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별, 가난, 착취, 식민주의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불황, 전쟁, 파시즘을 겪으며 분노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리 곱게 봐도 문젯거리였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전체가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하려는 노력 없이 사회에 반대만 하는 것은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이에서 보았던 부정의와 불평등을 뿌리뽑을 수 있다고 믿으며 제도의 틀에서 일어났던 여러 변화에 반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분명히 이 문명은 결코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생산성을 높여 가난과 실업, 착취, 차별, 식민주의를 몰아내기는커녕 이 부도덕한 것들을 일부러 퍼뜨려 거기에서 이윤까지 냈다. 나는 반대하고 저항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사회는 내 밥벌이를 빼앗고 내 영향력과 신분까지 빼앗으며 나를 비웃었다. 이제 투쟁을 포기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인가? 힘센 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런 사회 불의에 반대하기를 그만두고 눈앞에 버티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뒤, 앞으로는 내가 반대했던 사회 체제에 이바지하고 그를 찬양하겠노라고 약속할 것인가? 선뜻 결정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넓게는 모든 사회 관계의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원칙의 문제였다. 그대로 갈 것인가. 비켜날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나만이 이런 갈림길에 맞닥뜨린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의식이 있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의문과 실망투성이인 난관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내 갈림길, 우리 세대의 갈림길, 서구인의 갈림길, 역사에 나타난 인류의 갈림길은 이상, 꿈, 희망, 목표, 계획으로 나아가는 길과 현실의 제약에 머무는 길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이면서 또 인류 공동체의 일부로서, 한 사람은 모순, 양자택일, 갈림길,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제때에 분명히 행동하면 하나는 고를 수 있다. 머뭇거리거나 옆걸음질치거나 미적거린다면 둘 다 놓치고 만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이런 명제를 앞에 놓고 스콧니어링이 던진 이 말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의 현실을 향해 던지는 질문처럼 가슴을 때리며 다가오는지요? 도종환/시인
새 한 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 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 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 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매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가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주말까지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어제 낮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광활한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그런 새의 모습을 보며 이 시를 썼습니다. 젖으며 빗속에서도 먼 길을 가야하는 새. 그 새의 모습이 얼마나 안스럽던지요. 우리도 그 새처럼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습니다. 젖은 채로 먼 길을 가야하는 절박한 날들이 우리에겐 많았습니다. 하늘은 언제든지 비가 되어 내릴 구름으로 가득한데, 젖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한 개인에 대해 세상은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란 믿음이 있어 우리는 삽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빗속에서 젖으며 먼 길을 가는 새도 멀지 않은 곳에 날개를 접고 쉴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말없이 하늘을 건너가는지도 모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새도 젖고 우리도 젖어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소인배는 자신의 인생, 자기가 속한 조직,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뛰어넘어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한다. 소인배는 정해진 업무는 완벽하게 수행해낸다. 하지만 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늘 해오던 방식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는 않고 그저 익숙한 것을 고수하려고만 한다.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대화는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인배는 무엇보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인배는 자신의 지위나 안위, 편리함의 견지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최선이면 가족이나 조직, 지역사회에도 최선이라고 믿는다. 소인배는 자신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 변화에 대한 두려움만을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소인배는 우리들 삶을 고양시키지 못하고 우리를 희망의 땅으로 안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도 켄트 케이스가 한 말입니다. 그 사람이 소인배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켄트 케이스는 그 중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소인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시안적인 생각, 멀리 바라볼 줄 모르는 좁은 시야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자신의 지위나 안위, 편리함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소인배라고 말합니다. 진취적인 사람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진보적인 사람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변화를 갈망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노력하고 땀 흘린 만큼 발전해 왔습니다. 그들은 소수였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전망 새로운 꿈 새로운 세상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갈 줄 모르는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만을 위해 존재할 뿐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미래로 이끌어 가고 갈 사람이 아닙니다. 도종환/시인
아나키즘은 모든 부당한 권위에 반대하는 사상이며,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주장은 자유, 자연, 자치라는 삼자주의(三自主義)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자유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며,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전체에 대한 관심, 자치는 스스로 통치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아나키스트 조약골은 지배하는 머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민머리로주의로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나키즘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독재로 이어지는 정치상황의 변화 가운데에서 무수한 탄압으로 인해 점차로 사라져갔다. 오늘날에는 본래 정치사상으로서 아나키즘보다는 폭력, 파괴, 테러, 무정부주의 등의 단어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아나키스트에게 있어서 어찌보면 매우 억울한 것이다. 아나키스트 1세대로 불리는 신채호, 유자명, 유림, 이정규와 같은 사람들은 교육과 무장 투쟁, 테러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일제에 맞서는 데 있어서 어떤 집단보다 더 치열하게 독립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자에 따라서는 시대적 한계 내에서 생존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폭력의 선택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삼자주의를 주창하는 아나키즘의 실천적인 형태는 정치적인 양상으로 드러났다. 아나키스트들은 해방 후 1946년 경남 안의에 모여 사상 최대 규모의 전국 아나키스트 대표자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 회의의 결과로 독립노농당을 그해 7월에 창당하게 된다. 아나키스트 자유의지에 따라 세계 최초로 아나키즘을 지향하는 합법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독립노농당의 정치 지향은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근로대중의 최대 복리를 추구하되 경제 운용의 주체로서 중·소 자산층을 활용한 자주적 계획경제, 민주입헌정치, 민주정부 수립이었다.” 또 “산업기관 관리와 경영에 노동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자력으로 경작할 농민에게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사유권을 인정했다.”(신동아 2007. 8. 27에서 인용) 아나키즘이 그 어떤 사상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며, 부당한 억압과 지배에 대항해 싸워왔지만, 정치 활동으로서 정당 정치로의 진출은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식민-해방-독재라는 독특한 역사의 흐름에서 형성된 한국만의 특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정당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림이 1961년에 사망하고, 뒤이어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박정희 정권의 강제 해산에 의해 독립노농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 후 10년 뒤 정화암, 하기락 등의 아나키스트에 의해 결성된 통일민주당은 1972년 선거에서 총 득표의 10.2%를 획득했다. 또 다른 아나키스트 이문창은 농촌에서 소규모 공동체를 꾸려서 자주적인 개인의 공동생활을 꿈꾸기도 했다. 오늘날 아나키즘의 흐름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개인의 자유 확대와 소규모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만나면서 또 다시 재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벌써 인터넷에는 수많은 아나키즘 관련 블로그와 카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영화와 장신구 등의 문화상품으로 팔리고 있기도 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그 본래의 저항정신과 자유의 개념은 추상적인 구호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아나키즘이 출현하게 되는 역사적 시점 - 일제에 의한 생존의 억압, 독재에 의한 정치적 억압 - 을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아나키즘이 또 다시 유행하게 되는 데는 단순한 문화상품으로의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억압의 현대적 형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성찰을 해보게 된다. (참고 및 사진 출처: 한국 자주인연맹(www.jajuin.org))
Board 추천글 2008.07.24 바람의종 R 16188
세상은 미쳤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평만 하고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불평이 아니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답답한 요지경이지만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미쳤고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미친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 해답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역설'이란 통념과 반대되는 사고방식이며 상식에 위배된다. 하지만 진실하다. 역설은 비판적이거나 음울하지 않다. 만일 당신이 올바르고 선하며 진실한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지 않고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의미를 발견하면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차원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켄트 케이스의 말입니다. 켄트 케이스는 "당신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오늘 당신이 착한 일을 해도 내일이면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결국에는 힘 있는 사람 편에 선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약자를 위해 싸운 일이 평생 한 일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켄트 케이스는 그것을 역설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도종환/시인
우리에게 역사 있기를 기다리며 수백만 년 저리디 저린 외로움 안고 살아온 섬 동도가 서도에 아침 그림자를 뉘이고 서도가 동도에게 저녁 달빛 나누어 주며 그렇게 저희끼리 다독이며 살아온 섬 촛대바위가 폭풍을 견디면 장군바위도 파도를 이기고 벼랑의 풀들이 빗줄기 받아 그 중 거센 것을 안으로 삭여내면 바닷가 바위들 형제처럼 어깨를 겯고 눈보라에 맞서며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서로를 지켜온 섬 땅채송화 해국 술패랭이 이런 꽃의 씨앗처럼 세상 욕심 다 버린 것 외로움이란 외로움 다 이길 수 있는 것들만 폭풍우의 등을 타고 오거나 바다 건너 날아와 꽃 피는 섬 사람 많은 대처에선 볼 수 없게 된지 오래인 녹색 비둘기 한 쌍 몰래 날아와 둥지 틀다 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해조류떼가 저희끼리 손끝을 간지르며 모여 사는 곳 그런 걸 아는 사람 몇몇 바다 건너와 물질하며 살거나 백두산 버금가는 가슴으로 용솟음치며 이 나라 역사와 함께 해온 섬 홀로 맨 끝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인지 고고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알게 하는 섬 아, 독도 여러 해 전에 독도에 다녀온 뒤에 쓴 시입니다. 독도는 지질학적으로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섬입니다. 아니 "우리에게 역사 있기를 기다리며 / 수백만 년 저리디 저린 외로움 안고 살아온 섬"입니다. 독도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독도는 외로운 섬입니다. 우리에게 "홀로 맨 끝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인지 / 고고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알게 하는 섬"입니다. 일본의 후안무치한 주장은 일단 분쟁지역으로 묶어두는 것만 해도 정치적으로 얻는 게 있다는 잘못된 계산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우파의 민족주의를 자극해도 표가 되고 보수표의 기반 중의 하나인 어민들 표와 지지를 모으는 데도 별로 손해될 게 없다는 정치적 계산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강력 대응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얕은 수를 쓰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까지 잘못된 역사 잘못된 사실을 가르치겠다는 일본 정치인들의 뻔뻔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종환/시인
옛날 옛날에 정말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내가 난치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남편은 너무나 슬퍼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내의 관 옆에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도인이 남편을 보고 "100일 동안 매일 아내를 끌어안고 아내에게 너의 따뜻함을 전해주면 그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도인에게 감사하며 그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웃사람들이 냄새를 참을 수 없어 하여 남편은 뗏목을 만들어 아내를 싣고 떠났습니다. 그러다 강가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남편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손가락을 깨물어 아내의 입속으로 피 세 방울을 떨어뜨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입이 움직이며 꿈에서 깬 것처럼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착한 청년이 당신을 살리려고 피 세 방울을 빌려줬소. 당신이 이 청년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피 세 방울만 돌려주면 되오." 할아버지가 아내의 약속과 맹세를 듣고 둘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라고 악어 한 마리를 불러주었습니다. 악어와 반나절 정도 가다가 부부는 작은 가게를 찾아 갔고, 그 가게에는 부자인 상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상인은 아내에게 예쁜 보석을 선물로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상인의 말을 듣자 마음이 흔들려 그를 따라 그의 배로 갔습니다. 악어는 남편을 등에 태운 뒤 배를 쫒아갔습니다. 남편은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게 금 한 봉지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겠네요. 이 금을 받고 돌아가요. 그리고 그날처럼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악어가 "우리 주인님이 남편한테 빚을 돌려주기만 하면 가고 싶은 대로 가도 된답니다." 하고 말하며 피 세 방울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바로 손가락을 찔러 남편에게 피 세 방울을 돌려줬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상인이 여인을 살아나게 하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숨을 쉬다가 숨이 끊겨 모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피가 모자란 모기는 항상 사람의 피를 조금씩 몰래 빨아먹고 산답니다. 베트남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고마움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를 말하려고 만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의사인 마종기 시인은 알을 밴 암컷 모기만 피를 빤다고 해서 모기에게도 동정의 마음을 갖게 했는데, 더운 나라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은 모기를 많이 미워한 것 같습니다. 모기 한 마리만 있어도 잠을 설치게 되는 여름입니다. 아이들에게 부채질해주며 두런두런 모기이야기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도종환/시인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 사람이 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를 묻는 자공의 질문에 답하는 공자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아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자는 이 글의 주석에서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동에 반드시 영합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동에 실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면 누가 좋은 사람일까요?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 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욕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선하지 않은 사람, 착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요. 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하고 비웃고 욕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이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 우리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우리를 미워하는 가를 보면 우리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최근에 재미있는 시 두 편을 보았습니다. 현대시학 6월호에 발표된 이문재 시인의 시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이 시의 내용을 보여드리면 이게 어떤 시를 이렇게 바꾸었는지 단박 알아채실 겁니다. "불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불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불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 "우리가 불이 되어 만난다면 / 젖은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화르르 화르르 불타오르는 소리로 흐른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물로 만나려 한다. / 벌써 물줄기가 된 물방울 하나가 / 물바다가 된 세상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 저 물 지난 뒤에 / 타오르는 불로 만나자....." 앞의 시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뒤의 시는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패러디한 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풀을 불로 바꾸거나 물의 자리에 불을 가져다 놓아 보면 요즘 우리 현실을 생생하게 노래하는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비와 바람에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서는 풀에서 민중적 생명력을 보았다면, 이문재 시인은 바람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촛불에서 풀의 생명력처럼 질긴 그 어떤 힘을 본 것이지요. 강은교 시인은 불로 만나지 말고 물로 만나자고 했습니다. 물이 가진 통합의 힘 소생의 힘이 대결하고 태우고 죽게 만드는 불의 속성보다 크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권력을 향해 이문재 시인은 유쾌한 패러디를 던짐으로써 우리를 다시 즐겁고 신명나게 합니다. 이 시가 발표된 걸 본 문인들은 밥 먹는 자리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저런 시라면 나도 지을 수 있겠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던집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이 있다 / 그 불에 가고 싶다" "촛불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희는 / 언제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촛불이 곁에 있어도 / 나는 촛불이 그립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촛불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촛불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이 이야기가 네티즌들의 귀에 들어가면 수백 편의 재미있는 시가 인터넷 공간으로 쏟아져 나올 겁니다.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