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 고사성어 2023.12.18 風文 R 668
가짜와 인공 사는 게 가짜 같을 때가 있다.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맞다. 하지만 어떤 게 진짜가 아니어야 가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짜 총’의 자격은? 총의 모양을 띠고 손잡이와 방아쇠가 있고 쇠로 만들었으며 총알이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그렇다면 ‘가짜 총’은 모양은 같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능이 없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 모양이 달라도 ‘가짜 총’이 될 수 있다. 강도가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쏴 버릴 거야’라고 하면서 뒤통수에 총 대신 볼펜을 들이댄다면, 지갑을 꺼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볼펜이 총. 주먹을 쥔 채로 엄지와 검지를 곧게 뻗어 ㄴ자를 만들어 ‘빵’ 하고 소리를 내면 총이 된다. 손가락이 총. 모양이 달라도 ‘진짜 총’인 경우도 있다.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온갖 무기를 만들어주는 큐(Q)는 겉보기엔 우산인데 총알이 발사되는 총을 선물한다. 우산이 총.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는 것에는 ‘가짜’보다는 ‘인공’이나 ‘인조’라는 말을 쓴다. 진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가짜가 분명하지만, 인간이 계획적이고 인위적으로 이 세계에 개입한다는 걸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의지가 묻어난다. 인공위성, 인공관절, 인공강우, 인공폭포, 인조잔디…. 모두 원래의 것과는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고 인간 세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환호하기도 한다. 게다가 ‘인공호흡’은 얼마나 간절한 인간적 몸부림인가. 나고 죽는 게 자연의 본질인데, ‘인공’은 그런 성격이 없다. 낡아 폐기할 뿐,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무엇에 육박하고 있는지 묻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Board 말글 2023.12.18 風文 R 2564
'넓다'와 '밟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시를 접할 때마다 가끔씩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바로 이 대목이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밟고’의 표준 발음은 〔밥:꼬〕이지만 열에 일고여덟은 ‘즈려 밥:꼬’가 아니라 ‘즈려 발꼬’로 발음한다. 시에 집중하지 못하고 요샛말로 사소한 데 지적질이냐고 하실 분도 있겠다. 인정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직업병인 듯싶으니까. 겹받침 ‘ㄹㅂ’은 〔ㄹ〕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다. ‘넓다’는 〔널따〕 , ‘짧다’는 〔짤따〕, ‘엷다’는 〔열따〕, ‘여덟’은 〔여덜〕이 표준 발음이다. 간혹 〔넙따〕 〔짭따〕 〔엽따〕 〔여덥〕 등으로 발음하는 경우를 보는데 주로 호남 방언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겹받침 ‘ㄹㅂ’이 〔ㅂ〕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다. ‘밟다’가 그렇다. 밟다 〔밥:따〕 , 밟고 〔밥:꼬 〕, 밟지 〔밥:찌〕, 밟는 〔밥:는 → 밤:는〕으로 발음한다. 〔발따〕 〔발꼬〕 〔발찌〕 는 표준발음이 아니다. 예외가 또 있다. ‘넓-’은 파생어나 합성어의 경우에는 〔넙-〕으로 발음한다. 넓죽하다는 〔넙쭈카다〕, 넓둥글다는 〔넙뚱글다〕로 발음한다. ‘맑다’와 ‘밝다’도 〔말따〕 〔발따〕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겹받침 ‘ㄹㄱ’은 말끝이나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막따〕〔박따〕가 맞다. 다만 뒤에 오는 자음이 ‘ㄱ’인 경우에는 〔ㄹ〕로 발음한다. 따라서 ‘맑게’는 〔말께〕, ‘밝고’는 〔발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일이 원칙을 따지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입에 익히는 것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12.06 風文 R 3158