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는 게 맞나 문법은 세계를 이해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로 짜여 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은 ‘주체’(참여자)와 ‘작용’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건을 ‘주체’와 ‘작용’으로 나눈다고 해서 모든 언어가 같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 경험을 언어화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한국어는 ‘비가 온다’고 하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피오베’(piove; rains)라는 동사 하나면 된다. 홍콩 부근의 광둥어에서는 ‘하늘이 물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틴록수이’(天落水)라고 표현한다. 사건을 주체와 작용으로 나누는 문법에 길들여진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대상이 외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 오다’가 자연스러워 보이겠지만, 이미 오고 있는 비가 다시 온다고 하니 이상하다. ‘얼음이 얼다’라는 말을 곱씹어보라. 이미 언 것(얼음)이 다시 얼어야 한다는 이상한 말이다. ‘낙엽이 떨어지다’라는 말도 벌써 떨어진 것(낙엽)이 다시 떨어져야 한다. ‘천둥번개가 친다’라는 말은 더욱 이상한데, 마치 ‘천둥번개’란 놈(주체)이 구름 뒤에 몰래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번쩍 콰르릉 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주체’와 ‘작용’으로 나누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그 결과 자꾸만 ‘없는 주체’를 만들게 된다. 버려서 쓰레기인데 ‘쓰레기를 버리다’라고 하면 쓰레기가 될 본성을 타고난 놈이 따로 있는 것처럼 된다. 동시적이어서 조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사건 속에서 시시때때로 주체는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주체는 허깨비 아니겠나. 비는 오는 게 맞나? …………………………………………………………………………………………………………… 현타 ‘현실 자각 타임, 현자 타임’의 준말.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욕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후회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헛된 꿈이나 망상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현타’는 욕망을 채워도 밀려들고 채우지 못해도 밀려드는 마음이다. 침대 위든 명품점이든 골방 안이든 거리든 버스 안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욕망도 임시직이다. 하기야 고용도 임시적이니 소유나 사랑도 임시적일 수밖에. 시장의 모든 변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제는 개인을 언제든 손쉽게 재배치할 수 있도록 임시화하고 유연화시켰다. 모든 잉여들을 수시로 제거하고 불필요한 오물들은 갖다 버린다. 이 시대의 욕망도 투입 대비 성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모든 걸 거머쥘 기세로 솟구치다가도 손을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이내 사그라든다. 모으기보다 탕진하고 참기보다 발산한다. ‘자신을 재발명하라’는 시장의 명령은 스스로 좋은 사냥감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만들었고, 반대로 좋은 먹잇감이 나타나면 직선으로 달려들어 덮친다. 메뚜기처럼 분주히 ‘튀어’ 다니다가도 문득 ‘이게 사는 건가’, 물을 때면 이내 허탈감이 밀려든다.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자각, 내가 너무 멀리 와 있을지 모른다는 자각은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적 건강성 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알아차린 현실이 허탈감, 상실감, 고립감, 무기력, 분노와 같은 병리적 감정 상태에 가깝다면, 그 현실은 자각되어야 할 게 아니라 극복되어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시인> 나태주 시인의 '시인' 외 + 시인 제 상처를 핥으며 핥으며 살아가는 사람 한번이 아니라 연거푸 여러 번 연거푸 여러 번이 아니라 생애를 두고 제 상처를 아끼며 아끼며 죽어가는 사람, 시인. (나태주·1945~) + 시인 배 고플 때 지던 짐 배 부르니 못 지겠네 (김용택·1948-) + 시인 시가 직업이길 나는 원했지만 나의 직업은 허가받지 못한 철부지 공상이었다 시인이 되기엔 시보다 사람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산봉우리에 걸리는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호반새 삭정이를 물고 둥지로 날아가듯 사람 사는 거리와 집들 세상과 골목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이란 아무에게도 알려서는 안 될 비밀한 이름 그때 나의 직업은 시인이 된다 잎새 뒤에 숨어서 명주실 뽑아내는 은빛 누에처럼 (이기철·1943-) + 김삿갓 시란 시인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떠나는 괴로움과 떠도는 외로움 시인은 출발부터가 외로움이다 불행하게도 벼랑을 맴돌며 노래함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기꺼이 그 숙명에 동참하겠다고 맹세하마 (이생진·1929-) + 시인 K의 두꺼운 노트 그는 읽고 또 읽었다 풀잎들의 잎맥을 그는 보고 또 보았다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들을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새끼 고양이의 눈물은 왜 따스한가 그리고 썼다 자신을 뺀 온 우주에 관해 (이성미·1967-) + 시인이 되려면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천양희·1942-) +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솥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詩)를 쓴다, 공책을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옛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 마당이 새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이 직장이 천직(天職)인 양 즐겁다 나의 새로운 직장 동료들은 꽃들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더 멋진 시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이 직장에서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정일근·1958-) + 시인 시를 청탁하는 전화가 왔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링거병을 달아준 것같이 가슴이 마구 뛰놀았다. 시침을 떼고, 고료부터 물었다. 죽은 나무가 꽃이라도 피울 기세로! 아직 살아 있다는 듯이! 한때 시를 쓴 적이 있었지만, 곧바로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 후로 몇 년간 청탁을 물리치는 게 진통제가 필요할 만큼 고통스러웠다.그나저나, 십칠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인들은 무대포로 살고 있군. 아니, 고료가 한 푼도 안 올랐다니 나는 십칠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현역이었군. (장정일·1962-) +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뜻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도종환·1954-) + 길 위에서 16 - 무명시인에게 이 땅의 시를 채록하면서 이름 없는 시인의 혼이 더 고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도 권력이 있는가, 현란한 언어의 유희에 나는 식상했다 이름 없는 시인을 사랑한다 야생화를 사랑하였듯이 꽃에 삼류가 있었던가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 같은 당신의 시 한 편을 찾아 나선다 (최병무·시인, 195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어떤 가요? 시인에 대해 감이 잡히나요? 제가 아는 ‘시인’에 관한 시들을 몇 편 더 같이 봅시다. 시인 - 최영철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매미는 제 외로움을 온 천하에 외치고 다녔네 해밝으면 곧 날아갈 슬픔을 비는 너무 많은 눈물로 뿌리고 다녔네 아무데나 짖어대는 저 개 사랑이 궁하기로서니 그렇게 마구 꼬리를 흔들 일은 아니었네 그 바람에 새는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너무 빨리 지나쳐 왔네 저녁이 오기도 전에 바위는 서둘러 제 몸을 닫아벼렸네 입만 꾹 다물고 있었으면 좋았을걸 붙잡던 손길 다 뿌리치고 물은 아래로 저 아래로 한정 없이 흘러가고 있네 천둥의 잘못은 너무 큰 소리고 제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은 것이네 시인의 잘못은 제 가난을 밑천으로 너무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이네. 시인추방 - 최일화 그는 열변을 토했다 자장면집이 너무 많다 태화루, 중화루, 만리장성이 모두 어렵다 너도 나도 칼국수집, 추어탕집, 순대국집을 내면 너도 못살고 나도 못산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이 사람은 결국 차기에 낙선했다 요새는 시인이 너무 많다 몇 명만 남기고 모두 추방하자 그러면 시집은 잘 팔리고 시인도 저명한 정치가와 둘러앉아 만찬을 할 것이다 삼십 명만 남겨놓자 그만큼만 남겨서 정부정책 나팔수로 삼자 그러면 인천은 아마 시인 없는 도시가 될 것이다 나는 독재자 플라톤과 다르다 절반의 국민이 시인이어도 좋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시 쓰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시 쓰고 부엌에서 설거지하며 시 쓰고 노점에서, 절간에서, 감옥소에서 시 쓰고 세상에 시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진짜 시인 알토란같은 시인을 하늘이 그렇게 많이 세상에 낼 리가 없다 시인의 밭에 가서 - 김화순 비 오다 활짝 갠 날, 김포 대곶리 시인의 텃밭에 가서 나는 보았네. 엉덩이 까고 펑퍼짐하게 나앉은 비닐 모판 위 배추들. 하나같이 큰 손바닥만한 잎들에 구멍 숭숭 뚫려 있었네. 제 둥근 몸 안에 벌레를 키우고 꼿꼿이 서서 가을을 당당히 걸어가는 속이 꽉 들어찬 아낙들 그렇지, 사는 일은 빈틈없는 생활에 구멍 숭숭 내는 일이 아닌가 몰라. 벌레가 먹을 수 있어야 무공해 풋것이듯이 생활도 벌레를 허용할 수 있어야 자연산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 그렇지, 사는 일이란 시인의 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처럼 자신의 몸이 기꺼이 누군가의 밥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그 푸른 기특한 생각, 들판 가득 향기처럼 번지고 있었네. 시인 본색(本色) - 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시인 - 김남주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시인은 필요 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어떤 가요? 시인에 대해 감이 잡히나요? 당신은 시인이 뭐하는 사람 같나요? 단어대로 시 쓰는 사람? 알 수 없는 이상한 성격? 하루는 현자(賢者), 하루는 노숙자, 하루는 개망나니? 다중인격? 신선? 도(道)? 철학인? 아니면...... 그냥 이웃? 얼마 전 적적해서 포장마차를 홀로 찾았는데 옆 술판에 앉아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죠. “개나 소나 시인하는 거 아니냐?” “100만원이면 된다던데?” “K는 200들었대.” “탱자 탱자 노는 놈들. 지들이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입에 발린 말만 하는...” 뭐 대충 이런 대화들 이었습니다. 빠진 말은 있어도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술맛이 떨어져 한 병도 채 못 마시고 나왔죠. 당신은 시인이 뭐하는 사람 같습니까? 시인에 대해 감이 잡히나요? 2010.04.17 16:55 윤영환
Board 추천글 2022.08.02 風文 R 4188
읍참마속(泣斬馬謖)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비유. 《出典》'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韓中의 東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 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 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2.07.31 風文 R 834
적과의 동침 인간은 게을러서 짧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 줄이는 일이 과도하여 요상한 상황을 연출한다. 재수 없거나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밥맛’이다.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기분 나쁘다. 애초에 ‘밥맛이 있다/없다’는 음식 맛을 평가하거나 식욕의 유무를 나타낸다. ‘밥맛이다’가 불쾌한 감정일 이유가 없다. 그러다가 아니꼬운 사람이 나타나면 ‘밥맛없다’ ‘밥맛 떨어지다’라는 말 뒤에 붙은 ‘없다’나 ‘떨어지다’를 싹둑 잘라내고 ‘밥맛’만으로 불쾌한 마음을 표현한다. ‘밥맛’ 입장에서는 뒤에 붙은 서술어의 부정적인 의미마저 모두 넘겨받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 낱말에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동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잘났다’가 상황에 기대어 반대로 쓰이는 것과는 다르다. 부정의 의미를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엉터리’도 비슷하다. ‘엉터리없다’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엉터리’는 ‘이치에 맞는 행동’이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도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는 뜻이 같다.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 ‘주책없다-주책(이다)’ ‘싸가지 없다-(왕)싸가지’도 마찬가지다. ‘바가지를 긁다’ 같은 숙어도 한 요소가 전체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디서 바가지야!’ ‘그만 긁어!’ 전체 의미를 한 낱말이 넘겨받은 것이다. ‘밥맛이다’는 이게 과도하게 작동한 예이다. 뭔가가 ‘없다’는 것은 앞말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하다. ‘없다’를 지우고 부정의 의미를 앞말에 모두 넘겨주는 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말은 선을 넘는다. …………………………………………………………………………………………………………… 어미 천국 한국어는 최고로 배우기 어려운 말이다. 동사에 ‘반드시’ 어미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기본형에 과거형, 과거분사형, 진행형만 알면 된다. ‘play, plays, played, playing’ 말고 다른 형태가 없다. 그러니 앉은자리에서 ‘I play a game.’이라고 한마디 할 수 있다. 한국어는 동사에 붙는 꼬리가 무시무시하게 많다. 어미 천국이자 어미계 사회(!)라 어미 없이는 말을 끝맺을 수 없다. ‘하다’라는 동사를 제대로 쓰려면 ‘한다, 해(요), 합니다, 했다, 했어(요), 했습니다, 하겠다, 하겠어(요), 하겠습니다’처럼 시제와 상대 높임 여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여기에 의문, 명령, 감탄, 청유형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형태가 늘어난다. 문장을 연결하는 어미도 많다. ‘하고, 하며, 하면, 해서, 하니까, 하는데, 해도, 하자마자, 하지만, 하나, 하더라도, 할지언정, 할지라도, 할까, 하느라, 할뿐더러, 하러, 하려고, 하게….’ 예만으로도 이 지면이 모자란다. 앞뒤 말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가 이리 많은데도 성에 안 찼는지 명사를 끌어들인다. 예컨대, 이유를 말하는 데 ‘하느라, 해서, 하니까’ 정도의 어미면 충분한데, 굳이 ‘했기 때문에’ ‘하는 바람에’ ‘한 덕분에’ ‘한 탓에’ ‘하는 통에’ 따위를 만들어 쓴다. 동사 하나를 배우고 이를 활용하여 말 한마디 하려면 이렇게 많은 어미 중에 하나를 골라 조합해야 한다. 이를 익히는 일은 현기증에 구토를 수반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한국어 학습자에게 박수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은감불원(殷鑑不遠) - 멸망의 선례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出典》'詩經' 大雅篇 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殷王朝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북방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妖女毒婦)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國庫)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폭락(飮酒暴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다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주왕(紂王)의 포학(暴虐)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의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 당하고 서백(西伯)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 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殷王朝)의 시조인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 당한 하왕조(夏王朝)의 걸왕(桀王)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고 충간(忠諫)하다가 화(禍)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詩經》'大雅篇'의 '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先例)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后之世. 삼공(三公)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되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怨聲)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離叛) 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원 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Board 고사성어 2022.07.29 風文 R 1070
노랗다와 달다 한국어에 색채어가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하얗다, 까맣다,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다섯 가지가 전부다. 여기에 ‘청색, 녹색’처럼 한자어나 ‘살구색, 오렌지색, 팥색’처럼 식물이나 열매 이름, ‘쥐색, 하늘색, 황토색’처럼 동물이나 자연물에서 온 이름이 더해졌다. 이들 다섯 가지 색에 ‘노랗다, 누렇다’처럼 모음을 바꾸거나, 접미사를 붙여 ‘노르스름’ ‘노리끼리’ ‘누르스름’ ‘누리끼리’를 만든다. 접두사를 붙이면 ‘연노랑’ ‘샛노랑’ ‘진노랑’이 되고 반복하면 ‘노릇노릇’ ‘푸릇푸릇’이 된다. 그런데 이들은 색이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입고 있는 옷을 보고 거무튀튀하다거나 누리끼리하다고 하면 기분 나쁘다. 튀김이 노릇노릇하면 군침이 돈다. 얼굴이 누렇게 떴으면 쉬어야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맛도 비슷하다. ‘달다, 쓰다, 짜다, 맵다, 시다, 떫다’를 바탕으로 ‘달콤, 씁쓸, 짭짜름, 시큼, 떨떠름하다’를 만들어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얼핏 촘촘한 그물처럼 현실을 잘 담는 듯하다. 하지만 말은 세계의 진면목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달다’만 보자. 사과와 배와 수박과 꿀의 맛은 다 다르다. 그럼에도 사과도 달고 배도 달고 수박도 달고 꿀도 달다고 한다. 말은 세계의 차이를 지워야만 성립한다. 개념은 차이를 단념하고 망각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는가? 있다. 내 언어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모국어를 의심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표현 불가능함을 집요하게 표현하는 것, 인간의 운명이다. ……………………………………………………………………………………………… 없다 말 속에는 인간만의 독특함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가 숨어 있다. ‘없다’도 그중 하나인데, ‘없다’의 발견으로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던 짐승에서 상상하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바뀌었다. 우유를 먹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걸 아빠가 몰래 다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들이 다음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소리를 지른다. “엥, 우유가 없네!?”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는 말을 하려면 냉장고에 우유가 있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없는 게 어찌 우유뿐이겠는가. 코끼리나 젖소도 냉장고에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하필 우유의 부재를 떠올리는 건 어제의 우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걸 떠올리지 못하면 ‘없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앞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훨씬 많다. 그러니 그냥 무심히 행동을 이어가면 된다. ‘없음’(부재)을 알아차리는 건 ‘있음’과 대응될 때만 가능하다. 없음은 있음의 그림자이다. ‘생각’이란 ‘없는 것’을 떠올리는 일이다. ‘없음’의 관념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상상력, 그리움, 욕망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 ‘없다’는 말은 지나간 시간을 소환한다. ‘없음’의 발견으로 인간은 시간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혔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까지 당겨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없음’을 디딤돌 삼아 우리 곁에 자유자재로 머무르다 간다. 물론 ‘없음’이 ‘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잠깐만 방심해도 순식간에 욕망이 밀고 들어온다. 과한 말이지만, 있으면 동물에 가깝고 없으면 인간에 가깝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