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각지쟁(蝸角之爭) // 매우 하찮은 일로 다투는 것, 또는 좁은 범위 안에서 싸우는 일. 《出典》'莊子' 則陽篇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대진인(戴晉人)은 도가자류(道家者流)의 현인(賢人)답게 이렇게 되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는데 그것을 아십니까?"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 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 만에야 전쟁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地上)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魏:梁)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開封)이라는 도읍이 있으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십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 위의 촉씨, 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戴晉人)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惠王)은 혜자(惠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원 말】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동의어】와우각상(蝸牛角上), 와각지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 【유사어】만촉지쟁(萬觸之爭)
Board 고사성어 2022.07.25 風文 R 843
말의 이중성 낮엔 천사, 밤엔 악마. 이중성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삶을 수련에 비유한다면 삶의 수련은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증오하는 일이 아니다. 선악이 엉망진창 뒤범벅된 수렁 한가운데에서 뭔가를 추구하는 일이리라. 이게 진실에 가깝다는 걸 언어가 보여준다. 하나의 말 속에 정반대의 뜻이 함께 쓰이는 경우가 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이런 기막힌 일을 당하다니…’라 할 때 쓰인 ‘기막히다’는 그 일이 너무 놀라워 할 말을 잃을 정도라는 뜻이다. 반면에 ‘음식 맛이 기가 막히네’라 할 땐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좋다는 뜻이다. 이런 예가 적지 않다. ‘괄호 안에 적당한 답을 고르시오’에 쓰인 ‘적당하다’는 거기에 꼭 알맞다는 뜻이지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해’라 하면 대충 하라는 뜻이다. ‘적당주의’가 여기서 나왔다. 목숨을 뺏는다는 뜻의 ‘죽이다’는 멋지거나 좋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춥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울 때 돋던 ‘소름’이 요새는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돋는다. 놀랍게도 모든 말은 ‘반어적’으로 쓰일 수 있다. 당신도 ‘멋지다, 훌륭하다, 잘났다, 잘했다, 착하다, 꼼꼼하다, 배포가 크다’ 같은 ‘좋은’ 말로 앞사람을 순식간에 ‘열 받게’ 할 수 있다. 겉으로 들리는 말 뒤에 숨겨둔 의미를 눈치 있게 해석해내기 때문이다. 말을 듣는 순간, 아니 듣기 전부터 맥락을 파악하고 가능한 의미들 중 하나를 정확히 집어낸다. 소통이란 겉과 속, 표면과 뒷면이 배반적인 말 사이를 작두 타듯 위태로우면서도 날렵하게 헤엄치는 것이다. 이중성과 함께 살기. …………………………………………………………………………………………………………… 하나 마나 한 말 ‘책상이란 뭔가?’라 물으니 ‘책상이 책상이죠!’라 답한다. 선생은 실망한다. 어떤 말이 항상 참일 때 이를 항진명제라고 한다. ‘오늘 비가 오거나 오지 않았다’고 하면 항상 참이다. 참이 아닐 수 없어 허무하다. ‘책상이 책상이죠’라는 말도 ‘3 = 3’이라는 말처럼 늘 참이다. 거짓일 가능성도 없고 새로운 정보를 보태지도 못하는 항진명제는 본질적으로 공허하고 하나 마나 한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곧잘 쓴다. 미끈하고 냉정한 논리와 달리 말에는 다양한 때가 묻어 있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여자는 여자다’와 ‘남자는 남자다’만 봐도 사회적 통념의 때가 말에 짙게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君君臣臣 父父子子)이라는 말도 하나 마나 한 얘기다. 그럼에도 신분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반동의 언어로도 혁명의 언어로도 읽을 여지가 생긴다. 늙은 선승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는다. ‘너는 너야’라는 말에 위로와 자신감을 얻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애는 애다’라 하면서 화를 삭인다. 하느님도 자신을 처음 소개하면서 “나는 나다”라고 했으니, 하나 마나 한 이런 말들이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하나 보다. 거론되는 대상의 고유성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깨닫거나, 대상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하는 여러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말은 논리가 아니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들)의 심장과 시간이 박혀 있다. 그나저나 가을은 가을이다. 이 독특한 언어습관은 이웃 일본말에도 똑같이 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어떻게 토론할까 전국이 토론 중이다. 안 그래도 뜨거운 사회인데 뚜껑 닫아놓은 냄비처럼 들끓고 있다. 토론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적과 해야 제맛이다. 힘이나 앎의 차이로 윽박지르거나 꼬드겨 뻔한 결론에 도달하는 토론은 재미없다. 지금의 토론이 중요한 것은 찬반 의견이 ‘국민감정’에 따라 갈리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정서 문제가 개입되다 보니, 토론이란 게 토론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법을 어겼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미운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뭔지 묻게 된다. 과거의 열광과 지금의 실망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감정상태. 이 감정상태야말로 우리의 토론을 더 깊게 하고 우리 사회를 더 두껍고 탄탄하게 만든다. 슬쩍 일반화시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이율배반적이다. 양립할 수 없는 여러 기준이 한 사람 안에 양립함으로써 생기는 자기모순을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 조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당사자로 연루된 문제다. 공정과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다. 합의해야 할 ‘양’(정도)의 문제다. 우리는 얼마나 공정할 건가, 얼마나 정의로울 건가. 주제가 피아 감별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윤리 문제가 아닌, 합의를 해야 하는 양의 문제라면 토론은 알차진다. 게다가 남의 얘기 하듯 하지 않고 자기고백적 토론일 때 적과 공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다. 결론 내지 말고 문지방에 매달아놓자. 세월 좋은 소리 말라고? 미안하게도 인간만이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존재다. 우리는 지금 모순의 내부에 있으면서 모순의 타파를 꿈꾸고 있다. 그러니 결론을 미루고 더욱 토론하자. …………………………………………………………………………………………………………… 질문 안 할 책임 지난해 김영민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젊은이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친척이 자신의 근황에 대해 물으면 ‘당숙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맞받아치라는 글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몇몇 젊은이들이 진짜로 진격의 맞받아치기를 감행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모두 장렬히 패퇴했으며 친척들은 명절 때 다시는 안 모이기로 했다고 한다. 통쾌함에 비해 손실이 컸다. 차라리 어른이 아예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떨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하는 숱한 어른을 보라. 말하기는 권력이다.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권력자다. 주인과 노예, 위와 아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강하게 분리되어 있을수록 더 심하다. 권력자의 말하기는 겉으론 아니어도 결국 명령이다. ‘운동화가 편한가요?’라고 물으면, 직원은 다음날 구두로 갈아 신는다. 에둘러 말하는 간접화법으로 명령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결혼 언제 할래?’라는 질문은 결혼하라는 명령이고 ‘취직은 했어?’는 취직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어른은 질문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 질문하지 말고 감탄하라. ‘하늘이 높구나’ ‘그새 풀이 많이 자랐네’ ‘의젓해졌구나’. 미래를 묻지 말고 과거를 얘기하라.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다’ ‘여기가 엄마가 다닌 학교란다’. 소소한 얘기를 하라. ‘이렇게 하면 밤이 모양 나게 잘 깎여’ ‘전을 망가뜨리지 않고 넘기는 방법을 알려주마’. 질문은 젊은이들의 것.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오합지졸(烏合之卒) // ① 갑자기 모인 훈련 없는 군사. ② 규율도 통일성도 없는 군중. 《出典》'後漢書' 耿龕傳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發突騎以徊烏合之衆 如?枯腐耳. 【동의어】오합지중(烏合之衆) 【유사어】와합지중(瓦含之衆)
Board 고사성어 2022.07.22 風文 R 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