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3/4) 유식한 말을 쓰지 말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있을 신현복 군은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해서 국민학생 때 쓴 것을 일기문집으로 한 권(현복이의 일기), 중학생 때 쓴 것을 두 권(자물쇠여 안녕, 슬픔에서 축복으로) 낸바 있다. 여기 들어 보이는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쓴 글인데, 슬픔에서 축복으로 라는 책 맨 끝장에서 좀 짧은 글들을 고른 것이다. 이사 5월 13일 (토) 비오다 맑음 난 내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내 방, 내 책상이었다. 그렇다. 우린 이미 이삿짐을 옮겼다. 장차 먼 곳으로 이사해야만 할 거사는 장초의 예상과는 반대로 우린 한 동네에서 짐을 옮긴 것이다. 이 짐을 옮겼다는 의미는 이삿짐을 옮겨 놓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풀어 놓지도 정리 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 방은 다르다. 책상 이 오기가 바쁘게 난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 넓기만 하던 내 방이 책 무더기로 갑자기 책천지 가 되었다. 두 시간이 훨씬 넘었다. 내 옷은 먼지 자국에 심히 더렵혀져 있고, 다리는 다리대로 아파왔다. 무거운 이삿짐을 들고, 메고, 2,3층 사이를 돌았기 때문이다.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기분만은 정말이지 상쾌했다. 난 내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난 내 책상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즐거움과 온갖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싶어하던 내 방이었다. 늦은 밤, 무슨 일로 내 옛집에 찾아 갔을 때, 그것들은 이미 검은 아가리를 내놓고 나를 맞았다. 세 식구와 그 살림살이와 책들을 쑤셔 박기엔 너무나 비좁았던 우리 방도 으시시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피어 오르는 옛 향수까지 억누르지는 못했다. 언젠가, 이 옛집은 곧 세워질 새 집을 위하여 허물어지리라. 그럼 난 슬퍼해야 하리라. 엉엉 울어야 하리라. 그러나 난 옛집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돌아서야만 했다. ------------------------------------------------------------- 이사를 한 날에 쓴 일기다. 중학생이 되어도 3학년에 올라간 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 방을 갖게 된 기쁨이 나타나 있다. 밤늦게 옛집에 찾아갔을 때 느낀 것도 잘 잡았다. - 언젠가 이 옛집은 곧 세워질 새 집을 위하여 허물어지리라. 그럼 난 슬퍼해야 하리라. 엉엉 울어야 하리라... 이렇게 글월의 끝을 -다 로만 쓰지않고 -리라 를 자연스럽게 섞어 써서 싱싱한 문장이 되게 한 것도 능숙한 글솜씨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대문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이 짐을 옮겼다는 의미는 이삿짐을 옮겨 놓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풀어놓지도 정리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첫머리부터 읽어 가다가 이 대문에 와서 누구든지 좀 어리둥절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삿짐 옮긴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의미니 뜻 이니 하는 말이 나와서 아무래도 좀 부자연스럽고, 말을 꾸며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은 이런 정도의 글이야 손끝에서 저절로 나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책과 글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은 이런 글이 아무래도 엉뚱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글을 이와 같이 엉뚱하다고 느끼고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이 갖는 글에 대한 느낌이야말로 (결코 무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깨끗하고 건강한 느낌인 것이다. 이 짐을 옮겼다는 의미는.. 뜻이다 이 글월을 나 같으면 다음과 같이 쓰겠다. 이삿짐을 옮기기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풀어놓지도 정리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고쳐 쓴 것과 본디 써 놓았던 글을 견주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의미니 뜻 이니 하는 말이 괜히 들어가 있고, 말을 머리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고 한 말도 내가 쓴다면 그래서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든지, 온 몸이 지쳐 맥이 빠졌다 고 쓰겠는데, 이런 말까지 잘못 썼다고 나무라지는 않겠다. 아무튼 유식한 말 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말에서만은 유식 한 것이 사실은 무식한 것이다. 이 밖에 낱말 두세가지, 말해 둘 것이 있다. - 내 옷은 먼지 자국에 심히 더럽혀져 있었고 여기 나오는 심히 는 많이 아주 크게 몹시 이런 입말 가운데 어느것이나 알맞은 말을 골라 썼으면 좋겠다. - 그러나 기분만은 정말이지 상쾌했다. 여기 쓰인 상쾌했다 는 시원했다 고 쓰는 것이 더 낫겠다. - ... 피어오르는 옛 향수까지... 이 대문에서 향수 란 말을 썼는데, 그리움 이라 해도 될 것이다. 다음은 이사 에 이어서 오는 글이다. 급변하는 시대 5월 26일 (금) 맑았다 20세기 초 이후 시대는 급변했습니다. 이 시대는 그 사회 구성원을 볼 때도 70-80대(세)는 공맹교육을 받고, 50-60대는 일제 식민교육을, 30-40대는 미국식 교육을, 그 아래 세대는 시대 모순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자라나 오늘날 이 민족의 가치관은 크게 혼동을 빚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급변하는 과도기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물질문명의 과도기란 것은 우리 피부로 절실히 느끼는 문제입니다. 우리 공업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입시 준비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컴퓨터를 배우라고. 급변하는 이 시대에 컴퓨터가 보편적으로 보급된 10년,20년을내다보고 꼭 컴퓨터 이론이라도 배워라. 그러나 난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시대가, 세상이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급류를 타고 흘러가는 듯해서였다. 급류를 타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모습 같아서였다. 시대가 서글펐다. 우수에 잠기길 좋아하는 감상자의 눈에는, 그의 가슴에는 시대가 서글프게만 느껴져 무한정으로 눈물을 쏟고 싶어한단 말이다. ----------------------------------------------------------------- 이 글에서 공업 선생님이 컴퓨터를 배우라고 하신 말씀을 고마워하면서도 그러나 난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시대가, 세상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급류를 타고 흘러가는 듯해서였다. 급류를 타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모습 같아서였다. 시대가 서글펐다 고 한 것은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 말이 되었다. 책읽기와 글쓰기로 오랫동안 자기를 가꾸어 왔기에 이만큼 주체를 세울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쓴 말은 왜 이런가? 우수에 잠기길 좋아하는 감상자의 눈에는, 그의 가슴에는... 이건 영 모양을 구겨 버렸다. 자리를 우수에 잠기길 좋아하는 감상자 라고 했으니 너무나 유치한 말이다. 자기를 이런 이상한 말로 분칠해서 어떤 어른들 모양을 내어 보이려고 한 것을 보면, 앞에서 해 놓은 말조차 책에서 읽은 남의 말을 흉내낸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우수에 잠기길 좋아하는 감상자의 눈에는, 그의 가슴에는 이 구절을 모두 싹 없애고 나는 이라고만 써서 읽어 보라. 비로소 글이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끝에 가서 무한정으로 눈물을 쏟고 싶어한단 말이다 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대문은 장난하는 기분으로 쓴 것 같다. 또 하나, 이 글은 앞쪽의 반쯤은 합니다 체로 썼고, 뒷쪽 반은 한다 체로썼다. 글에 따라서는 이렇게 합니다 와 한다 가 뒤섞여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데 이 글에는 두 가지 글체로 써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왜 이렇게 썼을까? 처음부터 한다 로 써야 옳았을 것이다. 이밖에 낱말 몇 가지를 들어 본다. 혼동 이란 말을 쓰더라도 뒤섞음 이나 섞갈림 이라고 써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혼란 이란 말을 쓸 것을 잘못 썼다. 특히나 는 더구나 하면 아주 고운 우리말이 된다. 물질문명의 과도기 이것은 무슨 말인가? 보편적으로 이것은 두루 하면 된다. 급류 이것은 급한 물살 이나 급한 흐름 이다. 표류하는 은 떠내려가는 하면 된다. 우수 이것은 근심 이다. 근심 이라고 쓰면 좋은 글이 안 되고, 우수 라고써야 그럴듯한 글이 되고 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글을 쓸 수없을 것이다. 감상자 이것은 무슨 말인가?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5월의 편지 - 청소년들에게 해 아래 눈부신 5월의 나무들처럼 오늘도 키가 크고 마음이 크는 푸른 아이들아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밭에 희망의 씨를 뿌리며 환희 웃어 주는 내일의 푸른 시인들아 너희가 기쁠 때엔 우리도 기쁘고 너희가 슬픈 때엔 우리도 슬프단다 너희가 꿈을 꿀 땐 우리도 꿈을 꾸며 너희가 방황할 땐 우리도 길을 잃는단다 가끔은 세상이 원망스럽고 어른들이 미울 때라도 너희는 결코 어둠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말고 밝고, 지혜롭고, 꿋꿋하게 일어서 다오 어리지만 든든한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다오 한 번뿐인 삶, 한번뿐인 젊음을 열심히 뛰자 아직 조금 시간이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하늘빛 창을 달자 너희를 사랑하는 우리 마음에도 더 깊게, 더 프르게 5월의 풀물이 드는 거 너희는 알고 있니? 정말 사랑해 (1996) 여러분이 스타입니다 - 청소년들에게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었다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몰라 그들의 업적을 기르는 기념사업회가 생기고, 얼마 전엔 그들이 활동할 때 입었던 옷과 소품 육백 점을 전시해 추첨 판매하는 행사에 청소년을 비롯해 2만5천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인류사에 빛을 남기는 예술인들,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음악인, 탤런트, 배우, 운동선수 등을 상징적으로 일컬어 우리는 흔히 스타라고 부릅니다. 한창 인기가 상승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몸값이 억대로 뛰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며, 이들의 존재는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자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연예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종종 사진과 편지를 보내며 탤런트가 되고 싶으니 도와 달라는 학생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인이 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서두르지 말 것과 `스타가 되고 싶은 꿈`을 잠시 접어 두고 우선 학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에 대해서도 좀더 냉정하게 객관적인 관찰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곤 합니다. 해마다 모델이나 탤런트를 모집할 때면 수천 명씩 몰려드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걱정이 앞서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 열망 속엔 끝없는 인내를 거듭해 참된 예술인이 되겠다는 치열하고 진지한 성실성보다는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유명한 인기인이 되고 싶은 일종의 허영심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여고 교사인 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요즘은 전에 비해 더욱 많은 학생들이 모델, 탤런트, 앵커우먼 등을 장래 희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앵커우먼이 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도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나는 서울에 가서 몇몇 대학가와 번화한 거리를 지나며 요즘 젊은이들의 대담한 옷차림과 패션모델 같은 모습들을 놀라움 속에서 목격하게 되었으며, 날씬한 몸매와 고운 피부를 가꾸기 위해 최대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개인적인 대화와 요란한 선전문구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남보다 더 예뻐지고 싶은 욕구를 쉽게 표현할 뿐 아니라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을 대하면서 전과는 많이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새롭게 절감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스타를 자신의 우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칠 수가 있습니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특정한 대상을 만들어 몰두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거나 자신이 할 일도 잊어버리고 단지 그들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모조건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인 재능과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구나 다 모델, 가수, 탤런트가 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같지 않고 닮지 않은 유일한 존재,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멋과 매력을 지닌 `하느님의 작품`인 여러분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스타가 아닐까요? 설령 신문, 잡지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 연예인이 못되더라도 우리 모두는 저마디의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만큼 열심히 사랑하며 빛을 발하는 숨은 별, 고운 스타로 오늘도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도의 위대한 시인 타고르의 말대로, 우리는 다른 이에겐 반딧불로 보임을 개의치 않고 높이 빛나는 하늘의 별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묵묵히 자신의 빛을 밝히는 또 하나의 작은 별들인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예수`라는 큰 별을 우상으로 삼고 그분이 남긴 사랑의 빛을 따라 걸어가는 여행자라는 생각을 오늘은 더욱 새롭게 해봅니다. 굳이 여러분이 어떤 스타를 우상으로 삼으려 한다면 너무 연예인에게만 집착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선과 진리와 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해 왔던 많은 위인들, 성인들 중에서도 찾아보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훌륭한 삶을 추상적인 꿈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본받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여러분은 숨어서도 빛나는 별, 누구에게나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는 행복한 별이 될 겁니다. (1996)
Board 삶 속 글 2022.10.15 風文 R 525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상편" 이상(1910~1937) 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 서울 출생. 경성 공고 졸업. 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근무,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기법, 특이한 행적으로 이채를 띠었던 이상은 수필에도 뛰어났다. 독특한 안목과 감성으로 사물을 바라본 그의 수필은 실험적인 시나 황당한 소설보다 훨씬 짙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권태 5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이 내 흉내를 내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들을 원숭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 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대싸리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거기 앉아서 이번에는 그 썩은 중의 웅뎅이 속을 들여다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한다.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 송사리 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 속에 이런 앙증스러운 어족이 서식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벌러지를 먹겠지.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벌러지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를 가만 있지 않는다. 저무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5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치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뎅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뎅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 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다. 고 웅뎅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 학자를 위한 표지이다. 야우 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습니다. 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추억성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더 한층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우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렀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하는 체 해 보임이리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해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6 길 복판에서 6,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의 반나체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둘른 베, 두렝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 6세 내지 7, 8세의 '아이들'임에도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여기는 사금파리도 벽돌 조각도 없다. 이 빠진 그릇을 여기 사람들은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풀을 뜯어 온다. 풀--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 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한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 본다. 10분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동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충겅충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 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장난감 하나 없는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이 권태의 왜소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나. 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각각 대변을 한 무데기씩 누어 놓았다. 아--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러나 그 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7 날이 어두웠다. 해저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 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뎅이 속을 실로 송사리 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 떼가 준동하고 있나 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 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 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벌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갔다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 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권태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 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 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한 판 두자. 웅뎅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 조 그리피스의 '사업계 일화 모음집'에서 전직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는 분석작업을 준비할 조수를 고용했다. 그 조수는 보고서를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것을 완성해서 제출한 지 한 시간도 못되어, 재작성하라는 쪽지가 붙어 보고서가 되돌아왔다. 조수는 밤을 세워 그것을 다시 작성했지만 보고서는 또 되돌아왔다. 그것을 세 번째 새로 만들고 나서 조수는 키신저에게 말했다. "저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키신저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그것을 읽어보도록 하지."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서 샘을 제외한 회사의 모든 사람이 고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연금제도에 대해서 찬성했다. 그것은 회사가 나머지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계획은 100%의 찬성을 얻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었다. 샘의 상사와 동료들은 그를 구슬러보기도 하고,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사장이 샘을 사무실로 불러서 말했다. "샘, 여기에 새로운 연금제도에 대한 계획서가 있고 또 여기에는 펜이 있네. 만일 사인하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당장 자넬 해고할 수밖에 없군." 그러자 샘은 즉시 서명했다. 이에 사장이 다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그전에는 찬성하지 않았는가?" "글쎄요, 지금까지는 누구도 이 계획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않았거든요." 외교적으로 요청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서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남부연방의 수뇌인 제퍼슨 데이비스를 잡아서 교수형에 처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국가가 입은 손실을 복구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나서서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셔먼 장군은 대통령을 만나서 제퍼슨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냐고 물어보았다. 링컨이 대답했다. "그의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기로 합시다. 옛날 상가몬이라는 나라에 규칙의 철저한 준수와 절대금주를 주장하는 한 늙은 수도사가 있었다오. 찌는 듯한 더위 속을 여행하던 어느날, 그는 한 친구의 집으로 가서 레몬에이드를 만 들어달라고 요청했소. 사실은 이미 그 속에 약간의 알콜이 섞여 있었지만, 그 친구는 수도사에게 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그를 기운나게 해줄 약간의 술기운 을 혹시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지오. 그런데 그 수도사는 괜찮다고 대답했소. 왜냐하면 원칙적으로는 음주를 반대하지만, 자신이 모르게 한 일이라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소." 대통령은 말을 이었다. "자, 장군. 나는 분명히 제퍼슨을 놓아주는 것을 반대하오. 하지만 당신이 내가 관계하지 않은 것처럼 그를 풀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다지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오."
Board 추천글 2022.10.15 風文 R 1846
금의야행(錦衣夜行) 錦:비단 금 衣:옷 의. 夜:밤 야. 行:다닐.행할 행. [동의어] 의금야행(衣錦夜行). 수의야행(繡衣夜行). [반의어] 금의주행(錦衣晝行). [출전]《漢書》〈項籍傳〉.《史記》〈項羽本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 곧 ① 아무 보람없는 행동의 비유. ② 입신 출세(立身出世)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음의 비유.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는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 우선 유방이 살려 둔 3세 황제 자영(子?)을 죽여 버렸다(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그 불을 안주삼아 미녀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려 하자 모신(謀臣)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벼온 싸움터를 벗어나 많은 재보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이 간했다. “관중(關中:함양을 중심으로 하는 분지)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요충지인데다 땅도 비옥하옵니다. 하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시고 천하를 호령하시오소서.”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황량한 폐허일 뿐이었다. 그보다 하루바삐 고향으로 돌아가 성공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항우는 동쪽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항우에게 함양에 정착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안 한생은 항우 앞을 물러나자 이렇게 말했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沐?]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워 놓은 것[沐?而冠]처럼 지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대로군.” 이 말을 전해 들은 항우는 크게 노하여 당장 한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 [주] 이 ‘금의야행’에서 ‘금의주행(錦衣晝行:비단옷을 입고 낮길을 간다)’ ‘금의환향(錦衣還鄕:비단옷을 입고-입신 출세해서-고향으로 돌아간다)’이라는 말이 나왔음.
Board 고사성어 2022.10.15 風文 R 855
선입견 나는 말에 잘 속아 넘어가는 편이다. 가게 채소 칸에 ‘밤고구마’라 적혀 있으면 분명 당근인데도 ‘햐, 밤고구마가 발그스레한 게 맛있어 보이는군’ 하고 속는다. 어제는 아들이 가으내 해바라기씨를 말려 투명 비닐봉지에 넣어 왔는데 하필 겉에 ‘취나물말림’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걸 보고, ‘말린 취나물이 씨앗처럼 생겼군’ 하며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했더랬다. 말에 속아 판단을 그르치는 것보다 나를 더 좌우하는 건 선입견이다. 선입견은 머리보다는 몸의 기억에 가깝다. 아버지는 각자가 경험한 아버지다. 같은 쥐래도 들쥐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다람쥐는 웃음이 나온다. 바퀴벌레는 4억년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과학자들에겐 관심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해충’이다. 기독교도들은 기도 중에 (부처가 아닌) 예수를 만나고, 불교도들은 (예수가 아닌) 부처를 만난다. 깊고 깊은 심층에도 선입견이 작용하나 보다. 구름이 사라지면 달이 선명해지듯이, 선입견을 없애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선입견을 없앨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선입견을 가지고 어떤 것을 이해한다(가다머). 선입견은 인간이 세계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개인의 삶의 역사가 쌓여 선입견을 만들고, 이 선입견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한다. 사회 전체가 공통으로 쌓아올린 선입견을 ‘상식’이라고도 하고 ‘공통기억’, ‘공통감각’, ‘역사’라고도 한다. 투표는 우리의 선입견에 대한 관찰보고서다. 진정한 정치의식은 자신의 선입견을 자각하고 재음미하는 데에서 길러진다. 나는 이 땅의 뭇 생명들과 어떤 삶의 인연을 맺어왔던가를. 부동층이 부럽다 확신이 안 선다. 사무실 온풍기 불을 껐는지, 안 껐는지. 이미 버스는 탔고, 돌아갔다 오면 약속 시간엔 늦는다. 끈 거 같기도 하다. 종일 틀어놔도 별 탈 없었고. 하지만 ‘만에 하나’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린다. 돌아가지 않으면 내내 걱정일 테고, 갔는데 불이 꺼져 있으면 허탈하겠지. 되돌아간 보람이라도 있으려면, 차라리 불이 켜져 있기를! 선거는 사람들 마음에 심리적 확고함이라는 굳은살이 자라게 한다. 일종의 최면 상태이다. 평소보다 접하는 정보는 더 편향적이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확신에 차 있다. 나는 언제나 정의와 진리의 편. 무너진 정의를 세우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면 ‘그’가 되어야 하고, ‘그놈’은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 지지 후보와 정서적 일체감과 사상적 동질감을 느낀다. 확고함은 간절함과 친구 사이. 고약하게도 간절할수록 불안감도 커진다. 혹시 ‘그놈’이 당선되면 세상은 엉망진창, 뒷걸음질하겠지. 투표를 하면서 ‘안 되면 어떡하지?’보다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라는 말을 되뇐다. 우리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되뇌다 보면 정치를 둘러싼 말이 쪽수나 당락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게 만든다. 어느 누구도 이 세계를 명징하게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정의의 편이 아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동층’이 부럽다. 흔들리는, 한곳에 정박하지 않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오늘과 내일의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생활현실에 더 가까워지고, 사회는 더 두툼해지리라. 분하게도 나는 부동층이 되기엔 이미 머리가 굳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2/4) 고사리 꺾자 동내 울산을 넘어가자 (66쪽. 이것은 충남 공주 사람이 적은 것인데, 제목은 동래 울산 이라고 되어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세 좃침 댓침 꺾세 (74쪽. 충남 부여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에는 잡이라 되어 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자] 거춘 대춘 꺾자 광주 무등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제주 한라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123쪽. 전북 고창군 대산면 사람이 적었다. 제목이 고살 이고, 끝에 처녀들이 명절 때 모여 놀며 라고 써 놓았다.) 고사리 캐로 간다고 핑계핑게 하드니 총각낭군 무덤에 삼우제 지내러 간다네 (328쪽. 경남 진해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이 속요 잡 이라 되어 있다) 이렇게 4편 중에 3편이 꺾자 로 적혀 있다. ( 캔다 는 말이 한 군데 나오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역시 고사리를 끊는다는 말은 충청도고 경상도고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또 찾아 보았다. 이번에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바로 초등 학교 6학년 음악책에 나온 민요의 원형임에 틀림없는 노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뜻밖에도 껑자 로 되어 있다. 제목만은 고사리 꺾자 로 썼다. 노래 앞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면서 노는가를 설명해 놓았는데, 다음에 옮겨 놓은 노래말은 첫머리 것으로 이것은 전체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란 말은 끝까지 되풀이되어 있다. 설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설소리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수양산 대사리 껑거다가 우리 아배 반찬하세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여기서 의문이 다 풀렸다. 전북 고창 사람들은 옛날부터 고사리를 껑는다 (이것은 꺾는다 고 써도 같은 소리가 된다) 껑자 라고 말하고 노래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이것이 교과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껑자 가 끊자 로 되어버렸다.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일부러 고친 것이 분명하다. 껑자 란 표준말이 없으니 껑자 에 가까운 끊자 로 하자고. 내가 보기로는 악보를 만든 사람이 이렇게 고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교과서를 만드는 실무자들이 이렇게 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것은 국정 교과서가 우리말을 일부러 틀리게 고쳐 적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하나의 보기가 된다. 최근 전남 고흥군에 있는 한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 호남지방에서는 어디를 가도 고사리 껑자 라고 말한다 했다. 그래 이 문제는 다시 더 알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또 시험문제를 하나 내어 보기로 하자. 다음 네가지 말 가운데서 어느 것이 바른 우리말인가 표를하라. 고사리를 1) 껑는다. 껑자. ( ) 2) 끊는다. 끊자. ( ) 3) 꺾는다. 꺾자. ( ) 4) 캔다. 캐자. ( ) 어느것이 표준말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바른 우리말이냐고 물었으니 3)과 함께 1)에도 표를 해야 맞다. 사투리도 틀리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끊는다 는 아주 틀린 말이다. 캔다 도 더러 쓰기는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 고사리는 꺾지, 캐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시험문제가 나왔다고 할 때 3)과 1) 두 군데 다 표를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3)에만 표를 하는 사람도 이 문제에서 맞는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교과서에 고사리 끊자 로 되어 있으니 교과서대로 채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길은 우선 두 가지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 사실이고 진실이고는 다 덮어두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외운 대로 2)에 표를 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대로 (그따위 점수 같은 것에 붙잡혀 있지 말고) 당당하게 3)과 1)에다 표를 하든지다. 나로서는 뒤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 또 한 가지 길이 있다. 자기가 믿는 것은 마음속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점수를 따기 위해, 이것이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2)에다가 표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나로서는 찬성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틀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모조리 말릴 생각은 없다. 마음속에 지닌 그 믿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말과 진리를 책으로 글로서만 배우고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누구든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고 사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혼자만의 시간 - 스테파노 선생님께 나뭇잎 하나가 벌레 먹어 혈관이 다 보이는 나뭇잎 하나가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들여다보이려고 저 혼자 물위에 내려앉는다 나뭇잎 하나를 이렇게 오도마니 혼자서 오래오래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란 제목의 시집을 펴낸 바 있는 안도현 시인의 `나뭇잎 하나가` 란 이 시를 공감하며 읽어 보는 조용한 주일 오후입니다. 스테파노 선생님, 아네모네와 여러 고운 꽃우표가 붙어 있는 정성스런 편지는 반갑게 받았습니다. 베토벤의 `전원교향악` 을 좋아해 필라델피아 중심가에 개업하는 새 식당 이름도 `전원` 이라고 하셨다구요? 하루 종일 고전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손님들이 잠시나마 기쁘게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의 인사도 으레 바쁘냐고 먼저 물어볼 만큼 늘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바쁜 시대의 우리들은 일부러 큰맘 먹고 선행하지 않으면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기도하거나 조용한 명상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조금은 쓸쓸하지만 고즈넉한 기쁨이 고여 오는 시간을 갖기가 어려운 듯합니다. 신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고 오래 바라볼 틈을 갖지 못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일이 끝났다 싶으면 또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거듭되는 만남의 약속을 위해 쉴새없이 계획표를 짜야 하는 일도 때로는 우리를 힘들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이번 달의 잡지를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또 다음달 잡지가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시간의 빠름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저도 요즘은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맡은 일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보내느라 차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내면이 침묵과 고독의 전류로 충전되지 않으니 사소한 일에서도 실수가 뒤따르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하며 삐걱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이렇게 빈방에서 창문을 열어제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음이 얼마나 흡족하고 소중한지요. 새 한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다 어느 순간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것 또한 기쁜 일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제 주일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저도 새롭게 결심해 봅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도 피하고, 산책을 하든 음악을 듣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만드는 연습을 꾸준히 함으로써 여럿이 모여 사는 공동체 생활도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인 말로 모건(Marlo Morgan)의 <무탄트>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평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의 영원한 본질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우리가 실제로 소비하는 시간은 너무나 적다` 라는 이 말은 외적인 일들에 마음이 매여 정신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며 즐기는 생일 파티에 대해 설명하는 이 책의 저자에게 반문하던 호주 원주민들의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어떤 노력도 들지 않아요. 우리는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수 있으니까, 잔치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잔치의 주인공이지요.` 이 말을 저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뇌어 보곤 합니다. 겉으로는 늘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삶일지라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는 가운데 다른 이와의 관계를 진정한 사랑과 용서와 이해로 넓혀 나간다면 하루하루가 떳떳하고 자유로우며 새로운 기쁨과 보람으로 누가 옆에 없어도 스스로 충만함을 누릴 수 있을테지요. 아마도 `나이를 헛먹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보다는 그야말로 작은 축제를 즐기는 느낌을 지닐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스테파노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보내드린 시들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셨다니 기쁩니다. 오늘도 최근에 발견한 몇 개의 좋은 시들을 보내니 가까운 이웃들과 돌려보시길 바랍니다. 제게 편지를 보내는 독자들 중에는 제 자신의 글보다도 제가 인용한 다른 이의 좋은 글들을 보고 그 감동을 표현하는 분들도 적지 않기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제가 발견한 아름다운 글들을 이웃에게 실어 나르는 심부름꾼이 되려 합니다. 한지에 적힌 글은 액자에 넣어 선물용으로 쓰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수녀원의 솔 향기, 아카시아 향기 속에 고국의 늦봄을 담아 보내며 기도 안에 뵙겠습니다. (1996)
Board 삶 속 글 2022.10.13 風文 R 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