠니?" 하고 나서 그의 늙은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세상의 일은 소망한 어떤 결과보다는 그 소망을 위하여 열과 성의를 다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란다." -한승원의 동화 <별아기 바다꿈> 중의 <새끼꼬는 젊은이의 > 전문 (1) 동화는 시간의 순서대로 진술해야 한다. 동화를 읽는 사람은대개 어린이들이다. 동화 독자의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므로 사건을 진술하는 순서를 시간 순서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2) 단문을 써야 한다. 잠에서 깨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므로, 영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바쁘게 세수를 하였고, 서둘러 아침밥을 먹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동화에서는 복문이나 중문은 피해야 한다. 읽는 사람이 어린이들 이므로 복문과 중문은 그들의 정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잠에서 깨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습니다. 영철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바쁘게 세수를 하였습니다. 서둘러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3) 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쯤 이어야 한다. <새끼 꼬는 젊은이의 섬>이라는 이 동화에서는 아기별 공주와 젊은이와 그의 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만 등장한다. (4) 구성은 단순해야 한다. 동화 <새끼 꼬는 젊은이의 섬>에서는 세 사람만 등장하므로 세 주인공 사이의 갈등 대립이 있을 뿐이다. 1)아기별 공주가 한 섬에 들어서서 장애인 젊은이를 발견한다. 2)젊은이의 희망을 안타까워하는 아기별 공주 , 3)깨닫게 해주고 싶은 아기별 공주 4)어머니와 아기별 공주의 만남 5)어머니가 한 말 - '마음속의 달과 소망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하며 사는 삶의 고귀함에 대하여' (5) 주제가 교훈적이기는 하되 설교적이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진실' 이상으로 교훈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진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용해되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젊은이의 삶 그 자체가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진실'인 것이다. (6) 동화는 소년 소녀 소설과 다르다. 소년 소녀 소설은 현실 속의 어떤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데, 동화는 꿈속의 현실과 현실을 섞고 버물러 승화 시킨다. (7) 동화에서는 대개 경어체의 문장을 쓴다. 평서체의 문장은 냉철하고 딱딱하고 속도가 빠르다. 거기에 비하여 경어체 문장의 맛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인자하고 공손하고 속도가 완만하다. 타이르고 달래는 듯한 잔잔한 소호력이 있다. 2. 동시쓰기 동시를 쓰려는 사람은 아이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기도 하다. 아이의 마음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전혀 새롭게 발견하려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배워 가는 아이들은 눈에 띄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저것이 무어야?" 혹은 "어째서 그러는 거야?" 하고 묻곤 한다. "비는 왜 하늘에서 내려?"하고 물었을 때 어른이 "구름이 비가 된단다"하고 대답을 하면 "왜 구름은 생겨났어? 그것이 왜 비가 돼?"하고 또 거듭 묻는다. "저 산모퉁이 바가지 엎어놓은 것 같은 것, 저게 무어야?" "무덤이란다." "무덤이 무어야?" "죽은 사람을 땅에 묻어 놓은 것이란다." "왜 사람은 죽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다 죽는단다." "사람들은 왜 나이를 먹어?" 아이들의 발견하려는 의심은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고 발전한다. 그렇다고 그 어린 것에게 사전적인 설명을 해 줄 수도 없고 과학 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설명을 해 줄 수는 없다. 그것은 아이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니까. 그럼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이에게는 어떤 해답이 필요한가. 삶의 참 모습 혹은 아름다운 순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바람이 숲속에서 버려진 빈 병을 보았습니다. "쓸쓸할 거야" 바람은 함께 놀아 주려고 빈 병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보오, 보오"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습다. - 문삼석의 <바람과 빈 병> 위의 동시에는 빈 병과 바람이 등장한다. 그것은 관계를 맺고 있다. 관계는 사귐이다. 그것들의 사귐을 알아낸 것은 아름다운 진실의 발견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살아있고, 가슴과 머리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생각하고 눈물을 가지고 있다. 논바닥 황토에 빨간 오리밥 황새 먹이하라고 빨간 오리밥 하얀 눈밭에 빨간 찔레 열매 산새 굶지 마라고 빨간 찔레 열매 -손동연의 <먹이하라고> 위의 시 두 줄에 등장하는 것은 논바닥, 오리밥, 황새들이고, 뒤의 두 줄에 등장하는 것은 눈밭과 찔레열매와 산새 들이다. 그들은 긴밀하게 관게지어 있고 그 관계는 우주의 순리를 말해 준다. 시인의 역할은 그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아이의 눈을 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시 속에 들어있는 음악성이다. 그 음악성은 아이들이 그 오리밥이나 찔레 열매를 보고 고개와 어깨를 들석거리며 노래하듯 소리쳐 대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고, 읽는 사람의 가슴으로 하여금 즐거운 춤사위를 아주 단순하게 그리며 손뼉을 치게 만든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시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동화적이고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질긴 생명력이 담겨 있다. 생각해 봅시다 1. 동화, 동시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2. 동화의 문장은 왜 단문이어야 하고 왜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야 하고 구성이 단순해야 하는가? 3. 동시를 쓰는 사람의 역할은 결국 무엇이겠는가? 4. 동화에서는 왜 경어체를 쓰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