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갠 후 www.chorok.org 양철지붕에 올라 고추를 널다, 제가 섰었던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 마당에서 종종거리며 분주했던 흔적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은 제가 타고 올라온 사다리 높이만큼 낮아져 바람도 구름도 벗하러 오고 산도 바다도 발아래 펼쳐있습니다. 제가 타고 올라온 사다리 높이는 불과 한자반에 불과한데 양철지붕위의 시공은 이렇듯 무한하여 넋을 놓게 됩니다.. 누가 산촌의 여름볕이 어떠냐고 물어오면 양철지붕 위에 붉은고추 널어말리는 소식을 전할까합니다. 위 영상물속의 꽃사진을 눈여겨 보아주셔요. 나팔꽃,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다알리아, 백일홍, 분꽃..... 이 꽃들이 피었다지는 꽃밭을 다시 가꾸는 것은 세상에 머물었던 기억들을 옮겨 심고 싶기 때문입니다. 8월 한달 내내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읽히지 않는 그리고 놓아지지도 않는 W. 포오크너의 8월의 빛 한구절 올려봅니다. 지각이 더듬어 보기에 앞서서 추억은 새겨지는 것이다. 추억은 생각해 내는 힘보다도 오래가고 지각이 의아해하게 생각할 때에도 추억은 신념을 갖는다. 아는것, 생각해 내는것, 신념을 갖는것은 긴 낭하와 같은것이다. 그 낭하가 있는 건물은 크고 긴 처마를 가진 차갑게 반항하는 어두컴컴한 붉은 벽돌건물로 , 연기가 많이나는 공장지대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건물자체의 굴뚝보다도 딴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더러워진 채, 풀도 자라지 않는 석탄재로 뒤덮인 대지에 서있고 , 교도소나 동물원처럼 10피트나 되는 강철책으로 둘러진 속에서는 마음 내키는 데로 몰려다니는 무리가 되어 , 참새처럼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고아들이 똑같은 푸른 무명 제복을 입고 움직이면서 오락가락하는 추억속에 잠기기는 하지만, 알고 있다고하는 점에서는 해마다 가까이 접근해오는 굴뚝으로 부터 쏱아져 나오는 그을음이 비에 젖어서 검은 눈물처럼 흘러 내리는 저 쓸쓸한 벽이나 창문과도 같다.
Board 추천글 2008.08.27 바람의종 R 10990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 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여러 분은 오늘 하루 어떠셨는지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면서 보낸 하루였는지요? 오늘 만난 사람 중에 기쁜 사람도 있었고 실망한 사람도 있었겠지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미워하는 말을 하기도 했겠지요?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내가 그들에게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비치진 않았을까요? 어떤 날은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날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 책 한 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도 마음도 거칠어져 가고 있는 걸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한 꿈을 꾸는 일보다 하루를 사람답게 사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도종환/시인
차를 타고 가거나 낯선 지방을 여행하다 오솔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줄기를 따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내려오는 길이나 낮은 고개를 넘어가는 들꽃 피어 있는 길, 또는 동네 어귀를 향해 낫날 모양으로 감돌아 가는 길, 아래배미 논과 윗배미 논 사이로 나 있는 논길을 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냥 차에서 내려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은 충동에 싸이곤 합니다. 아는 사람도 없는 느티나무 아랫길을 따라 걷다 보면 편안한 사람 하나쯤은 꼭 만날 것 같은 길입니다. 한 번도 걸음을 디뎌 보지 않은 길인데 아주 낯익은 길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다니는 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입니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어 주는 길이고 그 길 앞에 서면 십 분이라도 먼저 이 길을 달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기만을 바라는 길입니다. 길을 떠나 낯선 어느 곳을 향해 간다는 '출발의 시정' 같은 것도 사라진 지 오래고, 차를 타고 가며 바깥 경치에 마음을 주는 일도 자꾸만 적어집니다. 습관으로 이어지는 길, 속도감을 먼저 의식하는 길, 지루한 여행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길입니다. 옛날과 다르게 이제 사람들은 차를 타면 잠을 먼저 청합니다. 잠드는 사이에 거리감과 속도감을 잊고 목적하는 도시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차창 가에 서서 눈물로 이별하는 장면은 드라마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차가 정들었던 그 고장을 떠나기 위해 막 움직이기 시작할 때 아련히 젖어 오던 마음도 많이들 마모되어 버렸습니다. 바쁜 도시생활, 시간에 쫓기고 사고의 위험에 시달리는 동안 그저 무사히 여행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여행길에 비하면 오솔길, 시골에서 만나는 길은 얼마나 여유를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걸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느긋해지며 길가의 크고 작은 풀꽃들과 풀벌레, 저녁 까치에게도 눈을 주며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발을 꽉 조이는 구두 같은 것도 편안한 신발로 갈아 신고 걷고 싶은 길입니다. 어릴 적 동무들과 잠자리채를 들고 퉁퉁골 방죽으로 왕잠자리를 잡으러 가던 길, 고무신에다 피라미며 붕어를 잡아들고 맨발로 걸어오던 길, 노을이 너무 좋아 길이 끝나는 데까지 끝없이 걸어가던 길, 그래서 언제 보아도 낯설지 않은 그런 길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 뻗어 있는 고향길인 것입니다. 산 한가운데를 살 베어 내듯 뚝 잘라 만든 고속의 길이 아닙니다. 푸줏간에 걸려 있는 짐승의 살처럼 벌겋게 드러나 있는 삭막한 길이 아닙니다. 모두들 입을 닫고 앉아 말없이 앞만 보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져 세상의 이곳저곳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그런 길입니다. 마음의 옷고름을 살짝 풀어 놓고 벗과 함께 격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편안해지기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잘 닦여진 길에는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편안해지기 위해 불안한 삶을 사는 우리들, 빨리빨리 가기 위해 있는 것을 다 못 보고 가는 우리들, 한 가지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 언제쯤 우리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안으며 넉넉한 마음으로 물소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언제쯤 평화로운 저녁 안개와 꽃의 향기를 다시 제대로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의 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도종환/시인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워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본분을 잃어버린 목자를 꾸짖고 질타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양을 돌보는 일을 맡기셨는데 양의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고 살진 놈은 잡아먹으면서 양떼는 먹이지 않는 목자가 있는 걸 하느님도 보고 계십니다. 아픈 양을 고쳐주지 않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양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리는 목자가 있습니다. 양 떼는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는 목자는 이미 목자가 아닙니다. 이런 목자들을 향해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 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양 떼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이 목자에게 맡긴 것이지 목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맡긴 양들을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단호하게 그들을 대적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양들이 목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대통령부터 정치인 검찰 경찰에 이르기까지 목자의 본분을 망각한 이들이 많습니다. 폭력과 강압으로 양들을 다스리려는 어리석은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기에게 목자의 직분을 맡겼다는 것만 알고 있지, 지금 자기들이 어떤 목자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주시지만 바로 사랑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벌도 주신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20세기 세계 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한 가지 키워드를 그의 소설 『단식광대』를 통해서 찾아보자. 카프카의 소설 『단식광대』에는 단식예술가가 나온다. 그는 철망 안에 들어가 짚을 깔고 앉아 있다. 그리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굶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 구경한다. 그 앞에는 팻말이 있고, 며칠째 굶고 있다고 매일 쓰여진다. 그런데 40일이 되면 그를 고용한 감독이 와서 단식을 멈추게 하고 먹을 것을 먹게 한다. 마음대로 굶을 수 없기 때문에 광대는 항상 우울에 빠져 있고, 40일 째만 되면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해서 그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단식이라는 행위가 더 이상 유행이 아니게 됐을 때, 그는 홀로 서커스단에서 여전히 굶기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단식을 할거냐”는 감독의 질문에, 그는 “단식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은 맛있는 음식을 찾을 수 없어서 단식을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식광대가 죽고, 그 자리는 무엇이든 잘 먹는 표범이 차지한다. 카프카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소설이 가장 번성하는 시대였다. 그때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읽기’라고 하는 탐식증이 있었다. ‘소설읽기’라는 탐식증은 독자들의 끊임없는 읽을거리에 대한 욕망과 작가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에 따른 결과였다. 그래서 작가는 계속해서 ‘읽을’ 음식을 제공해줘야 했고, 읽을거리가 제공되려면 그걸 쓰기 위해서 일종의 굶기가 이루어졌다. 프루스트는 “나는 굶어죽지만 대신 태어나는 게 소설이다.”, “나는 엄마벌이다. 나는 가만히 있고 결국 내 작품이 내 등허리를 파먹고 대신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먹기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리적이고 자연적인 욕망에 가장 충실한 행위가 아니다. 먹기야말로 가장 철저하게 질서화 되어있고, 가장 철저하게 문화화 되어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먹기의 질서는 언어처럼 이미 법칙화 되어 있다. 자유로운 제도화된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안 먹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화된 것은 ‘먹기’ 가능하지만, 비제도화 된 것은 ‘굶기’, 즉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식광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제도화된 ‘먹기’를 거부하고 ‘굶기’를 했던 것은 비제도화 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였다. 소설(한 작가가 이야기로 꾸며서 이야기로 만든 글)은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표상으로서 상상적인 것(The imaginative)과 이것을 얘기하는 도구로서 언어(The symbol), 그리고 이야기가 실제로 도달하고자 하거나 혹은 실제로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대상(The real)들 간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단식광대가 먹고 싶어 했으나 끝끝내 먹지 못한 ‘맛있는 음식’은 소설이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대상’이라 볼 수 있다. 또 맛있는 음식을 얻기 위해 단식광대가 실행한 ‘굶기’라는 방법론은 소설이 실제로 드러내고자 하는 실체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언어’에 비교 된다. 그런데 먹기라는 것이 음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듯이, 언어도 의미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언어는 의미가 주어짐으로써 의미현상이 된다. 그러나 제도화된 의미법칙에 따라 표현되는 언어는 그것이 배제하고 있는 실체를 표현할 수 없고, 표현된 것은 단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단식광대가 기존의 음식 중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찾을 수가 없어서 ‘먹기’를 포기하고 ‘굶기’를 행하여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게 됐듯이, 카프카는 ‘의미 굶기’를 통해 제도화 된 의미법칙에서 배제된 ‘어떤 대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결국 ‘의미’의 거부가 이루어져야 진정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은 제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완전해지려고 헛되이 꿈꾸지도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살려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저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본 산의 모습을 산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른쪽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은 늘 오른쪽에서 본 모습만을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서쪽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서쪽에서 만나는 산의 모습을 산을 가장 잘 아는 모습인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산에 올라 보면 산꼭대기에 서서 보아도 산의 안 보이는 구석이 많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산을 향해 오고가면서 만들어 내는 산에 대한 온갖 화려한 말 속에서 산은 정작 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모습보다 나아 보이려고 애를 쓰거나 제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산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고 산을 제 것으로 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정작 산처럼 높거나 산처럼 크게 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사람들의 허영 때문임을 산은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움도 부족함도 다 제 모습임을 산은 감추지 않습니다. 못난 구석도 있고 험한 모습도 갖추고 있음을 산은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더 대단해 보이려고 욕심 부리지도 않습니다. 산은 헛되이 꿈꾸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 속에 덮여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헛되이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론 부끄러운 구석도 가지고 있고 때론 때 묻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부끄러움도 때 묻음도 다 내 모습의 한 부분임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는지요. 벼랑도 있고 골짜기도 있지만 그래도 새들이 날아와 쉬게 하고 꽃들이 깃들어 피게 하는 산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허물없이 사람들이 가까이 올 수 있는 넉넉함은 바로 그 부족함, 그 부족함이 보여 주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 때문은 아닐는지요. 산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합니다. 산은 문자로 깨우치지 않지만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가게 합니다. 도종환/시인
해방 후에 쓰여진 많은 시 중에서 해방직후의 현실과 복잡한 심리 상태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표현한 시를 꼽으라면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 일본 천황의 방송도, /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 // 그러나 하루아침 자고 깨니 /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 기쁘다는 말 /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 //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 부르며(.....) /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 나다니는 사람에게 /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 /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 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 나는 또 보았다. /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병든 서울」중에서 해방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이 시의 화자는 몸이 아픈데도 거리로 뛰쳐나갑니다. 거리에 나서면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을 것이라 알고 나갑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나'는 서울이 병들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장사의 대상으로 바꾸는 자본주의적 행태, 속물주의와 한탕주의에 실망합니다. 그리고 분열하는 모습에 실망합니다. 사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고 파행으로 치닫는 정치현실, 정치적 허세에 실망합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서울은 어떤 의미를 갖는 시ㆍ공간적 장소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병든 서울」안에는 서울을 가리키는 말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등장합니다. '병든 서울'은 당시의 서울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다정한 서울'입니다.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서울', '정들은 서울'도 이렇게 느끼고 살고 싶고 사랑해온 서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미칠 것 같은 서울'은 이런 갈등과 모순이 복잡하게 얽힌 서울이면서 화자의 심리상태가 투영된 서울입니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은 해방의 크나큰 사회적 변화가 지나가는 서울을 말하는 것이고, 그 서울의 하늘이 맑게 개이기를 바라는 것은 식민지 압제의 잔재, 제국주의 침략의 잔재와 봉건적 잔재가 사라진 민족의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서울', '사무치는 서울', '자랑스런 서울'은 가장 이상적인 서울의 모습입니다. 물론 서울은 이 나라, 이 땅의 의미까지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라고 표현한 근대국가의 건설이기도 합니다. "해방기 현실을 바라보는 창작 주체의 주관적 심경이 이처럼 강렬하게 표출된 시는 드물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시 부문을 대표해서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합니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인민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던 시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고 나라는 분단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치른 채 지금까지도 하나 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습니다. 8.15 해방 기념일을 다시 맞는 오늘 우리의 서울은 병든 서울입니까? 아니면 사무치는 서울입니까? 자랑스러운 서울입니까? 부끄러운 서울입니까? 사랑하는 서울입니까? 서로 증오하는 서울입니까? 우리는 어떤 서울을 만들어가야 합니까?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