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암귀(疑心暗鬼) 疑:의심할 의. 心:마음 심. 暗:어두울 암. 鬼:귀신 귀. [원말]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유사어] 절부지의(竊斧之疑), 배중사영(杯中蛇影). [출전]《列子》〈說符篇〉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듯이 느껴진다는 뜻. 곧 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짐. ② 선입관은 판단을 빗나가게 함. ①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 맞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슬금슬금 도망갈 듯한 자세였고 안색이나 말투도 어색하기만 했다. ‘내 도끼를 훔쳐 간 놈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이렇게 믿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저번에 나무하러 갔다가 도끼를 놓고 온 일이 생각났다. 당장 달려가 보니 도끼는 산에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 아이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별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② 마당에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본 이웃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집안에 말라죽은 오동나무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네.” 주인이 막 오동나무를 베어 버리자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땔감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주인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이제 보니 땔감이 필요해서 날 속였군.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엉큼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Board 고사성어 2023.11.20 風文 R 785
‘가오’와 ‘간지’ 최근 베테랑 형사와 안하무인이며 후안무치인 재벌 3세의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 한 장면에서 형사가 ‘가오’란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써서 많은 관객을 웃겼다. ‘가오’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여와 쓰이기 시작한 말로, 일본어 ‘가오(かおㆍ顔)’에서 유래한다. 광복 이후 이 말을 ‘얼굴’ 또는 ‘체면’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고, 그 결과 공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여전히 ‘가오’가 널리 쓰이고 있다. 주로 ‘가오(가) 서다’, ‘가오(를) 잡다’ 등의 형식으로 쓰인다. 이때의 ‘가오’는 ‘얼굴’ 또는 ‘체면’과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말을 ‘허세’, ‘개폼’ 등의 의미에 더 가까운 비속어로 인식한다. ‘가오’처럼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로 ‘간지’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간지(かんじㆍ感じ)’ 또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로, 광복 이후 ‘느낌’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방송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지 스타일’, ‘간지 아이템’ 등이나 ‘간지(가) 나다’의 형식으로 ‘간지’가 부활(?)하여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간지’가 ‘느낌’보다 더 그럴듯한 의미를 갖는 말로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 잔재의 대부분은 현재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일본어는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우리말로 둔갑하여 여전히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널리 쓰이다 보니 우리말보다 더 친숙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광복절을 맞아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Board 말글 2023.11.20 風文 R 2530
까치발 신호등 앞에서 한 노인이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며 하지정맥류를 예방하는 만병통치의 까치발 운동.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고 있겠지. 새들은 모두 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까치를 자주 봐서 까치발이려나, 한다. 제비발이나 까마귀발이라 해도 문제없다. 네발짐승들도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힘만으로 걷는다. 네발이니 땅에 닿는 면적이 좁아도 괜찮다. 강아지만 봐도 발꿈치뼈는 땅에 닿지 않는다. 두발짐승인 사람만 넓적한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뎌야 ‘서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 까치발을 하나? 시선을 초과하는 현장이 궁금해서겠지. 마음은 이미 장벽 너머로 넘어가 있건만, 육신은 날 수도 튀어오를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까치발은 ‘너머’를 보겠다는 의지의 육체적 표명. 육신의 한계 때문에 일렁이는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투. 도구도 필요 없다. 오직 내 몸뚱이를 최대한 늘려서 기어코 보고야 말리라. ‘너머’에 대한 갈망은 까치발을 딛음과 동시에 턱을 앞으로 쑥 내밀게 한다. 동물계에서 이탈한 인간이지만, 이때만큼은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동물에 가까워진다.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턱을 앞으로 내밀어 보라(눈은 뜨고!). 가린 손 너머로 풍경이 훤히 보일 게다. 목이 원의 중심이 되어 턱을 내미는 만큼 눈이 원의 꼭짓점을 향해 ‘올라간다’. 와, 턱을 내밀면 눈이 올라간다는 우주적 발견! 내 눈높이, 내 키 너머에 다른 풍경이 있을지 모른다. 풍경만 그렇겠는가. 내 한계 너머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텅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죽음 너머의 진실이 보고 싶다. 끽해야 까치발 정도의 간절함이지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20 風文 R 2452
쓰봉 권대웅의 시 ‘쓰봉 속 십만 원’은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 원이 있다’로 시작한다.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된 노모가 집에 두고 온 당신의 전 재산을 자식들이 모르고 지나칠까 봐 일러주는 말이다. ‘쓰봉’은 바지를 뜻하는 일본말로 일제 시대에 들어와 1970년대까지 널리 쓰였다. 국어순화 운동에 힘입어 ‘와리바시(나무젓가락), 벤또(도시락), 다마네기(양파)’ 등과 함께 이제는 우리말에서 사라져버린 말이다. 중장년 세대는 대부분 알고 있는 말이지만 젊은이들에게 ‘쓰봉’은 낯선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젊은 주부들이 ‘쓰봉’이란 말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사라져버린 말이, 그것도 어렵게 쫓아낸 일본어 외래어가 다시 들어와 사용되고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그것은 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쓰레기봉투’를 줄여 이르는 새말이었다. ‘생일선물’을 ‘생선’으로 ‘생일파티’는 ‘생파’로 줄이는 등, 빠른 소통을 위해 가능하면 줄여 쓰는 젊은이들의 언어 습관이 새롭게 ‘쓰봉’을 탄생시킨 거였다. 이쯤 되니 재미난 상상이 떠올랐다. 위의 시에서 어머니가 손주들에게 ‘쓰봉 속 십만 원’ 얘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손주들은 안방에 벗어놓은 할머니 바지를 뒤지는 대신 부엌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보며 할머니가 두고 가신 돈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말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세대 간 언어 차이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또한 줄임말은 언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그 말을 아는 사람들끼리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줄여 쓰기를 통해 무분별하게 만들어내는 새말은 세대 간 불통을 부추길 수도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11.16 風文 R 2772
부사, 문득 부사(副詞)는 이름부터 딸린 식구 같다. 뒷말을 꾸며주니 부차적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더부살이 신세. 같은 뜻인 ‘어찌씨’는 이 품사가 맡은 의미를 흐릿하게 담고 있다. 글을 쓸 때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 모든(!) 글쓰기 책엔 부사를 쓰지 말라거나 남발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문장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동사)로만 되어 있다는 것. 부사는 글쓴이의 감정이 구질구질하게 묻어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단다. (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분량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것도 부사군.) 그래도 나는 부사가 좋다. 개중에 ‘문득’을 좋아한다. 비슷한 말로 ‘퍼뜩’이 있지만, 이 말은 ‘갑자기’보다는 ‘빨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퍼뜩 오그래이’). ‘문득’은 기억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는 기억하는 걸 다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너무 깊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 오른다. 그래서 ‘문득’은 ‘떠오른다’와 자주 쓰인다. 망각했던 걸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문득’은 성찰적인 단어다. 예측 가능한 일상과 달리, 우연히 갑자기 떠오른 것은 정신없이 사는 삶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한다. 기억나지 않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오르면 자신이 겪어온 우여곡절이 생각난다. 작정하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유도 모르게 솟아나는 게 있다니. 나에게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기대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인생, 허덕거리면서도 잘 살아내고 있다. 당신은 이 가을에 어떤 부사가 떠오르는가.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1.16 風文 R 2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