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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文  Nov 27 2024
눈 내리던 어느 날 삼십 분이면 오는 거리를 한 시간 반을 걸려 왔다. 갑자기 내린 폭설이 원인이다. 117년 만에 폭설이란다. 도로는 주차장이고 얼마 남지 않은 내 기름 게이지는 불안하게 내려갔다. 다행히 도착해서 집에 왔는데 가관이다. 마을이 눈 속으로 들어갔다. 몇 년 만에 보는 폭설이다.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다. 오면서 봤는데 시내버스나 트럭들은 언덕을 넘지 못하고 비상등을 켜고 정차해 있었다. 기사들은 기름을 나르지만 버스는 가스인데 어쩌나 걱정됐다. 수자원공사 시절이었나? 퇴근을 네 시간 만에 집으로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이런 눈은 처음 본다. 요즘 들어 안정을 찾아간다. 정리도 되고 뭔가 어수선했던 것들이 모조리 치워졌다.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조용히 사는 삶이 좋다. 가난보다는 마음의 평화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성당에서 신부님이 정 기도 할 대상이 없다면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했다. 나는 콧방귀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한참을 생각했다.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다들 벌써부터 퇴근을 서두른다. 왜일까? 폭설 때문에? 아니다. 안락함이 기다리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안정감을 주는 공간을 모든 생명체는 좋아라 한다. 나는 가족은 없지만 집을 사랑한다.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면 그만치 행복한 눈내리는 겨울은 없다. 스쿠루지 영감 나오는 영화나 봐야겠다. 따듯하게... 2024.11.27.
風文  Sep 19 2024
오늘이 열리는 순간 새벽 3시 반쯤 일어난다.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칫솔을 찾아 일어난다. 샤워를 시작한다. 끝나면 새로 잡은 책의 진도를 살피고 쓰던 글의 끝부분을 다시 읽어본다. 이어 써야 하니까. 그리고 필수적으로 매일 읽는 책들을 꺼낸다. 한 권을 한 번에 읽지 않는다. 여러 권을 나누어 읽는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커피를 타러 간다. 드립 향은 잠을 몰아낸다. 새벽의 이 씁쓸한 향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다 한 시간 정도 뒤, 쉬는 시간에 커튼을 걷고 창문과 현관을 열어 환기한다. 그러면 밝음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마치 비가 내리기 전 그 흐릿함과 똑같다. 보기 좋다. 모내기가 끝나고 서서히 벼들이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곧 잘려 나가고 예쁘게 포장되어 내 집 안으로 들어 올 것이다. 기지개를 켠다. 세탁기에 세탁물이 있나 확인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청소를 시작하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다. 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부터 청소한다.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을 빨아대며 다시 커피를 마신다. 이 의자는 아주 편안하다.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다. 이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고 이런 시작을 아주 좋아한다. 변하면 불편함을 느낀다. 지금 나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을 빨아 대고 있다. 오늘문득 : 2024.09.19. 06:05 風文 윤영환
風文  Sep 17 2024
여백이 주는 안락함 아파서 밥을 못 먹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갓 담근 김치만 생각났다. 병원에서 나가면 필히 김치만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냉장고가 창고가 되어갔다. 난 너무나도 부자다. 먹을 것이 흘러넘친다. 밖에서 사 먹기도 하니 냉장고 속 음식들이 썩어간다. 결심했다. 냉장고를 모조리 비우기 전엔 밖에서 사 먹지 않으리라. 오늘 보니 냉장고가 거의 비었다. 이젠 냉동고 차례다. 모조리 비우기 전엔 밖에서 사 먹지 않으리라. 누가 이기나 해보자. 우린 뭐든 흘러넘치는 풍족한 삶을 산다. 무소유라는 것은 갖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은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다. 욕심이 많아 먹지도 입지도 않을 것들을 우린 사들인다. 그래 놓고 먹을 게 없다는 둥, 입을 게 없다는 둥 투덜댄다. 강제로 굶어보거나 강제로 벗겨져 봐야 안다. 한 톨과 한오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흔히들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것이다. 쓰지 않을 것이라면, 먹지 않을 것이라면 나누면 된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지 사다 놓은 책임을 지면 된다. 우린 지나치게 풍족하다. 20년 전인가? 부천에서 쌀은커녕 밀가루조차 없던 때가 있었다. 라면 한 젓가락의 희열을 당신은 아는가. 냉장고나 옷방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일 내로 처리 예정이다. 여백이 생기니 얼마나 여유로운지…. 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 오늘문득 : 2024.09.17. 15:53 風文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