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螳螂拒轍) 螳:버마재비 당. 螂:버마재비 랑. 拒:막을 거. 轍:수레바퀴 자국 철. [동의어] 당랑지부(螳螂之斧), 당랑당거철(螳螂當車轍), 당랑지력(螳螂之力). [유사어] 당랑규선(螳螂窺蟬). [출전]《韓語外傳》<卷八>,《文選》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 곧 ① 허세. ②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항거하거나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의 비유. ①《한시외전(韓時外傳)》〈권팔(卷八)〉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B.C.794~731)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호종하던 신하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이 온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 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가도록 하라.” [주]《한시외전》에서의 ‘당랑지부(螳螂之斧)’는 사마귀가 먹이를 공격할 때에 앞발을 머리 위로 추켜든 모습이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과 흡사한데서 온 말이나 ‘당랑거철’과 같은 뜻으로 쓰임. ②《문선(文選)》에 보면 ‘당랑거철’은 삼국 시대(三國時代)로 접어들기 직전, 진림(陳琳)이란 사람이 유비(劉備) 등 군웅(群雄)에게 띄운 격문(檄文)에도 나온다. “조조(曺操)는 이미 덕을 잃은 만큼 의지할 인물이 못된다. 그러니 모두 원소(袁紹)와 더불어 천하의 대의를 도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 열악한 조조의 군사는 마치 ‘사마귀가 제 분수도 모르고 앞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는 것[螳螂拒轍]’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Board 고사성어 2022.11.30 風文 R 810
거짓말과 개소리 거짓말하는 사람과 참말 하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실(사실)과 연루돼 있다는 점. 거짓말쟁이도 진실에 신경 쓴다. 사실에 반하는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려면 불가피하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개소리에 대하여>).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려면 자신이 돈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듯이. 개소리는 다르다. 개소리는 그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입맛에 따라, 이익에 맞춰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저 ‘속셈’만 있을 뿐. 타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는 척, 가진 척, 센 척’ 했던가. 아이 앞의 어른, 학생 앞의 선생, 카메라 앞의 정치인은 뭐가 진실인지 모르면서도 마치 고매한 견해를 가진 듯 떠들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이때 흔히 나오는 말이 개소리다. 허풍, 흰소리, 허튼소리, 빈말이라고도 할까. 동조세력이 있다면 가속이 붙어 순식간에 세상을 처리 불가능한 말의 쓰레기장으로 만든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김은혜 홍보수석은 그나마 진실에 관심을 가졌다. 15시간 동안의 침묵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거기에 맞서 어떻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지를 고심한 시간이었을 테니. 지금은? 잘 모르지만, 거짓말쟁이보다 개소리쟁이들이 판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녕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말년 병장처럼 해롭지 않은 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지. ‘손을 벨’ 정도로 군복 줄을 잡거나,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군화에 광을 내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러는 게 해로운 개소리를 싸지르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혼잣말의 비밀 ‘늙으면 애가 된다’는 얘기는 ‘말’에도 그대로 쓸 수 있다. 노인은 혼잣말을 쓰면서 애가 된다. 노인의 혼잣말은 노년의 외로움과는 상관없다. 나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편하게 사는 자들의 입에서도 혼잣말이 줄줄 새어나오는 걸 보면. 아이는 사람 대하듯 사물을 대한다. 사람처럼 사물에도 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혼자인데도 사물과 대화하며 쉼 없이 쫑알거린다. 노인도 아이처럼 사물에 말을 거니 혼잣말이 늘 수밖에. 낡은 집 벽에 난 금을 보면서 ‘조금만 더 버텨줘’라 하고,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이제 그만 좀 울어’라 한다. 게다가 혼잣말은 늘 반말로 하게 되는데, 감탄사나 신음소리를 닮았다. ‘쯧쯧, 저러면 안되지’ ‘젊은이가 고생이 많군’ ‘벌써 가을이네’ ‘이놈의 세상, 뒷걸음질만 치는군’ 겉으론 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가깝다. 실제로 생각은 말을 능가한다. 말의 검문을 받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가을바람, 빨래, 춤….’ 뭐든 생각해 보라. 말이 없어도 특유의 느낌, 소리, 색깔, 장면, 움직임이 떠오른다. ‘연필’이나 ‘양말’, ‘짜장면’ 같은 사물도 고유한 생김새가 떠오르고 그걸로 뭔가를 하는(쓰거나 신거나 후루룩 먹는)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감각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말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적(대화적, 상호적)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열쇠가 말이기라도 하듯이. 혼잣말은 사람이 아무리 혼자 있어도 사회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해준다. ‘개인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 개인’이란 걸.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2/2) 3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한때는 꿈도 많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살아왔지만, 지금은 그저 단 하나의 길을꼭 가야만 하는 처지다. 대학이란 단 하나의 길을... 솔직히 내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가족의 실망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학벌을 따지는 우리 나라에서는 내가 밟을 수 있는 땅이 없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 가 보고는 싶다. TV에서만 보던 대학생활들을 나도 느껴 보고는 싶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엔 대학이라는 길! 그 좁고도 험난한 길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살아왔는지 하는 허무함과 아픔이 나를 한숨짓게 한다. 어릴 때의 꿈과 희망들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내 앞엔 어두운 길 하나가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과연 그 어둡고 험난한 길을 잘 갈 수 있을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 이 글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 하는 길, 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길, 험난한 길, 그래서 어둡기만 한 대학으로 가는 길을 앞에 두고 그 막막한 느낌을 썼다. 그래서 첫머리부터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고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놓은 솔직한 글이다. 이 학생이 가는 길은, 소월이 열십자 한복판에 서서 어느 길도 내가 갈 길은 아니라고 하는 그 길과는 아주 다른 길이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억지로 끌려가는 길인 것이다. 시선 이란 말은 눈길 로 쓰는 것이 좋겠다. -------------------------------------------------------------------------- 4 나는 나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 몸이 불편한 장애자들의 어려움이 나올 때면, 나는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줄 자신이 없었지만, 그들의 희망과 꿈을 키워주고 싶었다.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 사랑으로 그들을 돕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난 그들이 이 세상을 싫어하지 않고 사랑을 배우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물질적으로나마 돕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장래 희망이 언제나 불투명하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해 왔다.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난 사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꽉 차 있다. 김소월의 길 을 읽고 정말 공감이 갔다.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나는 불투명하고 희미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 이 글에 나타난 이 학생의 생각은 앞과 뒤가 좀 달라서 통일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학생은 지금까지 어려운 사람들, 장애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을 도와주는 길은 우선 물질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해왔다 고 말한다. 이 얼마나 뚜렷한 삶의 목표인가!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곧 그 다음에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고 썼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 까닭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입고 잘 몰기 위해 살아간다. 학생들도 모두 공부하는 목표가 입신출세해서 잘 살기 위해서다. 그 아무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불행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제 정신을 가지 사람이라고 보지도 않고, 바보 대접을 하는 판이고, 그런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없고, 학생들이 글로 써야 하는 나의 길 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을 솔직하게 썼다가, 그만 다른 일반 학생들의 생각으로 돌아가 자기만이 가졌던 생각을 지워 버리게 된 것이라 본다. 더구나 나의 길 이란 글쓰기 시간에도 갈길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시인의 시를, 본보기가 되는 생각이 담긴 글인 것처럼 선생님도 보여 주신 것 아닌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마음은 이렇게 되어 자꾸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죽어간다. 이 글에서 고쳐 써야 할 말을 살펴보자. - 물질적으로 이것은 물질로 하면 된다. - 물질적으로나마 이것도 물질로나마 로 쓰면 그만이다. -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이것은 그것을 이뤄가지 위해 라고 쓰는 것이 좋다. - 미래에 대한 이것은 앞날에 대한 이라 써야 한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글 네편을 들어 대강 살펴보았는데, 이 네편에서 지적한 중요한 문제점 네가지를 다시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글에서 군소리, 일반스런 논리를 늘어 놓았다. 둘째, 자기 이야기를 뚜렷하게 쓰지 않고 막연하게 말해 놓았다. 셋째, 자기 생각을 쓰다가도 그만 다른 말을 써서 자기 생각을 부정했다. 넷째, 자기가 한 일을 쓰는 글이니까 쉬운 입말이 되어야 할 터인데, 글말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학생들의 글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까닭이 두 가지다. 하나는 선생님이 젬고을 잘못 내어 준 때문이고, 다음 하나는, 쓰기 전에 소월의 시를 보여 준 것이 잘못되었다. 나의 길 이라고 하는 말은 없다. 나의 길 이란 말이 어떤 경우에 실제로 쓰이겠는가?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때가 있는가? 없다. 내가 가야 할 길 이라든가 내가 가고 싶은 길 이런 말은 있어도 나의 길 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은 외국말 번역해 놓은 글에서나 나온다.(물론 잘못 번역해서 나온 것이지만) 외국말 잘못 번역한 글말을 글쓰기 제목으로 내어 주었으니, 이런 제목으로 쓴 글에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뚜렷한 자기 이야기는 안 쓰고 막연한 인생의 길이니 뭐니 하는 군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이 때문이고, 글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음은 소월의 시를 보여준 문제인데, 그 결과로 많은 학생들의 글이 갈래갈래 갈린 길 그 여러 길이 있어도 내가 갈 길은 없다는 소월 시의 내용같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를 모범 답안처럼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쓰라고 지시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학생들 가운데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이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또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소월과 같이 아주 꽉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만약 이 학생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 이라든가 내가 가야 할 길 같은 제목으로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지금 겪고 있는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뚜렷하게 쓰게 했더라면, 그리고 쓰기 전에 소월의 시가 아니라 같은 반 어느 학생이 살아온 싱싱한 이야기를 쓴 글을 들여주거나 읽힐 수 있었다면 훨씬 절실하고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씌어져 나왔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노천명편" 노천명(1912~1957}) 여류 시인. 황해도 장연 출생.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고독과 애수의 주정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후기에는 도시적 취향의 고독 속에 침잠하여 현실과 유리된 생활을 하다가 독신으로 병사하였다. 시골뜨기 내가 맨 처음 서울에 올라온 것이 이맘때였던 상싶다. 음력 이월 초순께나 되었던지 춥기는 해도 겨울은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여기 애들 모양 당홍 제비부리 댕기도 못 드리고, 검정 토막 댕기를 드린 나를 보고 동네 아이들은, "시골띠기 서울띠기 말라빠진 꼴띠기." 하며 우르르 달아나곤 하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나는 그 애들의 외우는 말이 재미가 있어 웃으며, 그 애들이 몰려가는 데로 따라가면 줄달음질들을 쳐서 골목 안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시골 우리 동리가 그립구, 박우물께 이쁜이며, 새장거리 섭섭이, 필녀, 창호 이런 내 동무들이 한없이 보구 싶어졌다. 학교에두 아직 못 들구 어머니는 날마다 집주름을 데리구 집만 톺으러 다니시면, 나는 그 동안 이모 아주머니와 더불어 있어야 한다. 이 이모 아주머니란 분은 재미있었다. 달래 그런 것이 아니라 환갑이 다 된 분이 머리는 하나도 세지를 않고, 그 대신 정수리가 무르팍처럼 멘 분이 함박꽃빛 자주 마고자를 입고 계신 것이 우습고, 또 한 가지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온종일 잔소리로 일을 보시는 것이다. 할아범과 할멈을 번갈아 부르셔선 무슨 분부인지 그처럼 많다. 그런데 한번은 밖에 손님이 오셔서, "이리 오너라." 했다. 아주머니는 미닫이도 좀 안 열어 보고 창경으로 겨우 내다 보시며, "거기 아무두 없느냐." 하시더니 아무 대답도 없는데, "누구신가 엿줘봐라." 하고 분부를 하신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밖의 손님이 이 말을 듣더니, "양사골 김 주사가 왔다구 엿줘라."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아주머니는, "영감 마님 출입하고 아니 계시다구 엿줘라."하신다. 할멈도 할아범도 사이에는 없는데 서로 해라를 하고, 또 문도 안 열어 보며 영 등바같이 또랑또랑하게 말루만 해내는 것이 나는 말할 수 없이 우스웠다. 서울은 정말 별난 곳이라 생각되었다. 별난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우리 게와 달라 무슨 장사들이, "비웃드렁 사려! 움파드렁 사려!" '드렁' 하며 외치고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달음박질 뛰어나가 문 밖에 가 서서 구경을 했다. 한번은 머리를 따내린 호인이 팔에다 나무 궤짝을 걸고, 한 손에 울긋불긋한 종이로 오린 꽃에다 섞어 천연 멍개(해당화 열매) 같은 빨간 것을 꼬챙이에 끼워 들고 가며, "아아가위 콩... 사탕..." 하고 외우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시골에 있는 멍개 같은 데 반가움을 느끼고, 한 꼬치 5전이라는 것을 샀다. 그래서 가지고 들어가 먹어 봤더니 맛이 여간 좋지 않았다. 시골 우리 아랫집 '대각'이네 '모나까'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침이 되면 으레 어머니한테 아가위 값을 타고 '아가위 콩사탕'만 외우고 지나가면 뛰어나가 사곤 했다. 아주머니는 여덟 살이나 된 걸 저렇게 군것질을 시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셨으나, 우리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언제나 은장도가 달린 주머니끈을 끌러 돈을 꺼내 주셨다. 서울은 정말 좋은 곳인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신기한 것에 대한 내 주의는 그치지 않았다. 한번은 아주머니가 나가시더니 할아범에게 이상한 것을 들려 가지고 들어오셨다. 이 찬란한 것에 나는 정말 황홀했다. 놋쟁반 같은 데가 오색이 영롱한 꽃이 하나 그득 담겨 들어왔다. 가까이 보니 꽃만도 아니다. 꽃에, 새에, 연밥에, 새파란 오이에, 가지에, 옥가락지, 귀주머니, 갖은 패물, 족도리, 안경집 이런 것들이 노랭이, 파랭이, 분홍, 흰 것, 당홍, 취얼, 보라, 이루 말할 수 없게 곱게 차려졌다. 이것을 보시고 어머니가 아주머니에게 요샌 색떡 한 밥소래에 얼마냐고 물으니까 5원이라고 하신다. 대화에서 이것이 색떡이라는 물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흰 바탕에다 검정 선을 두르고 분홍 매화와 새를 새긴 안경집과 칠보가 달린 족도리가 제일 고왔다. 그래서 어머니를 지긋이 잡아당기며 나는 저기 족도리하구 안경집을 날 떼달라고 졸랐더니 그것은 혼인집에 가져 갈 것이 돼서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얼마 동안 그것 때문에 울었다. 한참 있으니까 이웃집 서울 아이들이, "얘애야, 나아와 노올아!" 하고 저이 동무들을 찾는 노래 곡조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번연이 나를 찾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첫째는 노래같이 부르는 이 소리가 재미있는 까닭이요, 다음으로는 얼굴에 분세수를 하고 기름을 발라서 머리들을 곱게 빗은 서울 아이들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팔짱을 끼고 말없이 우리집 문 앞에 가 서서 있는 것이다. 바로 건너다뵈는 앞집은 꽤 큰 집인데 대문에는 흰 글씨로, '성적분 파오'하고 씌어진 간판이 걸려 있다. 나는 심심해서 속으로 몇 번이구 자꾸 '성적분 파오' '성적분 파오' 하고 읽어 보는 것이다. 하루 아침엔 이 큰 대문집에서 나만한 처녀 아이가 나오더니 내게다 말을 였다. 말씨가 예뻐서 나는 그애가 말하는 것을 무슨 고운 것이나 보듯이 신기해서 자꾸 쳐다봤다. 그애는 자기 집에선 성적분을 만든다는 것이며, 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있다는 것이며, 망녕난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 등을 말해 주며, 내 손을 붙들고 저의 집엘 데리고 들어갔다. 나더러 널을 같이 뛰자고 하는데 나는 뛸 줄도 모르고 또 무섭다고 질색을 했더니 줄을 잡혀 주며 나더러 줄을 잡고 뛰라고 했다. 내가 줄을 잡고 널을 뛰어 봤더니 그애는 나더러 사내 널을 뛴다고 하며 널 뛰는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후부터 인순이는 아침만 치르면 우리집에 와서, "얘애야, 나아와 노올아!"하고 나를 불러 주었다. 인순이와 내가 차츰 정이 들려고 하는데 우리는 집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서울 길을 모르는 나는 인순이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이 되어 버렸다. 그 뒤 전학이 돼서 내가 하교엘 들어갔을 제 나는 인순이를 찾으려고 은근히 살폈으나 찾지 못했다. 내 생각에 인순이는 집이 완고해서 학교엘 넣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인순이는 내가 서울 와서 제일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지금도 내가 서울엘 자주 왔을 때 제 일을 생각할라치면 으레 인순이가 생각나고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인순이는 언제나 처음 만날 때 그가 입었던 꽃분홍 삼팔 치마에 연두 저고리를 입고 파란 징신을 신었다. 나는 그 때 인순이 이름을 알았지만, 인순이는 내 이름도 채 모르고 헤어졌다. 다만 시골 애라고 알았을 따름이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휴가 때의 기도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탁 트이고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 줄기의 푸른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 주는 한여름 저희는 파도에 씻기는 섬이 되고 숲에서 쉬고 싶은 새들이 됩니다 바쁘고 숨차게 달려오기만 했던 일상의 삶터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쉼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저희를 따뜻한 눈길로 축복하시는 주님 가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쉼의 시간을 가지셨던 주님처럼 저희의 휴가도 게으름의 쉼이 아닌 창조적인 쉼의 시간으로 의미 있는 하얀 소금빛 보석이 되게 해주십시오 휴식의 공간이 어느 곳이든지 함께하는 이들이 누구든지 저희의 휴가길에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서 환해진 미소와 서로 돕고 양보하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잔잔한 평화가 가득하게 하십시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눕히는 긴 잠도 주님 안에 머물던 달콤한 기도의 휴식이라니 저희가 쉴 때에도 늘 함께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저희를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주시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해주시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울하고 메마른 저희 마음의 사막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오르게 해주십시오 때로는 새소리, 바람소리에 흠뻑 취하는 자유의 시인이 되어 보고 별과 구름과 나무를 화폭에 담아 보는 화가의 마음을 닮아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보물을 새로이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던 아름다움의 발견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들도 문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즐거이 봉헌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휴가의 순례길에서 저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좀더 고요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배우고 깊고 그윽한 산에서는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하게 하십시오 항상 곁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가족, 친지, 이웃과의 담담한 인연을 더없이 고마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휴가가 되게 해주십시오
Board 삶 속 글 2022.11.28 風文 R 630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 나폴레옹 힐과 클래망 스톤의 공저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통한 성공>에서 엘머 게이트는 육체를 건강하게 하고 마음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몸소 보여줬다. 나폴레옹 힐은 앤드류 카네기의 소개장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체비 체이스 실험실로 게이트 박사를 찾아갔다. 나폴레옹 힐이 박사와 면담을 청했을 때, 게이트 박사의 비서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박사님을 방해할 수가 없어요." "얼마 후에야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폴레옹 힐이 물었다. "글쎄요, 아마 세시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왜 그분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겁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분은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계세요." 나폴레옹 힐은 빙그레 웃었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녀는 미소를 되돌리며 대답했다. "게이트 박사님의 설명을 직접 듣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시겠어요?" 나폴레옹 힐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가치를 절실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폴레옹 힐이 기다린 보답을 받은 이야기이다. 마침내 게이트 박사가 방에서 나오자, 그의 비서는 우리를 소개시켰다. 나는 농담 삼아 그의 비서가 한 말을 물었다. 그는 앤드류 카네기의 소개장을 읽은 후에 시원스럽게 말을 받았다. "내가 영감을 기다리고, 찾는 방법을 보고 싶습니까?" 그는 나를 방음 장치가 된 작은 방으로 이끌었다. 그 방에는 가구라고는 평범한 탁자 하나와 의자가 전부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종이와 필기 도구와 함께 조명 스위치가 놓여 있었다. 게이트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없을 때마다 이 방에 와서 문을 닫고 앉아서 불을 끄고 강한 집중 상태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는 관심을 조절하는 성공 법칙을 응용하여 자신의 무의식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가끔 영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때는 즉각적으로 그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거나, 두시간이 걸린 뒤에야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단 영감이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그는 불을 켜고 그것을 써 내려 간다는 것이다. 엘머 게이트 박사는 다른 발명가들이 착안했지만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던 200여 개의 아이디어를 다시 살려서 완성시켰다. 그의 방법은 간단했다. 발명품의 초안과 도면을 그 실용적인 적용 범위 내에서 샅샅이 조사하고, 그 약점을 발견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그는 특정한 발명 초안을 가지고 그 방으로 간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답이 떠오를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이 전부다. 나폴레옹 힐이 게이트 박사에게 물었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방법이 성공을 거둔 이유가 뭘까요?" 게이트 박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각의 근원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지식은 무의식 속에 저장되고, 개인의 경험과 관찰과 교육을 통해 축적됩니다. 2. 위와 똑같은 방법으로 지식은 다른 이들로부터 축적되고, 텔레파시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3. 무한한 지식의 광활한 우주적인 창고 안에는 모든 지식과 현상이 저장되었는데, 인간의 무의식을 통해 그곳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기를 앉아서 기다릴 때, 나 자신을 지식의 세가지 근원과 일치되도록 조정합니다. 그 외에 또 다른 근원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 모르겠습니다." 엘머 게이트 박사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긍정적으로 그의 길을 따랐다.
Board 추천글 2022.11.28 風文 R 2133
단장(斷腸) / 斷:끊을 단. 腸:창자 장. [유사어] 구회지장(九回之腸). [출전]《世說新語》<黜免(출면)> 채염(蔡琰)의 <胡?歌(호가가)>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 전하여,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의 비유. 진(晉:東晉, 317~420) 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100여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환온은 크게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매에 실은 그 부하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 [주] 삼협 : 사천(四川)?호북(湖北) 두 성(省)의 경계에 있는 양자강(揚子江:長江) 중류의 세 협곡(峽谷). 곧 구당협(瞿塘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 예로부터 유명한 경승지(景勝地). 현재 큰 댐을 건설하는 공사가 진행 중에 있음.
Board 고사성어 2022.11.28 風文 R 990
‘외국어’라는 외부 그대여, 외국어를 힘껏 배우라. 언어는 이 세계를 낱낱이 쪼개어 이름을 붙이고 그 속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심어놓았으니. 우리의 운명은 모국어가 짜놓은 모눈종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세계만이 유일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외국어는 모국어가 만들어놓은 그 질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말소리에서부터 단어, 문법, 문자 등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직조해놓은 말의 그물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잡아당긴다. 외국어는 살갗과 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와 모국어 사이에 틈을 만들어낸다. 살갗과 살 사이에 ‘산들바람 집어넣기’랄까(‘물집’이면 어떠랴)? ‘결정을 내리다’라는 말을 영어로는 ‘결정을 만든다(make)’고 하고, 불어로는 ‘결정을 잡는다(prendre)’고 한다. ‘그렇지, 결정은 내릴 수도 있지만, 만들 수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약속을 잡다’를 영어에서 ‘약 속을 만든다(make)’고 하듯이. 도저히 모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말을 만났을 때, 그것은 벽의 체험이다.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모국어가 있을 때, 그것은 낭떠러지의 체험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독특한 감각은 외국어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벽과 낭떠러지는 득도의 경계선. 외국어라는 외부를 내 속에 영접해야 비로소 모국어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의 모국어가 일종의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라야 모국어는 습관과 반복이 아니라 경탄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대도시의 소란처럼 영어를 상용화하는 게 답일까? ‘영어’라는 내부 부산이 작정을 하고 영어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이전엔 변죽만 울리다 말더니 이번엔 기세가 좋다. 공문서 영어 병기, 표지판·공공시설물 영문 표기,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영어국제학교 설립, 외국 전문대 유치, 권역별 영어마을 조성 등. 이전의 영어 공용화 방안을 살뜰히 모았다. 공문서나 공공시설물에 영어를 쓰는 게 국어기본법을 어긴다는 걸 알고 움찔한 상태지만, 포기하진 않을 듯. 힘껏 밀어붙이면 머지않아 부산은 영어로 ‘프리토킹’하는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부산 살면 영어 하나는 잘하게 되겠다’며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겠다. 겉으론 ‘우리말 사랑’을 외치지만 뒤로는 영어에 안달복달해온 민족이니. 한국인은 모국어 하나만으로 말글살이에 큰 어려움이 없다. 영어를 잘 못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좌우중도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영어’를 욕망한다. 영어는 우리 안에 들어온 외국어이고, 우리는 영어를 갈망하는 단일 언어 민족. 부산은 곧 영어 욕망의 메카가 될 거다. 그 욕망을 타박만 할 건가? ‘한국에선 영어 쓸 일 없다’, ‘한국어로 충분하다’, ‘자동번역기 쓰면 된다’고 하면 그 욕망이 사라질까? 영어상용도시 같은 불가능한 시도를 반복하는 근원을 캐묻자. 왜 그동안 다수 국민이 영어 실력을 갖추는 데 실패했는가? 외국인과 대화하고 영문소설을 읽을 정도의 실력을 ‘어디’에서 기르지? ‘사교육 시장’이다. 그러니 영어 격차가 문화자본으로 작동하여 계급 격차를 낳지. 학교가 문제다. 6년 정도면 영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