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어린 아이나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가 횡행하는 시대에는 도덕의 존재 이유가 더욱 요청됩니다. 그러나 도덕을 요청하기 이전에 과연 ‘도덕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가치와 입장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도덕철학에 관한 유명한 사상가 칸트의 도덕 개념을 살펴봄으로서 어떤 도덕 철학의 입장에 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칸트는 도덕철학에서 동기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도덕을 내면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이란 어떤 것일까요?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것은 바로 의무감에 의해서 동기화된 것, 그것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입니다. 행위의 동기가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이나 자기 이익으로부터 분리된 행위, 그것이 도덕적인 행위라는 겁니다. 즉, 목적을 위해 수단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고, 전제조건 없이 의무 그 자체를 위해 행위하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덕적 의무감이 자연적 경향성과의 갈등을 이겨내서 그로부터 행해진 행위, 욕망을 물리치고 행해진 행위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칸트의 도덕을 적용해보면, 자신의 마음이 불편해서 자리를 양보하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리를 양보한다면, 그것을 도덕적 행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도덕적 의무감으로 다른 목적 없이 자리를 양보한다면, 두 행위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같을 지라도, 후자를 도덕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규칙이 도덕 법칙이 되는 걸까요? 칸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스스로가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보편화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를 보편화 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말은 어느 누구나 당신의 입장이 되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행위 할 법한 행위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편성을 가져야만 도덕 법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칸트는 도덕을 도덕 법칙에 따르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 그래서 보편적 입장에 서서 모두가 인정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도덕의 영역으로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위와 같은 칸트의 도덕철학은 다양한 지점에서 생각할 여지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보편화 가능성의 논리는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덕 판단의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박정하 <서양철학 징검다리: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 中>
5현제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다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로마의 최전성기로서 영토도 제일 넓었고, 그 다음에 경제적으로나 사회기강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로마가 가장 융성하고 건강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5현제는 양자상속제도의 산물인 것이다. 양자상속제란 혈통을 떠나서 로마전체를 통틀어 가장 현명한 사람을 양자로 들이는 방식을 말한다. 네르바라는 사람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네르바의 양자 중 한 명이 하드리아누스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칭할 정도로 엄청난 예술적 소질이 넘쳐흐르는 황제였다. 그는 아테네 고전주의를 누구보다 사랑하여 아테네의 예술가들을 로마로 데려오곤 했다. 또한 화려한 고전주의를 중심으로 공공성이 강한 로마건축을 개인성을 중시한 건축형태로 변화시켰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이 너무 크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트라야누스 때 방대하게 벌어졌던 영토를 정리한다. 즉, 불필요한 영토는 포기하고, 영토가 축소되는 대신에 내실을 다지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하드리아누스의 취향을 기원전 2세기에 있었던 헬레나이제이션 현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만든 대표적인 건물이 판테온인데, 이 건물은 그리스 고전주의가 가장 원형에 충실하면서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로마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판테온은 무수한 로마 건축물 중 그리스 고전주의를 반영한 가장 화려한 건축물이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장식미가 아닌 고양된 순수예술성을 보여주는 건물인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를 가장 많이 비웠던 황제이기도 하다. 그는 영토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에 있는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고, 또한 각 지역의 장인들을 로마로 초청해 직접 작품을 제작토록 했다. 이렇게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각 지역에 있는 다양한 건축 방식들, 건물형태들을 개인의 목적을 위해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하드리아누스의 빌라’이다. 로마근교의 티볼리라는 도시에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의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규모로 놀이동산 혹은 휴양지의 개념이다.고대신전서부터 중세의 성, 고딕 성당까지. 온갖 종류의 건축물들이 ‘하드리아누스의 빌라’ 안에 들어 있다. 하드리아누스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소설. 고대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성찰, 인간의 행복, 이상향에의 희망을 담았다. 임석재 <그리스-로마 건축: 문명과 시대정신> 제9강 로마건축 I / 제10강 로마건축 II
Board 추천글 2008.05.22 바람의종 R 14046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라 얼마 전 한 술자리에서 후배가 물었다. “형,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겠죠? 저 정말 일하기 싫어 죽겠어요.” 국내 최고 대기업에 입사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후배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일하기 싫다니. 후배의 얘기를 한참 들어주다 난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해 줬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이 무엇이라 생각해? 아르마니? 휴고보스? 내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은 사회적인 인지도나 브랜드가 아닌 내 몸에 잘 맞는 옷이야. 그 옷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이지. 직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에게 맞는 일.” 옷과 직업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 사회가 인정하는 좋은 ‘브랜드’가 있다. 둘,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어 한다. 셋, 소유한 뒤에는 설사 잘 맞지 않더라도 쉽게 벗어던지기 힘들다. 후배는 첫 번째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두 번째처럼 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세 번째와 같이 자기 몸에 맞지 않음을 인지했지만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지 않고 투정만 부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배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옷을 어떻게 벗어요? 형처럼 그렇게 획 벗어던져 버리면 되는 거예요? ” 나 역시 동일한 문제를 안고 살았음을 알고 묻는 소리였다. 대학 졸업 후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곳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에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옷을 벗어 버리고 여행을 떠났다. 타향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돌아와 ‘억세게 운 좋게도’ 출판사에 새 보금자리를 튼 지금, 나는 후배에게 예전의 나처럼 ‘안 맞는 옷은 일단 벗고 보라’는 식의 무모한 충고는 하지 않는다. 용기와 무모함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결정에는 순서가 있다. 하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해져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둘, 밖을 돌아보며 새로이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자. 행동을 위한 준비 단계다. 살짝 걸쳐도 보고 눈요기도 다양하게 한 뒤, 그러고 나서 정말 맘에 드는 옷을 찾자. 셋, 이젠 행동! 용기를 내어 현재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난 내 후배에게 물었듯 묻고 싶다. “당신의 옷! 지금 편안하십니까? ” 우재오 님 | 다산북스 커뮤니케이션 팀장, 《나는 삼성보다 내 인생이 더 좋다》 저자 -《행복한동행》2008년 5월호 중에서
내가 행복한 이유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 한 편으로 대박을 노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독립영화라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배급사들이나, 상영관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해 제작되는 독립장편영화 중 겨우 20%만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독립영화전용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전용관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화진흥정책을 담당하는 곳에서도 전용관 도입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제에서나 상영하면 그만이지 무슨 전용관이냐,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독립영화도 상영하면 되지 않느냐며 오히려 내게 핀잔을 주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되기를 원하는 영화가 한두 편도 아니고, 한국의 독립영화보다 더 유명한 외국 감독의 영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들과 경쟁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7년간의 꾸준한 설득 끝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식했을 때, ‘이제 뭔가 하나 마무리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관객들이 찾아오게 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상업영화의 평균 홍보 비용은 1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경우 평균 제작비도 1억 원이 채 안 되고, 개봉한다고 해도 홍보비로 고작 5백만 원 이하의 비용이 책정될 뿐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이 적은 비용으로 어떻게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할 것인지, 어떻게 관객들을 오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래, 인디스페이스를 찾는 관객은 하루 50명이 채 안 된다. 영화관 입장 수익으론 일하는 사람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운영 경비를 대기에도 급급하다. 그래도 포기하긴 이르다. 이제 영화관이 생겼으니, 독립영화가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고, 현재의 적은 관객 수는 한계가 아니라 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인디스페이스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자 하는 독립영화 감독들을 만날 때,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꾸준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뵐 때 마음 한쪽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원승환 님 | 인디스페이스 소장 -《행복한동행》2008년 5월호 중에서
http://koreadaily.com/asp/article.asp?sv=la&src=opn&cont=opn&typ=1&aid=20080505173001100100 개 코의 놀라운 기능 신남식 수의사 10여 년 전 겨울 설악산에서 빙벽 타기 훈련을 하던 대학생들이 눈사태를 만나 묻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생존자의 제보로 사고 지점은 대강 파악되었으나 10m 이상 쌓인 눈 속에 매몰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조대원 300여 명이 며칠간 구조작업을 하였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훈련된 개를 투입하였다. 긴 탐침봉으로 눈에 구멍을 내고 개에게 냄새를 맡게 하였다. 많은 구멍 속에서 개가 반응을 보인 곳을 집중적으로 파 들어가 2구의 시신을 찾아냈다. 비슷한 시기 야간에 용인지역 산길에서 자동차 전복 사고가 났다. 이튿날 아침 승용차는 비탈에서 발견됐지만 운전자가 없었다. 30명의 경찰이 인근을 한나절 수색하였으나 허사였다. 하지만 개를 투입한 결과 30분 만에 부상한 채로 탈진한 상태의 청년을 발견하였다. 1999년 세계를 놀라게 한 대만의 지진 사태 때는 건물이 붕괴해 어느 위치에 사람이 매몰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개가 투입되었다. 장비나 인력으로는 구조작업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개가 정확한 매몰 위치를 알려준 덕분에 2구의 시신을 발굴하였다. 이상의 이야기는 발달한 후각을 이용하여 산악에서 조난되거나 건물 붕괴 시 매몰된 사람을 찾아내는 구조견의 이야기다. 개가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왜 잘 맡는 것일까? 냄새는 콧구멍을 통해 공기와 함께 비강 내로 흡입되어 비강 안쪽에 있는 후각 상피세포를 거쳐 뇌로 연결되어 냄새를 구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는 매우 발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 코의 구조를 살펴보면 우선 콧잔등은 점액샘에서 분비되는 습기로 인해 항상 촉촉하기에 공기 중 냄새 입자들을 잘 잡을 수 있다. 이 입자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큰 비강 속에 들어와 잘 데워져 후각 상피세포를 더욱 자극하게 된다. 개의 후각 상피세포는 그 표면적이 18~150㎠로 사람의 3~4㎠보다 넓으며 후각 수용체도 사람의 44배인 2억2000만 개나 된다. 그리고 개의 뇌 크기는 사람의 10분의 1 정도지만 냄새를 담당하는 대뇌의 후각 망울 크기는 사람보다 4배나 크다. 산술적으로도 사람보다 100배 이상 좋은 후각이다. 개의 후각은 이러한 해부학적 구조와 함께 탁월한 냄새 배합으로 사람보다 100만 배 이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신비로운 후각 능력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조견 외에 세관에서 마약을 탐지하는 데 활용하고 검역원에서 불법 농축산물을 검색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의 후각을 이용하여 인간의 건강을 지키려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미국의 한 의학연구센터에서는 많은 암환자가 자기가 키우고 있는 개가 마치 뭔가 이상한 것을 탐지해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암세포를 탐지하는 데 개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간질환자가 발작하기 전에 일어나는 냄새의 변화를 감지하여 미리 알려줌으로써 약을 먹거나 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첨단과학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따라잡기에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이 코로 세상을 읽는 개에게 의존하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한 친구의 말은 존재로서의 언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치 그 친구의 전체 존재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언제 만나자는 정보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일종의 공동존재를 형성한다. 언어는 근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이전에 인간을 가깝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언어는 내가 타인에게 던지는 하나의 제스처다. 나는 말로 타인과 접촉한다. 말하자면 언어는 내용 그 이전에 하나의 사건이며, 타인과 내가 함께 있다는 것, 바로 공동존재를 구축하는 길이다. 친구와 나 사이의 공동적인 존재의 형성은 말을 분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이었던 말라르메는 화요일마다 쉬었다. 당시는 사교가 모두 살롱에서 이루어지던 시대. 말라르메의 화요모임에는 그를 추종했던 발레리나 지드도 참석했다. 이러한 후배가 들어오면 말라르메가 얘기를 했다. 그러나 증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말라르메에게 감동을 받긴 했지만 사람들은 나중에 말라르메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말이 의미를 벗어나서 공동존재를 구성하는 작용에 집중된 것이다. 그게 바로 시다. 실제로 말라르메는 시가 그냥 울려 퍼지고 사라지는 음악이거나, 불꽃놀이거나, 발레리나의 움직임이기를 원했다. 또한 의미가 초과된 곳에서, 의미를 넘어선 곳에서, 이 세계의 규정화를 넘어선 곳에서 울려 퍼지고 사라지는 음악이 되기를 원했다. 말라르메에게 시의 이상적인 형태는 음악이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통한 접촉 속에서 의미를 초과하는 터치, 일종의 리듬, 어떠한 율동이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이러한 제스처란 어떤 극단적인 상황, 말하자면 전화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어떤 문화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자, 즉 의식의 죽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 앞에 처한 자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어떤 고통 앞에 노출된 자의 제스처가 바로 문학의 언어다. 문학의 이런 급진적이고 강렬한 제스처, 죽어가는 자의 손짓, 죽음에 다가간 자의 어떤 절규...이런 것이 없다면 문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제스처는 음악이 되어야 하고, 춤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문학 언어의 정상, 최고의 성취가 있다. 진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과학과 철학을 따라갈 수 없다. 문학이 추구하는 정념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텍스트 안에는 누군가의 현전이 있다. 문학의 언어는 결코 체화된 관념을 전달하는 진리의 언어, 지식의 언어가 아니다. 문학은 원초적인 생명의 제스처, 에로티즘의 제스처이다. 박준상 <문학 언어와 철학 언어, 그 팽팽한 대결> 제13강 소통을 향한 문학의 언어: 바따이유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주체의 출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당연히 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 중의 하나였다. 일직선적 시간관에 따르면 과거를 원인으로 현재의 결과가 나타나고, 다시 현재를 원인으로 미래가 나타난다. 주체가 먼저 있고 주체의 작용으로 사건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애초에 주체가 존재한 것이 아니다. 주체는 사후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 세 명의 죄수가 있다. 간수 한 명이 와서 세 개의 흰 원반과, 두 개의 검은 원반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죄수들의 등에 흰 원반을 각각 하나씩 붙였다. 죄수들은 자기 등에 붙은 원반을 볼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등에 붙은 원반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있다. 간수는 죄수들에게 자기 등에 붙은 원반이 무슨 색인지 가장 먼저 맞춘 사람을 내보내 주겠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세 죄수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자기 등 뒤에 흰 원반이 있다고 맞출 것이다. 어떻게? 당신이 죄수 A라 가정해보자. 그리고 ‘내가 만약 검은 원반을 등 뒤에 붙이고 있다면’ 이라고 가정한다. 우선 B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붙어 있다고 가정하면, 죄수 C는 즉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다. 그렇다면 죄수 B의 등 뒤에는 흰 원반이 달려 있는 것이다. 다시 죄수 C의 입장에서 가정해보자. 나(죄수 A)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고, 죄수 C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고 가정하면, 죄수 B는 즉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다. 그러면 죄수 C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두 번째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죄수 C의 등 뒤에는 흰 원반이 있는 것이다. 결국 내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가정에 따르면 두 죄수가 모두 스스로가 흰 원반임을 알고 달려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바로 내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내 등 뒤에는 흰 원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적인 흐름은 죄수 상호 간의 응시-이해-결론의 순서로 진행되지만, 논리적인 흐름은 결론이 이해에 확신을 주고, 이해는 다시 응시에 확신을 주는 순서로 진행된다. 즉 내가 검은 원반을 갖고 있다는 가정(이해)이, 결론에 의해서 확신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논리적인 시간이다. 이처럼 사건이 있을 때 주체는 가장 마지막에 나올 수밖에 없다. 주체가 있기 때문에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말이 있기 때문에 주체가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이 나를 꽃이라 부르는 순간 나는 당신에게 꽃이 되는 것이다. 김석 <개념으로 만나는 라캉-『에크리』읽기 中>
마음으로 소통하라 가끔 차를 두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습관처럼 신문 가판대로 향한다.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지하철 신문 가판대로 향했다. 그리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신문을 파는 매우 특별한 가판대를 목격하게 되었다. 가판대 주변은 신문과 잡지 머리기사를 살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간신문과 석간신문의 머리기사를 번갈아 보며 어느 신문을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키가 큰 중년의 외국인 한 분이 다가와 영자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때 신문 하나를 움켜쥔 칠순 남짓한 주인 아저씨의 손이 가판대 밖으로 나왔다. “우리 단골 오셨네. 어제는 안 들러서 신문 챙겨 놓았어요. 기다렸는데 이제 오셨네요.” 신문을 받아 든 외국인은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전하더니 주머니에서 신문 값을 내밀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받은 돈을 돌려주며 환하게 웃었다. “매일 오는 단골한테 주는 서비스인데, 돈을 받으면 되나.” 어눌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전하며 가판대를 돌아서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까지도 포근해지는 걸 느꼈다. 외국인 손님에 대한 주인 아저씨의 배려가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되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는 “마케팅의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매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온라인 마케팅이다. 온라인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체험하게 하여 브랜드와 좋은 관계를 갖도록 하는 일을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신문 가판대 주인 아저씨는 나름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자신의 경험으로 익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셈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하는 배려와 친절이 있었기에 평범한 고객이 아닌 단골손님을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비밀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데 있었다. 진봉섭 님 | 하트커뮤니케이션 대표 -《행복한동행》2008년 4월호 중에서
자본주의 이전에는 생산하는 사람이 곧 소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경제생활의 최종 목적은 소비다. 물건을 많이 생산하겠다는 것만을 목표로 사는 사람은 없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곧 소비가 경제생활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런데 이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생산이다. 소비하려면 생산된 물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사람들은 자기가 생산해야 할 것이 있으면 자기가 직접 생산했다. 이때에는 자신의 경제생활이 곧 얼마나 생산하느냐에 직결되었기 때문에 생산관계는 매우 투명했다. 그 시절, 가난과 부에는 아무런 비밀도 존재하지 않았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면서 사람들에겐 교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자기가 먹고 사는 문제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저 너머, 교환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있는 경제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급자족 체계가 붕괴하면서 가난이 생겨났다. 11세기에서 14세기까지 유럽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 그리고 14세기를 전후해 페스트가 돌면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사람들이 페스트에 대처하는 방법은 오직 마을을 모두 태우는 것뿐이었고, 유럽의 자급자족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해답을 준 것은 마르코 폴로였다. 마르코 폴로는 사람들에게 동방이라는 나라에 어마어마한 재화와 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동양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살던 그 시기에, 마르코 폴로는 동방과 교역을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동방으로 가는 길에는 협상이 불가능한 오스만 투르크가 버티고 있었다. 유럽 사회는 동방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지중해를 통한 교역을 포기하고 대서양으로 나가게 된다. 지중해 해상권인 베네치아와 이탈리아 반도는 이제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에게 경제의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그리고 농업을 넘어서는 상업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교환이 모든 것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이제 부는 현물에서 교환을 거쳐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품이 되었고, 사람들은 교환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 신비화된 부를 욕망하게 되었다. 강신준 <『자본』을 읽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이해 中> 제 1강『자본』의 등장
행복한 농사꾼을 바라보며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농민과 함께 뒹굴며 살아온 지도 어느덧 8년째다. 그 안에 내가 존경하는 ‘행복한 농사꾼’이 있다. 섬진강 자락이 내다보이는 3,000여 개의 장독대가 장관을 이루는 청매실농원의 ‘매실 아지매’가 바로 그분이다. 농촌관광의 원조인 그녀는 “앞으로는 사람들을 자꾸 농장으로 불러들여야 한데이”, “내 보래이 사계절에 볼 수 있는 꽃을 다 심어 놓았다 아이가”, “한번 와서 보래이, 기가 막히다~”하면서 1월에서 12월에 피는 꽃 이름을 술술 말씀하신다. 그분은 이른 새벽 발목을 적시는 이슬에서 자기만의 ‘보석’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밭을 일구는 매듭 굵은 손을 가진 그분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농사꾼’임에 틀림없다. 또한 ‘밥상이 약상’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걸 보면 매실을 파는 일보다 건강을 파는 일에 열심인 농사꾼이다. 그런 점이 소비자로 하여금 신뢰를 갖도록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욕심을 가진 농부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심이 후해 자꾸 퍼 주기만 하시는 그분이 바라는 건 단지 자신을 ‘행복한 농사꾼’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다. 몸은 늙었지만 할 일이 많아 보이는 그분은 아직도 꿈을 꾸며 살아간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매실 밭에 핀 꽃은 내 딸이요, 열매는 내 아들이니 천국이 바로 여기지요. 여든 살이 되어도 아흔 살이 되어도, 내가 만든 농산물이 작품으로 인정받는 정말 ‘행복한 농사꾼’이 되는 게 꿈이에요.” 나이를 먹으면 꿈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꿈은 움직이는 생명체다.’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이분의 꿈은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꿈이 있는 자는 목표가 있고, 목표가 있는 자는 계획이 있다. 계획이 있는 자는 실천을 하며, 실천을 하는 자는 실적이 있다. 또 실적이 있으면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반성을 하게 되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이분이 항상 철칙처럼 여기는 말이다. 이분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멋진 꿈을 꾸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경쟁력이 아닐까. 심호흡 한 번 크게 쉬며 “자!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해 보자. 그리고 그분처럼 새로운 꿈을 꾸어 보자. 권영미 님 | 한국벤처농업대학 사무국장 에이넷 대표 -《행복한동행》2008년 4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