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3. 아레스 아레스(Ares, Mars)는 그리스 세계의 옛 전쟁신 혹은 군신으로, 로마인은 이탈리아의 전쟁신 마르스와 동일시하였다. 트라키아에서 마르스는 전쟁을 매우 좋아하는 신으로 등장하며 그 자매인 에리스는 전쟁이 나도록 선동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질투심을 부추겼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라고 하나 헤라가 데리고 온 아들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치 제우스가 아테나를 출생케 한 것처럼, 시문에서는 올레노스 근처 들에서 꽃의 여신 클로리스(로마에서는 플로라)의 도움을 받은 헤라가 이성 없이 꽃을 만진 것만으로 임신하였다고 읊고 있다. 헤라는 아레스를 프리아푸스에게 교육받게 하고 무용과 남성적인 모든 행동을 배우게 하였다. 아레스는 아글라우로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알키페가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을 구하기 위하여 그를 죽였다 한다. 그러나 증인이 없어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연유하여 이 언덕은 최고재판소로서 역사적 신기원을 이룩하게 되었다. 아레스의 연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프로디테와의 관계였다. 둘의 부정한 소문을 들은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법의 망으로 현장을 덮치고 올림포스 신들을 모두 불러모아 부정현장을 공개하였다. 아레스는 포세이돈이 개입한 후에야 겨울 풀려날 수 있었다. 크게 망신을 당한 아레스는 망을 보라고 한 알레트류온이 졸았기 때문이라고 하여 벌로 그를 수탉으로 변신시켰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정사를 남편에게 알린 헬리오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헬리오스의 아이들을 집요하게 학대하였다. 아레스는 티탄족과의 전쟁에서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에게 붙잡혀 15개월 동안 유폐되었는데 굶어 죽기 직전까지 헤르메스에게 발견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쪽에 호의를 가진데다 특히 사랑하는 아프로디테가 이례적으로 트로이를 비호하였기 때문에 자신도 트로이쪽에 가세하였으나 용맹한 디오메데스에게 부상을 당해 곧 천상으로 철수하였다. 그는 디오메데스에게 당한 분통을 억지로 감추면서도 제우스와 아테나가 자기의 적수에게 예리하고 실수 없는 무기를 주었다고 불평하였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신은 아레스를 싫어하였으나 자매인 에리스와 연인 아프로디테, 무엇이든 지하에 넣어 두는 욕심쟁이 하데스만은 그를 좋아하였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주 인간의 전쟁에 개입하여 비호를 하거나 방해를 놓았는데 이는 자신들을 숭배하는 인간이나 용사를 구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레스만은 전쟁에서 적이건 우군이건 또는 정의의 싸움이건 아니건, 용맹하건 겁쟁이 건 관계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공격하고 유혈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아레스를 수호신으로 받드는 도시는 거의 없고 옛적 그리스 세계에 아레스 숭배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는 에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레스는 폭력을 좋아하고 광폭하였지만 악의 신은 아니었다. 로마로 들어오자 호전적인 성격의 로마인은 이 아레스를 무한히 영광의 신으로 숭배하고 도시의 보호신, 군주의 선조신으로 앙모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필리피 전을 끝내고 로마에 가장 훌륭한 신전을 건립하여 마르스(아레스) 신에 봉헌하였다. 당시 마르스를 모시는 사제들의 학교를 살리라 하였고 사제들은 누마라는 곳에서 하늘에서 내린 신성한 방패 안킬라를 지켰다. 아레스는 일반적으로 벌거벗은 노인의 모습이거나 혹은 헬멧과 창 및 방패를 지닌 상으로 표현된다. 때로 무장하고 긴 수염을 가진 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두필의 준마(Flight.Terror)가 끄는 이륜전차를 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레스 제단은 말의 피 또는 이리의 피를 묻혀 호전성을 나타냈다. 까치와 솔개를 공양했는데 탐욕성과 탐식성이 있기 때문이며, 스키타이인은 나귀, 카리아인은 개를 바쳤다. 식물로는 개밀이라는 풀을 바치는데 전쟁터나 혹은 사람 피로 물든 땅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아레스는 각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예컨대 사비니족은 에뉴알리오스, 가울 사람은 카말로스, 카르타고에서는 마메르스라 하였다. 로마인은 그라디부스, 마보르스, 퀴리누스, 살리숩술루스라고도 하였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에게서 에로스(큐피드), 안테로스 및 하르모니아를, 아스튜오케에게서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를, 아글라우로스에게서 알키페를, 아게노르의 딸 데모니케와의 사이에서 몰로스, 퓰로스, 에우에노스 및 테스티오스를 두었다. 또한 로물루스, 오이노마오스, 뷰티스, 트락스, 트라키아의 디오메데스 등의 아비이기도 하다. 검사의 신이며 남성답고 호전적인 활동 오락에 관여되는 신으로 로마인은 원정에 나설 때 마르스 신전을 찾아 기원을 올렸다. 그러면 신상의 손에 지닌 창이 엄숙히 흔들려 응답을 하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은 '전쟁의 신이 로마의 안전을 지키니(Mars vigila!)'라고 외쳤다.
Board 추천글 2023.11.10 風文 R 1469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적 수치심? 학업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인가?’ 자세히 들어 보니 성추행 관련기사였는데 기자가 ‘성:쩍 수치심’을 ‘성적 수치심’으로 발음한 것이었다. 뜻을 생각하지 않고 글자에만 신경을 쓸 때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학습이나 일의 실적을 나타내는 성적(成績)은 예사소리로 발음하지만 남녀의 특성을 나타내는 ‘성(性)’에 접미사 ‘적(的)’이 붙은 성적(性的)은 ‘성:쩍’ 즉 된소리로 발음한다. 마찬가지로 지적(指摘)은 ‘지적’으로 발음하지만 지적(知的)은 ‘지쩍’으로 발음한다. 내적(內的) 외적(外的) 공적(公的) 사적(私的)도 ‘내:쩍’ ‘외:쩍’ ‘공쩍’ ‘사쩍’이 된다. 하지만 ‘접미사 ‘-적’이 모두 된소리로 발음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성공적’ ‘근본적’처럼 예사소리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한음절 단어에 붙을 때 된소리가 나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며 관습적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방송 출연자가 ‘잠자리(잠을 자는 곳)’를 ‘잠짜리’가 아닌 ‘잠자리’(곤충)로 발음해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합성어의 경우 표기상에는 사이시옷이 없어도 관형의 뜻이 성립할 때 뒤 단어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한다. 문고리(문꼬리), 등불(등뿔), 눈동자(눈똥자), 손재주(손째주), 발바닥(발빠닥) 등이 이런 경우이다. 불필요한 된소리도 피해야겠지만 제때 된소리를 발음해야 의미 전달이 잘 될 뿐 아니라 발음하기도 쉽다. 경음화의 모든 원칙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규칙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례별로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11.10 風文 R 3268
이중피동의 쓸모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무성영화 시절 변사는 특유의 저 말투로 어떤 장면을 실감나게 강조했다. 저래야 영화의 맛이 살았다. 효과 만점. 모든 표현에는 그렇게 쓰는 이유가 있다. 신화처럼 완고하게 전해오는 명령이 있다. ‘이중피동을 피하라!’ 한 번으로 족한데 두 번이나 피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 정말 그런가? 안 써도 되는데 굳이 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설명을 못 할 뿐이지 쓸모없는 게 아니다. 흥미롭게도 옛말에는 진정한 이중피동, 즉 피동접사를 겹쳐 쓰는 말이 꽤 있다. 예를 들면, ‘닫히이다, 막히이다, 잊히이다, 눌리이다, 밟히우다, 잡히우다’. ‘닫히다, 막히다, 잊히다’ 등은 오래전부터 피동사로 쓰였다. 시간이 흘러 이 말이 피동사인지 아닌지 흐릿해지니 ‘이’나 ‘우’를 붙여 피동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했다. 낡은 옷을 기워 입듯, 말도 닳아서 애초의 쓸모가 흐릿해지면 뭔가를 덧댄다. 피동사만으로는 피동의 의미를 나타내기엔 약해 보이니 ‘지다’를 덧붙였다. 장례를 치르는 자식이 육개장을 목으로 넘기며 “이런데도 밥이 먹혀지는군”이라고 할 수 있잖은가. 벌어지는 일에 대한 불가항력이랄까, 거리감의 강조랄까. 아니면, 변명의 장치랄까.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윤동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이용 ‘잊혀진 계절’).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쉽게 쓰인 시, 잊어지지 않는 눈짓, 잊힌 계절’이면 참 어색하다. 사전이나 맞춤법 검사기의 구령에 맞춰 걷지 말자. 나의 감각을 맞춤하게 담을 수만 있다면 어떤 언어도 가능하다. 삶이 그렇듯.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10 風文 R 2306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12. 헤르메스 헤르메스(Hermes, Mercurius)는 제우스와 마이아(아틀라스의 딸)의 아들로 아르카디아의 큘레네 산 동굴에서 태어났다. 아기 헤르메스는 얼마나 성장이 빠르던지 태어나자마자 기저귀를 채워 뉘어 둔 요람에서 기어나와 걷기 시작하였다. 대개의 신족이 조숙하다고 하지만 헤르메스는 그 중 단연 최고에 속하였다. 동굴 입구로 걸어나온 아기 헤르메스는 이 고장에 흔한 거북을 보자 집어 가지고 들어와 죽여서 악기를 만들 생각으로 등딱지를 떼어냈다. 악기를 만들 생각이라든지 거북등이 수금의 음판이 되기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잠시 후 헤르메스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피에리아의 아폴론 목장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우아한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데 목동이 보이지 않았다. 헤르메스는 소를 훔치기로 하되 흔적없이 끌어 갈 궁리를 하여 우선 쓰러진 참나무 껍질을 벗겨 소의 발바닥에 대고 풀로 엮어매었다. 자신도 짚신의 앞을 뒤꿈치 모양이 되게 만들어 신 자국이 반대로 나게 하였다. 일설에는 소들을 뒷걸음질치게 하여 몰고 갔다고도 한다. 밤이 깊어지자 조용히 소떼를 몰았다. 다음 날 자신의 소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안 아폴론이 소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감시를 하였던 까마귀는 어린아이가 끌고 갔다고 말했으나 아폴론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 그저 동서로 소의 행방을 찾아 헤매었다. 실레노스와 사튜로스 일행에게 후한 보상을 주기로 하고 자신과는 딴 방향을 수소문하게도 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여라 날 수색하여도 행방이 묘연하던 차에 한 노인이 밤중에 소떼를 몰고가는 어린아이를 보았다고 하였다. 이에 아폴론은 어린이가 있는 굴을 찾아나섰고 마침내 동굴에 도착해서는 참고 있던 화를 폭발하였다. 아기의 어미 마이아는 아기가 깨겠다고 야단을 하였으나 아폴론은 요람속에서 천진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헤르메스를 깨워 소를 돌려보내라고 다그쳤다. 어린 헤르메스는 눈을 깜박이며 "소라니, 무슨 말이에요?" 하며 딴전을 피웠다. 수금의 줄을 만들기 위하여 이미 헤르메스가 자신의 소 두 마리를 잡은 것을 알게 된 아폴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헤르메스를 올림포스로 끌고 가 제우스에게 하소연하였다. 제우스는 사연을 알았으나 자기의 어린 아들이 저지른 이 깜찍하고 뻔뻔스런 언행에 기도 차고 재미도 나서 도리어 헤르메스를 부추겼다. 그러나 계속 핑계를 대는 일에 싫증이 난 헤르메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실토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든 수금을 조용히 켜서 음률을 내는데 그 음률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아폴론은 소와 수금을 맞바꾸자고 제의하였다. 제우스는 자신의 두 아들 간에 대화와 거래 모양을 바라보며 이 어린아이의 눈치 빠르고 민첩한 재치와 깜찍하게 둘러대는 외교술에 스릴까지 느꼈다. 헤르메스의 비범한 재질을 확인한 제우스는 이를 대견해 하며 그를 자신의 길잡이와 전령사자나 대사로 쓰기로 하고 또한 길 떠난 나그네의 수호신 자격을 인정하였다. 아폴론도 또한 자신이 항상 지니고 있던 황금단장 카두케오스를 동생 헤르메스에게 주었다. 카두케오스는 신의 사자라는 증표로, 단장에는 뱀 두 마리가 감긴 상이 있고 위쪽에는 한 쌍의 날개 장식이 달려 있다(현재 의무대의 기장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여 헤르메스는 신의 전령사자로서 올림포스의 신족이 되었는데, 특히 명계의 신인 숙부 하데스는 헤르메스를 불러, 죽어가는 인간의 눈 위에 황금접시를 얹어 깊은 잠 속에서 편히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라 하였으므로 그 후 자주 지하세계를 출입하게 되었다. 젊은 신 헤르메스는 나이든 올림포스 신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아 아폴론은 그에게 자갈돌로 점을 치는 법과 피리부는 기량을 알려주었으며 아르테미스는 수렵에 가담시키기도 하였다. 성장한 후 헤르메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두었는데 모두 그리스 세계에서 한 몫을 하는 이름난 인물이 되었다. 예컨대 키오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우톨류코스는 희대의 도둑이 되고, 시칠리아 월계숲 요정에게서 낳은 다프니스는 그리스 세계 최고의 시인이요 목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또한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카리아 샘의 요정 살마키스에게 붙잡혀 양성인 반음양체로 화신하였다. 인간 낭자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뮤르틸로스는 커서 피사 왕 오이노마노스의 기병대장으로 이름난 기사가 되어 공주 히포다메이아를 탐내었다. 이륜마차 경주에서 자기와 견줄 자가 없다고 믿었던 피사 왕은 자신을 이기는 젊은이에게 딸을 주되 경기에 패한 자에게는 죽음을 내린다고 공포한 후 여러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침 펠롭스가 여기에 도전을 하였는데 뮤르틸로스를 꼬여 공주는 양보할 테니 왕의 수레에서 바퀴의 빗장을 빼놓으라고 하였다. 결국 경기중 왕의 수레가 전복되어 왕은 죽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아서, 뮤르틸로스 자신마저 매수자의 손으로 수장당하여 죽음을 맞았다. 시신은 어느 해안으로 흘러 들어가 그 곳에서 영예로운 장례가 치러졌으며 사후 헤르메스의 아들로서 별자리에 올랐다. 그 밖의 헤르메스의 아들로는 안티아니라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고 원정대의 보도담당 에키온, 드류오페 혹은 페넬로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신이된 판이 있다. 헤르메스는 아르카디아 태생으로 그 지역의 원초적 신이며 아폴론보다도 더 오래된 목신으로서 나라가 형성되기 전부터 정착한 신이다. 옛적 그리스 나라에 풍요를 가져오게 하고 인간의 생식이나 다산만이 아니라 조류나 가축의 증가에도 효험이 큰 수허신으로서 매우 숭배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의 남근 입석으로 숭배되었으나 점차 헤르메스로 발전하면서 두상(입석두상)이 조각되고 아랫부분은 가는 입석으로 바뀌었다. 이후 입석 중앙 부위에 힘찬 남근이 돌출된 조상이 곁들여져 에너지와 풍요를 상징함과 동시에 안정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남근체제(Phallocracy)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사 이전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중되었을 것이다. 또한 다산이란 당연히 땅과 관련이 깊으므로 헤르메스는 지하 및 죽음과도 연관성이 가져 죽은 인간의 영혼 안내자(Psychopompos)로 신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헤르메스는 다재다능한 젊은 신으로 숭배되고 청춘남녀에게 가장 친밀감을 주는 신이기도 하였다. 경기장에서는 헤름(헤르메스 입상)이 세워져 있는데 특히 유명한 올림피아 경기장의 초상은 젊고 늠름한 승리자의 상으로 헤르메스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헤르메스는 또한 도둑, 도박, 거짓, 상거래, 웅변, 외교, 체육 의술, 혹은 평화의 수호신이자 길 떠나는 나그네의 보호신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시, 음률 및 천문에 능하고 항상 날개 달린 짚신을 신고 있으며 때로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서 하늘의 새보다 빠른 속도로 천상에서 지하세계까지 날아다녔다. 로마에서는 신의 속성을 메르쿠류 신에 결부시켰으며 천문에서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헤르메스의 동물은 독수리와 개이며, 제의에는 양젖과 꿀을 공양하였는데 웅변의 신으로 감미롭고 설득력 있는 재능을 가진 데 연유한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동물혀를 불에 던져서 공양을 하는 이유는 구변(말)의 보호신에게 혀가 장기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의 조각상에는 팔다리가 없는 표현도 있는데, 말의 효력은 어디서나 우세하여 팔의 도움 없어도 널리 보급되기 때문이라 한다. 상인이나 도둑이 매우 재수가 좋아 횡재하게 되면 헤르마이온(헤르메스의 선물)이라 하는데 이 또한 헤르메스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판 판(Pan)은 펠로폰네소스 중앙부 아르카디아 산악지의 오랜 목신이다. 이 지역에는 소가 거의 없고 주 목축은 양떼이므로 양을 보호하는 신은 필연적으로 양과 같이 뿔과 턱수염이 나 있고 다리는 산양과 같은 반신반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야산, 고원지대, 동굴 등 조용한 자연을 좋아하고 또한 낮잠을 즐기는데, 방해를 받으면 크게 화를 내면서도 자신은 시끄럽고 유쾌하게 지냈다. 이름난 악사이기도 한 판이 부는 피리는 7개의 갈대로 만든 것이고 이 피리는 오늘날에도 아르카디아 목동이 즐겨부는 악기다. 판은 모든 것을 상징하는 신으로 그리스 종교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혹은 도덕적 가치관의 저변과 속속들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판은 그리스의 어떤 신보다도 생활속에서 친밀한 신이며 본능적 욕구의 인성화로 상상속에도 존재하였다. 또한 새나 짐승을 기르는 옛 인간들 자신의 심성의 영혼과도 동일시 되었으며 인간에게 우호적인 도깨비신이기도 하였다. 판은 헤르메스의 아들이라 하지만 어미니는 확실하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 직전에 아테네에서는 발이 빠른 필리피데스를 급히 스파르타로 보내 공동의 적 페르시아 침입군을 칠 원군을 요청하였다. 급히 달리고 있던 필리피데스는 파르테니온 산을 지날 때에야 비로소 같이 달리는 주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즉 판이 같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필리피데스는 신의 이름을 대고 아테네 사람들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처럼 판은 아테네와 친숙하였으며 전에도 그러하였듯이 다시 도움을 주었으므로 아테네에서는 하나같이 판의 영예를 높이 올렸다. 이에 따라 승리를 거둔 아테네에서는 판을 숭배하고 아크로폴리스 동굴 신전에다 모셨다. 이 때부터 판 숭배는 아르카디아 이외의 나라로 보급되어 나갔다. 판은 한적하고 쓸쓸한 곳에서 이겨낼 수 없는 돌발적이고 이유없는 공포발작을 일으키게도 하고, 동물들에게도 이유없이 놀라 짖거나 도망치게 하기도 하였다. 또한 판은 기운좋고 장난이 심한 신이자 묵축에 다산을 가져오게 하는 신이므로 당연히 성행위와 관계가 깊어 사람들은 다산을 기원하는 예배를 올렸다. 올림포스 신들도 판을 존중하고 일설에는 아폴론의 예언술도 이 신이 전수하였다고 한다. 판의 사랑신화는 후기에 첨가된 것이고, 이 신과 관련해서는 에코, 슈링크스(갈대로 화신), 프튜스(소나무로 화신) 등의 요정들이 있으나 모두 판을 피하여 물체로 전환하였다 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태어난 후 프리지아의 이다 산 샘의 요정 나이아데스에게 위탁 양육되었다.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호기심이 나서 세상구경에 나섰는데 소아시아의 카리아에서 경관이 뛰어난 한 호숫가를 발견하고 목욕을 하였다. 이 때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가 그에게 연정을 느끼고 먼저 유혹을 하였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요정의 애원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살마키스는 물 속을 헤엄쳐 가서 그를 끌어안고 신들에게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 몸이 되게 해주기를 간청하였다. 신이 마침내 그녀의 기원을 들어주니 둘은 서로 붙어 한몸이 되었다. 그러나 각자의 성 기능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양성체가 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신에 감사를 올리며 살마키스 호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누구든 남성다움이 없어지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되도록 탄원하였다. 스트라보 시대에도 이 호수는 여성화의 징험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대에는 남녀 양성을 가진 신을 생식.번식.다산의 상징으로 숭배하였으며, 특히 사랑의 여신 숭배지 키프로스 아마토스 도시에서는 턱수염이 난 남성 아프로디토스 신을 모시며 이성의 옷을 입고 예배하는 복장도착의 습성이 있었으며 배우자 없이도 생산이 가능한 여자의 자율적 생식(자가생식)이 있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아비와 어미 이름을 합친 합성명칭이며 미술에서는 유방을 가진 아름다움 젊은이, 또는 남근을 가진 미녀상으로 묘사되고 디오뉴소스를 수행하는 모습을 부조한 비각이 많다. 현재 헤르마프로디즘은 반음양, 자웅동체, 남녀추니라는 뜻으로 쓰인다. 프리아푸스 프리아푸스(Priapus)는 성욕을 유발하는 옛 신으로 로마인은 정원을 보호하는 신으로 존경하였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아비는 헤르메스, 아도니스, 이오뉴소스 등 설이 다양한데 맨 나중 설이 보다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인도 순례에서 돌아온 디오뉴소스와 아프로디테가 사랑을 나눈 후 헬레스폰트의 람프사코스에서 낳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팔다리가 기형이고 성기가 특히 거대한 괴물로 태어났는데, 질투가 심한 헤라가 출생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하며 창피해서 산에다 버렸으나 양치기가 구해 내었다. 후기에 Propter deformidatem et memebri virilis magnitudinem이라는 긴 이름이 붙여졌다. 그의 출생지로 알려진 람프사코스에서 특히 존중받았으며 생산력을 상징하는 힘찬 남근으로 표현되고 그리스에는 알렉산더 대왕 때 전파되어 숭배되었다. 희생공양으로는 성욕이 유달리 강한 나귀가 선택되었다. 병적으로 일어나는 음경의 지속적 발기증을 뜻하는 프리아피즘이라는 용어는 그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메이퀸 축제 전야에 제단 앞에 성스러운 옛 프리아푸스 남근상을 배치하고 화환을 걸어 거리로 운반하는 성대한 성의식 광연이 개최되었다. 후기에는 메이폴(오월의 기둥)로 대치되어 대지의 자궁에 삽입시켜 뿌린 씨의 결실을 축원하는 봄 축제로 발전했으며 남근숭배 양상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 전승되었다. 미혼남녀의 성적유희를 해금하는 전승도 성행하였다.
Board 추천글 2023.11.09 風文 R 1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