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용어사전 <아> ● 아이러니(irony) 원래는 초기 그리스 희극의 전형적 인물인 에이런(eiron)의 말과 행동 양식에 적용되었던 용어이다. 그의 상대역으로는 또 다른 전형적 인물이 허풍선이 알라존(alazon)이 있는데, 그는 허풍을 떨면서 상대방을 속여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패배자로 등장하는 에이런은 약하고 왜소하며 교활하고 약삭빠르다. 그는 그의 힘과 지식을 숨기고 천진함을 가장함으로써 점차 알라존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 아이러니는 어떤 경우에든 이러한 원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이의 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의 두 가지 근본적인 유형에는 언어의 아이러니와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다. 전자는 비유의 일종으로, 말하는 사람이 뜻한 숨겨진 의미가 겉으로 드러내는 의미와 다른 경우에 해당하고 후자는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자신도 똑 같은 불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떠들썩하게 웃어댈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극적 아이러니는 비극적 아이러니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등장 인물이 작중의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운명과 반대의 것을 기대할 때, 등장 인물의 무지와 관객의 인지 사이에 대립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상이나 김유정 등이 이 기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 알레고리(allegory) 이 용어는 "다르게 말한다"는 그리스의 'allegoria'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이중적 의미를 가진 이야기 유형을 지칭한다. 즉,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의 유형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두 가지의 수준에서 읽히고 이해되며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용어는 우화나 비유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화는 일차적으로는 동물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이차적으로는 인간 세계를 빗대어 말하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인훈의 '태풍'에 나오는 배경은 알레고리적이다. 카프카의 '성', 호영송의 '파하의 안개', 이문열의 '들소', 한용환의 '이방에서' 등도 알레고리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 암시 소설의 서술 기법을 구성하는 한 방식으로 대체로 플롯의 발단 단계에 많이 나타나며 복선을 만들어 내는 핵심 원리이다. 소설 작품 속의 암시는 뒤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결과)을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하거나(원인), 사건이 일어난 공간(물리적 공간이든 심리적 공간이든)의 묘사나 설명을 통하여 사건의 진행 상황과 의미 따위를 미루어 짐작케 해 주거나, 등장 인물에 대한 몇 가지의 특별한 기술을 통하여 인물 구성에 힌트를 던져 주는 기능을 하게 된다. ● 액자 소설(額子小說) 소설 구성 방식의 하나로, 이야기 속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내부 이야기를 안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소설 형식은 이야기 밖에 또 다른 서술자의 시점을 배치함으로써 전지적 소설 방식에서 탈피하여 다각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갈 수 있는 이점을 안고 있다. 김동인의 '배따라기', 김승옥의 '환상 수첩'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어조(tone) 한 작가가 이야기의 서술 속에서 소설 내적 요소나 독자들을 향해 가지는 태도의 특성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즉,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개성적' 특징을 말하며, 목소리(voic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어갈 때 독자들은 작품 속의 모든 소재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묘사하고 표현한, 서술의 어느 면에나 침투해 있는 하나의 존재, 분명한 개성과 도덕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인식한다. 이것이 바로 '목소리' 혹은 넓은 의미의 '어조'이다. ● 에피소드(episode) 주된 플롯이나 중심적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 있는 이야기나 사건을 가리키는 말로, 중심적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다소 주변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한 작품의 미학적 구조를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정보의 도입, 긴장감의 완급 조절, 분위기의 전환 등의 기능을 한다. ● 역사 소설 역사를 재구축하고 그것을 상상적으로 재창조하는 허구적 서사 유형으로, 역사 소설에는 역사적인 동시에 허구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역사 소설은 과거 시대의 충실한 재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의 삶을 비추어 보는 데에 그 진지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사실적으로 복구하면서도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상력을 도입하여 허구적으로 재구성 한다. 특히, 김동인의 역사 소설이나 유주현, 박종화 등의 작품들은 역사적 소재를 통속적으로 낭만화시킨 면을 지니고 있다. 한편 역사적 흐름의 폭넓은 현재적 형상화에 비교적 성공한 작품들로는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홍명희의 '임꺽정', 김주영의 '객주' 등을 들 수 있다. ● 연대기 소설 연대기 소설이란 E. 뮤어가 플롯을 중심으로 분류한 소설 유형의 하나로, 인생 자체가 포괄적으로 드러난 일련의 소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즉, 연대기 소설은 시간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에 걸쳐 '탄생-성장-죽음'이 반복되는 인생의 순환 과정을 보여 주는 소설이다. 여기서 '시간'은 주인공의 일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순환적 시간을 말한다. 또 연대기 소설에서의 '사건'들은 긴밀하고 논리적으로 제시되기보다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의 집적물로서 제시된다. E.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김남천의 '대하' 등이 연대기 소설의 예들이다. ● 연작 소설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는 소설들이 일정한 내적 연관을 지니면서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 유형을 가리킨다.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나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는 장편 소설들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지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는 단편 소설들이 모여 연작 형태를 이룬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이문구의 '우리 동네' 등은 단편 소설들이 묶여진 연작 소설의 예들이다. ● 위기 플롯의 발전 단계 중의 하나로 사건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클라이맥스를 유발시키는 전환의 계기를 가리킨다. 이 단계에서 사건은 결정적인 분기점을 맞거나 결정적인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불안과 긴장은 최고의 높이에 이르게 된다. 위기는 단일 작품에서 한번만 나타날 수도 있고, 여러 번에 걸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단편 소설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기를 클라이맥스의 전조가 되며 뒤따르는 절정과 결말에 열쇠를 제공한다. ● 유머(humor) 우리말의 해학, 골계, 익살 등에 대응될 수 있는 말로 일종의 우스꽝스러움의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웃음은 동정과 관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냉소, 조소 등의 적의와 경멸의 감정이 담긴 웃음과는 구별된다. 유머와 좀더 적극적으로 대비되는 웃음은 풍자이다. 풍자는 적의와 경멸의 감정이 담겼을 뿐만 아니라 공격성조차도 숨긴 웃음이지만 유머는 해(害)가 없는 웃음으로 인간의 어리석음, 무지, 불완전성조차도 따뜻이 감싸고자 하는 속성을 지닌다. ● 6.25 소설 민족사에 가장 큰 비극인 6.25를 소재로 하여 씌어진 소설로서 주로 6.25의 발발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그것이 던져 준 충격과 그 극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6.25 소설은 전쟁 소설, 전후 소설, 분단 소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져 왔다. 6.25 소설은 작가의 연령층에 따라 6.25 참전 세대, 유년기 체험 세대, 미체험 세대 등으로 구분된다.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대표되는 참전 세대는 주로 피해 의식과 인간성 옹호 등 직접적인 참선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김원일의 '어둠의 혼', 윤흥길의 '장마', 이동하의 '굶주린 혼' 등으로 대표되는 유년기 체험 세대는 6.25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현재에 드리우고 있는 상흔과 그 치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으로 대표되는 미체험 세대는 6.25라는 객관적인 상황의 문제에서 벗어나 좀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6.25 소설은 그러나 제재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이후 '분단 소설'이라는 양상으로 변모,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의식의 흐름 현대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하나의 서술 기법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단순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 방식이나 세계관과 같은 문학의 본질적 문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수법을 최초로 개척한 것은 헨리 제임스이며, 그는 한 사람의 의식을 통하여 그 인물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작품을 창작했고, 그 인물을 그는 '초점', '거울' 혹은 '의식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이 기법이 사용된 소설에서는 작품 속의 모든 내용이 한 인물의 의식(즉, 그의 사상과 감정과 기억과 감각)에 부딪힐 때에만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그러므로 논리적 인과 관계가 없는 담화들이 내용 속에 뒤섞이며, 문체적 양상은 호흡이 급박하며, 작품 전체가 플롯의 발전이라든가 사건의 진전, 인물의 형상화 같은 소설의 전통적 서술 방식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은 기법의 대표작들이다. ● 의인 소설 인간이 아닌 특정한 사물에 정신과 인격을 부여하여 씌어진 소설을 일컫는 용어이다. 꽃이나 대나무 등의 식물로부터 호랑이, 여우, 거북이 등의 동물, 지팡이, 종이 등의 자질구레한 물질, 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추상적 관념조차도 의인 소설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의인 소설은 우선 고대 사회로부터 인간이 지녀 왔던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은 경우라든지 문학 작품이 지닌 현실 비판적 의식이 당대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체제 혹은 기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고 그 출구를 찾지 못할 때 많이 양산되었다. 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으로는 고대 설화의 '구토지설' 등이 있고,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등이 있다. 그 외에 김필수의 '경세종', 이기영의 '쥐 이야기', 김성한의 '개구기' 등을 들 수 있다. ● 이니시에이션 소설(initiation story) 자아와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미성숙기의 주인공이 일련의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부르는 말로, 브룩스와 워런이 '소설의 이해'에서 '살인자들', '나는 이유를 알고 싶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initiation'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소설의 한 유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원래 이 말은 인류학적인 용어로서 '통과 제의'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젊은이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생한 지식을 획득하기까지의 통과 과정을 다룬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 발견과 관련된 삶과 사회에의 적응을 다룬 작품이다. 두 가지는 모두 새로운 사실이나 악의 발견을 통해 주인공을 성인 사회로 유도해 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헤밍웨이의 '살인자들', 윤흥길의 '장마', 이청준의 '침몰선', 황순원의 '소나기' 등은 좋은 예가 된다. (→참조 : '성장 소설') ● 인과성 인과성은 이미 제시된 부분과 제시된 부분 이후 다른 부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의미 단락의 연속성을 가리킨다. 가령, "왕이 죽고 나서, 왕비가 죽엇다."라는 구절에는 '왕이 죽자 그 슬픔 때문에 왕비가 죽었다'라고 해석할 만한 암시적 의미가 개재된다. 이 경우 독자는 왕비의 죽음이 왕의 죽음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의 죽음과 왕비의 죽음간에 맺어지는 인과적 고리가 이 구절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과성은 드러난 것일 수도 있고 암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고전적인 서사물에서 사건들은 순차적인 인과 관계로 연결되어 사건의 결과들은 최종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다른 사건들에 영향을 주게 된다. 두 가지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명백히 보이지 않을 때에도 뒤에 발견될 더 포괄적인 원리를 통해 추론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서사물에서는 이야기의 지배적인 구성 원리로서의 인과성에 대한 의존이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현대적 서사물에서는 더 이상 '처음-중간-끝'이라는 일직선인 플롯의 전개를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사건들 또한 최종적인 해결 국면을 향한 인과적 고리를 취하기보다는 복잡하게 흩어진 파편화된 상황들로 제시되는 것이다. 현대 서사물에서 플롯의 기본 원리로서 인과성 대신 우발성이 강조되는 것은 현대의 삶이, 인간의 삶을 이끌어 가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가규범이 존재했다고 믿어지는 과거에 비해 매우 모호하고 파편화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인물(character)과 인물 구성 캐릭터는 작품에서 행위나 사건을 수행하는 주체, 즉 인물과 그 인물이 지닌 기질과 속성(성격)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작품을 통틀어 불변적일 수도 있으며, 점진적으로 또는 극적 위기의 결과에 따라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E.M.포스터는 인물을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로 나눈다. 평면적 인물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그 성격이 변하지 않는 채로 남아 있으며, '하나의 단일한 관념이나 특성'을 중심으로 구성됨으로써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묘사될 수 있는 단순한 성격의 인물이다. 입체적 인물은 그 성격이 변화 발전하며, 기질과 동기가 복잡하여 작가는 미묘한 특수성을 지닌 묘사를 하게 된다. 인물을 분류하는 또 다른 준거로서 전형적 인물과 개성적 인물을 들 수 있다. 전형적 인물은 미리 규정된 범주의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 한 사회의 집단적 성격을 대표하며 성격의 보편성을 내포한다. 반면, 개성적 인물은 사회의 집단적 성격과 대립하는 혹은 적어도 그와 구별되는 예외적 기질을 갖춘 인물이다. 채만식의 '태평 천하'의 윤 직원 영감이나 염상섭의 '삼대'에 나오는 조의관 등은 전형적 인물에 속하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이명준 등은 개성적 인물에 속한다. 인물 구성 방식은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로 구별되는데, 전자에서는 작가 자신이 등장 인물의 행위나 심리적 동기, 혹은 그의 기질적 특성을 묘사하고 평가하기 위해 자주 작품 속이나 인물의 내부로 개입한다. 후자의 경우 작가는 등장 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차분하게 관찰하여 제시하기만 할 뿐, 그들의 내면에 개입하거나 그들을 주관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9교시 :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글, 논설문 - 빈틈없는 설득력 발휘하라. 1. 논설문은 혼자서 즐기기 위한 글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려 나간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세상 일이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서 이따금 우리는 그 힘겨운 마음을 글에 담아 보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타날 수 있다. 나의 어렵고 고단한 마음을 그저 담담하게 뱉어 내 놓는 수필이 될 수도 있고, 상대편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기 쉽게 풀어서 일러주는 설명문이 될 수도 있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는 논설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나와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상대편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묘한 마력을 지닌 글이 바로 논설문이다. 논설문은 우리가 매일같이 받아보는 신문의 사설이 대표적인다. 그래서 인지 오래전 영국의 한 신문사 주필은 이렇게 호언 장담 했다. "내가 붓을 들면, 우리나라 내각을 3일안에 넘어뜨릴 수도 있고 새로 세울 수도 있다." 또 옛날 중국 위나라의 문제라는 임금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글로써 어떤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한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업무이다." 이 이상으로 글의 위력을 강하게 나타낸 말이 또 있을까? 이 말은 곧 산을 밀어다가 바다를 메우게 할 수도있고, 짙푸른 뽕나무 밭을 시퍼런 바다로 변하게 할수도 있고, 개펄 한가운데로 길을 내고 그 곳에 비행장이 들어앉게도 할 수 있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상을 환히 밝히고 있는 해의 빛을 가릴수도 있다. 이렇게 위대한 힘을 지닌 글 가운데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논설문이다. 논설문은 문학적인 글, 즉 시, 소설, 수필, 희곡들 처럼 혼자서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에 취하거나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편에게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펼쳐 보여서 설득을 시키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설문을 쓸 때는 반드시 그 글을 읽을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느 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을 소풍을 가야 하는데, 도무지 적당한 장소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자는 사람, 강으로 가자는 사람, 놀이 기구를 타러 가자는 사람...... 옹기종기 모여 앉은 45명의 생각이 제각기 달라서, 과연 어디로 가야 사람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45명의 학생이 45갈래로 갈라진 채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목청을 돋우니, 그 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담인 선생님이나 반장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45명의 의견을 모두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 구성원 하나하나의 자질구레한 의견이나 주장들을 과감히 잘라버릴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먼저 여러 가지 의견 중에서 가장 옳다고 판단되는 주장을 앞으로 내세운 뒤, 왜 그것을 택해야 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뜻이 한 군데로 모여 커다란 물줄기(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만일 그 반에서 내는 학급 신문이 있다면, 그 신문에다 글을 기고해서 '우리의 입장과 사정이 이러이러하므로, 우리는 이러한 곳으로 소풍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고 밝히는건 어떨까?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호응을 얻어낸 다면, 일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이러한 일은 비단 학교의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 한 국가, 전 인류의 경영에 있어서도 여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론을 조사하는 데는 논설문의 힘이 꼭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논설문은 여론(그 큰 물줄기)을 만들어 내는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봉에서 이끌어 가는 구실까지 도맡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논설문은 '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고, 질서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을 지닌 글'인 셈이다. 2. 논설문을 쓰기 전에 논설문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서, 다른 사람들이 그에 동조하도록 설득하는 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논설문은 다른 글과는 다르게 유념해야 할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주장할 관점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근거나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읽는 사람을 설득 시킬 수가 없다. 둘째, 논설문의 주제, 즉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뒷밭침하는 근거(논거)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장하려는 바가 힘을 얻어, 상대편을 강렬하게 끌러 당길 수 있다. 셋째, 논설문에서는 대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루어 지므로, 참신하고 독창적인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든가, 특정한 시기에 해당하는 문제, 또는 자신이 다루기에 너무 벅찬 문제들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넷째, 논설문은 그 목적이 분명한 글이므로, 내용을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전개해야 한다. 만일 말하려는 논지가 흐트러지게 되면, 다른 주장이 끼여들 틈을 내줄 뿐 아니라 내 글이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견해까지 신빙성을 잃게 된다. 다섯째, 논설문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객관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 게 아니라, 가능 한 많은 사람들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고 책임을 다하려는 열의가 담겨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여섯째, 시나 소설,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수사법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논설문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포장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논설문 들은 딱딱하고 건조한 경향을 띠고 있다. 3. 논설문은 어떻게 써야 하나 자, 그러면 이번에는 논설문을 실제로 써 나갈 때, 나의 주장이나 의견을 어떤 짜임새로 엮어야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할 수 이쓴지 알아보도록 하자. 잘 알다시피 논설문은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띠는게 일반적이다. (1) 서론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로, 서론에서는 글을 쓰는 동기와 목적을 밝힌다. 말하자면 앞으로 내가 주장할 바(논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명제 형식으로 나타난다. 가령,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이다'와 같은...... 이러한 명제는 논설문의 뿌리 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명제에 따라, 사람들은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이다'라는 주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고 '대원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으니까, 그 다음에 무엇 때문에 그러한 명제를 설정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시각과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 나갈 것인지를 읽는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2) 본론 본론은 논설문의 한복판이라 할 수 있다. 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서론에서 내세운 논지에 대해, 이론적인 근거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나 의견에 반대 입장을 취하거나 의심을 품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내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요컨데 논증을 하는 단계이다. 논증은 아직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어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인용하거나,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의 의견을 비교해 보이는 것도 괜찮다. 논증은 반드시 갈등 대립을 전제로 한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양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갈등 대립을 풀어 나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논증의 방법으로는 크게 귀납법과 연역법을 들 수 있다. 1) 귀납법 사람은 죽는다, 새도 죽는다, 물고기도 죽는다. 나무도 죽는다...... 구체적인(특수한)사실 사람, 새, 물고기, 나무는 모두 생물이다. ...... 공통점 그러므로 생물은 모두 죽는다. ...... 일반적인 원리 귀납법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실(특수한 사실)들을 모아 비교하고 검토한 뒤, 그 속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공통점)를 끌어내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사실(논거)들이 다양하고 풍부히 제시되는 것이 좋다. 물론 하나하나 제시되는 논거들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2) 연역법 천하를 호령하는 자는 영웅이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믿고있는 일반적인 원리나 법칙을 근거로 내세워, 개별적이고 특수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대전제와 소전제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전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가 되어야 하며, 소전제는 대전제와 결론을 논리적으로 이어주는 구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대전제와 소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일끌어지는 것이 옳다. 3) 결론 결론은 본론에서 전개해 온 논지를 매듭짓는 단계이다. 서론에서 제시했던 문제와 대조하여 다시 한 번 논지를 간략하게 언급한 다음, 본론에서 제시된 논거에 따라 나온 결과를 종합하고 판단하여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 결론은 되도록 간결하게 적는 것이 좋다. 결론이 너무 길어 지루함을 자아내거나 본론에서 한 말을 자꾸만 되풀이 하는 것은, 본론에서 자기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번에는 독자가 보내 온 글들 중에서 두 편을 차례로 감상하겠다. (1) 만인의 행복과 평등한 삶의 질을 이룩하기 위해 인류는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확립했다. 이에 상반되는 '민주주의'도 역시 평등한 권리와 정의 실현을 위해 만들어 지게 되었다. 비록 정치의 수단과 방법은 서로 틀릴지라도 추구하는 목적은 같은 셈이다. 하지만 지금 이 정치 체제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강제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지상낙원'을 만들려했던 공산주의'는 결과적으로 목적도 채 달성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지금은 겨우 '공산주의'의 잔재들만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민주주의'는 거의 같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념으로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예에서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기에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수단과 방법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마지막에 미소짓는 자가 승자이다'라고 하지만, 그가 미소지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감히 웃지 못할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만 했을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최고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를 훌륭하다고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필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다고 본다. 요즈음 처럼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목적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 나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완벽한 수단과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성수대교 참사를 예를 들어 보면(성수대교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빠른 완공만을 목전에 두고서 부실 공사로 지었기 때문에 재시공 해야 했던 반면, 선진국에서는 100년 된 다리도 아직 튼튼하다고 한다.(성급한 완공만을 목전에 두고서 부실한 공사로 다리를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참사를 겪은 데다, 그것을 헐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하는 부끄러운 일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가 100년된 다리도 아직 튼튼하다고 하지 않던가. 왜 그러한 일이 생겨난 것일까. 아마도 목적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차이점이 바로 국민 수준과 경제 향상등을 판가름 하는 것이 아닐까? 수단과 방법을 뒷전으로 한 채 결과로만(미리 설정해 놓은 결과나 목적만을 향해서) 질주한다면 결코 좋을 수 없다는 사례는(사례들이) 우리 주변에서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결과를 내는(좋은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에 비유해 보면, 식없는 계산 같은 것이다.(그것은 수학에서 식 없는 계산하고 똑같은 것이다.) 식없는 계산은 틀리기가 쉬울뿐더러 정확한 신용도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없는 결과가 낳은(그렇다면 좋은 수단과 방법을 무시한) 결과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참된 노력을 가진 인간성의 상실이다(참된 노력을 하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결과만을 얻기 위한 과정은(참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없으므로). 둘째, 언젠가는 피해를 입게 된다. 성수대교의 예 처럼 우리가(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접)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를 보아 얼마나 근거 없는 결과가 얼마나 해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이를 두고 볼 때 근거 없는 결과가 얼마나 많은 피해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우리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 하더라도 발전하려는 노력이 탄탄한 힘의 원인이 되어 오늘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오늘날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로 급성장 했다 할지라도, 그렇게 발전하려는 탄탄한 노력(수단과 방법)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수단과 방법에 노력함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목적 달성에는 완벽한 원인이 필요하다고 본다.(생각한다.) 생각해 봅시다. 1. 논설문과 설명문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 2. 논설문의 짜임새에 대해 설명해 보자.
송양지인(宋襄之仁) / 지나치게 착하기만 하여 권도(權道)가 없음을 이르는 말. 《出典》'十八史略' 卷一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 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보가 위(位)에 올라 양공(襄公)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 643), 춘추(春秋)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覇者)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公子) 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宋), 제(齊),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目夷)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禍根)'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河南省)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全軍)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숫적으로 열세(劣勢)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되어 이듬해 죽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송나라 양공의 인(仁)'이라며 비웃었다.(世笑以爲宋襄之仁)
Board 고사성어 2022.07.07 風文 R 1067
‘나이’라는 숫자 꽤 오래전 어느 정치인이 너무 고령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답변했는데 그의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불필요하게 서로의 나이를 숫자 이상으로 따진다는 점을 반성해볼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비합리적인 문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신문 기사에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늘 밝혀왔다. 요즘에 와서는 유명인사나 공직자들의 이름에는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이런저런 사건·사고에 얽힌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꼬리표처럼 달린다. 연예인이나 체육인과 같은 인기인들의 나이도 자주 공개된다. 1980년대 초에 독일에서는 매우 세밀한 정보를 묻는 인구조사를 하려다가 거센 반발에 취소된 적이 있다. 종교를 묻는 항목에 ‘유대교’라는 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과거를 잊지 않고 있는 독일 국민들에게는 대단히 황망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나이 같은 불필요한 정보가 노출되면 당연히 불필요한 감성이나 고정관념 따위가 생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이는 알아보지도 말고 묻지도 못할 사적 정보로 규정해야 한다. 합리적인 조직에서는 나이나 고향이 아닌 경력이나 업적만을 근거로 공무를 처리하는 게 옳다. 특히 상대방 나이를 묻고 자기 동생 같다는 둥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둥 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악습이다. 서류에서도, 면접에서도 나이 정보를 삭제하고 대화에서도 나이를 묻거나 연상시키는 화법을 교양에 어긋난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언어 교양’을 성취하지 않은 채로 ‘4차 산업혁명’ 입문은 우리 한국어 사용자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 친정 언어 한국인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이른바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된 지도 제법 많은 세월이 지났다. 특히 초기에는 이러한 형태의 혼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켜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이제는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결혼 형태’가 된 것이 틀림없다. 한국에 시집온 외국 여성들을 ‘결혼이주여성’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도 많이 거론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주로 개별 ‘가정사’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공공의 개입도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한국어 교육 서비스도 다양하게 제공되면서, 아직도 불편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초창기의 막막하던 언어 소통의 문제는 꽤 나아진 편이다. 모든 일이 한 걸음 나아지면 그다음 걸음이 생각나는 법이다. 그 여성들은 낯선 땅에 와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시집살이’를 했다. 그리고 쉽지 않은 ‘시댁 언어’를 배우고 어른들을 모시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활성화시켜 줄 차례가 되지 않았는가? 이미 개인적으로 ‘처가 언어’를 배워 소통하는 사례도 있으나 우리의 공공 부문이 이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방송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제공되지만 그 외의 ‘친정 언어들’로 된 방송은 찾을 수 없다. 아리랑 방송국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영어로 방송한다. 한국방송(KBS)처럼 아리랑 방송도 제2 방송을 차려서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이주여성들에게 그들의 고향 언어로 문화적 욕망을 채워 줄 수 없을까? 자잘한 고국 소식은 이미 사회적 통신망을 통해서 쉽게 접하고 있을 것이고, 이에 더해 한국 사회 전반이 돌아가는 형세와 한국인으로서의 삶의 현장 정보 등을 고향 언어로 전달받는다면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가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자신의 ‘친정 언어’를 통한 공공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현대소설용어사전 <사> ● 사건(acting) 소설 속에서 발생하고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소설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대체로 사건은 '스토리 라인(story line)' 상에서 다른 사건들과 결합하는 '연속'의 방식을 가지고 일어나며 인물들의 행동을 유발한다. 사건에는 선택적 행동을 전진시키는 '핵심 사건'과 그 행동을 확대, 확장, 지속, 또는 지연시키는 '주변 사건'이 있다. 가령, 전화 벨이 울린다면, 이는 받거나 받지 않아야 할 행동을 선택하므로 핵심 사건이며, 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인물이 머리를 긁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것 등은 핵심 사건을 보조하므로 주변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 사 소설(私小說) 일본의 근대 소설에서 나타난 독특한 형태를 일컫는 말인데, 보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유형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형태로, 자신들의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운 상념까지도 드러내 놓고 거기에서 일종의 자학적 쾌감을 누리는 유형이며, 두 번째로는 작가의 감춰진 죄악을 까발리는 대신에 사소한 신변사의 의미를 반추하는 일에 집중하는 유형으로 '심경 소설'이라고도 말한다. 이러한 사소설은 역사적으로 보면 서양 리얼리즘의 일본적 변형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30년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안회남의 '투계', '탁류를 헤치고',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 '춤추는 남편', '제퇴선' 등이 대표적이다. ● 사실주의(realism) 단순히 문예 사조적인 개념으로만 한정시켜 말할 때, 사실주의는 특별히 프랑스의 발자크나 스탕달, 영국의 조지 엘리어트 등의 소설과 관련하여 19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난 문학 운동을 지칭한다. 흔히 낭만주의와 상반되는 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이전의 문학 양식들이 이상화된 현실, 즉 우리가 바라는 현실을 그리는데 반하여 있는 그대로의 현실, 즉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정확히 모방하려는 태도를 지닌다. 그러나 문학이 근본적으로 현실을 단순히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으로 재구성해 낸다는 점과 관련시켜 볼 때, 사실주의는 작가의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모든 문학은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사실주의의 포괄성을 보다 한정하기 위하여, 비판적 사실주의, 환상적 사실주의, 낭만적 사실주의, 변증법적 사실주의 등으로 세분되는 것이다.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창작 정신의 근간으로 하는 창작 방법을 일컫는 용어로, 이는 단순히 현실의 재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운동 전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실천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이 공식적인 방법론으로 채택된 것은 1934년의 소비에트 작가 총연맹 제1차 대표자 회의에서였으며,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서 '혁명 운동의 상승하는 노선'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주요 원리는 당(黨)에 입각해야 한다는 당성, 현재 속에서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낙관적 전망 등이다. 우리 나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백철의 '문예 시평'에서였으며, 1935년 카프 해산을 전후로 이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 서간체 소설 서간체 소설은 자기 고백적 서사 양식으로서 자기 감정을 투사하여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소설 속에 한두 편의 편지가 수록된 것은 서간체 소설로 부르지 않으며, 사건의 제시와 전개가 주로 작중 인물간에 주고받는 편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소설만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루소의 '신엘로이즈' 등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이광수의 '어린 벗에게', 최서해의 '탈출기' 등이 있다. ● 서사, 사사물, 사사 문학 서사는 일차적인 의미로 '사건의 서술'을 뜻하는데, 서사의 형식은 다양하고 그것이 의존하는 매체 역시 그러하다. 즉, 서사의 종류는 소설, 서사시, 극, 신화, 전설, 역사 등의 언어적 사사물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발레, 오페라 등의 비언어적 서사도 포괄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문학적 서사에 국한된다. 서사의 필수 불가결한 두 가지 요건은 이야기의 내용과 이야기하는 화자로, 서사는 사건이라는 내용과 서술이라는 형식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다. 서사물은 서사 행위의 결과, 일련의 현실, 또는 허구적 사건들과 상황들을 시간 연속을 통해 구성해 낸 것이라고 규정한다. 서사 문학은 허구적 서사물을 지칭하는데,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작용하여 기존의 사건을 새롭게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사건을 가공해 내는 허구의 과정을 거친 서사물을 의미한다. ● 서정 소설 소설 속에서 서정시를 가능케 하려는 의도로서, 어느 작가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미적 형상화의 욕구가 낳은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산문 서사, 특히 소설의 필연적 한계인 허구와 실제와의 괴리를 서정시가 지니는 강력한 이미지 결합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두 양식의 통합과 보완을 꿈꾸는 것이 서정 소설의 주요한 본질이 된다. 서정 소설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인물이나 사건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이미지의 음악적, 회화적 디자인과 같은 서정적 요소와 결합시킨다는 데에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서정 소설의 대표적 유형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최근작으로 양귀자의 '숨은 꽃',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성장 소설 성장 소설은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한 인물이 겪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과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들을 지칭한다. 지적, 도덕적,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 혹은 소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가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문화 인류 학자나 신화 비평가들은 '통과 제의', '통과 의례', '성인 입문식' 등의 용어로 표현한다. 그 대표적 유형의 작품으로 헤세의 '데미안'이 있다.(→'이니에이션' 항을 참조할 것) ● 소설 사회학 일반적으로는 사회학적 관점과 통찰을 통하여 소설 문학과 사회 상황과의 상관 관계를 규명하려는 문학 연구의 입장을 통칭하지만, 좁게는 루시앙 골드만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소설 형식의 사회학적 연구'를 가리킨다. 루시앙 골드만의 주요한 입장은,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과 시장 사회 내에서의 인간과 상품간의 일상적 관계, 나아가서는 인간들과 다른 인간들간의 일상적 관계 사이에 엄격한 상동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과 재물과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관계는 생산이 미래의 소비에 의해서, 물건의 구체적인 품질에 의해서, 즉 '사용 가치'에 의해 지배되는 관계이고, 지금의 시장 생산을 특징짓는 것은 '교환 가치'라는 매개와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소설 속에서 의식적이고 표면적인 차원에서는 교환 가치, 즉 '타락한 가치'를 지향하는데, 여기에 '문제적 인간'이 사용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괴리 관계 속에 빠진다는 것이다. 소설 사회학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구조화해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어떻게 그 구조 속에서 발생하고 상호 관계하는지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수사(rhetoric) 수사란, '공중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애초헤는 법정이나 대중 집회의 변론이 주를 이루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상투적인 주제나 제목을 가지고 청중에게 연설하는 어조나 태도를 취하는 문학 작품을 가리켜 '수사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문학 비평의 영역에서는 작가가 그의 독자들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유도하는 모든 기교를 포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사란 작가의 말의 기술과 재치를 가장 명백하게 나타내는 문체적인 특성과 말들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 스토리-라인(story-line) 구조 사학자들이 설정하고 있는 이야기의 단위 중 하나로, 핵심 사건과 주변 사건들은 서로 결합하여 소연속을 이루고 서로 결합하여 대연속을 이루며 대연속은 다시 결합하여 완전한 스토리를 형성한다. 사건들이 결합하여 단위가 커지면서 스토리를 형성해 가는 원리는 시간덕 연속과 인과 관계에 의해서이다. 스토리-라인은 대연속과 전체 스토리 사이에 놓인 중간 단위를 지칭하는데, 서사물의 구조를 형성하는 필수적 단위라기보다는 전체 스토리의 분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편의적 단위이다. ● 시점(point of view) 소설의 요체는 이야기의 제시이기 때문에 이야기 전달자(화자, narrator)가 있어야만 한다. 이 이야기 전달자가 작품 속의 내용을 바라보는 위치가 시점이다. 화자가 작품 안에서 소설의 내용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1인칭 시점이 되고, 화자가 작품 밖에서 소설의 내용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3인칭 시점이 된다. 그 시점들은 또한 몇 가지로 구분이 되어 나타나는데, 1인칭 시점에서 화자가 '나'이면서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주인공 시점', 화자가 '나'이면서 사건에 대한 단순한 보고자인 경우에는 '관찰자 시점', 화자가 '나'이지만 주된 인물은 아닌 경우는 '참여자 시점'으로 나누고 있다. 3인칭 시점은 화자가 문맥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작품 내용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마음대로 그 정보를 사용하는 '전지적 시점'과 화자의 개입을 최대한 막으면서 극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관찰자 시점', 그리고 현대 소설에 와서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시점으로서 등장 인물들의 의식을 중심으로 소설 속의 내용이 서술되는 '제한적 시점' 등이 있다. ● 신소설 신소설은 근대적 서사 양식으로 나타난 우리 나라 소설 유형의 하나로, 이 명칭은 정착된 장르를 가리키는 것이기보다는 조선조 소설과 근대 소설 사이의 과도기적인 서사 양식인 개화기 소설의 하위 분류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신소설의 주된 특징은 개화기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그 같은 격변기 속에서 개화와 독립, 계몽 사상에 입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하는 데 있다. 특히 개화 사상은 신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주제로서 신교육을 통한 서구 문물의 수용, 봉건적 인습과 미신의 거부, 신분 차별과 남녀 차별에 대한 비판, 그리고 억압적인 가부장 제도에 대한 반발로서 자유 연애관, 자유 결혼관 등으로 표출된다. 신소설의 일반적 특징은 고소설에서 쓰이던 상투어들이 극복되고 있으며, 지문과 대사가 구별되어 사용되면서 구어체 문장으로 이행되었다는 점과 일상적 어휘들이 자유롭게 구사되고 평면적이던 구성 방식이 역행되거나 뒤섞이는 입체적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 '귀의 성', '치악산' 등과 이해조의 '자유종', '춘외춘', 최찬식의 '추월색', '능라도' 등이 있다. ● 실존주의 소설 인간과 세계의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불합리성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을 바탕으로 씌어진 소설의 의미하는 용어로, 좁게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했던 철학적 성향의 문학들, 특히 사르트르와 카뮈의 문학을 지칭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에게 부여된 어떠한 절대적인 선험적 가치도 거부한 채 유동적이고 유한한 삶 그 자체에 현존을 문제 삼았던 문학들 모두를 지칭한다. 개인적 영향 관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실존주의 소설은 대개 현대 세계의 커다란 정신적 흐름 둥 하나인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 아래 성장한 것이다. 실존주의는 고통과 불안, 애증 등의 복잡하고 상반된 감정과 본능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의 양상에 접근함으로써 사유와 감각 및 행동간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욕망에 그 철학적 사유의 바탕을 두고 있다.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로는 키에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등이며, 이러한 철학적 인식을 작품 속에서 표현함으로써 실존주의 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작가로는 사르트르, 카뮈를 꼽을 수 있다. 사르트르는 "삶이란 근원적으로 모호한 것이며 인간은 어떠한 본질적 가치도 지니지 않은 완전한 무(無) 속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구토', '자유의 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등이 있다. 카뮈는 "세계는 부조리하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대하여 반항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는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페스트' 등의 작품을 남겼다. 우리 나라에서 실존주의에 대한 인식이 유행처럼 문학 속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였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의 체험과 가치관의 상실로 이어지는 전후의 황폐한 현실 속에서 실존적 불안 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작가들에게 새로운 지적 출구를 제공해 주었다. 대표작으로는 장용학의 '요한 시집', '원형의 전설', 손창섭의 '공휴일', '낙서족', 오상원의 '유예', '백지의 기록' 등이 있다. ● 심리 소설 소설에서 심리적 측면이 드러나지 않는 소설은 없다. 그러나 심리 소설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심리가 드러나거나 표현된 소설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의식이 아닌 의식의 좀더 깊고 넓은 영역, 프로이트적 용어로 '무의식'의 영역을 다루며 그것들을 주도적으로 표현하는 소설을 지칭한다. 심리 소설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로서 그는 인간 심리의 깊은 영역, 즉 프로이트적 용어로 '이드(id)'나 '초자아(super ego)'에 속하는 부분들을 독백이나 대화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여 준다. 그의 뒤를 이어 에드가 앨런 포우,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등이 있다. 심리 소설의 형태가 가장 발전되고 극단화된 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한 작가들에 와서이다. 우리 문학에서는 이상의 '날개', '종생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8교시 의문점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설명문 - 남이 잘 모르는 사실을 알기 쉽게 일러 줘라. 1. 묘사하기와 설명하기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가 한 생각(사고)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에 대해 늘 생각해 온 사람은 예술적인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고 논리적인 생각을 늘 해 온 사람은 설명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이제 막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어느 교외의 강변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 와 여자가 손을 꼭 잡은 채 다정스레 거닐고 있었다. 남자는 천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고, 여자는 국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 때 마침 하구쪽의 강굽이 뒤쪽에 있는 산등성이에서 샛노랗고 둥그런 달이 떠올랐다. "아유! 저 달좀봐. 영락없는 은쟁반이네, 어쩌면 신의 거대한 얼굴처럼 신비하고 인자하고 후덕해 보이기도 하고...... 자기와의 만남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아." 여자가 달을 보고 이렇게 감탄하자, 남자가 대답했다. "달은 지구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위성이니까.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천체 중에서 우리들하고 가장 가깝게 이웃하고 있는 별이지. 지구와 평균 384000킬로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거든 그 반지름은 지구의 약 4분의 1쯤 어쨌든 달은 지구에 아주 강한 인력을 미치고 있는게 사실이야, 바닷물로 하여금 밀물과 썰물이 지게 하고, 때로는 태양빛을 가려서 일식 현상이 일어나게도 하잖아. 그뿐이 아니야, 달의 인력은 우리 몸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기분을 명랑하게도 하고 우울하게도 해"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가슴속에 밀려들었던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저렇게도 멋이 없을까? 하지만 여자는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달 저쪽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구름장들을 가리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은색 달빛을 머금은 저 구름 좀 봐, 거죽은 거무칙칙한 석류 껍질 같은데, 저 안쪽은 솜사탕 같기도 하고 복숭아 속살 같기도 하네. 우리 둘이서만 저 속에 들어가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 여자가 꿈을 꾸듯 다시 환상적인 말을 하자, 남자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늘어 놓았다. "수증기를 많이 포함한 공기가 식어서 이슬점(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가 냉각되어 응결하기 시작할 때의 온도)에 도달하면, 수증기가 포화되어 물방울로 변해, 구름이란 그렇게 해서 생긴 물방울이나 그 물방울이 얼어서 생긴 얼음 알갱이가 한데 모여서 떠 다니는 걸 가리키는 거야. 그 얼음 알갱이에 수증기가 달라붙어서 커지면 무거워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거든 그것이 지표묜 부근의 따뜻한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녹으면 비가 되고 녹지않고 떨어지면 눈이 되는거고...... 구름에는 새털구름(권운), 비늘구름(권적운), 면사포구름(권층운), 양떼구름(고적운), 안개구름(충운), 뭉게구름(적운), 소나기 구름(적란운) 따위가 있다는건 알고있지? 그런데 저 속에 들어가 살자고? 구름속의 온도가 얼마인지 알고나하는 말이냐? 적어도 영하 20도는 될꺼다. 여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떤 차이점이 발견되는 것을 알 수있다. 여자는 이것저것 비유까지 해 가면서 달이나 구름이 풍기는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 내 보이고 있는 반면에, 남자는 마치 과학 선생님이 달이나 구름의 원리를 설명해 주실 때 처럼 지식을 주로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서 여자가 이야기한 것, 즉 어떠한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듯이 나타내는 방법을 묘사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가 이야기 한 것, 즉 다른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기 쉽게 풀이해 주는 방법을 설명이라 한다. 말하자면 묘사는 어떤 대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 시키는 글쓰기 방법이고, 설명하기는 어떤 대상을 논리적으로 풀이하는 글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이번에는 설명하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2.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쉽게 풀어 준다. 설명문이란 어떤 사실이나 지식 정보에 대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글이므로 읽는 이가 글의 대상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설명하려는 대상과 연관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주도 면밀하게 정리하여 두는 것이 좋다. 글을 쓰는 사람이 읽는 이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며 또 읽는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의문점들을 정리할 때는, 우선 우리들의 삶을 중심으로 가닥을 잡아 가는 것이 좋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말하자면 '왜' '어떻게' 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왜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이유)와 그것이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하는가(방법) 하는 것 등등...... 그렇다면 그러한 의문점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인지, 서울대 권영대 교수가 정리한 것을 함께 보도록 하자. (1) 그것은 무엇인가?(종류) (2) 그것은 어떤 뜻인가?(의미) (3) 그것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가치) (4)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조직) (5) 그것은 어떻게 생겼는가?(형태) (6) 그것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기능) (7) 그것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이유) (8)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방법) 이처럼 어떤 대상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잘 정리한 다음에는 차근차근 글을 써 나가야 한다. 그러면 위의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사람'에 관한 설명문을 한번 써 보도록 하자. 사람은 영장류의 사람과에 속한 동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동물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유 능력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곧 사람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며,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종류).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단지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 일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또한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저 먹고 사는데만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가슴속에 끔과 이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이루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할까? 곧 들판에 널려있는 곱디고운 꽃들처럼, 각자 자신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 내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해 나가고 싶어 한다고 보면 되겠다(가치) 그러나 아름다운 세상은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한송이 한송이의 꽃들이 모여 드넓은 꽃밭을 이루듯이, 사람도 각기 다른 한 사람 한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즉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만들어 서로 돕고 위하면서 살아간다는......(조직) 또한 사람은 두뇌가 매우 발달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두 다리로 직립 보행을 함으로써 두 손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형태). 그래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문명과 문화를 이루어 내었고, 그 문명과 문화를 바탕으로 지구 위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또 우주를 경영한다.(기능) 그래서인지 사람은 자연의 일원이면서도, 끊임없이 자연을 파헤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도 위협하는 물건(과학적인 발명품)들을 쏟아내 놓곤 한다. 가령 원자탄이나 핵 발전소, 농약, 가스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생된 공해들 때문에 사람에게는 암이나 백혈병 같은 고치기 힘든 병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이유) 이제 사람들은 자기가 자연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숙연히 꺠닫고, 개척이라는 미명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겸허해 져야 한다. 과학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된다는 생각이나 자기 만족이 조금 강하다 해서 약한 민족을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환경을 생각할 때이다.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공해를 줄여야 한다. 지구가 더러워지면 결국은 사람의 존재까지도 소멸되고 말 것이다.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폐수로 죽어가는 강과 바다를 살리고, 우리들의 숨통인 대기를 맑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방법) 3. 설명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붙잡아라. 막상 글을 써 보려고 하니까 생각만큼 잘 써지지가 않을때가 많다.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설명문을 쓰기 위한 내용을 준비한 것이라고 치고, 이번에는 설명문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애 하는지 그 방법에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설명문은 처음, 중간, 끝으로 구성하는게 좋다. 즉 설명할 대상에 대해 먼저 소개한 다음, 대상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설명할 대상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어떤 사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설명할 대상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니까. 둘째,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설명문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므로, 글쓴이의 주장이나 주관적인 느낌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셋째,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써야 한다. 문장이 길면 이해하기가 어렵고, 뜻이 모호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여러 가지 설명 방법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설명 방법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읽는이가 좀더 쉽게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설명 방법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1) 정의 글을 쓸 때는 대개 그 글에서 다루게 되는 대상을 첫머리에 밝혀 놓는 것이 보통이다.그 때, 글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개념의 내용, 성격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 주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 정의는 대부분 'A 는 B이다'와 같은 형식으로 나타난다. 1) 설명문은 읽는 이가 알지 못하는 사실에 관하여 알기 쉽게 풀어 쓴 글이다. 2) 바다는 지구상에 짠물이 괴어 있는 넓은 곳으로, 지구 표면적의 약 70.8%를 차지하며, 그 넓이가 3억 6천 1백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3) 달팽이는 달팽잇과의 연체 동물로 나선형의 껍질을 지니고 다니며, 암수 한몸으로 난생(알을낳아 새끼를 까는 일)이다. (2) 비교와 대조 어떤 사물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에 다른 사물을 견주어 말하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을 서로 견주다 보면, 그 둘 사이에서 비슷한 성질이나 서로 반되되는 성질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그 공통되는 성질이나 유사점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비교라고 한다. 또 상대되는 성질이나 차이점을 들어 사물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을 대조라고 한다. 1) 희곡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표현 수단이 언어를 매개로 한 문학의 한 분야이며, 일정한 인물과 사건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다를 바가 없다. 2) 희곡은 일정한 무대 위에 상연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 지는 것이므로 공간적인 제약이 강한데 반해, 시나리오는 장면 전환이 자유스러워 과거와 미래, 미래와 과거가 짧은 시간 내에 제시될 수도 있다. 아무리 먼 거리의 장면이라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1)은 희곡과 소설을 견주어 그 둘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반면에 2)는 희곡과 시나리오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여 그 둘의 특성을 분명히 밝혀 보이고 있다. (3) 구분과 분류 어떤 사물의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을 어떤 기준에 따라 나누어 버리기도 하고 유사한 것들과 묶어 보기도 해야 한다. 가령 문학을 크게 시, 소설, 수필, 희곡으로 나누기도 하고, 일기나 편지, 독후감, 기행문, 등을 수필이란 장르로 묶기도 한다. 이때 큰 항목을 작은 항목들로 나누는 것을 구분 이라 하고, 작은 항목들을 특성에 따라 한데 묶는 것을 분류라고 한다. 1) 속씨식물은 싹틀 때 배에서 나오는 떡잎의 수에 따라 외떡잎 식물과 쌍떡잎 식물로 나눈다. 한 장의 떡잎이 나오는 외떡잎 식물에는 강아지풀, 보리, 옥수수, 붓꽃 등이 있고, 두 장의 떡잎이 나오는 쌍떡잎 식물에는 민들레, 무궁화 제비꽃 등이 있다. 2) 조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 등은 모두 척추를 가지고 있으므로 척추동물에 속한다. 여기서 1)은 잘게 쪼개어 나가는 것이므로 구분이라 할 수 있고, 2)는 낱낱의 것에서 공통되는 특징을 찾아 한데 모았으므로 분류라 할 수 있다. (4) 분석 어떤 사물이나 개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리기 위해서는 그 구성요소들을 하나하나 나누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어떤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일일이 나누어 보는 것을 분석이라 한다. 소설은 길이에 따라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 콩트로 나눌 수 있다. 위의예문이 구문이라면, 1) 사람은 정신(혹은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정신은 마음이나 생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저 혼자서는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육체라는 틀 속에 담겨 있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한편 외형상으로 사람을 지탱하게 해 주는 육체는 대략 머리, 몸통, 팔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는 사고의 기능을 담당하며, 몸통은 심장과 위, 간, 대장, 소장, 신장, 방광 등 여러 가지 기관을 통하여 배설과 생식 기능을 맡고, 팔다리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잎은 대부분 녹색을 띠며 잎새와 잎자루로 되어 있는데, 잎의 기본적인 내부 구조는 어느 것이나 대체로 비슷하다. 겉에는 표피가 있고, 그 밑에는 세포가 빽빽하게 많이 모여있는 책상 조직과 세포가 엉성하게 모여있는 해면 조직이 있다. 책상 조직은 엽록체가 많아 진한 녹색을 띄며, 잎의 뒷면 표피에는 많은 기공이 있다. 이것이 분석이다. 4. 뱀장어가 민물과 바다를 왕복하는 이유는? 설명문 쓰는 요령을 충분히 터득했다면, 이제 잘 쓰여진 설명문 한 편을 읽어 보도록 하자. 민물고기는 바다에 살 수 없고, 바닷물고기는 민물에서 살 수 없다. 바닷물고기는 바다의 짠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염세포가 발달하여 바닷물에서 살 수 있고 민물고기는 몸속으로 들어오는 물을 걸러 낼 수 있는 신장이 발달되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을 왕복하며 사는 뱀장어나 연어와 같은 물고기는 민물에서 살 때는 신장이 발달하고, 바다로 갈 때가 되면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고 염세포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러한 생리적인 기능의 변화는 어떤 물고기나 가능한 것은 아니며, 뱀장어나 연어류도 일생에 두 번 밖에 가능하지 않다. 민물에 살던 뱀장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로 갈 때가 되면 몸에 지방이 축적되고 가슴지느러미와 눈이 상당히 커진다.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것은 산란장 까지 먼 거리를 먹지 않고 가기 위하여 에너지를 모으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가슴지느러미가 커지는 것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거와 연관된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밝은 곳에 사는 동물은 눈이 작고, 어두운 곳에 사는 동물은 눈이 큰데 산란 회유를 하는 뱀장어의 눈이 커지는 것도 어둡고 깊은 물속에서 살기 위한 적응으로 보인다. 그러면 뱀장어는 왜 이토록 생리적으로 어려운 변화를 격으면서까지 민물과 바다를 왕복하는 쪽으로 진화 했을까? 바다로 산란회유를 떠나는 뱀장어의 형태는 원양의 중층에 사는 어류와 비슷하다. 뱀장어는 원래 원양의 중층에 살았던 어류로, 진화 적응 과정중 바다에 비하여 적이 적은 민물로 들어와 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서 자라고 민물에서 산란하는 연어류는 한 어미가 수천개 밖에 알을 낳지 않는데 비하여, 뱀장어는 인공 산란 결과 수천만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다에는 적이 많아 헤엄을 잘 치지 못하는 알이나 어린 치어는 쉽게 적에게 잡아 먹힌다. 치어기가 긴 뱀장어는 이를 보상하기 위하여 많은 수의 알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 - 이태원의 <뱀장어 생태의 수수께끼> 중에서 생각해 봅시다. 1. 설명과 묘사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 2. 설명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설명 방법에는 정의, 비교와 대조, 구분과 분류, 분석,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구분과 분류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새옹지마(塞翁之馬) / 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이르는 말. 《出典》'淮南子' 人間訓篇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致賀)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禍)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福이 禍가 되고 禍가 福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너무 깊어 측량 할 수가 없다.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數月 其馬將胡駿 馬而歸 人皆賀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禍乎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 人皆弔之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引弦而戰 近塞之人 死者十九 此獨以跛之故 父 子相保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원 말】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동의어】새옹마(塞翁馬), 북옹마(北翁馬) 【유사어】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규승(禍福糾繩)
Board 고사성어 2022.07.06 風文 R 855
말과 절제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젠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의 뒤편에는 또 말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는 또 다른 상식이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는 표현을 막기 위해서이다. 언어는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기능을 가졌지만 반대로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환영받는 언어도 있지만 기피되는 어휘와 표현도 있기 마련이다. 사사로운 관계에서도 꼭 지켜야 할 언어 예절이 있듯이 공공의 장소에서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이것을 가려내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품격이다. 냉정한 비판 의식 혹은 날카로운 정의감이 필요한 영역에서도 언어적 품격은 가장 먼저 강조되어야 할 항목이 아닌가 한다. 발언의 자유를 가장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영역은 아마도 의회 정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지 화근이 되는 발언도 이 영역에서 잦은 편이다. 바른말을 하려다가 최악의 발언을 내뱉게 되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참으로 옳지 못한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안정을 깨뜨리는 말을 남용하는 경우이다. 표현의 자유가 옛날보다 훨씬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만큼 말에 의해 피해받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언어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해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댓글, 특정 집단, 특히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 정치적 발언권의 사적 오용 등에 대한 법적 제재 조치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바람직하기는 우리 모두 절제된 말에 능숙해지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법적인 장치를 고려해 보는 것이 올바른 절차가 아니겠는가. ………………………………………………………………………………………………… 방향과 방위 방향을 모르고는 우리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아니면 주저앉아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든지, 저 산 넘어 가든지, 길을 따라가든지 어떻든 ‘방향’이 분명해야 나아갈 수 있다. 이를 기하학적으로 나누어 방향의 기준을 설정한 것이 ‘방위’라는 개념이다. 방위의 기본은 동서남북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방위는 각각 동남, 서남 등등으로 표현한다. 또 북북서, 동동남 하며 더 촘촘한 이름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방위 명칭의 표준이 불분명하다. 누구는 ‘동남’이라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남동’이라 한다. ‘동북쪽’인지 ‘북동쪽’인지도 헛갈린다. 남북 축과 동서 축 어느 것을 우선하느냐의 차이로 보인다. 일상어의 경우를 보면 동서 축이 더 일반적이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의 이름을 ‘서북항공’이라 번역했지 ‘북서항공’이라 하지는 않았고 한국 주변을 ‘동북아시아’라고 하지 ‘북동아시아’라고 하지 않는다. 지역 이름을 부를 때와 일기예보를 할 때, 또 공군에서 사용하는 방위 명칭, 지도 편찬, 일부 외국어 번역 등등 경우에 따라 혼용이 심하다. 이제 각종 ‘앱’을 이용해서 종횡무진 운전하며 돌아다니게 될 텐데 방위 이름만큼은 소비자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옳겠다. 덧붙여 사족을 단다면 ‘종단’과 ‘횡단’이란 용어도 가려서 썼으면 한다. 일부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이 두 단어를 혼용한다. 예를 들어 ‘몽골횡단철도’라는 말이 나오던데 몽골의 철도는 남북을 질러가는 종단철도뿐이고 동서를 가르는 횡단철도는 없다. 가로로 질러간다는 ‘횡단’을 그저 관통한다는 뜻으로 알고 쓰는 모양이다. 앞으로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우리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될 철도 역시 한반도 ‘종단’ 철도이지 ‘횡단’ 철도는 아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