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인들Les Anormaux』에서 푸코는 중세에서 19세기까지 사법권 안에서의 처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 괴물’의 여러 가지 유형을 나열하면서 처벌의 방식에 대해 논의 한다. 끔찍하고도 황당했던 과거 사건의 판례들을 살펴보자. 중세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괴물은 본질적으로 혼합된 것이었다. 동물과 인간이라는 두 계(界)의 혼합으로 소의 머리를 한 인간, 새의 발을 가진 인간, 즉 한마디로 괴물들이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오면 인간 괴물을 결정하는 테두리는 법이다. 이 공간에서 괴물은 극단적이며 극도로 희귀한 현상으로서 나타난다. 17세기의 범죄는, 그것이 군주를 다치게 하는 한에 있어서 범죄였다. 결국 범죄는 군주의 힘과 육체, 특히 물리적 육체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범죄는 군주의 힘에 대한 대항이고, 군주에 대한 저항이자 반란이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언제나 덤으로 행해지는 것이고, 그것의 진짜 목적은 군주의 복수, 앙갚음, 힘의 반격이었다. 우리는 17세기말, 권력의 과잉 의식의 예를 아비뇽의 판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문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사형수는 눈이 붕대로 가려진 채 기둥에 매어졌다. 처형대 주위에는 쇠갈고리가 달린 말뚝들이 세워졌다. 참회 신부는 속죄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가 은총을 내린 후 형리가 도살한 가축을 뜨거운 물에 담글 때 쓰는 거대한 쇳덩이를 온 힘을 다하여 사형수의 관자놀이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그는 쓰러져 죽었다.” 그런데 고문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죽음 직후부터였다. 왜냐하면 고문자가 원하는 것은 죄인의 처벌 그 자체나 범죄의 속죄가 아니고, 영원한 형벌권의 과시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은 대상이 죽어 없어진 그 순간에 시체에 가혹 행위를 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 불행한 죄수가 쓰러져 죽은 후 바로 그 순간에 형리는 “커다란 칼을 들고 그의 목을 내리쳤다. 그는 온몸이 피로 뒤덮였고, 두 발뒤꿈치에서부터 신경줄을 쪼개고, 이어서 배를 가르고 심장, 간, 비장, 허파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쇠갈고리에 낀 후 마치 짐승의 그것을 손질하듯 잘게 잘랐다. 볼 수 있는 자는 볼지어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거대한 범죄의 성질 같은 것은 있을 필요도 없고, 있을 가능성도 없다. 범죄와 그 주변 사이의 투쟁, 격분, 악착스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앎을 가능케 하는 범죄의 역학은 없다. 범죄 주변에서 범죄에 대해 자신의 세력을 펼치는 권력의 전략이 있을 뿐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범죄성의 병리학적 성격이 문제로 떠오른 것은, 형벌권의 새로운 경제가 범죄에 대한 새로운 처벌 이론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8세기말에 새로운 형벌권의 경제에 의해 소환된 첫 번째 정신적 괴물은 정치적 범죄자였다. 당시 왕실 범죄를 다룬 책과 팜플렛을 살펴보면 인간 괴물의 주제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치 하이에나처럼 피에 굶주려 있는 괴물 부부로 묘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녀는 괴물성 특유의 여러 특징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야만적인 식인귀였고 성적으로 방탕했으며 근친상간자 이자 동성애자이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군주가 저 높은 곳에서 사회 계약을 깼다면 민중의 괴물은 저 아래에서였다. 9월 학살을 묘사한 것을 보면 여기에도 방탕과 식인의 모습이 있는데 특히 식인이 방탕보다 우세하다. 여하튼 우리는 언제나 근친상간-식인 풍습이라는 삼지창에 꽂혀 있다. 18세기 이래 우리의 법률-정치적 내재성에 의해 규정된 거대한 외부와 거대한 타자성은 식인 풍습과 근친상간이다. 새로운 형벌권의 경제가 18세기부터 그리기 시작한 인간 괴물은, 왕들의 근친상간과 기아자의 식인풍습이라는 두 커다란 주제가 근본적으로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에 범죄정신의학을 창시한 세 괴물이 있다. 첫 번째 괴물은 자기 딸을 죽여 토막 낸 후 넓적다리를 양배추에 싸서 익혀 먹은 셀레스타의 아내가 있다. 또 한편에는 뱅센 숲에서 두 아이를 살해한 파파부안느 사건이 있다. 이 두 사건의 범인들은 정신의학적 측면의 판결로 뇌관이 제거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사는 여자아이의 목을 자른 앙리에트 코르니에가 있다. 이 세 괴물은 식인, 참수(斬首), 왕의 시해라는 괴물의 대주제를 분류하고 있다. 이 세 이야기 속에는 식인의 환상과 시해의 환상이 노골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들어 있다. 특히 범죄적 괴물성의 문제를 고착시킨 것은 바로 세 번째 사건, 즉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이었다. 이 코르니에 사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직 젊은 여자-첫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자기 아이들을 버린 이 여자-는 파리의 여러 가정에 하녀로 들어갔다. 몇 번에 걸쳐 우울증을 표시하고, 자살하겠다고 위협한 후, 어느 날 그녀는 이웃 여자에게 19개월 된 그녀의 어른 딸을 봐주겠다고 자청했다. 이웃 여자는 잠시 망설인 후 허락했다. 앙리에트 코르니에는 여자아이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 준비해 둔 큰 칼로 아이의 목을 잘라 한 손에는 몸통을, 다른 한 손에는 머리를 든 채로 15분간 가만히 서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러 왔을 때, 앙리에트 코르니에는 “댁의 아이는 죽었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앙리에트 코르니에는 앞치마에 머리를 싸서 창문 밖으로 던졌다. 곧 잡힌 그녀는 사람들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실제적으로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다른 아무 말도 끌어낼 수 없었다. 바로 이 사건들, 이러한 유형의 사건들이 범죄정신의학의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그것 자체가 범죄정신의학을 구성한다. 새로운 형사 제도에서 사람들은 범죄를 아래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이해의 차원에서 범죄자를 처벌한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하나의 처벌이 죄를 속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처벌이 하나의 범죄를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만드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반면 지워질 수 있는 것은 범죄자의 범죄를 이미 유발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와 유사한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그 이해의 메커니즘들이다.
Board 추천글 2008.08.13 바람의종 R 11118
눈 덮인 산속을 헤매며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하던 멧돼지가 있었습니다. 멧돼지는 마을로 내려와 구수한 냄새를 따라 어느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은 집돼지의 우리였습니다. 닷새를 굶은 멧돼지는 먹을 것을 좀 나눠 달라고 집돼지에게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집돼지는 마침 죽통에 먹다 남긴 것이 있어서 선선히 허락을 했습니다. 멧돼지는 집돼지가 가르쳐 준 대로 우리 안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이튿날 주인은 횡재를 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곤 우리를 더욱 단단히 손질해 두었습니다. 집돼지의 우리 속에서 겨울을 보내는 멧돼지는 먹고 사는 데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멧돼지는 좁은 우리 안이 불편해졌습니다. 산비탈을 마음껏 달리고 싶었고 가랑잎을 헤치고 도토리를 줍고 땅을 파서 칡뿌리를 캐며 먹이를 찾던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부터 멧돼지는 우리를 빠져 나갈 궁리를 하였지만 상처뿐이었습니다. 어금니도 부러지고 주인은 더욱 단단한 대못으로 우리를 막아 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돌아 향긋한 산냄새가 멧돼지를 더욱 참을 수 없게 하던 날 밤, 멧돼지는 온몸을 우리의 판자에 던졌습니다. 마침내 판자벽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 멧돼지는 집돼지에게 말했습니다. "자 나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주는 대로 받아먹고, 먹은 자리에서 싸고 또 그 위에 드러누워 뒤룩뒤룩 살만 찌워 봤자 그게 누구 좋은 일 시키는지 아니? 금년 봄 이 집 주인 환갑 잔칫상에나 오를 게 뻔하지." "아유, 난 골치 아파. 그런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귀찮게 굴지 말고 갈 테면 너나 가거라." 집돼지는 검불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귀찮다는 듯 일어서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멧돼지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멧돼지가 이제 산으로 가면 힘들여 일해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힘센 짐승들과도 싸워야 할 테고 우리에 갇혀 주인이 넣어 주는 먹이나 편안히 받아먹던 때와는 다른 많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뛰쳐나온 멧돼지의 힘살은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장희 님의 동화「멧돼지와 집돼지」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안주하고픈 마음과 자유에의 갈망을 두 짐승으로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집돼지와 멧돼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꼭 그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일단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큰 명제 때문일 것입니다. 더 단순히 말하면 하루 세 끼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에의 요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 하는 것도 굶지 않고 사는 일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도종환/시인
매미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55>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하던 날이 있다 제 몸을 던져 뜨겁게 외치던 소리 소리의 몸짓이 저를 둘러싼 세계를 서늘하게 하던 날이 있다 강렬한 목소리로 살아 있기 위해 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있고 그 소리 끝나기도 전에 문득 가을은 다가와 형상의 껍질을 벗어 지상에 내려놓고 또다시 시작해야 할 가없는 기다림 기다림의 긴 여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매미소리가 요란한 아침입니다. 밤새 매미소리 때문에 잠 못 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도시의 매미는 시골 매미보다 더 악착스럽게 울어댑니다. 매미소리도 소음공해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한여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서늘한 소리로 들리는데 도시에서는 악을 쓰고 울어대는 소리로만 들립니다. 매미의 생애 중에 몸을 받아 태어나 살아 있는 여름의 한 주일은 가장 중요한 하루하루입니다. 그 시기 안에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제 존재를, 존재의 위치를 알리는 수단으로 매미는 웁니다.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울어야 짝짓기를 할 수 있고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를 비롯한 각종 소음 때문에 제 날갯짓 하는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저렇게 악을 쓰며 울어대는 걸 보면. 살 수 있는 날이 딱 일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몸짓 어떤 소리를 질렀을까요? 우리 역시 그 기간을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다시 또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없는 기다림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 기다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이 시를 썼습니다. 도종환/시인
이해인 수녀님께 "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마음, 다른 이의 아픔을 값싼 동정이 아니라 진정 나의 것으로 느끼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남에 대한 사소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 주변에 우울함보다는 기쁨을 퍼뜨리는 밝은 마음, 아무리 속상해도 모진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평화의 선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해인 수녀님은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하고, 숲 속의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하는 수녀님을 보면서 우리도 수녀님을 따라서 그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우리도 수녀님의 바다처럼 넓은 마음, 첫눈처럼 순결한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도를 해 주시고 맑고 깨끗한 글을 써주시던 수녀님은 지금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합니다. 치료를 하셔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뵐 수 없다고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에게 많은 위로와 위안을 얻었던 우리들이 이제 수녀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마른 꽃잎을 넣은 편지를 일일이 손수 써서 보내주시던 수녀님께 우리가 감사와 사랑의 편지를 보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고마우신 수녀님,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립니다. 수녀님 힘내세요. 이해인 수녀님, 수녀님이 가꾼 꽃밭의 꽃들이 다투어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그 꽃들 곁으로 걸어오시길 바랍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꽃처럼" 살아오신 수녀님, 많은 꽃들이 수녀님이 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꽃밭에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치마를 입으면 마음 한 모서리가 좀더 다소곳해지고 겸허해진 것 같아 좋다고 말씀하신 수녀님, 꽃무늬 앞치마 줄무늬 앞치마가 수녀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녀님이 앞치마를 입고 소박한 모습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어서 병을 이기고 일어나세요, 수녀님. 사랑하는 우리의 이해인 수녀님! 도종환/시인
권정생 선생의 불온서적 지난해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권선생은 전쟁을 두 번 겪었다고 말씀하십니다.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미군 폭격기의 공습에 시달리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의 참상까지를 첫 번째 전쟁이라고 하시고, 6.25전쟁을 두 번째 전쟁이라고 하십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변하고 이웃이나 친척끼리도 외면화고 지내던 현실을 가슴아파하셨습니다. 학교선생님들 중에 국군으로 전장에 나간 분이 있고, 행방불명이 되신 분, 좌익 부역자로 학살 당한 분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공비로 붙잡혀가 소식이 없는데 아들은 학교에서 공비토벌가를 목이 터지도록 불러야 하는 현실, 자식 둘을 자수 시켰다가 오히려 변을 당한 어머니, 월북한 남편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미쳐버린 여인을 보면서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가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굶주림 그 속에서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우리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들의 하느님』에 들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온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선생은 이 책에서 과학은 만물의 기능을 찾아내는 학문이지만 종교는 만물의 뜻을 찾아 살아가는 정신이라고 하시면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만물의 기능만 알고 뜻을 거역한 탓이라고 하십니다. 지나치게 유물사관에 빠져 만물의 뜻까지 버린 것이 큰 실수였다고 지적하십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권선생이 평화주의자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평화가 억눌린 사람의 해방,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 대한 자기몫 찾아주기, 정의가 살아나고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적 질서를 뜻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정치권력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게 불온하게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하느님』의 많은 글은 종교에 대한 걱정과 비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한 교회를 보며 "교회는 성공했는데 왜 나라는 만신창이인 채 버림받고 있는가? 왜 살인강도는 늘어나고 집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감옥이 늘어나고 있는가? 왜 인권은 유린당하고 모두가 이웃끼리 믿지 못하는가?" 하고 물으십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 위에 군림하는 교회, 물질과 현실의 성공만이 있는 교회, 목자가 양들의 지배자인 교회, 양들을 팔아먹거나 백성들을 비참하게 만드는데 방조자의 역할을 한 교회, 맘모스 교회당에 수천 수만의 교인과 자가용과 푹신한 침대와 푸짐한 먹을 것이 있는 교회를 비판하십니다. 석유램프 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 앉아 조용히 기도하던 지난 시절 농촌교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나면 마룻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얼어 있었지만 그때 교회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진심어린 기도가 있고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의 교회, 사랑의 교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 읽고도 불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권정생 선생은 이 땅의 문학하는 사람, 어린이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분, 무위진인(無位眞人)이셨던 분입니다. 문학정신이 살아 있고, 말과 삶과 글이 하나이셨던 분, 가장 높고 가장 외롭고 가장 많이 아프고 가장 가난하게 사셨던 분, 오늘도 우리는 그분의 불온한 정신, 그분이 만나고자 했던 진정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도종환/시인
병 없이 사는 이는 없습니다. 병이라곤 앓아본 적 없이 아주 건강하게 사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늘 크고 작은 병을 지니고 사는 게 사람입니다. 감기나 몸살이란 것도 몸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으니 잠시 쉬어야 한다는 신호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큰 병에 걸리는 이들 중에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고 과신하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건강에 과신은 금물입니다. 몸에 병이 들면 어떻게든 싸워서 병을 내쫓으려 하지만 어떤 병은 잘 구슬러서 데리고 살아야 하는 병도 있습니다. 당뇨병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또 어떤 병은 아플 만큼 아파야 낫는 병도 있습니다. 장염이 걸렸는데 무리하게 지사제만을 사용하면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 독성이 몸에 남아 있어 도리어 해롭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능과 부조리와 부패, 비리와 뇌물과 부정직한 거래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종양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과 비인간적인 경쟁 제일주의, 시장 만능주의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만성질환입니다. 이런 병들은 쉽게 뿌리 뽑히지도 않습니다. 내성이 강해 웬만한 약은 듣지도 않습니다. 아니 이런 병을 부추겨 이득을 보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포기한 이도 많습니다. 아닙니다. 어떻게든 고질적인 병을 고쳐야 합니다. 나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병에서 배워야 하고 똑같은 병에 자주 걸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유용주시인은 병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병은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온 다음에야 깨닫는 법, 그러니 인간이란 축생들은 후회와 반성의 자식들이 아니던가? 병은 사람을 가르친다고 했다. 늘 그렇게 한 발자국씩 늦게야 알아듣느니, 병은 스승이다. 병은 우선 낫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저 길에게 약속한다. 소나무에게 전봇대에게 약속한다. 모시고 살 것이라고. 극진히 대접할 것이라고, 저 썩을 대로 썩은 강물에게 맹세한다.(.....) 나는 나을 수 있다. 길이 나를 저버리지 않는 한 이 스승을 끝까지 모시고 살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국가가 앓고 있는 병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파해야 하고 앓을 만큼 앓아야 합니다. 그리고 병에서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병은 스승입니다. 도종환/시인
매체가 메시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를 보자. 15세기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되고, 인쇄된 문자 매체들이 확산됨으로서 사람들은 문자문화에 길들여지게 된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지만, 구텐베르크 이후 수백년이 흐르면서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통한 지각에 익숙하게 된다. 이로 인해 기존의 구술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이제 감각방식에 있어서 변화를 겪게 된다. “플라톤은 문자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억력을 앗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을 주고 받으면 기억력이 발달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각패턴의 변화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구속한다. 매체가 변화하면 그에 따르는 변화가 수반된다는 얘기는 상식이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 과정에서는 문자에 대한 시각적 감각이 집중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문자문화에 익숙한 현대인이 메모를 많이 하는 것도 그 한 예로 볼 수 있다. 개인주의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구술은 인간 상호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비해, 문자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이야기는 상대방과 나누어야 하지만, 인쇄된 책은 철저하게 나 혼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행위하는 힘이 증대된다. 그런데 맥루한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매체 자체가, 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이 벌어지게 한다고 한다. 그는 전달되는 내용에 역점을 둔 것이 아니고 전달하는 매체에 역점을 두고 메시지를 해석한 것이다. 다시 말해 표현 매체의 조건 자체가 표현 내용으로 전화되어 전체적으로 다른 표현 내용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확장물인 매체는 <어떤 것이 일어나게 하는>(make-happen) 인자이지 <어떤 것을 인식하게 하는>(make-aware) 인자가 아니다." - Martial Mcluhan 우리는 같은 내용이 다른 매체인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넷으로 단순히 전달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들 매체를 통해 전달된 내용은 우리가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체가 다르면 해석의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우리의 느낌 감정 이런 것조차도 바깥에 나가있는 확장된 신체인 매체에 의존해서 다 해석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주장은 세 가지 의의를 갖는다. 첫째, 매체는 감각패턴과 지각비율을 변화시킨다. 둘째, 미디어는 관련되는 사건들의 규모나 속도 또는 유형의 변화를 통해 바로 그러한 미디어로 규정된다. 셋째,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보다는 매체를 통해 주입되는 바, 표현 및 이해에 관련된 무의식적인 전체적인 장의 변화가 더 근본적인 매체의 메시지다. 따라서 매체 자체인 이 메시지에 대해 매체 사용자들은 감각에 있어서 무의식적인 도취 또는 마비 상태에 빠진다. 이런 맥락에서 맥루한은 라디오가 없었다면 히틀러가 존재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맥루한이 보기에 히틀러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Board 추천글 2008.08.05 바람의종 R 17826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51> 우리가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면 더 기다리는 사람이 됩시다 살아 있는 동안 빛나는 승리의 기억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더욱 세차게 달려가는 우리가 됩시다 사랑했던 사람을 미워하지 맙시다 우리의 사랑은 옳았습니다 어제까지도 우리가 거친 바람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합시다 더 많은 땀과 눈물이 필요한 때문이라 생각합시다 다만 내 손으로 내 살에 못을 박은 듯한 아픔은 잊지 맙시다 그가 나를 사랑한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하지 못해 살을 찢는 듯한 아픔으로 돌아서야 했던 것을 잊지 맙시다 아직도 때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합시다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빛나는 승리의 기억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도 중요하고 한 나라의 역사에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승리의 기억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에 거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미래의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억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은 쉽게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좌절 끝에 옵니다. 승리하지 못했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승리의 역사를 만나지 못합니다. 승리하지 못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리는 사람, 남을 탓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승리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다시 기다리는 사람,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 사람, 함께 여기까지 온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사람, 아직 때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는 사람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땀과 눈물과 사랑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옳았습니다 / 어제까지도 우리가 거친 바람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합시다" 도종환/시인
아내가 충주에 갔다가 얻어 온 옥수수를 삶아서 윗집에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저를 보고는 윗집에서 먼저 '옥수수 쪘는데 드실래요?' 하는 겁니다. 어제 내가 없는 사이에 음지말에 사시는 염씨아저씨가 집집마다 옥수수 한 자루씩을 돌렸다는 겁니다. 옥수수 때문에 쇠절골로 집 지어 들어온 세 가족 모두 행복한 얼굴입니다. 어제 오늘 오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옥수수를 쪄서 대접하고는 주는 사람이나 얻어먹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해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작은 것 하나도 나누면 행복해집니다. 남이 행복하면 나도 기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만인의 행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지구상에는 비참과 비탄, 고통과 공포 같은 불행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꿈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행복은 곧 베푸는 것입니다. 나는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보다는 시골 여인숙의 식사를, 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공원을, 희귀한 서적보다는 산책할 때도 걱정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더 좋아합니다. 만일 내가 어떤 예술작품을 혼자서만 감상해야 한다면, 그 예술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슬픈 마음이 기쁜 마음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나의 행복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만인의 행복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걸 보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사람입니다. 베풀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혼자 가지고 혼자 누리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값진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나누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힘 있는 사람입니다.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