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성문 사는 게 후회의 연속이다. 말을 해서 후회, 말을 안 해서 후회, 말을 잘못해서 후회. 집에서는 말이 없어 문제, 밖에서는 말이 많아 문제. 나는 천성이 얄팍하여 친한 사람과는 허튼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탈이 난다. 며칠 전에도 후배에게 도 넘는 말장난을 치다가 탈이 났다. 아차 싶어 사과했지만, 헤어질 때까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땅콩 까먹듯이 장난질을 계속하니 사달이 나지. 올해 가장 후회되는 말실수. 지난여름, 어느 교육청 초대로 글쓰기 연수를 했다. 한 교사가 ‘약한 사람들이 할 일은 기억, 연대, 말하기’라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거기다 대고 나는 ‘뻘소리’를 했다. “교실에서 제일 힘센 사람은 선생이잖아요. 뭘 하라고도 할 수 있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니 잘 견딥시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거였는데,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소리나 하다니. 그러곤 얼마 안 있어 교사들의 비극적 선택 소식이 이어졌다. 아찔했다. 교사들은 죽음을 감행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교사인 처제도 학생의 해코지가 두려워 얼마 전 노모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 폐허로 변한 교실, 붕괴된 교육체계를 응시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더 나누며 연대의 길을 찾아보자고 해야 했는데…. 그 말이 들어 있는 글을 다시 보니 ‘죽음은 개인이 당면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는 것, 죽음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씨불이고 있었다. 말에서 비롯한 잘못은 자기감정이 과잉되거나 자기 확신이 강해서 생긴다. 무엇보다 상대를 넘겨짚다가 결국 큰코다친다.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몹쓸 놈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2.20 風文 R 2466
Board 고사성어 2023.12.18 風文 R 668
가짜와 인공 사는 게 가짜 같을 때가 있다.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맞다. 하지만 어떤 게 진짜가 아니어야 가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짜 총’의 자격은? 총의 모양을 띠고 손잡이와 방아쇠가 있고 쇠로 만들었으며 총알이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그렇다면 ‘가짜 총’은 모양은 같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능이 없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 모양이 달라도 ‘가짜 총’이 될 수 있다. 강도가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쏴 버릴 거야’라고 하면서 뒤통수에 총 대신 볼펜을 들이댄다면, 지갑을 꺼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볼펜이 총. 주먹을 쥔 채로 엄지와 검지를 곧게 뻗어 ㄴ자를 만들어 ‘빵’ 하고 소리를 내면 총이 된다. 손가락이 총. 모양이 달라도 ‘진짜 총’인 경우도 있다.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온갖 무기를 만들어주는 큐(Q)는 겉보기엔 우산인데 총알이 발사되는 총을 선물한다. 우산이 총.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는 것에는 ‘가짜’보다는 ‘인공’이나 ‘인조’라는 말을 쓴다. 진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가짜가 분명하지만, 인간이 계획적이고 인위적으로 이 세계에 개입한다는 걸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의지가 묻어난다. 인공위성, 인공관절, 인공강우, 인공폭포, 인조잔디…. 모두 원래의 것과는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고 인간 세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환호하기도 한다. 게다가 ‘인공호흡’은 얼마나 간절한 인간적 몸부림인가. 나고 죽는 게 자연의 본질인데, ‘인공’은 그런 성격이 없다. 낡아 폐기할 뿐,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무엇에 육박하고 있는지 묻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2.18 風文 R 2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