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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文  Jan 30 2025
진보와 보수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랜 세월을 걸어왔다. 프랑스처럼 민족 반역자인 94세 노인을 감옥에 처넣는 단호함도 없었고 오히려 우리나라는 민족 반역자들을 재기용 하면서 썩은 정치를 이루어 왔다. 국민의 힘 의원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보면 안다. 밥그릇 놓고 물어뜯고 더러운 정치를 보여왔다. 누군가는 투쟁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가 아닌 진보와 극우로 변했다. 극우는 트럼프를 보면 알지만 보수가 아니다. 미친 인간의 표본이다. 이번 서부지법 폭동을 보면 알지만 우리나라가 총기 사용 허가 국가였다면 어땠을까? 전국은 파멸로 들어선다. 그게 극우다. 광화문에 탄핵 반대 성조기 집회와 촛불을 든 탄핵 찬성 집회를 보면 안다. 극우 집회가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세력이면 우리 집회는 평화롭기만 하다. 성조기 집회와 달리 쓰레기까지 청소한다. 성조기를 든 그들은 휴지 하나 줍지 않는다. 자기가 싼 똥도 안 치운다. 2~30대 남성이 70대처럼 보수화 또는 극우화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외로움’이다. 기댈 곳도 없고 희망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누군가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전광훈이나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 ‘외로움’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는 외로움을 이용한다. 보살펴 줄 테니 나를 믿으라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손을 뻗어주는 사람이 그들뿐이기 때문이고 보이기를, 말하기를 그 따위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힘은 그렇지 않다. 절대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 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의 파면 선고 즉시 이들은 다른 사람이 된다. 파면 즉시 면회나 응원은 없다. 아직도 모르겠나. 국회로 총칼을 들고 실탄 장전하고 폭약을 들고 유리창을 깬 군인을 보고 내가 손뼉을 쳐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체포영장, 영장 연장, 구속영장, 구속기소에 말들이 많다. 난 TV에 나와 떠드는 인간들을 보면 한심해서 TV를 꺼버린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닌가? 그러면 벌을 받으면 되지 이러쿵저러쿵 복잡하게 만드는 극우들의 꼬락서니를 보며 역겨움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매우 단순한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으면 된다. 아닌가? 성조기 집회가 일당 5만 원이라 알려졌는데 10만 원임이 밝혀졌다. 트럼프가 윤석열을 꺼내 준다고 믿는다. 이 늙은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지 말고 그냥 뒀으면 한다. 저렇게 즐겁고, 감방행을 원하는데 그냥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자. 역사를 모르는 2~30대에게 광주를 이야기한들 씨알이나 먹히겠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칭송하면서 대화 내용을 썼다. 그러나 그 위대한 소크라테스 역시 어느 젊은이도 설득하지 못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냥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답은 없다. 답답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차라리 집회를 축제로 바꾼 2~30대를 칭송하라. 그들은 나라의 미래로, 그 안에 미래의 지도자가 있다. 더 이상 우리나라에 보수는 없다. 홍장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다. 전부 극우로 설득이 불가한 세력이며 개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깨침을 포기했고 일당이 중요한 자들이다. 그게 자본주의의 어두움이다. - 윤영환 2025.01.30. 14:40 윤영환
風文  Dec 21 2024
야당에 권함 윤 씨의 탄핵 가결 시에 함성은 월드컵 우승 정도는 해야 들을 수 있는 시민 함성이었다. 시위대를 위한 도시락, 국밥 등 무료 지원이 이어졌고, 5 일장에서도 볼 수 없는 민심이 거리를 뒤덮었다. 미국 언론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여론과 반성 좀 하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자유를 주 무기로 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향후 민주주의의 발전 된 표본이 한국에 나타났다고 배워야 한다고 언론의 일치가 일어났다. 체감 온도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씨에도 시민은 또 모였다. 대만은 한국의 응원 봉을 이어받아 지금 시위 중이고 ‘평화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라는 원천적인 질문이 샘솟고 있다. 윤 씨의 실수는 광주학살의 아픔을 안고 사는 국민을 건드린 것이다. 개인이, 그것도 비무장으로 장갑차 앞에 설 수 있는 용맹성은 과거의 역사 체험에서 나온다. 총칼을 무서워 하지 않는 마음은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다. 그 마음엔 여야가 없다. 내가 내 나라의 땅을 밟고 살며 우리의 권리를 함께 주장 할 수 있는 힘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한 아픈 과거가 없었다면 멀뚱멀뚱 당했을 착한 국민이다. ‘국민의 짐’ 당 의총의 더러움이 녹취되어 보도됐다. 구역질 나는 내용이다. 선거만을 위해 밥 처먹는 ‘세금빨이’들을 몰아내야 한다. 누구 때문에 우리는 땀흘려 일하고 고생하며 세금을 내는가. 저 ‘국민의 짐’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아깝지 않은가? 총리가 윤 씨 따라 하기를 하고 있다. 어디까지 갈 것 같은가. 지속된다면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위성지도에서 사라진다. 그 이유는 국민을 너무 무식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국민의 짐’과 정부다. 어떠한 경우도 폭력은 안 된다. 그러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조심하라! 건물 하나가 사라진다. 법사라는 자들과 점쟁이들에게 포위된 의식은 자의식이 없다. 미신과 사이비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일본 독가스 살포에서 보듯이 교주 하나로 무고한 희생을 낳는다. 그 후폭풍은 주동자와 관계자들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물은 개신교 전광훈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상식이 사라진 나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나 양반이나 귀족이 아닌 민중이 나라를 뒤엎었다. 정치인 이전에 국민이 있고 내 땅이 있고 내 권리가 있다. 모든 힘은 민중이 가지고 있고 그 힘은 누구도 저지 못한다. 현재 ‘국민의 짐’에 대해 정당 해체를 추진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 될 것 같나? 우리는 해온 일처럼 앞으로도 해나가면 된다. 차근차근 폭력을 배제한 체 시나브로. 총구를 한 여성의 가슴에 들이대는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방송됐다. ‘국민의 짐’은 작은 소란일 뿐이라며 탄핵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까지 배출한 ‘국민의 짐’이다. 계엄 전문 당을 믿어야 하나? 지금 국민은 민감하다. 예민해져 있고 건드리면 딱히 좋은 모습을 볼 수 없다. 권력다툼은 자기들끼리 일이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국민을 대놓고 건드리면 무슨 일이 벌어 질 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국민을 배제하는 순간 엄청난 연봉을 받는 ‘세금빨이’들의 운명은 자명하다. 만 원짜리 하나 들고 마트 갔다가 되돌아온다. 주부들의 한숨이 바닥을 치고 있다. 가족의 음식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졸라맬 허리띠도 팔았다. 몇 년 만에 이 나라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세계의 패망 국가로 낙인이 찍혔다. 수십 년 노력한 국민은 뭔가? 전 세계 언론이 ‘K-민주주의’를 주목하고 있다. 언제나 국민이 슬기롭게 지켜온 나라다. 1인이 국가 전복을 추진 중이다. 빠른 해결만이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더욱 전투적인 야당의 행보가 중요하다. 지원 세력이 많으니 안심하고 진행하라. 목숨 걸고. 2024.12.21. 15:40 風文
風文  Dec 12 2024
장래는 걱정하지 말자 아이돌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나섰다. 인기와 돈에 노예이며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입다물던 연예인은 사라져간다. 핫팩과 커피를 지원하고 응원의 메시지로 촛불 시민들을 응원하고 있다. 반면 김흥국 같은 연예인도 있다. 커피숍 사장님들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따듯한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을 보며 80년 광주에서 주먹밥과 물을 나르던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왜 겨울에만 이 난리인가. 온갖 시위 푯말과 깃발 제작으로 인쇄소들이 주말을 포기했다. 인구가 몇 안 되는 지방에서도 칠천 명을 예상했다가 만 오천 명 이상 몰리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곳곳에 청년들의 이색깃발이 나타나고 우울함을 흥으로 푸는 우리 고유의 DNA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갓 투표권이 생긴 학생들과 어린아이까지 촛불을 들고 있다. 내가 봤던 할아버지도 들고 있다. 기성세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너졌다. 새로운 나라를 책임질 세대 걱정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다들 생각이 있고 뜻대로 움직이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 예쁜 젊은이들을 응원한다.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추운 날 장갑을 비비며 소리내는 아직 솜털이 있는 이 젊은이들을 응원한다. 과거 편지 하나 보내는 데 한 달이 더 걸렸다. 지금은 어떤가.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러니 국회의장을 포함한 지식인들이 속칭 담치기해서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문자를 보자마자 국회로 즉시 달렸지 않은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 어디로 모이라 하면 수 분 만에 집결한다. 군대보다 빠르다. 이 빠른 시대에 기성세대는 적응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정권은 국민을 과거처럼 잘못 건드렸다. 노예로 알기에 명령하면 벌벌 기며 따를 줄 안 것이다. 변해버린 시대를 모른 것이다. 그러니 정치집단은 꼰대들의 모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늘 청년들의 취업과 삶의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예산을 집행해 왔다. 주거의 어려움이나 시급도 조정하며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청년들은 의식이 살아있었고 정보가 흘러넘치는 상황에 쓰레기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을 갖췄다. 나는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니라 본다. 장래는 밝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경험이 국방과 경찰 그리고 검찰이 변화되는 앞날이 된다고 믿는다. 그토록 자식 걱정하던 이들도 걱정을 멈추기를 바란다. 인류는 어디에 던져 놓아도 생존한 존재고, 스스로 이룩한 문화는 현재 실시간 공유되고 있다. ‘저 녀석을 어찌할꼬 나 없이 잘 살려나’ 이런 생각은 이제 접자. 어른들이 알게 모르게 성장해 세계인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는 세대다. ‘국민의 짐’처럼 눈치나 보는 늙은이 시대가 아니다. 당명 바꾼다고 변할까? 이제 해체 절차를 밟을 때가 왔다. 그냥 두고 볼 젊은이들이 아니다. 가장 썩은 곳이 군대인데 이번 계엄 사태로 전 군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국회에서 밝혀졌다. 썩은 살은 어떻게 하나. 병원에선 파낸다. 국민은 철조망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폐쇄 단체인데 국민 세금으로 먹고산다. 연금도 국민이 내준다. 군대가 기생 단체임이 천하에 드러난 이상 개혁은 필수 요소다. 현재 젊은 세대들이 군에 들어가 변혁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 상식선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고 상식으로 변혁해야 한다. 왜냐면 법은 상식을 기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행 주의보를 내렸던 나라들이 순서대로 견해를 바꾸고 세계의 미디어와 외국인들이 광화문에 와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신기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돌팔매도 없고 물대포도 없다. 그런데 그 많은 국민의 질서는 누가 지키는가. 스스로다. 갈수록 젊은이들의 참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어느 학생의 ‘강의 못 가고 시위 참가 하러 가요’라는 문자에 담당 교수의 답변을 보라. 입다물고 있으니, 국민이 얌전한 줄 알았던 ‘국민의 짐’은 해체 순서를 당장 밟아야 할 것이다. 국민이 총을 사준 것은, 나에게 겨누라고 사준 총이 아니다. 2024.12.12. 13:07 風文
風文  Dec 10 2024
피할 수 없는 외로움 어려서부터 외로웠다. 1년에 이사를 두세 번씩 다녀 친구를 사귈만하면 그 동네를 떠나야 했고 형제들은 터울이 많아 대화가 힘들었다. 누나와는 아홉 살, 형과는 일곱 살 터울이다. 누나는 틈만 나면 책을 무더기로 사와 무섭게 가르쳤다. 군대 저리가라였다. 배워야 한다고, 무식하면 사회에서 대접도 못 받는다고 정말 무섭게 나를 가르쳤다. 이사 갈 때면 책이 이삿짐의 절반이었다. 기댈 곳 없던 나는 오로지 어머니만 따라다녔고 어머니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그럭저럭 살다 마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학창 시절 모두를 보냈다. 친구들이 많았고 임명장이란 임명장은 다 받았다. 공부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미소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돈 벌러 가고 형은 주먹의 세계로 가고 누나는 가난이 지긋지긋하다면서 10만 원 수표 뒤에 편지를 써놓고 가출해 버렸다. 나는 강해져야 했다. 강한 척이라도 해야 했다. 어머니와 나뿐인 집에서 어머니는 미소를 잃었지만, 나의 성적표는 어머니를 웃게 했다. 나는 오로지 어머니 때문에 공부하게 된 셈이다. 뭐든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가정을 이끌어야 했다. 아버지는 돈 버는 데 실패했고 나는 짐이 되기 싫어 해군에 간부로 입대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고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역해서 어머니를 돕고 싶어도 군에 몸이 소속되어 돕지 못했다. 중사로 진급했어도 알리지 않았다. 의무 기한이 차 직업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곧바로 전역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걱정됐다.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수십 개의 직업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60세에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누나는 선암으로 50도 안 되어 하늘로 가고 뒤이어 아내도 아파트 장만 일주일 만에, 그 젊은 나이에 림프암으로 하늘로 떠났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누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고 끝내 홀로 침대에서 저승으로 갈 때 신을 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숨을 거뒀다. 수면 유도제 봉지들을 보는 순간 자살임을 직감했다. 올 초에 부천에 있는 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형이 길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시신을 수습하겠냐는 전화였다. 그것으로 나의 모든 가족은 내 곁을 떠났다. 자식도 없고 친척도 없는 신세가 됐다. 술로 지냈고 그 여파로 중병에 걸렸다. 지금도 술을 마신다. 잠을 자기 위해서, 그리고 외로우니까. 모든 인간은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세상과 이별할 때도 홀로 간다. 같이 가주는 이는 없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사람들은 극복이란 말을 한다. 외로움도 극복하고, 고독도 극복하고, 슬픔도 극복하고…. 신도 만들어 죽으면 천국 간다고도 한다. 뭘 그리 극복하는가.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내가 지금 후회하는 건 나를 위해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친구를 위해 살았다. 왜 나를 위해 살지 않았나. 유아독존이란 말은 고집불통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아니다. 세상에 나를 대신해 나를 살아주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홀로 존재하며 하루하루를 불살라 버리는 지속성에 놓여있다. 태울 것이 없다면 천천히 가는 것이다. 노인들의 고독사는 배고파서 벌어지지 않는다. 외로워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움이다. 살며 겪는 모든 일은 내 몫이다.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안고 가야 한다. 남을 쳐다보지 말 일이다. 우리나라 이웃들처럼 정이 많은 민족도 없다. 서로 돕고 위안을 주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나는 오늘 매우 외롭다. 그 외로움은 아무도 모른다. 남 일이니까. 내 일이 아니잖나. 어떠한 선택도 내 마음이 결정한다. 많은 장례식을 내 손으로 치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으니까. 그게 현실이다. 그것은 인류의 반복이고 육신의 한계다. 당연히 거쳐야 하지만 행복하게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 외로움 속에 묻혀 가는가, 행복하게 웃으며 가는가는 유아독존인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 슬퍼한다고 해서 외로움은 떠나지 않는다. 늘 맴돌며 나를 쥐어짠다. 외로움을 비웃는 나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삶의 의미다. 2024.12.10. 13:18 風文
風文  Dec 10 2024
청년들에게 미안해하라 내 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직장을 다니고 월급을 받고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몸을 다쳐도 밴드 하나 붙이고 연고 조금 바르고 출근했다. 나의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내가 벌어야 가족이 살기 때문이었다. 비굴해도 눈물을 닦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다르다. 나의 인생, 나의 존재가 가장 소중하다. 생각해 보라. 내가 없으면 부모도 없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 무엇이 의미가 있나. 어른은 젊은이들이 잘 정착하고 먹고 살기 편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되려 윽박지르고 싹수없다고 손가락질한다. 수천 년간 같은 말이 있다. “요즘 젊은것들은 글러 먹었어.” 이 말은 앞으로도 유행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잘한 것이 뭐 있다고 나이를 무기로 젊은이들을 욕하나. 온전히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 물려 줄 의무를 모르나? 평화를 물려 줄 의무를 잊고 사는 건 아닌가 한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고공 하는 물가의 협박을 아는가.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아는가? 나이만 처먹으면 어른인가?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이 살펴보니 청년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독사는 노인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런 희망도, 외국으로 이민도 못 가는 처절한 청년들을 아는가. 그 훌륭한 머리들을 잃지 말자. 우리나라 민족은 비상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거대한 강대국이 쳐들어와도 이 땅을 지켜왔던 민족이다. 세대의 붕괴는 없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청년들이 더 잘 해내고 있다. 어른들이 상상도 못 하던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고 있다. 지원을 누가 해야 하는가. 꼰대들의 인생은 저물어간다. 이 청년들의 꿈을 돕자. 인간은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동물이다. 그 근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압적인 교육은 반발을 유도한다. 도움을 청하는 청년들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어느 사람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만 잘 먹고 잘살다 가면 되니까. 바꿔야 한다. 생각을. 집회를 보자. 2024년 집회는 시위가 아니라 축제다. 노동가요는 사라졌다. 우리 민족은 어려움을 기쁨으로 표현해 왔다. 장례식장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화투치고 웃는 문화다. 독립군이 웃으며 전투한 것은 일본 놈 머리를 누가 많이 가져오나 술 내기를 걸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극복하는 민족이다. 그것이 흥이고 삶의 기(氣)다. 지금 보이는 촛불집회는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아름답고 흥에 겹다. 어른은 결국 꼰대로 남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현재는 불가할 지경이다. 왜냐면 당신이 꼿꼿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쳐 나이 먹을수록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 그리 굳어 있나. 40 넘으면 생각이 굳는다.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내가 이리 살았으니 이 길이 온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거기에 안착한다. 그 누구의 말도 귀에 거슬린다. 어떤 사람은 ‘삶의 기술이 있는데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시당하고 있다. 어른이 변하지 않으면 청년은 힘들다. 시대는 하루가 멀다고 바뀐다. 어른들이여. 적응하라. 2024.12.10. 風文
風文  Dec 09 2024
희귀한 내란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미국이다. 시위 현장은 상점이 불에 타고 털리고, 마트의 식료품은 바닥이 나고, 차량은 모조리 부수고 태우는 게 미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위 현장은 참여한 국민이 쓰레기를 다 치우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미 시민의식은 선진국을 넘어섰다. 몰지각한 것은 정치인이다. 국민이 선출했는데 할 도리를 하고 있지 않다. 국민은 그들에게 1인당 수억 원의 세금을 바치고 있다. 그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 부를 축적하고 국가 정보에 가까워 부동산이나 주식의 수입도 대단하다. 2년 만에 20억을 번 놈도 밝혀졌다. 국민은 봉인가? 노예인가? 중요한 변화가 있다. 수십 년을 국민의 힘에 끌려다니던 대구가 그리고 부산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판단이다. 간단하다. 상식선에서 정치를 바라보면 된다. 우리네 장바구니를 보호해 주길 아주 단순한 염원을 지켜주면 된다. 그것이 대의 정치의 표본이다. 오랜 세월 어느 정권도 국민을 못살게 두면 패망했다. 나는 2년 전에 윤석열의 무식함을 경고했다. 임기를 채우기 힘든 인물이라고 썼다. 그 글이 아직 남아 있다.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더 혁명적인 국민의 마음이 지금 발동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봤다. 손에는 촛불이 들려있다. 웬만하면 울컥하지 않는데 그 할아버지를 보고 나는 울었다.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친구삼아 주무셔야 하는데 이 추위에 왜 길거리에 나오셨나. 군인이 총칼을 들고 국회로 온 것을 처음 본 것이 아닐 것이다. 매우 슬펐다. 현재 ‘국민의 짐’은 내정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다. 범인들이 국정을? 그걸 누가 믿나. 수많은 언론인이 방송계에서 축출당하고 야지에서 활동 중이다. 의식 있는 국민은 더 이상 지상파 뉴스를 보지 않는다. 미디어를 선택해서 본다. 특히 KBS는 가장 썩은 방송 공사다. 특이한 것이 이번 촛불은 학생이 참여했다는 일이다. 취업전선, 취업학교를 다니다가 이제야 밖으로 나왔다. 대학생은 큰 배움이 아니라 이젠 졸업장을 필요로 한다. 취업 말고는 답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대학은 취업학원이 됐다. 미안하기도 하고 늦었지만 거리로 나온 것을 환영한다. 어차피 끝나는 정권이다. 누가 누구를 응원하는가를 가려야 한다. ‘정도’라는 말은 적어도 양심이 긁히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BBC 등 많은 해외 언론사가 이번 계엄을 녹화방송했다. 전세계적으로 창피하고 많은 나라가 한국 여행 주의보를 발령함에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 몇십 년을 노력했는데 하루아침에 나라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우리나라 국민처럼 착한 사람들이 전 세계 어디에 있나.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가도 훔쳐 가는 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로 전 세계로 소문이 났던 국민이다. 늘 이야기했던 ‘투표 똑바로 해라’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국적인 요동에 바른길을 선택하고 민주주의가 뭔지, 왜 형들과 누나들이 총칼에 쓰러졌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목에 총구가 들어와야 따르겠는가? 머저리 소리 듣기 싫다면 일어나라. 그리고 촛불 챙겨 나가라. 후대에 물려줄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라. 2024.12.09. 14:21 風文 윤영환
風文  Dec 07 2024
진보의 험난한 길 내가 문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시인 김수영 때문이다. 정확한 현실 판단과 삶의 곡절을 노래한 김수영은 나를 움직였고 사표를 던지게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를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미 해버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고 통쾌하기도 했다. 지금 2024년엔 어느 단체나 인터넷 동호회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금한다. 분란의 원인이 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씨앗 말이 되기에 금하고 있다. 나는 답답하다. 속이 터지는데,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저지한다. 입닥치는 게 내가 할 일인가? 모든 예술가는 벙어리처럼 산다. 떠들면 값이 내려가거나 잡혀간다. 입다물고 무게 잡고 있어야 예술가다. 반세기 전 김수영이 한 말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같다. 혁명적인 예술가는 볼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을 벗겨 내보여 주는 글도 없다. 안타깝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도 못 하고 눈치나 보며 위엄있는 듯 나이 처먹은 노인들만 존재한다. 노인 따라 4, 50대도 따라 한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속이 터지는 세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이 생겼다. 사마천을 포함해 오랜 세월 진보는 희생양이었다. 많이 죽었으나 그 결심은 포기 하지 않아 왔다. 지금 시대의 진보는 희생양은커녕 미리 포기하기에 안전하다. 진보가 보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지구 중심에는 핵이 있다. 태양은 하루에 셀 수 없는 핵폭발이 일어난다. 기나긴 세월 저 빛이 꺼지지 않는 것은 진보의 핵 때문이다. 꺼지지 않으며 조용히 보여도 자신을 유지한다. 진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기차다. 올라타면 기차는 멈추지 않으며 연료는 무한 제공된다. 현실에 만족하면 기차에서 내려 보수가 된다. 보수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진보처럼 목숨도 바친다. 내려버린 그 역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다. 그러나 진보는 험난한 선로를 끝없이 달린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진보의 업적은 현재의 문화생활을 이룩했다는 것인데 모두 그 희생을 기억하지 않는다. 진보의 무모한 도전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수도 없이 진보주의자는 희생 당했다. 그것이 진보가 갈 길이고 더 나은 인류가 되기 위해 희생하는 어리석음으로 비추어진다. 보수는 비웃고 진보는 울며 달린다. 그것은 숙명이다. 외롭고 괴롭다. 그러나 핵이 있기에 진보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처럼 보수화되지 않는다. 정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다. 내 몸이 먼저 겪는 무서움이다. 그런데 왜 입 닥치고 있나. 역에서 내렸나? 과거보다 지금의 예술가들이 멍청이 소리 듣는 원인은 입닥치고 살기 때문이다. 어디가서 ‘나는 예술가요~’ 하려면 현실을 노래하라. 지금을 노래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없다. 도인 인척 살지 마라. 2024.12.07. 22:19 風文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