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상단(商團) 서울신문]김홍도의 작품 '길 떠나는 상단(商團)'이다. 먼저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복색을 보자. 차림새를 보아하니, 모두 양반은 아니다.9명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맨 오른 쪽의 사내만 대우가 작은 갓을 썼을 뿐, 나머지 8명 중 두 사람은 방갓을 썼고, 두 사람은 건을 썼다. 네 사람은 맨머리다. 맨머리의 사내는 상투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오른 쪽 부분의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맨머리의 총각은 어린 기색이 완연하다. 행색으로 보아 이들은 양반이 아니다. 맨 오른쪽 갓을 쓴 사람도 나이가 들었다 뿐이지 짧은 곰방대를 가진 품이나, 복색이 도포가 아닌 점으로 미루어 보나 양반은 분명 아니다. ● 말·소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어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장터길'이다. 내가 정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전해져 온 것이다. 단원이 원래 취한 제재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장터와 상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이들은 한 패거리이거나 아니면 두 세 패거리로 짐작이 된다. 먼저 오른쪽의 네 사람을 보자. 네 사람이 네 필의 말을 타고 있다. 중간의 머리를 천으로 싸맨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곰방대를 물고 있다. 갓을 쓴 사내는 한창 곰방대를 손으로 누르는 참이다. 담뱃불을 세게 댕기려 압력을 가하고 있는 참이다. 아래의 더벅머리 총각은 이제 막 담배를 배우는 것인지 얌전하게 담배를 빨고 있다. 그 왼쪽의 돌아보는 자세의 사내는 담뱃불을 댕기려고 부싯돌을 치고 있다. 이 네 사람이 한 패로 보인다. 왼쪽의 세 사람은 세 필의 말을 타고 한 필은 끌고 간다. 상호간 거리가 좁은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한 패로 보인다. 그리고 왼쪽 위의 언덕 건너편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더벅머리 총각으로 말을 타고 있고, 뒤를 따르는 사내는 걸어서 소를 몰고 가고 있다. 이들이 모두 한 패인지, 아니면 세 패인지는 단원이 다시 살아나거나 그림 속의 누가 그림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들이 같은 목적으로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으로 아느냐고? 이 그림에는 말이 9마리, 소가 1마리 등장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맨 오른쪽 갓 쓴 사내가 타고 있는 말만 제외하면, 나머지 말과 소의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다.(길마 아래 얹은 것이 언치다). 길마는 안장이 아니다. 안장이란 사람이 말에 올라탔을 때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 만든 장치다. 한데 위에 등장하는 것은 원래 말에 얹는 안장이 아니라, 주로 소 등에 얹는 길마다. 길마의 용도는 물건을 나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말들은 사람이 타는 승용마가 아니라, 물건을 나르기 위한 말인 것이다. 더욱이 승용의 말은 오직 양반만이 타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에 등장하는 양반 아닌 상것들이 말을 타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맨 왼쪽의 더벅머리 총각을 보자.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채찍이다. 채찍은 말을 몰고 가는 데 쓰이는 것이다. 이 총각은 원래 말을 몰고 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타는 승용마의 경우 양반네를 태우고 앞에서 말을 끌고 간다. 이 경우 그는 말구종이 된다. 말구종은 한자로 쓰면 견마부(牽馬夫)가 되고 '견마'가 입에 익으면 '경마'가 된다.'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은 사실 말을 타면, 말을 끌고 가는 견마잡이를 두고 싶다는 말이다. 그림의 견마잡이는 물건을 싣지 않은 말을 타고 가는 참인 것이다. 또 그림 중간의 사람을 태우지 않은 말을 끌고 가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승용마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짐을 싣기 위한 빈 말을 타고 가는 중이다. 즉 어딘가로 짐을 싣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며, 아직 짐을 싣기 전이기 때문에 길마를 얹은 빈 말을 임시로 타고 있는 것이다. 이 길마를 얹은 8마리의 말과 한 마리의 소가 짐을 싣기 위한 운반용이라는 것은, 담배에 불을 댕기려고 부시를 치는 사내가 앉은 길마에 밧줄이 묶여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밧줄은 길마에 짐을 싣고 동여매기 위한 것이다. ● 더벅머리 총각들은 견마부로 보여 등장인물 9명 중 더벅머리 어린 총각이 4명이다. 총각들은 모두 견마부로 보이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들 중 맨 오른쪽의 갓을 쓴 사내가 아마도 이 패의 우두머리로 보인다. 갓을 차려 쓴 것이라든지 또 이 사내만은 길마 위에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건대(사내가 타고 있는 것은 길마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안장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안장이라면 앞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단지 언치를 얹고 그 위에 앉기 편한 무엇, 예컨대 덕석 같은 것을 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이 패거리 중에서는 제법 행세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시장을 오가는 상인일 것이며, 이 사내는 상단(商團)의 행수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장터길이라는 제목도 썩 불합한 것은 아니다. 물론 상단이 아니라, 어떤 시골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시장에 가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선후기에 말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한다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골 농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단을 그린 그림은 이형록(1808∼?)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눈길을 걷는 상단'도 있다. 소를 앞세우고, 말에 짐을 지우고, 아니면 어깨에 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역시 상단을 그린 귀중한 그림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유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다. 유교는 상업을 원래 가장 낮은 직업으로 본다. 사·농·공·상! 즉 지식인,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순서다.'맹자-등문공'에 농가(農家)인 허자(許子)의 제자 진상(陳相)과 맹자의 논변이 나온다. 진상이 전하는 허자의 논리는 이렇다. 유가들은 왜 노동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고 들면서 호의호식하는가. 이것이 허자의 문제 제기다. 이 말에 맹자는 허자가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쇠쟁기는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허자가 쓰는 그릇은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이에 진상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허자가 생산한 곡식과 바꾼 것이다. 그렇다. 허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생산할 수 없다. 이 사회에는 사람마다 각각 역할이 있다. 곧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분업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역할을 정치라고 말하고, 허자가 대장장이 일을 농사짓는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 역시 다른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허자는 맹자의 사회적 분업을 말하는 논리에 패배하고 만다. 맹자의 논리가 맞는 것이라면, 상업이야말로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공손추'에서 지역에 따른 가격차를 이용하여 이익을 보는 상인을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맹자의 눈에는 상인의 활동이야말로 구체적 생산물을 생산하지 않는 무용한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허자에게 말한 교환이란 이익이 없는 단순한 교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황당한 생각임은 여기서 굳이 변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맹자의 말이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 상업은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고, 자본의 축적 규모가 커진다면, 그 자본은 필연적으로 생산자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금융자본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아니한가. ● 조선 후기 私商 활동 부쩍 활발해져 유가의 상인에 대한 이런 정의 때문에 유교를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은 상업과 상인을 적극 장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이 없을 수는 없다. 조선을 세우고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과 종묘, 관청을 지었다. 아울러 지은 것이 관영 시장인 시전(市廛)이었다. 조선후기가 되면, 이 관영 시장의 상인 외에 개성상인을 위시한 사상(私商)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진다. 이들은 국가의 감시를 뚫고 밀무역 루트까지 뚫는다. 이익이 나는 곳에 상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 역관이 주축이 된 북경과 한양, 동래와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이 제법 발달한다. 이번에 소개한 그림들은 아마도 이런 상업의 발달과 유관한 상단(商團)을 그린 것이 아닐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목민관이 해야 할 일 / 도종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공무에 틈이 있으면, 반드시 정신을 집중하여 고요히 생각하며,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리며, 지성으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일이 목민관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인 것이지요. 그 일을 하라고 나라에서 녹봉을 주고 지위와 권력을 준 것이지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동 트기 전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세수하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묵묵히 바르게 앉아서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해야 할 일의 차례를 결정"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지성으로 백성을 편안히 할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산 선생은 《치현결治縣訣》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중에서도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法)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보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청직원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비록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밝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것이 목민관의 자리라고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덕망을 갖추면서도 위엄이 있고, 하고 싶은 의지가 있으면서도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덕망도 없는데다 위엄마저 땅에 떨어지고, 하고 싶은 의지는 앞서지만 지혜롭고 밝지 못한 지도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족한 덕망을 어떻게 갖추며 한번 떨어진 위엄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무릇 그런 능력이 없는 자가 목민관이 되면 백성들은 그 해를 입어 곤궁하고 고통스럽게 되고, 사람들이 비난하고 신이 책망하여 화가 자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목민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왜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가를 다산선생은 잘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백성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지도자를 만나면 그 해가 백성들에게 미쳐 곤궁하고 고통스럽게 될 뿐 아니라 재앙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생각할수록 두렵고 두렵습니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것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지금도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일이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라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 다음,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한다. 내가 이지함 화장품 ceo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는 것 또한 되돌아보면 8년 전 중요한 순간에 내린 선택의 결과물인 듯하다. 약대를 졸업한 뒤 제약회사를 거쳐, 존슨앤존슨 마케팅부서에서 3년간 일하고 있을 무렵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소위 잘나가던 이지함 피부과에서 함께 화장품 회사를 세워보자는 제안을 해 왔다. 화장품 회사 설립이 작은 구멍가게 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의욕만으로 회사를 만든다는 것이 당시에는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내 선택의 기준은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가’였다.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어도, 약사라는 전문직종을 가진 이상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지만 회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는 것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될 듯했다. 가진 돈도 없고,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건강한 피부를 위한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야지 하는 야무진 결심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사무실을 얻었다. 살던 집을 얻을 때조차도 부모님이 함께 부동산에 가서 계약하는 과정을 맡아 주셨기 때문에, 처음 사무실을 계약하러 가는 날 보증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가 달리기 대회에 나간 꼴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멋모르고 한 선택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집 계약 한번 직접 해 보지 않은 내가 30대에 회사를 만들어서 키워보겠다는 결정을 하다니, 정말 그때가 아니면 시도해 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젊음’이 있는 시절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것은 미래에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꺼려진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신중함이라는 말로 위장되어 주춤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도전을 꿈꾼다. 김영선 님 | 이지함화장품 대표 -《행복한동행》2008년 6월호 중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등은 유럽의 경관을 대표하는 양식들이다. 이들은 금박, 은박 등의 화려한 재료를 소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촛불과 빛을 이용한 효과로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중세 미술의 기반이 되는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감각론으로서의 미학의 간략한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어떤 대상의 속성을 알려면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감각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감각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본격적으로 얘기가 된다. 그는 감각을 ‘영혼의 기관’이라 불렀다. 영혼을 위한 수단이란 것이다. 그리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의 네 가지 요소가 감각을 구성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시각을 매우 중요한 특권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촉각은 다른 기관과 다르게 그것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네 가지 요소에 촉각을 더해서 다섯 개의 감각론을 주장하고 이들을 위계적으로 분류했다. 또 기존에 능동적인 지각으로 생각되던 감각을 수용기관으로 규정하고, 감각을 느끼는 것은 직접 접촉을 통하는 것이 아니고, 매질을 통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론은 중세로 넘어가면서 변화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보면 중세 감각론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섯 가지 감각을 은유와 비유, 상징의 수단을 갖고 변주하며 신을 찬양한다. 영원 불변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은 신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은총, 신의 섭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와서 변화된 중세 감각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세 감각론은 이중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현재는 한편 아름다운 곳이지만, 단지 스쳐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때문에 신이 창조한 현실 이면에 있는 신의 섭리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지각된 세상에 대해서 경계하는 한편, 다섯 가지 감각을 육체를 떠난 정신화 된 형태로 신에게 바치는, 초월적인 세계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초월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재료에 있어서 매우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재료 취향을 보여주었다. 즉, 초월적 세계라는 형이상학을 현실에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진 미술가들이 결국 물질이라는 재료를 갖고 작업을 해야 했고,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금박, 은박 등 광채가 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면서, 초월적인 해석이 붙는다는 것. 이것이 중세 감각론을 보는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중세 예술은 결국 색채가 화려한 예술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이나 회화가 형(形)을 중요시 했던데 반해, 굉장히 감각적인 색 표현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학적 의미, 종교적 의미, 초월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예컨대 어두운 로마네스크에서 촛불의 빛이 뻗어 나오는 효과라던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하여 자연 채광을 활용한 빛의 향연은 대단히 감각적인 효과를 내면서 어떤 초월적 세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일 새로워지는 카피처럼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면, 방송작가라는 게 티가 날지도 모른다. 역내 간이서점 앞에서 부지런히 인쇄물을 훑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 표지를 훑다가 참신한 제목이 나오면 얼른 휴대전화 메모장에 입력한다. 큰 제목들은 독자들을 끄는 중요한 문장이며, 그 매체 편집장들이 머리 빠져가며 지은 것이다. 제목만 메모해 두어도 재미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면도할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아이디어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광고가 나올 때 가장 작렬하게 솟구치는 것 같다. 광고는 15초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을 팔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 카피도 부지런히 메모한다. 세태가 녹아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읽는 데에는 카피가 아주 충성스러운 바로미터가 돼 준다. 방송작가가 된 뒤, 내 인생관은 ‘적자생존’이 되었다. 적어야 사는 ‘적자생존’ 말이다. 말이 아주 빠른 진행자와 일하는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다양한 소재가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다 옆자리에서 들리는 얘기에 귀가 솔깃할 때가 있고, 드라마나 쇼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어디서든 보고 느끼고 듣는 것을 메모해 두고, 거기에서 멘트 소재를 얻어낸다. 최근에는 온라인에서의 만남도 소중해지고 있다. 나는 가까운 이들과의 카페 다섯 개, 잘 모르는 이들과의 카페 열두 개, 그리고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10대부터 5,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주고받는 세상사를 통해서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꿈꾸고 고뇌하며 즐거워하는지도 감 잡고 있다. 그러나 내가 메모나 만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시간을 ‘광장’이라 한다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은 ‘밀실’인 셈이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혼자 사고하는 시간 없이는 그저 그런, 내 생각은 실종된, 남과 비슷한 원고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방송작가가 되려면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고(思考)뭉치’가 돼야 한다. 매일 새로운 카피처럼 되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적자생존’에 앞서서 ‘사고뭉치’의 시간을 갖는다. 방송이 끝나는 시간도 the end가 아니라 ‘the and’이므로. 송정연 님 |<이숙영의 파워 fm>방송작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저자 -《행복한동행》2008년 6월호 중에서
촛불의 의미 / 도종환 촛불은 자신을 태워서 제가 서 있는 자리만큼을 밝히는 아주 작은 불입니다. 그런데 그 촛불이 옆으로 번져서 수많은 이들을 밝게 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그저 제 발걸음 정도만을 밝히는 불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 촛불을 들고 나오니 촛불이 세상을 밝게 바꾸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촛불은 자신에 집중하게 하는 불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촛불은 공동의 선을 향해 밖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촛불은 횃불의 열기와 뜨거움과 가열찬 불꽃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횃불보다 작고 여리고 미미해 보이는 촛불이 횃불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큰 함성과 집단적 결의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화톳불처럼 크고 야무진 나무들이 타면서 내는 불도 아닙니다. 그러나 화톳불보다 더 뜨거운 온기를 나누어주고 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보면 『대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 백성을 친애하는 것 혹은 새롭게 하는 것,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식인들이 『대학』을 배우면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리만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밝은 덕을 밝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촛불 안에 이런 가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은 자신을 밝게 밝히는 불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불이며 국민을 새롭게 바꾸는 불입니다. 그러면서 공공선, 지극히 선한 공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타고 있는 불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밝히는 데서 출발하여 시대가 가야 할 방향을 밝히는 빛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촛불은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들었던 불입니다. 참으로 여리고 티 없고 발랄하고 순수한 목소리들이 모여 붙인 불입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밝은 불입니다. 그 불을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걸어 나와 이어 받아 들고 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나온 시민들의 촛불 물결은 그 어떤 정치적 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세상을 밝고 경쾌하게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이 촛불, 쉽게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움과 의로움 / 도종환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왕은 맹자에게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어떤 방도를 가지고 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왕이 어찌 이로움을 말하느냐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따름이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맹자』제 1장 맨 앞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는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이 먼저라고 말을 꺼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먼저 생각하시면, 대부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선비나 서민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일만의 십분의 일인 일천을 가졌거나, 일천의 십분의 일인 일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적게 가졌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의(義)를 경시하고 이(利)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의 초청을 받고 간 자리에서 맹자는 왕에게 이로움만을 먼저 생각하는 왕이 되어서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는 전국시대였습니다. 밖으로는 국가 간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안으로는 배신과 야합이 그치지 않는 난세였습니다. 왕들은 모두 부국강병을 앞세운 채 천하를 손에 쥐고자 이름난 원로석학을 초빙하여 고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는데 맹자도 그렇게 해서 양혜왕과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명박정부가 앞세운 실용은 철저히 이로움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바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옳은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결정의 주요변수가 아닙니다. 실용주의는 자칫하면 맹자의 경고대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또한 모든 이의 이익을 만족시켜주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자기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이익만을 보장해 주는 정치를 하게 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생명과 희생을 담보로 해서라도 이익이 된다면 관철하고자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밑바탕에도 이런 사고방식의 천박함과 미숙함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였다가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원로들의 의견을 들어서 민심수습책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바르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원로가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등 / 도종환 "우리 절에 오는 보살들 중에 당신을 위해 등을 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혜국스님이 저를 보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으로 좀 민망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보살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위해 등을 달았다고 말하는 분을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말해주는 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등을 다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를 위해, 그의 건강을 위해, 그의 인생을 위해 등 하나를 마련하면서, 그걸 절에 달고 두 손을 모으면서 무어라고 빌었을까요? 혼자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절을 내려와서도 전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 보살들은 생활하였을 겁니다. 나는 그 보살들이 걸었던 등이 지닌 은은한 밝음을 생각합니다. 휘황하지 않으면서도 미미한 빛으로 꼭 그만큼의 어둠을 걷어내던 등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등은 욕심을 많이 내지 않습니다. 제가 밝힐 수 있는 만큼만 빛을 냅니다. 그러나 그 빛으로 얼마든지 '명명덕(明明德)'할 수 있습니다. 글공부하는 사람이 찾아야 할 진리도 덕을 밝게 밝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등불은 멀리까지 비추지 못합니다. 꼭 한 걸음 정도만 비출 뿐입니다. 그러나 내 발등, 내 발자국만큼이라도 덕으로 밝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도 스님의 말씀을 들은 뒤부터 기도하는 시간에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자 합니다. 그를 위해 마음의 등 하나 거는 일이 내 마음도 환하게 하고 그의 앞길도 밝게 비추는 일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