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색 얄궂다. ‘내-색(色)’. 색을 냄, 색을 내보임, 마음에 느낀 걸 얼굴에 드러냄. 그런 뜻이라면 ‘색내’나 ‘색냄’이라 해도 됐을 텐데, 굳이 동사 ‘내다’를 ‘색’ 앞으로 보냈다. ‘놀토, 먹방’ 같은 말이 만들어질 조짐이 오래전부터 있었나 보다. 무술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격동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두렵지만 두려운 내색을 하지 말고, 즐겁지만 즐거운 내색을 하지 말라는 것. 평정심과 항구여일의 풍모를 잃지 말라는 것. 무표정한 얼굴(포커페이스)을 하라는 게 아니다. 변함없는 얼굴을 하라는 것이다. 평소에 웃는 얼굴이라면 싫은 사람이 나타나도 웃고, 늘 째려보는 얼굴이라면 두려운 사람이 나타나도 째려보라는 것. 상대에게 나의 촐싹거리는 마음을 낯빛으로 티 내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의 격랑은 얼굴에 미세한 변화를 가져와 눈 밝은 사람은 금방 눈치를 챈다. 그만큼 위험해진다. 평정심을 잃었을 때도 평정심을 잃은 내색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세상’인데, 뭘 그리 억누르며 사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 시대는 감정과 행동을 일치시키라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라는 구호가 드높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은 순간순간 ‘내색하기’에서 결정난다. 싫은 내색을 할지 말지, 좋은 내색을 할지 말지, 두려운 마음을 내색할지 말지. 내색을 하여 운명의 축이 바뀔지, 내색하지 않아 인연의 끈이 뒤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내색할지 말지’를 생각한다는 건 마음속에 검색대 하나를 세우는 일이다. 지금 당신 마음에 일렁이는 감정을 타인에게 내색할지 헤아려 보라. 나는 오늘도 분하지만, 비겁함이 습관이므로 내색하지 않는 쪽으로 살련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24 風文 R 2263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9장 도래종교 2. 큐벨레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키벨레 상] 큐벨레(Cybele)는 동방의 여신이며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이라고 한다. 디오도로스에 의하면 메노스라는 리디아의 왕자와 딘듀메네의 딸이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의 레아와도 동일시된다.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졌는데 산짐승의 젖으로 살아났고 그 산 이름을 따서 큐벨레로 불리게 되었다. 커서 아버지 궁전으로 돌아와 미모의 청년 아티스와 밀통하게 되자 아버지는 청년을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다. 여신의 아티스에 대한 사랑은 프리지아에서의 큐벨레 숭배에 잘 나타난다. 즉 큐벨레는 아티스에게 종신토록 자신을 섬기며 독신을 지킬 것과 이를 어길 경우 속죄를 요구하였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티스는 거세되고 소나무 십자가에 처형되어 지상의 죄를 속죄하게 된다. 프리지아에서 큐벨레 축제는 극도로 장엄하게 치러지는데, 그 사제들은 코류반테스 혹은 칼리스로 불리며 미리 신체의 일부를 제거한 선택된 자가 아니면 참여하지 못하였다. 의식은 아티스를 잃은 큐벨레의 슬픔을 표현하는 행사로, 마치 실성한 자의 모임처럼 무시무시하고 예리한 음과 절규, 드럼과 작은 장고소리, 방패와 창 부딪치는 소리가 모두 같이 섞여서 온천지를 진동하였다. 또한 새로 참가하는 자에게 수소를 잡아 그 피로 세례를 주었다(타우로볼리즘). 큐벨레는 건강한 여성을 상징하고 그녀의 임신은 땅의 생식을, 여러 개의 유방은 지상에서 모든 산짐승에 식량을 주는 것을 상징한다. 탑 장식관이나 면사포를 쓰고, 곁에는 두 마리의 사자를 대동한 채 옥좌에 앉아 있거나 사자가 끄는 일륜마차를 타고 있을 때도 있다. 아티스는 잔을 들고 그 옆에 배석하였다. 두 마리 암수 사자는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 두 남녀가 신전을 혼인의 신방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독죄로 변신시킨 것이다. 큐벨레 숭배는 그리스에 들어가 엘레우시스의 비의로 절충되어 데메테르 엘레우시스 비의로 자리잡았다. 로마인들도 이들 정중히 받아들여 로마의 최고 모신으로 모시고 바티칸에 신전을 세웠는데 그리스도교가 점거하는 서기 4세기까지 엄존하였다. 로마에서는 시뷸레의 신탁에 따라 프리지아의 페시노스에서 여신상을 모셔와 축제를 벌였는데 그 배가 티베르 강가로 다가오면 클라우디아의 미덕과 순결을 입증하기 위해 허리띠를 끄르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여신 숭배의 핵심이 되는 성석을 실은 배가 티베르 강에서 좌초하였을 때 귀부인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그 배를 끌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 무속신앙은 매우 강하여 매년 4월 6일에는 여신의 성체를 알몬 강물에 목욕을 시켰다. 축제 때는 음란한 외설이 만발하고 사제들은 외설발언에 열을 올렸는데 이는 음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서 벗어남을 나타내었다. 아티스 아티스(Attis, Atys)는 프리지아 신화에서 큐벨레 숭배와 동방하여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로, 기원전 204년에는 로마로 들어왔다. 원래 양치기이지만 뛰어난 미모로 큐벨레의 사랑을 받았다. 이 젊은이에 매료당한 큐벨레는 자신의 사원을 맡기며, 평생 동정을 지켜 독신으로 살 것을 약속케 하였다. 그러나 아티스는 한 요정에게 연정을 품어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에 여신의 극심한 역정을 사서 실성하게 되고, 마침내 예리한 돌로 스스로 거세하여 성불구가 되었다. 그 후 큐벨레 숭배를 맡은 승려들은 종신토록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자진해서 거세하였다. 큐벨레와 아티스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디오도로스에 의하면 큐벨레와 아티스가 사랑에 빠지자 큐벨레의 아비가 젊은이를 성불구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또한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아티스는 강의 신 상가리오스의 달 나나의 아들로, 나나가 편도 가지를 품었다가 잉태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예기인즉 아그디스티스라는 신은 양성을 지닌 괴물이었는데 신들이 그의 남성성기를 제거하여 땅에 던지자 거기에서 편도나무가 솟아났다. 상가리오스의 딸 하나가 그 가지를 모아 가슴에 품었더니 잉태가 되었고 거기에서 아티스가 태어났다. 아티스는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져 산양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산간에서 남성성기를 제거당하여 여성이 된 아그디스티스 (큐벨레)가 아티스의 미모에 넋이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티스가 페시노스 왕의 딸과 축복된 혼례를 올리게 되자 질투에 휩싸인 아그디스티스는 마법의 능력을 발휘하여 왕과 사위 간에 싸움을 붙이니 격분한 나머지 둘다 성불구가 되었다. 큐벨레는 자해하려는 아티스를 소나무로 바꾸었고 그 후 소나무는 모든 신의 모신에게 바치는 나무가 되었다. 또한 아티스는 큐벨레의 화신인 처녀신 나나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아티스는 성인이 되자 어느 해 속죄 제삿날에 희생되어 인류 구제를 위하여 거세하고 소나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데 아티스의 성혈이 흘러 지상의 죄를 모두 속죄하였다고도 한다. 이 날이 바로 춘분으로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한다. 아티스의 육신은 빵에 넣어져 숭배자들에게 먹은 바 되고, 아티스는 죽은 지 3일만에 다시 부활하였다. 이 부활의 날을 카니발 또는 힐라리스라 부르는데 사람들은 부활의 환희에 들떠 거리에서 변장을 한 채 춤추고 돌아다니며 한때의 정사에 빠졌다. 이 날이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도들도 아티스의 부활에서 유래한 부활제를 경축하고 카니발 행사를 겸하였는데 이는 후세에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축제주일의 최종일은 행사의 절정에 달하며 그 날 즉 4월 1일을 만우절이라 하였다. 아티스 숭배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아티스 수난에 대해서는 3월 25일에 추모를 하였는데 그것은 아티스가 탄생한 동짓날인 12월 25일에서 꼭 9개월째 되는 날이다. 수난의 시각은 또한 그가 잉태된 시각도 된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자신들의 구세주의 잉태와 탄생일이 아티스의 그 날과 같은 날이라 하고, 이것이 논쟁거리로 떠오르자 즐겨하는 지론으로 그리스도교가 생기기전에 악마가 그리스도교 정신을 본 떠 이교의 비의를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아티스 신봉자는 결국 아티스의 희생의 날을 그리스도교도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는 3월 25일을 예수 잉태의 날로 고지하고 축일로 공포하였다. 따라서 예수도 아티스와 마찬가지로 9개월 후인 동짓날에 태어난 것으로 되었다.
Board 추천글 2023.11.22 風文 R 1799
인생조로(人生朝露) 人:사람 인. 生:날/살 생. 朝:아침 조. 露:이슬 로. [원말]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유사어] 인생초로(人生草露). [참조] 안서(雁書), 구우일모(九牛一毛). [출전]《漢書》〈蘇武專〉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다는 말. 전한 무제(武帝) 때(B.C.100)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는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들의 내란에 말려 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는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는 소무를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을 허락하겠다’며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했다. 소무가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어느 날, 고국의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찾아왔다. 이릉은 소무가 고국을 떠난 그 이듬해 5000여의 보병으로 5만이 넘는 훙노의 기병과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 부적(衆寡不敵)으로 참패한 뒤 부상, 혼절(昏絶)중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릉은 선우의 빈객으로 후대를 받았으나 항장(降將)이 된 것이 부끄러워 감히 소무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선우의 특청으로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릉은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우는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고, 꼭 데려오라며 나를 보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고생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人生如朝露]’고 하지 않는가.” 이릉은 끝내 소무의 절조를 꺾지 못하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소무는 그 후(B.C.81) 소제(昭帝:무제의 아들)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機智)로 풀려나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Board 고사성어 2023.11.22 風文 R 771
'밖에'의 띄어쓰기 주말 저녁, 외국의 어느 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TV로 보고 있었다. 한 소녀가 뭐라고 말을 하자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라는 자막이 나타났다. 얼른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다면 ‘이 안에’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런 뜻이 아니다. 병든 부모님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 학교에도 못 가고 물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곧 펼쳐졌다. 그렇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라고 해야 한다.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띄어쓰기 차이다. ‘밖에’를 앞 말과 띄어 쓸 때와 붙여 쓸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앞 말과 띄어 쓰는 ‘밖에’는 명사 ‘밖’에 조사 ‘에’가 결합된 것으로, 일정한 범위나 한계 바깥을 의미한다. 이 ‘밖에’는 ‘안에’의 반대말이므로 ‘창 밖에 비가 내린다’는 말은 ‘창 안쪽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문 밖에 누가 왔다’는 ‘문 안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때 ‘밖’은 ‘안’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명사이므로 앞 말과 띄어 쓴다. 물론 다른 말이 앞에 나올 필요 없이 단독으로도 쓰인다. ‘밖에 오래 서 있었더니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가 그런 예이다. 이와 달리 항상 앞 말에 붙여 써야 하는 ‘밖에’는 ‘그것 말고는’의 뜻을 나타내는 조사다. 뒤에는 반드시 부정적 뜻을 지닌 말이 온다. ‘동생이 하나밖에 없다’든가 ‘돈밖에 모르는 구두쇠’처럼 쓴다. ‘동생이 하나밖에 있다’든가 ‘돈밖에 아는 구두쇠’ 같이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말과는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 위에 예로 든 TV 자막의 ‘밖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있다’로 바꾸어서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앞 말과 붙여 쓰는 조사임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11.22 風文 R 3008
몰래 요동치는 말 아무래도 나는 좀스럽고 쪼잔하다. 하는 공부도 장쾌하지 못하여 ‘단어’에 머물러 있다. 새로 만들어진 말에도 별 관심이 없다.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속에선 요동치는 말에 관심 가지는 정도. 이를테면, ‘연필을 깎다’와 ‘사과를 깎다’에 쓰인 ‘깎다’는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하는 정도. 뜻이 한발짝 옆으로 옮아간 ‘물건값을 깎다’도 아니고, 그저 ‘연필’과 ‘사과’에 쓰인 ‘깎다’ 정도. 연필 깎는 칼과 사과 깎는 칼은 다르다. 연필 깎는 칼은 네모나고 손가락 길이 정도인 데다가 직사각형이다. 과일 깎는 칼은 끝이 뾰족하고 손을 폈을 때의 길이 정도이다. 연필은 바깥쪽으로 칼질하지만, 사과는 안쪽으로 해야 한다. 연필은 집게손가락 첫째 마디 위에 연필 끝을 올려놓고 반대편 손 엄지손가락으로 칼등을 밀어내며 깎는다. 사과는 손바닥으로 사과를 움켜쥐고 반대편 손은 사과 표면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넓게 벌렸다가 집게손가락에 닿아 있는 칼등을 엄지손가락이 있는 데까지 끌어당기면서 깎는다. 둘은 다르다고 해야겠군! 그래도 깎는 건 깎는 거니까 같다고? 좋다. 그러면 둘 다 같은 칼로, 같은 방향으로 깎는다고 치자. 그러면, 둘은 같은가? 행위에는 목적이나 결과가 있다. 연필을 깎으면 글을 쓰지만, 사과를 깎으면 먹는다. 두 동작(작동)의 목표와 결과는 다르다. ‘깎다’라는 말은 관념 속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사물과 연결된 미세한 행동방식과 함께 몸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 세계를 온 감각을 동원하여 지각하며 이해하며 행위한다. 말은 말 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외부 환경에 조응하는 몸의 감각과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족하다. 좀스럽긴 하지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22 風文 R 2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