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나무들, 산 위에 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그 뒤로 광활한 하늘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솟대가 빽빽한 건물에 가려 있으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솟대의 뒤에는 빈 하늘이 배경이 되어 있어야 솟대다워 보입니다. 그래야 솟대의 아름다운 멋이 살아납니다. 화폭을 유화물감으로 빈틈없이 채우기보다 여백으로 그냥 남겨두는 한국화가 저는 좋습니다. 조각품도 작품 주위에 빈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작품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네거티브 스페이스라고 합니다.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 여기저기 여백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하루의 일정 중에 단 한 시간도 여백이 있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루 생활 중에도 여백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신적인 여백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어디 한 군데쯤 비어 있는 것도 좋습니다. 완벽해 보이기보다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더 인간답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도 정신적인 여백, 정신적인 여유를 더 많이 갖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백을 여러분의 배경으로 삼아보세요. 그리로 바람 한 줄기 지나가게 해 보세요. 도종환/시인
Board 추천글 2008.10.07 바람의종 R 12144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간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입니다. 옛말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이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맑다는 말은 때 묻지 않고 물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때 묻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은 결국 그 주위에 이웃이 모이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부처도 중생 속에 있을 때 진정한 부처라 했습니다. 남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럿 속에 있을 때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아야말로 진정으로 튼튼한 자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모습을 보십시오. 맨 처음 강물은 산골짝 맑은 이슬방울에서 시작합니다. 깨끗한 물들과 만나면서 맑은 마음으로 먼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폭이 넓어지고 물이 불어나면서 깨끗하지 않은 물과도 섞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면서는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더럽혀질 대로 더러워진 물이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 썩은 물들이 섞여 들어오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강의 생명력은 매순간마다 스스로 거듭 새로워지며 먼 곳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데 있습니다. 가면서 맑아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명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정 작용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끝내 먼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비록 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온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뗄 때만큼 맑지는 못하더라도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섞여 흘러가면서도 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우리도 그런 삶의 자세를 바다로 가는 강물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감나무에 감이 보기 좋은 빛깔로 익고 있습니다. 올해는 감이 잘 열렸습니다. 그런데 호두나무는 지난해보다 많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호두나무가 있는 밭에 흙을 두텁게 까는 공사를 하다가 나무 밑둥이 흙에 덮히는 바람에 나무가 심하게 앓은 탓입니다. 보통 때에도 나무들은 몇 해 열매가 잘 열리면 한 해는 해거리를 합니다. 그런 해는 열매가 부실합니다. 그래도 나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무 자체를 늘 소중하게 대합니다. 수확이 부실하다고 금방 베어버리지 않습니다. 열매가 많이 열리면 많이 열리는 대로 고맙게 생각하고 좀 적게 열리는 해는 적게 열렸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생명을 가진 것으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은 소를 기르거나 닭을 키울 때도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키우던 소를 내다 팔 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짐승뿐 아니라 사람도 어질게 대합니다. 그런데 닭과 소를 키우는 것이 기업화 하면서 가축을 생명을 가진 짐승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보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광우병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사료의 양과 먹이를 주는 시간과 몸무게를 기계적으로 계산하면서 과학축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타산만이 있을 뿐인 짐승사육은 그것을 먹는 사람 역시 공포스러운 질병에 걸리게 하고 마는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만 골라서 대출을 하는데 대출 회수율은 98%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서브 프라임 대출을 해주었다가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라민은행의 고객들은 서브 서브 서브 프라임인데도 서브프라임의 위기가 없는데, 왜 세계경제를 앞장서서 이끌어 가고 있는 부자나라 미국에서는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는 것일까요? KDI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는 "그라민 은행은 사람을 살리려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은행이고, 미국의 은행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은행"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기계적인 공식에 입각해서 신용등급의 숫자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어려운 사람을 살리려고 다가가는 은행이라는 것을 아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돈을 갚으려고 합니다. 은행이 고마운 존재인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행이 자기들을 대상으로 오직 돈벌이만을 하려고 하는 걸 아는 사람들은 사정이 어려워지면 돈을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운영하는 돈 많은 사람들을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존재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로 돌아오지 않는 한 지금의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은 언제든지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 위기는 동반 몰락과 동반 추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 이끌어 가는 사회는 돈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사회입니다. 자본을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사람도 상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동안 자신도 상품이 되어가는 세상, 물신화 되어가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친구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또한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대가 힘들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서로 사랑이란 말이 오고가도 아무 부담없는 혼자 울고 있을 때 말없이 다가와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그대와 함께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칭찬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그대가 있으면, 그대도 내가 있으면 만족하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사랑보다는 우정, 우정보다는 진실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고맙다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답할 수 있는 둘보다는 하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대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아무 말이 없어도 서로를 더 잘 아는 그대가 나를 속여도 전혀 미움이 없는 잠시의 행복, 웃음보다는 가슴깊이 남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소중합니다. 그냥 지나가는 친구보다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힘없이 깔려 내리는 목소리에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아낌의 소중함보다, 믿음의 소중함을 더 중요시하는 먼 곳에서도 서로를 믿고... 생각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괴로울 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즐거울 때 세상 누구보다 더 즐거워합니다. 그대보다 더 소중한 친구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가르쳐 준 좋은친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기도 하겠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 좋은글 중에서 -
꽃밭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분꽃은 분꽃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모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모여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분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분꽃은 채송화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맨드라미는 봉숭아를 시새움하지 않고 들국화는 달리아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제 모습대로 곱게 피어 있습니다. 감은 주홍빛으로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 있고, 사과는 사과대로 반짝이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감은 사과를 부러워하지 않고 사과는 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과나무끼리 내 가지에는 열 개가 열렸는데, 옆의 나무는 스무 개가 열렸다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제 모습대로 탐스럽게 익어 있을 뿐입니다. 모과는 또 모과대로 향기에 싸여 익어 있습니다. 못생겼다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기러기는 기러기의 날갯짓으로 날아가고 까치는 까치 제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립니다. 기러기를 부러워하는 까치가 없고, 까치를 부러워하는 기러기는 없습니다. 참새는 참새로서 살아온 제 삶의 양식이 있고, 청둥오리는 저희끼리 날아다니며 만나는 하늘과 강물이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제 모습대로 아름답고 제 모습대로 편안한 것이 자연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리하여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며 제 모습 그대로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분꽃 같은 제 모습이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오직 장미꽃처럼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과처럼 고운 제 빛깔을 탐스럽다 하지 않고 오렌지 빛깔처럼 산뜻하지 못하다고 조마조마해 하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시새움하거나 닮은꼴이 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여유를 잃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삶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람처럼 자신 없어 하는 미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꽃밭의 꽃들을 보세요. 이 세상 어떤 꽃도 다 제 모습 그대로 피어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