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동리편" 김동리(1913~1995) 소설가. 본명은 시종, 경북 경주 출생. 경신 고보 중퇴, 서라벌 예술대학장. 한양대 예술대학장 역임. 일찍이 민족 진영의 문학을 대표하여 좌익을 분쇄한 바 있고 순수 문학의 옹호자로서 전후 문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왔다. "황토기" "등신불" "까치 소리" 등 문제 소설의 작가이다. 수목송 돌과 흙과 쇠 같은 따위들은 그 깸 없는 깊은 잠에 주검처럼 굳어진 자들이라, 일깨워 우리와 사귈 수 없고, 조수와 충류들은 생로병사에 사람의 아픈 바를 지니되, 그 신령한 바를 갖추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살기에 나를 기를 것이 없다. 수목은 이와 달라, 돌, 흙, 쇠같이 깸 없는 잠으로 굳어진 자도 아니요, 꽃으로 잎으로 또는 열매로 그 생명의 다양한 변화가 사람의 얼굴에서처럼 발랄하되, 그 생로병사에 신음없이 의젓함은 조수, 충류에서 멀다. 깨어 있으되 소란하지 않고, 삶을 누리되 구차하지 않음이 사람에서는 지인달사의 풍모라고나 할까? 우리가 수목에서 가장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수라 할지니, 느티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녹나무, 회화나무, 편백나무 따위들은 그 수명이 천 년에 이르는 자 많고, 떡갈나무, 이깔나무, 벚나무, 감탕나무 따위들은 그 연연하게 물들어 화사하기 꽃과 같은 잎을 달고도 견디기를 오히려 5백 년에서 지난다. 동양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에 보면, 주인공 유비의 고향은 탁현인데, 그의 집 앞에 천 년 묵은 뽕나무가 누각처럼 펼쳐 서 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누상촌이라 불렀다 하며, 또 다른 주인공의 하나인 조조의 죽음을 재촉한 이야기에도 천 년 넘은 배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뽕나무, 배나무도 다 각각 천 년의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뿐 아니라,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과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의 어느 기둥들은 각각 천 년 된 싸리나무와 박달나무라고 전해지고, 이 밖에도 고사 거찰에 대개 천 년 넘은 잡목 기둥이 한 두 개씩 들어 있다고, 그 절의 승려들로부터 자랑하는 말을 듣는다. 이로써 볼진대, 천 년을 사는 나무의 이름들은 따로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수목이 이와 같이 사람이나 조수, 충류에 비겨 그 유장한 세월을 누림은, 그 뿌리를 깊이 땅속에 묻고 그 잎으로 직접 태양을 흡수하게 때문이리라. 따라서, 수목은 대지와 태양을 직접 먹이로 삼고 살아가는 유기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할 때 맨 먼저 수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또한 수목에서 그 장수와 더불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청춘이라 하겠다. 수목은 어린 나무나 늙은 나무나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이상 언제나 청춘이다. 그 잎은 푸르고 그 꽃은 붉은 것이 보통이다. 붉지 않으면 희거나 누르거나 푸르거나 하더라도, 꽃이란 꽃은 다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렇게 청청한 잎과,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꽃을 가진 모든 수목은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와 위안을 준다. 우리가 고향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라든지 가까운 육친의 모습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연로해서 세상을 떠나셨거나 했을 땐 어버이 대신 형제나 또는 다른 친척, 친지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대신할 형제나 친척마저 타처로 떠나 버렸을 때, 아아, 그 때 고향을 지키는 얼굴은 마을 앞에 서 있는 늙은 팽나무나, 마을 뒤에 서 있는 묵은 느티나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예로부터 고향산천이란 말이 있고, 또 사실 산과 내야 나무보다도 더 오래고 더 믿을 만한 고향이기도 하지만, 마을 앞뒤의 늙은 팽나무나 묵은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어느 낯선 마을 앞에 늙은 회나무와 느티나무가 몇 그루 멋지게 가지를 벌리고 서 있으면 덮어놓고 그 동네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러워 보이며, 무언지 깊은 유서나 전설이라도 깃들인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그 나무 곁에 주막이라도 있다면 곧 뛰어내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수목은 산야나 벽지에만 흔한 것이 아니라, 도회와 읍, 시의 거리 거리, 공청과 여사와 민가의 뜰마다 번성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렇게 현대 같은 문명의 폭위에도 배척받지 않고, 도시의 시가와 청사, 여염집 마당에 번영, 무생하여 사람과 더불어 공존, 교환함은, 수목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그윽한 즐거움과 기쁨과 희망과 이익을 줄지언정,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목이 없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기쁨과 위안과 희망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수목에서 받는 이 형언 할 수 없는 그윽한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과, 그리고 마음의 안정은 어디서 연유하여 오는 것일까? 그것은 흡사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신에게서 받는 그것과도 같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우리를 흔들어 깨우소서 어디서나 산이 보이고 강이 보이는 작지만 사랑스런 나라 우리가 태어나 언젠가 다시 묻혀야 할 이 아름다운 모국의 땅에서 우린 늘 아름다운 것을 기억하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 소박한 꿈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를 긴 잠에서 흔들어 깨우소서. 주님 또 한 해가 저물기 전에 두 손 모으고 겸허한 참회의 눈물을 흘릴 줄 알게 하소서 나라의 일꾼으로 뽑힌 사람들이 거짓과 속임수를 쓰며 욕심에 눈이 어두운 세상 자식이 어버이를 죽이고 제자가 스승을 때리며 길을 가던 이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우리의 병든 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신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그럴듯한 이유로 합리화시켜 잉태된 아기를 수없이 죽이면서도 해 아래 웃고 사는 우리의 태연함을 가엾이 여기소서 한 주검을 깊이 애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주검이 보도되는 비극에도 적당히 무디어진 마음들이 부끄럽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굽어 보소서 잘못된 것은 다 남의 탓이라고만 했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비겁하게 발뺌할 궁리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그리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엄청난 아픔과 슬픔엔 안일한 방관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우리가 배불리 먹는 동안 세상엔 아직 굶주리는 이웃 있음을 따뜻한 잠자리에 머무는 동안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이들 있음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먼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먼저 생명을 존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변화시켜 주소서, 주님 항상 생명의 맑은 물로 흘러야 할 우리가 흐르지 않아 썩은 냄새 풍기는 오만과 방종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소서 사랑이 샘솟아야 할 우리 가정이 미움과 이기심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소서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길 바라고 미루는 사랑과 평화의 밭을 일구는 일 비록 힘들더라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집을 내가 먼저 짓기 시작하여 더 많은 이웃을 불러모으게 하소서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나직이 죽은 이를 불러 보는 낙엽의 계절 우리는 이제 뉘우침의 눈물을 닦고, 희망의 첫 삽에 기도를 담습니다, 주님 (1994)
Board 삶 속 글 2022.12.01 風文 R 616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신에게 요청하라 3 - 로버트 쉴러 나는 유명한 영화배우 존 웨인이 병상에서 걸어왔던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 암 제거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내가 친구인 존 웨인에게 신을 만날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어야 할까? 전지전능한 주님을 대신하여 그의 죄를 용서하고 현세의 삶을 정리하게 해야 할까? 내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대답은 확고했다. "아냐, 그것은 내가 할 말이 아니야." 이어 주님의 성령처럼 작은 목소리가 이렇게 속삭였다. "존 웨인의 마음속에서 주님을 불러 일으켜라. 그는 스스로 주님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것이다. 그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유명 배우가 속옷 바람으로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초췌한 모습을 발견했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내가 말했다. "존, 내가 자네를 위해서 기도를 해도 될까?"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럼. 나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네." 내가 기도하는 동안 그는 눈을 꼭 감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의도나 계획, 의식적인 꾸밈없이 내 입에서 기도 말이 쏟아져 나왔다. "주님, 존 웨인은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당신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그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당신이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또 용서하고 싶어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 깊이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존 웨인을 봤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 모든 긴장은 사라지고 막 떠오른 태양처럼 해 맑기 이를 데 없었다. 수치심이나, 심적인 저항감이나 불편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나는 올바른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 신에게 요청하라 4 - 팀 피어링 캐더린은 암으로 가슴에 큰 멍울이 생겼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헐벗고 사는 처지였다. 살림살이가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었기에 아무도 집안에 들이지 않던 그녀가 마침내 나의 방문을 허락했다. 나는 그녀와 친해졌고, 백방으로 구하여 식료품과 생필품을 댔다. 그녀는 암으로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당장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갈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을 마주 보고 앉아 기도했다. "주님, 우리가 캐더린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였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이유는 교훈을 얻기 위함이요, 캐더린만 그 과정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녀가 영적으로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한 시련이 이 병이리라. 하지만 나는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치료하고,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진정으로 그녀가 완치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2주일 내로 그녀는 병원에 다니게 되었고, 두 달 내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 가슴의 멍울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의사들은 입을 모아 그녀의 회복을 기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 일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정말 고통받는 이에 대한 나의 특별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신에게 요청하라 5 - 산드라 로저스의 <여명>중에서 베티 J. 에디는 베스트 셀러가 된 저서 <빛으로 둘러싸여>에서 천사를 봤다고 고백했다. 1973년 거의 죽다 살아났던 경험 중에 그녀와 사람들의 기도에 천사가 나타나서 응답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도를 올렸던 이들은 빛으로 둘러싸여 작은 백열구처럼 빛나며 지상을 밝혔다고 한다. "나는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천사의 말을 이 귀로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초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권능을 지니셨지만, 그 힘은 그 분 자신의 법과 우리의 의지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의 권능을 우리 자신의 것이 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일단 우리가 진정으로 요청하고 그분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반드시 받을 겁니다." - 캐서린 캐슬 어느날 아침, 나는 컨트리 클럽 플라자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한 상점에서 새 지갑을 막 구입한 터였다. 나는 쇼핑백에서 지갑을 꺼내서 손에 꼭 쥐고 주님에게 청했다. "이 지갑 속에 돈이 그윽하게 하시고, 그 돈을 다른 이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끝나자 마자, 스테이션 웨건 한대가 천천히 내 옆에 섰다. 그리고 그 안에 탄 두 명의 남자가 아무 말도 없이 반짝이는 동전을 나에게 와르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돈'이 아니고 무엇이랴!
Board 추천글 2022.12.01 風文 R 1578
대의멸친(大義滅親) 大:클 대. 義:옳을 의. 滅:멸할 멸. 親:친할?육친 친. [출전]《春秋左氏傳》〈隱公三?四年條〉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뜻으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원년(元年:B.C.719)의 일이다. 위(衛)나라에서는 공자(公子) 주우가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 형제간으로서 둘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선군(先君) 장공(莊公) 때부터 충의지사로 이름난 대부 석작(石?)은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주우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의 시대가 되자 은퇴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석작이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지 않자 석후는 아버지 석작에게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왕실을 예방하여 천자(天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진공(陳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진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고하도록 일렀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주우와 석후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 오소서.” 진나라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다음 위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2.12.01 風文 R 801
질척거리다 보통은 장애인을 향해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장애학자 마이클 올리버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라고 제안한다. 장애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걸 알게 하는 질문이다. 10월19일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자리. 며칠 전 정무위에서 국회의원 윤창현씨가 쓴 ‘질척거린다’는 표현에 국민권익위원장 전현희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 말에 의문을 품게 된 국회의원 배현진씨는 국감장에서 국립국어원장 장소원씨를 불러 세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이 이상의 사전적 의미가 있냐?’고 묻더라. 사전에 그런 뜻이 없으니 국가사전을 옹위해야 하는 국어원장 입장에선 당연히 ‘없다’고 하더군. 사전이 뭐라 하든, 말은 쉼 없이 움직인다.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다. 이미 인터넷엔 ‘질척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싫어한다는 글이 수북하다. 비슷한 뜻의 ‘질퍽거린다’는 말도 진흙이나 반죽 말고 사람에게도 쓰인다. 엄마를 좋아하는 우리 딸은 외출하면서 한 번이면 될 인사를 아쉬운 듯 몇 번씩 되풀이한다. ‘그만 질척거리고 어서 가’라는 핀잔을 듣고서야 새초롬해져서 간다. 나도 가끔 아내에게 귀찮게 굴어 이 소리를 듣는다. 달리 물었어야 했다. “왜 진흙이나 반죽의 상태를 뜻하는 말을 ‘사람’에게 썼을까?” 혹은 “이 말을 사람에게 쓰면 어떤 뜻을 갖게 되나?”. 그랬다면 국어원장도 단답형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이 획득한 의미에 대해 자신의 식견을 펼쳤을 텐데. 나는 ‘질척거린다’는 말을 들으면 수치스럽다. 마약 김밥 ‘똥통 학교’란 말을 아시리라. 어느 학교가 똥통 학교라며 여기서 쑤군, 저기서 쏙닥거린다. 취사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일반고로 나뉜 학교는 더욱 서열화했다. 묘책이 있다. ‘똥통’이란 말이 학생들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고 서열화를 강화하기 때문에 앞으로 ‘똥통’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떤가? ‘벼락부자’란 말을 자꾸 쓰면 벼락에 대한 ‘겁대가리’를 상실하여 ‘진짜 벼락’을 맞겠다며 먹구름을 쫓아다니는 부자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도처에서 행해지는 ‘폭탄 세일’과 ‘총알 배송’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해 최근의 한반도 긴장 고조의 심리적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식품 이름에 마약 등의 표현을 넣지 못하게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매일 먹는 음식에 ‘마약’을 쓰면, 사람들(특히, 사리분별 못 하는 청소년들)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잃고 쉽게 진짜 마약에 손을 댈지 모른다는 주장이 먹혔다. ‘중독될 만큼 맛있다’는 비유적 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약을 기호식품이나 식품첨가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외국에서는 인터넷에 마약이란 단어를 노출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니, 우리 사회는 그간 너무 헐렁했어! ‘마약 김밥’이여, 이젠 안녕. 말은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렇게 직선적이고 단순하지는 않다. ‘마약 김밥’을 못 쓰게 한다고 마약 사범이 줄어들진 않는다. 세상이 져야 할 책임을 말에 떠넘기지 말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꾸며 쓰는 버릇 어떻게 고칠까(1/2) 이번에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쓴 시를 몇 편 보면서 생각하기로 한다. 다음은 어느 학교 문예반에서 나온 문집 가운데 실려 있는, 여고 1학년생의 시다. 친구 새벽 별보다 더 청량한 너의 눈은 시원한 시냇물보다 더 맑은 너의 음성은 넓은 대지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어느덧 다소곳이 앉아 슬픔을 머금고 장미빛 붉은 여운만을 남긴 채 소리없이 자꾸만 자꾸만 멀어진다.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 시는 친구의 모습을 잔뜩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라는 느낌은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아니고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구나 하는 느낌이다. 이래서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시가 아니다.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썼다고 했는데, 우선 이 작품에 나온 한자말이나 잘못 쓴 말부터 살펴보자. - 청량한 입으로 소리내었을 때, 울림이 좋은 말이다.그러나 무슨 말인가? 귀로 들었을 때 쉽게 알 수 있는 말,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더구나 이런 내용을 쓴 시라면 글에서만 나오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밝은 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셋째줄에 맑은 이 나와 있다. 이 셋째줄의 맑은 은 음성 곧 목소리를 말한 것이니 고운 하면 될 것이다. - 음성 이 말도 목소리 라 하면 된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쓰는 말이 가장 깨긋한 우리말이고, 시가 될 수 있는 좋은 말이다. - 대지 이것은 땅 이라 써야 한다. 땅을 대지 라고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남의 나라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고, 겉멋 부리고 허세 피우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대지 는 우리말이 아니다. 만약에 땅 이라 쓰면 뭔가 보잘것 없고 빈약해 보이는 말 같고 대지라 하면 그럴싸해 보이고 시가 될 것 같은 말로 느껴진다면, 그런 사람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잘라 말하고 싶다. - 넓은 땅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이게 무슨 말인가? 얼굴이 땅에 떨쳐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떨쳐진 (떨친다)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잘못 쓴 것이다. - 여운 이 말은 울림 이라 하면 그만이다. -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것은 말이 틀렸다. 꽃잎 은 떨기 라 하지 않는다. 한 떨기 라 했다면 꽃처럼 이라고 써야지. 이렇게 엉뚱한 말을 쓴 것도 말을 말로서만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우선 한 차례 말을 우리 것으로 깨끗이 다듬어 놓고 (말을 잘못 써서 무슨 말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이 그래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그러면 훨씬 쉽게 읽힐 것이다. 그런데 낱말만 다듬어 놓았다고 해서 이 시가 썩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낱말과 낱말들이 모여서 이뤄진 문장이 원체 공중에 둥 떠 있는 말이 되어 있기때문이다. 흔히 쓰는 투의 말로, 개념으로 된 말로 씌어 있는 것이다. - 새벽 별보다 더 맑은 눈 시냇물보다 더 고운 목소리 이런 것은 유행하는 노래말이지 시가 될 말은 아니다. 이런 말을 또 괜히 어려운 한자말이나 글말로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그 바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말의 속임수가 될 뿐이지. 여기에다 틀린 말을 써 놓은 것이며, 이 모든 말의 허방이 뿌리도 향기도 없는 종이꽃을 손으로 만들려고 한 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친구든지 무엇이든지 대상을 아름답게만 그려야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게만 그리려고 할 때 도리어 그것은 거짓이 되기 예사다. 사실을 정직하게, 또렷하게 잡아 보여야 시가 되는 것이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동리편" 김동리(1913~1995) 소설가. 본명은 시종, 경북 경주 출생. 경신 고보 중퇴, 서라벌 예술대학장. 한양대 예술대학장 역임. 일찍이 민족 진영의 문학을 대표하여 좌익을 분쇄한 바 있고 순수 문학의 옹호자로서 전후 문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왔다. "황토기" "등신불" "까치 소리" 등 문제 소설의 작가이다. 만월 나는 지금 보름달 아래 서 있다. 한 깊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좋아하고,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하지만, 보름달은 뭐 싱겁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맞는다던가? 한이 깊은 사람, 꿈이 많은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더 흔할 게고, 그래서 그런지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지, 내 자신이 싱겁고 평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예외없이 싱겁고 평범하게 마련이라면, 나는 내가 그렇게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새벽달의 기억은 언제나 한기와 더불어 온다. 나는 어려서 과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는 것은, 으레 옷매무시도 허술한 채, 변소 걸음을 할 때였다. 그리고, 그럴 때 바라보는 새벽달은, 내가 맨발로 밟고 있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고 날카롭게 내 가슴에 와 닿곤 했었다.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있어 달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서슬 푸른 비수나, 심장에 닿은 얼음 조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게다가, 나는 잠이 많아서, 내가 새벽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선잠이 깨었을 때다. 이것도 내가 새벽달을 사귀기 어려워하는 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더 친할 수 있다.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 밤의 혼령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 이라고 한 시구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 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이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꽃, 복숭아꽃,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미풍이 아니라면, 초승달 혼자서야 무슨 그리 위력을 나타낼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미 여건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초승달이 아닌가? 보름달은 이와 달라 벚꽃, 살구꽃이 어우러진 봄밤이나, 녹음과 물로 덮인 여름밤이나, 만산에 수를 놓은 가을밤이나, 천지가 눈에 싸인 겨울밤이나,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거의 여건을 타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보름달은 온밤 있어 또한 좋다. 초승달은 저녁에만, 그믐달은 새벽에만 잠깐씩 비치다 말지만,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우리로 하여금 온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름달은 온밤을 꽉 차게 지켜 줄 뿐 아니라, 제 자신 한 쪽도 귀도 떨어지지 않고, 한쪽 모서리도 이울지 않은 꽉 찬 얼굴인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은 시간은 짧을수록 값지며, 덜 찬 것은 더 차기를 앞에 두었으니 더욱 귀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필경 이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 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초승달이나 그믐달같이 불완전한 것, 단편적인 것, 나아가서는 첨단적이며 야박한 것 따위들에 만족할 수는 없다.나는 보름달의 꽉 차고 온전한 둥근 얼굴에서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도 불완전하며 단편적이며 말초적인 것을 높이 사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기발하고 예리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성과, 거기서 빚어지는 무게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에 견줄 수는 없으리라.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의 소유자를 나는 좋아한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절로 내 마음을 무장하게 된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 누구를 바라볼 때나 무슨 물건을 살필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시선이 자꾸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 기발하기보다는 정대한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깊이 믿으며 존경하는 것이다. 보름달은 지금 바야흐로 하늘 가운데 와 있다. 천심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은 더욱 길며 여유 있게 느껴지는 것이 또한 보름달의 미덕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다릿목 정자까지 더 거닐며 많은 시간을 보름달과 사귀고자 한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기도하는 법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어느날 할아버지는 손녀딸의 방을 지나다가, 어린 손녀가 이상할 만큼 열렬하게 알파벳을 암송하는 것을 들었다. "얘야, 지금 뭘 하는 거니?" 그가 물었다. "기도를 하고 있어요." 어린 손녀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밤에는 제대로 된 기도 말을 떠올릴 수 없어서 모든 문자를 말하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그 문자를 조합하실 거예요. 그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시나까요." 신에게 요청하라 1 - 작자 미상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하나의 꿈을 품었다. 그녀는 상급자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 "저는 동전 세 닢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하여 고아원을 짓고 싶습니다." 상급자가 부드럽게 질책했다. "테레사 수녀, 동전 세닢으로는 고아원을 지을 수 없어요. 그 돈으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알고 있어요." 테레사 수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신과 함께라면 삼 페니로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팀 피어링 우리의 역사는 영적인 에너지의 무한한 권능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 에너지를 향해 몸을 돌리고 요청하는 것이다. 성서에도 있잖은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신은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약간의 도움만 요청한다면, 그것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은 요청하지도 않은 채 포기한다. 신에게 요청하라 2 - 피터 렌겔 1976년 캘리포니아 북부의 트리니티 알프스 산의 캠프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중에 나는 '요청'하는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배웠다. 친구 마릴린과 함께 나는 10여 명의 십대 소년 소녀를 이끌고 2주일간 '야생 체험 현장 학습'을 나갔다. 이레째 되던 밤, 우리는 낯선 산악 지역에 캠프를 쳤다. 벌써 여러 날 동안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한 터였다. 그날 밤, 예상치 않은 여름 눈보라가 몰아닥쳤고 우리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밤을 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눈보라는 잦아들기는커녕,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기세가 심해졌다. 이제 모든 길의 흔적은 사라졌다. 주변의 산이나 지형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지도를 읽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식량까지 바닥난 상태였다. 바로 그날이 우리의 '식량 사냥' 예정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웠다. 아니, 사실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렸다. 나는 일행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다. 날씨가 좋아지지 않았다면, 이미 젖은 의복과 슬리핑백으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을 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얼어 죽울 수도 있었다. 나는 전날 지났던 산 정상 주변의 쉼터를 떠올렸다. 그래서 마릴린에게 아이들을 남겨 두고 3미터 높이로 쌓인 눈과 매서운 눈보라 속으로 나섰다. 나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쉼터를 찾을 만큼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오직 나 하나만 의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나는 절망에 젖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렸다. 앞을 볼 수 있을 만큼만 눈보라가 걷히게 해 달라고 주님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내 머리 속에는 우리의 죽음을 머릿기사로 한 신문 기사가 생생하게 떠올랐고, 눈물이 절로 솟았다. 나는 일행에게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찾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막 산 정상에서 내려가는데, 내 두 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냥 괜히 산의 뒤쪽으로 이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자락을 돌자마자, 나는 발밑에서 쉼터의 방향을 알리는 작은 흔적을 발견했다. 나는 환희의 함성을 울렸고, 이제 살 길이 생겼다는 소식을 안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Board 추천글 2022.11.30 風文 R 1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