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다'와 '밟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시를 접할 때마다 가끔씩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바로 이 대목이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밟고’의 표준 발음은 〔밥:꼬〕이지만 열에 일고여덟은 ‘즈려 밥:꼬’가 아니라 ‘즈려 발꼬’로 발음한다. 시에 집중하지 못하고 요샛말로 사소한 데 지적질이냐고 하실 분도 있겠다. 인정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직업병인 듯싶으니까. 겹받침 ‘ㄹㅂ’은 〔ㄹ〕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넓다’는 〔널따〕 , ‘짧다’는 〔짤따〕, ‘엷다’는 〔열따〕, ‘여덟’은 〔여덜〕이 표준 발음이다. 간혹 〔넙따〕 〔짭따〕 〔엽따〕 〔여덥〕 등으로 발음하는 경우를 보는데 주로 호남 방언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겹받침 ‘ㄹㅂ’이 〔ㅂ〕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다. ‘밟다’가 그렇다. 밟다 〔밥:따〕 , 밟고 〔밥:꼬 〕, 밟지 〔밥:찌〕, 밟는 〔밥:는 → 밤:는〕으로 발음한다. 〔발따〕 〔발꼬〕 〔발찌〕 는 표준발음이 아니다. 예외가 또 있다. ‘넓-’은 파생어나 합성어의 경우에는 〔넙-〕으로 발음한다. 넓죽하다는 〔넙쭈카다〕, 넓둥글다는 〔넙뚱글다〕로 발음한다. ‘맑다’와 ‘밝다’도 〔말따〕 〔발따〕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겹받침 ‘ㄹㄱ’은 말끝이나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막따〕〔박따〕가 맞다. 다만 뒤에 오는 자음이 ‘ㄱ’인 경우에는 〔ㄹ〕로 발음한다. 따라서 ‘맑게’는 〔말께〕, ‘밝고’는 〔발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일이 원칙을 따지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입에 익히는 것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12.06 風文 R 3237
일자천금(一字千金) 一:한 일. 字:글자 자. 千:일천 천. 金:쇠 금. [유사어] 일자백금(一字百金). [출전]《史記》〈呂不韋列傳〉 한 글자엔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자나 시문(時文)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국 시대 말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은 각 3000여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며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宰相)이 되어, 어린(13세)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B.C.235, 정의 친아버지라는 설도 있음)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 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여불위였다. 그는 막대한 사제(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모아들였다. 이 무렵, 각국에서는 많은 책을 펴내고 있었는데 특히 순자(荀子)가 수만어(語)의 저서를 내었다는 소식을 듣자 여불위는 당장 식객들을 시켜 30여만 어에 이르는 대작(大作)을 만들었다. 이 책은 천지만물(天地萬物), 고금(古今)의 일이 모두 적혀 있는 오늘날의 백과 사전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대작은 나 말고 누가 감히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의기양양해진 여불위는 이 책을 자기가 편찬한 양《여씨춘추(呂氏春秋)》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이《여씨춘추》를 도읍인 함양(咸陽)의 성문 앞에 진열시킨 다음 그 위에 천금을 매달아 놓고 방문(榜文)을 써 붙였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리라.” 이는 상혼(商魂)이 왕성한 여불위의 우수 식객 유치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Board 고사성어 2023.12.05 風文 R 799
드라이브 스루 2014년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섰다. 세대수가 2,000만 세대니까, 1세대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한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자가용으로 직장에 출퇴근하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 길거리에서 ‘드라이브 스루(drive-thru)’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드라이브 스루’는 자동차 운전자가 차에 탄 채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가리킨다. 오래 전부터 자동차 생활이 일반화된 미국에서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나 은행이 운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서비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이 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는 앞으로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여겨진다. ‘드라이브 스루’는 ‘drive through’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직까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로 볼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립국어원은 올해 초 이 말을 ‘승차 구매’로 순화하여 쓰기로 했다. 그런데 ‘drive thru’처럼 한글이 아닌 영어 알파벳을 그대로 노출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drive thru’의 ‘thru’는 ‘through’을 간략화하여 적은 것이다. ‘why’, ‘you’ 등을 ‘y’, ‘u’ 등으로 적는 것과 같다. 줄임말의 한 가지로,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쓸 수 없는 비공식적인 말이다.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은 불가피하게 영어의 차용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아무런 생각 없이 영어로 가져다 쓰려 하지 말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찾아보려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 비공식적인 영어 줄임말까지 별생각 없이 가져다 쓰는 현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Board 말글 2023.12.05 風文 R 3184
상석 신통하게도 같은 모양의 의자이지만 어디가 상석이고 어디가 말석인지 금세 안다. 문이나 통로에서 먼 쪽. 등을 기댈 수 있는 벽 쪽. 긴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실에서 윗사람은 짧은 길이의 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평지인데도 상석(上席), 윗자리를 귀신같이 안다. 왜 그런가? 우리는 ‘힘’이나 ‘권력’을 ‘위-아래’라는 공간 문제로 이해한다. 힘이 있으면 위를 차지하고 힘이 없으면 아래에 찌그러진다. 이런 감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숱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몸에 새겨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올라서는 시상대는 은메달, 동메달 선수보다 높다. 경복궁 근정전의 왕좌는 계단 위에 놓여 있다. 선생은 교단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굽어보며 가르친다. 지휘자가 오르는 지휘석도 연주자들보다 높다. 현실세계의 물리적 공간 배치는 사회적 권력과 지배력을 실질적으로 표현한다. 말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윗사람, 윗대가리, 상관, 상사’와 ‘아랫사람, 아랫것, 부하’(그러고 보니 ‘하청업체’도 있군). 위아래 구분은 동사에도 반영되어 있다. 명령을 내리고, 말 안 듣는 부하는 찍어 누른다. 아랫사람은 명령을 받들고, 맘에 안 드는 상사는 치받는다. ‘상명하복’은 관료사회의 철칙이다. 사진에서 상석은 맨 앞줄 가운데 자리이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환갑잔치에서 어르신이 자리 잡는 바로 그곳. 쿠데타 성공 기념사진에서 살인마 전두환이 앉았던 그 자리. ‘상석’은 크고 작은 권력관계를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의 그림자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상석이 만드는 위계를 거역하는 힘도 있다. 상석에 앉지도, 중심에 서지도 않는 힘. 상석을 불살라 버리는 힘도 있다. (어딘가엔.)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2.05 風文 R 3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