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어느 날의 죽음을 생각하며 - 숙영 언니께 `주님, 삶은 하나의 선물입니다. 저희에게 빌려 주신 삶을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러면 죽음이 우리에게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삶은 또 하나의 과제라서 - 함께 살아가라는 , 함께 겪어 가라는 과제입니다. 이 어려운 날들에 서로를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근래에 읽은 벨기에 작가 카트린 제나베의 <이별에 부치는 구름>의 일절입니다. 가르멜수녀원에 계신 저의 언니 수녀님과 함께 수도생활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셨던 외사촌 언니 숙영(소피아) 수녀님. 언니가 암으로 투병하다 몇 달 전 저 세상으로 떠나신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음은 제가 장례미사에 참석하지 못해서일까요? "있잖아, 나 곧 죽는대. 조시 한 편 준비해 두렴." 어느 날 전화로 울멱이며 언니가 말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후 언니는 병원에서 정릉의 본원으로 들어가 마지막 준비를 했습니다. 임종 한 달 전에 제가 찾아뵈었을 때 언니는 거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숙영 낭자는 곧 떠나간다" "이젠 갈증을 축이는 얼음조각만이 내 음식이야" 하며 밝게 웃으셨지요. 가회동에 살던 어린 시절, 저는 동생을 데리고 돈암동의 언니 댁을 자주 갔었는데, 그때의 어질고 단아한 여고생 모습의 언니가 늘 기억에 남는다고 했더니 추억에 잠긴 듯 즐거워 하셨지요. 언니가 제게 마지막 선물로 주신 십자가와 손수 만드신 앞치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언니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세리피나 수녀님은 얼마 전 제게 카드를 보내시며 언니로부터 진정한 사랑, 이해심, 성실함을 배우셨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무덤가에 언니가 좋아하는 백합꽃을 바치고, 인도 대신 평소에 늘 함께 바치던 성무일도를 바치셨다고 해요. "언니, 죽음이 두렵지 않나요?"라고 제가 물었을 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그런데 떠나는 일이 왜 이리 힘들까?" 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던 그 평온한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도 늘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자기중심적인 연민에 빠지지 않고 그토록 의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던 언니가 부럽습니다. 저도 언니처럼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빌며 어느 날 묘지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묘지에서`란 한 편의 시로 적어 봅니다. 욕심을 다 벗어 버린 햐얀 뼈들이 누워 있는 이 침묵의 나라에 오면 쓸쓸하고 평화롭다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한 묶음의 꽃으로 들고 와 인사하는 이들에게 죽은 이들은 땅속에서 어떤 기도로 응답하는 것일까 돌에 새겨진 많은 이름들 유족들이 새긴 이별의 말들 다시 읽어 보며 나는 누군가 한 번쯤 꽃을 들고 올지도 모를 어느날의 내 무덤을 문득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비로소 하얗게 타버린 한 편의 시가 되어 누워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잊혀지는 슬픔에서조차 온전히 해방된 가벼움으로 하얗게 삭아 내릴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내려오는 길 하늘엔 노을이 곱고 내 마음엔 슬픔을 넘어선 한 점 평화가 흰구름으로 깔려 있다. (1995)
Board 삶 속 글 2022.10.25 風文 R 549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지도자를 움직인 편지 한통 1983년, 맨체스터 출신의 5학년인 사만다 스미스는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인 유리 안드러프에게 '새로운 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써서 이렇게 요청했다. "왜 당신은 전세계와 맞서려고 하시나요? 아니 정확하게 우리 나라지요." 그애는 전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안드로푸가 왜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했다. 안드로프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사만다 양, 우리는 매우 노력하고 있고 필요한 모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국간에 전쟁은 없을 것이며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우리는 할 일이 많답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물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우리의 아이들이나 사만다양을 위해서 평화를 원하고 있어요." 편지에는 그는 사만다에게 올 여름에 소련을 방문하라고 초대했다. 그녀는 초대를 받아들였고, 평화 사절로서 2주간 소련에서 머물며 여행을 했다.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할 만큼 용감한 한 소녀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그녀의 경험에 고무되었다. 거지에게 가장 큰 선물 우정이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서 어느날,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는 구걸을 하는 한 거지를 만났다. "하지만 그때는 돈이 한푼도 없었지요. 그 사람은 기다렸고 거친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오. 당황했지만 나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고 말했소. '형제여, 나를 책망하지는 마시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군요.'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는 미소지었소. '방금 형제라고 하셨나요? 그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공짜는 없다.- 에이미 후버 몇년 전, 예술울 전공하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굉장한 3일간의 세미나에 참석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최근에 그가 세미나에 참석해서 믿을 수 없는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인생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올바른 태도와 적응력을 갖춘 듯한 인상을 주었고 결국 나는 참석하기로 했다. 세미나에 가장 강조되었던 개념은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과, 단순히 그 일을 성취하기 전에 어떻게 도움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어떤 일을 나서서 하지 못했고 도움을 구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었다. 나는 약한 인간이었다. 세미나의 둘째날에 우리는 점심시간 동안 끝마쳐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반쯤은 호기심으로, 반은 화가 난 채로 서로를 돌아보며 휴식시간에까지 숙제를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진행자는 한마디로 숙제를 내 주었다. "점심때 재미있는 일을 보고 싶군요." 나는 여러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점심식사를 마쳤다. 모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식당의 복도에서 춤을 추어댔다. 그리고는 진행자에게 식사중에 모자를 빌릴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종업원이 나에게 주문을 받으러 다가오자 나는 커다란 생일 축하 초코렛 케익을 주문했다. (그것은 나의 작전이었다.) 그는 나에게 생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단지 케익이 먹고 싶어서요. 그리고 공짜로 주세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계산을 치렀다. 공짜 케익을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는 오후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왔다. 세미나에서 진행자는 우리들에게 숙제 결과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밥이 일어나서 말했다. "우리들은 마구 돌아다니면서 춤을 췄다. 옷을 서로 바꿔 입자고 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여기 있는 에이미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공짜 초코렛 케익을 주문했답니다." 좌중은 '공짜'라는 부분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자신만이 숙제를 완전하게 끝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의자에 깊숙히 앉아있는 동안 그가 이야기를 끝마쳤다. "자, 나는 에이미가 알지 못하게 식당에 남아 있었답니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와서 커다란 열세개의 초코렛 케익 조각에 촛불을 꽂아서 가져오더군요." 사람들은 환호했고 밥은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나는 도움을 요구하는 법을 배웠다.
Board 추천글 2022.10.25 風文 R 2486
남가일몽(南柯一夢) 南:남녘 남. 柯:가지 가. 一:한 일. 夢:꿈 몽. [동의어] 남가지몽(南柯之夢). 남가몽(南柯夢). 괴몽(槐夢). 유사어] 한단지몽(한鄲之夢). 무산지몽(巫山之夢). 일장춘몽(一場春夢). [출전]《南柯記》. 《異聞集》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곧,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당(唐)나라 9대의 황제인 덕종(德宗:780~804년)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태수를 제수(除授)받고 부임했다.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대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주] 제수(除授) : 천거(薦擧)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시킴.
Board 고사성어 2022.10.25 風文 R 812
‘시끄러워!’ 놀랍게도, 말은 용맹한 자보다 비겁한 자들의 편. 그중 최고의 비책이 ‘돌려 말하기’(간접화행) 전법. 명령, 요구, 지시의 의도를 담은 말을 질문, 청유, 단순 진술의 말로 바꿔 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한다. ‘우리 지금 만나!’라 했다가 거절당하느니, ‘약속 있어요?’라 물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앞사람이 서 있을 때 ‘어이, 앉아!’라 하지 않고 ‘앉읍시다.’ 같은 청유형이나 ‘앉아 주실래요?’ 같은 의문형으로 말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경색시키지 않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고도의 생존전략이다. 이와 정반대 효과를 부르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시끄러워!’이다. ‘집 옮겨!’ ‘나무 잘라!’처럼 명령형은 동사를 쓰지, 형용사를 쓰진 않는다. ‘방이 깨끗하구나’ ‘구름이 희네’ ‘덥군!’ 식으로 감탄형으로는 자주 쓴다. ‘시끄러워’는 지금의 떠들썩한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감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강력한 명령의 언어가 된다. 듣기 싫은 말을 잘 참는 척하다가 한 옥타브 올려 냅다 내지르는 괴성. ‘조용히 해!’ ‘입 다물어!’ ‘닥쳐!’ 같은 노골적인 명령이 없어도, 대화는 멈추고 타협의 가능성은 불타버린다. ‘네까짓 게, 어디서 감히.’ 같은 귀족적 우월감도 얹힌다. 이렇게 강력한 명령의 기능을 수행하는 형용사는 본 적이 없다. 부모, 선생, 성질 사나운 수많은 갑들, 욱하는 성격의 사람들이 흔히 쓴다. 힘의 과시임과 동시에, 자신의 논리 없음과 상대를 설득할 능력이나 의지 없음을 천하에 선언하는 패악질이다. 직연 '직장 인연’의 줄임말. 이 말은 ‘원고(윤석열 검찰총장)와 한동훈은 직연 등 지속적인 친분관계가 있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수 있는 관계’라는 2021년 10월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문에 등장한다. 사전에도 안 나오지만, 이미 직장인들 사이에선 전통적인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쓸모 있는 인맥이다. 하기야 월급쟁이들한테 직장에서 맺어진 인연만큼 소중한 게 있을 수 없지. 우리에게 ‘연’은 줄(연줄)이나 끈으로 인식된다. ‘줄’은 그것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질러갈 수 있는 ‘지름길’을 낸다. 줄이 닿기만 한다면, 줄을 댈 수만 있다면 뭔 짓을 못하랴. 급하면 남과 다름없는 ‘사돈의 팔촌’과 ‘처삼촌’도 소중한 핏줄이고, 스쳐본 적 없던 10년 선후배도 ‘성님’ ‘동상’으로 탈바꿈한다. 데면데면하게 있다가도 동향이면 ‘우리가 남이가’ 하며 어깨동무를 한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인연에 비해 ‘직연’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현대적인가. 가족보다 더 오래 동고동락하며 맺어진 ‘직연’이야말로 검증 가능한 인연이다. 힘 있는 사람과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출세까진 아니더라도 평탄한 직장생활 정도는 보장된다. 하지만 인연맺기를 삶의 문법으로 익힌 사람은 이 세상을 인연인 것과 인연 아닌 것으로 나누고, 자타, 피아, 시비, 선악을 분별함으로써 급기야 민중이 부처이고 민중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게 된다. ‘끈’을 잘못 잡아 이권과 억견의 ‘끄나풀’이 된 사람들도 허다하다. 인연을 떨쳐버려야 작게는 좋은 정치를, 크게는 생사의 길을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른다더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설명문 쓰기 -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까(3/4)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다음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훌룡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내가 믿고 있는 어느 고등학교의 학생이 쓴 글이다. 학생들이 하고 있는 여러가지 회의를 소개하고 있는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울러 다듬어야 할 말의 문제도 살펴보기로 하자. 회의 시간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은 옳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입시 위주의 교육속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게 주인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는 학생들 스스로 움직이고 참여하는 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그 해결 방법도 잘 모르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수가 많다. 우리 학교의 여러 가지 회의는 그런 뜻에서 의미가 있다. 학우회 는 재학중인 전교생을 회원으로 하는 학생자치기구이다. 매달 둘째주 목요일에 열리면 한 달 동안 학생과 각 부서 및 동아리의 활동 사항과 결과를 보고하고 다음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한달 중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토론한다. 여러 가지 건의 사항이 나오지만 최대한 학생들 안에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간담회 라는 모임이 있다. 한 학기 중 학년별로 두 번씩 열린다.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가 둘러앉아 학급회의 때 부족한 이야기라든지 선생님과 함께 해결해야 될 문제들에 대해 토의한다. 학생들은 최소한 한 번씩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게 된다. 진지하고 진실된 얘기가 많이 나와 2-3시간 계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특이한 것은 연석회 가 있다. 3월에 연석회원 전체가 일년 동안의 활동 계획을 세운다. 매월 둘째주 월요일에 모여 계획했던 것을 반성하고 다짐한다. 학우회의 예산안도 연석회의에서 보고되고 통과된다. 현재는 전교생 75명중 21명이 연석회 임원이다. 그리고 전교 회의 가 학기말 마지막 학우회 시간에 열린다. 한가지 주제 또는 한 학기 동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교사와 전교생이 모여 자유스럽게 이야기한다. 친구 또는 선생님께 좋지 않았던 일이 있었던 경우 이 회의에서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처음에는 발표자가 별로 없어 지루하게 생각하지만 한 가지 토의 내용이 결정되면 열띤 토의에 들어간다. 이것으로 간단히 소개를 마친다. 이외의 것은 물론이고,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학생이라면 이와 같은 여러 회의와 학생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겠다. 아무튼 학교의 주인인 우리가 학교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더욱 함께 참여하는 회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3학년 오대혁) ------------------------------------------------------------------- 이 글은 여섯 문단으로 나누어서 썼다. 첫째단에서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자면 학생 스스로 여러 가지 활동에 참가해야 하지만 우리 나라 학교에서는 입학시험 공부만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학생이 주인으로 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단에서는 자기 학교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회의 활동 가운데서 학우회 의 성격과 구성,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고, 셋째단에서는 간담회 의 구성과 회의하는 때와 내용을 말하고, 넷째단에서는 연석회 를, 다섯째단에서는 전교회의 를 이렇게 소개한 다음 마지막 여섯째단에서 보충하는 말과 의견을 적었다. 이 학생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회의 토론 활동을 요령있게 잘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을 다른 학교의 학생들, 그러니까 시험공부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읽으면 이런 학교가 우리 나라에 있는가 싶어 신기하게 여길 터이고, 그래서 학생들이 채워주기 위해서는 이 학생이 쓴 글과는 좀 다른 형식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곧 설명문보다는 기록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그 여러 가지 회의나 토론 활동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를 정해서, 실제로 어느 날 어디서 몇 사람이 모여 무슨 말을 한 것을 말한 그대로 기록해서 읽도록 한다면 읽는 사람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눈앞에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아무리 서투른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설명문대로 쓸 자리가 많겠지만, 비록 아무리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설명으로 그친다면 결국은 지식을 개념으로 머리에 넣어주는 것밖에 안된다. 그런데 기록문이나 서사문은 어떤 현실을 간접으로 체험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공부를 해야 하는 글은 역시 눈으로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적어 보이는 글-서사문, 사생문, 기록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글에 씌어 있는 말을 좀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에 적힌 말들은 어른들의 글말을 따라 써서 아주 별나게 오염이 된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말을 썼다고는 볼 수 없다. 그 까닭은 이 글의 성격이나 형식에서 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서사문이나 기록문이나 사생문으로 쓰지 않고 설명문으로 썼기 때문에 삶의 말이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개성있는 자기 말고, 우리말을 살려서 쓸 수 있다. 이 글에 나오는 말들을 다듬어 쓰는 일에서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싶다. 첫째는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이고, 둘째는 될 수 있는 대로 고쳐 쓰는 것이 좋은 말이고, 셋째는 다른 말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첫째,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은 다음과 같다. -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수가 많다. -으로서의 는 우리말법이 아니다. 포기 란 말은 많이 쓰지만 쉬운 우리말이 있으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 대문은 주인으로서 가진 권리를 내 버리는 수가 많다 고 하면 된다. - 그런 뜻에서 의미가 크다. 의미 가 뜻 이니까 같은 말이 되풀이 되었다. 의미 는 어떤 경우에서도 모두 뜻 이라고 하면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그러니 위의 대문은 그런 점에서 뜻이 크다 고 쓰든지, 그래서 뜻이 크다 나 그래서 큰 뜻을 가졌다 고 쓰면 될 것이다. - 매달 이것은 달마다 라고 써야 한다. - 각 부서 및 동아리의 활동사항과 결과를 보고하고 이 대문에서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은 및 이란 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실제로 입으로 말하지 않으니 마땅히 와 라는 토를 써야 한다. 그 다음에 곧 또 과 가 와서 읽기가 안 됐으면 이 과 를 다른 이음토로 바꾸면 된다. 그래서 이 대문은 각 부서와 동아리의 활동상황이며 결과를 보고하고 이렇게 쓰면 좋겠다. - 문제등에 대해 이 등 이 일본글에서 왔다. 문제들에 대해 하면 그만이다. - 진실된 많이 쓰고 있는데, 잘못 쓰는 말이다. 진실하다 란 말은 있어도 진실되다 란말은 없다. 그러니 진실한 이 아니면 참된 이라고 써야 옳다. - 이 외의 것 이 외 가 좋지 않다. 이 밖 이나 그 밖 이라고 하면 된다. -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학생이라면 여기 또 -으로서의 가 나왔다. 이것은 일본말법이니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참된 이나 바른 이라고 쓰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위의 대문은 참된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이라면 이렇게 써야 바른 우리말이 된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피천득편" 피천득(1910~2007) 수필가. 시인. 영문 학자. 서울 출생. 중국 호강 대학 영문과 졸업. 하버드 대학 수학. 피천득은 한국의 서정적 수필의 대표자이다. 생활 속에서 명상의 표적을 찾아 내어 섬세하면서도 다감한 문장으로 그려 낸 그의 수필은 '수필의 전형'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순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암만 되불러도 나오지를 않으니 전신줄이 끊어졌나 보다. 나는 어두운 강가로 나왔다.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려 온다. 이따금 기관총의 이를 가는 소리도 들린다. 잡북 쪽을 바라다보니 볼케이노 터지는 남양의 하늘보다 더 붉다. 그리고 쉬일새없이 번개 같은 불이 퍼졌다 스러진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겨울 방학이므로 학생들은 다 집에 돌아가고, 나하고 남양에서 온 사람 몇만이 기숙사에 남아 있었다. 이불을 쓰고 드러누웠다. 여전히 대포 소리, 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온다. 여러 번 몸을 뒤채도 잠은 들어지지 않았다. 아까 전화로 들은 그의 음성이 나를 괴롭게 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총에 맞아서 쓰러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불붙은 병원에서 어쩔 줄 몰라 애통하는 양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나는 서가회라는 곳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을 하였다. 그리 심한 병은 아니었으나 기숙사에는 간호해 줄 사람이 없어서 입원을 하였던 것이다. 요양원이 있는 곳은 한적한 시외였다. 주위에는 과수원들이 있었고 멀리 성당이 보였다. 병실이 많지 않은 아담한 이 요양원은 병원이라기보다는 별장이나 작은 호텔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흑단 화장대 거울에 정원의 고목들이 비치는 것이었다. 간호부들이 아침 찬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들 얼마나 고적하였었을까. 내가 입원한 그 이튿날 아침 노크 소리와 함께 깨끗하게 생긴 간호부가 들어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하고 그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 때의 나의 놀람과 기쁨은 지금 뭐라 형용할 수가 없다. 그 때 그가 가지고 들어온 오렌지 주스와 삼각형으로 자른 얇은 토스트를 맛있게 먹은 것이 가끔 생각난다. 마멀레이드도 맛이 있었다. 나는 그 후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그런 오렌지 주스와 토스트를 먹어 본 일이 없다. 그는 틈만 있으면 내 방을 찾아왔다. 황해도 자기 고향 이야기도 하고 선물로 받았다는 예쁜 성경도 빌려 주었다. 자기는 '누가 복음'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타고르의 "기탄자리"를 나에게 읽어 준 때도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동이 터 갔다. 교문을 나서니 찬바람이 뺨을 에인다. 시외요 때가 새벽이므로 한적도 하겠지마는, 길에 공장 가는 노동자 하나 보이지 아니한다. 싸움을 중지하였는지 대포 소리도 아니 들리고 사면이 모두 고요하였다. 나의 마음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연상할 만치 고요하다. 별안간 어디서인지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쳐다보니 비행기들이 열을 지어서 잡북 방면을 향하고 날아간다. 용기를 내느라고 두 주먹을 쥐고 걸레 같은 보따리 진 사람, 누더기 같은 이불 멘 사람, 한 아이는 앞세우고 한 아이는 안고 또 한 아이는 끌고 가는 여인--피난민들이다. 그때 본 산 아이의 둔한 눈들이, 여인네의 해쓱한 눈들이 지금도 내 눈앞에 어른거린다. 길에는 차차로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이 황포강 물결 같이 흐른다. 푸른 옷 입은 사람들의 푸른 물결! 나는 그들 속에 섞여서 가는 동안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만약 불행히 그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를 잘못 일본 사람으로 본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아무거라도 얼른 잡아 타려고 하였으나 전차도 버스도 불통이었다. 가든 브리지에 다다르니 다릿목에 철망으로 만든 방색이 두 겹으로 막혀 있고, 그 뒤에는 흙을 담은 전대를 쌓아 놓았다. 그리고 공공 조계 미국 군인들이 총창을 낀 총대를 겨누고 있다. 기관총도 갖다 놓았다. 나는 어떻든 북사천로로 갈 작정이므로 빠둔조를 건너지 않고 사천로교로 갔다. 그 다리에도 역시 견고한 방색을 시설하여 놓았다. 북사천로를 내려다보니 그 곳이야말로 수라장이다.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몰려오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 그 길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었다. 밀물같이 밀려오는 그 군중과 정면 충돌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하고 걷기 시작하였다. 벌써 숨이 막힐 지경이요 정신이 아뜩아뜩하여진다. 빼- 소리가 났다. 발을 주춤하니 바로 내 앞으로 오는 노동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엎어진다. 이어서 총 소리가 났다. 나는 얼떨결에 사람들의 줄기를 옆으로 뚫고 가로터진 샛길로 빠져나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상점 속에 숨어 있던 편의대 하나가 나를 일본인으로 보고 쏜 것이 빗나가서 그 노동자를 죽였는지 모른다. 골목으로 뛰어들어온 나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달아났다. 육증한 바퀴 소리가 들려 온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그리로 쏠렸다. 탱크 두 대가 시멘트 바닥 위로 궁굴어 왔다. 잡북 전선으로 가는 것이다. '비행기다!' 사람들은 일제히 담모퉁이로 가서 달라붙었다. 궁굴어가던 철갑차도 땅에 붙어 버렸다. 소란하던 거리가 고요하여졌다. 비행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사람 모양으로 마음은 급하고 걸음은 아니 걸렸다. 간신히 소방서 앞을 지나서 인적 그친 거리를 걸어서 북사천로로 돌아 나가려 할 때, 일본 병정 하나가 총대를 내밀며 달려든다. 나는 일본말은 알아도 입술만 떨리고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적막한 아스팔트 위에는 불규칙하게 밟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울리었다. 부상당한 병정들을 실은 적십자 자동차 하나가 지나간다. 아마 그가 있는 병원으로 가나 보다 하고 바라보았다. 빨간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위로 안개 같은 연기가 퍼져 오른다. 불자동차 소리도 났다. 북사천로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덩이 튀는 소리와 아우성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일본 육전대 방색 가까이 왔을 때 패--ㅇ 하고 탄자 소리가 나더니 재각재각 다시 총 재는 소리가 난다. 이어서 기관총을 내두른다. 나는 그 자리에 섰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5분이 지났을까, 총소리는 그쳤다. 나는 그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시내 클리닉에 도착하였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위험한 곳에를 어떻게 오셨어요." 그는 나를 자기 일하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총 소리 대포 소리가 연달아 들려 온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임으로나 인정으로나 환자들을 내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맑은 눈을 바라다보았다. 상해 사변 때문에 귀국한 지 얼마 후였다. 춘원이 "흙"의 여주인공 이름을 얼른 작정하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는 문득 그를 생각하고 '유순'이라고 지어 드렸다. 지금 살아 있는지 가끔 그를 생각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대머리도 머리를 말린다? - 존 페카넨 1998년 가을, 크레이그 셔골드는 자신이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종양이 호흡과 심장박동, 그리고 혈압을 조절하는 중추인 뇌간의 맨 윗부분에 위치해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 그의 어머니 마리온은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주여, 크레이그는 준비가 안됐어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부디 그 아이를 데려가지 마세요." 그녀의 기도는 전혀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몇 시간의 수술 끝에 의사는 종양의 위치가 위험해서 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주일 후에는 더욱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악성종양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었지만 크레이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크레이그의 가족들, 친구들, 축구팀 선수들로부터 격려가 담긴 카드를 아주 많이 받았다. 의사가 이렇게 농담할 정도였다. "기네스 북에 오를 만한 일이군요." 하지만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갔고 왼쪽 팔과 다리에는 힘이 없어져 갔다. 그의 음성은 느릿느릿하지만 차분했고 나중에는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약물치료로 대머리가 된 것에 대해서도 장난스럽게 말했다. "똑똑." "누구세요?" "머리를 말려드리려구요." "머리를 말려요? 하지만 난 대머리라구요!" 크레이그가 말했다. "엄마, 전 카드가 좋아요. 언제나 카드를 받을 때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9월이 되자 크레이그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기위해 가족들은 그가 카드를 많이 받아서 기네스 북에 오를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반응은 엄청났다. 수천장의 카드가 도착한 것이다. 마가렛 대처나 찰스 황태자, 부시와 레이건 대통령, 고르바초프, 마이클 잭슨과 실베스터 스탤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사들도 카드를 보내왔다. 그후로 크레이그는 정말로 기네스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의 기록은 다른 영국인 소년이 세운 1,000,265통이었다. 이런 생각은 그에게 목적의식을 심어주었고 적어도 죽움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상태가 나아졌다. 실제로,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설치된 중앙우체국의 크레이그 개인 사서함에는 카드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1989년 11월 17일은 그에겐 사건이었다. 비록 크레이그는 비틀거렸지만 지방 축구 클럽의 기념식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0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방 우체국 직원은 크레이그에게 모두 1,000,266통의 카드를 건네주었다. 기록이 갱신된 것이다. 크레이그가 감사 인사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좋은 친구를 위해'라는 노래를 불렀다. 6킬로미터 떨어진 버지니아의 사로츠빌에는 통신 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존 크루그라는 사람이 있었다. 크루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크레이그와 그의 카드에 대해 말해주었고 역시 카드를 보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크루그가 그러마고 승낙한 다음 믿지 못할 일들이 그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드 캠페인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던 중에, 그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의학적 가능성이 제고되었는가, 그 소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재벌이 된 후로, 크루그는 단 한 번도 어떤 사람에게 돈을 그냥 준 적이 없었다. 그는 원칙을 깨고 싶지도, 크레이그의 가족들의 희망을 짓밟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인 닐 카셀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버지니아 대학 건강과학센터의 신경외과 교수였다. "여보게, 닐. 그 가족들을 만나주겠나? 나는 그동안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네. 비용은 내가 부담하지." 유명인이된 셔골드 가족들과 전화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박사는 8월 7일에 편지를 썼다. 며칠 후, 그의 편지는 물론 수백만 통의 편지 속에 파묻혀져 버렸다. 기록을 갱신한 이래로 카드는 더욱 많이 도착하기 시작해서 2천 6백만통을 돌파했고 크레이그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12월 20일, 주치의인 다이아트 박사는 크레이그의 부모를 사무실로 불렀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최근 검사결과 크레이그의 종양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군요." 예상은 절망적이었다. 가족들은 슬퍼했고 당분간은 크레이그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문득 쌓여 있는 우편물을 뜯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더미 같은 뭉치 속에서 그녀는 카셀 박사의 편지가 들어있는 항공 우편 봉투를 골라냈다. 그것을 읽고 난 뒤에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야!" 그녀는 소리쳤다. 즉시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지만 자신의 병원에서 이번에 강력한 방사능을 종양에 직접 방출하는 감마 나이프라는 치료기를 새로 구입했다고 말해주었다.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크레이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그 편지를 보여주었다. "이건 주께서 보내 주신 기적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3월 1일, 수술은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감마선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고 카셀 박사는 수술실을 나와 크레이그의 부모에게 좋은 소식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회복실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대어 속삭였다. "예야, 이제 모두 끝났단다. 모두 끝났어." 크레이그는 눈을 깜빡이며 미소지었다. 그의 회복 역시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의 말소리는 점점 빠르고 정화해 졌으며 단어를 말할 정도가 되었다. 수술이 끝난 지 이틀 뒤, 카셀이 그레이그의 입원실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야기했다. "선생님, 당신은 무시무시한 전사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의술을 가진 분이세요." 그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조직검사에서는 종양의 조직에 어떤 암세포도 발견되지 않았다. 누구도 무엇이 암세포를 없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크레이그가 완치되었다는 것이다. 몇주 후에 존 크루그는 셔골드 가족을 방문했다. 그 사업가가 병실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그의 손을 잡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당신이 우리의 수호천사군요." 크루그는 씩 웃으며 크레이그에게 권투장갑을 건네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너는 절대 지지 않을 거야." 그후에 크레이그는 감사의 선물을 보내왔다. 몇 달 전에 엄마인 마리온이 찍은 합성사진으로, 성조기를 배경으로 록키가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 크레이그의 얼굴이 덧붙여져 있는 것이었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의 가장 큰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Board 추천글 2022.10.24 風文 R 1718
낙양지귀(洛陽紙貴) 洛:물 이름 락. 陽:볕 양. 紙:종이 지. 貴:귀할 귀. [원말]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동의어] 낙양지가고(洛陽紙價高). [출전]《晉書》〈文 傳〉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의 풍물을 읊은《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시인이《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저술],《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환관.문인.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2.10.24 風文 R 809
이름 짓기 딸애가 배시시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한달이 다 되도록 이름을 못 지었더랬다. 출생신고는 ‘태어났음’을 신고하는 게 아니라, ‘이름’을 신고하는 행위렷다. 이름은 대상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다. ‘알버섯, 붉은완두, 검정콩, 몽당솔, 누운잣나무’ 따위는 식물의 생김새나 색깔 같은 특성을 포착하여 지은 이름이다. 사람이나 동물, 사물에 빗대어 짓기도 하는데, ‘할미꽃, 애기똥풀, 개구리참외, 쥐똥나무, 국수맨드라미, 접시꽃’ 같은 이름이 그렇다. 당신의 이름처럼, 이름은 대상에 대한 희망의 표명이기도 하다. 성명학에 따르면, 이름은 존재의 운명을 좌우한다. 당신도 가끔 본인 이름을 곱씹으며 거기에 담긴 희망(바람)대로 살고 있는지 가늠해보곤 할 테지?(‘바다를 진압한다’는 이름 뜻과 ‘수영을 못 하는’ 현실은 나를 이중인격자로 만들었다오.) 이름은 대상에 대해 뿌옇게 퍼져나가는 상상을 잡아 붙들어 매고 실체화한다. 닻이 바닥에 박혀 배를 고정시키듯, 그림이나 사진에 붙은 제목은 이미지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정박 기능’을 한다(롤랑 바르트). 갑옷과 투구를 쓴 병사가 벌거벗은 여성과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하다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을 보게 되면 감흥이 남달라져 다시 들여다보게 되듯이. ‘청와대’란 이름은 건물 지붕이 파래서 지은 이름이지만,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마는, 용산으로 옮아가는 대통령 집무실 이름은 따로 생각해 두었겠지?(한달 안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더라. ‘쌔우다’ 아이를 돌보는 시기에만 하게 되는 특이행동이 있다. 다른 행동, 예컨대 ‘어부바’를 해주거나 밥을 떠먹이거나 재우는 일은 (마음만 굳세게 먹는다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괴기스러운 사이가 아니라면, 배설을 돕는 일은 결단코 하지 않는다. 기저귀를 떼고 나니 아이는 수시로 ‘아빠, 쉬’ 하며 화장실 동행을 요구했다. 그러면 아내에게 “오줌 쌔우고 올게.”라 한다. 잠자기 전이나 외출 전엔 “오줌 쌔웠어?”라며 확인한다. ‘싸다’의 사동형으로 ‘싸이다, 쌔다’란 말이 있지만 성에 안 찼다. ‘자다’가 ‘재우다’인 것처럼, ‘싸다’도 ‘쌔우다’지! ‘누다’에서 온 ‘누이다, 뉘다’도 안 썼다. ‘오줌싸개’란 말에서 보듯이 아이는 의지적인 ‘누기’보다는 제어불능의 ‘싸기’에 가까우니까! 나는 이 말을 자랑스럽게 썼다. 바지를 벗기고 ‘쉬’라는 효과음을 내고 똥을 닦아주고 바지를 올리고 손을 씻겨야 하는 이 수고로움을 ‘싸게 하다’로 어찌 담으리오. ‘먹이다, 입히다, 울리다, 웃기다, 깨우다’ 같은 사동사는 두개의 사건을 하나의 사건처럼 표현한다. 그 안에는 시키는 주체와 시킴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가 다르다. 두 주체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옷을 입히다’는 아이에게 ‘만세’를 하게 한 다음에 보호자가 옷을 직접 입혀 주는 거라면 ‘입게 하다’는 “옷 입어”라고 말만 할 거 같다. ‘자립’은 이를테면, 오줌을 ‘쌔우다’에서 ‘싸게 하다’를 거쳐, 종국에는 스스로 ‘싸는’ 여정이랄까?(어휴, 늙음은 처음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군.)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