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2 - 헬리스 브리지 몇 년 전, 한 신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어서 무엇을 하갰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하루하루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겠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그 매일을 만들어 갈 거예요."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렇게 해왔다. 팀 피어링 당신이 밖으로 나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서 있는 이 시점에서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오직 행동뿐이다. 당신 자신을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하는 육체적인 일뿐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작은 의식을 치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가? 내가 오늘 전심전력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부름이 있을까?" "이 일에 대한 나의 집중도는 어느 수준인가? 내 삶은 균형이 잡혀 있는가? 내가 충분히 열과 성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수박 겉핥기로 끝날 것인가?"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3 - 짐 캐츠카트 내 평생 가장 자극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 이상형에 도달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은 여러분을 자신의 가장 고상하고 존경할 만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도록 자극한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하라, "나의 가정 칭찬할 만한 부분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가장 재능 있는 부분을 살리고, 가장 잘하는 분야를 개척하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은 여러분의 사고의 축을 바꿔 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 더 넓게 보고, 조금 더 타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팀 시워드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타이디 카'라는 자동차 판매 회사에서 일했는데, 내 강연을 다 들은 후에 성공의 요령을 물어 왔다. 나는 그에게 일체의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앞서 말한 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대답을 실천한 결과,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타이티 카'의 국제 판매 회의가 개최되던 날, 나는 만찬의 사회를 봤다. 맨 처음 데니스 웨이들 리가 무게를 잡으며 연설했다. 그리고 나는 마이크를 사장에게 넘겼다. 사장이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저쪽에 있는 흰색 코버트를 차지할 사람을 발표하겠습니다. 저 차는 국제 판매 경연 대회에서 영예의 우승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올해 경연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만, 일등은 이등보다 무려 삼백 대나 더 많은 차를 팔았습니다. 이등과 삼등은 한 대 차이, 삼등과 사등은 자동차 반대 차이입니다. 올해의 일등은 미시건 베이 시티 대리점의 팀 시워드입니다." 좌중은 흥분의 도가니로 떠들썩했다. 팀은 동료의 무등을 타고 홀 중앙에 있는 코보트의 옆으로 옮겨졌다. 나는 소란을 가리앉히며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서 그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물었다. "우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저는 겨우 19살의 나이로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당시 사회 생활이 전혀 없었던 저는 집에서 나 자신에게 자문했습니다. 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싶다. 그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유니폼을 말끔하게 다려 입고, 서류를 잘 정리하고, 모든 고객의 개개인에게 가장 좋은 판매법을 찾았고, 자동차 한 대를 팔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나의 하루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기 의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 자신에게 이상형이 되기 위한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향상된 매일이 모여 충실한 일년이 되었고, 이제 나는 세계적인 판매원이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겁니다." "정말 비범하시군요." 내가 감탄했다. 그는 말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인 판매원은 어떻게 뉴올리언즈의 국제 회의에 참석할까?' 나는 국제적인 판매원이라면 일등석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리라 추측했습니다." 나는 말했다. "아니, 당신의 우승을 모르는 상황에서 일등석 편도 항공권을 샀다는 말입니까?" "내가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오, 물론 그럴 필요가 없지요. 당신에게는 코버트가 있으니까요."
Board 추천글 2022.11.22 風文 R 2502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能:능할 능. 書:글 서. 不:아니 불. 擇:가릴 택. 筆:붓 필. [출전]《唐書》〈歐陽詢傳〉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저수량,유공권(柳公權),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 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능서불택필’은 ①《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②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②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전서(篆書)/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Board 고사성어 2022.11.22 風文 R 850
다섯 살까지 “이게 뭐야?” 어린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자, 삶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즉,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 이 이름(명칭)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대상의 본질과 관계없는 자의적 ‘기호’가 아니다. 아이에게 ‘이름’은 처음부터 대상이 갖고 있던 특성이다. 마치 빨간 껍질 속에 하얗고 단단한 과육이 들어 있고 아삭아삭 씹히며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것이 사과의 특성이듯이, ‘사과’라는 이름도 그 대상의 본래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끝없이 묻는다. ‘이게 뭐야?’ 네댓 살이 되면 질문이 바뀐다. ‘엄마는 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나무는 왜 흔들려? 해는 왜 저녁엔 안 보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기원이나 존재 이유, 질서에 대한 온갖 기상천외한 가설을 세우고 막힘없이 묻는다. 여기가 인간이 동물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배고픔, 아픔, 공포, 기쁨을 나타내는 자기표현이나 상대방에 대한 경고, 위협, 허용과 같은 신호 행위는 동물에게도 보인다. 하지만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으로 사물을 대신하는 사유능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난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는 세계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게 아니다. 그가 딛고 선 사회, 역사, 문화라는 발판 위에 성립한다(비고츠키, <생각과 말>). 그러다 보니, 문득 의문 하나가 남는다. 만 5살 입학은 ‘과도한 경쟁과 선행 학습, 사교육’에 어린아이들을 몰아넣는 일이다. 이런 반교육적 학교는 여섯 살부터는 견디거나 허용될 만한 곳인가? 학교는 이 세계에 다가가는 배움의 공간은 될 수 없는가? 열쇳말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지인이 조심스레 말한다. “밤새 누가 벽을 두드리더라.” 별일 없는 이 동네에 그럴 리 없는데 이상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벽시계가 내는 소리였다. ‘틱, 틱, 틱’ 하는 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지냈다. 뭔가를 알아채는 감각은 한곳에 얼마나 눌러앉아 있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섬세함은 이방인의 전유물. 안주하는 자에게선 찾을 수 없다. ‘열쇳말’은 한 사회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외신에 다시 등장한 ‘banjiha’(반지하)란 말은 한국의 사회적 격차와 주거 형태의 문제점을 단박에 꿰뚫는 열쇳말이리라. ‘반지하’에 쓰인 접두사 ‘반(半)-’은 ‘절반’이란 뜻도 있지만, ‘~와 거의 비슷한’이란 뜻도 있다. ‘반나체’는 절반만 벗은 게 아니라, 거의 다 벗은 상태. ‘반죽음’도 거의 죽게 된 상태이다. ‘반지하’도 ‘절반이 지하’인 집이 아니다. 지하실과 다름없는 집. 끽해야 아침 한때 등이 굽은 햇빛이 지나치는 집이다. 나의 20대 딸은 밥상에 김이 없어도 울고, 있어도 운다. 밥을 아귀차게 잘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내년 봄,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얼마 못 가 이 ‘김’을 못 먹게 되지 않냐고. 그러고 보니 일본 시민단체와 교류하는 선생한테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 좀 보내달라는 연락이 일본에서 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딸에게 ‘김’은 우리의 파국적 상황을 예견하는 열쇳말이다. 나는 이 세계의 아픔과 모순을 어떤 열쇳말로 알아채고 있을까. 쩌렁쩌렁 울리는 저 시곗바늘 소리도 못 알아채는 이 무감각함으로….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류달영편" 류달영(1911~2004) 농학자. 사회 운동가, 수필가. 경기도 이천 출생. 수원 고농 졸업. 미네소타 대학 수학. 서울 농대 교수. 재건 국민 운동 본부장 역임. 그는 수필 "신문 망국론" "흙과 사랑"에서는 경세가로서의 풍모와 자연 찬미를 보여 주었다. 담백하고 진지한 인간상을 모색하는 철학적인 필치로 정평이 높다. 초설에 붙여서 - 류달영 -전진을 위한 회고와 전망- 어느 날 나는 텅 빈 운동장에서 두 팔을 앞뒤로 높이 휘저으면서 혼자 걸어가는 한 어린이를 지나쳐 볼 수가 있었다. 밤 사이에 내린 첫눈으로 뒤덮인 운동장은 동녘 하늘에 솟아오르는 햇살에 더욱 눈이 부시었다. 그 흰 눈 위를 생기가 넘치는 그 어린이는 마치 사열대 앞을 행진하는 군인처럼 기운차게 신이 나서 꺼덕꺼덕 걸어가는 꼴이 하도 익살맞아서 나는 혼자 웃음을 참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린이는 가끔 그 활발한 행진을 멈추고 차려의 자세로 서서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동안씩 바라보다가 전과 똑같은 보조로 두 팔, 두 다리를 높직높직 쳐들면서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옥판선지 같이 깨끗한 흰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자국자국 무늬져서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눈 덮인 운동장을 꼿꼿하게 일직선으로 걸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걸어가다가는 발을 멈추고 서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가 어느 정도로 똑바른가를 검토해 보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 어린이가 걸어간 발자국은 부분적으로는 곧았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 곳에 바른편으로 또는 왼편으로 굽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그 어린이의 행동을 통하여 적지 않은 것을 느꼈고, 또 배울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부귀 빈천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나 자기들의 일생을 곧고 바르게 걸어가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걸어간 그 생애의 발자취들은 작고 큰 허다한 파란 속에 가지가지의 복잡한 곡선을 그리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영원히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눈 덮인 들판에 가지가지의 발자국을 남기고 걸어가는 나그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눈 덮인 운동장 위를 걸어가는 저 어린이가 짬짬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고개를 돌려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이윽히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슬기로운 일인가? 공자의 뛰어난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증자는 '내가 날마다 세 차례씩 스스로 반성해 본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지나간 하루의 생활을 살펴본다. 주말에는 1주일의 생활을, 월말에는 한 달 동안의 생활을, 그리고 연말에는 1년 동안의 생활을 더듬어 살펴보는 것이다. 또 누구나 자기의 생일에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을 어렴풋이나마 되씹으면서 자기의 걸어온 삶의 발자국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뚫어보고 스스로 지나온 자국을 살펴보는 일은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자기 자신과 스스로 걸어온 발자취를 때때로 돌아다 보지 않고서는 걸어가는 옳은 방향을 찾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스도가'손에 쟁기를 쥔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제자에게 경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경고는 결코 걸어온 과거를 살피고 되씹어 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사람이 뚜렷한 큰 목표를 세운 다음에는 그 목표를 잠깐 동안이라도 놓치지 말고 한결같이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뜻이다. 눈 덮인 운동장을 일직선으로 걸어가고자 애쓰는 저 천진한 어린이의 발자국이 곳곳에서 구부러진 데 대하여 우리는 그 원인을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저 어린이의 세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발자국이 곳곳에서 구부러진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저 어린이가 만일 운동장 저편에 서 있는 큰 포플러나무나 또는 전신주를 일정한 목포로 삼고 그것만을 향하여 한결같이 걸어갔더라면 저 어린이의 발자국의 줄은 매우 곧게 되었을 것이다. 그 어린이는 앞을 향하여 곧게 나가려고 치밀하게 주의를 했었지마는 먼 앞에 움직이지 않는 일정한 큰 목표를 세우는 슬기가 아직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으로서 각각 자기 자신의 한결같은 목표가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가면서, 때때로 지나온 과거를 보살피고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경주장에서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하더라도 골을 향해서 달리지 않는다면 그 달음질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귀중한 일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는 한스럽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나'에 있어서 두 가지의 '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물론이지마는, 또 우리라는 사회인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작은 나'와 '큰 나'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알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인생의 걸음걸이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작은 나'와 '큰 나'의 이중의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민족이 장구한 역사의 험한 길을 걸어오다가 이제 비로소 세계 무대 위에서 살길을 열어 보고자 거족적으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가 '작은 나'로서의 행로의 목표와 회고도 중요하지마는 '우리'로서의 행로의 확고한 목표와 겸허하고 정성스런 회고가 절실히 요청된다. 첫눈이 내린 오늘, 나는 눈 벌판을 걸어가던 저 어린이를 더욱 잊을 수가 없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부활절 아침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고 봄바람, 봄햇살을 마시며 새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첫노래로 봉헌하는 4월의 아침 이 아침, 저희는 기쁨의 수액을 뿜어내며 바삐 움직이는 부활의 나무들이 됩니다. 죽음의 길을 걷던 저희에게 생명의 길이 되어 오시는 주님 오랜 시간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 힘없이 누워 있던 저희에게 생명의 아침으로 오시는 주님 당신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흔들리고 당신께 희망을 두면서도 자주 용기를 잃고 초조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온 저희는 샘이 없는 사막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사소한 괴로움도 견뎌내지 못하고 일상의 시간들을 무덤으로 만들며 우울하게 산 날이 많았습니다. 선과 진리의 길에 충실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당신을 배반하고도 울 줄 몰랐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보시고 이제 더욱 새 힘을 주십시오 미움의 어둠을 몰아낸 사랑의 마음 교만의 어둠을 걷어낸 겸손의 마음에만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스며들 수 있음을 오늘도 빛이 되어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이 살아 오신 날 어찌 혼자서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어찌 혼자서만 주님을 뵈오러 가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위해 기쁨으로 달음질치던 제자들처럼 한시 바삐 뵙고 싶은 그리움으로 저희도 이웃과 함께 아침의 언덕을 달려갑니다. 죄의 어두움을 절절이 뉘우치며 눈물 흘리는 저희의 가슴속에 눈부신 태양으로 떠오르십시오 하나 되고 싶어하면서도 하나 되지 못해 몸살을 하는 저희 나라, 저희 겨레의 어둠에도 환히 빛나는 새 아침으로 어서 새롭게 살아 오십시오
Board 삶 속 글 2022.11.18 風文 R 634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자신에게 해답을 구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야곱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 엎드려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때, 한사람이 다가와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 집 열쇠를 찾고 있어요." 야곱이 대답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요?" "그럼요, 도와주시면 전말 고맙지요." 그래서 해리는 야곱과 함께 잃어버린 열쇠를 찾았다. 30분 동안이나 찾았지만 허탕을 치자, 해리가 말했다. "당신의 열쇠는 여기에 있는 것 같지가 않은데요. 정말 이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까?"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지만, 이곳이 더 밝아서요."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1 - 데이비드 요교 2세 1979년 빌 맥그레인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까?" 그 순간부터 나는 그런 식으로 삶에 접근해 갔다. 그 질문은 나에게 내 인생에 대한 선택과, 책임감을 다시 일깨웠다. 브라이언 클레머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령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바로 그때부터 나는 목적을 달성할 가치가 스스로에게 있는가의 여부 대신에 그 목적이 나에게 어울리는 가치를 지녔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 자신이 더욱 평화롭고, 조화롭고, 부족함이 없는 완전체라는 사실을 한치의 거짓없이 믿게 되었다. 나는 두 명의 어린 자식을 홍보 담당으로 동원하여 시골길을 떠돌게 하며 맨손으로 작은 광고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내 남편은 나를 데레고 빌 고브의 강연회에 갔다. 그날 그 강연장에는 여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 강연을 듣는 도중, 돌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빌처럼 사람들에게 강연을 해야 하는 여성이 바로 내가 아닐까?" 내 가슴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야!" 이제 나는 전 세계를 누비며 강연한다. 여러분, 당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 부름에 답하세요.
Board 추천글 2022.11.18 風文 R 2408
누란지위(累卵之危) 累:여러,포갤 루. 卵:알 란. 之:갈 지(…의). 危:위태할 위. [준말] 누란(累卵). [동의어] 위여누란(危如累卵). [참조] 원교근공(遠交近攻). [출전]《史記》〈范雎列傳〉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Board 고사성어 2022.11.18 風文 R 775
만인의 ‘씨’(2) 나는 지난주에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자’는 허무맹랑한 칼럼을 썼다. ‘발칙한’ 학생 하나가 ‘이때다’ 싶었던지 카톡으로 나를 불렀다, ‘교수 김진해씨!’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이 믿음직한 청년을 당장 잡아들여 곤장을 쳐야겠으나, 먼저 밥이라도 사먹여야겠다. 그 학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말하기(구어)와 쓰기(문어)를 같은 것 또는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쓰기는 말하기를 받아 적는 것, 그게 언문일치지! 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엄연히 다르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구보 작가님’이라 부르는 것과 신문에 ‘소설가 구보씨가 새 책을 냈다’고 쓰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문의 호칭 체계엔 이미 신문만의 고유한 위계질서가 녹아 있다. 같은 업계 종사자라도 감독, 연출, 피디, 작가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지만, 배우는 아무것도 안 붙인다. 배우 이정재씨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어도 대부분의 신문은 ‘이정재 감독’이라 하지 않고 ‘감독 이정재’라 한다. ‘배우 이정재’로 쓰던 버릇을 버릴 수 없었던 게지.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 할지 ‘씨’라 할지 논쟁할 때도 ‘조선의 4번 타자’를 이대로 ‘이대호’라 할지, ‘이대호 선수’라 할지, ‘이대호씨’라 할지 토론하지 않는다. 문어(글말)의 일종으로서 특수한 지위를 누려온 신문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호명해왔는지에 대해 언론인들끼리 점검해보길 권한다. 고유한 호칭 체계의 발명은 위계적인 말의 질서를 평등하게 바꾸는 너울이 될지도 모른다.(*대우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씨의 쾌유와 안녕을 빈다.)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그렇다. 말은 깨진 거울이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비추면서도, 깨진 틈 사이로 세계를 구기고 찢어버린다. 특히, 혐오표현은 한 사회의 균열상과 적대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흔한 방식이 ‘급식충, 맘충, 틀딱충’처럼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것. 대상을 규정짓는 말이 만들어진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물에 잉크가 퍼져나가듯, 상상은 그 말을 씨앗 삼아 번져나간다. 하청노동자를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로 부르자마자, 그 말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불뚝거리고, 대하는 방식도 정해진다. 사람을 벌레로 부른 이상, ‘벌레 대하듯’ 하면 된다. 불결하고 불순하고 해로운 존재이므로 하나하나 박멸하거나, 한꺼번에 몰살시켜야 한다. 적어도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않게 쫓아내야 한다. 거기에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하고 필요하기까지 하다. ‘어떤 말을 썼느냐?’보다 ‘누가 썼느냐?’가 더 중요하더라. 누가 썼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나니. 일본 극우세력들이 ‘바퀴벌레, 구더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재일 한국인·조선인들이다. ‘하퀴벌레’란 말이 원청 노동자들한테서 나왔다는 게 더욱 아프다. 당장의 곤궁함을 야기한 사람들을 ‘해충’으로 지목함으로써 파업으로 일 못 하는 개개인의 불만을 집단화하고, 약자에 대한 반격의 용기와 논리를 제공해준다. 한치의 양보나 측은지심,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 뒤에 있는 불평등 구조를 보라고? 이 분열을 조장한 무능한 정치를 보라고? 물론 봐야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하퀴벌레’란 말을 곱씹으며, 우리 사회의 내적 분열을 스산한 눈으로 바라볼 뿐.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